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강 신상에 대한 꿈(2:31-35)
2:31-35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다니엘에게서 알고자 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꾼 꿈을 알고 싶은 것이었고, 또 한 가지는 그 꿈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오늘 본문에서 우선 느부갓네살 임금이 꾸었던 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왕이 거대한 신상을 보았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고, 두번째 장면은 거대한 신상이 뜨인 돌에 의해서 박살이 나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장면입니다.
31절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왕이여 내가 보니 큰 신상이 서 있나이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관점에서, 왕의 입장에서 다니엘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생각이 참 깊습니다. 나이가 기껏해야 15살, 16살로 지금 우리 식으로 보면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1학년 정도밖에 안되는 소년입니다. 그런데 자기 입장에서 말하지 않고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고 하면서 왕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눈높이 교육, 눈높이 설명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생각이 얼마나 깊습니까?
오늘 이 아침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이 아름다운 마음이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내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겠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생각이 얼마나 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깊은 생각을 심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행동을 하든지 내 입장에서 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또 베풀어주는 모습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계속 보십시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라고 했습니다. 지금 왕 앞에 신상이 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자세하게 정확하게 다 관찰할 수 있는 위치입니다. 어느 하나라도 놓칠 수 없습니다.
그 신상의 크기가 작다고 했습니까? 크다고 했습니까?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크기가 컸습니다. 그러면 그 신상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3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임금이 자기가 꿈에 보았던 신상을 그대로 만들었습니다. 3:1을 보십시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고는 육십 규빗이요 광은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도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높이가 육십 규빗입니다. 규빗은 사람의 팔꿈치에서 손끝까지를 말합니다. 사람마다 그 길이가 다르지만 대략 평균적으로 45㎝ 정도 됩니다. 계산하기 편하게 50㎝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높이가 300㎝, 즉 3m 정도입니다. 3m는 10층 건물쯤 됩니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큰 것이지요. 그런 큰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신상은 "광채가 특심하며"라고 했습니다. 머리가 정금으로 만들어졌고, 가슴과 팔은 은으로 만들어져 있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 종아리와 발의 일부는 철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신상이었습니다. 햇빛이 찬란하게 비칠 때 번쩍번쩍 빛이 나는데 한 가지로 만들어졌다면 덜 현란하겠지요? 금으로, 은으로, 놋으로, 철로 만들어졌으니 그 빛이 얼마나 특심했겠습니까? 현란했겠습니까?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을 것입니다.
또 그 다음을 보세요.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3:1을 보겠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고는 육십 규빗이요 광은 여섯 규빗이라."
너비가 여섯 규빗이라고 했습니다. 너비에 비해서 높이가 열 배가 큽니다. 저를 보세요. 제 어깨 너비가 대략 40㎝ 정도 됩니다. 사람은 어깨에 비해 키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키가 좀 작은, 160㎝ 정도 되는 사람은 4배가 될 것이고, 키가 큰 사람은 5배 정도일 것입니다. 어깨보다 키가 4배 내지 5배 정도 큰 모양이 정상인데 지금 느부갓네살 임금이 보고 만든 신상은 어깨에 비해서 키가 열 배입니다. 어떤 형상이겠습니까? 제 몸에 비추어볼 때 어깨는 그대로고, 키가 지금 제 키의 두 배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보기가 좋겠습니까, 안 좋습니까? 보기가 아주 비정상적입니다. 마치 야자나무나 우리 나라 63빌딩처럼 생각하시면 됩니다. 모양이 눈에 익숙지 않아 두렵고 보기 싫은 흉측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32절을 보세요. 그 우상의 머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까? 순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38절 제일 끝 부분을 보니까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신상의 머리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바벨론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역사적으로 금을 좋아하는 나라였습니다. 세금을 거둘 때에도 금으로 거두었고, 또 느부갓네살 임금의 보좌가 순금이라고 합니다. 순수한 금으로 만든 보좌에 앉아서 통치했다고 합니다. 금을 참 좋아하는 나라였습니다.
그 다음에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라고 했습니다. 팔은 두 개입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무슨 나라로 갈라졌습니까? 메대와 바사로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메대와 바사는 은을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세금을 거둘 때도 은으로 거두었습니다. 은은 메대와 바사를 상징합니다.
그 다음에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라고 했습니다. 배와 넓적다리는 무슨 나라입니까? 메대 바사 뒤에 무슨 나라가 생겼습니까? 헬라 제국을 상징합니다. 헬라 나라 군인들을 사진이나 유물로 보면 무엇으로 만든 투구에, 무엇으로 만든 흉배에, 무엇으로 만든 방패, 무엇으로 만든 창을 들고 있습니까? 놋입니다. 놋은 헬라 제국을 상징합니다.
그 다음에 33절을 보세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헬라 나라 뒤에 무슨 나라가 섰습니까? 로마입니다. 로마 나라는 철처럼 강했습니다. 그런데 뒤에 로마 나라가 여러 나라로 갈라지지 않았습니까?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는 말은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머리는 금인데 그 아래는 은, 그 아래는 놋, 또 그 아래는 철이라고 했습니다. 갈수록 가치가 더해갑니까? 줄어듭니까? 줄어듭니다. 여러분은 이런 모습이 되면 안됩니다. 갈수록 가치 있는 존재, 처음보다 나중이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거꾸로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사울 임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셔서 왕으로 세워주셨는데 갈수록 못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가룟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사랑 받고 열두 제자 가운데 뽑혀서 회계의 직분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못했습니다. 그런 존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갈수록 좋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다니엘과 같이 동편에서 솟아오르는 해처럼 갈수록 강성해지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도 그렇습니다. 종살이 했습니다.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나중에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여러분의 삶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낫고,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낫고, 갈수록 더욱 창대해지는 여러분의 삶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야 합니다. 사업도 흥하시고, 믿음도 쑥쑥 더 자라시고, 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보았던 신상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머리가 무겁습니까? 발이 더 무겁습니까? 순금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머리가 무겁습니다. 가만히 놓아두어도 무너지기 쉬운 형상입니다. 세상 나라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상 원리가 그렇습니다.
물질 의지할 것 없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집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친구가 빌딩을 하나 가지고 있었답니다. 거기서 나오는 세만 받아서도 얼마든지 편안하게 여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데도 점심은 늘 자장면을 먹고, 옷 하나 사 입지 않고 세를 부지런히 모아서 그 빌딩 맞은편에 땅을 사서 융자를 얻고 해서 빌딩을 또 하나 세웠습니다. 그 사람의 하는 일이라고는 이 빌딩에서 저 빌딩으로, 저 빌딩에서 이 빌딩으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왔다갔다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었냐 하면 왔다갔다하다가 차에 치어서 죽었다고 합니다. 점심은 자장면을 먹고 너덜너덜 낡은 옷을 입으면서 돈을 모은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죽을 때 가지고 갈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물질은 써야 합니다. 값있게 쓰시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야기 하나 하고 마치겠습니다. 어떤 마을에 한 사나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나이에게는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첫번째 친구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첫번째 친구를 가까이 하려고 했습니다. 두번째 친구는 첫번째 친구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소중히 여기고 가까이 하려고 애썼습니다. 세번째 친구는 만나기만 하면 이래라저래라 요구만 하고 귀찮습니다. 그래서 친구는 친구지만 될 수 있으면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루는 왕궁에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왕의 법정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틀림없이 내가 무슨 잘못한 것이 있구나. 왕이 나를 처벌하기 위해서 출두 명령을 내렸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자기가 제일 친하다고 생각하는 첫번째 친구에게 가서 왕궁에 함께 가줄 수 있느냐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첫번째 친구가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낙심했습니다.
두번째 친구에게 찾아갔습니다. 하소연을 하면서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두번째 친구가 말했습니다. "좋다, 내가 같이 가주기는 하겠는데 왕궁의 문까지만 같이 가겠다. 그 다음은 너 혼자 들어가라." 실망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친구에게 갔습니다. 별 기대도 하지 않고 내가 이러이러한데 함께 갈 수 있느냐고 했더니 세번째 친구가 두말없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물론이지. 내가 함께 가주지. 내가 자네에 대해서 다 알고 있지 않나? 내가 왕에게 가서 자네가 틀림없이 결백한 사람이라고 말하겠네." 그러면서 따라나섰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왕의 법정이라는 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심판대입니다. 누구나 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친구는 누구입니까? 물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물질은 절대로 같이 따라가 주지 못합니다. 물질은 아무리 쌓아도 소용없습니다. 바벨탑과 마찬가지입니다.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물질을 너무 의지하지 마세요.
그 다음에 두번째 친구는 누구겠습니까? 우리의 친척, 친구들입니다. 우리 부모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무덤까지는 따라와 줄 수 있습니다. 무덤에 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애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세번째 친구는 누구겠습니까? 탈무드에서는 지혜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세번째 친구는 예수님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변호해주시고 우리의 두 손을 높이 들어주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 한 분만 의지하면서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면서 따라갈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천국까지 안전하게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앙망하면서 걸어가시는 여러분과 저의 복된 발걸음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다니엘에게서 알고자 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꾼 꿈을 알고 싶은 것이었고, 또 한 가지는 그 꿈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오늘 본문에서 우선 느부갓네살 임금이 꾸었던 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왕이 거대한 신상을 보았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고, 두번째 장면은 거대한 신상이 뜨인 돌에 의해서 박살이 나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장면입니다.
31절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왕이여 내가 보니 큰 신상이 서 있나이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관점에서, 왕의 입장에서 다니엘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생각이 참 깊습니다. 나이가 기껏해야 15살, 16살로 지금 우리 식으로 보면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1학년 정도밖에 안되는 소년입니다. 그런데 자기 입장에서 말하지 않고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고 하면서 왕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눈높이 교육, 눈높이 설명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생각이 얼마나 깊습니까?
오늘 이 아침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이 아름다운 마음이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내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겠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생각이 얼마나 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깊은 생각을 심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행동을 하든지 내 입장에서 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또 베풀어주는 모습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계속 보십시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라고 했습니다. 지금 왕 앞에 신상이 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자세하게 정확하게 다 관찰할 수 있는 위치입니다. 어느 하나라도 놓칠 수 없습니다.
그 신상의 크기가 작다고 했습니까? 크다고 했습니까?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크기가 컸습니다. 그러면 그 신상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3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임금이 자기가 꿈에 보았던 신상을 그대로 만들었습니다. 3:1을 보십시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고는 육십 규빗이요 광은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도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높이가 육십 규빗입니다. 규빗은 사람의 팔꿈치에서 손끝까지를 말합니다. 사람마다 그 길이가 다르지만 대략 평균적으로 45㎝ 정도 됩니다. 계산하기 편하게 50㎝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높이가 300㎝, 즉 3m 정도입니다. 3m는 10층 건물쯤 됩니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큰 것이지요. 그런 큰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신상은 "광채가 특심하며"라고 했습니다. 머리가 정금으로 만들어졌고, 가슴과 팔은 은으로 만들어져 있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 종아리와 발의 일부는 철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신상이었습니다. 햇빛이 찬란하게 비칠 때 번쩍번쩍 빛이 나는데 한 가지로 만들어졌다면 덜 현란하겠지요? 금으로, 은으로, 놋으로, 철로 만들어졌으니 그 빛이 얼마나 특심했겠습니까? 현란했겠습니까?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을 것입니다.
또 그 다음을 보세요.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3:1을 보겠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고는 육십 규빗이요 광은 여섯 규빗이라."
너비가 여섯 규빗이라고 했습니다. 너비에 비해서 높이가 열 배가 큽니다. 저를 보세요. 제 어깨 너비가 대략 40㎝ 정도 됩니다. 사람은 어깨에 비해 키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키가 좀 작은, 160㎝ 정도 되는 사람은 4배가 될 것이고, 키가 큰 사람은 5배 정도일 것입니다. 어깨보다 키가 4배 내지 5배 정도 큰 모양이 정상인데 지금 느부갓네살 임금이 보고 만든 신상은 어깨에 비해서 키가 열 배입니다. 어떤 형상이겠습니까? 제 몸에 비추어볼 때 어깨는 그대로고, 키가 지금 제 키의 두 배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보기가 좋겠습니까, 안 좋습니까? 보기가 아주 비정상적입니다. 마치 야자나무나 우리 나라 63빌딩처럼 생각하시면 됩니다. 모양이 눈에 익숙지 않아 두렵고 보기 싫은 흉측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32절을 보세요. 그 우상의 머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까? 순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38절 제일 끝 부분을 보니까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신상의 머리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바벨론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역사적으로 금을 좋아하는 나라였습니다. 세금을 거둘 때에도 금으로 거두었고, 또 느부갓네살 임금의 보좌가 순금이라고 합니다. 순수한 금으로 만든 보좌에 앉아서 통치했다고 합니다. 금을 참 좋아하는 나라였습니다.
그 다음에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라고 했습니다. 팔은 두 개입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무슨 나라로 갈라졌습니까? 메대와 바사로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메대와 바사는 은을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세금을 거둘 때도 은으로 거두었습니다. 은은 메대와 바사를 상징합니다.
그 다음에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라고 했습니다. 배와 넓적다리는 무슨 나라입니까? 메대 바사 뒤에 무슨 나라가 생겼습니까? 헬라 제국을 상징합니다. 헬라 나라 군인들을 사진이나 유물로 보면 무엇으로 만든 투구에, 무엇으로 만든 흉배에, 무엇으로 만든 방패, 무엇으로 만든 창을 들고 있습니까? 놋입니다. 놋은 헬라 제국을 상징합니다.
그 다음에 33절을 보세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헬라 나라 뒤에 무슨 나라가 섰습니까? 로마입니다. 로마 나라는 철처럼 강했습니다. 그런데 뒤에 로마 나라가 여러 나라로 갈라지지 않았습니까?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는 말은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머리는 금인데 그 아래는 은, 그 아래는 놋, 또 그 아래는 철이라고 했습니다. 갈수록 가치가 더해갑니까? 줄어듭니까? 줄어듭니다. 여러분은 이런 모습이 되면 안됩니다. 갈수록 가치 있는 존재, 처음보다 나중이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거꾸로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사울 임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셔서 왕으로 세워주셨는데 갈수록 못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가룟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사랑 받고 열두 제자 가운데 뽑혀서 회계의 직분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못했습니다. 그런 존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갈수록 좋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다니엘과 같이 동편에서 솟아오르는 해처럼 갈수록 강성해지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도 그렇습니다. 종살이 했습니다.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나중에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여러분의 삶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낫고,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낫고, 갈수록 더욱 창대해지는 여러분의 삶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야 합니다. 사업도 흥하시고, 믿음도 쑥쑥 더 자라시고, 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보았던 신상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머리가 무겁습니까? 발이 더 무겁습니까? 순금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머리가 무겁습니다. 가만히 놓아두어도 무너지기 쉬운 형상입니다. 세상 나라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상 원리가 그렇습니다.
물질 의지할 것 없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집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친구가 빌딩을 하나 가지고 있었답니다. 거기서 나오는 세만 받아서도 얼마든지 편안하게 여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데도 점심은 늘 자장면을 먹고, 옷 하나 사 입지 않고 세를 부지런히 모아서 그 빌딩 맞은편에 땅을 사서 융자를 얻고 해서 빌딩을 또 하나 세웠습니다. 그 사람의 하는 일이라고는 이 빌딩에서 저 빌딩으로, 저 빌딩에서 이 빌딩으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왔다갔다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었냐 하면 왔다갔다하다가 차에 치어서 죽었다고 합니다. 점심은 자장면을 먹고 너덜너덜 낡은 옷을 입으면서 돈을 모은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죽을 때 가지고 갈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물질은 써야 합니다. 값있게 쓰시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야기 하나 하고 마치겠습니다. 어떤 마을에 한 사나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나이에게는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첫번째 친구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첫번째 친구를 가까이 하려고 했습니다. 두번째 친구는 첫번째 친구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소중히 여기고 가까이 하려고 애썼습니다. 세번째 친구는 만나기만 하면 이래라저래라 요구만 하고 귀찮습니다. 그래서 친구는 친구지만 될 수 있으면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루는 왕궁에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왕의 법정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틀림없이 내가 무슨 잘못한 것이 있구나. 왕이 나를 처벌하기 위해서 출두 명령을 내렸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자기가 제일 친하다고 생각하는 첫번째 친구에게 가서 왕궁에 함께 가줄 수 있느냐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첫번째 친구가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낙심했습니다.
두번째 친구에게 찾아갔습니다. 하소연을 하면서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두번째 친구가 말했습니다. "좋다, 내가 같이 가주기는 하겠는데 왕궁의 문까지만 같이 가겠다. 그 다음은 너 혼자 들어가라." 실망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친구에게 갔습니다. 별 기대도 하지 않고 내가 이러이러한데 함께 갈 수 있느냐고 했더니 세번째 친구가 두말없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물론이지. 내가 함께 가주지. 내가 자네에 대해서 다 알고 있지 않나? 내가 왕에게 가서 자네가 틀림없이 결백한 사람이라고 말하겠네." 그러면서 따라나섰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왕의 법정이라는 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심판대입니다. 누구나 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친구는 누구입니까? 물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물질은 절대로 같이 따라가 주지 못합니다. 물질은 아무리 쌓아도 소용없습니다. 바벨탑과 마찬가지입니다.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물질을 너무 의지하지 마세요.
그 다음에 두번째 친구는 누구겠습니까? 우리의 친척, 친구들입니다. 우리 부모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무덤까지는 따라와 줄 수 있습니다. 무덤에 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애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세번째 친구는 누구겠습니까? 탈무드에서는 지혜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세번째 친구는 예수님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변호해주시고 우리의 두 손을 높이 들어주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 한 분만 의지하면서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면서 따라갈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천국까지 안전하게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앙망하면서 걸어가시는 여러분과 저의 복된 발걸음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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