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강 꿈의 해석1(2:36-38)
2:36-38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을 꾸었습니다. 거대한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곧 이어서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그 신상을 부서뜨리고, 그 신상은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광경을 꿈 가운데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본 신상은 인간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은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보여주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보았던 내용을 말한 뒤에 그 꿈에 대한 해석을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해석을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다.
36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꿈이 이러한즉." 아마도 느부갓네살 임금은 다니엘이 정확하게 자기가 꾸고 나서 잊어버렸던 꿈 내용을 설명할 때 경탄해 마지않았을 것입니다. 또 두려운 생각에 계속해서 다니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거대한 신상을 보았는데 돌이 나타나 사정없이 무너뜨리니 아무리 지각없는 사람일지라도 이것이 좋지 않은 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겠지요? 느부갓네살 임금은 꿈 때문에 마음에 번민을 가지고 잠을 못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런 두려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다니엘이 어떻게 해석해주고 있는지 보십시다. 36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그 꿈이 이러한즉"이란 말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옵니까? "내가"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 제가 일전에 설명한 적이 있지요? "내가! 내가!"를 앞세우면 뭐가 끊어진다고 했습니까? 허리가 끊어진다고 했습니다. 큰일났습니다. 다니엘이 "내가"를 앞세우다가 허리가 부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번역이 잘못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성경에 보면 "내가"라는 말 위에 아라비아 숫자 1이 작게 적혀 있습니다. 관주 1을 보라는 뜻입니다. 관주1을 보면 "히"라고 해서 "우리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부분에서는 아람 방언으로 하고 있는데 본래는 "내가"가 아니라 "우리가"라는 말입니다. 복수입니다. "우리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는 말입니다. 다니엘이 어떤 사람인데 자기를 내세우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누구이겠습니까? 물론 한쪽은 다니엘입니다. 그럼 또 한쪽은 누구이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지금 다니엘에게 은밀한 것을 보여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이 여기서 "우리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나를 내세운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저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것을 전달하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게 은밀한 것을 보여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왕에게 전달할 뿐입니다." 그런 뜻으로 "우리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원문에는 "우리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석을 하는지 보십시다. 지금 느부갓네살 임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다니엘의 삶의 스타일이 어떠하다고 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 둘째는 이웃을 높여주고 세워주고, 세번째로 나를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여기서도 왕을 세워주고 있습니다. 마음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왕을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세워주고 있습니다.
왕을 어떻게 세워주고 있는지 보십시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세 가지로 왕을 세워주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느부갓네살 임금을 안심시키고 위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37절에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고 했습니다. 사실 주변에 있는 수많은 나라 임금들이 다 느부갓네살 임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베니게의 왕도 무릎을 꿇었고, 수리아의 왕도 무릎을 꿇었고, 유다 왕도 무릎을 꿇었고, 애굽 왕까지도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니 느부갓네살 임금은 열왕의 왕이요, 왕 중의 왕입니다. 이렇게 왕을 높여주었습니다.
두번째는,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왕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모든 사람에게 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특별한 사람에게 수많은 나라를 다 정복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권세를 주었고, 능력도 주었고, 영광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정치적인 세력 뿐만 아니라 38절에 보니까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즉 자연 세계까지 다스릴 수 있는 놀라운 권세를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특별히 선택하셨습니다. 왕을 하나님께 선택받은 귀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왕을 안심시켰습니다.
그 다음에 세번째로, 38절 끝 부분을 보면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왕은 꼬리가 아니라 머리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온몸을 지배하는 것처럼 왕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왕은 머리이되 무슨 머리라고 했습니까? 금머리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신상을 보았는데 머리가 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금을 좋아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느부갓네살 임금은 바벨론 도성을 golden city, 황금 도시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에서 세금을 거둘 때도 금으로 거두었습니다. 또 고고학적인 발굴에 의하면 느부갓네살 임금이 앉아서 통치하던 보좌도 황금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3:1을 보십시오. 느부갓네살 임금이 무엇으로 신상을 만들었습니까?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꿈에 본 것은 머리는 금이고 가슴과 팔들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었습니다. 그런데 금을 너무 좋아해서 신상을 만들 때 전체를 다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라는 사람이 느부갓네살이 죽고 나서 90년 정도 되었을 때 바벨론을 방문했습니다. 가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자기 평생에 그렇게 많은 금은 처음 보았다고 기술해놓은 글이 있습니다. 그 정도로 느부갓네살과 바벨론 사람들은 금을 좋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말씀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욥의 세 친구들과는 달랐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위로한다고 해놓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따지고 정죄하고 비판함으로 말미암아 욥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처해 있는 어려운 입장을 헤아리고 말로 우선 느부갓네살 임금을 위로하고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이 마음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웃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회개하라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세워주고 따뜻한 말로 위로해주고 감싸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따뜻한 마음을 여러분이 가지게 되시기 바랍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3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누가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느부갓네살 왕에게 주었습니까? 하늘의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이 본 신상이 아무리 거대하고 크다 할지라도, 또 머리가 느부갓네살 임금을 뜻한다 할지라도 그 위에 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1 말씀부터 그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느부갓네살 임금의 권세가 대단해서 자기 힘으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에워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누가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2절에 보니까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임금을 도구로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니엘이 우회적으로 빙 둘러서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느부갓네살 임금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4:28을 보십시다.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 새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내가, 내가 하다가 결국은 허리가 부러지지 않았습니까? 정신이 빠져 버렸습니다. 미쳐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벌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늘 겸손하게 내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말고 늘 하나님 안에서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내가 잘나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나지만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내게 힘주셔서 나를 귀하게 사용해주시는구나 하는 것을 잊지 말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우리 모든 행사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을 꾸었습니다. 거대한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곧 이어서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그 신상을 부서뜨리고, 그 신상은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광경을 꿈 가운데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본 신상은 인간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은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보여주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보았던 내용을 말한 뒤에 그 꿈에 대한 해석을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해석을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다.
36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꿈이 이러한즉." 아마도 느부갓네살 임금은 다니엘이 정확하게 자기가 꾸고 나서 잊어버렸던 꿈 내용을 설명할 때 경탄해 마지않았을 것입니다. 또 두려운 생각에 계속해서 다니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거대한 신상을 보았는데 돌이 나타나 사정없이 무너뜨리니 아무리 지각없는 사람일지라도 이것이 좋지 않은 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겠지요? 느부갓네살 임금은 꿈 때문에 마음에 번민을 가지고 잠을 못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런 두려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다니엘이 어떻게 해석해주고 있는지 보십시다. 36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그 꿈이 이러한즉"이란 말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옵니까? "내가"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 제가 일전에 설명한 적이 있지요? "내가! 내가!"를 앞세우면 뭐가 끊어진다고 했습니까? 허리가 끊어진다고 했습니다. 큰일났습니다. 다니엘이 "내가"를 앞세우다가 허리가 부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번역이 잘못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성경에 보면 "내가"라는 말 위에 아라비아 숫자 1이 작게 적혀 있습니다. 관주 1을 보라는 뜻입니다. 관주1을 보면 "히"라고 해서 "우리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부분에서는 아람 방언으로 하고 있는데 본래는 "내가"가 아니라 "우리가"라는 말입니다. 복수입니다. "우리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는 말입니다. 다니엘이 어떤 사람인데 자기를 내세우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누구이겠습니까? 물론 한쪽은 다니엘입니다. 그럼 또 한쪽은 누구이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지금 다니엘에게 은밀한 것을 보여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이 여기서 "우리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나를 내세운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저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것을 전달하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게 은밀한 것을 보여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왕에게 전달할 뿐입니다." 그런 뜻으로 "우리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원문에는 "우리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석을 하는지 보십시다. 지금 느부갓네살 임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다니엘의 삶의 스타일이 어떠하다고 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 둘째는 이웃을 높여주고 세워주고, 세번째로 나를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여기서도 왕을 세워주고 있습니다. 마음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왕을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세워주고 있습니다.
왕을 어떻게 세워주고 있는지 보십시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세 가지로 왕을 세워주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느부갓네살 임금을 안심시키고 위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37절에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고 했습니다. 사실 주변에 있는 수많은 나라 임금들이 다 느부갓네살 임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베니게의 왕도 무릎을 꿇었고, 수리아의 왕도 무릎을 꿇었고, 유다 왕도 무릎을 꿇었고, 애굽 왕까지도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니 느부갓네살 임금은 열왕의 왕이요, 왕 중의 왕입니다. 이렇게 왕을 높여주었습니다.
두번째는,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왕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모든 사람에게 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특별한 사람에게 수많은 나라를 다 정복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권세를 주었고, 능력도 주었고, 영광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정치적인 세력 뿐만 아니라 38절에 보니까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즉 자연 세계까지 다스릴 수 있는 놀라운 권세를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특별히 선택하셨습니다. 왕을 하나님께 선택받은 귀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왕을 안심시켰습니다.
그 다음에 세번째로, 38절 끝 부분을 보면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왕은 꼬리가 아니라 머리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온몸을 지배하는 것처럼 왕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왕은 머리이되 무슨 머리라고 했습니까? 금머리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신상을 보았는데 머리가 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금을 좋아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느부갓네살 임금은 바벨론 도성을 golden city, 황금 도시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에서 세금을 거둘 때도 금으로 거두었습니다. 또 고고학적인 발굴에 의하면 느부갓네살 임금이 앉아서 통치하던 보좌도 황금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3:1을 보십시오. 느부갓네살 임금이 무엇으로 신상을 만들었습니까?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꿈에 본 것은 머리는 금이고 가슴과 팔들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었습니다. 그런데 금을 너무 좋아해서 신상을 만들 때 전체를 다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라는 사람이 느부갓네살이 죽고 나서 90년 정도 되었을 때 바벨론을 방문했습니다. 가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자기 평생에 그렇게 많은 금은 처음 보았다고 기술해놓은 글이 있습니다. 그 정도로 느부갓네살과 바벨론 사람들은 금을 좋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말씀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욥의 세 친구들과는 달랐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위로한다고 해놓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따지고 정죄하고 비판함으로 말미암아 욥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처해 있는 어려운 입장을 헤아리고 말로 우선 느부갓네살 임금을 위로하고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이 마음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웃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회개하라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세워주고 따뜻한 말로 위로해주고 감싸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따뜻한 마음을 여러분이 가지게 되시기 바랍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3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누가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느부갓네살 왕에게 주었습니까? 하늘의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이 본 신상이 아무리 거대하고 크다 할지라도, 또 머리가 느부갓네살 임금을 뜻한다 할지라도 그 위에 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1 말씀부터 그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느부갓네살 임금의 권세가 대단해서 자기 힘으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에워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누가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2절에 보니까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임금을 도구로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니엘이 우회적으로 빙 둘러서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느부갓네살 임금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4:28을 보십시다.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 새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내가, 내가 하다가 결국은 허리가 부러지지 않았습니까? 정신이 빠져 버렸습니다. 미쳐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벌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늘 겸손하게 내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말고 늘 하나님 안에서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내가 잘나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나지만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내게 힘주셔서 나를 귀하게 사용해주시는구나 하는 것을 잊지 말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우리 모든 행사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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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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