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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제4강) 안식일의 축복! (창 2:1-3)

by 【고동엽】 2022. 4. 12.

(제4강)          안식일의 축복! (창 2:1-3)

 

  여러분! 사람이 '사람답다.'는 인간의 평가기준을 어디에 둘까요?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배움(학식)에 둡니다. 또 재주나 지혜를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인간의 평가기준은 그 사람의 성숙한 인격에 둡니다.
  성숙한 인격자가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유명한 신학자인 '폴틸리히'는 '모든 사람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사람은 들을 줄 아는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세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①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성숙한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성숙한 인격자는 학식이 많은 지식인이나 능력가나 권력가가 아니라 먼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입니다.
  미국의 역사를 뒤바꿔 놓은 링컨은 불과 9개월 동안의 정규 교육 밖에 받아 본 적이 없었으나 나중에 훌륭한 정치사상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유명한 연설인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라는 연설은 그가 어느 날 시골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목사님의 설교에서 듣고 그 말씀을 메모해 두었다가 연설장으로 행하는 마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교한 연설문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 링컨의 유명한 연설이 현대 민주주의 사상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귀가 있어 들을 수 있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계2: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②자기를 인도하는 분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히13:17절 "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를 때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임금 다윗은 위대한 인물이었으나 실수로 인하여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 다윗은 거짓말로 자신을 감싸고 죄를 범하지 않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그때 남루한 옷을 입은 무명의 예언자 나단이 찾아와서 다윗의 죄악을 지적합니다.
  '바로 당신이 간음죄를 범했습니다.'라고 말하자 다윗은 그 앞에서 거꾸러졌습니다. 통회 자복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훌륭한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음성을 듣고 회개했던 다윗의 성숙한 인격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셨습니다.
  젊은이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함석헌 선생님은 그의 스승이 되시는 유명모 선생이 강의하실 때 그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고독한 사람이요, 소외당하는 사람이요, 폐쇄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남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③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인격자입니다.
  부모에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인류역사에 놀랄만한 기적을 일으킨 민족이 유대민족입니다. 노벨상을 탄 사람 중에 24%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교수 중에 30%가 유대인입니다.
  '뉴스 앤드 월드 리포드'지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을 움직이는 30인 중에 5%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유대인은 650만 명으로 미국 전 인구의 3.2%밖에 안 되지만 금융계, 교육계, 언론계, 정치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유대 민족이 두뇌가 특별히 우수한 민족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어머니에게 종교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인격자들이 됩시다.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의 말, 때로는 자녀들의 말까지도 또 이웃, 다정한 친구들의 충고라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된답니다. /할/  ◀설교 제목!▶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후에 '참 좋다.'고 감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정말 좋다.'고 하셨습니다. 31절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께서 만드신 세상을 보고 참 좋아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말속에는 몇 가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창조는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창조는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완전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는 완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의 절정과 완성은 '안식'에 있습니다. 6일 동안 창조를 마치신 후에 제 7일째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창조를 하셨는데 그것이 곧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고 쉬셨지만 쉬신 그것이 곧 가장 위대한 창조였습니다. 하나님은 일과 쉼이라는 두 개의 리듬을 갖고 계십니다. 창조와 안식이라는 두 리듬을 통해서 우주를 창조하셨고 그 원리로 운행하고 계십니다.
  사람도 그 원리에 따라 창조하셨기 때문에 열심히 일도 해야 하지만 반드시 쉬기도 해야 합니다. 땅도 쉬어야 하고 인간도 쉬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안식의 원리를 통해서 재창조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운행하신다는 것을 창세기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1-2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 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6일 동안 창조하신 후에 일곱째 날을 창조 하셨는데 이 날은 쉬는 날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결론이며 완성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즐기시고 누리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즐기고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실과 그 위대하신 능력을 감상하고 즐기며 누리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따라서 모든 창조에는 안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 때에 복이 주어지고 회복이 주어집니다. /아멘!/
  일이라는 것은 끝이 있습니다. 또한 끝이 있을 때 시작이 있습니다. 일을 쉬지 않고 하는 사람을 '일 중독자'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일의 노예라고 말합니다. 노예는 일의 가치를 모르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노예는 그저 일하기 위해 존재하는 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찾지 못한 채 4백 삼십년 동안이나 노예로 끊임없이 일만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백성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백성으로 회복시키기 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단지 인생을 먹고살기 위해, 자신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 성공과 명예를 위해 살아갑니다.
  이런 삶은 아무리 멋있고, 지위가 높고, 돈이 많아도 노예와 같은 삶입니다. 이 노예의 삶으로부터의 해방이 바로 '안식'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자유인입니다.
  엿 세 동안 세상에서 살다가 주일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배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온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세상과의 관계를 잊고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곧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나고 몸이 회복되고, 삶이 회복되고 인생의 가치가 회복되는 길입니다. /믿/
  오늘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들의 영혼이 소생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육신이 회복되어 건강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회복되고 인생의 가치를 회복하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날을 안식일로 정하시고, 이날을 거룩하게 하사 이날을 지키는 자에게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즉 안식일을 복 주시는 날이요, 거룩한 날입니다.
  거룩하신 날이란 '구별하였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우주 창조에서 만물과 인간을 구별하여 자기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것처럼 영광 받으시려고 안식일을 하나님의 날로 정하여 거룩하게 지킬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신 것을 인간들로 하여금 세상일에서 벗어나 안식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는 관계를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아멘입니까?/

 

  ▶1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니라!' 한마디로 하늘 위에 모든 것과 땅 아래 모든 것을 다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책을 한 권 쓰는데 잘 쓰인 책은 글이 시작되는 서론에서 한번 그 내용을 집대성해서 소개합니다. 또 결론부분에서 또 전부를 한번 요약해서 정리합니다.
  6일간의 창조사역을 결론적으로 표현하신 말씀이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니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창조를 완성하셨다는 뜻입니다. 그 분의 계획대로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도움이나 간섭을 받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구상하시고 실천하신 것을 마치셨다는 것입니다.
  1절에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졌다.'고 말씀하듯이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완전한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도 완전합니다. /믿/ 고전1: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절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마치신 날이 제 6일이었는지 7일이었는지에 대하여선 학자들 간에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⑴하나님의 창조사역을 마치신 날을 제6일로 보았고, ⑵그분의 창조사역의 완성을 기념하고 축복하여 안식하신 날이 7일째라고 합니다.
  '안식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피곤해서 쉬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느라고 힘들었기 때문에 일에 지쳐 곯아떨어진 상태라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모든 피조물을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시는 일을 쉬시고, 안식하셨으나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을 보존하시고 유지하시며, 인도하시고, 다스리시는, 다시 말하면 섭리하시는 사역을 쉬지 아니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섭리하시는 일을 쉬셨다고 하면 온 우주의 질서는 파괴되고 땅은 다시 흑암과 혼돈과 공허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혹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일단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는 일일이 그것들을 간섭하거나 주장하기 아니하시고 자연법칙에 맡겨 두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모든 피조물들을 다 일일이 보호하시고 사랑하시고 유지하시고 다스리십니다.
  마6:26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공중의 새 한 마리도 천부께서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 한 송이도 하나님께서 입히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찰스 하지' 박사는 '하나님은 한 장소에 계시는 것과 같이 모든 장소에 계시며, 한 일에 유의하시는 것과 같이 모든 일에 유의하십니다. 풀잎 하나하나에 계시는 동시에 북두칠성의 행성을 인도하시고 별들의 대군을 통치하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본문의 안식에 근거하여 훗날 선민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안식일제도입니다. 출16:29절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제 육일에는 이들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제 칠일에는 아무도 그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그리고 구약시대 이 안식일은 신약시대에 이르러 주일로 승화되었습니다. 바로 율법의 완성 자요, 안식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 날을 우리는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막2:28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할/

 

  ▶3절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본 절에 보면 안식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도 '참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날들을 복 주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일곱째 날만 복 주신다고 했습니다. 주일은 날 자체가 복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주일을 지키면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오는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장사하기 위해서도, 결혼하기 위해서도, 교양 쌓기 위해서도, 취미 삼아서도, 심심풀이로 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절대로 없습니다.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예배에 있습니다. 사람은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면에서 동물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회복할 때에야 비로소 인간의 참 모습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시118:24-26절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본 절의 말씀을 통해서 안식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안식일의 의미는 몇 가지의 귀한 원리가 있습니다.
  ①완성의 원리입니다. 모든 창조사역이 성공적으로 완성되는 날입니다.
  ②쉼의 원리입니다. 사람은 영과 육으로 쉬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셨기에 사람의 속성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휴식을 허락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안식은 게으른 자에게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6일간 열심히 일하고 수고한 자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출20:9절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③축복의 원리입니다. 휴식의 축복을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에게 영적으로, 육적으로, 또 인간의 가장 요구하는 물질의 복도 주시는 날입니다.
  ④거룩함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구별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날이며 섬기라고 하는 종교적인 명령을 받았습니다.
  ▶미국 서부개척시대 때의 이야기입니다. 언제부턴가 캘리포니아의 강바닥에서 금이 채취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자 동부에 살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서부로 몰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그곳에 가서 많은 사금을 채취해와 큰 부자가 된 사람들도 많았으므로 서부로 향하는 개척 인들의 마차의 행렬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어느새 서부는 젊은 개척자들의 꿈과 희망이 되었습니다. 서부로만 가면 큰 부자가 될 것을 기대하고 온 가족이 함께 이사하는 경우도 많았고, 개중에는 너무 욕심이 많은 사람들도 끼어있어 남보다 하루라도 빨리 가서 많은 금을 깨겠다고 동부에서 서부까지 쉬지 않고 가는 행렬들도 많았습니다.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을 위해 천천히 가자는 쪽과 늦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사금을 다 빼앗기니 서두르자는 쪽과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팀을 이탈해 버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 '존 웰'이라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은 그런 싸움에 끼어 들지 않고 어린 자식들과 부인과 노모님을 모시고 마차를 천천히 몰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일엔 꼭 마차를 멈추게 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하루 온종일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이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왜 어리석게 보았습니까? 앞서간 사람들이 사금을 모두 캐어 가 버리면 이 사람들은 말짱 헛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몇 주 늦게 온 가족의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먼저 와 있어야 할 동네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벌써 금을 캐 가지고 돌아간 것일까요?
  그런데 뜻밖에도 '존 웰'이 많은 금을 채취하고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는데 자기들보다 앞장섰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해골 같은 몰골이었으며 곧 쓰려져 버릴 것 같은 병자들 같았습니다.
  그들은 황금에 눈이 멀어서 휴식을 잊은 채 너무 무리하게 왔으므로 얼마가지 못해 과로로 인한 병으로 말과 가족을 다 잃어버리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생의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6일 뒤에 안식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안식은 한마디로 자유요, 행복이요, 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맨 처음 인간에게 안식을 주시고, 안식을 누리며 살 수 있게 한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바로 에덴동산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동산, 여호와의 동산'이라고 부르며 즐겁다는 의미와 낙원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먹을 과일이 많아서 낙원이 아니고 아름다워서 낙원이 아닙니다.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보장된 안식이 있었기에 낙원입니다. /아멘!/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계획을 저버림으로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가 끊어져 에덴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에덴을 잃어버린 비극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안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때부터 저주가 임하고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가 있었으며 그들의 생활 속에는 엉겅퀴가 드러났습니다. 우리네 삶 속에 고난이 다가오게 되었고, 늘 불안과 공포, 좌절감이 억누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잃어버린 에덴의 안식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고 은혜를 입었다는 영적인 깊은 의미는 바로 에덴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안식을 찾는 길이요,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어짐을 의미합니다. /믿/
  3절을 다시 한 번 크게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①하나님은 창조를 완성하신 후 인간을 안식에 초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날을 복된 날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수고 없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받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누구의 은혜입니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재벌회사 2세들은 자기 아버지가 다 이루어 놓은 사업체에 자리만 앉으면 됩니다. 누구의 은혜입니까? 그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수고도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1년 4계절의 덕을 보며 아름다운 강산 모든 좋은 조건을 인간들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
  이것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안식에 참여하는 복입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몇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⑴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날로 생각했습니다. '일곱째 날을 복 주사'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날이므로 복된 날이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때문에 복된 날이며 영의 양식을 공급받고 심령을 윤택하게 하는 날이기 때문에 복된 날입니다.
  출31:14절 이하에 보면 안식일을 영원한 규례로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또 안식일은 타락 전에도 있었고, 타락 후에도 있었으며 구약시대에도, 신약시대에 걸쳐 이 제도 만을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안식일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는 타락을 방지하는 경계의 날이 되었고, 타락 후에는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는 성결의 날'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귀한 진리입니다. 깨달아져야 복을 받습니다. /할/
  ⑵안식일은 거룩한 날입니다. 안식일에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주신 은혜를 묵상하며 말씀을 명상하는 날입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은혜를 묵상하기에 너무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 날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 중에 '하라'고 하신 말씀과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묵상하고 반성하는 날입니다.
  ⑶사58:13-14절에서, 또 출31:14에서는 안식일을 성일이라 했고, 즐거운 날이라고 했으며, 또 존귀한 날이라고도 했습니다.
  ⑷구약의 모범적인 안식일 성수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렘17:21절에서 '짐을 지지 말라!'고 했고, 출34:21절에서 '일(노동)하지 말라!'고 했으며, 아모스8:5절에서는 '장사하지 말라!'고 했으며, 민28:9-10절에서는 '이 날은 번제와 소제를 드리는 날로 기록'했습니다.
  또 사58:13절에서는 '여호와의 성일은 존귀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왜 존귀한 날인지 아십니까? 존귀한 분께 예배드리러 가는 날이니 존귀한 날입니다.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약속해 놓았다면 그 날을 얼마나 기다립니까?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허락하신 성일이므로 어찌 존귀한 날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씀에 큰 궁정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②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안식을 잃어버린 자에게 안식을 회복 시켜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에덴의 안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저주스런 땅에서 가시와 엉겅퀴에 시달리며 살아야 할 운명의 준재가 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인간은 흙을 먹고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멍에 아래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안식을 주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오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괴로워하는 인생들을 향하여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에덴에서 잃어버린 안식을 회복시켜 주시려는 예 표된 약속이 있습니다.
  ⑴구약에서 가나안의 안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안식이 없었습니다. 바로 왕의 학정 밑에서 신음을 하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차적으로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인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약속은 육신의 양식도 풍요로운 세계지만 주님의 말씀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요, 에덴의 안식이 있는 약속의 세계입니다.
  신25:19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의 궁극적인 약속은 가나안의 안식입니다. 이 안식은 여호수아를 따라 받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바로 예수님의 예표  인물입니다. 한마디로 가나안의 안식은 예수님 없이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⑵교회 안에서의 안식입니다.
  여러분!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11:28-29절의 말씀은 세상에서 무거운 짐 진자들이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안식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거쳐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에 들어가 안식을 얻은 것처럼 우리가 세상을 떠나 교회 안에 들어오면 예수 안에서 안식을 얻게 됩니다. 에덴에서 잃어버린 안식의 회복입니다. /믿/
  그러므로 교회는 에덴동산의 모든 영적인 복이 예비 되어 있는 곳입니다. 절대적인 것도 상대적인 것도 다 구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 날 하나님의 성전에 달려 나와 예배할 때 절대적인 영생의 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상대적인 사업, 건강, 재물, 장수, 부귀도 이곳에서 구하여 얻을 수가 있습니다. /믿/아멘!/
  '이 날을 복 주사' 한 마디로 주일은 거룩한 날인데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날입니다. 그분의 약속은 신실하신 여호와의 약속이십니다. /믿/ 이 약속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을 받고 성숙한 인격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숙한 인격자가 되십시다.

 

  ③진정한 안식은 언제 얻을 수 있을까요? 주님의 초청에 따를 때 안식은 얻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안식에 초청하시면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멍에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참다운 안식을 얻으려면 자기 죽음이 없이는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의 참다운 안식을 아말렉을 도말하므로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말렉의 도말은 육신의 정욕을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참다운 부활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죽으면 살아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한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한 마디로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보다는 사업에 매달려 주일 성수도 못했고,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인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냥 마누라 눈치보고 왔다 갔다 그런 신앙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언제부턴가 몸이 이상해졌습니다. 병원에가 진찰을 받아 보니 간암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제 석 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분을 온통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슬픔의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토록 부요한 재산이 기쁨이 되지 못했고, 착한 자녀들의 정성도 위로가 되지 못했으며, 아내의 따뜻한 사랑도 위선으로 보였습니다. 그토록 고생해서 모아 놓은 재산을 두고 이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더랍니다. 그런데 하루는 신앙이 좋은 딸이 아버지에게 믿음으로 권면을 합니다. '아버지!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십시다.'
  딸의 권유로 새벽기도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루 이틀 나가도 기도가 안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열심히 나갔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이 몸을 살려 주시면 이제 주 만 위해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회개하면서 눈물로 명세를 했습니다.
  이제 그의 기도는 힘이 있었고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석 달이 지나고 지금 3년이 넘었는데도 죽지 않고 건재하답니다. /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암 균이 다 소멸된 것이 아니고 멈춘 상태에서 암 균이 약해지고 있다는 의사의 진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이 집사님은 '의료 선교회'의 재정을 지원하고 있으며 지금 섬기는 교회를 짓고 있다고 간증했습니다.

 

  ④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의 부활주일로 바꿔졌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의 부활주일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큰 사건은 천지 창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6일 동안에 마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고 구약시대에 이날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가장 큰 사건은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신 일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독생 성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 구속 사업을 주님이 부활하신 날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이 날을 주님께서 구속 사업을 완성하신 날로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원래 안식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하는 날인데 인간이 뱀의 유혹을 받아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진정한 안식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본래 하나님과 영광스런 인간의 안식은 없어지고 안식일 법만 남았으며 안식과 즐거움 대신에 무거운 짐만 더 지우는 날로 바뀌었습니다.
  구약의 안식은 죄로 말미암아 율법의 안식일이 되었고 그 율법의 안식은 인간에게 두려움과 심판과 무거운 고통의 날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뒤바뀐 안식일을 회복하시려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창조되던 제6일 금요일에 둘째 아담인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안식일 날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 아래 계셨습니다. 생명 없는 안식일을 죽음으로 지킨 것입니다. 그리고 참 생명과 영원한 구원의 안식일을 부활의 날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담의 안식일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의로운 부활의 첫날 주일로 바뀌어 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일은 주님의 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입니다.

 

  ⑤주일성수는 새 인생의 축복의 시작이며 현재 진행형 완성입니다.
  사58:13절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으리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⑴주일을 지킴으로 사람은 축복을 받습니다.
  주일을 지킴으로 구원의 확증을 얻습니다. 신자와 불신자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신자보다 착하게 살아가는 불신자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엿새 동안 살아가는 생활은 신자나 불신자나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주일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어떤 분은 주일을 갈라지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일은 구원과 심판이 갈라지는 날이요 천국과 지옥, 신자와 불신자를 갈라놓는 날입니다. 6일 동안 착하게 산사람도 주일을 거룩한 날로 지키지 못하고 공일로 보내는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전체가 공(제로)이 됩니다.
  ⑵거룩한 주일을 지키면 심령이 거룩해 집니다.
  출31:13절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함이라" 더럽고 추한 심령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해집니다. 정결케 됩니다. 용서를 받습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는 날입니다.
  ⑶주일은 성도들의 공적을 인정받는 날입니다.
  최후 심판은 주일성수 안한 자가 받는 것이요 공적을 인정받는 것은 주일을 지킨 사람들이 행한 대로 받습니다.
  ⑷주일은 참 안식과 평안을 얻습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식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날 교회 가는 것은 시집살이하던 딸이 친정 집에 가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여인들은 시집살이에 지쳐 살았습니다. 시집살이가 고달플수록 친정을 그리워했습니다.
  교회는 친정 집입니다. 세상 시집살이에 지친 심령들이 친정 집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고달픈 심령이 따스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로 위로 받는 날입니다. 그리고 후하게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친정어머니 아버지의 축복을 담아 가지고 가는 날입니다. 그래서 시어머니, 직장, 세상 시집살이가 풀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일은 복 받는 날이기 때문에 성도는 복 받는 날로 지키는 것입니다. /아멘!/
  ⑸주일성수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성도의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주일날을 기억하여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바빠도 주일만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을 잊어버리면 결국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주일은 내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에 더더욱 지켜야 합니다.
  ▶주일을 거룩이 예배하는 날로 지켜야 합니다. 거룩이 지키란 말은 구별하여 드린단 말인데 아침부터 예배시간에 늦지 않도록 정성을 드려야 합니다. 주일은 예배 시간 전에 사람 만나는 약속을 하지 말고 신령한 은혜를 받는 일에 바쳐야 합니다. ▶엿새 동안 부지런히 일하고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는 자는 먼저 다른 엿새 동안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일성수에 선행조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주일은 주님의 명령이니 순종하므로 지켜야 합니다. 사56:2절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은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백성된 표증이 바로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다는 말은 거짓말이요 주일날 예배드리지도 않고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믿/아멘!/

 

  ⑥주일을 거룩이 지키는 자는 어떤 복을 받습니까?
  ⑴건강과 반석의 복을 받습니다. 시92장에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할 것'입니다. 역사의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 가운데 '개척자 콜롬부스나, 철학자 스피노자나, 시인 하이네, 음악가 헨델, 과학자 아인슈타인, 세계의 부호인 로스 차일드'도 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 자들입니다.
  ⑵야곱의 업을 누립니다. 사58:14절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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