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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강 기도의 근거(9:15-19)

by 【고동엽】 2022. 4. 14.

제95강 기도의 근거(9:15-19)

 

9:15-19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좇으사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다니엘의 기도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첫째는 찬양이고, 둘째는 회개, 셋째는 간구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마지막 세번째 부분인 간구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했던 애굽 땅에서 강한 손으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강하신 손으로 열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셨습니다. 그 강하신 손으로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또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강하신 손으로 많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했던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열조에게 계속해서 같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지금 다니엘이 본문에서 그 옛날의 출애굽 사건을 말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우리의 열조에게 그 땅을 주리라고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옵소서. 우리는 지금 약속하신 땅에서 쫓겨나서 이와 같이 이방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 열조에게 주리라고 하신 그 땅에 속히 우리가 되돌아가게 하옵소서." 이런 뜻으로 다니엘은 하나님께 출애굽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15절 말씀을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출애굽 시키심으로 말미암아 어떤 명성을 얻게 되셨습니까? "여호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요, 살아 계셔서 그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와 같은 명성을 얻게 되셨을 것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죄 값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열조에게 약속하셨던 땅에 대한 축복을 잊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1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좇으사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따라서 죄 값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 값을 충분하게 받았다면, 이제는 주의 분노를 그만 멈추어달라고 다니엘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값을 받을 만큼 다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계속해서 그들에게 고통을 내리신다면 그것은 의로운 일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40:1-2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자기들의 죄 값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칠십 년 동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종살이를 했으니까요. 그러니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겠느냐고 다니엘은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본문 16절을 보겠습니다.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예루살렘을 무엇이라고 묘사를 했습니까? "주의 성"이라고 했습니다. 또 예루살렘이 서 있는 시온산을 "주의 거룩한 산"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황무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성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니까 이제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거두어달라는 간구입니다.
16절 끝 부분입니다.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물론 이스라엘이 범죄한 연고로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예루살렘은 황무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성은 결국 하나님의 도성이요,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방 사람들이 큰 재앙을 당한 이스라엘을 보면서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여호와는 자기 백성들도 구원할 수 없는 무능한 신이고, 또 자기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예루살렘도 황무한 채로 그대로 내버려두는 힘이 없는 신이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수욕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은연중에 말하면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7절 말씀으로 넘어갑니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다니엘이 16절에서는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위해서 간구했습니다. 이어서 17절에서는 하나님의 성소인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위해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종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낮추고 있습니다. 한편 다니엘은 4절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높였습니까?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 할 주 하나님." 하나님은 크신 분이시고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우리는 낮아져야 하겠습니다.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기도는 넓은 의미이고, 간구는 좁은 의미입니다. 우리가 다니엘의 기도에서 본 것처럼 기도에는 찬양,  회개, 간구가 포함됩니다. 많은 경우에 감사도 포함됩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를 포괄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한편 간구는 특별한 제목으로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아뢰었습니까?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황폐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누구를 위하는 일이라고 했습니까? "주를 위하여." 지금 이방 나라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을 보고서는 무엇이라고 비웃고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바벨론의 신 마르둑(Marduk)보다도 더 힘이 없는 무능한 신이라고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황폐해진 주의 성소를 곧 다시금 재건해 주셔야 되지 않겠느냐고 다니엘은 하나님께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고 좀 자세히 들어주시기를 바란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들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겠습니까? 우선 다니엘 자신이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를 위해 어떻게 했었습니까?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왜 그렇게 했습니까? 자기의 기도에 귀를 좀 기울여 들어달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이 비웃고 있는 조롱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주실 것을 바랐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무능한 신이다. 우리가 믿는 바벨론의 신보다도 능력 없는 신이다." 이방인들의 이 조롱 소리도 들어보시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계속해서 무엇이라고 아뢰고 있습니까?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바벨론에서 칠십 년 동안 종살이를 해왔습니다. 그 동안에 전연 예루살렘 성과 그 안에 있는 성전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뜨시고 그 황폐된 상황을 좀 자세히 보아달라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예루살렘 성을 세 번 공격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는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황폐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서에 보면 느헤미야가 수산궁에 있을 때, 조국을 다녀온 사람이 예루살렘 성의 황폐된 모습을 그에게 이야기해 줄 때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황폐한 모습이 너무나도 비참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18절 중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내놓을 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의롭지 못했습니다. 불의할 뿐이었습니다. 마땅히 벌을 받아야 될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구하는 것은 그가 무엇을 의지했기 때문이었습니까?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하나님의 큰 긍휼, 무한하신 긍휼을 바라보며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큰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십니다.
마지막 1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 때는 다니엘이 그의 벅차 오르는 가슴 때문에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19절에는 "주여"라고 하는 말이 몇 번 나옵니까? 세 번 나옵니다. 흐느끼면서 드리는 기도이니까 문장도 간단합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주님의 크신 긍휼하심 밖에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주여 들으소서."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긍휼하심으로 자기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주여 용서하소서." 비록 자기들의 죄악이 너무나 막중하지만,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사유하심으로 그들을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그들에게 베풀어서, 그들의 포로 생활이 끝나게 하시고, 또 황폐해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지체치 마옵소서." 하나님께서 징계하기로 작정하셨던 칠십 년이 이제는 다 지나갔으니까, 더 이상 지체치 마시라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택하신 백성들에게 회복의 역사를 속히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두 가지에 근거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내놓을 의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땅히 죄 값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시기에 다니엘은 감히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었습니다. 또 예루살렘도 하나님의 도성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지금 당하고 있는 수욕을 씻어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감히 내놓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도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미우나 고우나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잘못되면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되지 않습니까? 그것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여! 오늘 이 하루 동안 제가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잘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행여라도 하나님의 성호를 욕되게 하지 않도록 저를 지켜 주시옵소서." 오늘도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충만케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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