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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강 네째 짐승의 진상(7:23-25)

by 【고동엽】 2022. 4. 14.

제81강 네째 짐승의 진상(7:23-25)

 

7:23-25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본 네째 짐승에 관한 장면은 크게 세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장면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모습 자체입니다. 무섭고 강한 모습이었습니다. 과거에 보았던 다른 짐승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큰 철 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놋으로 된 발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큰 철 이로 먹이를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짓밟고 있었습니다. 둘째 장면은 뿔에 대한 설명입니다. 짐승에게는 뿔이 열 개나 달려 있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장면은 열한 번째 뿔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뿔이 처음에는 작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라서 기존에 있던 세 뿔을 뿌리채 뽑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달려 있었습니다. 또 큰 말을 하는 입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네째 짐승의 특이한 모습에 대해서 천사 가브리엘에게 그 진상을 물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설명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니까 천사이겠지요. 그 천사의 이름은 가브리엘이었습니다.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무엇이라고 설명을 하는지 보십시다.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 나라는 어느 나라를 뜻합니까? 로마입니다.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기존의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바벨론과도 다르고, 메대와 바사와도 다르고, 헬라와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그 어느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세력이 엄청나게 크다는 뜻입니다. 로마는 그 큰 세력으로 "천하를 삼키고"라고 했습니다. 짐승이 먹이를 삼키듯이 로마는 온 천하를 다 점령했습니다.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로마제국이 천하를 자기 발아래 정복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바로 첫째 장면입니다.
둘째 장면은 열 뿔에 대한 광경입니다. 2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라." 로마제국이 지나가고 나면 세상이 여러 개의 나라로 갈려집니다. 여기서 "열"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수로서 "굉장히 많다"는 뜻입니다. 로마제국이 천하를 통치하고 나서 그 뒤에 지금처럼 수많은 나라로 쪼개졌지 않습니까?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수많은 나라가 갈려져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상이 둘째 장면이었습니다.
셋째 장면입니다. 24절 후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열한 번째 뿔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뿔, 곧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적그리스도는 이전에 있던 왕들과는 다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탄의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그 세력이 막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자기에게 대적하는 열 왕 가운데 세 왕이니까 거의 1/3에 해당되는 나라들을 무력으로 정복시켜 버릴 것을 의미합니다. 그 나머지 7/10에 해당되는 나라들은 작은 뿔의 무서운 세력을 보고서는 대항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복종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때에는 적그리스도가 온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2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적그리스도의 특징이 몇 가지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적그리스도의 첫째 특징은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왜 하나님을 말로 대적할까요? 사도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살후2:3의 말씀입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말하는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살후2:4의 말씀입니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적그리스도는 자기가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 말로서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적그리스도의 노릇을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25절의 말씀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둘째 특징은 무엇입니까?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성도들을 핍박하고 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육체적으로도 괴롭게 하겠지만 또 다른 방법들이 있습니다. 바로 경제적인 억압입니다.
계13:16-17의 말씀입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면 먹는 음식들을 사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는 경제적으로 성도들을 핍박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셋째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먼저 때를 변개코자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력을 없애버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부활절, 성탄절 등을 지키지 못하게 막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달력에는 엿 새를 일하고 하루를 쉬도록 되어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안식하면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도 바꿔 버린다는 것입니다. 옛날 블란서 혁명 때에도 일주일을 칠 일이 아니고 십 일로 바꿔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9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도록 한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때를 바꾸면서 성도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또 "법"도 변개코자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법도 무시해 버리고, 세상의 법도 무시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말을 법처럼 강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살후2:3에서는 적그리스도를 가리켜 "불법의 사람"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그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자들을 무섭게 핍박할 것입니다.
마지막 네번째 특징을 보십시다.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의 손에 "붙인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성도가 적그리스도에게 허용해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당연히 적그리스도 보다도 더 권세가 많으신 분이실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에게 얼마동안 붙인 바 된다고 했습니까?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러면 전부 다 몇 때입니까? 세 때 반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정기간 동안에만 성도가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기간 동안입니다. 끝이 있습니다. 그러면 세 때 반은 얼마를 가리킵니까?
단12:7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세 때 반만 지나면 핍박도 끝납니다. 그때는 심판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큰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세 때 반은 일천 이백 구십 일입니다. 3년 반입니다. 그러니까 3년 반 동안에만 핍박이 허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도록 허용하시는 것입니까? 모두 우리를 위해서 입니다. 어려운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금보다도 더 귀하게 단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시련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이 되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아울러 이 다음에 우리에게 더 큰 상급을 주시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핍박을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셨던 김익두 목사님이 "줄 알라"의 신앙을 가지라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면, 면류관을 쓸 "줄 알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이기면, 그 너머에 있는 영광을 받을 "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 때 반 동안의 핍박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우리를 높이 세워 주시고, 큰 상급을 주시고, 우리에게 빛나는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줄 알라"의 귀한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이미 다 이겨 놓으신 싸움을 우리가 싸우는 것입니다. 어떠한 시련과 핍박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이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 때 반으로 정해놓은 짧은 기간에 주어지는 고난일 뿐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시면서 오늘도 주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시고 살아가십시다. 길을 걸어갈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일을 할 때도 주께서 함께 하심을 잊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라도 다 세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기쁜 마음으로 주님 안에서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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