심령 부흥의 3대 원천 (열왕기하 23장 21-27절)
< 개혁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
요새 개혁을 기치로 출발했던 열린우리당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의 개혁실험은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에 변화가 없는 개혁은 진정한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요시야 왕의 이야기도 그 점을 잘 교훈합니다.
요시야 왕 18년이 된 어느 날, 왕이 성전을 수리하게 했을 때, 사람들이 성전 창고의 깊숙한 곳에 처박힌 당시 유대인들의 성서였던 토라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 힐기야갸 그 율법책을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고, 서기관 사반은 왕 앞에서 그 율법책을 읽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자기 옷을 찢고 애통하며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당시 성전은 영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상태였습니다. 이방신 숭배자들은 성전에서 어린이를 바치는 의식도 행했고, 성전 안에는 호모섹스를 하는 남창과 아세라 여신을 섬기는 여사제들도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왕은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모든 기물과 제단을 제거하고, 과거 왕들이 태양신에게 바쳤던 우상들도 제거했으며, 수많은 영매와 심령술사들도 제거했고, 개인이 소장한 집안 신들도 제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또한 왕은 유월절을 새롭게 지켰습니다. 본문 21-23절 말씀을 보면 요시야 왕 때처럼 유월절을 잘 지킨 때는 없었습니다. 그처럼 위대한 개혁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결국 그 개혁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습니다.
본문 26-2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뺀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한 이 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요시야를 신실한 왕으로 보시고 그의 개혁도 기쁘게 생각하셨지만 그 개혁이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해 결국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도 돌이키지 못했습니다. 개혁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 심령 부흥의 3대 원천 >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 심령 부흥의 역사를 이루고, 다시 한번 우리나라에 대각성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1. 하나님 말씀(God’s Word)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신을 섬기며 성서를 외면했고, 심지어는 종교 지도자들도 성서를 외면하니까 성서는 창고 속에 깊숙이 처박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성서를 발견하면서 요시야 왕의 개혁은 시작되었습니다. 그처럼 심령 부흥은 말씀을 다시 새롭게 받아들일 때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깊은 관계로 들어가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진리를 따라 바른 믿음을 가지려면 말씀을 높이고,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열린 심령으로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현대 성도들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성경을 읽지 않으면서 자신이 바른 믿음의 원리와 진리를 잘 알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냥 자기 생각과 인생경험과 느낌대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 미국의 뉴욕커(The New Yorker)라는 매거진에 이런 만화가 실렸습니다. 수학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7x5= ”라는 문제를 썼습니다. 그 문제에 모든 다른 학생들은 35라고 바르게 대답했는데 한 소년만은 “7x5=75”라고 답을 썼습니다. 선생님이 그 답이 틀렸다고 하자 그 학생은 선생님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답이 틀릴지 몰라도 저는 그렇게 느껴요.”
옛날에 그렇게 말하면 선생님을 놀린다고 엄청나게 맞았지만 지금 아이들은 그렇게 선생님을 갖고 놀려고 합니다. 지금 합리적 이성은 죽어가고 있고, 자기가 느끼는 감정은 점차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씀에 흥미를 가지지 않고 다 자기가 하기를 원하는 것만 하려고 하고, 자기 느낌과 감정과 경험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심령 부흥이 생길 수 없고 모든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어느 날, 경북의 한 교회에서 교회의 중직 한 분이 교육관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가 현기증으로 떨어져 목이 부러져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남녀 선교회원들이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말이 오고갔습니다. “이제 그분이 돌아가셨으니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교회를 힘들게 했으면 그런 말까지 나옵니까? 실제로 그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 1년 만에 교회가 두 배로 부흥되었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1등 교인이 됩니다. 그러나 자기 뜻과 감정대로 살면 ‘없어야 좋을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다시 말씀이 높여지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 아는 대로 살려고 하지 말고 말씀대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교회 성장학을 보면 교회는 개인적 관심이 적은 사람들이 모일 때 부흥되고, 자기 뜻대로 하려는 사람이 많으면 100명을 넘기기 힘들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앞선 사람이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런 사람에 의해 교회가 좌지우지되면 헌신적인 사람이 발을 붙일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뒤에 온 사람이 헌신하려고 해도 눈치가 보이고,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은 남이 헌신하는 것까지 불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여름에 더워서 성도들 사이에 에어컨을 달자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 장로님이 재정낭비라고 반대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도 당하셨는데 예배 시간에 한 시간 더위도 못 참느냐?”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이 헛갈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신앙적인 말 같은데 어떻게 보면 가장 몰상식한 말 같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그 장로님에 대한 이런 패러디 험담까지 나왔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도 당하셨는데 왜 자신은 움막에서 안 살고 큰 아파트에서 살까?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도 당하셨는데 왜 자신은 집과 자동차에 에어컨을 설치했을까?”
결국 너무 답답해서 한 집사님이 집사가 자기 돈으로 에어컨을 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장로님이 집사가 건방지게 함부로 나선다고 나무랐습니다. 그처럼 자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자기감정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감정대로 살지 말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전도자 스미스(Smith)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스미스 씨! 저는 성경을 여러 번 독파했지만 어떤 영감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때 스미스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성경을 독파하지 말고 성경이 당신을 독파하도록 하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처럼 성경을 나를 이끌어가고 말씀이 나를 바꾸도록 마음 문을 열고 받아들이면 반드시 심령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2. 회개(repentance)
신앙생활에서 말씀의 진리를 깨닫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심령 부흥이란 성령 충만과 동일한 말인데,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 성령 충만의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셨을 때 베드로가 담대하게 군중들의 죄를 지적하자 군중들이 마음에 찔려 “이제 어떻게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38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그 말대로 그들이 회개하고 죄에서 돌아섰을 때 성령님이 임했고, 그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삶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요새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문제나 다른 문제가 아니라 죄 문제입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을 초래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회개입니다. 다른 것을 미뤄도 회개는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때에는 회개할 틈도 없이 죽음과 심판이 닥치게 됩니다. 빨리 회개하고 죄로부터 돌아서는 길이 사는 길입니다.
과거 박 대통령 때 목사님들이 조찬기도회 때마다 전도했습니다. “각하! 어릴 때 주일학교 나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제 다시 예수 믿고 교회에 나가시지요.”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중에 대통령에서 물러나면 교회 나가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빨리 돌아서지 못해 결국 부하의 총에 맞아 회개할 틈도 없이 가셨습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빨리 결단할수록 인생에 유익이 됩니다.
한 여자가 철학자 칸트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너무 칸트가 청혼을 하지 않자 기다리다 지쳐서 관례를 깨고 여자가 먼저 청혼한 것이었습니다. 칸트는 그 청혼을 받고 잘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한 후에 그때부터 그녀와의 결혼에 대해 신중히 분석했습니다. 먼저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분석했고, 도서관에서 사랑과 결혼에 관한 책을 모조리 찾아 읽었습니다. 그처럼 결혼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마침내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결심한 다음 날, 그는 멋지게 차려 입고 그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여자의 아버지가 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칸트가 대답했습니다. “지난번 따님의 청혼을 받고 오랫동안 분석한 결과 좋은 결혼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제가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때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너무 늦게 왔네. 내 딸은 자네를 기다리다 지쳐서 결혼해 지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네.”
너무 신중하게 분석하면 좋은 것은 다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좋은 일을 위해서는 빨리 돌아서야 합니다. 환경이 잘 되기를 기다리면 늦습니다. 환경이 돌아서기 전에 내가 돌아서야 합니다. 환경을 바꾸는 개혁보다 내가 돌아서는 회개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처럼 회개하려는 마음만 가져도 우리는 새롭게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 오스카 세르반테스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전과 17범이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이제 그의 인생은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오스카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완전히 변화되어 그 다음부터 감옥에서 죄수 섬기는 일을 헌신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유능한 전문가들이 몇 년 동안 카운슬링을 해서도 변화시키지 못했던 오스카를 성령님은 순식간에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단순한 껍데기 개혁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 우리의 존재 자체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변화를 체험할 때 마귀와 저주의 기운은 물러가고 성령 충만함과 동시에 축복의 기운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3. 기도(Prayer)
요시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이 말씀은 그가 다윗이나 다른 어떤 왕보다 더 하나님께 더 신실했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요시야는 바르게 살면서 좋은 일도 많이 했지만 성경을 보면 요시야가 기도했다는 말이 없고, 백성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개혁 실패의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잘못된 것들을 제거하면서 동시에 금식과 기도를 선포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요시야는 백성들의 마음을 청소하는 것까지는 잘했지만 그 청소로 공허해진 마음을 영적인 것으로 채우지는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3-45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런 비슷한 예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어떤 사람으로부터 귀신이 물러갔지만 진정한 회개가 없어서 결국 그 청소된 곳에 새로운 더 악한 귀신이 7개나 들어와 그 전 형편이 더 나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새로워지려면 나쁜 행동을 버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그 심령에 성령이 가득 차야 합니다. 불의를 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의를 사랑하는 것까지 나가야 합니다. 삶의 스타일이 조금 달라지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사고방식과 마음과 가치관도 달라질 수 있어야 합니다.
개혁과 부흥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개혁만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먼저 마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하나님의 마음도 변화됩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의 변화는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한 진실한 기도는 어느 한 기도라도 헛되지 않습니다.
16세기에 윌리암 틴데일(William Tyndale)은 라틴어와 헬라어로 된 성경을 일반 성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영국 왕 헨리 8세에 의해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처형 직전에 틴데일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 그 기도대로 영국 왕의 눈이 열려 그가 죽은 지 75년 만에 영국 왕 제임스 1세에 의해 킹 제임스 버전(King James Version)이란 유명한 성경 번역본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불합리한 것들과 부조리한 것들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그런 것들을 다 비판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이제는 비판을 많이 하기보다는 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비판보다 기도가 훨씬 더 큰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비판을 잘 하느냐에 관심이 없고, 우리가 얼마나 기도하고 헌신하느냐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물으십니다. “너는 비판하면서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위해 한 일은 뭐냐?” 그 질문을 들으면 할 말이 없을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비판하는 소리가 크게 나올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비판하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이고 한 가지 일이라도 필요한 일을 더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교인도 열 명이 모이면 대개 여덟 명은 비판하는 쪽으로 갑니다. 그러나 비판의 유혹에 빠져 살면 허무한 인생으로 끝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족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판하기보다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적인 날개와 같습니다. 기도의 날개가 없으면 얼마 후에는 떨어지고, 기도의 날개가 있으면 높이 날아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성령 충만’이 사는 길입니다 >
이제 우리는 다시 비상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연연하지 말고 세계적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이 부족해도 월드 컨선(World Concern)과 월드 비전(World Vision), 즉 세계적 관심과 세계적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칼 막스도 월드 비전을 가지고 공산주의를 주창해서 공산주의가 한때 세계의 반을 삼킨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기도제목을 넓히고 세계선교라는 월드 비전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뭘!”이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 교회는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족해도 큰 시야와 큰 꿈을 품고 나가면 우리도 복된 존재가 되지만 후퇴 조짐을 보이는 한국교회 전체의 사기도 올라가게 됩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전체 군대의 사기가 올라야 하듯이 영적 전쟁에서 이기려면 기독교계 전체의 사기가 올라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선교마인드를 가지고 이제 내 교회만 생각하는 모습이 없어야 합니다.
사실 이 말씀은 초대형 교회가 더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지금 초대형 교회 때문에 많은 작은 교회들이 사기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형 교회가 작은 교회를 선교하는 마음을 돕는 목회를 하지 않으면 결국 그런 모습이 부메랑이 되어 장기적으로는 대형 교회도 망하고 한국 교회도 망하게 됩니다.
어제 저는 누군지 잘 모르지만 정다빈이란 유명한 연예인이 자살했습니다. 그 영정 사진을 보니까 ‘정혜선 성도’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고 합니다. 그녀가 홈페이지에 죽기 하루 전에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주님은 저를 돌아보게 하시고 이렇게 글을 쓰게 하십니다. 왜... 그러시는지 알지 못하지만... 좀 전까지 뭉쳐있던 아픔과 슬픔들이 지금 녹아내립니다.”
많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그녀에게 도대체 하나님 말씀은 어떻게 들려졌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사람들에게 ‘사랑칼럼’이 많이 읽혀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람은 다 연약합니다. 문제만 바라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단히 시야를 넓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먹고사는 문제’나 ‘내가 당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더 많은 영혼구원의 문제’가 바로 우리의 관심이 되어야 합니다.
저도 이제까지 한국에 와서 목회를 하면서 시련도 많이 겪었지만 선교사 후원과 선교사 훈련학교의 비전을 가지고 작은 시련들을 넘어서서 이제까지 왔습니다. 아직도 “언제 그 비전이 구체화될까?”하는 생각을 하면 너무 미약한 나의 모습에 실망될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한국과 미국에서 조금씩 루디아와 같은 비전 동역자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처럼 저희 사역을 꾸준히 후원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다시 영혼 구원의 비전이 뚜렷해짐을 느낍니다.
미국에 가면 가끔 눈보라치는 겨울에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팔러 다니는 통일교를 믿는 일본 소녀를 발견합니다.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합니까? 자기들의 작은 희생이 통일교를 발전시키는 초석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그렇게 열심을 내는데 우리는 영혼구원을 위해 더욱 열심을 내야 합니다.
지금 세상이 강퍅해지고 어두워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죄와 우상 숭배 때문입니다. 우상 문화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거칠게 만들어 빈들의 마른 풀처럼 작은 불만 붙으면 그대로 활활 타게 만듭니다. 요새는 아이들에게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합니다. 조금 스트레스만 있으면 그냥 자살해버립니다. 조금만 수가 틀리면 대들고 덤비고 기분 나쁘다고 총기를 난사합니다.
일전에 네팔의 30세 왕자가 부모와 12형제를 다 죽였습니다. 당시 네팔 왕은 매일 점쟁이 말을 듣고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때 30세 된 왕자가 신부를 소개하고 결혼을 조르자 왕은 점쟁이 말을 듣고 반대했습니다. 점쟁이가 왕에게 35세 되기 전에 아들을 결혼시켜 아이를 낳으면 왕실에 큰 화가 미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막았는데 결국 점쟁이 말을 듣고 왕실을 살리려고 하다가 왕실이 몰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우상과 미신이 많아지고 점쟁이들이 번성하고 있습니다. 교회까지도 부흥하겠다고 점쟁이 목회, 영매 목회, 무속 목회를 합니다. 우상 문화가 교회까지 쳐들어왔습니다. 지금 교회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사람이 우상 문화에 빠지면 불안해지고 강퍅해지고 감사를 모르게 되지만 성령 충만하면 참고 이해하게 되고, 겸손하고 부드러워지게 되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마음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집니다. 하이든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영혼 깊은데서 환희가 솟아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환희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 무너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마귀가 몇 번만 흔들면 흔들리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교통사고 한번 나면 가정의 행복이 그대로 무너집니다. 큰 질병 하나만 생겨도 가정이 무너지고 자신도 무너집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어떤 사고를 만나도, 심지어는 죽는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지금 가정과 교회가 해체되고 있습니다. 사랑과 섬김과 헌신과 봉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성령 충만밖에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은혜와 믿음이 충만하게 되고, 말씀과 기도가 살아나게 되고, 축복의 하늘 문도 열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처럼 말씀과 회개와 기도를 앞세워 성령 충만함으로 심령의 변화를 이루어 어두운 세상을 밝은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초석이 되길 바랍니다.
출처/이한규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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