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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2,922편)〓/성찬 설교

예수님의 피 /히 09:11-15

by 【고동엽】 2022.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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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09:11-15

우리의 몸은 모든 부분에 피가 있습니다. 피는 우리의 몸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경은 피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피는 우리의 생명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근육과 뼈와 신경조직과 피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고정되어 있는데 피는 온 몸을 돌아다닙니다. 피가 온 몸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모든 지체가 다 피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는 심장에 의해서 산소를 공급하게 됩니다. 피는 온 몸에 양분을 공급합니다. 피는 몸에서 만들어지는 노폐물을 처리하는 역할을 또한 하게 됩니다. 때문에 피가 세포나 신체의 기관에 도달하지 아니하면 세포들은 파괴가 되고 피가 돌지 아니하면 생명은 죽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피가 돌지 아니하면 신체의 노폐물인 세포쓰레기가 몸에 쌓여서 결국 죽게 됩니다. 피는 온 몸에 쌓여있는 노폐물을 콩팥 피부 장을 통해서 몸 밖으로 배출시키고 다시 산소를 싣고서 매 25초 마다 온 몸으로 피가 순환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간단하게 피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건강을 진단할 수 있고 피를 조사하면 그 사람의 질병이나 건강에 대한 이상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의학이 더 발전되면 피를 통해서 더 많은 건강이나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지금부터 1600년 전에 기록이 된 성경에 이미 생명은 피에 있다는 정의를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피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최초의 피에 대한 기록은 "창 3:15 여자의 후손을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상하게 한다는 말은 피를 흘린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여인의 후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주제가 바로 피의 이야기입니다. 구약을 보면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수많은 제사가 있었습니다. 거의 매일 같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믿음을 고백하는 예배제도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제사는 피를 바치기 위한 제사였습니다. 피를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께 생명을 바치는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대신하여 소와 양과 염소의 피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바치는 제사제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세상에 태어날 때 아담의 피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말은 아담의 생명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담의 생명은 영적으로 볼 때에 이미 사망이 선고된 생명입니다. 아담은 죽었습니다 그의 생명은 실제로 죽음 앞에 굴복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죽었던 아담의 생명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죽게 됩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힘을 써도 인간 생명의 공통점은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그 보배로운 피를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것입니다. 인생이 새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이요 기독교 교리입니다. 구약 성경은 이러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한 예표적 제도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제사제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예표하는 제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유월절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에 흠이 없고 일 년된 숫양이나 숫염소를 해가 질 때에 잡고 그 피로 양의 고기를 먹을 집 문 좌우 기둥과 위쪽 기둥에 바르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날 밤에 애굽 땅을 두루 다니시며 사람이든 짐승이든 처음 난 모든 생명을 죽이게 될 터인데 그 양의 피를 문기둥에 바른 집에는 내가 그냥 넘어가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에게 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을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 그 구원을 기념하도록 가르치신 것입니다.

요 6:53-5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그 안에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살과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있어서 주님께서 다시 사신 것과 같이 그도 주님이 다시 살리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나님 안에서 다시 사신 것처럼 주의 보혈을 믿는 그 사람을 주님이 다시 살리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라고 했습니다. 먼저 흠 없는 피라고 했습니다. 요한 1서 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가롯유다는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깨끗한 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흠 없는 짐승의 피라고 말씀하신 것은 죄 없는 피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백혈병에 걸려서 죽어 가는 사람이 살 수 있는 방법은 건강한 골수를 받는 길뿐입니다. 병든 골수는 아무리 많아도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생명은 분량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큰 거목이라도 죽은 나무 속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씨앗이라도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구원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한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피를 바쳐도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다 죽은 생명이기 때문에 그 생명으로는 한 생명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생명만이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렘 2:22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라 고 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스스로를 깨끗하게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속죄가 완전하고 영원한 효력을 지녔다는 표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성경에는 "그리스도는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당신 자신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룩하여 주셨습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온전한 속죄의 제물이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짐승 제사는 예표이기 때문에 반복이 필요했습니다. 예표는 아무리 반복해도 그것이 실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예표는 반복을 통해서 실제에 대한 필요를 계속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표는 실제가 올 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없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콩팥의 기능이 없는 사람이 신장 투석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장 투석은 신장의 기능을 흉내내는 것이기 때문에 신장과 같은 역할은 하지마는 신장은 아닙니다. 그래서 신장 이식 수술을 밭은 사람은 신장 투석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구원을 온전히 이루신 분이십니다. 더 이상의 제사가 필요 없다는 것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인간의 노력이나 방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고 있음이 마치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표에 의존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노력과 방법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신하려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을 주셨습니다. 구원을 위한 우리의 공로가 전혀 필요치 않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도덕이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의 열매입니다.


출처/조병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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