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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강)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18-25)

by 【고동엽】 2022. 4. 12.

(제6강)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18-25)

 

  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아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후 미국 정부는 알제리아에 군함을 보내 그의 유해를 본국으로 모셔 오도록 국무회의에서 의결을 했습니다.
  군함이 유해를 싣고 뉴욕에 도착하는 그 시간 대통령이하 국무위원 그리고 다수의 국회의원과 수많은 군중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그 유해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분은 유명한 장군도 정치가도 발명가도 경제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그분이 누구이기에 이렇게 많은 유명인들이 그의 유해를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고 하여도~' '홈 스위트 홈'을 작사한 '죤 하워드 페인' 바로 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작사해서 가정의 귀중함을 온 세상에게 전했다는 공로가 인정되어 그처럼 그의 유해를 소중하게 모신 것입니다. /할/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제일 먼저 세우신 단위는 바로 가정입니다. 여러분 국가가 있기 전에 먼저 가정을 세웠고, 교회가 있기 전에 먼저 가정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이 가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최초의 소단위로 주셨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은 아늑한 안식처요, 사랑의 보금자리입니다. 가정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요, 진정한 사랑이 오가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최초로 가정 제도를 허락하신 장입니다. ◀제목소개!▶

 

  오늘은 가정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이혼이란 말은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천에 하나 그 당시 이혼한 사람들을 보면 무슨 중대한 잘못을 범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현대인들은 가정을 파괴하는 것을 보통으로 알고 있으며 이혼한 사람들조차도 이혼한 사실에 대하여 그저 감기 한 번 앓고 난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국가나 사회나 교회의 모든 기본 단위가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파괴는 국가의 파괴요 가정의 파괴는 사회의 파괴요, 교회의 파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을 절대로 지켜야 합니다.
  시127-128편을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 하여 그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노래가 대부분이 가정 노래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데 왜 가정 노래를 부를까요? 한마디로 가정에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을 지켰던 사람들은 성전에 올라갈 때, 떳떳하게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며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정을 주시고 맨 먼저 가정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신앙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가정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사를 보면 국가가 망할 때 맨 먼저 어디가 무너지는지 아십니까? 가정이 무너지고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로마가 말할 때 집은 있어도 가정이 붕괴되었다고 합니다. 바벨론의 멸망도 가정 붕괴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열 방이 무너지는 원인은 가정의 붕괴입니다. 로마의 예를 봅시다. 로마가 강해지자 많은 나라에서 많은 노예를 붙잡아 왔습니다. 그 결과 로마의 인구보다도 노예의 인구가 열 배나 더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되니 그들은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을 노예가 해줍니다. 그들은 술과 노래로, 여자로 방탕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의 귀족들이 많은 노예들을 자기들의 성의 유희 물로 삼아 타락합니다. 남자들이 그 모양이니 여자들도 덩달아 방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집은 있으나 가정은 없어진 것입니다.
  지금 미국도 수많은 가정이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한 가정에 배다른 형제, 씨 다른 형제들로 가득 찼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툭하면 이혼하고 새 가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편의 자식과 여자가 데리고 온 자녀들이 한 가정에서 살다보니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나고 갈등과 불화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뜻 있는 지도층에서는 미국을 살리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슨 운동입니까? '청교도 정신으로 돌아가자! 성경으로 돌아가자!' 입니다.
  행10장을 보면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가정은 바로 고넬료의 가정으로 그는 로마 군인으로서 점령지인 유대나라에 파견되어 와 있던 백부장으로 장교였습니다.
  고넬료는 충실한 군인이었고 훌륭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흔히들 자식 때문에 속상해 하는 부모들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만 부모 때문에 속상해서 탄식하고 인생을 망처 가고 있는 자식들이 이외로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의 범죄와 탈선 그리고 가출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꼽을 수 있습니다만 그 중에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그 가정의 보무의 탈선과 이혼과 무관심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1995년도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밤 남의 집 담을 넘어 들어가 잠자던 부부를 흉기로 위협하여 전기 줄로 묶어 놓은 후 강도 짓을 하다가 붙잡힌 10대 두 명을 취조하던 수사관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이유는 그 범인들의 아버지가 유명한 전직 장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타락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 집안에 살고 있긴 하지만 부모는 별거 상태였고, 아버지는 딸 같은 여자를 첩으로 거느리고 있는가 하면 어머니는 춤바람에 남자 바람까지 나니 미처 버렸고, 살림은 가정부가 하고, 따라서 그 아이는 고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아이는 부모에 대한 반발로 가출을 하고 닥치는 대로 못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부모는 가정의 기둥입니다. 기둥이 썩어 흔들리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벽은 쌓고 다시 바르면 되지만 기둥은 썩으면 무너집니다.
  행10:2절에 보면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는 가장이 경건했기 때문에 온 가정이 경건했고, 가장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했기 때문에 가정 신앙이 흔들리지 않은 것입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장교의 신분이면서도 베드로를 자기 가정에 청하여 온 가족과 일가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놓고 가정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행10:25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로마 사람들은 자기들이 숭배하는 신에게 무릎을 꿇고 경배를 합니다. 그 신은 누구입니까? 로마 황제입니다. 그런데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절했다는 것은 숭배의 대상으로 절한 것이 아니고 존경의 대상으로 절한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기다렸던 고넬료 가정이 그 날 밤에 베드로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성령의 불이 임하여 최초로 이방사람들이 예수 믿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정으로 변한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부모가 성령을 충만히 받고 자식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형제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그 가정은 자동적으로 '홈 스위트 홈'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성령은 '사랑하게 하는 영이며, 화평케 하는 영이며, 온유하게 하는 영이며, 인내하게 하는 영'이므로 성령이 충만한 가정은 행복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믿/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원망이 감사로 변하고 미움이 사랑으로 변합니다. 다툼이 화해로, 실패가 성공으로 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최초로 행복의 보금자리로 가정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이 가정을 잘 지켜 나가고 다듬어 가고 가꾸어 나가고 보호 관리해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18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이 가만히 생각해 보고 '아! 내가 고독해서 못 살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가정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생을 위하여 창설하신 곳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혼자 생활하는 것을 보니 좋게 보이지 않았기에 그를 위하여 최고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 선물이 누구인가?' 하와입니다.
  그 후로 모든 것을 다 갖추어졌습니다. 먹을 것도 충분합니다. 보기 좋은 들판이며 아름다운 나무에 열매들이며 환경은 아주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다른 것이 있어도 자기와 진심으로 교제할 수 있는 대상이 없을 때 인간은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외국에 이민 간 사람들의 가장 심각한 병은 고독이란 병, 즉 향수병입니다. 미국에 가서 사는 사람들은 외로우면 L.A로 모인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주신 목적은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줄 때 다시 되돌아옵니다. /믿/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니라' 돕는 배필은 '조력자, 반려자'라는 말로 한마디로 '알맞은 짝'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남자가 굉장히 강한 것 같지만 여자가 계속 파헤치면 무너집니다. 이제 고인이 되어버린 국민배우 최진실이 이런 광고로 대 히트를 했습니다. '남자 길 드리기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광고로 굉장한 인기를 누린 적이 있었습니다.

  ▶가정은 어떤 곳인가?
  ⑴가정은 부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인격이 서로 만나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부간에도 몇 가지의 수칙이 필요합니다. 먼저 서로의 인격적 자존심에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최초의 보류는 인격적인 자존심입니다. 이 자존심 때문에 만날 사람을 안 만납니다. 먹어야 할 것도 안 먹고, 받아야 할 것도 안 받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교육에 대한 열등의식, 신체적인 조건에 대한 열등의식, 가정에 대한, 사회적인 지위에 대한, 누구든지 열등의식을 안 갖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심리학자들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열등의식을 꼬집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부는 상대방의 약점을 들쳐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약점을 감춰주고 장점을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인격적인 존재란 사랑을 먹고 자란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⑵부부는 서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지요? 그런데 그 보다 더 정확한 답은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관심입니다. 
  ⑶이해하고 동정하고 감싸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성격은 천태만상입니다. 왜 그런지 아시지요?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심한 사람, 대담한 사람, 성급한 사람, 여유 있는 사람들의 성격 등등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성격은 인간이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왜 저 사람은 나와 같지 않은지 몰라!' 짜증 부리지 말고 하나님이 저렇게 만들어 두셨으니 내가 이해해야지 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해심이 없는 부부는 언제나 갈등과 충돌이 일어납니다. 사도 바울은 엡5:22-23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모든 육체는 머리가 지배합니다. 한마디로 남편은 가정에 머리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질서입니다. 아무리 아내가 남편보다 머리가 좋고 판단력이 좋다 하더라도 남편을 무시하고 자기 앞서 활개 치면 그 가정은 무너집니다. 그렇다고 남편들은 군림하는 자세로 나오면 안 됩니다. 엡5:25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하나님께서 남편들에게 헌신적으로 아내를 사랑해야 할 것은 주님을 교회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죽기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⑷서로를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로 믿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여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아담이 원했기 때문에 여자와 살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생각하셔서 복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축복의 선물로 주셨습니다. /믿/
  사람들은 돈을 귀하게 여기고, 재물을 귀하게 여기고, 명예를 귀하게 여기지마는 남편에게는 아내 이상으로 귀한 것이 없고, 아내에게는 남편 이상으로 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로 믿으며 내 몸 이상으로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몸이 상하지 않고,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상호 노력을 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 감사해야 합니다.
  ⑸서로에게 부끄럼이 없는 진실한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 사이는 눈을 만족시켜 줄만큼 예쁘다고 해서 함께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귀를 만족시켜 줄만큼 노래를 잘한다고 해서 함께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좋은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진실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감추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 간에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⑹몸도 마음도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혼의 공식은 1+1=1 입니다. 두 개의 돌이 합쳐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두 개의 물방울이 합쳐 하나가 되는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는 함께 고통을 느끼고, 함께 영광을 누려야 합니다. 한 운명 속에서 살아가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가 고통을 당하는데 남편이 좋아한다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남편이 슬퍼하는데 아내가 즐거워하고 있다면 그 가정의 행복은 뜬구름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신뢰)으로, 사랑(희생)으로, 소망(꿈)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돕는 배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 돕는 배필은 '돕는 자'라는 말은 분명한데 오해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돕는 자의 원어 '에셀'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돕는 신하나 조수의 개념이 아니라 돕는 배필이라 하여 여자가 일방적으로 남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돕는 자 '에셀'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우실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왜 돕는 자로 두셨는가? 그것은 서로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에 들이 않을 만큼 그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서로의 허물을 거듭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싸주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시119편에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오' 이 말씀은 '그는 너희의 에셀이시요'입니다. 그러므로 돕는다는 것은 계급의 개념이 아니라 역할입니다. 남성은 아내의 도움으로 완성되고 여성 또한 남편의 도움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든 공동체 속에서 철저하게 도움을 요구하는 자이기보다는 돕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 서로를 주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나를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가족을 주신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나를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이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또한 사람이 돕는 자로 삶을 사는 것은 신의 성품,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늘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입니다.
  ▶어느 날 랍비 아케바에게 어떤 철학자가 물기를 '만일 그대의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사랑하신다면 어째서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랍비 아케바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을 행할 기회를 우리에게 베푸시기 위하여 가난한 자를 우리 곁에 있게 하였다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왜 많은 사람들을 선물로 주셨습니까? 왜 우리에게 가족을 선물로 주셨습니까?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행여나 그 가족 때문에 지금은 여러분이 힘들어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여러분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모릅니다. /아멘!/
  하나님이 허락하신 관계들 속에서 만일 여러분이 돕는 자의 마음을 포기했다면, 돕는 자 되기를 미룬다면, 여러분은 어쩌면 평생에 도움만 필요로 하다가 하나님의 성품에 동참하지도 못한 채 끝나 버릴 수 있습니다. 벧후1:7절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우리가 돕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빚을 갚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의 나 된 것은 부모님의 희생, 형제들의 희생, 선생님들의 도움, 주변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실 나의 나 된 것은 나 혼자 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제일 무식한 사람 중에 하나가 자기 잘 난 맛에 자신의 능력인 줄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돕는 자로 사는 사람은 마음에 고마움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부부와 부모와 자녀 모든 관계에서 고마움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고마움을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잘 나가는 남편의 마음속에 아내를 보며 '네 주제에 나 만나서 이 만큼 사는 줄 알라' 하고 무시하면 물론 힘든 것은 무시당하는 아내가 힘든 것 같지만 오히려 불행은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주변의 사람들이 여러분 때문에 행복하다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손가락으로 한 번 꼽아보십시오. 나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몇이나 됩니까? 또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은 몇이나 됩니까? 여러분, 우리 모두 서로 돕고 사는 이웃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19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이 내용도 여섯 째 날에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비평학자들은 앞에서 나왔는데 또 나오니 엉터리라고 합니다. 성경이 엉터리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무지해서 그런 것입니다. 앞서 있는 여섯 째 날을 확대해서 세밀하게 말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 앞으로도 종종 나옵니다.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하나님이 지으신 생물들을 아담 앞으로 데려다 놓으시고 이름을 지으라고 명하십니다. 여기서 이름을 짓는다는 의미는 성품을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꾀꼴꾀꼴하니 너는 꾀꼬리다, 멍멍 하니 너는 개다, 꿀꿀 하니 너는 돼지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일의 시작을 짐승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동물들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름은 그 존재를 알게 하는 표상입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이름 속에서 그 사람의 인격과 용모와 성격과 환경 등의 모든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명박 우리나라 대통령임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분이며 그분은 우리의 메시아며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름이 중요합니다. 아담은 짐승들에게 꼭 알맞은 이름을 지으라고 하신 것은 '이것을 너에게 준다. 너의 것이다. 그러니 잘 다스려서 잘 번식하도록 도와주어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동식물을 보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믿/

 

  ▶20-21절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본 절에서는 아담 혼자서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모든 것의 이름을 지어 놓고 보니 아담이 그것들을 혼자 바라보니 쓸쓸하게 보임으로 돕는 배필을, 다시 반복 강조한 것입니다.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하나님 품에서 그대로 잤다는 것입니다. 요즘 병원에서 수술할 때도 깊이 잠들게 한 후에 합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수술을 하시기 때문에 마취제 없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완벽한 외과의사 정형외과 의사가 되셔서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내신 후 완벽하게 낫게 하셨습니다. 갈비뼈는 부러지기도 잘하고 붓기도 잘 합니다. 오래 전에 제 친구가 교통사고도 갈빗대가 여덟 개가 부러졌다고 하기에 제 생각엔 이제 저 친구 끝장났구나? 생각했는데 한 두어 달 치료받더니 말짱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드신 것을 깊은 의미가 있다고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남자의 머리카락을 뽑아 여자를 만들었다면 여자가 남자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애를 먹을 것이고 또 남자의 발톱 중 하나를 뽑아 만들었다면 항상 남자에게 밟혀 가지고 천덕 거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처소인 심장이 있는 곳에 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신 것은 그 만큼 여자가 귀하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믿/
  ▶여러분, 사람을 수술할 때 마취제가 없다면 생살을 찢어야 하는 아픔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마취약은 지금부터 약 150년 전에 제임스 심프슨(1811-1870)이라는 사람이 발견했습니다.
  심프슨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빵을 굽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14살에 에든버러 의과대학에 들어가 산부인과 의사 과정을 밟아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늘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환자에게 고통을 덜어주며 치료하여 줄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발견을 하였는데 바로 오늘 본문인 21-22절입니다.
  그 때 그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셨다면 엄청난 수술이다. 대 수술이다. 그런데 아담이 아파하였다는 말이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아프지 않게 갈비뼈를 빼내실 수 있었을까?'
  심프슨은 감탄하면서 그 비결을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취제 개발 연구에 몰입하였습니다. 드디어 1847년 11월 사람을 마취시켰다가 깨어나게 하는 클로로포름이라는 마취약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약은 1853년 빅토리아 왕후가 분만할 때 사용하여 온 세계에 떠들썩하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영국 의사로서는 최고의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런데 심프슨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자들이 모여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어떤 제자가 물기를 '선생님! 지금까지 선생님이 발견하신 발견 중에 가장 큰 발견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이 때 심프슨이 대답하기를 '나의 가장 큰 발견은 내가 큰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를 구해 주신 큰 구세주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과연 큰 신앙 인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할/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본문은 자세히 보면 아담의 자기가 아내인 하와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선택이 아니고 맞이한 것,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기의 짝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몇 가지 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⑴남자의 몸에서 취한 일부분으로 여자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부부는 한 몸인 것을 가르치신 것이고, ⑵남자와 여자와 인격이 동등하다는 것과 ⑶남녀 두 인격체를 이 땅에 살면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며 격려해 주는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협력자라는 의미이며, ⑷갈비뼈로 여자를 지을 때 많은 여자를 창조하시지 않은 것을 일부일처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전11:3절에서 남녀의 인격은 동등한 것이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를 취했기 때문에 순서는 남자가 먼저라고 한 것입니다. /할/

 

  ▶23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아담이 하와를 보고 사랑의 고백을 하기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한 것은 곧 자기의 분신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아내와 남편에 정답게 오래 살면 얼굴이 비슷하게 닮고 말하는 것도 먹는 식성도 닮는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 말씀은 기쁨과 감격의 표현입니다. 아담은 모든 생물들의 이름을 다 지어준 후 짝끼리 정답게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고독하고 외로웠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하와를 주였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표현입니다.
  결혼은 인간 사회의 큰 기쁨이요 감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잠19:14절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하나님이 배필을 주셨고 가정을 하락하셨고 보증하셨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인류의 최초의 결혼식의 주례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에덴예식장에서 신랑아담과 신부하와의 주례사의 요지는 '한 몸을 이룰 지로다.'입니다. 그리고 아담의 답사는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어떤 사람은 어리석게도 이런 말을 합니다. '아 그렇다면 남자를 갈빗대가 하나 적어야 될 텐데 왜 다 있지? 엉터리다 믿을 수 없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담의 후손은 다 갈빗대가 있습니다. 다만 아담의 갈비뼈 하나만 취하신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여러분, 만약 자기 아버지가 갈빗대가 탈이 생겨 병원에서 수술하여 하나 빼내었다면 그가 낳은 아들의 갈빗대는 하나 모자라야 됩니까?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사고로 갈빗대 하나 없어져도 그의 아들들을 정상적인 갈빗대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담을 지으실 때 인간 골격을 섬세히 알아서 창조하신 완전 창조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그의 아내를 만들어 주시고 아담을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 살로 채워주셨습니다.
  '여자라 칭하리라' 남자란 말은 히브리어로 '이쉬'이고, 여자는 '이스솨'인데, 남자는 근본이요, 여자는 남자에게서 취했다는 뜻입니다.

 

  ▶24-25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남자가 부모를 떠난다는 말은 독립한다는 말입니다. 경제적으로 신앙적으로 독립해야 합니다.
  24절에서 우리는 가정의 기본적 단위가 남편과 아내 두 사람으로 시작됨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 부부를 보고 '둘이 아니고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십니다. 진실된 부부는 하나입니다. /믿/아멘!/
  ▶탈무드에 보면 몸뚱이는 하나인데 머리가 둘 달린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가 둘인지 하나인지 알아보려고 그 부모가 랍비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랍비는 막대기로 한쪽 머리를 세게 때렸습니다. 그랬더니 맞은 쪽 아이는 '아야' 하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데 다른 쪽 아이는 '히죽' 웃었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이 아이는 하나가 아니고 둘입니다.'라고 판정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이스의 왕인 아르메토스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왕은 신에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왕에게 운명의 신을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왕 대신 죽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사정했더니 거절당했습니다. 아첨하던 신자들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그들에게서도 거절을 당했습니다. 모두 다 왕 대신 죽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왕 대신 죽을 것을 자청했습니다. 운명의 신을 뜨거운 이 부부의 사랑을 보고 감동해 그를 부부를 더 오래 살도록 축복해 주셨다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가장 가까운 친척이 누구입니까? 부부입니다. 부부는 제일 가깝고 너무 가깝고, 완전히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촌수가 없습니다.
  촌수를 따지면 부모와 자식이 일 촌이요, 형제가 이 촌, 삼촌, 사촌 이렇게 나갑니다. 그러나 부부는 둘이 아니고 한 몸이기 때문에 무 촌입니다. 하나님의 가정제도 일부일처제의 규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만약 이것을 어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필은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마19:6절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한 몸이 될지어다' 이 말씀은 성적인 관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5절에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생물은 하나님께서 양과 음의 원리를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입니다. 이성은 서로 아름다움을 창조합니다.
  창1: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가정은 절대적입니다. 유대 격언에 '남편을 왕으로 모시면 그대는 왕후가 될 것이요, 남편을 일꾼으로 모시면 그대는 폭군을 만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정은 아늑하고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가구가 많다고 좋은 가정이 아닙니다. 인격체인 진실함이 넘쳐나야 행복합니다. 좋은 가정 행복한 가정을 하나님은 섬기고 말씀대로 사는 가정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주의 명령보다 부부의 말을 더 귀하게 여겼다가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될 때 그 가정은 축복된 가정이요, 영원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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