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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제11장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11:1∼10)

by 【고동엽】 2022. 4. 16.

제11장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11:1∼10)

 

< 개 요 >
1. 11:1∼5 왜 물질을 값있게 써야 하는가?
2. 11:6∼8 물질을 쓸 때의 마음가짐은?
3. 11:9∼10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오늘은 전도서 11장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전도서 11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귀한 물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물질을 값있게 사용한 사람이라고 하면 영국의 유명한 존 웨슬레 목사님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는 감리교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목사였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였습니다. 아울러 탁월한 저술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명성을 많이 얻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어느 추운 겨울날 자기 하녀가 날씨가 아주 추운데도 돈이 없어서 속옷을 사 입지 못하고 홑겹의 아주 얇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그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나를 위해서만 돈을 사용해서는 안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후로는 자기의 생활비로 아주 적은 금액을 정해놓고 그 이상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소득의 나머지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고, 아울러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다 사용했습니다.
그는 물질과 관련해서 이런 설교를 교회에서 종종 했습니다.
첫째로, "Make all you can."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Save all you can." 낭비하지 말고 절약해서 아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세번째, "Give all you can." 줄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베풀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도 많이 드리고, 아울러 이웃을 도울 때도 인색하지 말고 많이 베풀면서 살 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한번은 어느 교회에서 이 설교를 하고 나오다가 그 교회에 출석하는 부자가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목사님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 부자가 이런 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목사님의 설교가 은혜스럽고 다 좋았는데 세번째 대지가 설교를 망쳐버렸어." 세번째 대지가 무엇이었습니까? "Give all you can." 베풀면서, 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을 하십니까? 사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열심히 돈은 잘 법니다. 아껴서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남에게 베푸는 일에는 인색한 것이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한 청년도 그러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님이 그에게 되물으셨습니다. "네가 계명들을 다 지켰느냐" "예, 제가 어릴 때부터 계명들을 다 지켰습니다." 청년은 계명을 지킨다고 하는 것이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을 깨우치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시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가서 너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런 후에 너는 와서 나를 좇으라." 청년은 부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 때문에 근심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성경에는 그 청년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만일 이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했다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마 베드로나, 바울처럼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물질을 움켜쥘 줄만 알았지 필요할 때 펼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오는 큰 복을 스스로 차 버리고 만 것입니다. 솔로몬이 오늘 전도서 11장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바가 물질을 값있게 쓰라는 것입니다.

1. 왜 물질을 값있게 써야 하는가?

1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예컨대 여러분이 식빵을 한 덩어리 준비해서 흐르는 한강 물위에 던져보세요.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수 있습니까? 서해에서 고기 잡는 사람들이 잘 하면 찾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것을 도로 찾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에 푹 젖어서 먹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에는 바다가 많이 있습니다. 왼쪽에는 지중해가 있습니다. 밑에는 홍해가 있습니다. 내륙에는 무슨 바다가 있습니까? 갈릴리 바다도 있고, 사해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임금이었습니다. 나라를 부강시키기 위해서는 해상 무역에 힘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시켜서 배를 많이 건조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이스라엘에서 나는 식물들인 밀, 보리, 포도주, 기름과 같은 것들을 배에 잔뜩 실어서 세계 곳곳으로 무역을 하기 위해서 내보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위험하다고 만류하는 신하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배가 폭풍우를 만난다는지, 또 암초에 걸려 좌초되어보세요. 문자 그대로 식물을 물위에 던지는 것처럼 다 못 쓰게 되어 버리고 말지 않습니까? 그때마다 솔로몬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을 것입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과연 솔로몬의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여러 날 후에 배가 돌아올 때 그 배 안에는 금은 보화를 비롯해서 세계 각국의 진귀한 물품들이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날이 갈수록 점점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돈을 벌 수 있습니까? 땀을 흘리면서 뛰어다녀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식물을 물위에 던지는 심정으로 모험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식물을 물위에 던지면 여러 날 후에 도로 찾는다는 원리가 꼭 돈을 버는 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물질을 쓰는데도 역시 이 원리가 적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솔로몬을 통해서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또 손을 펴서 불쌍한 이웃을 구제하는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식물을 물위에 던지는 것처럼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여러 날 후에 너희가 그것을 도로 찾으리라."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을 보셨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밝은 별빛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별빛을 보셨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밝은 달빛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달빛을 보거든 또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햇빛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밝은 햇빛을 보셨습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리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천국의 환한 빛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식물을 물위에 던지는 원리입니다. 그러면 여러 날 후에 하나님께서 도로 찾게 해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뜻깊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의 식물을 물위에 던지는 심정으로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 어린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보세요.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 날 후에 도로 찾게 하실 것입니다. 더 큰 것으로 찾게 하실 것입니다. 더 후한 것으로 찾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 헌금 드리는 일뿐만이 아니고 이웃을 돕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성경에 일곱이라고 하는 수는 완전수입니다. 꽉 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덟이라는 것은 그 수치보다도 하나가 더 많습니다. "일곱 사람에게 도와주었으니까 이 정도 하면 완전하겠지. 충분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숫자에 구애됨이 없이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Give all you can."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2절 하반부에 보니까 이유가 나옵니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가 아무리 물질을 손에 꽉 쥐고 있으려고 해도 재앙이 임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펴기 싫어도 손을 펴야 합니다.
어떤 분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일 년 동안 병원에서 꼼짝하지도 못하고 누워 있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심방을 갔습니다. 그때 이분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옛날에는 물질에 너무 인색했습니다. 지금은 나를 도와주는 사람에게 간병비만 한 달에 100만원씩 꼭꼭 지불해야 합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하나님께 헌금 드리는 일에 인색하지도 말고, 이웃을 돕는 일에도 더 열심을 내었을 텐데." 그러면서 후회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재앙이 임한 후에 후회하지 말고, 재앙이 임하기 전에 미리미리 손을 펴십시다.
우리 인간이 재앙 앞에서 얼마나 약합니까?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하늘에 구름이 쫙 끼였습니다. 하늘이 어둡습니다. 그러면 비가 쏟아지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이 무슨 수로 그것을 막겠습니까?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큰 나무도 뿌리째 뽑히지 않습니까? 무슨 수로 우리 인간이 그것을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재앙이 오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미리 미리 손을 펴라는 것입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선한 일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북에서 피난 오신 분들을 보면 열심이 대단합니다. 한번 당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피난 올 때 뭘 가지고 나왔습니까? 공산당에게 다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집도 빼앗기고, 토지도 빼앗기고, 재물도 다 빼앗겼습니다. 당하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듭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고향에서 교회 건축한다고 할 때 헌금이나 왕창 할 걸." 이런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이북에서 피난 오신 분들을 보면 버는 일에도 억척같지만 교회 일에도 대단히 열심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보세요. 아주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농부가 풍세를 살펴보면 씨를 뿌릴 수가 없습니다. 농부가 구름을 바라보면 거둘 수가 없습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야? IMF시대이잖아? 당연히 지출을 줄여야지. 헌금도 줄여야 되고." 이것이 바로 풍세를 살펴보는 자입니다. 구름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농부가, 농사짓는 사람이 풍세를 살펴보고 구름을 바라보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습니다. 농부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시기가 되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우리는 풍세를 살피면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의인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살지 않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Trust in the Lord!"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해야 합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도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며 어디로 부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바람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람이 분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또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숨을 쉬며 자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해 나가시는지는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일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알지 않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우리의 식물을 물위에 부지런히 던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날 후에 반드시 도로 찾게 하실 것입니다. 후히 되어서,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해서 여러분의 품에 안겨주실 것입니다.

2. 물질을 쓸 때의 마음가짐은?

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농부는 참 부지런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납니다. 찬 이슬이 맺힐 때 이미 밭에 나가서 씨를 뿌립니다. 온종일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합니다.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그것은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열심히 씨를 뿌려야 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이 있습니다.
씨를 뿌려야 거둔다는 것입니다. 뿌리지도 않고 어떻게 거둘 것을 기대 할 수 있습니까?
뿌리지 않으면 거둘 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식물을 물위에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식물을 물위에 던지지도 않고서 어떻게 여러 날 후에 찾기를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농부가 새벽에 밭에 나가서 씨를 뿌립니다. 동편에 해가 찬란하게 솟아오릅니다. 그 빛이 실로 아름답지 아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눈으로 보는 농부의 마음도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씨를 뿌릴 때, 손을 펼 때 그런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식물을 물위에 던질 때도 마지못해서 억지로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도 기쁜 마음으로 해야지요. 인색한 마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우리의 남은 생애가 길는지 짧을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를 살든지 간에 항상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손을 펼 줄 알고, 즐거운 마음으로 씨를 뿌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의 식물을 물위에 던지자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러나 캄캄한 날이 많으리니 그날을 생각할지로다 장래 일은 다 헛되도다."
어둔 밤 쉴 때가 곧 오지 않습니까 그때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일을 해야지요.
"장래 일은 다 헛되도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헌금도 많이 드리지요." "나중에 형편이 나아지면 불쌍한 사람들도 잘 돕겠습니다." 다 헛소리입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미루지 말고 해야 합니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여러분,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해서 추수감사절이 생겨났습니까? 영국의 청교도 102명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대륙에 왔습니다. 그들이 미국에 도착한 것은 11월 21일 아주 추운 날이었습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더 추웠습니다. 그 겨울을 지나는 동안에 102명 가운데 44명이 죽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죽고, 추위에 떨면서 죽고, 병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봄이 되었습니다. 저들은 울면서 씨를 뿌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을에 첫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것을 놓고서 저들은 울면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자기들보다도 먼저 간 부모, 형제, 처자를 생각할 때 얼마나 목이 메었겠습니까? "조금만 더 참고 살았더라면 우리와 함께 이 기쁨을 맛볼 수가 있을 텐데." 그들은 목이 메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을 것입니다. 눈물 속에 드린 그 감사가 첫 번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추수감사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역경 속에서도 인디언들을 불러서 칠면조 고기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으면서 어려움 속에서, 고통 속에서도 즐거움을 함께 했습니다. 눈물 속에서 드리는 감사, 울면서 드리는 감사, 역경 속에서도 잊지 않고 드리는 그 감사가 진정한 감사가 아니겠습니까?

3.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지금 솔로몬은 자기의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한때 방탕했습니다. 자기의 육신을 즐겼습니다. 자기의 마음에 기뻐하는 대로, 자기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행했습니다. 자기의 눈이 보는 대로, 자기의 눈이 좋아하는 대로 모든 것을 행했습니다. 특별히 솔로몬은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일천 명을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 가운데 이방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그 여인들이 올무가 되어서 솔로몬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심지어는 이방 신들을 섬기는 산당을 짓기까지 했습니다.
또 그 많은 여인들을 데리고 살기 위해서는 왕궁이 얼마나 커야 되겠습니까? 자연히 백성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의 노후에 평화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곳곳에서 솔로몬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범죄한 연고로 너의 나라 가운데 한 지파만 너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남기리라. 그리고 그 나머지는 다 빼앗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라." 이스라엘이 갈라지지 않았습니까? 북방 이스라엘, 남방 유다 왕국으로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이 이 말씀을 통해서 일깨워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젊다고 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방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기회가 주워졌을 때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도우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젊음도 잠시 잠깐입니다.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에서 근심이 떠나
가게 하고, 우리의 몸에서는 악이 물러가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우리의 마음속에 세상 근심 걱정이 자리잡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늘 세상 근심 걱정으로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해 보세요. 경건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악이 내게 가까이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의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으로 충만하면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또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은 상관할 것이 없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요, 그의 감사가 우리 모두의 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보면 이런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한쪽 다리를 잃었느냐? 두 다리를 다 잃게 하지 않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라. 두 다리가 다 잘렸느냐?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라. 목이 부려졌느냐? 그 뒤에는 결정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 갈 수 있음을 절로 감사하게 될 테니까."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한 진정 어린 감사가 뜻깊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충만하게 차고 넘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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