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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대로 거두는 효도의 원리 (엡 6:1~3)

by 【고동엽】 2022. 4. 10.

뿌린대로 거두는 효도의 원리 (엡 6:1~3)

세상에는 천륜과 인륜이 있습니다. 천륜의 첫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인륜의 첫째는 부모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없이 피조물 인간을 생각할 수 없고, 부모님 없는 자식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 파견된 한 천사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가지고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의 눈엔 맨 처음 아름답게 비친 것은 '장미꽃'이었습니다. 그것을 취한 후 옆을 보니 밝은 '아기의 미소'가 더욱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것도 가지고 돌아가는 중에 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천국까지 가는 도중 장미꽃은 시들었고, 아기의 미소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만은 변함없이 더욱 숭고해져 있었습니다. 결국 천사는 지상에서 유일하게 없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인 '어머니의 사랑'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갔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두 돌판을 받았습니다. 첫째 돌판은 하나님을 섬기라는 계명이며, 둘째 돌판은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이었습니다. 부모 공경은 이 두 돌판의 중간에 있는 계명입니다. 즉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교량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계명입니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콩심은데 콩이 나고, 팥심은데 팥이 납니다. 절대 다른 종이 올라 올리 없습니다. 같은 종이 올라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요, 자연의 법칙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124문에 부모란 친부모(육친) 뿐 아니라 ?연령에 있어서(딤전5:1, 2), 은사에 있어서 윗사람(창4:20-21, 45:8) ?하나님의 법령에 의하여 가족된 자들(왕하5:13), ?교회 또는 나라에서 권위로 있는 자들(갈4:19, 왕하2:12), (사49:23) ?윌리아드(G. W. Williard)는 하이델베르그 문답해석에서 가정교사, 교장, 교사들도 포함된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중심하여 분야별로 나누어 보면은 ?가정에서 육친 ?국가에서 관원들 ?교회에서 성직자들 ?사회에서 윗 사람들 ?직장에서 주인(오너)들 ?학교에서 스승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효도는 부모의 책임이 큽니다.

붉은 스포츠카 한 대가 교회 앞에 섰다. 여덟 살과 열 살 가량의 잘 차려입은 두 소녀가 차에서 뛰어내렸다. "너희들 주일학교 마치고 바로 여기, 교회 계단에서 기다리거라. 열한 시 정각에 너희를 데리러올께." "좋아요 엄마, 다녀오세요." 부모들이 서둘러 가버리는 동안 아이들은 계단을 뛰어올라 교회당으로 들어갔다. "아, 이제 두 시간이 모두 우리 것이군." 남편이 웃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는 한시간 가량 테니스를 하고 나서 아이들을 데리러 오기 전에 아침 식사를 할 수 있겠지?" "물론이죠, 여보. 우리는 매주 이런 시간이 필요해요. 우리들만의 시간이요." 이웃이나 친구에게서 이런 경우를 보게 되는가? 아니면 당신 자신의 경우인가? 전국 방방곡곡의 교회들에서 이렇게 교회 집회에 빠지는 부모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본을 통해 배운다. 이 소녀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불행하게도 이 소녀들은 엄마 아빠의 나이가 되면 주일 오전에 테니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이 부모들은 아마 자녀들에게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해왔을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실천하는 가치 체계에 순응하는 경향은 매우 강하지만, 부모가 자기들에게 말한대로 따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과거에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지나친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순종을 강요했습니다. 순종을 강요하므로 자녀들을 억압하기도 했고, 자녀들의 기를 꺾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끼친것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신 자녀는 항상 부모를 의식하면서 살았습니다. 자녀들은 늘 부모에게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는 불효가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사회와 이웃을 의식해서도 불효를 감히 저지러지 못했습니다. 그때에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큰 자랑거리로 여겨지던 시대였습니다.

과거에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효도를 하면서 자기 자식에게 순종하는 효도를 가르치고 교육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는 효도하는 것을 부모에게서 배웠습니다. 어려서부터 몸에 익혔습니다. 그 자녀가 자라나서는 자동적으로 효도가 어렵지 않게 실천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부모들은 자식을 키울 때에 가정 공동체 내지 부모 중심으로 키우지 않습니다. 개인주의, 자기 중심으로 자녀들을 키웁니다. 불효자식으로 키웁니다. 자기 밖에 모르도록 키웁니다. 자유 방임주의로 키웁니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자기 밖에는 눈에 보이질 않습니다. 당연히 부모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귀찮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자기 먼저 먹어야 되고, 자기 먼저 마셔야 되고, 자기 먼저 입어야 되고, 자기 먼저 써야 합니다. 자아주의(egoism)에 빠져 자아주의자(egoist)가 되고 맙니다.

부모의 세대가 자식의 세대를 그렇게 길러낸 결과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너무 희생을 많이 한 결과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부모가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쓰지 않고, 자지 않고, 병원에도 가지 않고, 보약도 먹지 않고, 놀지도 않고, 여행도 가지 않고, 땀흘리고 수고하여 자식을 키워 냅니다.

부모가 늙어 자활의 능력이 없어지고, 자식에게 기댈 형편이 되면 그때에는 자식들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늙은이도 먹어야 하나, 늙은 이도 입어야 하나, 죽을 날이 가까워 왔는데 재혼은 무슨 재혼을 하느냐면 반대하여 처량하게 살아가게 만듭니다.

젊어서는 혼자 살 수 있지만 나이 많으면 혼자 살기가 힘듭니다. 부부생활은 20-40대에는 성생활 중심입니다. 40-60대에는 자식 중심입니다. 60이 지나 노후에는 동고동락할 벗이 필요합니다. 옆에 사람이 있는 것과 옆에 사람이 없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부모의 노후에 가장 큰 효도는 양친이 건강하게 살아 계시도록 보호막이 되어 드리는 겁니다.

최근에 조기 유학 붐이 불어서 너도 나도 자식들을 외국에 보내지 않습니까? 아이들을 혼자 보내기도 하고, 애미를 딸려서 보내기도 합니다. 소위 그런 자들을 기러기 아빠라고들 하지요. 그런데 진짜 자식들과 부인들은 기러기 되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떠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자기 밖에 모르는 자아중심으로 길러내면 나이가 많아서도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 자식밖에 모릅니다. 그때 가서 아무리 후회해 보아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부모가 심은대로 거둡니다. 효를 심은데서 효를 거둡니다. 불효를 심은데서 불효를 거둡니다. 불효를 심고 효를 거두기를 바라는 자들은 더 큰 실망을 하게 됩니다. 더 큰 불효를 거두게 됩니다.

우리 나라의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젊은 이들은 외국으로 빠져 나갑니다. 자식들에게 투자한 것을 회수할 방법은 전무합니다. 정부대책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과거에는 서양 노인들이 한국의 노인들을 부러워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노인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앞으로는 부모가 자식에게 늙어서 신세질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늙은 부모가 젊은 자식들의 가족들 틈에 들어 갈 자리가 없습니다. 빈틈이 없습니다. 틈을 주지 않습니다. 비집고 들어가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부모들은 자기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며, 자식들에게 짐이 되어 구박받으면서 어떻게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문제는 자기 자식들을 지나치게 믿는다는 겁니다. “내 아들은 안그래”, “내 딸은 안그래” 라고 장담을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자식들은 달라집니다.

젖먹을 때 다르고, 밥 먹을 때 다릅니다. 누어있을 때, 뒤집을 때, 기어 다닐 때, 일어설 때, 걸어 다닐 때, 좇아 다닐 때 다릅니다. 유치원 때, 초등학교 때, 중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다릅니다. 결혼하면 또 다릅니다. 좋아지게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어떻던 많이 변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변하는 자식들을 사랑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을 것은 못됩니다.

2. 효도는 자식의 책임입니다.

과거에는 부모에게 받은 혜택이 사실은 별거 아니었지만 효도는 지나칠 정도로 잘 했습니다. 지금은 부모에게 받은 혜택이 너무 많고 크지만 효도에 대한 책임감은 절실하지 못합니다.

1)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고 말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이 말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이요, 주님의 교훈이셨습니다.

골로새서 3: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옳은 일이요, 부모에게 순종할 줄 아는 자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적응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기쁘게 할 줄 아는 자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윗사람을 기쁘게, 옆 사람을 즐겁게, 아랫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부모에게 하는 것은 모든 생할의 근본입니다. 부모에게 잘 못하는 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누구에게 옳게, 누구를 즐겁게 해 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주안에서라는 말은 “성경안에서, 하나님의 계명안에서”라는 말입니다.

부모가 미신과 종교적으로, 윤리 도덕적으로, 사회 법률적으로 잘못 이끌 때에는 신앙적으로 납득을 시켜 드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도 납득이 안되면 순교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잘 하라는 명령이요, 가르침일 때는 무조건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부모는 하나님 다음으로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순종하여 손해 볼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2)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바드(kabad)”라는 말입니다. 카바드라는 말은 “무겁다”는 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부모를 경홀히 여기지 말고, 무겁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내장 중 가장 무거운 것이 간장입니다. 히브리어로 간장을 “카베드”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Liver”라고 합니다. 사람의 내장 중 다른 내장은 없으면 인공대용으로 살아 갈 수 있지만 간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뇌사상태라고 할지라도 생명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인공심장으로 정상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신장은 투석으로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 기타 내장은 없으면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장은 아직 대안이 없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자기의 간장과 같이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세상 살이에서 모든 인간 관계는 대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대안이 없습니다. 병든 부모 죽기를 바라지 말고, 죽기전에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자기를 위하고, 자식들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끝맺는 말

자식이 철들어 효도할 기간은 그렇게 길지를 않습니다. 내 갈길 보다는 부모의 갈길이 더 바쁩니다. 나의 갈길이 천리라면 부모의 길은 십리도 못남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3)고 말했습니다.

출처/신삼철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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