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서치라이트
어느 목회자가 목회의 한계를 느껴 인생방향을 바꾸는 문제로 고민하며 기도했다.
"주님, 저는 초조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나는 당신이 어느 길로 이끄시든지 상관없습니다.
다만 당신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저녁, 그가 교회를 향해 차를 몰고 가고 있을 때 새로 백화점의 개관을 알리는 커다란 서치라이트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5년, 10년, 가능하면 15년 동안 살면서 해야할 일을 보여 주시기를 원했다. 나는 하나님이 서치라이트를 들고 내 인생의 장기적인 계획을 보여 주시기를 바랐다."
그 순간 그는 마음속에 말씀하고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존, 나는 너의 길을 안내해 줄 등불을 약속했지 인생의 과정 전체를 드러내 줄 광선을 약속하지는 않았다. 나의 등불은 네가 넘어지지 않게 지켜줄 것이며 네가 나를 따르는데 필요한 것은 그것 뿐이다.'
그는 교회에서 한 구획 떨어진 모퉁이를 돌면서 순종의 기도를 드렸다. 방황의 시간이 끝나고 있었다.
2.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국이 낳은 청교도 신앙가 존 번연 목사님이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혔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옥사장이 번연 목사님께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셔서 사모님과 식구들을 잠깐 뵙고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목사님이 되돌아오기에 왜 오셨냐고 묻는 옥사장에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호의는 고마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이 나라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 목사님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때 옥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언제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까 목사님의 마음에 비쳐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사는 데 있어서 결코 내 고집이나 방법대로 생활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생활하십시오. 양심에 비쳐오는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심에 비쳐오는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행동하십시오.
/ 선병문
* 기도: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내가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읽을 때에 밝게 깨닫게 하소서. 또한 깨달은 말씀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지도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하셔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용되게 하소서.
3. 링컨 대통령의 아들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북군의 한 병사가 그의 형과 아버지를 전쟁중에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돕기 위해 군복무를 면제받으려고 하였습니다. 백악관에 가서 대통령을 만나기를 요청했지만 문 앞에서 거절당했습니다. 그가 낙심하여 백악관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는데 한 어린 소년이 그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군인 아저씨 왜 그렇게 슬퍼 보이세요? 뭐가 잘못되었나요?"
그는 이 어린 소년에게 자기의 마음과 사정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어린 소년은 그 병사의 손을 잡고 거침없이 보초병들이 있는 곳을 지나고 대통령의 집무실에 이르더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링컨 대통령이 국무장관과 함께 전쟁 계획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이 군인 아저씨가 아빠께 드릴 말씀이 있대요"
그는 자신의 사정을 대통령에게 얘기하고 군복무 면제를 받고 고향 농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문제를 만났을 때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고백하기만 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손을 잡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4. 끝까지 인도하소서
본문: 히3:14 * 찬송: 431장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우리는 몽블랑 기슭의 샤모니 마을에 있었다. 그런데 어제 아주 슬픈 일이 일어났었다. 한 젊은 의사가 몽블랑 정상을 정복하고자 하여 마침내 그는 성공한 것이다. 그리하여 조금만 마을은 그를 축하하느라 불빛이 밝게 빛났으며 산꼭대기에는 그의 승리를 알리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캠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을 오른 후, 내려오던 중에 안내자로부터 벗어나 혼자 내려가기를 원했다. 로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혼자 가기를 주장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안내인은 극구 만류했지만, 기어이 그는 로프에 대한 싫증을 느끼고 자유로워지기를 선언했다. 마침내 안내인은 포기하고 말았다. 얼마 가지 않아서 젊은 의사는 발이 얼음에서 미끌어졌는데, 얼음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자신을 막을 길이 없었다. 로프가 없었으므로 안내인이 그를 붙잡아서 다시 끌어당길 수도 없었다. 바랑 밑의 얼음 위에는 그 젊은 의사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종이 울리고 마을 전체가 그의 성공을 축하하며 기뻐하였지만 불행히도 결정적인 순간에 로프가 싫어서 안내 받기를 거절한 것이다. 당신도 로프에 싫증을 느끼는가?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를 붙잡고 막으실 때, 때로 우리는 이에 대해 싫증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하며, 이는 위험한 길이 끝날 때까지 필요한 것이다. 당신의 인도자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 말라. '주님께서 나를 끝까지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하라. 그러면 언젠가는 하늘의 종이 '너는 무사히 본향에 다다랐다'고 알려줄 것이다.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 기도: 우리와 함께 항상 동행하시고 보호하시는 주님,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하신 주님 분부대로 세상 끝날까지 자만하거나 방심하지 말게 하시고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5. 주님을 인도자로 삼으라
성경: 잠23:19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도로 인도할지니라"
스펄전(C.H. Spurgeon)은 모든 일에 믿음으로 주님을 꼭 이용하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어두운 형편에 이르게 되면 빛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태양으로 사용하라, 또한 당신의 인생항로의 갈 길을 잃어버리거든 주님을 인도자로 삼으라. 그는 당신을 인도해 주실 것이다. 주님은 당신이 구하는 바로 그것이요 장소는 모든 것이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간섭 없이는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또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진리 안에 진정한 인생의 바른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진리를 따라 우리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지혜를 가지고 인생의 바른 길을 찾아가야 하겠습니다.
* 묵상: 당신은 지혜되시는 하나님을 항상 의지합니까?
6.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법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그 순간 그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되고 후에 아나니라는 사람의 안수를 통해 다시 보게 됩니다. 그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옥에 갇혔을 때 주님께서 보낸 천사를 통해 옥문을 열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도는 성경 속에도 있고 오늘날 우리 삶에도 있지만 일반화된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런 특별한 방법으로만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매일 일상으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주님은 목자이십니다. 시편 23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양의 특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목자와 양의 비유로 시편을 기록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것입니다. 양은 동물 중에서 가장 약한 동물입니다. 보호색도,날카로운 이빨도,빠른 발도 없습니다. 사자나 호랑이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자나 호랑이는 현재 멸종위기의 동물이고 양은 수효가 엄청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양은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양은 절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동물입니다. 목자의 인도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동물입니다. 다윗은 분명하게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둘째, 기적이 아니라 푸른 풀밭과 잔잔한 시냇물로 인도하십니다. 다윗은 여호와가 목자가 되셔서 자신을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양은 초식동물입니다. 매일 풀을 먹어야 하고 물을 마셔야 살 수 있는 동물입니다. 어제도 풀을 먹었고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풀을 먹고 물을 마십니다. 어제만 특별히 풀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늘 풀을 먹고 물을 마십니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목자가 인도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특별하고 기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환상 중에 주님이 나타나고 특별하고 기적적인 체험을 한 사람들만 인도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특별한 것입니다. 그런 특별한 것만 주의하고 있다면 일상적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 주님께 감사하기 어렵게 됩니다. 어제도 우리는 밥을 먹고 살았고 오늘도 우리는 밥을 먹고 삽니다. 이렇게 일상적인 삶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은혜요 기적입니다. 양들을 인도했던 목자와 같은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셔서 나를 일상의 삶으로 인도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기도: 우리를 일상적인 삶으로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날마다 우리의 삶속에서 간섭하고 일상적인 삶으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 탄자니아 누 떼의 이동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초원에는 영양의 일종인 누 떼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매년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 새로운 풀을 찾아 1,600km나 되는 먼 거리를 떼지어 이동합니다. 수만 마리의 누 떼가 엄청난 양의 먼지 바람과 땅이 흔들릴 정도의 굉음을 내며 달리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누 떼의 이동을 수년 간 지켜보던 한 동물학자는 안타까운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누 떼가 매번 지름길을 놔두고 멀고 험한 길을 달리느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살아 남지 못한 누들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원인은 맨 앞에서 무리를 이끄는 누 때문인데 이들은 처음 들어선 길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 습성 때문에 약하고 힘없는 다수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방법을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도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선택한 것 못지 않게 잘못된 길인지도 모르고 계속 가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입니다.
8. 길을 잘못 알려주면
미국 동부에 혹심한 눈보라가 몰아쳤다. 기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한 채 거북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승객 중 갓난아기를 안은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내릴 역을 지나 치지 않으려고 잔뜩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때 한 신사가 여인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내릴 역을 가르쳐 드리지요" 기차는 눈보라를 뚫고 서서히 달렸다. 기차가 어느 역에 멈추어서자 신사가 여인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내리십시오" 여인은 신사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갓난아기를 안고 기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서 신사는 머리를 감싸안으며 울부짖었다. 여인이 내려야 할 역은 바로 이곳이었다. 신사는 기차가 잠시 멈춘 줄도 모르고 여인에게 길을 잘못 가르쳐준 것이었다. 이튿날 여인이 내린 철길 옆에는 '아기를 안은 여인'의 모습을 한 눈덩이가 발견됐다. 여인은 철길에서 아기를 안은 채 얼어죽은 것이다. 사람에게 길을 잘못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비극적인가. 하물며 영혼을 잘못 인도한다면 어찌되겠는가?
9. 곧 갈아 타십시오
어렸을 때 일이다. 대전역에서 기차를 탔는데 내가 가야 할 곳은 서울인데 기차를 타서 자리를 잡고 않아 있는데 왠지 좀 불안하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남에게 물어 보는 것이 챙피하게 느껴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그 기차 옆에 표시판을 보기로 하고 내릴려는데 기차가 출발하지 않는가 그래서 황급히 옆사람에게 이 가차가 서울행 맞지요? 했더니 "아니야 학생이 기차는 부산행인데" 나는 가까스로 서서히 출발하는 기차를 내릴 수가 있었다. 내려서 건너편을 보니 서울행이 기적을 울리며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육교를 뛰어올라 쏜살같이 달려가 역시 출발하고 있는 서울행을 가까스로 탈수가 있었다.
신앙은 기차를 갈아타는 것과 같다. 어떤 분의 글귀가 생각난다. 허무하고 불리우는 지하철에 탔다면 곧 갈아타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에게 보람을 줄 것입니다. 교만이라 불리우는 비행기에 탔다면 곧 갈아타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을 보통사람으로 만족케 하십니다. 성공이라 불리우는 과속택시에 탔다면 곧 갈아타십시오. 성실이라는 새 차표를 받으셔야 합니다. 욕심이라 불리우는 배에 탔다면 곧 갈아타십시오. 상륙해야 할 만족의 항구는 예수님입니다. 시기와 미움이란 호랑이 등에 탔다면 곧 갈아타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의 묘약을 받으셔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차를 잘 갈아타는 판단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10. 하나님이 책임 지신다
신학교 시절 저는 200만원짜리 볼품없고 형편 없는 집에 전셋집에서 살았습니다. 쥐가 많이 돌아다닐 정도로 초라한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소명을 주셨고 신학교 보내셨으면 책임 지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던 날 학교 뒷산에 올라가 유학을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확신을 주셔서 198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떠날 때 많은 사람이 “부모 도움도 안 받고 큰돈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먹고 살며 공부할 수 있겠느냐”며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소명을 주시고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서 책임 지시리라는 신뢰 속에 떠났고 하나님은 그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유학 한달만에 목회를 할 수 있도록 길도 열어주셔서 목회 경험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하나님께서 책임 지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앞길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11. 하나님의 인도하심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학 시절이 끝나갈 쯤, 친구들 중 하나가 크리스천이 아닌 아가씨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그녀와 결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이 관계가 옳다면 그녀가 봄 학기 마지막 날까지 크리스천이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날짜를 그녀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봄 학기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파티에 갔다가 자정이 되기 직전 그녀는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저 재미로, 그리고 즉흥적으로 가야 할 방향을 말했다. ‘세 번은 좌회전, 세 번은 우회전, 그리고 삼 마일을 직진하고 멈추는 거야.’그들이 도착한 곳은 미국식 공동묘지였는데 그 중앙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수백 개의 작은 십자가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는 십자가가 상징하는 의미에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잠시 후, 그녀는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 방법들은 종종 다섯 개의 ‘C. S.’라고 불리운다. 이것들은 성경을 통한 명령(Commanding Scripture), 성령의 통제(Controlling Sprit), 상식(Common Sence), 성도들의 조언(Counsel of the Saints), 상황적인 증거들(Circumstantial Signs)이다.
12. 인생의 GPS
요즘 자동차에 GPS를 장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GPS란 global positioning system이라 하여 위성 위치확인 시스템을 말합니다. 원래 이 GPS는 군사용으로 미 국방성이 개발한 것입니다. 고도 약 2만 키로 상공에 6개의 원궤도를 만들고 각 궤도에 4개씩 도합 24개의 인공위성을 띠웁니다. 이용자가 자기위치에서 가장 적당한 위치의 위성 4개를 선택해서 그것들로부터 시각 신호를 수신하여 자기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정해 놓으면 그 목적지까지 최선의 항로를 안내해 줍니다. 차가 막히는 곳을 피해서 현재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줍니다. 여기에 음성 안내까지 부착되어 있어서 소리로 순간순간 안내를 받게 됩니다. “30미터 전방에서 우회전 하세요, 50미터 앞에서부터 제한 속도가 달라집니다. 속도를 줄이세요 앞에 속도 측정 카메라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속도위반 스티카를 피하려고 이 GPS를 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 GPS처럼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하늘에서 우리의 앞길을 정확히 내려다보시면서 우리의 갈 길을 안내해 주십니다. 그 안내를 받으며 인생을 사는 사람이 인생을 가장 잘 살 수 있습니다. 그 안내를 받으며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13. 나를 위한 베스트
어떤 상황이든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지금 내가 준비하는 것이 때로는 모든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살아야 합니다. 가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각지 못했던 길을 보여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그 다른 길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라면 베스트가 틀림없습니다.
-황은우 목사의 ‘크리스천 청년들을 위한 예비하심’ 중에서-
내가 원하는 꿈이 나에게 있어 최선의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꿈을 쫒아 달려오는 동안 꼭 이뤄내야 한다는 내 안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목표에 가까이 왔을 때 나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원망했고 이루지 못한 꿈으로 방황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원하던 자리는 아니지만 내가 있어야만 하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까지 늘 뒤 돌아서있던 나를 밀고 끌어주신 하나님 나를 위한 베스트, 최선의 것을 아시는 내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14. 선한 길잡이를 만나는 행운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을 등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입니다. 다른 장비나 기구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할지라도 길잡이가 없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되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산맥을 등정하는 데도 길잡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암벽에 부딪쳤을 때에, 험한 길을 만났거나 길을 잃었을 때, 위기상황이 발생한 그 곳의 지리를 잘 알아서 올바르게 대처할 줄 아는 좋은 길잡이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시련이 닥쳤을 때, 인생의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할 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좀더 좋은 길잡이를 만났더라면 훨씬 고생을 덜 했을 텐데, 좀더 일찍 바르게 사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스승을 만났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 말입니다. 좋은 길잡이를 제대로 만난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인생의 길잡이가 있는지요?
< 조승희 / 목사>
15. 하나님의 섭리
실명을 한 밀턴은 크롬웰과 함께 영국에서 종교 혁명을 일으켜 영국을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해서 크롬웰은 죽고 밀턴은 정치범으로 사형수가 되었다가 겨우 석방이 되었습니다. 그가 실락원을 쓸 무렵에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무르익은 완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되었는데 '내가 역행해서 만들어 가는 것보다는, 내 속에서 이루어져 가도록 대망(大望)하고 기다리는 것이 훨씬 더 위대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살아가려면 우리들의 하루하루, 한 사건 한 사건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섭리 밖에서 불모의 인생을 살아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시107:4∼7)
16. 10년 만에 돌아온 아내
개성 부지정에 사는 권중권 씨는 60세 노인인데 노모와 자녀를 데리고 10년 동안이나 홀아비로 살아왔다. 그의 부인 김유환 씨는 10년 전 정신병으로 집을 나갔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1931년 개성에서 열린 제 1회 조선남감리회 연회 때 부인 김씨가 성경과 찬송가를 들고 개성 집에 찾아 온 것이다. 가족들은 꿈인가 생시인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놀랐다. 10년 동안 헤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만난 것이다. 부인은 정신이 나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어쩌다 수원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정신이 들어 예배당에 다니게 되었으나 집은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원교회 교우들 이 힘을 모아 소규모로 장사를 하게 해주었는데, 이번 연회 때 교인들과 함께 개성으로 구경왔다가 전에 살던 것이 기억나서 경기도 장단에 있던 경능 옛 집에 찾아가 알아보고 수소문 끝에 찾아왔다고 했다. 이러한 10여 년의 고생담을 듣고 가족들은 동정의 눈물을 흘리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교회를 통해 역사하심을 알게 되었다.
/채수덕
17. 나를 따라 오너라
1967년도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소위 6일 전쟁이 있었다. 병력면에서 열세인 이스라엘이 막강한 아랍을 6일 만에 격파하여 세계 전쟁사에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한 기자가 이스라엘의 베긴 총리와 인터뷰를 가졌다.
"막강한 아랍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군대에서는 절대로 내려서는 안 되는 명령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가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면 그 명령 대신 무슨 명령을 내립니까?"
기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묻는 질문에 베긴 총리는 짤막하면서도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대장 되시는 예수만 따라갈 때 승리할 수 있다.
18. 보이지 않는 인도자
존 플렛처는 모험심이 가득한 유복한 젊은이였다. 어느 날 그는 어떤 늙은 수부로부터 브라질이라 불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동굴 속에, 금이 가득한 항아리들이 간직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플렛처는 스페인의 어느 항구에 자기 배를 정박시켜 두고 있는 선장과 함께 항해에 나서기로 작정하였다. 어느 날 아침, 그는 하인에게 그가 늘 마시던 차를 마시기 위해 끓는 물주전자를 가져오라고 지시하였다. 그런데 잘못해서 그것이 테이블에 쓰러져 그 끓는 물로 인해 그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 며칠 후 선장이 그에게 사람을 보냈을 때 플렛처는 발을 데어서 방을 갇혀 꼼짝도 못하게 된 운명을 저주하면서 자기가 가지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창 밖을 내다보면서 그는 배들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생명을 자비롭게 보전해 주신 것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다시는 그 배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일들을 치르면서, 플렛처는 놀랍게 회심하게 되었고, 요한 웨슬이의 한 동지가 되었다. 그의 전기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고서 그는 브라질보다도 더욱 멀고 더욱 낯선 땅으로 찾아가 영혼들을 구하는 영적 탐험가가 되었다. 그는 사람들을 훈련시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는 일에 전념하였고. 그가 성경에 관하여 기록한 책들은 고전이 되었다."
날마다 구세주께서 당신의 삶에 대한 그의 최고의 뜻이 있는 길로 당신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기를 구하라. 그리고 순종하며 그 길을 따르라. 그가 축복과 영적 유익이 가득한 높은 곳으로 당신을 인도하시리라는 것은 틀림 없는 일이다.
19. 얼굴 없는 인도자
마차 경주 장면으로 유명한 ‘벤허’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벤허는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유대인으로 설정돼 있다. 그는 유대 사회의 귀족에서 반역자로, 노예로, 로마 장군의 양자로 신분이 바뀌는 극적인 삶을 산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예수님의 뒷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분의 얼굴은 한 번도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은 벤허의 인생에서 고비 때마다 찾아와 그의 삶을 인도하신다. 벤허는 당시에 깨닫지 못하다가 일련의 사건을 통해 나중에 자신의 삶에 참된 인도자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에게는 고등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이 있다. 나는 항상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나의 아이들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믿고 아는 것은 아이들이 결코 혼자 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주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주님은 그들의 목자가 되어 친히 그들을 인도하시고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보호해 주시리라 믿는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힘들고 답답한가? 주님을 목자로 삼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 걸어라.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두려움을 이기며 용기를 가져라. 그리고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라. 이 원리를 계속해 적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불확실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그 풍성함을 맛볼 수 있다.
/ 이재기
20. 하나님의 인도
성경: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찌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한 후 그 기세를 몰아 러시아까지 진격해 들어가려고 할 때의 일입니다. 출정 전날 그는 한 귀족 부인에게 승전의 확신을 갖고 자신의 계획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듣고 있던 부인은 '인간이 계획하나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껄껄 웃으며 '부인, 모든 것은 제가 계획하고 제가 이룰 것입니다'라고 거만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대패하고 1814년 퇴위, 엘바섬에 유배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오늘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21. 하나님의 인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잠 14:26∼27)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숲 속 한 동네에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그 강아지는 너무도 더러웠고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맸던지 굶주림에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아지 목에 달린 이름표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마도 주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개를 붙들었습니다. 그 개의 이름은 ‘밥스’였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작은 글자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나라 왕에게 속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왕의 강아지였던 것입니다. 왕의 부처가 에딘버러 성에 휴가를 왔다가 그를 잃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는 목자이십니다. 즉 우리가 어디를 헤매던지 우리에게 이름표만 분명하다고 한다면 즉각적인 보호가 주어지게 되며 확실하게 주인에게로 인도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돌보아 주시고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22. 영원한 가이드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존스라는 선교사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진맥진한 채 포기하고 있는데 원주민을 만났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대화는 할 수가 있었습니다. 길을 잃어버렸으니 길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원주민은 "나를 따라 오시오."라고 말하고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따라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따라가던 선교사는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기진맥진하여 원주민을 붙잡고 "도대체 어디로 갑니까?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원주민이 대답했습니다. "길은 없
습니다. 내가 바로 길입니다. 믿고 따라오시오." 원주민을 따라 나선 지 한참 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을 '길'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살아온 삶이나 살아가야 할 삶 역시 길인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살아온 길을 '나그네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에는 길이 있습니다.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삶의 방법과 학문의 공식에 이르기까지 길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몰라 방황하고 실패를 거듭하여 노년이 되어서야 바른 길에 대해 깨닫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육체적인 죽음을 바라보며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길 이후에도 길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무관심합니다. 문제는 안내자입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이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님은 스스로를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처소로 인도하는 길 되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처소에 대한 걱정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길 되신 예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인생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해서 죄값을 치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순간, 아무런 대가 없이 예수님은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자가 되어주실 뿐 아니라 영원한 가이드가 되어주실 것입니다.(시23:1-3)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1:78-79)
23. 신이 나를 이끌어서
남강 이승훈은 1930년 죽기 며칠 전에 오산학교에 세워진 자기 동상 제막식에서 연설을 했다.
"내가 오늘날까지 온 것은, 내가 한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모두 신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나는 본래 불학무식(不學無識)합니다.
나는 이 뒤에 선 동상과 같은 사람입니다.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으나 신이 나를 이렇게 이끌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신이 나를 지시하시며 도우셨을 뿐입니다. 이후에도 그럴 줄 믿습니다."
24. 주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성경: 요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유대에는 깊은 공짜기가 많이 있습니다. 골짜기에는 여기저기 동굴이 있어 맹수들이 숨어 있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양들과 힘없는 가축들을 공격합니다.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 길에도 언제나 잔잔한 호수와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완전한 실패와 좌절을 맛보며 밤마다 침상을 적시는 눈물을 흘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하면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아픔을 다 알고 계십니다. 때문에 주님은 우리가 주님께 나아와 우리의 아픔을 털어놓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회복될 수 없는 중병이지만 낫고자 하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간다면 주님은 우리를 안전하고 쉴 만한 곳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 기도: 우리의 피난처 되신 주님, 우리가 삶의 상처를 안고 주님께 나아오게 하소서.
25. 우연히 이곳에 온 것이 아니야
패터슨 목사는 수년 전 자신이 휘튼 대학 학창 시절에 재정적인 압박과 공부의 중압감으로 실망에 젖어 있었다. 어느 날 역사학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한 교수님이 그를 불러 세우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를 쭉 지켜봐왔는데 정말 풀죽어 뵈는구나. 무슨 일인지 궁금하구나. 그런데 한 가지 사실만은 잊지 마라. 너는 우연히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너를 이곳에 인도하셨고 또 너를 계속 보살피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패터슨 목사가 말했다.
“그 말은 내가 가장 필요로 할 때 내게 주어졌습니다.”
친절한 말 한 마디는 진흙구덩이에 빠진 사람에게 아주 훌륭한 밧줄이 될 수 있다.
/진되링
26. 한 번에 한 걸음씩
킴 윅스라는 한국인 맹인 처녀가 있습니다. 그녀는 그래함 전도대의 일행이 되어 찬양하고 간증하는 사역을 당당하는데 그녀의 간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앞을 보지 못하는 나를 인도할 갈 때 '저 100m 앞에 장애물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저 200m 앞에 무엇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바로 앞에 물이 있으니까 한 걸음 옆이라 떼십시오'
'조금 앞에 계단이 있으니 발을 조금 높이 올리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떼어 놓을 자리를 나에게 알려주면 나는 그 말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함을 받아 목표했던 지점까지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인도하신 것도 그런 방법이었습니다. 시각 장애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살 것인지 암담했지만 하나님께서 다음 발 한 걸음을 떼어놓을 자리를 일러 주셨습니다. 그렇게 인도함을 받아 보니까 내 삶 전부가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 있게 되고,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그 목표 지점으로 나의 생이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1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20년 후도 알지 못합니다. 또 알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보이시는 그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오늘을 살면, 하나님께서는 내일을 인도하셔서 마침내 내 생애를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그곳에 도달케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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