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강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5:25-28)
5:25-28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다니엘은 벨사살 임금에게 느부갓네살 임금이 겪었던 역사적인 경험과 교훈을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다고 질책한 뒤에 오늘 본문에서 드디어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기록된 글자를 풀고 있습니다.
먼저 분벽에 쓰인 글자를 읽었습니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몇 단어로 되어 있습니까? 네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처음 두 단어는 강조를 위해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메네"라는 말이 두 번 나왔고, 그 다음에 "데겔," 마지막 단어가 "우바르신"이란 글자였습니다. 네 단어가 모두 아람어로 되어 있습니다. 문장의 형태는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메네"라는 말은 "수를 헤아리다"는 말의 수동태로 "수가 헤아려졌다"는 뜻입니다. 누구에 의해서 세어졌다는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에 의해서 세어졌다는 말입니다. "데겔"이라는 말은 "저울을 놓고 달았다"는 말의 수동태니까 "저울에 달려졌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우바르신"이라는 말에서 "우"는 아람어로 접속사입니다. "그리고"라는 말입니다. "바르신"이라는 말은 "나누다"의 수동태로 "나누어졌다"는 뜻입니다. 28절에 보면 "베레스"라는 말이 나오는데 베레스는 단수이고, 바르신이라는 말은 복수 형태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 바벨론의 지식층은 모두 아람어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박사들도 틀림없이 아람어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제가 한번 말씀드렸습니다만 같은 한자라도 초서로 흘려 쓰면 보통 사람은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자도 아람어인데 날림체, 초서체로 써 있었다면 바벨론 박사들이 읽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혹 바벨론 박사들이 읽었다 할지라도 그 의미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예컨대 메네, 즉 셈을 당했다는 말인데 무엇이 세어졌다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 큰 대회장에 귀인들이 일천 명이 있고 수많은 왕후들과 빈궁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숫자가 세어졌다는 뜻이겠습니까? 제대로 의미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데겔이란 말도 저울에 달렸다는 말인데 이것도 술안주로 쓸 고기 등을 저울에 달아서 쟀다는 것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리고 우바르신은 나누어졌다는 말인데 저울로 근수를 잘 재서 귀인들에게 고기를 나누어주라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50명, 또는 100명씩 나누어서 줄을 서게 하라는 것인지 그 해석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드디어 하나님의 사람인 다니엘이 26절에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란 말에 대한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왕의 시대, 왕의 생명, 왕의 날이 하나님에 의해서 계수가 되었는데 결과는 왕의 날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과 호흡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끝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끝난 것입니다. 부르시면 가야 합니다. 실제로 그날이 벨사살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30절을 보면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호흡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늘 기억하면서 시편 90편의 모세의 기도대로 우리의 날을 계수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줄 압니다.
27절을 보세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라고 해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런데 벨사살 임금의 삶의 질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기준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질을 감찰하시면서 하나님의 저울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 늘 우리를 판단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행여 하나님의 저울로 우리의 삶의 질을 재어볼 때 턱없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귀하구나, 착하구나, 중하구나, 충성되구나 하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오늘 하루의 삶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28절을 보십시오. 앞의 메네와 데겔은 하나님이 쟀다는 것이고, 우바르신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이 말은 바벨론이 둘로 나뉘어서 한쪽은 메대가, 한쪽은 바사가 차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바벨론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메대와 바사 연합군이 공격해 왔습니다. 성밖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리컵을 땅바닥에 던지면 깨져서 산산조각 나서 형체도 없어집니다. 마찬가지로 바벨론이 메대와 바사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서 산산조각이 나서 나뉘어진다는 뜻입니다. 산산조각이 나서 멸망한다는 뜻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과연 어떠한 심판을 내리실지, 내가 행한 그대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을 비디오로 찍어서 사람들 앞에 보여준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어떻겠습니까? 잘라 버리고 싶은 장면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많은 지적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뿐 아니라 마음속의 생각과 동기를 감찰하십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바르고 의롭고 정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메네." 우리의 삶의 날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 앞에 23절 마지막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호흡을 주장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생명과 호흡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생사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계수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늘 생각하면서 언제 하나님 앞에 설지라도 떳떳하고 기쁜 마음으로 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데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저울질하고 계신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의롭게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저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여기 승동교회 교인들의 모든 의를 합쳐도 부족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의를 합친다 해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 공로가 아니면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비록 나는 부족하지만 내 곁에 계셔서 나를 변호해주시고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나의 오른 손을 높이 들어주실 분이 계십니다. 누구십니까?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변호사 예수님이 우리의 손을 높이 들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우리는 못 삽니다. 오늘도 주님의 손을 든든히 붙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의지하는 복된 하루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니엘 5장이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벨사살이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교만해서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했습니다. 다니엘서 5장이 어떻게 끝나고 있습니까? 벨사살이 어떻게 끝나고 있습니까? 비참하게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잠 16:18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교만이 있으면 그 뒤에는 반드시 패망이 뒤따라옵니다.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거만함이 앞에 있으면 뒤에는 반드시 넘어짐이 있습니다.
다니엘서 5장이 가르쳐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벨사살 임금이 얼마나 교만했습니까?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나를 낮추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게 되면 벨사살과 같이 패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자기를 높이려 하지 말고 마음을 낮추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시기를 다시 한번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다니엘은 벨사살 임금에게 느부갓네살 임금이 겪었던 역사적인 경험과 교훈을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다고 질책한 뒤에 오늘 본문에서 드디어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기록된 글자를 풀고 있습니다.
먼저 분벽에 쓰인 글자를 읽었습니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몇 단어로 되어 있습니까? 네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처음 두 단어는 강조를 위해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메네"라는 말이 두 번 나왔고, 그 다음에 "데겔," 마지막 단어가 "우바르신"이란 글자였습니다. 네 단어가 모두 아람어로 되어 있습니다. 문장의 형태는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메네"라는 말은 "수를 헤아리다"는 말의 수동태로 "수가 헤아려졌다"는 뜻입니다. 누구에 의해서 세어졌다는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에 의해서 세어졌다는 말입니다. "데겔"이라는 말은 "저울을 놓고 달았다"는 말의 수동태니까 "저울에 달려졌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우바르신"이라는 말에서 "우"는 아람어로 접속사입니다. "그리고"라는 말입니다. "바르신"이라는 말은 "나누다"의 수동태로 "나누어졌다"는 뜻입니다. 28절에 보면 "베레스"라는 말이 나오는데 베레스는 단수이고, 바르신이라는 말은 복수 형태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 바벨론의 지식층은 모두 아람어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박사들도 틀림없이 아람어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제가 한번 말씀드렸습니다만 같은 한자라도 초서로 흘려 쓰면 보통 사람은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자도 아람어인데 날림체, 초서체로 써 있었다면 바벨론 박사들이 읽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혹 바벨론 박사들이 읽었다 할지라도 그 의미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예컨대 메네, 즉 셈을 당했다는 말인데 무엇이 세어졌다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 큰 대회장에 귀인들이 일천 명이 있고 수많은 왕후들과 빈궁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숫자가 세어졌다는 뜻이겠습니까? 제대로 의미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데겔이란 말도 저울에 달렸다는 말인데 이것도 술안주로 쓸 고기 등을 저울에 달아서 쟀다는 것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리고 우바르신은 나누어졌다는 말인데 저울로 근수를 잘 재서 귀인들에게 고기를 나누어주라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50명, 또는 100명씩 나누어서 줄을 서게 하라는 것인지 그 해석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드디어 하나님의 사람인 다니엘이 26절에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란 말에 대한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왕의 시대, 왕의 생명, 왕의 날이 하나님에 의해서 계수가 되었는데 결과는 왕의 날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과 호흡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끝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끝난 것입니다. 부르시면 가야 합니다. 실제로 그날이 벨사살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30절을 보면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호흡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늘 기억하면서 시편 90편의 모세의 기도대로 우리의 날을 계수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줄 압니다.
27절을 보세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라고 해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런데 벨사살 임금의 삶의 질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기준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질을 감찰하시면서 하나님의 저울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 늘 우리를 판단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행여 하나님의 저울로 우리의 삶의 질을 재어볼 때 턱없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귀하구나, 착하구나, 중하구나, 충성되구나 하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오늘 하루의 삶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28절을 보십시오. 앞의 메네와 데겔은 하나님이 쟀다는 것이고, 우바르신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이 말은 바벨론이 둘로 나뉘어서 한쪽은 메대가, 한쪽은 바사가 차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바벨론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메대와 바사 연합군이 공격해 왔습니다. 성밖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리컵을 땅바닥에 던지면 깨져서 산산조각 나서 형체도 없어집니다. 마찬가지로 바벨론이 메대와 바사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서 산산조각이 나서 나뉘어진다는 뜻입니다. 산산조각이 나서 멸망한다는 뜻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과연 어떠한 심판을 내리실지, 내가 행한 그대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을 비디오로 찍어서 사람들 앞에 보여준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어떻겠습니까? 잘라 버리고 싶은 장면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많은 지적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뿐 아니라 마음속의 생각과 동기를 감찰하십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바르고 의롭고 정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메네." 우리의 삶의 날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 앞에 23절 마지막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호흡을 주장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생명과 호흡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생사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계수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늘 생각하면서 언제 하나님 앞에 설지라도 떳떳하고 기쁜 마음으로 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데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저울질하고 계신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의롭게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저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여기 승동교회 교인들의 모든 의를 합쳐도 부족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의를 합친다 해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 공로가 아니면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비록 나는 부족하지만 내 곁에 계셔서 나를 변호해주시고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나의 오른 손을 높이 들어주실 분이 계십니다. 누구십니까?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변호사 예수님이 우리의 손을 높이 들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우리는 못 삽니다. 오늘도 주님의 손을 든든히 붙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의지하는 복된 하루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니엘 5장이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벨사살이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교만해서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했습니다. 다니엘서 5장이 어떻게 끝나고 있습니까? 벨사살이 어떻게 끝나고 있습니까? 비참하게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잠 16:18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교만이 있으면 그 뒤에는 반드시 패망이 뒤따라옵니다.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거만함이 앞에 있으면 뒤에는 반드시 넘어짐이 있습니다.
다니엘서 5장이 가르쳐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벨사살 임금이 얼마나 교만했습니까?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나를 낮추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게 되면 벨사살과 같이 패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자기를 높이려 하지 말고 마음을 낮추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시기를 다시 한번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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