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목차 돌아가기] |
1.함께 일하는 기쁨
한 아버지가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처음으로 직접 장난감 자동차를 만들었다. 네모난 통나무를 줄톱으로 정교하게 잘라가며 장시간 애쓴 결과 유선형의 멋진 장난감 차가 탄생했다. 아홉살 된 아들은 완성된 차에 파란 색을 칠하고 아버지는 차 축을 거울처럼 광냈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차체에 화염 무늬 스티커를 붙이고 소나무 차체에 ‘타오르는 질주자’라는 이름을 써놓았다. 그 옆에서 아들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듯한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녀와 함께 만들어낸 자동차. 부모의 성취감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아이와 함께 이루어낸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모든 일에 협력하시기를 바라신다. 완전한 삼위일체이시므로 혼자 일을 다 하실 수 있는데도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성을 기쁘게 여기신다.
우리는 얼마나 복된 자녀들인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시간을 내어 오늘도 자녀들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신다. 종일 그분과 함께 일하자.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2.일은 즐기면서 하라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일까? 필자는 카네기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성공의 비결을 질문받는다. 그러나 성공의 비결은 간단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다. 좋아서 하는 것보다 일을 더 잘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 우리는 온 정성을 다해서 일을 하게 된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즐기는 것이다. 일을 즐기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게 된다. 전문가가 되면 우리는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세상은 전문성에 대해서는 항상 값을 쳐주는 것이다.
하림통상을 설립한 김흥국 사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병아리 기르는 것이 즐거웠다. 그는 공부보다도 병아리 기르는 일에 더 흥미가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는 병아리와 함께 지냈다. 고등학교도 집안의 반대를 물리치고 가출까지 하면서 이리농고에 들어갔다.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1975년 봄 고등학교 졸업할 때 그는 이미 7500만원의 재산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병아리 기르는 일을 하면서 무한한 보람과 행복을 느꼈다. 연간 매출 3000여억원. 하림통상의 역사는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한데서 온 결과인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모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어진 일을 좀더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자.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게 되고 일을 통해서 인생을 즐기게 된다.
/최염순(카네기연구소장)
3.신성한 노동
성(聖) 프란체스코는 한때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회심한 후 일생을 경건하고 청빈하게 보낸 수도자였다. 특히 그는 자신의 것을 이웃에 나누어주는 사랑과 노동의 신성을 제자들에게 늘 가르쳤다. 그는 가르쳤을 뿐 아니라 몸소 실천했다.
하루는 그가 정원에서 채소를 가꾸고 있을 때 한 제자가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오늘 석양과 함께 선생님의 생이 끝난다고 할 때 지금부터 어떤 일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프란체스코는 웃으며 대답했다.
『밭에서 채소를 가꾸지 뭘 하겠나?』
4.성실하게 일하라
건축회사에 다니던 사람이 퇴직을 얼마 앞두고 사장으로부터 "마지막으로 집 하나 지어 주시오"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 회사도, 하는 일도 그만두게 된다고 생각하던 이 사람은 모든 일을 대충대충 했다. 재료도 좋는 것을 쓰지 않고 감독과 시공도 철저하게 하지 않았다. 그저 겨우 준공검사를 넘길 정도로 지어놓은 집이 거의 완성될 무렵, 사장이 이 사람에게 찾아와 말했다.
"이 집은 바로 당신 것입니다. 당신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한 나의 선물입니다."
19세기 영국 작가 찰스 킹슬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났을 때 당신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만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 일을 능력을 다해 수행한다면 당신의 내면에 자제력, 근면함, 만족감 등 게으른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수많은 덕이 쌓여질 것입니다."
노동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성경에는 근면하게 일할 것을 촉구하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일에 얼마나 충실하십니까? 죤 밀턴은 더 나은 시를 쓰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골3:23)하면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통하여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까지도 채워 주실 것입니다.
5. 노동은 질병의 약
브람웰 부드는 1926년 가을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설교한 이름 높은 종교가였다. 당시 그는 눈보다 흰 백발의 노인이었다. 그런 그도 청소년 시절에는 매우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14세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아마도 17세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17세까지 간신히 살아 남았고 건강도 조금 좋아졌으나 의사는 내게 희망을 품지 않았고, 21세 정도까지 살 것으로 단정했다. 계속 병상에 누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2, 3년 간은 누구의 도움 없이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이처럼 병약했던 그가 어떻게 73세의 장수를 누릴 수 있었고, 세계 6대주를 두루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그는 건강 회복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그는 이 같은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노동한 것이 나로 하여금 병을 이겨내게 했습니다."
병약자를 구하는 것도 노동이며, 폐인이 될 사람을 구출하는 것도 노동이다. 또한 튼튼한 자의 건강을 유지시키는 것도 노동이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6:10)
6. 현대판 개미와 베짱이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실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한낱 우화일 뿐이다. 이솝은 베짱이를 여름 내내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부르는 곤충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베짱이가 쉬지도 않고 계속 노래를 해야 하는 까닭은 세월이 좋아 놀고 먹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여러 암컷들에게 잘 보여 더 많은 자손들을 퍼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느라 자신의 위치가 포식동물들에게 알려지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나무 그늘에 숨어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다.
7.일하는 기쁨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주신 대표적인 선물 세 가지가 있습니다. 혼인과 안식일과 노동입니다. 모두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땀흘려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복중의 복입니다. 저는 열중해서 일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북한에 능라도 경기장이 있습니다. 5·1경기장이라고도 부릅니다. 북한에서는 5월1일이 노동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사회가 많은 오류를 갖고 있지만 노동을 신성시하는 점은 배울 만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일을 천시하면서 편하고 수고 덜하는 직업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모두 일확천금, 배금사상에 흠뻑 물들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속에도 이 한탕주의가 들어있습니다. “기적같이, 형통하게, 불같이, 소나기같이….” 이것들이 모두 한탕주의입니다.
성경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으라 그러면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삶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이 진정 행복한 삶입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8.노동은 기쁨의 샘
"만성 피로"를 호소하는 현대인들이 많다. 최근 일본에서 '가로시'라는 책이 출간됐다. 가로시는 우리말로 '과로사'라는 말이다.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쓰러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사람이 일하다가 피곤을 느끼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성취감을 갖지 못했을 때다. 발명왕 에디슨은 "몇 시간 일을 했다거나 월급이 얼마라는 것은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동의 목적을 성취하는 기쁨에 두면 훨씬 효율적이다"라고 말했다. 일은 가능하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한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9. 일하는 기쁨
지금 교회를 짓고 있다. 세 사람의 석공이 열심히 돌을 다듬고 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도 흘리면서 대리석을 다듬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땀을 흘리며 일하느냐고 물었다. 석공들은 각자 다른 대답을 했다.
첫째 사람은 불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죽지 못해서 이 일을 하고 있소” 두번째 사람은 무표정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돈을 벌어야 살 것 아니오” 세번째 사람은 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대답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당의 돌을 깎고 있는 중이오” 그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상당한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행복과 기쁨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서 주어진다. 그것은 하는 일의 뜻을 아는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새해는 이같은 기쁨과 행복한 마음으로 일을 해보자.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10.일과 지옥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4:11)
어떤 사람이 죽은 지 며칠 후 눈을 떠보니 그곳은 천국이었습니다. 한없이 넓고 푹신한 곳이었지요. 그는 당연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하여 평안한 자리에서 며칠 푹 쉬었습니다. 그곳이 그는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출근하라고 아침 일찍 깨우는 아내도 없었고, 상사의 잔소리도 물론 없었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매달려야 할 일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인이 한시라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대기하고 있다가 시중을 들어주었습니다. 밥을 먹는 것도 손끝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이 그 하인이 먹여 주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목욕을 할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안한 생활도 며칠 지나지 않아 싫증나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자신이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일이 없으니 지겹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인에게 말했습니다.
「내 손으로 무엇이든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그러나 하인은 그의 그러한 청을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해결되지만 단 하나, 당신이 직접 하는 것만은 금지되어 있습니다.」그 말에 그는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그렇다면 차라리 지옥이 낫겠네. 이렇게 심심해서 대체 어떻게 살란 말인가?」하인이 그 소리를 듣고 다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지금껏 여기가 천국인 줄 아셨나요? 여기가 바로 지옥입니다.」
일을 하지 않고 편안히 쉰다는 것, 그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쉬는 것도 일을 하는 가운데 쉬어야지 의미가 있는 것이지 마냥 쉰다고만 해서 그게 좋기만 하겠습니까?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하지 못하는 것, 딴게 지옥이 아니라,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바꿔 말하면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인 셈이지요(전 9:10)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21:25)
* 기도: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하시고, 충성스럽게 힘을 다하여 수행하는 저희 가족들이 되게 하옵소서. /한태완 목사 지음, 반석문화사, "가정예배"중에서
11.일하지 않은 죄
달란트 비유를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신의 달란트를 땅속에 감추어두었다가 주인에게 내놓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인색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은 주인의 달란트를 감추었다가 꺼내왔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보면 그가 달란트를 감추어두고 일하지 않은 것은 상대적 빈곤과 불쾌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같은 종인데 자신은 다른 종들보다 푸대접을 받았다는 비교의식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나와 주인과의 절대적 관계에서 보면 나의 한 달란트는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입니다.6000일의 품삯입니다. 그런데 이 많은 돈을 상대적 빈곤 때문에 감추어두고 일하지 않은 것이 죄입니다. 이 종은 어떤 이유에서든 일하지 않은 죄를 면키 어렵습니다. 일하지 않은 죄는 죄 같지 않은 죄입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12. 낮일 때 일하시오
존 모리슨의 안수식이 끝난 직후에 이웃의 목사가 그를 방문하여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은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건강의 한도를 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러자 모리슨은 이렇게 대답했다.
"염려 마시오. 게으른 목회자가 오히려 먼저 죽는 답니다."
그로부터 6개월 후에 모리슨은 이웃 목사의 임종 때에 불려 가게 되었다. 그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전에 나에게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모리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하지만 그런 건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그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예, 그렇지만 그 얘길 해야겠어요. 그 말이 참이었습니다. 일을 하십시오. 아직 낮일 때 일을 하십시오. 일할 수 없는 밤이 지금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13.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세운 세실 로즈는 임종의 순간에 후회스러운 듯이
"이렇게 조금밖에 일을 못하다니,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라고 토로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일할 수 없는 밤이 쉬 오리니, 일할 수 있을 때에 맡겨진 본분을 다 하라."
14.새롭게 하는 일
영국의 유명한 로즈 장학재단을 설립한 세실 로즈가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엄 부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라들을 새롭게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고 당신은 사람들을 새롭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당신이 나보다 훨씬 좋은 일을 선택했습니다."
15.인간과 노동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공중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핀 백합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어찌 당신의 백성들을 먹이지 않으시고 입히지 않으시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눅12:28-29)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감나무 아래 누워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주시리라고 믿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16. 일하기 싫거든
옛날에 어떤 새가 살았는데 별명이 "날만 새면"이었다고 합니다. 따뜻한 낮에 마음껏 놀다가 새가 밤이 되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새끼새들이 아버지 새를 원망하였습니다.
"아버지 우리들도 남들처럼 낮에 집을 지었다가 밤이면 편하게 지내요"
"오냐 잘못 했다. 날만 새면 집을 지으마"
이렇게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지만 정작 날이 새자 그만 집을 짓기로 한 각오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룻밤을 어떻게 지냈는데 다음이야 못 참겠느냐? 우선 편하게, 즐겁게, 재미있게, 멋지게 지내야지"
그래서 자식들을 데리고 재미있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초조한 아들 새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후가 되었어요. 집을 지어야지요"
"괜찮다. 해질녘에 지어도 늦지 않다."
정작 해질녘이 되자 오늘 저녁은 어떻게 지내고 내일 날이 새면 집을 짓자고 하였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추웠습니다. 오들오들 떨면서, '날만 새면 날만 새면, 날만 새면--' 집을 짓겠다고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날만 새면 다 잊어버리고 핑계를 대며 놀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밤만 되면 '날만 새면, 날만 새면'을 연발할 뿐 날이 새어도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추위가 닥친 어느 날 이 새들 가족은 전부다 얼어죽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새를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늘도 열심을 다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17.노동과 안식
어느 기독교인 가정에 기독교인 머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머슴을 불러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나가주어야겠네”라고 말하자 머슴이 놀라 반문합니다. “무슨 이유로 나가라고 합니까?” 주인이 대답하기를 “자네가 제4계명을 범했기 때문이라네.” 머슴이 물었습니다. “내가 언제 주일을 범합디까? 주일에는 꼭 예배당에 나가는 것을 온 식구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주인이 대답합니다. “주일에 교회 출석은 빠지지 않았지만 엿새 동안 부지런히 일하라는 계명을 범했기 때문일세.”
하나님의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물론 안식일과 주일은 다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고 쉬는 날로 토요일입니다. 주일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억해서 예배하는 날로 일요일입니다. 그러나 주일 안에는 하나님의 안식이 있습니다. 노동이 없으면 안식도 없습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휴식마저도 고통의 시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노동은 신성합니다. 예수님도 목수로 일하셨습니다. /이철재 목사(서울 성서교회)
18.개미의 지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개미의 지혜를 배우라고 하셨다. 도대체 개미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것인가.
첫째, 노동의 윤리를 배워야 한다. 개미는 성충으로 겨울을 나기에 먹이가 부족한 계절을 위해 식량을 저장한다. 여기서 개미의 저축생활을 배워야 한다.
둘째, 컨베이어 벨트식 분업의 공정을 배워야 한다. 개미는 군락을 이뤄 경제활동을 하기 때문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개미의 경영방식은 철저한 분업제도다.
셋째, 번식의 분업을 배워야 한다. 가장 신기한 것은 번식 분업이다. 여왕개미는 평생 알을 낳는 일에 전념하고, 일개미는 여왕을 도와 군락의 번식에 필요한 제반업무를 담당한다. 개미는 그야말로 고도로 조직된 기업경영을 방불케 한다.
하나님은 개미의 이런 지혜를 배우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과연 내가 속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가정 교회 사회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가. 아니면 행여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설동욱 목사<예정교회>
19.사람의 가치
우리에게는 자신의 재능과 환경을 즐기는 삶의 여유가 필요하다. 비는 대기 중의 입자가 점점 커져서 마침내 지상으로 떨어지는 액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비를 때에 따라 다양하게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봄비 보슬비 소낙비 여우비…. 어떤 사람은 비가 오면 짜증을 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비를 즐긴다. 요즈음은 기술 혁신으로 인해 사람의 재능이 제한을 받는다. 예전에는 주판만 잘 다뤄도 칭찬 받고 은행에 취업도 됐다. 그런데 지금은 전자계산기가 그 몫을 대신하고 있다. 머리 터지게 외우던 지식도 컴퓨터 키워드만 치면 전문지식이 줄줄 흘러나온다. 이런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도 그만큼 많다. 노동도 즐기면서 할 때 더욱 효과가 크다. 인생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은 뭘까. 그것은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봉사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맑은 머리와 단잠을 선물로 주신다. /설동욱 목사 (예정교회)
21. 벽돌공의 자세
지혜의 임금으로 알려진 솔로몬이 하루는 성전 건축현장을 방문하고 일꾼들을 돌아보았다.
"왜 당신은 여기서 일을 합니까?" 한 일꾼이 대답을 했다.
"아 그야 뭐 배운 것도 없고 이럭저럭 살아가려니 죽지 못해서 하고있지요."
얼마쯤 가다가 다른 일꾼에게 똑같이 물었다. 그 일꾼은
"배운 도둑질이 일하는 것뿐이니 놀고 먹을 수가 있나요, 그럭저럭 한 세월 보내는 것이죠"
왕은 얼마쯤 가다가 해진 옷을 입고 일하는 청년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왜 여기서 일을 하느냐구요? 정말 난 기뻐서 죽을 지경이지요 자, 보세요 나는 지금 하늘나라의 영광을 이 땅위에 드러내는 성전을 바로 이 손으로 돌을 쌓고 있지 않나요?"
이 손으로 쌓는 벽돌 한 장이 이 위대한 성전의 작디작은 부분일 지언 정 큰 일을 이룬다는 것은 소명을 가지고 일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의 엄청난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이다./KCM
22. 만년 청춘
독일의 음악 작곡자 브람스(1833-1897)가 50회 생일을 맞은 어느 날이다.
그 즈음 그는 무언가 머리를 맴도는 악보를 하나 그려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떠오른 생각을 오선지 위에 그려보면 마음에 들지 않아 구겨버리기를 몇 십번, 그는 마침내 붓을 동댕이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젠 나도 끝인가 보다. 예전과 같은 영감도 없고 총명함도 사라졌구나. 나이 50이 되면 이렇게 늙어 쓸모 없어지는가."
이렇게 자조하는데, 문득 하나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것은 며칠 전 친구로부터 식사나 함께 하자며 약속했던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것이었다. 브람스가 그 집에 도착해 보니 의외로 많은 친구들도 함께 와 있었다.
브람스는 오랜만에 많은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이윽고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주인 친구가 말했다.
"각자 자기 잔을 들고 오늘 50회 생일을 맞은 친구 브람스를 축하해 줍시다."
브람스는 감격했다. 자신은 작곡 때문에 생일도 친구도 잊고 있었는데, 그런 자신에게 모든 친구들이 함께 축하해 주니 그럴만도 했을 것이다.
'내가 나이 50이 되었다고 작곡을 그만두려 했던 생각은 잘못이었다. 50이든 무어든 죽는 날까지 하던 일을 계속해야한다.'
그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맹세하며,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인생 50이면, 젊은 시절에 비교해서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이를 불문하고 그가 맹세한 대로 죽는 날까지 열심히 일해서(교양곡 제4번 마단조)<52세> 등의 명곡과 (11개의 코랄 전주곡)<63세>을 남겼다.
미켈란젤로가 80세에, 모네가 85세에 대작을 남겼다든가, 처칠, 맥아더 등등이 나이에 관계없이 죽을 때까지 일했다는 사실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 남아 있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많고 또 당연한 것이다.
이제 늙었기 때문에 지나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적어져 '시간의 가치'가 더욱 소중해졌다는 사실이 그렇고,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해서 모여진 축적된 경험과 경륜이 사장될 확률도 높아졌다는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사실, 우리 인간들이 자랑하는 오늘날의 문화나 문명도 따지고 보면 조상들의 축적된 지식 덕분이 아닌가?) 그리고 후손들에게 보여줄 떠 하나의 값진 교훈인 '유종의 미'를 보여줄 수 있고 스스로 열심히 함으로서 '만년청춘'도 구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필상 <아산교차로 1996.4.17>
23. 손에 못이 박힌 사람만 먹으라
옛날 한 농부에게 세 아들과 벙어리 딸 하나가 있었다. 두 아들은 무난했으나 막내 이반은 바보였다. 바보 이반과 벙어리 딸은 묵묵히 일만했다. 두형은 재산을 얻어서 낭비해 버린다.
한 신사가 나타나 사람이 머리가 빠개지도록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도깨비가 변장하고 이반의 나라를 망치려고 하는 짓이다. 이반은 광고를 했다.
"훌륭한 신사가 나타나 여러분에게 머리로 일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머리로는 손보다 훨씬 더 많은 벌이를 할 수 있다. 모두들 나와서 배우라."
드디어 높은 망대가 세워지고 그 신사가 올라갔다. 그러나 바보들은 다 일하러 흩어졌다. 신사가 머리로 일하는 법을 가르치다가 굶어서 쓰러지고 말았다. 사닥다리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다치고 큰 부상을 입었다.
"아, 머리가 빠개지도록 일하는 것이 바로 이거군!" 하고 모두 빈정댔다.
온갖 인종들이 이반의 나라로 몰려와 먹을 것을 구했다. 그러나 이반의 나라에는 한 가지 엄격한 법이 있었다. 이반은 외쳤다.
"손에 못이 박힌 사람만 식탁에 앉을 수 있소. 못이 박히지 않은 사람은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하오"
이반의 나라는 일하는 나라이다. 바보 이반을 비웃으며 일할 줄 모르는 형들이 바보들이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 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살후3:10) ⓒ톨스토이 <바보 이반의 이야기> 중에서
24. 할 일 없다는 공포
희랍신화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은 무한지옥(無限地獄)에서 무거운 바윗덩이를 영원히 굴려 올리도록 숙명지어진 시지프스의 형벌이다. 시지프스 왕은 이승에서 살았을 제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살다가 끝내는 제우스 신까지 속인 죄로 이 가공할 형벌을 받은 것이다.
이 시지프스의 형벌을 인간의 실존(實存)에 빗댄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는 유명하다. 한데 사르트르는 시지프스는 그나마 바위를 굴려 올리는 할 일이라도 있다는 점에서 덜 비극적이라고 말하면서 보다 가혹한 책고(責苦)로 아랍인의 지옥 가헤넴을 든다.
아랍 사람이 죽으면 험상궂은 마왕(魔王)의 두 사자(使者)에게 신문을 받고 죄가 확정되면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다리(橋)를 건너는데 악인은 이 다리를 헛디뎌 가헤넴에 빠지게 돼 있다. 가헤넴은 아무것도 없는 출구(出口)없는 방이다. 불교의 지옥처럼 밟고 걸아야 하는 바늘(針)산도 없고 살을 익히는 화염도 굶주린 독사떼도 없다. 시지프스처럼 굴려 올려야 할 바위도 없다. 다만 가헤넴에세는 영원히 죽지 못하고 또 영원히 할 일도 없다.
그렇게 책고가 없는 안락한 지옥도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영원히 죽지 못하고 영원히 할 일이 없는 책고라는 것을 사르트르는 갈파하고 이 가헤넴에서 암시를 받아 희곡 '출구 없는 방'을 저술하고 있다.
이 세상의 그 많은 지옥들 가운데 가장 가혹한 지옥이 할 일이 없는 인간상황인 것이다.
도재승(都在承) 서기관이 피랍 21개월 동안 갖혀 있었다는 감방이 바로 이 출구 없는 방이었다. 하루 한끼 넣어주는 밥을 먹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도록 해놓은 것이다. 아랍인의 지옥인 가헤넴을 지상에 재현해놓은 것이 된다.
그래서 도서기관은 피랍 21개월 동안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로 죽음의 공포보다 이 출구 없는 방에서 할 일이 없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사람이 살아 겪을 수 있는 가장 가혹한 시련과 상황을 살아낸 사람이라는 차원에서 또 다른 정동(情動)이 뭉클하다.
옛 우리 생활 속에서 할 일이 없는 여가(餘暇)의 공포를 덜어주고자 일부러 일을 만들어 하던 풍습들이 새삼스러워진다. 이를테면 쌀 방아를 찧어 담을 때 일부러 쌀 한 말당 탈곡되지 않은 뉘 한줌씩을 주워담는 관습이 있었다. 밥짓기 전에 뉘 가리는 일을 함으로써 여가를 소멸하기 위한 지혜였던 것이다. 일하지 않고 먹고 살기를 바라는 통념에 따끔한 교훈이 되는 도서기관의 뼈저린 체험이기도 하다.
25. 3D 기피현상
세상 살아가면서 궂은 일(Dirty)도 해야 하고 힘든 일(Difficult)도 해야 하며, 또 위태로운 일(Dangerous)도 해야 한다. 이 3D현상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치열한 인생 경주의 시발점에 달려갈 트랙을 배정받는다.
그래서 이 3D현상을 극복하는 성인식(成人式)이 꽤나 발달했었다. 이 시련을 거치지 않으면 나이 들어도 반말을 들어야 하고 품을 팔더라도 반품 밖에 받지 못했으며 결혼 대상에서 소외당해야만 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시련 방식은 달랐다. 이를테면 나무에 올려놓고 가지를 쥐고 몸을 늘어뜨리게 한다. 그러고서 한 손을 번갈아 놓게 하고서 바짓가랑이를 잡아 끌어 반나신이 되게 한다. 이렇게 위험하고 힘들며 창피스러운 고비를 넘김으로써 성인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 해도 이 3D로 시작된다. 정월 대보름날 '아홉치레'가 그것이다. 이날, 나무도 아홉 짐을 하고 새끼고 아홉 발을 꼬며 빨래도 아홉 가지, 삼도 아홉 바구니를 삼는다. 매도 아홉 번 맞고 심부름도 아홉 번 한다. 이렇게 아홉 치례로 고되게 한 해를 시작함으로써 한 해의 일이 수월해지고 따라서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것이다.
동서와 시누이가 짜고 시집온 새 며느리를 골탕먹이는 의식도 같은 맥락이다. 깊은 오줌 항아리에 호미를 담가놓고 그것을 꺼내 오라고 시킨다든지, 귀신이 득실거리는 상여집에 신발을 숨겨놓고 야반에 혼자 가서 찾아오라고 시킨다든지...., 또 갓 농사일을 시작한 애숭이는 소매(인분) 퍼다가 거름 주는 일, 외양간이나 돼지우리 치우는 일, 묵정밭의 돌 골라내는 일 등, 궂고 힘들고 어려운 일 3년을 해야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이렇게 궂고 치사하고 위태로우며 고된 일을 겪음으로써 닥쳐올 인생의 고난에 패배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정신적 기틀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반드시 모유로 아기를 기르는 것이 법통이 돼 있는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제들은, 소년의 어느 한 시기를 가난한 농가에 의탁해 기름으로서 3D를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이 가풍이 돼 있다 한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거의가 핵가족화의 진행으로 역(逆) 3D의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리고 공부만 잘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면죄, 면책되는 역시 역3D의 무균(無菌) 상태에서 뼈가 굵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내던져진 세상은 궂고 힘들고 험한 일 투성이다. 한데 그걸 감내할 기틀이며 역량이 없다.
열매가 잘 열리는 나무는,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메마른 땅과 돌무더기와 그리고 벌레나 세균과 싸우는 뿌리가 무성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의 나무도 바로 그 고난과 싸우는 뿌리가 성쇠를 가름한다. 젊은이들에게 팽배돼 가는 3D 기피현상은 바로 그 뿌리가 죽어간다는 말이다. 시름시름 시드는 그 나무를 보고도 속수무책인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26.게으른 사람
손 하나 까딱 않고 잠만 자는 놈 꼴보기 싫어 누룽지 허리춤에 채워주며 밖에 내보냈다. 배가 고파 누룽지를 꺼내 먹고 싶은데 풀기 귀찮아 못 먹고 있는 참에, 저편에서 갓 쓰고 입을 떡 벌린 자가 걸어오는 지라 배고파서 입을 벌리고 있으려니 하고 허리춤에 있는 누룽지를 풀어주면 절반을 주겠다고 했다. 이에 입벌린 자 가로되, '갓끈이 늘어져 그걸 고쳐 매기 싫어 입을 벌리고 가는 길이오' 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놀기 좋아하는 열자(列子)가 역시 놀기 좋아하는 호구자(壺丘子)를 만나 너는 뭘 하고 노는 게 제일 즐겁느냐고 물었다. '물어보나마나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거워 죽겠는걸.' 게으름을 무위(無爲)라는 철학으로까지 승화시키고 있다.
서양에서도 에피크로스 이래 게으름의 사상은 유구하다. 공산주의의 아버지 마르크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는 <게으름의 권리>라는 저서에서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사회는 궁극적으로 노동을 신성시하는 도그마 때문에 붕괴하고 말 것이라고 예언, 게으름의 권리 선언을 하고 있다.
게으름의 찬양자로 버트런드 러셀을 뺄 수 없다. 그는 <나태 예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하루 8 시간 노동해서 핀을 만든 사람들이 있다. 기술의 발달로 같은 인원수로 두 배의 핀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모두가 8 시간 노동을 그만두고 4 시간 노동을 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노는 것을 부덕시하여 8 시간 노동을 지속한다. 그럼으로써 절반은 실직이 불가피하게 되고 경제 혼란이 이로부터 야기된다.'
프로이트의 제자인 빌헬름 라이히는 그의 스승이 성적 원망(性的願望)이 인간 본연의 것인데도 사회적, 도덕적으로 억압받고 있듯이 나태 원망(願望)도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하고, 먹고 입고 살게만 되면 게으르게 된다 했다.
옛날 베짱이는 눈보라치는 날 개미집 앞에서 내쫓겨 처량해졌지만, 현대의 베짱이는 아들개미 딸개미에 환대되어 깡깡이 켜고 디스코 추고 호강하며 겨울을 난다. 이렇게 하여 근면하던 개미 일가는 몰락하고 만다. 개미집처럼 먹고 입고 살 만큼만 가지면 나태 원망이 발로된다.
상공회의소가 엊그제 발표한 한국인의 근로의식을 보면 71 퍼센트가 돈 덜 벌더라도 놀고 싶다 했고, 그 비율이 10 년 전보다 무려 36 퍼센트가 증가하고 있다.
그에 걸맞게 과소비가 급증하고 있고......바로 나태 원망이 국가적 차원에서 발로하기 시작했다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
북풍한설 막지 못하고 누더기 이불 둘러쓰고 있는 개미집이 자꾸만 연상되는 것이다.
27.여가 개발사
남새밭에는 며느리풀이라는 잡초가 있게 마련이었다. 특정의 잡초 이름이 아니다. 며느리로 하여금 풀밭을 매게 하기 위해 시어머니가 손대지 않고 남겨둔 일정 영역의 잡초를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흔히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부려먹고 구박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며느리풀을 남겨둔다고 하나 그건 오해다. 사시사철 울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 며느리에게 할 일이 없다는 것처럼 고통은 없다. 사르트르가 '출구 없는 방(房)'에서 보여주었듯이 할 일이 없다는 것은 가혹한 고문(拷問)인 것이다. 이 고문을 덜어주려 할 일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남겨두는 시어머니의 자비(慈悲)요 배려가 며느리풀인 것이다.
쌀방아를 찧고, 찧은 알곡을 말로 되어 담을 때 시어머니는 한 말당 탈곡되지 않은 뉘 한줌씩을 섞어 담은 습속도 같은 맥락이다. 며느리에게 여가가 생기는 족족 뒤주에서 밥쌀을 퍼다가 뉘를 가리게 함으로써 할 일이 없다는 고통스런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대학(大學)'에 군자는 혼자 있을 때 근신을 하는데 , 소인은 한가하기만 하면 불선(不善)을 저지른다는 대목이 있다. 먹고사는 데 눈코 뜰 새 없는 단계에서는 잠시의 여가도 값지고 소중하지만, 여가가 잦고 길어지면 그 여가가 고통스러워지는 법이요 자칫하면 불선으로 빠지기가 쉽다.
미국에는 복지정책의 발달로 일하지 않고서 실직수당만으로 가늘게 살려는 인구가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던데 남아도는 여가를 처리 못해 적지 않게 마약에 빠지고 있다 한다. 너무 심심하여 하루는 지하철 구내에서 자보고, 하루는 쓰레기통에서 자보고, 하루는 유치장에서 자보고 싶어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는 족속까지 생겨나고 있다.
가전제품의 발달과 핵가족화의 진행으로 가정에서 여가가 급증하고 있으며, 그 여가 급증으로 야기되는 가정. 사회문제도 적지 않다. 며느리풀이나 뉘가리의 옛 지혜가 새삼스러울 정도다.
그래서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가기 처지나 개성에 맞게 여가를 선용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조언하는 '여가개발사(餘暇開發士)'라는 새 직종이 정식 법적 직종(職種)으로 올라 선망받는 직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다. 일본에서도 여가개발사를 양성, 시험을 거쳐 자격을 주기로 하고 각 기업체에서 앞다투어 공부를 시키고 있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며느리풀이나 뉘가리의 지혜가 복고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케 해주는 것이다.
28 여가로부터 탈주
한두 해가 늦다 할 만큼 빨리 변하는 세상인지라 15년 전이면 옛날 일인지 모른다. 여행 중 시카고에서 '내일의 부엌 살림전'이라는 살림에 침투된 전자기계 전람회를 구경한 일이 있다. 부엌에 소형 텔레비전 수상기가 놓여 있다. 스위치만 틀면 갓난아기 방이 비쳐 아이가 울고 있는지, 놀고 있는지, 잠을 자는지 확인할 수가 있다. 텔레비전 곁에 전화기도 한 대 놓여 있는데 버튼을 눌러 놓으면 외부에 나가서 전화로 빵도 굽고 커피도 끓이며 커튼도 걷고 전등도 켜고 끌 수 있게 돼 있다. 뿐만 아니라 증폭기가 붙어 있어 전화가 걸려오면 수화기를 들지 않고도 통화를 할 수가 있다. 밀가루 반죽을 하면서, 또 설겆이를 하면서 통화가 가능하다.
이것을 보고서 사주팔자 좋아 명만 길면 별난 세상을 다 살아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한데 굳이 사주팔자가 좋지 않더라도 이 희한한 세상을 미구에 살 수 있을 것 같다. 정부는 집에서 사무를 보고 빈 집에 전화로써 밥을 짓고 소등도 할 수 있는 꿈의 통신망(ISDN)을 추진, 우선 제주도 지역에 85년부터 88년까지 그 시범 단지를 조성키로 하고 세부 계획을 짜고 있다 한다. 이것이 되면 모든 살림을 자동으로 하는 홈 오토메이션 시대가 개막되는 것이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선진국에서도 그 편리보다 그 부작용 때문에 홈 오토메시션이 주춤하고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그렇게 갈망했던 자유를 얻은 독일 사람들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치스에게 그 자유를 넘겨 주었던 역사적 사실을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탈주>에서 적고 있는데, 전자화, 기계화에 따른 홈 오토메이션의 진행으로 얻어낸 '여가'도 그 자유와 매한가지 신세인 것이다. 곧 여가가 늘면 상대적으로 주부의 존재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인류가 생긴 아래 유지돼 내려온 이 주부의 존재 가치를 이 전자 제품이 대행하게 되면서 '아내 무용론(無用論)'이 대두되고, 별거주의, 독신주의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나며, 따라서 아내들은 불안해지고 우울해진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여가를 오히려 반납하는 '여가로부터의 탈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다. 연전 미국의 한 대(大)메이커가 물만 부으면 맛있는 케이크가 되는 인스턴트 식품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는데 전혀 팔리지 않아 원인을 조사 했더니,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물만 부으면 된다는 캐치 프레이즈에 불안을 느낀 때문으로 조사되었다 한다. 곧 주부의 존재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홈 오토메이션은 제한 받을 수 밖에 없는 숙명에 놓여 있는 것이다.
29.조롱(鳥籠) 인간
중국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고향 떠나 사는 한 상인이 닭장만한 조롱을 지어 놓고 많은 고향 새를 기르고 있었다. 그 집 장성한 아들이 새 밥을 줄 때마다 놀고 먹는 이 새들을 부러워하고 밤낮 일만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던 것 같다.
이에 아버지는 아들놈이 밥 주러 들어간 틈을 타서 조롱 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고 끼니때마다 진수성찬을 들여주면서 편히 쉬라고 했다. 하루가 지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사흘이 가니 발광을 하더니, 이레가 가니 죽을 수 있게 칼 한 자루 넣어 달라고 간청을 하더라는 것이다.
임어당(林語當)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공할 상황이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상황임을 이 `조롱인간(鳥籠人間)'으로 비유하고 있다. 하루종일 먹이를 찾아 나르는 개미를 일할 수 없는 일정 공간 안에 넣어두고 생존에 필요한 먹이만 적시에 주었더니 닷새만에 스스로의 발을 자르는 자학(自虐) 행위가, 1 주일만에 상대방의 몸을 해치는 타학(他虐)행위가 시작되었다는 관찰보고도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플라스티에는 그의 저서 `4만시간'에서 20세기 말이 되면 인생 60만 시간 중 노동 시간은 4만 시간에 불과하게 될 것이며 나머지 56만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문명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1950년에 프랑스 사람들이 총수입에서 여가에 지출하는 비율이 10%인데, 1989년 곧 금년에는 25%로 상승하고 20세기가 끝날 때는 활동 시간의 10%만 일하고 90%는 여가로 남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만약 이 여가를 슬기롭게 쓸 수 있는 노력없이는 `조롱인간'이나 일을 빼앗긴 개미꼴인 `여가(餘暇) 아노미 현상(現象)'이 필연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데 이 플라스티에의 예측보다 그 여가 위기가 한결 앞당겨 다가오고 있다. 가사 노동에 집약시켜 보아 보자. 가전 제품의 발달로 가사의 대종인 취사-세탁-청소로부터 대폭적 여가를 얻어 냈다.
한데 컴퓨터의 도입으로 외출 중에도 버튼만 눌러서 가전 제품을 원격 조종하고, 모든 가사를 점검할 수 있게 된 오토 홈(自動家事) 장치가 우리 나라에 갑자기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여가의 홍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여가의 공포를 예방하고자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일부러 만들어 하는 습속이 꽤 발달돼 있었다. 이를테면 쌀뒤주에 탈곡되지 않은 뉘를 한말당 한줌씩 섞어 뉘가리는 시간을 여가로부터 구제해 준다든지 .
여가를 벌어주는 생활 문화의 발전은 그 여가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여가 문화의 발전이 수반되지 않고는 `조롱인간'을 양산하는 위기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30. 컴퓨터 장보기
지금 여기 두 송이의 패랭이 꽃이 있다. 똑같은 꽃송이지만 그 한 송이는 꽃집에서 사온 꽃이요 다른 한 송이는 손수 물을 주고 볕을 쪼이고 잎을 닦아주며 애지중지 기른 꽃이다. 어느 꽃이 보다 소중하고 정이 가며, 보다 곱고 보다 아끼고 싶은가는 자명한 노릇이다. 눈에 보이는 결과는 다를 바 없지만 그 과정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그 꽃에 부가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그렇게 다르다.
이 보이지 않는 과정의 즐거움을 데이비드 크라인교수는 `프로세스 알파'란 말로 개념화하고 있다. 프로세스 알파에 꼭 들어맞는 우리말도 있다. `손 덤'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손을 씀으로써만 얻어지는 덤의 즐거움이란 뜻일 게다. 가급적 과정일랑 생략하고 결과를 빨리 얻는 것이 선(善)이라는 현대는 손덤 상실 시대랄 수 있다. 사랑도 그렇다. 그 여인 때문에 편지도 썼다 찢길 여러 번 하고 프러포즈했다가 면박도 당해 보고, 그러고는 달보고 한숨도 쉬어 보고 하는 과정주의 사랑과 프러포즈 하기 바쁘게 난짝 목에 메어달리는 결과주의 사랑과는 그 사랑의 질(質)은 천양지차이다.
편리할수록 좋고 간단할수록 가치가 있으며 빨리 얻어질수록 선(善)이라는 현대인은 너나할 것 없이 결과주의라는 폭군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사고나 행동도 단락적(段落的)이고 유치화하며 무능인간으로 퇴화일로에 있다고 크라인 박사가 경고하고 있다.
더욱이 결과주의의 최첨단 이기(利器)인 계산기 컴퓨터의 등장으로 인간의 분석-종합-판단-창조-심미(審美)같은 사고나 정서 능력까지도 앗아가 버렸다. 선진국들에서는 `테크노 의존증(依存症)'이라 하여 극도의 결과 의존과 과정 미숙으로 불안-분열-조울증이 나타나고, 이는 과정이 소중한 인간 관계를 결과로만 처리하기에 부부 사이의 이혼-가출을 유발하는 현대병인 것이다. 우리 나라도 안방에 앉아서 컴퓨터를 조작하여 장도 보고 쇼핑도 하게 됐다는 소식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 무섭게 증발해가는 손덤의 즐거움을 실감케 해준다.
쇼핑은 필요한 물건을 입수한다는 결과가 전부는 아닌 것이다. 오고가는 재미도 있고 이 물건 저 물건 견주어 보고 헤아려도 보고 사고 싶은데 못 사는 미련도 가져 보고 깎아도 보고 덤도 얻어 보고... 프로세스 알파가 굉장히 많은 생활의 양식인 것이다. 그런 걸 모두 포기하고 상실하고 무슨 재미로 세상 살려고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31.먹고 놀자판 사회
흥부가 스물 넷 자식놈들의 `오매밥... 오매밥..'하는 빈곤합창(貧困合唱)에 견디다 못해 놀부 집에 양식 얻으러 가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양식을 얻기는커녕 걷지도 못하게 얻어맞고 개처럼 네 발로 기어 들어오는 것을 흥부 마누라가 동구 밖에서 마중한다. `몹쓸레라 몹쓸레라 시아주비도 몹쓸레라. 시아주비 집에 다시 가지마사이다. 내가 걷어 부치고 주식(酒食) 장수라도 할테이니...' 마누라 술 밥장수 한다는 말을 듣고 흥부 엉덩방아를 찧으며 자네 그게 웬말인가를 다섯 번이나 외친다. `죽으면 그저 앉아 죽지 자네 시켜 술 팔겠나. 그런 말 다시 말게 다시 말게..'
전통 사회에서 술이나 밥을 판다는 직업은 죽지 못해 마지막 하는 직업이다. 그러기에 한국에서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제일 가난하다는 흥부마저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찌할 수 없이 술집을 냈을 경우도 얼굴을 내지 않고 신원이나 신분을 숨겨 장사하는 내외(內外) 술집이 서울 장안에 많았다. 손님이 문간에 와서 술을 청하면 주인은 안방에 앉아서 `손님께서 거기 있는 자리를 깔고 계시라고 여쭈어라'하면 `술상 내보내라고 여쭈어라'한다. 주인은 안방 문전에 술상을 밀어 내놓는다. 물론 가공의 심부름꾼을 두고 면대 없이 술상이며 술 주전자가 들고난다. `술값이 얼마냐고 여쭈어 보아라' 하고 술상에 돈을 놓고 나가면 방안에 앉아서 `다음에 또 들르시라고 여쭈어라'한다. 술, 밥 파는 장사에 대한 기피가 손목만 들락들락하는 세상에도 이상한 술장수를 있게 한 것이다.
외식유흥(外食遊興)을 부덕시했던 유교 윤리가 유흥업을 사회 인식 속에서 이렇게까지 비 가치화했던 것이다. 한데 지금은 도시건 지방이건 도심이건 변두리 건 눈에 뛰었다하면 밥집, 밥집 위에 찻집, 밥집 아래 술집, 온통 먹고 마시고 는 업소뿐이다. 유흥 극소화의 전통이 근대화 과정에서 유흥 극대화로 반동(反動)을 한 것일까.
먹고 마시고 노는 유흥업소가 서울에만도 11만 곳이 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10년 사이에 배가 되었다 하니 비상한 상승이다. 한 업소에 하루 세끼 도합 최저 50명 손님을 받지 않고서야 수지가 맞을 리 없을 것으로 어림하면 11만 업소에 드나드는 손님은 5백여 만 명이 된다. 유동인구를 합쳐서 서울 사람의 절반이 하루 한 번씩 드나든다는 것이 된다. 좁은 국토에 이 많은 인구가 수천 년 살아 올 수 있었다는 가장 큰 덕목으로 검약(儉約)을 드는데 이 역사의 생명선이 뭣인가 크게 잘못되고 있음을 감지케 하는 사회 단면이다. 당국에서는 이 먹고 놀자판의 유흥업소 허가를 중단키로 했다던데, 사또 지나간 뒤 나팔분 격이다.
32.일하는 삶
어떤 사람이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한 주간 동안의 휴가를 얻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 조그만 집을 하나 빌려 쉬게 되었습니다.
복잡하고 공해 심한 도시를 떠나 처음 하루 이틀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가슴이 시원할 정도로 많은 공기를 마음껏 마십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들어 시간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열 시간 이상 잠잘 수가 있습니다. 문만 열면 아름다운 대자연을 만끽하며 도취해 버립니다. 전화가 걸려올 필요도 없습니다. 신문도 배달되지 않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늘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니 잠을 잘 수가 없이 되고 마음에 동요가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숲 속을 걸으며 산책을 하였습니다. 그는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외로운 생각까지 들고 고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그의 세계를 즐기라고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세계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동안 끊임없이 하나님이 재창조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33.풍부로 가는 길
몇 해 전 북부 아프리카에서는 한때 거대한 도시였던 곳의 발굴작업이 벌어졌습니다. 그 도시의 이름은 렙티스 마그나로,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가 태어난 곳이었습니다. 한때 그곳은 아프리카 해안에 위치한 로마제국의 중요한 중심지였고, 갤리선(옛 그리스·로마의 군함으로 노예나 죄수들이 노를 저은 돛배)이 원근의 여러 항구로 출발하는 항구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도시에는 지상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파멸의 원인은 화재나 홍수, 지진 등의 재난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침략당하거나 전쟁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항구가 침적토에 의해서 메워져서 외국과의 무역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무역이 불가능해지자 조금씩 조금씩 그 도시의 주민들이 떠나갔고. 해가 지남에 따라 사막에서 흘러 들어온 모래가 그 도시를 덮어서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그 도시와 비슷한 인간의 영혼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상상력과 공감의 문이 막혀 버린다면. 그래서 하나님께 우리에게 관계를 맺게 하셨던 사람들의 필요와 더 이상 생동감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점차적으로 건조하고 황폐한 사막의 모래가 흘러 들어와서 한때는 우리 것이었던 고귀함을 묻어 버릴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항구가 바다를 향해 열려 있을 때에만. 오직 우리의 욕망의 선박들이 우리 자신의 관심사들에만 닻을 내리지 않고 인생처럼 넓은 곳으로 모험을 떠날 때에만이 우리는 풍부한 인생을 이어 받을 수 있습니다.
34.일과 즐거운 삶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못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굶기라는 말은 아니다. 노약자나 환자, 실업자나 죄수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므로, 이들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는데도 일을 하지 않는 사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애를 쓰지 않는 사람은 먹을 자격도 없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은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될 뿐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짐승들의 생존은 본능이나 보호색 등 주로 자연적인 것에 의하여 유지되지만, 사람의 생존은 사람 자신이 의식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할 때에 유지될 수 있다. 사람은 나무와 풀에 저절로 열리는 열매를 따 먹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굴을 파고 사는 것이 아니라, 연장을 사용하여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며, 기후와 환경에 맞추어 옷을 입고 집을 짓고 사는 것이다.
사람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더 맛있게 먹고, 더 멋있게 입으며, 더 안락하고 편리하게 살기 위하여 계속해서 연구하고 실험함으로써 더 많은 지식을 얻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 나아가, 사람은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학문 활동을 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하여 즐기기도 하며, 서로의 관계를 조정하여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하기도 한다. 사람의 이런 활동들은 모두 넓은 의미의 문화 활동이다. 문화 활동이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을 사람이 의식적으로 변형시키거나, 전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을 일컫는다. 이런 의식적인 변형이나 창조는, 일을 하는 활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 사람에 의하여 이룩된 문화는 사람에게 다시 영향을 끼친다. 한국 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한국인이 되고, 일본 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자란 사람은 일본인이 된다. 사람의 혈통과 얼굴 생김이 그 사람의 어떠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받은 문화적 영향이 그의 정신 세계를 형성하고, 그 사람의 인격적 특성을 결정한다. 사람만이 일을 통하여 문화를 창조하고, 사람 자신이 창조한 문화에 의하여 사상과 인격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일을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사람은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우리의 몸은 움직여야 건강하고, 우리의 두뇌는 써야 민첩해진다. 태아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박동하는 심장도, 운동을 하여 더 많이 뛰게 하면 더욱 튼튼해진다고 한다. 과로하지 않는 한, 우리 몸의 모든 기관과 두뇌는 사용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튼튼해지고 민첩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중요한 일을 귀찮아하고, 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일을 노동이라 하기도 한다. 우리말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언어에서, 일이란 말은 괴롭고 힘드는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을 뜻하는 프랑스어 트라바이란 말은 '세 마리의 말'이란 뜻을 가진 라틴 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세 마리의 말을 한데 묶는 것만큼 힘들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독일어의 '아르바이트'란 말도 '갈아 놓은 밭'이란 뜻을 가진 라틴 어에서 유래된 것인데, 이 말 역시 일이란 힘들고 괴로운 것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일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괴롭게 생각하고 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 왜 괴롭고 싫은지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물리적인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이 괴로운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친구들과 어울려 공놀이를 하는 것이 이웃집에 심부름을 가는 것보다 힘이 더 들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공놀이를 하는 것이 심부름을 가는 것보다 더 괴롭거나 싫은 것은 아니다. 공놀이가 오히려 몸을 많이 움직이고 정신 집중이 더 필요한데도 공놀이가 심부름보다 즐거운 것이다.
일이 괴로운 이유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제도에서 찾으려 하였다. 자본주의 생산 체제에서는 일의 대가가 일하는 사람에게 모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생산 수단을 가진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분업이 불가피하게 되므로, 일이 단조로워지고 괴로워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모든 사람들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일은 역시 괴로운 것이며, 분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농사일도 괴롭고 하기 싫은 것은 매한가지다. 성경에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괴롭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벌을 받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설명일 뿐, 과학적 사고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일의 괴로움은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은 놀이와 대조된다. 심부름을 가는 것은 비록 힘이 적게 들더라도 그것은 일이고, 공놀이를 하는 것은 아무리 많은 힘이 들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놀이다. 놀이도 일 못지않게 심각할 수 있고, 많은 생각과 물리적인 힘을 요구하며, 문화 창조에도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하지만, 놀이는 그 목적이 놀이 그 자체이 있으므로, 그 밖의 아무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은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서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차는 것은 놀이지만, 돈을 받기 위하여 공을 차는 것은 일이다. 다 같이 몸을 움직이고 생각도 골똘히 하지만,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하나는 놀이여서 재미있고, 다른 하나는 일이라서 괴로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일생 동안 어떤 종류의 일이든 해야 하고, 또 일을 함으로써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일들이 괴롭고 하기 싫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이 가진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다. 일이 놀이처럼 즐거웠다면, 인간의 삶과 문화는 지금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무도 일을 놀이하듯 그렇게 즐겁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좀더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사람 자체가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고, 일을 함으로써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때문에, 마땅히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일의 괴로움을 어느 정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일의 결과보다는 일 그 자체에서의 의의를 발견하게 되므로, 일을 놀이하는 것과 같이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다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불량 식품을 만들거나 화학 무기를 생산하는 것도 일이긴 하지만, 이런 일은 결과적으로 일하는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 그리고 모든 일이 다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불쌍한 사람을 돕기 위한 일은 그보다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일에서 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을 택하고,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고상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요, 일의 괴로움도 한결 더 덜어 줄 것이다.
우리는 깨어 있고 긴장되어 있는 시간, 즉 하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낸다. 그런데 이 시간을 괴롭고 의미 없게 보낸다면, 우리의 일생이 괴롭고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은, 일이 아무리 괴롭고 가치 없는 것일지라도 그 일을 통하여 돈만 많이 벌면, 그 돈으로 즐겁고 뜻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옳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못하다. 삶의 덜 중요한 시간, 즉 일하지 않는 시간을 즐겁고 뜻 있게 보내기 위하여 삶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가치 없는 일을 괴롭게 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을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하는 시간을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야 뜻 있고 행복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의의를 가지고 즐겁게 일할 때, 그 일은 능률적이 될 것이요,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사람 자체가 본래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고, 일을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면, 재미가 있고 의미 있게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가치 있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35.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
인간이 하는 일에 하나님의 일이 있고 세상에 속한 일이 있다.
하나님의 일을 가룩 하고 세상적인 일은 저속한 것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런 연고로 사람들은 가치로운 일, 즉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특히 종교인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지니고 있다.
불제자로 자부하는 사람들이 가정을 버리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것이나, 크리스챤이라는 사람들이 일상의 삶을 포기하고 수도사가 되거나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자기의 삶 전체를 자기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다못해 그들의 종교의 전당을 위하여 봉사하거나 그 종교의 지도자들이 원하는 것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했다는 자위를 얻는다.
한국의 일부 몰지각한 부흥사들의 외침을 한 번 보자.
사람으로 태어나서 썩어질 세상의 일만 하다가 하나님 앞에서는 날 저주받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까짓 매일 해야 표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집안 살림하느라 허송세월 하지말고 전도하고 심방하고 기도하고 성경 공부하는 것에 전심전력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당신들을 사랑하시겠는가? 당신들이 키우는 아이들도 썩은 세상일 하도록 하지말고 하나님의 종을 만들어야 신자로서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라고 그들은 입에 거품을 문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이 하나님의 일이냐 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 때 구원 얻는 사람과 구원 얻지 못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때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24:40-41)
이것이 사실이라면 외형상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도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했고 다른 사람은 썩어질 세속적인 일을 한 것이 분명하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인간에게 두 가지 큰 사명을 주셨다.
하나는, "엿세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는 사명이다.
다음은, "안식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라"는 사명이다.
따라서 신앙적인 자세로 엿세 동안 열심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그것이야말로 거룩한 하나님의 명령을 완수하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가정 주부가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인 줄 알고 보다 건전한 가정을 꾸미려고 노력하며 그 가정에서 보다 바람직한 인격자가 배출되도록 힘쓴다면, 하나님의 일의 가치가 분명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외형적인 것이 아니고 특정한 직책에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바르게 신앙적 자세를 지니고 수행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다 주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했다. 무엇을 위해 행하느냐하는 동기가 상당히 중요함을 말할 수 있다.
교회에서 일한다고 해도 그 동기를 보면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분명 나뉘어 진다.
36.향기 나는 직업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 나는 직업은 무엇일까요? 제가 아는 분 중 한 분은 꽃가게를 하십니다. 꽃을 파는 일은 참 향기 나는 직업입니다. 하루종일 꽃향기에 파묻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요?
또 어느 분은 작은 서점을 하십니다. 책을 파는 일 또한 하루종일 책속에서 생활을 하니 얼마나 좋을까요. 보고 싶은 책 마음대로 볼 수 있고 책을 파는 일 자체가 참 좋은 일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저도 꽃가게나 서점을 하고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꽃가게를 하시는분께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꽃향기를 계속 맡으면 머리가 아프다나요. 그리고 꽃만 다듬어서 팔기 때문에 그 줄기하며 부패한 잎 등을 처리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랍니다. 화분을 팔기도 하는데 가장 싫어하는 지렁이가 부식토 속에서 기어나오는것이 너무 무섭고 새벽 3시면 일어나야 꽃시장에 가서 꽃을 사올 수 있다나요...
서점을 하는 친구에게도 그런 말을 했더니,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서점일일거라 합니다. 책을 정리정돈 하는 일이며 안 팔리는 책들을 골라내어 반품 처리하는 일 등등 대안 없는 막노동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내가 모르는 일 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내가 잘 아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 나는 직업은 바로 지금 내가 하고있는 일입니다. ⓒ최용우
37.노동과 투자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에 오랫동안 다니면서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저랑 나이가 동갑인 성실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주식투자를 하게 되었습니다. 뭘 알아서라기 보다는 너나나나 할 것 없이 다 한다기에 빠질 수가 없어서 한번 해 본 것입니다.
첫 번 투자에 일주일만에 한달 월급액수만큼 벌었습니다. 그러자 있는 돈 다 털어 주식을 사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회사도 사직하고 매일 증권회사 객장으로 출근을 합니다. 한나절에 한달 월급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한다나요. 전광판을 보고 있으면 돈이 막 몰려 다니는 환상이 보인답니다. 운만 좋으면 며칠만에 1년 월급을 벌기도 하는데, 공장에서 죽어라고 일만 하는 사람들이 바보처럼 생각된답니다. 지금은 큰 부자가 되려면 일을 해서는 불가능하고 있는돈을 요리조리 잘 굴려야 부자가 되는 시대라네요.
땀을 흘려서 돈을 버는 사람은 바보가 되고, 요리조리 재태크를 잘해야 현명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시대라니...정말 그렇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 친구는 주식값이 떨어져서 투자한 돈의 십분의 일도 안 남았다고 코가 석자나 빠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투자전략을 잘 못해서라며 여전히 직장에 복귀할 생각을 안 하고 있습니다.
요즘의 신문들을 유심히 살펴 봤더니 신문마다 예외없이 '돈'이름이 들어간 섹션을 발행하고 있고 증권기사를 가장 비중있게 다루고 있더군요. 참 혼란스러운 세상입니다. ⓒ최용우
38. 4D를 기피하는 이유
지금까지는 더럽고(dirty) 힘들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이른바 '생산직' 3D업종에 구인난이 심했으나 요즘엔 여기에 먼 거리(distant)까지 추가해 4D 기피 업종 시대가 됐다는 것입니다.
생산직 근로자로 일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어서 빨리 생산직을 벗어나고 싶고, 자식들에게는 절대로 생산직 노동을 시키지 않겠노라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사무직보다 생산직이 더 하류 직업이라는 그릇된 국민의식과 구조적인 모순 때문입니다. 더욱 강도 높은 일을 하고도 월급이 훨씬 적은 '생산직'보다는 상대적으로 편하고 월급도 많은 사무직을 선호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그래서 최소한 생산직이나 사무직의 보수를 같게 한다든가 생산직의 월급을 월등히 많게 해서 '생산직'에 사람들이 몰리게 해야 됩니다. 제철소나 조선소, 농사, 생산라인에 젊은이들이 없다고 합니다. 농부들의 평균연령이 50살이 넘고, 조선소, 제철소는 평균연령이 45살이 넘는답니다. 우리나라 산업의 허리가 끊긴 셈입니다.
구조조정으로 거리에 나온 실업자와 생활보호대상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많아 최저생계비를 받는 사람은 일을 해봤자 그보다 10 내지 20만원 정도 더 받는 수준이라 구태여 몸 고달프게 생산직에서 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국가가 틀림없습니다. 자본주의는 창의력과 능력 있는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소년소녀 가장, 나 홀로 노인 등 불우한 사람은 도와줄 때 더 발전합니다. 그러나 일자리가 있는데도 기피하는 건강한 사람까지 도와주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용우
39. 빌 게이츠 참 멍청하네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인 빌 게이츠의 재산은 어느 정도 될까요? 가장 많았을때는 800억달러를 육박했었는데, 2002.3월 현재 528억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일본에서 일약 갑부가 되었던 손정의씨는 가장 재산이 많았을 때 785억달러로 빌 게이츠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갔으나 2년새 폭삭 망하여 지금은 고작(?) 15억달러정도의 재산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 -
528억달러는 우리나라 돈으로는 1달러에 1200원씩만 단순계산해도 63조억원입니다. 1년을 사는데 288달러가 필요한 기아 난민 2억 6천만명을 1년동안 먹여 살릴 수 있는 돈입니다. (안 놀래시네?) 매일매일 20억원씩 약 100년 동안 써야 다 쓸 수 있는 돈입니다. @ @
그런 빌 게이츠가 일을 너무 많이 하여 과로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빌게이츠 그 사람 참 멍청한 바보네. 그렇게 돈이 많이 있으면서, 얼마나 더 벌려고 과로로 입원할 정도로 일을 해? 나 같으면 일 안하고 그 돈 은행에 예금해 놓고 날마다 20억원씩 찾아 펑펑 쓰면서 살다가 편하게 죽겠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노동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땀흘리는 기쁨, 수고의 열매를 거두어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종일 힘껏 땀흘려 일하고 난 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저녁 밥상 앞에 앉는 그 행복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빌 게이츠는 많은 재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힘껏 일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니 쓰러질 정도로 일을 하지요. ⓒ최용우
40. 하찮은 일
자신이 하고있는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밥하고 빨래만 하다가 내 인생 꼬부라져 버렸네!"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다가 내 찬란한 청춘 다 곰팡이 나 버렸네"
주부, 노동자, 학생, 조용히 봉사하는 사람들, 특히 시골에서 목회를 하는 분들은 도시에서 휘황찬란한(?) 목회를 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심하게 위축되곤 합니다.
나의 노력을 남이 알아주지 않을 때 나는 나를 하찮은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프란시스 쉐퍼의 <작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책에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하찮은 사람이나 하찮은 장소는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삶 전체를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 하찮은 일로 인하여 한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 하찮은 일을 하면서 잊혀져버린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스가랴4:10) 하고 온 세상을 두루두루 살펴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최용우
41. 보람된 일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시간을, 똑같이 일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무척 힘들어하고 어떤 사람은 너무 재미있어 합니다. 종업원은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힘들다고 하고 주인은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수입이 짭짤하니 재미있다고 할 것입니다.
종업원은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주인은 똑같이 일을 해도 '의무'가 없습니다. 그 힘듦의 차이는 '의무'의 차이입니다. '의무'가 사라지면 일의 괴로움도 사라집니다. '노동은 힘들다'는 말이 '노동은 보람'이라고 바뀔 것입니다.
어떤 경제학자가 말하기를 의무적으로 일하는 현대인들은 이틀이면 할 일을 일주일동안 힘겹게 한다고 진단합니다. 일주일 업무량을 최대한 빨리 해치우고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놀아도 된다는 조건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틀이면 일을 다 끝내고 나머지 5일 동안은 쉴 것이라 합니다.
어짜피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어짜피 해야 할 일이라면 힘들게 하는 것보다 '보람되게' 일하는 것이 좋겠지요? ⓒ최용우
42. 어린이 노동학교
저에게는 꼭 해보고 싶은 이런 작은 꿈이 있습니다.
한적한 시골에 넓은 터를 구해서 '학교'를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학교의 이름은 '흙놀이 꾸러기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아이들에게 절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게 하는 특별한 학교입니다. (와~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 눈이 번쩍!!!!)
월요일에 입학해서 토요일에 졸업을 하는 1주일짜리 단기학교입니다.
학교에서 하는 일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맨발로 흙을 밟으며 일을 합니다. 땅파기, 밭매기, 잡초뽑기, 나무심기, 계절마다, 벼베기, 모내기, 고구마캐기, 마늘쫑뽑기, 흙벽돌만들기 등등 대자연 속에서 흙과 물을 만지며 이마에 땀을 흘리는 노동을 하는 학교입니다.
1주일동안 공부를 해서도 안되고 책을 볼 수도 없고 컴퓨터, 텔레비젼도 금지입니다. 외출도 안되고 집에 전화도 할 수 없고 과자나 간식도 없고 오직 꽁보리밥을 먹고 일만 해야 합니다.
자! 일주일 후에 아이들 입에서 "나 공부 할래요. 공부보다 더 쉬운게 없어요. 제발, 공부하게 해줘요. 나에게 책을 달라...아니면 죽음을..."
하는 절규(?)를 들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음하하하... ⓒ최용우
43. 노동과 고행
우리의 영혼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을 이신득의(以信得義)교리라고 하는데, 우리의 구원은 조건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맞습니다. 맞고요.
맞기는 맞는데, 오해하고 있는 것이 한가지 있어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육체'까지 모두 '구원'을 얻는 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육체의 행위는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개차반 - 별로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육체'는 선정적인 영화 포스터만 봐도 뭐가 불끈 일어서고, 이쁜 여자들만 봐도 눈이 돌아가고, 누가 돈 좀 벌었다고 하면 그것이 옳은 방법인지 그른 방법인지를 따지지 않고 나도 좀 벌자 하면서 투기에 뛰어듭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예수를 믿으니 틀림없이 구원받아 천국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죄가 가득 차 있는 죄 주머니인 육체를 깨끗하게 비우지 않으면 영혼은 구원을 얻었을지 몰라도 '육체'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육체를 비우는 방법으로 '고행(苦行:몸을 힘들게 하는 것)'이 행해졌습니다. 한 때 그 고행이 너무 지나쳐 거부감을 갖게 되었고, 요즘에는 육체의 고행이 '노동'으로 바뀌었습니다.
고행(노동)이 없는 기독교는 속 빈 강정입니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영성'이라는 말을 유행처럼 많이 사용하는데 고행(노동)이 빠진 '영성'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이전에는 영성생활이란 '기도는 노동이다'라는 의미였습니다. ⓒ최용우
44.노동(일)에 관한 성경연구
1. 일해야 하는 이유
1) 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에(창2:5-15)
2) 범죄의 결과이기 때문에(창3:16,17)
3)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출20:9, 마21:28)
4) 내일을 대비하여야 하기 때문에(잠6:6-8)
5) 일할 날이 길지 않기 때문에(시90:10)
2. 노동이 주는 유익
1)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됨(출20:9)
2) 수고에 따른 삯을 받음(레19:13, 잠14:23)
3)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음(시128:2)
4) 노동 후 낙을 누릴 수 있음(전3:13)
5) 사람들의 칭찬을 받음(잠31:31)
6) 잠을 달게 잠(전5:12)
7)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게 됨(전9:9)
8) 빈궁한 자를 구제할 수 있음(행20:35, 엡4:28)
3. 일에 대한 성도의 자세
1) 엿새동안 일하고 주일은 지킬 것(출20:9-11)
2) 즐겨 일할 것(삿5:2)
3) 자원하여 일할 것(느11:2)
4) 실망하지 않도록 수고할 것(전2:20)
5) 힘을 다하여 일할 것(전9:10)
6) 헛된 수고가 되지 않도록 할 것(사49:4)
7) 힘써 수고한 후 주께 나아가 안식할 것(마11:28)
8) 타인의 일을 간섭하지 말 것(마20:12-14)
9) 말은 일에 등한히 말 것(마21:28,29)
10) 능력에 맞게 일할 것(마25:22,23)
11)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 것(요6:27)
12)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할 것(고전16:16)
13)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할 것(엡4:28)
14)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 것(살후3:10)
15) 규모 있게 일할 것(살후3:11)
16) 종요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을 것(살후3:12)
17)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될 것(딤후2:15)
4. 일을 위해 고용된 자의 자세
1) 자기 할 일에 근신할 것(잠22:29)
2) 다른 사람의 보수와 비교하지 말 것(마20:12,13)
3) 정한 보수에 만족할 것(눅3:14)
4) 상전을 공경할 것(딤전6:1)
5. 성도가 쉬지 않고 부지런함으로 해야 할 영적인 일
1) 기도하는 일(삼상7:8, 삼상12:23, 살전5:17)
2) 생명을 얻기 위한 수고(잠10:16)
3) 좋은 상을 얻기 위한 모든 일(전4:9)
4) 구제하는 일(전11:1,2)
5) 영적 파숫군으로서의 직무(사62:6)
6) 그리스도를 닮는 일(요13:14)
7) 말씀을 가르치는 일(행5:42, 행20:31)
8) 전도하는 일(행5:42)
9) 말씀을 상고하는 일(행17:11)
10) 위로하는 일(고후7:7, 살전4:18)
11) 성령을 좇아 행하는 일(골1:29)
12) 감사하는 일(살전2:13)
13) 권면하는 일(딛1:8, 딛2:6, 딛2:15)
14) 봉사하는 일(벧전4:10,11)
15) 찬송하는 일(계4:8)
6. 영적 수고의 결과
1) 복음이 전파됨(살전2:9)
2) 상급을 받음(눅6:35)
3) 영생에 이름(잠10:16)
4) 장차 수고를 그치고 영원히 안식함(계14:13)
45. 일의 축제
인간과 일터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일은 멍에가 아니라 선물이며 축제다.
미국의 교육가 버틀러(1862 ∼1947)는 일에 관해 세 부류의 사람을 말했다.
첫 번째는 일을 창조하는 소수의 사람들.이들은 개인의 일 차원을 떠나 공동체를 바 꾼다.
두 번째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방관하고 기피하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생각조차 안 하는 수많은 사람들.나는 과연 어떤 부류일까.
한 아버지가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처음으로 직접 장난감 자동차를 만들었다. 네모난 통나무를 줄톱으로 정교하게 잘라가며 장시간 애쓴 결과 유선형의 멋진 장난감 차가 탄생했다. 아홉살 된 아들은 완성된 차에 파란 색을 칠하고 아버지는 차 축을 거울처럼 광냈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차체에 화염 무늬 스티커를 붙이고 소나무 차체에 ‘타오르는 질주자’라는 이름을 써놓았다. 그 옆에서 아들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듯한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녀와 함께 만들어낸 자동차. 부모의 성취감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아이와 함께 이루어낸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모든 일에 협력하시기를 바라신다. 완전한 삼위일체이시므로 혼자 일을 다 하실 수 있는데도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성을 기쁘게 여기신다.
우리는 얼마나 복된 자녀들인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시간을 내어 오늘도 자녀들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신다. 종일 그분과 함께 일하자.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2.일은 즐기면서 하라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일까? 필자는 카네기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성공의 비결을 질문받는다. 그러나 성공의 비결은 간단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다. 좋아서 하는 것보다 일을 더 잘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 우리는 온 정성을 다해서 일을 하게 된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즐기는 것이다. 일을 즐기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게 된다. 전문가가 되면 우리는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세상은 전문성에 대해서는 항상 값을 쳐주는 것이다.
하림통상을 설립한 김흥국 사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병아리 기르는 것이 즐거웠다. 그는 공부보다도 병아리 기르는 일에 더 흥미가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는 병아리와 함께 지냈다. 고등학교도 집안의 반대를 물리치고 가출까지 하면서 이리농고에 들어갔다.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1975년 봄 고등학교 졸업할 때 그는 이미 7500만원의 재산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병아리 기르는 일을 하면서 무한한 보람과 행복을 느꼈다. 연간 매출 3000여억원. 하림통상의 역사는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한데서 온 결과인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모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어진 일을 좀더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자.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게 되고 일을 통해서 인생을 즐기게 된다.
/최염순(카네기연구소장)
3.신성한 노동
성(聖) 프란체스코는 한때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회심한 후 일생을 경건하고 청빈하게 보낸 수도자였다. 특히 그는 자신의 것을 이웃에 나누어주는 사랑과 노동의 신성을 제자들에게 늘 가르쳤다. 그는 가르쳤을 뿐 아니라 몸소 실천했다.
하루는 그가 정원에서 채소를 가꾸고 있을 때 한 제자가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오늘 석양과 함께 선생님의 생이 끝난다고 할 때 지금부터 어떤 일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프란체스코는 웃으며 대답했다.
『밭에서 채소를 가꾸지 뭘 하겠나?』
4.성실하게 일하라
건축회사에 다니던 사람이 퇴직을 얼마 앞두고 사장으로부터 "마지막으로 집 하나 지어 주시오"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 회사도, 하는 일도 그만두게 된다고 생각하던 이 사람은 모든 일을 대충대충 했다. 재료도 좋는 것을 쓰지 않고 감독과 시공도 철저하게 하지 않았다. 그저 겨우 준공검사를 넘길 정도로 지어놓은 집이 거의 완성될 무렵, 사장이 이 사람에게 찾아와 말했다.
"이 집은 바로 당신 것입니다. 당신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한 나의 선물입니다."
19세기 영국 작가 찰스 킹슬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났을 때 당신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만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 일을 능력을 다해 수행한다면 당신의 내면에 자제력, 근면함, 만족감 등 게으른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수많은 덕이 쌓여질 것입니다."
노동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성경에는 근면하게 일할 것을 촉구하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일에 얼마나 충실하십니까? 죤 밀턴은 더 나은 시를 쓰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골3:23)하면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통하여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까지도 채워 주실 것입니다.
5. 노동은 질병의 약
브람웰 부드는 1926년 가을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설교한 이름 높은 종교가였다. 당시 그는 눈보다 흰 백발의 노인이었다. 그런 그도 청소년 시절에는 매우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14세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아마도 17세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17세까지 간신히 살아 남았고 건강도 조금 좋아졌으나 의사는 내게 희망을 품지 않았고, 21세 정도까지 살 것으로 단정했다. 계속 병상에 누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2, 3년 간은 누구의 도움 없이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이처럼 병약했던 그가 어떻게 73세의 장수를 누릴 수 있었고, 세계 6대주를 두루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그는 건강 회복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그는 이 같은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노동한 것이 나로 하여금 병을 이겨내게 했습니다."
병약자를 구하는 것도 노동이며, 폐인이 될 사람을 구출하는 것도 노동이다. 또한 튼튼한 자의 건강을 유지시키는 것도 노동이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6:10)
6. 현대판 개미와 베짱이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실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한낱 우화일 뿐이다. 이솝은 베짱이를 여름 내내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부르는 곤충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베짱이가 쉬지도 않고 계속 노래를 해야 하는 까닭은 세월이 좋아 놀고 먹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여러 암컷들에게 잘 보여 더 많은 자손들을 퍼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느라 자신의 위치가 포식동물들에게 알려지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나무 그늘에 숨어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다.
7.일하는 기쁨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주신 대표적인 선물 세 가지가 있습니다. 혼인과 안식일과 노동입니다. 모두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땀흘려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복중의 복입니다. 저는 열중해서 일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북한에 능라도 경기장이 있습니다. 5·1경기장이라고도 부릅니다. 북한에서는 5월1일이 노동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사회가 많은 오류를 갖고 있지만 노동을 신성시하는 점은 배울 만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일을 천시하면서 편하고 수고 덜하는 직업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모두 일확천금, 배금사상에 흠뻑 물들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속에도 이 한탕주의가 들어있습니다. “기적같이, 형통하게, 불같이, 소나기같이….” 이것들이 모두 한탕주의입니다.
성경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으라 그러면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삶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이 진정 행복한 삶입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8.노동은 기쁨의 샘
"만성 피로"를 호소하는 현대인들이 많다. 최근 일본에서 '가로시'라는 책이 출간됐다. 가로시는 우리말로 '과로사'라는 말이다.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쓰러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사람이 일하다가 피곤을 느끼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성취감을 갖지 못했을 때다. 발명왕 에디슨은 "몇 시간 일을 했다거나 월급이 얼마라는 것은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동의 목적을 성취하는 기쁨에 두면 훨씬 효율적이다"라고 말했다. 일은 가능하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한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9. 일하는 기쁨
지금 교회를 짓고 있다. 세 사람의 석공이 열심히 돌을 다듬고 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도 흘리면서 대리석을 다듬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땀을 흘리며 일하느냐고 물었다. 석공들은 각자 다른 대답을 했다.
첫째 사람은 불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죽지 못해서 이 일을 하고 있소” 두번째 사람은 무표정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돈을 벌어야 살 것 아니오” 세번째 사람은 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대답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당의 돌을 깎고 있는 중이오” 그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상당한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행복과 기쁨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서 주어진다. 그것은 하는 일의 뜻을 아는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새해는 이같은 기쁨과 행복한 마음으로 일을 해보자.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10.일과 지옥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4:11)
어떤 사람이 죽은 지 며칠 후 눈을 떠보니 그곳은 천국이었습니다. 한없이 넓고 푹신한 곳이었지요. 그는 당연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하여 평안한 자리에서 며칠 푹 쉬었습니다. 그곳이 그는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출근하라고 아침 일찍 깨우는 아내도 없었고, 상사의 잔소리도 물론 없었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매달려야 할 일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인이 한시라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대기하고 있다가 시중을 들어주었습니다. 밥을 먹는 것도 손끝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이 그 하인이 먹여 주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목욕을 할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안한 생활도 며칠 지나지 않아 싫증나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자신이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일이 없으니 지겹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인에게 말했습니다.
「내 손으로 무엇이든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그러나 하인은 그의 그러한 청을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해결되지만 단 하나, 당신이 직접 하는 것만은 금지되어 있습니다.」그 말에 그는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그렇다면 차라리 지옥이 낫겠네. 이렇게 심심해서 대체 어떻게 살란 말인가?」하인이 그 소리를 듣고 다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지금껏 여기가 천국인 줄 아셨나요? 여기가 바로 지옥입니다.」
일을 하지 않고 편안히 쉰다는 것, 그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쉬는 것도 일을 하는 가운데 쉬어야지 의미가 있는 것이지 마냥 쉰다고만 해서 그게 좋기만 하겠습니까?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하지 못하는 것, 딴게 지옥이 아니라,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바꿔 말하면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인 셈이지요(전 9:10)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21:25)
* 기도: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하시고, 충성스럽게 힘을 다하여 수행하는 저희 가족들이 되게 하옵소서. /한태완 목사 지음, 반석문화사, "가정예배"중에서
11.일하지 않은 죄
달란트 비유를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신의 달란트를 땅속에 감추어두었다가 주인에게 내놓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인색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은 주인의 달란트를 감추었다가 꺼내왔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보면 그가 달란트를 감추어두고 일하지 않은 것은 상대적 빈곤과 불쾌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같은 종인데 자신은 다른 종들보다 푸대접을 받았다는 비교의식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나와 주인과의 절대적 관계에서 보면 나의 한 달란트는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입니다.6000일의 품삯입니다. 그런데 이 많은 돈을 상대적 빈곤 때문에 감추어두고 일하지 않은 것이 죄입니다. 이 종은 어떤 이유에서든 일하지 않은 죄를 면키 어렵습니다. 일하지 않은 죄는 죄 같지 않은 죄입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12. 낮일 때 일하시오
존 모리슨의 안수식이 끝난 직후에 이웃의 목사가 그를 방문하여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은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건강의 한도를 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러자 모리슨은 이렇게 대답했다.
"염려 마시오. 게으른 목회자가 오히려 먼저 죽는 답니다."
그로부터 6개월 후에 모리슨은 이웃 목사의 임종 때에 불려 가게 되었다. 그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전에 나에게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모리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하지만 그런 건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그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예, 그렇지만 그 얘길 해야겠어요. 그 말이 참이었습니다. 일을 하십시오. 아직 낮일 때 일을 하십시오. 일할 수 없는 밤이 지금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13.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세운 세실 로즈는 임종의 순간에 후회스러운 듯이
"이렇게 조금밖에 일을 못하다니,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라고 토로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일할 수 없는 밤이 쉬 오리니, 일할 수 있을 때에 맡겨진 본분을 다 하라."
14.새롭게 하는 일
영국의 유명한 로즈 장학재단을 설립한 세실 로즈가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엄 부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라들을 새롭게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고 당신은 사람들을 새롭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당신이 나보다 훨씬 좋은 일을 선택했습니다."
15.인간과 노동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공중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핀 백합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어찌 당신의 백성들을 먹이지 않으시고 입히지 않으시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눅12:28-29)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감나무 아래 누워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주시리라고 믿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16. 일하기 싫거든
옛날에 어떤 새가 살았는데 별명이 "날만 새면"이었다고 합니다. 따뜻한 낮에 마음껏 놀다가 새가 밤이 되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새끼새들이 아버지 새를 원망하였습니다.
"아버지 우리들도 남들처럼 낮에 집을 지었다가 밤이면 편하게 지내요"
"오냐 잘못 했다. 날만 새면 집을 지으마"
이렇게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지만 정작 날이 새자 그만 집을 짓기로 한 각오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룻밤을 어떻게 지냈는데 다음이야 못 참겠느냐? 우선 편하게, 즐겁게, 재미있게, 멋지게 지내야지"
그래서 자식들을 데리고 재미있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초조한 아들 새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후가 되었어요. 집을 지어야지요"
"괜찮다. 해질녘에 지어도 늦지 않다."
정작 해질녘이 되자 오늘 저녁은 어떻게 지내고 내일 날이 새면 집을 짓자고 하였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추웠습니다. 오들오들 떨면서, '날만 새면 날만 새면, 날만 새면--' 집을 짓겠다고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날만 새면 다 잊어버리고 핑계를 대며 놀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밤만 되면 '날만 새면, 날만 새면'을 연발할 뿐 날이 새어도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추위가 닥친 어느 날 이 새들 가족은 전부다 얼어죽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새를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늘도 열심을 다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17.노동과 안식
어느 기독교인 가정에 기독교인 머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머슴을 불러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나가주어야겠네”라고 말하자 머슴이 놀라 반문합니다. “무슨 이유로 나가라고 합니까?” 주인이 대답하기를 “자네가 제4계명을 범했기 때문이라네.” 머슴이 물었습니다. “내가 언제 주일을 범합디까? 주일에는 꼭 예배당에 나가는 것을 온 식구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주인이 대답합니다. “주일에 교회 출석은 빠지지 않았지만 엿새 동안 부지런히 일하라는 계명을 범했기 때문일세.”
하나님의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물론 안식일과 주일은 다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고 쉬는 날로 토요일입니다. 주일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억해서 예배하는 날로 일요일입니다. 그러나 주일 안에는 하나님의 안식이 있습니다. 노동이 없으면 안식도 없습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휴식마저도 고통의 시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노동은 신성합니다. 예수님도 목수로 일하셨습니다. /이철재 목사(서울 성서교회)
18.개미의 지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개미의 지혜를 배우라고 하셨다. 도대체 개미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것인가.
첫째, 노동의 윤리를 배워야 한다. 개미는 성충으로 겨울을 나기에 먹이가 부족한 계절을 위해 식량을 저장한다. 여기서 개미의 저축생활을 배워야 한다.
둘째, 컨베이어 벨트식 분업의 공정을 배워야 한다. 개미는 군락을 이뤄 경제활동을 하기 때문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개미의 경영방식은 철저한 분업제도다.
셋째, 번식의 분업을 배워야 한다. 가장 신기한 것은 번식 분업이다. 여왕개미는 평생 알을 낳는 일에 전념하고, 일개미는 여왕을 도와 군락의 번식에 필요한 제반업무를 담당한다. 개미는 그야말로 고도로 조직된 기업경영을 방불케 한다.
하나님은 개미의 이런 지혜를 배우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과연 내가 속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가정 교회 사회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가. 아니면 행여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설동욱 목사<예정교회>
19.사람의 가치
우리에게는 자신의 재능과 환경을 즐기는 삶의 여유가 필요하다. 비는 대기 중의 입자가 점점 커져서 마침내 지상으로 떨어지는 액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비를 때에 따라 다양하게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봄비 보슬비 소낙비 여우비…. 어떤 사람은 비가 오면 짜증을 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비를 즐긴다. 요즈음은 기술 혁신으로 인해 사람의 재능이 제한을 받는다. 예전에는 주판만 잘 다뤄도 칭찬 받고 은행에 취업도 됐다. 그런데 지금은 전자계산기가 그 몫을 대신하고 있다. 머리 터지게 외우던 지식도 컴퓨터 키워드만 치면 전문지식이 줄줄 흘러나온다. 이런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도 그만큼 많다. 노동도 즐기면서 할 때 더욱 효과가 크다. 인생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은 뭘까. 그것은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봉사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맑은 머리와 단잠을 선물로 주신다. /설동욱 목사 (예정교회)
21. 벽돌공의 자세
지혜의 임금으로 알려진 솔로몬이 하루는 성전 건축현장을 방문하고 일꾼들을 돌아보았다.
"왜 당신은 여기서 일을 합니까?" 한 일꾼이 대답을 했다.
"아 그야 뭐 배운 것도 없고 이럭저럭 살아가려니 죽지 못해서 하고있지요."
얼마쯤 가다가 다른 일꾼에게 똑같이 물었다. 그 일꾼은
"배운 도둑질이 일하는 것뿐이니 놀고 먹을 수가 있나요, 그럭저럭 한 세월 보내는 것이죠"
왕은 얼마쯤 가다가 해진 옷을 입고 일하는 청년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왜 여기서 일을 하느냐구요? 정말 난 기뻐서 죽을 지경이지요 자, 보세요 나는 지금 하늘나라의 영광을 이 땅위에 드러내는 성전을 바로 이 손으로 돌을 쌓고 있지 않나요?"
이 손으로 쌓는 벽돌 한 장이 이 위대한 성전의 작디작은 부분일 지언 정 큰 일을 이룬다는 것은 소명을 가지고 일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의 엄청난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이다./KCM
22. 만년 청춘
독일의 음악 작곡자 브람스(1833-1897)가 50회 생일을 맞은 어느 날이다.
그 즈음 그는 무언가 머리를 맴도는 악보를 하나 그려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떠오른 생각을 오선지 위에 그려보면 마음에 들지 않아 구겨버리기를 몇 십번, 그는 마침내 붓을 동댕이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젠 나도 끝인가 보다. 예전과 같은 영감도 없고 총명함도 사라졌구나. 나이 50이 되면 이렇게 늙어 쓸모 없어지는가."
이렇게 자조하는데, 문득 하나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것은 며칠 전 친구로부터 식사나 함께 하자며 약속했던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것이었다. 브람스가 그 집에 도착해 보니 의외로 많은 친구들도 함께 와 있었다.
브람스는 오랜만에 많은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이윽고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주인 친구가 말했다.
"각자 자기 잔을 들고 오늘 50회 생일을 맞은 친구 브람스를 축하해 줍시다."
브람스는 감격했다. 자신은 작곡 때문에 생일도 친구도 잊고 있었는데, 그런 자신에게 모든 친구들이 함께 축하해 주니 그럴만도 했을 것이다.
'내가 나이 50이 되었다고 작곡을 그만두려 했던 생각은 잘못이었다. 50이든 무어든 죽는 날까지 하던 일을 계속해야한다.'
그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맹세하며,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인생 50이면, 젊은 시절에 비교해서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이를 불문하고 그가 맹세한 대로 죽는 날까지 열심히 일해서(교양곡 제4번 마단조)<52세> 등의 명곡과 (11개의 코랄 전주곡)<63세>을 남겼다.
미켈란젤로가 80세에, 모네가 85세에 대작을 남겼다든가, 처칠, 맥아더 등등이 나이에 관계없이 죽을 때까지 일했다는 사실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 남아 있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많고 또 당연한 것이다.
이제 늙었기 때문에 지나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적어져 '시간의 가치'가 더욱 소중해졌다는 사실이 그렇고,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해서 모여진 축적된 경험과 경륜이 사장될 확률도 높아졌다는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사실, 우리 인간들이 자랑하는 오늘날의 문화나 문명도 따지고 보면 조상들의 축적된 지식 덕분이 아닌가?) 그리고 후손들에게 보여줄 떠 하나의 값진 교훈인 '유종의 미'를 보여줄 수 있고 스스로 열심히 함으로서 '만년청춘'도 구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필상 <아산교차로 1996.4.17>
23. 손에 못이 박힌 사람만 먹으라
옛날 한 농부에게 세 아들과 벙어리 딸 하나가 있었다. 두 아들은 무난했으나 막내 이반은 바보였다. 바보 이반과 벙어리 딸은 묵묵히 일만했다. 두형은 재산을 얻어서 낭비해 버린다.
한 신사가 나타나 사람이 머리가 빠개지도록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도깨비가 변장하고 이반의 나라를 망치려고 하는 짓이다. 이반은 광고를 했다.
"훌륭한 신사가 나타나 여러분에게 머리로 일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머리로는 손보다 훨씬 더 많은 벌이를 할 수 있다. 모두들 나와서 배우라."
드디어 높은 망대가 세워지고 그 신사가 올라갔다. 그러나 바보들은 다 일하러 흩어졌다. 신사가 머리로 일하는 법을 가르치다가 굶어서 쓰러지고 말았다. 사닥다리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다치고 큰 부상을 입었다.
"아, 머리가 빠개지도록 일하는 것이 바로 이거군!" 하고 모두 빈정댔다.
온갖 인종들이 이반의 나라로 몰려와 먹을 것을 구했다. 그러나 이반의 나라에는 한 가지 엄격한 법이 있었다. 이반은 외쳤다.
"손에 못이 박힌 사람만 식탁에 앉을 수 있소. 못이 박히지 않은 사람은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하오"
이반의 나라는 일하는 나라이다. 바보 이반을 비웃으며 일할 줄 모르는 형들이 바보들이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 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살후3:10) ⓒ톨스토이 <바보 이반의 이야기> 중에서
24. 할 일 없다는 공포
희랍신화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은 무한지옥(無限地獄)에서 무거운 바윗덩이를 영원히 굴려 올리도록 숙명지어진 시지프스의 형벌이다. 시지프스 왕은 이승에서 살았을 제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살다가 끝내는 제우스 신까지 속인 죄로 이 가공할 형벌을 받은 것이다.
이 시지프스의 형벌을 인간의 실존(實存)에 빗댄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는 유명하다. 한데 사르트르는 시지프스는 그나마 바위를 굴려 올리는 할 일이라도 있다는 점에서 덜 비극적이라고 말하면서 보다 가혹한 책고(責苦)로 아랍인의 지옥 가헤넴을 든다.
아랍 사람이 죽으면 험상궂은 마왕(魔王)의 두 사자(使者)에게 신문을 받고 죄가 확정되면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다리(橋)를 건너는데 악인은 이 다리를 헛디뎌 가헤넴에 빠지게 돼 있다. 가헤넴은 아무것도 없는 출구(出口)없는 방이다. 불교의 지옥처럼 밟고 걸아야 하는 바늘(針)산도 없고 살을 익히는 화염도 굶주린 독사떼도 없다. 시지프스처럼 굴려 올려야 할 바위도 없다. 다만 가헤넴에세는 영원히 죽지 못하고 또 영원히 할 일도 없다.
그렇게 책고가 없는 안락한 지옥도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영원히 죽지 못하고 영원히 할 일이 없는 책고라는 것을 사르트르는 갈파하고 이 가헤넴에서 암시를 받아 희곡 '출구 없는 방'을 저술하고 있다.
이 세상의 그 많은 지옥들 가운데 가장 가혹한 지옥이 할 일이 없는 인간상황인 것이다.
도재승(都在承) 서기관이 피랍 21개월 동안 갖혀 있었다는 감방이 바로 이 출구 없는 방이었다. 하루 한끼 넣어주는 밥을 먹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도록 해놓은 것이다. 아랍인의 지옥인 가헤넴을 지상에 재현해놓은 것이 된다.
그래서 도서기관은 피랍 21개월 동안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로 죽음의 공포보다 이 출구 없는 방에서 할 일이 없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사람이 살아 겪을 수 있는 가장 가혹한 시련과 상황을 살아낸 사람이라는 차원에서 또 다른 정동(情動)이 뭉클하다.
옛 우리 생활 속에서 할 일이 없는 여가(餘暇)의 공포를 덜어주고자 일부러 일을 만들어 하던 풍습들이 새삼스러워진다. 이를테면 쌀 방아를 찧어 담을 때 일부러 쌀 한 말당 탈곡되지 않은 뉘 한줌씩을 주워담는 관습이 있었다. 밥짓기 전에 뉘 가리는 일을 함으로써 여가를 소멸하기 위한 지혜였던 것이다. 일하지 않고 먹고 살기를 바라는 통념에 따끔한 교훈이 되는 도서기관의 뼈저린 체험이기도 하다.
25. 3D 기피현상
세상 살아가면서 궂은 일(Dirty)도 해야 하고 힘든 일(Difficult)도 해야 하며, 또 위태로운 일(Dangerous)도 해야 한다. 이 3D현상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치열한 인생 경주의 시발점에 달려갈 트랙을 배정받는다.
그래서 이 3D현상을 극복하는 성인식(成人式)이 꽤나 발달했었다. 이 시련을 거치지 않으면 나이 들어도 반말을 들어야 하고 품을 팔더라도 반품 밖에 받지 못했으며 결혼 대상에서 소외당해야만 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시련 방식은 달랐다. 이를테면 나무에 올려놓고 가지를 쥐고 몸을 늘어뜨리게 한다. 그러고서 한 손을 번갈아 놓게 하고서 바짓가랑이를 잡아 끌어 반나신이 되게 한다. 이렇게 위험하고 힘들며 창피스러운 고비를 넘김으로써 성인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 해도 이 3D로 시작된다. 정월 대보름날 '아홉치레'가 그것이다. 이날, 나무도 아홉 짐을 하고 새끼고 아홉 발을 꼬며 빨래도 아홉 가지, 삼도 아홉 바구니를 삼는다. 매도 아홉 번 맞고 심부름도 아홉 번 한다. 이렇게 아홉 치례로 고되게 한 해를 시작함으로써 한 해의 일이 수월해지고 따라서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것이다.
동서와 시누이가 짜고 시집온 새 며느리를 골탕먹이는 의식도 같은 맥락이다. 깊은 오줌 항아리에 호미를 담가놓고 그것을 꺼내 오라고 시킨다든지, 귀신이 득실거리는 상여집에 신발을 숨겨놓고 야반에 혼자 가서 찾아오라고 시킨다든지...., 또 갓 농사일을 시작한 애숭이는 소매(인분) 퍼다가 거름 주는 일, 외양간이나 돼지우리 치우는 일, 묵정밭의 돌 골라내는 일 등, 궂고 힘들고 어려운 일 3년을 해야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이렇게 궂고 치사하고 위태로우며 고된 일을 겪음으로써 닥쳐올 인생의 고난에 패배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정신적 기틀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반드시 모유로 아기를 기르는 것이 법통이 돼 있는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제들은, 소년의 어느 한 시기를 가난한 농가에 의탁해 기름으로서 3D를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이 가풍이 돼 있다 한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거의가 핵가족화의 진행으로 역(逆) 3D의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리고 공부만 잘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면죄, 면책되는 역시 역3D의 무균(無菌) 상태에서 뼈가 굵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내던져진 세상은 궂고 힘들고 험한 일 투성이다. 한데 그걸 감내할 기틀이며 역량이 없다.
열매가 잘 열리는 나무는,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메마른 땅과 돌무더기와 그리고 벌레나 세균과 싸우는 뿌리가 무성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의 나무도 바로 그 고난과 싸우는 뿌리가 성쇠를 가름한다. 젊은이들에게 팽배돼 가는 3D 기피현상은 바로 그 뿌리가 죽어간다는 말이다. 시름시름 시드는 그 나무를 보고도 속수무책인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26.게으른 사람
손 하나 까딱 않고 잠만 자는 놈 꼴보기 싫어 누룽지 허리춤에 채워주며 밖에 내보냈다. 배가 고파 누룽지를 꺼내 먹고 싶은데 풀기 귀찮아 못 먹고 있는 참에, 저편에서 갓 쓰고 입을 떡 벌린 자가 걸어오는 지라 배고파서 입을 벌리고 있으려니 하고 허리춤에 있는 누룽지를 풀어주면 절반을 주겠다고 했다. 이에 입벌린 자 가로되, '갓끈이 늘어져 그걸 고쳐 매기 싫어 입을 벌리고 가는 길이오' 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놀기 좋아하는 열자(列子)가 역시 놀기 좋아하는 호구자(壺丘子)를 만나 너는 뭘 하고 노는 게 제일 즐겁느냐고 물었다. '물어보나마나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거워 죽겠는걸.' 게으름을 무위(無爲)라는 철학으로까지 승화시키고 있다.
서양에서도 에피크로스 이래 게으름의 사상은 유구하다. 공산주의의 아버지 마르크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는 <게으름의 권리>라는 저서에서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사회는 궁극적으로 노동을 신성시하는 도그마 때문에 붕괴하고 말 것이라고 예언, 게으름의 권리 선언을 하고 있다.
게으름의 찬양자로 버트런드 러셀을 뺄 수 없다. 그는 <나태 예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하루 8 시간 노동해서 핀을 만든 사람들이 있다. 기술의 발달로 같은 인원수로 두 배의 핀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모두가 8 시간 노동을 그만두고 4 시간 노동을 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노는 것을 부덕시하여 8 시간 노동을 지속한다. 그럼으로써 절반은 실직이 불가피하게 되고 경제 혼란이 이로부터 야기된다.'
프로이트의 제자인 빌헬름 라이히는 그의 스승이 성적 원망(性的願望)이 인간 본연의 것인데도 사회적, 도덕적으로 억압받고 있듯이 나태 원망(願望)도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하고, 먹고 입고 살게만 되면 게으르게 된다 했다.
옛날 베짱이는 눈보라치는 날 개미집 앞에서 내쫓겨 처량해졌지만, 현대의 베짱이는 아들개미 딸개미에 환대되어 깡깡이 켜고 디스코 추고 호강하며 겨울을 난다. 이렇게 하여 근면하던 개미 일가는 몰락하고 만다. 개미집처럼 먹고 입고 살 만큼만 가지면 나태 원망이 발로된다.
상공회의소가 엊그제 발표한 한국인의 근로의식을 보면 71 퍼센트가 돈 덜 벌더라도 놀고 싶다 했고, 그 비율이 10 년 전보다 무려 36 퍼센트가 증가하고 있다.
그에 걸맞게 과소비가 급증하고 있고......바로 나태 원망이 국가적 차원에서 발로하기 시작했다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
북풍한설 막지 못하고 누더기 이불 둘러쓰고 있는 개미집이 자꾸만 연상되는 것이다.
27.여가 개발사
남새밭에는 며느리풀이라는 잡초가 있게 마련이었다. 특정의 잡초 이름이 아니다. 며느리로 하여금 풀밭을 매게 하기 위해 시어머니가 손대지 않고 남겨둔 일정 영역의 잡초를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흔히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부려먹고 구박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며느리풀을 남겨둔다고 하나 그건 오해다. 사시사철 울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 며느리에게 할 일이 없다는 것처럼 고통은 없다. 사르트르가 '출구 없는 방(房)'에서 보여주었듯이 할 일이 없다는 것은 가혹한 고문(拷問)인 것이다. 이 고문을 덜어주려 할 일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남겨두는 시어머니의 자비(慈悲)요 배려가 며느리풀인 것이다.
쌀방아를 찧고, 찧은 알곡을 말로 되어 담을 때 시어머니는 한 말당 탈곡되지 않은 뉘 한줌씩을 섞어 담은 습속도 같은 맥락이다. 며느리에게 여가가 생기는 족족 뒤주에서 밥쌀을 퍼다가 뉘를 가리게 함으로써 할 일이 없다는 고통스런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대학(大學)'에 군자는 혼자 있을 때 근신을 하는데 , 소인은 한가하기만 하면 불선(不善)을 저지른다는 대목이 있다. 먹고사는 데 눈코 뜰 새 없는 단계에서는 잠시의 여가도 값지고 소중하지만, 여가가 잦고 길어지면 그 여가가 고통스러워지는 법이요 자칫하면 불선으로 빠지기가 쉽다.
미국에는 복지정책의 발달로 일하지 않고서 실직수당만으로 가늘게 살려는 인구가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던데 남아도는 여가를 처리 못해 적지 않게 마약에 빠지고 있다 한다. 너무 심심하여 하루는 지하철 구내에서 자보고, 하루는 쓰레기통에서 자보고, 하루는 유치장에서 자보고 싶어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는 족속까지 생겨나고 있다.
가전제품의 발달과 핵가족화의 진행으로 가정에서 여가가 급증하고 있으며, 그 여가 급증으로 야기되는 가정. 사회문제도 적지 않다. 며느리풀이나 뉘가리의 옛 지혜가 새삼스러울 정도다.
그래서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가기 처지나 개성에 맞게 여가를 선용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조언하는 '여가개발사(餘暇開發士)'라는 새 직종이 정식 법적 직종(職種)으로 올라 선망받는 직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다. 일본에서도 여가개발사를 양성, 시험을 거쳐 자격을 주기로 하고 각 기업체에서 앞다투어 공부를 시키고 있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며느리풀이나 뉘가리의 지혜가 복고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케 해주는 것이다.
28 여가로부터 탈주
한두 해가 늦다 할 만큼 빨리 변하는 세상인지라 15년 전이면 옛날 일인지 모른다. 여행 중 시카고에서 '내일의 부엌 살림전'이라는 살림에 침투된 전자기계 전람회를 구경한 일이 있다. 부엌에 소형 텔레비전 수상기가 놓여 있다. 스위치만 틀면 갓난아기 방이 비쳐 아이가 울고 있는지, 놀고 있는지, 잠을 자는지 확인할 수가 있다. 텔레비전 곁에 전화기도 한 대 놓여 있는데 버튼을 눌러 놓으면 외부에 나가서 전화로 빵도 굽고 커피도 끓이며 커튼도 걷고 전등도 켜고 끌 수 있게 돼 있다. 뿐만 아니라 증폭기가 붙어 있어 전화가 걸려오면 수화기를 들지 않고도 통화를 할 수가 있다. 밀가루 반죽을 하면서, 또 설겆이를 하면서 통화가 가능하다.
이것을 보고서 사주팔자 좋아 명만 길면 별난 세상을 다 살아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한데 굳이 사주팔자가 좋지 않더라도 이 희한한 세상을 미구에 살 수 있을 것 같다. 정부는 집에서 사무를 보고 빈 집에 전화로써 밥을 짓고 소등도 할 수 있는 꿈의 통신망(ISDN)을 추진, 우선 제주도 지역에 85년부터 88년까지 그 시범 단지를 조성키로 하고 세부 계획을 짜고 있다 한다. 이것이 되면 모든 살림을 자동으로 하는 홈 오토메이션 시대가 개막되는 것이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선진국에서도 그 편리보다 그 부작용 때문에 홈 오토메시션이 주춤하고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그렇게 갈망했던 자유를 얻은 독일 사람들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치스에게 그 자유를 넘겨 주었던 역사적 사실을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탈주>에서 적고 있는데, 전자화, 기계화에 따른 홈 오토메이션의 진행으로 얻어낸 '여가'도 그 자유와 매한가지 신세인 것이다. 곧 여가가 늘면 상대적으로 주부의 존재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인류가 생긴 아래 유지돼 내려온 이 주부의 존재 가치를 이 전자 제품이 대행하게 되면서 '아내 무용론(無用論)'이 대두되고, 별거주의, 독신주의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나며, 따라서 아내들은 불안해지고 우울해진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여가를 오히려 반납하는 '여가로부터의 탈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다. 연전 미국의 한 대(大)메이커가 물만 부으면 맛있는 케이크가 되는 인스턴트 식품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는데 전혀 팔리지 않아 원인을 조사 했더니,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물만 부으면 된다는 캐치 프레이즈에 불안을 느낀 때문으로 조사되었다 한다. 곧 주부의 존재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홈 오토메이션은 제한 받을 수 밖에 없는 숙명에 놓여 있는 것이다.
29.조롱(鳥籠) 인간
중국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고향 떠나 사는 한 상인이 닭장만한 조롱을 지어 놓고 많은 고향 새를 기르고 있었다. 그 집 장성한 아들이 새 밥을 줄 때마다 놀고 먹는 이 새들을 부러워하고 밤낮 일만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던 것 같다.
이에 아버지는 아들놈이 밥 주러 들어간 틈을 타서 조롱 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고 끼니때마다 진수성찬을 들여주면서 편히 쉬라고 했다. 하루가 지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사흘이 가니 발광을 하더니, 이레가 가니 죽을 수 있게 칼 한 자루 넣어 달라고 간청을 하더라는 것이다.
임어당(林語當)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공할 상황이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상황임을 이 `조롱인간(鳥籠人間)'으로 비유하고 있다. 하루종일 먹이를 찾아 나르는 개미를 일할 수 없는 일정 공간 안에 넣어두고 생존에 필요한 먹이만 적시에 주었더니 닷새만에 스스로의 발을 자르는 자학(自虐) 행위가, 1 주일만에 상대방의 몸을 해치는 타학(他虐)행위가 시작되었다는 관찰보고도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플라스티에는 그의 저서 `4만시간'에서 20세기 말이 되면 인생 60만 시간 중 노동 시간은 4만 시간에 불과하게 될 것이며 나머지 56만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문명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1950년에 프랑스 사람들이 총수입에서 여가에 지출하는 비율이 10%인데, 1989년 곧 금년에는 25%로 상승하고 20세기가 끝날 때는 활동 시간의 10%만 일하고 90%는 여가로 남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만약 이 여가를 슬기롭게 쓸 수 있는 노력없이는 `조롱인간'이나 일을 빼앗긴 개미꼴인 `여가(餘暇) 아노미 현상(現象)'이 필연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데 이 플라스티에의 예측보다 그 여가 위기가 한결 앞당겨 다가오고 있다. 가사 노동에 집약시켜 보아 보자. 가전 제품의 발달로 가사의 대종인 취사-세탁-청소로부터 대폭적 여가를 얻어 냈다.
한데 컴퓨터의 도입으로 외출 중에도 버튼만 눌러서 가전 제품을 원격 조종하고, 모든 가사를 점검할 수 있게 된 오토 홈(自動家事) 장치가 우리 나라에 갑자기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여가의 홍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여가의 공포를 예방하고자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일부러 만들어 하는 습속이 꽤 발달돼 있었다. 이를테면 쌀뒤주에 탈곡되지 않은 뉘를 한말당 한줌씩 섞어 뉘가리는 시간을 여가로부터 구제해 준다든지 .
여가를 벌어주는 생활 문화의 발전은 그 여가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여가 문화의 발전이 수반되지 않고는 `조롱인간'을 양산하는 위기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30. 컴퓨터 장보기
지금 여기 두 송이의 패랭이 꽃이 있다. 똑같은 꽃송이지만 그 한 송이는 꽃집에서 사온 꽃이요 다른 한 송이는 손수 물을 주고 볕을 쪼이고 잎을 닦아주며 애지중지 기른 꽃이다. 어느 꽃이 보다 소중하고 정이 가며, 보다 곱고 보다 아끼고 싶은가는 자명한 노릇이다. 눈에 보이는 결과는 다를 바 없지만 그 과정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그 꽃에 부가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그렇게 다르다.
이 보이지 않는 과정의 즐거움을 데이비드 크라인교수는 `프로세스 알파'란 말로 개념화하고 있다. 프로세스 알파에 꼭 들어맞는 우리말도 있다. `손 덤'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손을 씀으로써만 얻어지는 덤의 즐거움이란 뜻일 게다. 가급적 과정일랑 생략하고 결과를 빨리 얻는 것이 선(善)이라는 현대는 손덤 상실 시대랄 수 있다. 사랑도 그렇다. 그 여인 때문에 편지도 썼다 찢길 여러 번 하고 프러포즈했다가 면박도 당해 보고, 그러고는 달보고 한숨도 쉬어 보고 하는 과정주의 사랑과 프러포즈 하기 바쁘게 난짝 목에 메어달리는 결과주의 사랑과는 그 사랑의 질(質)은 천양지차이다.
편리할수록 좋고 간단할수록 가치가 있으며 빨리 얻어질수록 선(善)이라는 현대인은 너나할 것 없이 결과주의라는 폭군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사고나 행동도 단락적(段落的)이고 유치화하며 무능인간으로 퇴화일로에 있다고 크라인 박사가 경고하고 있다.
더욱이 결과주의의 최첨단 이기(利器)인 계산기 컴퓨터의 등장으로 인간의 분석-종합-판단-창조-심미(審美)같은 사고나 정서 능력까지도 앗아가 버렸다. 선진국들에서는 `테크노 의존증(依存症)'이라 하여 극도의 결과 의존과 과정 미숙으로 불안-분열-조울증이 나타나고, 이는 과정이 소중한 인간 관계를 결과로만 처리하기에 부부 사이의 이혼-가출을 유발하는 현대병인 것이다. 우리 나라도 안방에 앉아서 컴퓨터를 조작하여 장도 보고 쇼핑도 하게 됐다는 소식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 무섭게 증발해가는 손덤의 즐거움을 실감케 해준다.
쇼핑은 필요한 물건을 입수한다는 결과가 전부는 아닌 것이다. 오고가는 재미도 있고 이 물건 저 물건 견주어 보고 헤아려도 보고 사고 싶은데 못 사는 미련도 가져 보고 깎아도 보고 덤도 얻어 보고... 프로세스 알파가 굉장히 많은 생활의 양식인 것이다. 그런 걸 모두 포기하고 상실하고 무슨 재미로 세상 살려고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31.먹고 놀자판 사회
흥부가 스물 넷 자식놈들의 `오매밥... 오매밥..'하는 빈곤합창(貧困合唱)에 견디다 못해 놀부 집에 양식 얻으러 가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양식을 얻기는커녕 걷지도 못하게 얻어맞고 개처럼 네 발로 기어 들어오는 것을 흥부 마누라가 동구 밖에서 마중한다. `몹쓸레라 몹쓸레라 시아주비도 몹쓸레라. 시아주비 집에 다시 가지마사이다. 내가 걷어 부치고 주식(酒食) 장수라도 할테이니...' 마누라 술 밥장수 한다는 말을 듣고 흥부 엉덩방아를 찧으며 자네 그게 웬말인가를 다섯 번이나 외친다. `죽으면 그저 앉아 죽지 자네 시켜 술 팔겠나. 그런 말 다시 말게 다시 말게..'
전통 사회에서 술이나 밥을 판다는 직업은 죽지 못해 마지막 하는 직업이다. 그러기에 한국에서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제일 가난하다는 흥부마저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찌할 수 없이 술집을 냈을 경우도 얼굴을 내지 않고 신원이나 신분을 숨겨 장사하는 내외(內外) 술집이 서울 장안에 많았다. 손님이 문간에 와서 술을 청하면 주인은 안방에 앉아서 `손님께서 거기 있는 자리를 깔고 계시라고 여쭈어라'하면 `술상 내보내라고 여쭈어라'한다. 주인은 안방 문전에 술상을 밀어 내놓는다. 물론 가공의 심부름꾼을 두고 면대 없이 술상이며 술 주전자가 들고난다. `술값이 얼마냐고 여쭈어 보아라' 하고 술상에 돈을 놓고 나가면 방안에 앉아서 `다음에 또 들르시라고 여쭈어라'한다. 술, 밥 파는 장사에 대한 기피가 손목만 들락들락하는 세상에도 이상한 술장수를 있게 한 것이다.
외식유흥(外食遊興)을 부덕시했던 유교 윤리가 유흥업을 사회 인식 속에서 이렇게까지 비 가치화했던 것이다. 한데 지금은 도시건 지방이건 도심이건 변두리 건 눈에 뛰었다하면 밥집, 밥집 위에 찻집, 밥집 아래 술집, 온통 먹고 마시고 는 업소뿐이다. 유흥 극소화의 전통이 근대화 과정에서 유흥 극대화로 반동(反動)을 한 것일까.
먹고 마시고 노는 유흥업소가 서울에만도 11만 곳이 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10년 사이에 배가 되었다 하니 비상한 상승이다. 한 업소에 하루 세끼 도합 최저 50명 손님을 받지 않고서야 수지가 맞을 리 없을 것으로 어림하면 11만 업소에 드나드는 손님은 5백여 만 명이 된다. 유동인구를 합쳐서 서울 사람의 절반이 하루 한 번씩 드나든다는 것이 된다. 좁은 국토에 이 많은 인구가 수천 년 살아 올 수 있었다는 가장 큰 덕목으로 검약(儉約)을 드는데 이 역사의 생명선이 뭣인가 크게 잘못되고 있음을 감지케 하는 사회 단면이다. 당국에서는 이 먹고 놀자판의 유흥업소 허가를 중단키로 했다던데, 사또 지나간 뒤 나팔분 격이다.
32.일하는 삶
어떤 사람이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한 주간 동안의 휴가를 얻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 조그만 집을 하나 빌려 쉬게 되었습니다.
복잡하고 공해 심한 도시를 떠나 처음 하루 이틀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가슴이 시원할 정도로 많은 공기를 마음껏 마십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들어 시간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열 시간 이상 잠잘 수가 있습니다. 문만 열면 아름다운 대자연을 만끽하며 도취해 버립니다. 전화가 걸려올 필요도 없습니다. 신문도 배달되지 않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늘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니 잠을 잘 수가 없이 되고 마음에 동요가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숲 속을 걸으며 산책을 하였습니다. 그는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외로운 생각까지 들고 고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그의 세계를 즐기라고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세계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동안 끊임없이 하나님이 재창조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33.풍부로 가는 길
몇 해 전 북부 아프리카에서는 한때 거대한 도시였던 곳의 발굴작업이 벌어졌습니다. 그 도시의 이름은 렙티스 마그나로,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가 태어난 곳이었습니다. 한때 그곳은 아프리카 해안에 위치한 로마제국의 중요한 중심지였고, 갤리선(옛 그리스·로마의 군함으로 노예나 죄수들이 노를 저은 돛배)이 원근의 여러 항구로 출발하는 항구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도시에는 지상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파멸의 원인은 화재나 홍수, 지진 등의 재난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침략당하거나 전쟁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항구가 침적토에 의해서 메워져서 외국과의 무역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무역이 불가능해지자 조금씩 조금씩 그 도시의 주민들이 떠나갔고. 해가 지남에 따라 사막에서 흘러 들어온 모래가 그 도시를 덮어서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그 도시와 비슷한 인간의 영혼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상상력과 공감의 문이 막혀 버린다면. 그래서 하나님께 우리에게 관계를 맺게 하셨던 사람들의 필요와 더 이상 생동감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점차적으로 건조하고 황폐한 사막의 모래가 흘러 들어와서 한때는 우리 것이었던 고귀함을 묻어 버릴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항구가 바다를 향해 열려 있을 때에만. 오직 우리의 욕망의 선박들이 우리 자신의 관심사들에만 닻을 내리지 않고 인생처럼 넓은 곳으로 모험을 떠날 때에만이 우리는 풍부한 인생을 이어 받을 수 있습니다.
34.일과 즐거운 삶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못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굶기라는 말은 아니다. 노약자나 환자, 실업자나 죄수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므로, 이들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는데도 일을 하지 않는 사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애를 쓰지 않는 사람은 먹을 자격도 없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은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될 뿐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짐승들의 생존은 본능이나 보호색 등 주로 자연적인 것에 의하여 유지되지만, 사람의 생존은 사람 자신이 의식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할 때에 유지될 수 있다. 사람은 나무와 풀에 저절로 열리는 열매를 따 먹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굴을 파고 사는 것이 아니라, 연장을 사용하여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며, 기후와 환경에 맞추어 옷을 입고 집을 짓고 사는 것이다.
사람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더 맛있게 먹고, 더 멋있게 입으며, 더 안락하고 편리하게 살기 위하여 계속해서 연구하고 실험함으로써 더 많은 지식을 얻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 나아가, 사람은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학문 활동을 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하여 즐기기도 하며, 서로의 관계를 조정하여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하기도 한다. 사람의 이런 활동들은 모두 넓은 의미의 문화 활동이다. 문화 활동이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을 사람이 의식적으로 변형시키거나, 전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을 일컫는다. 이런 의식적인 변형이나 창조는, 일을 하는 활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 사람에 의하여 이룩된 문화는 사람에게 다시 영향을 끼친다. 한국 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한국인이 되고, 일본 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자란 사람은 일본인이 된다. 사람의 혈통과 얼굴 생김이 그 사람의 어떠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받은 문화적 영향이 그의 정신 세계를 형성하고, 그 사람의 인격적 특성을 결정한다. 사람만이 일을 통하여 문화를 창조하고, 사람 자신이 창조한 문화에 의하여 사상과 인격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일을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사람은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우리의 몸은 움직여야 건강하고, 우리의 두뇌는 써야 민첩해진다. 태아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박동하는 심장도, 운동을 하여 더 많이 뛰게 하면 더욱 튼튼해진다고 한다. 과로하지 않는 한, 우리 몸의 모든 기관과 두뇌는 사용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튼튼해지고 민첩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중요한 일을 귀찮아하고, 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일을 노동이라 하기도 한다. 우리말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언어에서, 일이란 말은 괴롭고 힘드는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을 뜻하는 프랑스어 트라바이란 말은 '세 마리의 말'이란 뜻을 가진 라틴 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세 마리의 말을 한데 묶는 것만큼 힘들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독일어의 '아르바이트'란 말도 '갈아 놓은 밭'이란 뜻을 가진 라틴 어에서 유래된 것인데, 이 말 역시 일이란 힘들고 괴로운 것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일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괴롭게 생각하고 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 왜 괴롭고 싫은지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물리적인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이 괴로운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친구들과 어울려 공놀이를 하는 것이 이웃집에 심부름을 가는 것보다 힘이 더 들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공놀이를 하는 것이 심부름을 가는 것보다 더 괴롭거나 싫은 것은 아니다. 공놀이가 오히려 몸을 많이 움직이고 정신 집중이 더 필요한데도 공놀이가 심부름보다 즐거운 것이다.
일이 괴로운 이유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제도에서 찾으려 하였다. 자본주의 생산 체제에서는 일의 대가가 일하는 사람에게 모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생산 수단을 가진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분업이 불가피하게 되므로, 일이 단조로워지고 괴로워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모든 사람들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일은 역시 괴로운 것이며, 분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농사일도 괴롭고 하기 싫은 것은 매한가지다. 성경에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괴롭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벌을 받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설명일 뿐, 과학적 사고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일의 괴로움은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은 놀이와 대조된다. 심부름을 가는 것은 비록 힘이 적게 들더라도 그것은 일이고, 공놀이를 하는 것은 아무리 많은 힘이 들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놀이다. 놀이도 일 못지않게 심각할 수 있고, 많은 생각과 물리적인 힘을 요구하며, 문화 창조에도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하지만, 놀이는 그 목적이 놀이 그 자체이 있으므로, 그 밖의 아무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은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서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차는 것은 놀이지만, 돈을 받기 위하여 공을 차는 것은 일이다. 다 같이 몸을 움직이고 생각도 골똘히 하지만,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하나는 놀이여서 재미있고, 다른 하나는 일이라서 괴로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일생 동안 어떤 종류의 일이든 해야 하고, 또 일을 함으로써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일들이 괴롭고 하기 싫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이 가진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다. 일이 놀이처럼 즐거웠다면, 인간의 삶과 문화는 지금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무도 일을 놀이하듯 그렇게 즐겁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좀더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사람 자체가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고, 일을 함으로써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때문에, 마땅히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일의 괴로움을 어느 정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일의 결과보다는 일 그 자체에서의 의의를 발견하게 되므로, 일을 놀이하는 것과 같이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다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불량 식품을 만들거나 화학 무기를 생산하는 것도 일이긴 하지만, 이런 일은 결과적으로 일하는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 그리고 모든 일이 다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불쌍한 사람을 돕기 위한 일은 그보다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일에서 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을 택하고,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고상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요, 일의 괴로움도 한결 더 덜어 줄 것이다.
우리는 깨어 있고 긴장되어 있는 시간, 즉 하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낸다. 그런데 이 시간을 괴롭고 의미 없게 보낸다면, 우리의 일생이 괴롭고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은, 일이 아무리 괴롭고 가치 없는 것일지라도 그 일을 통하여 돈만 많이 벌면, 그 돈으로 즐겁고 뜻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옳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못하다. 삶의 덜 중요한 시간, 즉 일하지 않는 시간을 즐겁고 뜻 있게 보내기 위하여 삶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가치 없는 일을 괴롭게 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을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하는 시간을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야 뜻 있고 행복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의의를 가지고 즐겁게 일할 때, 그 일은 능률적이 될 것이요,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사람 자체가 본래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고, 일을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면, 재미가 있고 의미 있게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가치 있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35.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
인간이 하는 일에 하나님의 일이 있고 세상에 속한 일이 있다.
하나님의 일을 가룩 하고 세상적인 일은 저속한 것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런 연고로 사람들은 가치로운 일, 즉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특히 종교인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지니고 있다.
불제자로 자부하는 사람들이 가정을 버리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것이나, 크리스챤이라는 사람들이 일상의 삶을 포기하고 수도사가 되거나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자기의 삶 전체를 자기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다못해 그들의 종교의 전당을 위하여 봉사하거나 그 종교의 지도자들이 원하는 것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했다는 자위를 얻는다.
한국의 일부 몰지각한 부흥사들의 외침을 한 번 보자.
사람으로 태어나서 썩어질 세상의 일만 하다가 하나님 앞에서는 날 저주받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까짓 매일 해야 표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집안 살림하느라 허송세월 하지말고 전도하고 심방하고 기도하고 성경 공부하는 것에 전심전력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당신들을 사랑하시겠는가? 당신들이 키우는 아이들도 썩은 세상일 하도록 하지말고 하나님의 종을 만들어야 신자로서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라고 그들은 입에 거품을 문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이 하나님의 일이냐 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 때 구원 얻는 사람과 구원 얻지 못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때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24:40-41)
이것이 사실이라면 외형상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도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했고 다른 사람은 썩어질 세속적인 일을 한 것이 분명하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인간에게 두 가지 큰 사명을 주셨다.
하나는, "엿세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는 사명이다.
다음은, "안식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라"는 사명이다.
따라서 신앙적인 자세로 엿세 동안 열심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그것이야말로 거룩한 하나님의 명령을 완수하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가정 주부가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인 줄 알고 보다 건전한 가정을 꾸미려고 노력하며 그 가정에서 보다 바람직한 인격자가 배출되도록 힘쓴다면, 하나님의 일의 가치가 분명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외형적인 것이 아니고 특정한 직책에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바르게 신앙적 자세를 지니고 수행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다 주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했다. 무엇을 위해 행하느냐하는 동기가 상당히 중요함을 말할 수 있다.
교회에서 일한다고 해도 그 동기를 보면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분명 나뉘어 진다.
36.향기 나는 직업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 나는 직업은 무엇일까요? 제가 아는 분 중 한 분은 꽃가게를 하십니다. 꽃을 파는 일은 참 향기 나는 직업입니다. 하루종일 꽃향기에 파묻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요?
또 어느 분은 작은 서점을 하십니다. 책을 파는 일 또한 하루종일 책속에서 생활을 하니 얼마나 좋을까요. 보고 싶은 책 마음대로 볼 수 있고 책을 파는 일 자체가 참 좋은 일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저도 꽃가게나 서점을 하고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꽃가게를 하시는분께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꽃향기를 계속 맡으면 머리가 아프다나요. 그리고 꽃만 다듬어서 팔기 때문에 그 줄기하며 부패한 잎 등을 처리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랍니다. 화분을 팔기도 하는데 가장 싫어하는 지렁이가 부식토 속에서 기어나오는것이 너무 무섭고 새벽 3시면 일어나야 꽃시장에 가서 꽃을 사올 수 있다나요...
서점을 하는 친구에게도 그런 말을 했더니,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서점일일거라 합니다. 책을 정리정돈 하는 일이며 안 팔리는 책들을 골라내어 반품 처리하는 일 등등 대안 없는 막노동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내가 모르는 일 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내가 잘 아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 나는 직업은 바로 지금 내가 하고있는 일입니다. ⓒ최용우
37.노동과 투자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에 오랫동안 다니면서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저랑 나이가 동갑인 성실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주식투자를 하게 되었습니다. 뭘 알아서라기 보다는 너나나나 할 것 없이 다 한다기에 빠질 수가 없어서 한번 해 본 것입니다.
첫 번 투자에 일주일만에 한달 월급액수만큼 벌었습니다. 그러자 있는 돈 다 털어 주식을 사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회사도 사직하고 매일 증권회사 객장으로 출근을 합니다. 한나절에 한달 월급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한다나요. 전광판을 보고 있으면 돈이 막 몰려 다니는 환상이 보인답니다. 운만 좋으면 며칠만에 1년 월급을 벌기도 하는데, 공장에서 죽어라고 일만 하는 사람들이 바보처럼 생각된답니다. 지금은 큰 부자가 되려면 일을 해서는 불가능하고 있는돈을 요리조리 잘 굴려야 부자가 되는 시대라네요.
땀을 흘려서 돈을 버는 사람은 바보가 되고, 요리조리 재태크를 잘해야 현명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시대라니...정말 그렇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 친구는 주식값이 떨어져서 투자한 돈의 십분의 일도 안 남았다고 코가 석자나 빠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투자전략을 잘 못해서라며 여전히 직장에 복귀할 생각을 안 하고 있습니다.
요즘의 신문들을 유심히 살펴 봤더니 신문마다 예외없이 '돈'이름이 들어간 섹션을 발행하고 있고 증권기사를 가장 비중있게 다루고 있더군요. 참 혼란스러운 세상입니다. ⓒ최용우
38. 4D를 기피하는 이유
지금까지는 더럽고(dirty) 힘들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이른바 '생산직' 3D업종에 구인난이 심했으나 요즘엔 여기에 먼 거리(distant)까지 추가해 4D 기피 업종 시대가 됐다는 것입니다.
생산직 근로자로 일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어서 빨리 생산직을 벗어나고 싶고, 자식들에게는 절대로 생산직 노동을 시키지 않겠노라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사무직보다 생산직이 더 하류 직업이라는 그릇된 국민의식과 구조적인 모순 때문입니다. 더욱 강도 높은 일을 하고도 월급이 훨씬 적은 '생산직'보다는 상대적으로 편하고 월급도 많은 사무직을 선호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그래서 최소한 생산직이나 사무직의 보수를 같게 한다든가 생산직의 월급을 월등히 많게 해서 '생산직'에 사람들이 몰리게 해야 됩니다. 제철소나 조선소, 농사, 생산라인에 젊은이들이 없다고 합니다. 농부들의 평균연령이 50살이 넘고, 조선소, 제철소는 평균연령이 45살이 넘는답니다. 우리나라 산업의 허리가 끊긴 셈입니다.
구조조정으로 거리에 나온 실업자와 생활보호대상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많아 최저생계비를 받는 사람은 일을 해봤자 그보다 10 내지 20만원 정도 더 받는 수준이라 구태여 몸 고달프게 생산직에서 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국가가 틀림없습니다. 자본주의는 창의력과 능력 있는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소년소녀 가장, 나 홀로 노인 등 불우한 사람은 도와줄 때 더 발전합니다. 그러나 일자리가 있는데도 기피하는 건강한 사람까지 도와주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용우
39. 빌 게이츠 참 멍청하네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인 빌 게이츠의 재산은 어느 정도 될까요? 가장 많았을때는 800억달러를 육박했었는데, 2002.3월 현재 528억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일본에서 일약 갑부가 되었던 손정의씨는 가장 재산이 많았을 때 785억달러로 빌 게이츠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갔으나 2년새 폭삭 망하여 지금은 고작(?) 15억달러정도의 재산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 -
528억달러는 우리나라 돈으로는 1달러에 1200원씩만 단순계산해도 63조억원입니다. 1년을 사는데 288달러가 필요한 기아 난민 2억 6천만명을 1년동안 먹여 살릴 수 있는 돈입니다. (안 놀래시네?) 매일매일 20억원씩 약 100년 동안 써야 다 쓸 수 있는 돈입니다. @ @
그런 빌 게이츠가 일을 너무 많이 하여 과로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빌게이츠 그 사람 참 멍청한 바보네. 그렇게 돈이 많이 있으면서, 얼마나 더 벌려고 과로로 입원할 정도로 일을 해? 나 같으면 일 안하고 그 돈 은행에 예금해 놓고 날마다 20억원씩 찾아 펑펑 쓰면서 살다가 편하게 죽겠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노동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땀흘리는 기쁨, 수고의 열매를 거두어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종일 힘껏 땀흘려 일하고 난 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저녁 밥상 앞에 앉는 그 행복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빌 게이츠는 많은 재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힘껏 일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니 쓰러질 정도로 일을 하지요. ⓒ최용우
40. 하찮은 일
자신이 하고있는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밥하고 빨래만 하다가 내 인생 꼬부라져 버렸네!"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다가 내 찬란한 청춘 다 곰팡이 나 버렸네"
주부, 노동자, 학생, 조용히 봉사하는 사람들, 특히 시골에서 목회를 하는 분들은 도시에서 휘황찬란한(?) 목회를 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심하게 위축되곤 합니다.
나의 노력을 남이 알아주지 않을 때 나는 나를 하찮은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프란시스 쉐퍼의 <작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책에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하찮은 사람이나 하찮은 장소는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삶 전체를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 하찮은 일로 인하여 한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 하찮은 일을 하면서 잊혀져버린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스가랴4:10) 하고 온 세상을 두루두루 살펴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최용우
41. 보람된 일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시간을, 똑같이 일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무척 힘들어하고 어떤 사람은 너무 재미있어 합니다. 종업원은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힘들다고 하고 주인은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수입이 짭짤하니 재미있다고 할 것입니다.
종업원은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주인은 똑같이 일을 해도 '의무'가 없습니다. 그 힘듦의 차이는 '의무'의 차이입니다. '의무'가 사라지면 일의 괴로움도 사라집니다. '노동은 힘들다'는 말이 '노동은 보람'이라고 바뀔 것입니다.
어떤 경제학자가 말하기를 의무적으로 일하는 현대인들은 이틀이면 할 일을 일주일동안 힘겹게 한다고 진단합니다. 일주일 업무량을 최대한 빨리 해치우고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놀아도 된다는 조건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틀이면 일을 다 끝내고 나머지 5일 동안은 쉴 것이라 합니다.
어짜피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어짜피 해야 할 일이라면 힘들게 하는 것보다 '보람되게' 일하는 것이 좋겠지요? ⓒ최용우
42. 어린이 노동학교
저에게는 꼭 해보고 싶은 이런 작은 꿈이 있습니다.
한적한 시골에 넓은 터를 구해서 '학교'를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학교의 이름은 '흙놀이 꾸러기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아이들에게 절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게 하는 특별한 학교입니다. (와~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 눈이 번쩍!!!!)
월요일에 입학해서 토요일에 졸업을 하는 1주일짜리 단기학교입니다.
학교에서 하는 일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맨발로 흙을 밟으며 일을 합니다. 땅파기, 밭매기, 잡초뽑기, 나무심기, 계절마다, 벼베기, 모내기, 고구마캐기, 마늘쫑뽑기, 흙벽돌만들기 등등 대자연 속에서 흙과 물을 만지며 이마에 땀을 흘리는 노동을 하는 학교입니다.
1주일동안 공부를 해서도 안되고 책을 볼 수도 없고 컴퓨터, 텔레비젼도 금지입니다. 외출도 안되고 집에 전화도 할 수 없고 과자나 간식도 없고 오직 꽁보리밥을 먹고 일만 해야 합니다.
자! 일주일 후에 아이들 입에서 "나 공부 할래요. 공부보다 더 쉬운게 없어요. 제발, 공부하게 해줘요. 나에게 책을 달라...아니면 죽음을..."
하는 절규(?)를 들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음하하하... ⓒ최용우
43. 노동과 고행
우리의 영혼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을 이신득의(以信得義)교리라고 하는데, 우리의 구원은 조건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맞습니다. 맞고요.
맞기는 맞는데, 오해하고 있는 것이 한가지 있어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육체'까지 모두 '구원'을 얻는 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육체의 행위는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개차반 - 별로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육체'는 선정적인 영화 포스터만 봐도 뭐가 불끈 일어서고, 이쁜 여자들만 봐도 눈이 돌아가고, 누가 돈 좀 벌었다고 하면 그것이 옳은 방법인지 그른 방법인지를 따지지 않고 나도 좀 벌자 하면서 투기에 뛰어듭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예수를 믿으니 틀림없이 구원받아 천국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죄가 가득 차 있는 죄 주머니인 육체를 깨끗하게 비우지 않으면 영혼은 구원을 얻었을지 몰라도 '육체'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육체를 비우는 방법으로 '고행(苦行:몸을 힘들게 하는 것)'이 행해졌습니다. 한 때 그 고행이 너무 지나쳐 거부감을 갖게 되었고, 요즘에는 육체의 고행이 '노동'으로 바뀌었습니다.
고행(노동)이 없는 기독교는 속 빈 강정입니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영성'이라는 말을 유행처럼 많이 사용하는데 고행(노동)이 빠진 '영성'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이전에는 영성생활이란 '기도는 노동이다'라는 의미였습니다. ⓒ최용우
44.노동(일)에 관한 성경연구
1. 일해야 하는 이유
1) 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에(창2:5-15)
2) 범죄의 결과이기 때문에(창3:16,17)
3)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출20:9, 마21:28)
4) 내일을 대비하여야 하기 때문에(잠6:6-8)
5) 일할 날이 길지 않기 때문에(시90:10)
2. 노동이 주는 유익
1)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됨(출20:9)
2) 수고에 따른 삯을 받음(레19:13, 잠14:23)
3)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음(시128:2)
4) 노동 후 낙을 누릴 수 있음(전3:13)
5) 사람들의 칭찬을 받음(잠31:31)
6) 잠을 달게 잠(전5:12)
7)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게 됨(전9:9)
8) 빈궁한 자를 구제할 수 있음(행20:35, 엡4:28)
3. 일에 대한 성도의 자세
1) 엿새동안 일하고 주일은 지킬 것(출20:9-11)
2) 즐겨 일할 것(삿5:2)
3) 자원하여 일할 것(느11:2)
4) 실망하지 않도록 수고할 것(전2:20)
5) 힘을 다하여 일할 것(전9:10)
6) 헛된 수고가 되지 않도록 할 것(사49:4)
7) 힘써 수고한 후 주께 나아가 안식할 것(마11:28)
8) 타인의 일을 간섭하지 말 것(마20:12-14)
9) 말은 일에 등한히 말 것(마21:28,29)
10) 능력에 맞게 일할 것(마25:22,23)
11)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 것(요6:27)
12)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할 것(고전16:16)
13)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할 것(엡4:28)
14)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 것(살후3:10)
15) 규모 있게 일할 것(살후3:11)
16) 종요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을 것(살후3:12)
17)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될 것(딤후2:15)
4. 일을 위해 고용된 자의 자세
1) 자기 할 일에 근신할 것(잠22:29)
2) 다른 사람의 보수와 비교하지 말 것(마20:12,13)
3) 정한 보수에 만족할 것(눅3:14)
4) 상전을 공경할 것(딤전6:1)
5. 성도가 쉬지 않고 부지런함으로 해야 할 영적인 일
1) 기도하는 일(삼상7:8, 삼상12:23, 살전5:17)
2) 생명을 얻기 위한 수고(잠10:16)
3) 좋은 상을 얻기 위한 모든 일(전4:9)
4) 구제하는 일(전11:1,2)
5) 영적 파숫군으로서의 직무(사62:6)
6) 그리스도를 닮는 일(요13:14)
7) 말씀을 가르치는 일(행5:42, 행20:31)
8) 전도하는 일(행5:42)
9) 말씀을 상고하는 일(행17:11)
10) 위로하는 일(고후7:7, 살전4:18)
11) 성령을 좇아 행하는 일(골1:29)
12) 감사하는 일(살전2:13)
13) 권면하는 일(딛1:8, 딛2:6, 딛2:15)
14) 봉사하는 일(벧전4:10,11)
15) 찬송하는 일(계4:8)
6. 영적 수고의 결과
1) 복음이 전파됨(살전2:9)
2) 상급을 받음(눅6:35)
3) 영생에 이름(잠10:16)
4) 장차 수고를 그치고 영원히 안식함(계14:13)
45. 일의 축제
인간과 일터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일은 멍에가 아니라 선물이며 축제다.
미국의 교육가 버틀러(1862 ∼1947)는 일에 관해 세 부류의 사람을 말했다.
첫 번째는 일을 창조하는 소수의 사람들.이들은 개인의 일 차원을 떠나 공동체를 바 꾼다.
두 번째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방관하고 기피하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생각조차 안 하는 수많은 사람들.나는 과연 어떤 부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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