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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박사들의 성탄 축하! (마 2:1-12)

by 【고동엽】 2022.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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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박사들의 성탄 축하! (마 2:1-12)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먼저 아기 예수 오심을 진심으로 경배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상하게 성탄절에 예수 이야기는 사라지고 산타클로스가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산타클로스는 복음이 아닙니다. 일본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무슨 산타클로스 생일처럼 생각하고 있답니다. 기독교인들이 0.5%정도 밖에 안 되는 그 나라는 12월 초만 되면 온통 거리에는 성탄분위기가 가득합니다. 문제는 예수님은 없고 산타만 있다는 것입니다. 산타클로스는 없어도 됩니다. 양말 갖다 놓고 아이들 속이면서까지 선물 줄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양말을 갖다놓는 것도 알고 보면 다산 신을 숭배하던 우상숭배자들부터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성탄의 계절에 부모님들은 그냥 아이들에게 예수님 이야기하고 선물 주시기 바랍니다. /할/
  ▶어떤 소년이 자전거를 몹시 갖고 싶어했습니다. 자기 친구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자기 혼자만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측은하게 생각한 어머니가 성모 마리아님께 기도해보라고 권했습니다. '토니'라는 이 어린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 종이 위에다가 기도 내용을 쓰고서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님, 제가 얼마나 자전거를 갖고 싶은지 잘 아시지요? 제 친구들은 다 있는데 저만 없답니다. 아멘' 그리고 기도 내용을 적은 종이를 성모 마리아 상 바로 옆에다 두고서는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전거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그 날 밤과 또 그 다음 주간 내내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실망스럽기만 했습니다. 마침내 참다못한 소년은 갑자기 성모 마리아 상을 수건으로 둘둘 말더니만 옷장 서랍에 처박아 쑤셔 넣었습니다. 그 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년이 뭐라고 기도한지 아십니까? '예수님, 당신 어머니를 다시 보기 원하시면 저에게 자전거를 하나 주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인질 삼아 예수님께 협박을 한 것입니다.
  보통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 카톨릭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를 너무 높여서 경배와 숭배의 대상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라고 부릅니다. 어떤 경우에는 마리아를 '영원한 동정녀'라고 호칭하기도 하고, 심지어 마리아 승천 설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리아를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영원한 동정녀도 아니고 승천한 것도 아닙니다. 그에 비해 개신교에서는 마리아의 믿음의 결단과 헌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설교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노라!'고 할 때, 마리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때 '무서워 말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하자 마리아는 '내가 처녀의 몸으로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하자 천사가 대답하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그러면서 더 확신 있는 말씀 한 마디는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이때 마리아가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주옵소서'라고 순종하자 그 모습을 보고 천사가 떠나갔습니다. 마리아의 순종이 빛이 납니다. /할/ ◀제목 소개!▶

 

  여러분, 이 우주가 생긴 이래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이것은 이 우주의 역사 속에 가장 큰 사건이며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던 그 날 밤, 하늘은 매우 바빴습니다. 하늘의 별이 움직이고 천사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베들레헴 지경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구유에 놓인 아기를 찾아가서 만나게 되었고 동방의 박사들은 멀리 동방에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예루살렘까지 찾아왔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무엇 때문에 아기 예수 계신 곳까지 찾아왔습니까? 2절과 11절을 보세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동방에서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성탄절에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를 드린 것처럼 우리도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 드리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①아기 예수가 헤롯왕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1-2).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심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지금도 성지 베들레헴에 가면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을 기념하는 '구유교회'가 있습니다. 옛날의 초라한 외양간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 낮고 험한 집 위에 큰 교회당을 세워 지금도 수없이 많은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끌고 있다고 합니다.

  불교의 교주인 석가는 왕가에서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공자도 상류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는 혜택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베들레헴 외양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눅2장에 보면 당시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로마제국은 그의 국권이 미치는 지경 안에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매 14년마다 정치적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것은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한 징병과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정치적인 수단이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사는 요셉은 이 호적 령에 의하여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옛 다윗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삼백 이십 리나 되는 험악한 산악 길이었습니다. 당시 교통수단은 나귀를 타고 가는 것인데 그나마 마리아는 임신 중에 있었으니 그 행로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상상이 됩니다.
  요셉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에는 사방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초만원을 이루어 때를 만난 베들레헴 사람들은 돈벌이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리하여 만삭이 된 마리아에게 단칸방 하나를 제공해 줄만한 친절한 자가 없었습니다.
  쉴만한 방을 못 구한 마리아 부부는 어쩔 수 없이 잠깐이나마 피곤한 몸을 외양간에서 쉬기로 하고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해산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 왕의 왕으로 오셨지만 그 추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으며,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눕는 몸이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의 땅은 비교적 박토이지만 베들레헴만은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들레헴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생명의 떡과 관계가 깊습니다. 주님이 떡집 베들레헴으로 오신 것은 하나님나라에서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오심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생명의 떡을 영접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 베들레헴은 작은 도시지만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창35:20절에 보면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이곳에 장사지낸 곳이고, 룻1:2절에 보면 룻이 보아스와 결혼해서 살던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곳이 다윗의 고향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베들레헴을 가리켜 '다윗 성'이라고 합니다. 다윗의 고향이 뭐 그리 대단 하느냐고 물으실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만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신다고 예언했기 때문에 이 사실이 귀한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유명한 동네가 되었습니다.
  동네가 인물을 배출하는 경우가 있고, 위대한 인물이 그 동네를 빛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 동네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지극히 작은 동네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거기서 나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 세계 사람들과 기독교인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 치고 베들레헴 방문을 빼지 않는 이유는 그곳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영국 중부지방 워릭성 외곽에 '스프랫퍼드 어폰 에이번'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동네 규모도 작고 인구도 많지 않은 작은 동네입니다. 그런데 영국을 여행하는 사람들, 특히 문학을 사랑하거나 지망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곳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유는 셰익스피어가 그곳에서 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가를 보존하고 그가 쓰던 책상과 집기들을 관광객들에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때문에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명소가 된 것입니다.
  전라남도 하의도 하면 섬 중의 섬입니다. 그런데 그 하의도 사람들은 우리나라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자긍심이 대단합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곳에서 출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태어날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헤롯왕 때입니다.
  사람과 시대는 중요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당시 왕이었던 헤롯은 여러 가지 면에서 연구 대상이 되는 세상의 왕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헤롯은 유대인에 대해 무서운 증오심을 갖고 있는 에서의 후손인 에돔 사람입니다. 당시 유대 땅 베들레헴을 포함해서 팔레스타인 전역과 고대 근동지방은 로마제국의 지배아래 있었습니다. 로마의 황제 안토니오 시이저는 유대 땅 전쟁에서 큰공을 세운 헤롯을 분봉 왕으로 임명했습니다. 에돔 족속과 유대인과의 미묘한 갈등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는 B.C 40년에 왕위에 올라 예수님 탄생 후 4년까지 오랜 세월을 왕위에 있었습니다. 예수가 탄생할 무렵 헤롯의 나이는 약 70세라고 합니다. 헤롯도 한때는 선정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유명한 제 3성전인 '헤롯 성전'을 건축했으며 팔레스틴에 평화와 질서를 가져오는 일에 성공한 유능한 통치자였습니다.
  백성들이 살기가 어려울 때에는 세금도 감면해 주었고, 특히 B.C 25년에 있었던 기근 때에는 식량을 사들이기 위해 자기의 금 접시까지 녹이기도 했던 정치적인 수완을 보인 사람입니다. 그는 헤롯 대왕이라는 칭호를 즐겨 사용했고, 그 칭호를 보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포악한 행위도 일삼았습니다.
  그는 일단 누구도 반역자로 의심되면 그를 즉각 죽이고 말았습니다. 열 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살았으며, 자기 왕위를 넘본다고 둘째 처 마리암과 장모를 죽였으며, 자기의 큰아들 안티파스를 자기의 후계자로 생각했으나 그가 죽기 수일 전에 그의 과대망상증으로 아들을 죽였고, 또 손자까지 죽였고, 또 다른 아들 둘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말하기를 '헤롯의 아들이 되기보다는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했습니다. 성경학자 바클레이에 의하면 야만적이고 잔인한 인격을 가진 헤롯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유언하기를 '예루살렘 시민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한 사람을 택하여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가 자기가 죽는 순간에 같이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죽으면 아무도 울어줄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죽게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런 난폭한 왕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을 때, 우리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이비들이 역사를 주도할 때 예수께서 오신 것입니다.
  ▶중종 때 심정이라는 정승이 있었습니다. 그는 간신입니다. 조선의 왕조를 보면 선왕이든 폭군이든 왕조마다 간신배가 있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정은 조광조를 죽이는 데에 앞장섰습니다. 온갖 술수로 당대의 인물인 조광조를 모함하여 죽였습니다. 또한 세조 정란의 일등공신인 한명회는 성종 때까지 37년의 권력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도 얼마나 많은 사이비적인 모습을 역사 앞에 드러냈는지 모릅니다.
  심정이라는 정승은 강서에다 자신의 정자를 지어 놓았습니다. 한강 밖인 강서에 정자를 지어 놓으면서 사대문 안에 살지 않는 자신의 청렴결백을 과시했습니다. 그리고 한명회도 당시 압구정에 정자를 지었습니다. 지금이야 압구정 하면 금 같은 땅이지만 당시는 '갈매기 친구'라는 뜻으로 천하게 불려졌던 때입니다. 그런데 한명회도 자신이 한강 이남에 거처를 지어 놓고 청렴하게 살고 있다며 백성을 속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이비들이 역사 속에 끊임없이 숨겨져 왔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던 시대 또한 사이비 왕과 지도자가 우글거리던 때였습니다. 그 때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께 찾아왔습니다.

 

  ②예수의 탄생에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 네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3-8).
  ⑴'헤롯왕'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구세주가 이 세상에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영보다는 살해음모가 있었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고 했습니다.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폭군 헤롯에게는 매우 큰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자기 왕위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항상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국민들에게 인기도 없었고, 자기를 믿어주는 그 어떤 지지 세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다 적으로 보았습니다. '저 놈이 내 자리를 넘보지나 않을까?'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것은 한 마디로 헤롯을 졸도하게 만든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태연합니다.
  '당신들이 먼저 경배하고 나에게 가르쳐 주면 나도 가겠다.'고 새빨간 거짓말로 위장을 했지만 속으로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가 헤롯에게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한마디로 수난의 생애였습니다. 이토록 탄생시절부터 헤롯왕으로부터 수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두 살 아래 남자아이들을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출1장을 보면 애굽의 바로 왕이 요셉이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번성하고 강성해지니까 '이러다가 전쟁이 일어나서 이 사람들이 외적과 결탁이라도 하는 날이면 애굽이 망하겠다.'는 염려 때문에 유대인의 어린아이를 날 때 남자아이만 다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바로와 헤롯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치가 다 그렇습니다. 대원군이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잇습니다. 스탈린, 히틀러도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중공의 모택동은 3천만 명을 죽였다고 합니다. 저 이북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도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헤롯은 자기의 왕권 때문에 만 왕의 왕 구주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불쌍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헤롯왕과 같이 교만, 시기, 질투, 거짓, 미움, 분노 이런 마음을 가진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습니다.
  ⑵완전히 무관심한 반응을 보인 '제사장과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종교적으로 전문직업인들입니다. 헤롯이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예수가 어디서 나겠느뇨?'고 물을 때,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고 미5:2절을 인용하면서도 그들은 무관심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아론의 후손에게만 한 사람씩 뽑았습니다. 대제사장은 당시 종교의 최고 지도자로서 종교귀족입니다. 그리고 서기관들은 당시의 신학자들로써 성서를 해석하고 율법상 어려운 단어들을 풀어서 답해주는 성경의 전문가들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은 성경을 읽고 가르쳤지만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읽어도 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믿/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스토리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태도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무관심입니다. 습관적으로 의식적으로 나와 예배를 드리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신앙의 적입니다.
  여러분,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부흥회나 작정기도, 무엇을 해도 무관심하게 하면 주님이 슬퍼하십니다. 대예배만 삐죽 나오고 저녁 예배, 철야예배, 삼일예배, 관심 없는 성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신앙은 관심입니다. 관심은 사랑의 다른 표현입니다. 잠8: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아멘!/
  오늘 아기 예수 탄생하신 성탄절, 우리 모두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 생애가 바꿔집니다. 생활이 바꿔지고 환경이 바꿔지고 인격이 다 바꿔집니다. /아멘!/
  오늘 본문에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보다도 신령한 것보다도 진리보다도 영원한 것보다도 가치 있는 것보다도 세상 적인 물질적인 것을 더 사랑한 사람들이었고, 세상 적인 출세와 명예를 더 앞세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정치인들과 손을 잡고 이권을 챙겼으며 장사하는 사람들과 결탁해서 검은 돈을 만진 사람들입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종교가라는 탈을 쓰고 진리보다 믿음보다 교회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명예와 출세를 앞세우다가 예수님을 못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알면서도 어디에 메시아가 나실 것이라고 정확하게 지적을 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기독교는 아는 종교가 아니라 믿는 종교요, 행하는 종교입니다. /믿/
  ⑶베들레헴 사람들입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몇 십리 떨어진 산꼭대기에 있는 동네입니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린 모리아 산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의 줄기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함에도 베들레헴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오셨는데도 아니 자기 대문간에 와서 '아기를 낳게 되었으니 방 하나만 빌려 달라'고 사정을 해도 거절한 사람들입니다.
  왜 거절했습니까? 한마디로 사랑과 인정이 메말라 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비와 동정심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중심주의요, 극단적인 자기 위주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신세대가 극단주의로 흘러간다고 뜻 있는 사람들이 걱정합니다. 자기만 아는 세대, 위험합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대문 밖에다가 예수님을 모셨고, 마구간에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내실에도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보이는 세상 적인 것에 팔려 주님이 문 밖에 오셨지만 영접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베들레헴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⑷아기 예수께 경배 드린 동방박사들입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아주 먼 동쪽 사람들입니다. 욥도 동방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도 동쪽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점성학자, 천문학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땅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늘만 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진리를 탐구한 사람이요, 인생문제, 우주문제,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이름도 고향도 출신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왈레스'는 '벤허'라는 소설을 통하여 그들의 이름을 '가스팔, 메키올, 발다살'이라고 전승에서 따와 밝히고 있습니다. 학자들 중에는 이 동방박사들이 바벨론에 끌려갔던 유대인들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하루는 이상한 별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민24:17절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리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별을 보면서 '이 지구촌에 위대한 분이 탄생했구나!' 이런 생각을 한 박사들은 별을 따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사막을 지나 베들레헴까지 와보니 정말 마구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메시아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신 것을 보았습니다.

 

  ③동박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고 갔습니다(9).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은 어떤 별인가? 이 별은 천체에 떠있는 그런 별과는 다른 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를 지나갈 때를 생각해 봅시다.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은 낮에는 구름 기둥이 되고, 밤에는 불기둥이 되어 그들을 앞서 가시면서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의 빛난 별처럼 밝게 비추면서 동방 박사들을 앞서 가시면서 그들의 발걸음을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동방에서 나타났던 그 별이 사라졌다가 문득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 별은 동방 박사들을 앞서 가면서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그 별은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그 별은 예수께 인도하는 별입니다. 이제 별은 사라졌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을 인도하던 별은 더 이상 우리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별이 증언한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와 임마누엘로 함께 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예수께 인도하는 별은 주의 종입니다. 계1:20절에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그렇습니다. 성도들을 주께로 인도하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주의 종이 됩니다. 히13:17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할/

 

  ④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박사들(10).
  이런 기쁨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아!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인도해주시는구나!' 이런 체험하는 신앙이 꼭 필요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하여 힘든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습니다.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하여 출발한 곳은 페르시아입니다. 페르시아에서 베들레헴까지는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사막을 횡단하여야만 합니다.
  별을 따라 가야 했으니 낮에는 방향을 알 수 없어 밤에만 길을 가야 했습니다. 모래바람이 불 때는 한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사막길입니다. 모래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기도 했습니다.
  고달픔의 시간을 넘겼습니다. 그들이 있던 곳에서 예수님이 나신 곳까지는 하루 이틀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닙니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바치는 정성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경비도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전진 또 전진하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이 정성을 우리는 배워야합니다. 왜 그들은 이런 정성을 예수님께 바쳤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들의 구세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들은 나이도 많고, 학식도 많은 인격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 절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인류의 구세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절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보배 함을 열어 아주 값비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⑤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린 박사들!(11)
  여기 '보배 함을 연다'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여기서 '경배한다'는 것은 뭡니까? '몸을 던져 엎드렸다'는 그 말입니다. 지식도 있는 사람이, 부귀도 있는 사람이, 명예도 있는 동방 박사들이, 아주 어린 아기 예수께 엎드려서 아주 절하면서 경배를 했습니다. /할/ 예배가 뭡니까? 경배하는 겁니다. 기도가 뭡니까? 엎드리는 겁니다. 겸손하게 엎드리는 것, 이게 진정한 경배요, 진정한 믿음입니다. /아멘입니까?/

  ▶동방박사들을 통하여 '어떻게 예수께 경배해야 하는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⑴참된 경배는 바로 헌신입니다. 박사들은 죽음을 무릎 쓰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예배란 하나의 종교의식이 아니고 생명 바쳐 하나님을 만나는 결단이요, 헌신입니다. /믿/ 박사들은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메시아를 경배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치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먼 길 베들레헴까지 온 것입니다.

  학자들은 '동방'을 '아라비아. 페르시아, 애굽, 인도'로 보았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2절에 나타난 경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헌신 없이 참된 경배 없이 절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값진 헌신은 예배입니다. 그래서 롬12:1절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오늘날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경배하는 태도에 따라 은혜 받는 양이 다릅니다. 여러분! 목사가 설교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서 은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떤 태도로 하나님을 만나로 오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마나보려고 애써 보십시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넘칩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는 '값싼 은혜가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원수다, 우리는 오늘 값비싼 은혜를 위하여 싸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마7:13-14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나의 생전에 만 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내 생전에 내가 쓴 왕관을 그의 발 앞에 엎드려 벗어 드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참 귀한 헌신의 마음입니다.
  ⑵참된 경배는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나오면서 빈손으로 오지 않고 아주 값비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예물은 오늘날 헌금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주님은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물질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헌금하는 마음을 받으십니다. 억지로 인색함으로 마지못해 생색내기 위해서 헌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희생이 너무 감사, 감격하여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행20:35절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그러니까 주는 자가 복되다고 했습니다. 갈6:7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또 눅6:38절에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아멘!/

  ▶오늘 '황금, 유향, 몰약' 세 가지는 우리의 신앙의 귀한 진리를 줍니다.
  ⑴황금을 드렸습니다. 고대 문헌에 의하면 왕을 알현할 때는 꼭 황금을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황금은 '당신은 왕 중에 왕이십니다.'라는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황금'은 예수 그리스도 3직 가운데 왕권을 뜻합니다. 즉 예수께서 우리에게 왕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금은 3가지 상징성이 있습니다.

  ㈀으뜸성입니다. 금속 중에서 왕입니다. 금이 으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 중의 왕이십니다. 계1:5절에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만 왕의 왕이십니다. 'King of King'이십니다. 그 왕 중의 왕이 되시는 예수께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니 염려 없습니다. /아멘!/
  ㈁불변성입니다. 금은 영원히 변하지 아니합니다. '썩지 아니합니다. 그 가치가 변하지 아니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와 맺은 언약은 영원히 변치 아니하십니다. 세상 왕들은 수도 없이 변합니다. 그들의 보호는 일시적으로 지켜줍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영원히 변치 않고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믿/
  ㈂보배성입니다. 금이 보배이듯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가장 귀한 보배가 되십니다. ▶보배가 되시는 예수를 모시고 사는 자는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
  고후4:7-10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아멘!/.
  ⑵유향을 드렸습니다. 당시 풍속엔 귀한 분, 높은 분에게 향료를 뿌렸습니다. 너무 비싸서 한 두 방울 뿌렸습니다. '칼빈'은 유향은 '예수그리스도의 제사장 권을 상징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향은 제사장이 쓰는 기름으로써 '당신은 대제사장이 되십니다.'라는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히3:1절에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성막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짐승의 피를 하나님께 드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축복해 달라고 각종 재물을 드렸습니다. 백성을 위해 죽을 때까지 봉사했습니다.
  ⑶몰약을 드렸습니다. '몰약'은 예수그리스도의 선지자 권을 상징합니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고난, 죽음, 희생, 핍박'의 의미입니다. 즉 예수는 우리를 위해 희생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몰약은 죽은 사람에게 썩지 말라고 바르는 약입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 돌아가신 다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나라에 올라가셨다가 다시 이 땅에 재림하실 주님이십니다.' 이런 신앙의 고백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할/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왕으로 오셔서 나를 다스려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장으로 오셔서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로 오셔서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몰약을 만들 때는 머루나무 껍질을 벗깁니다. 액체가 흘러나옵니다. 이것을 모아서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옷 벗기셨습니다.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셨습니다.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온 인류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멸망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선지자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인줄 깨닫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칭의' 곧 의롭게 됩니다. /할/

 

  ⑥헤롯왕의 말보다 하나님 말씀을 더 순종한 박사들!(12).
  헤롯왕은 그들에게 경배를 마치고 나서 자기에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꿈에 하나님의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지시대로 순종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사무엘 선지자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예배는 순종으로 표현되고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아브라함이 말씀대로 순종의 본을 보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고문하던 일본 검사가 '천황폐하를 거역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고 협박했을 때 '조그마한 나라 일본 천황 폐하의 말을 거역해도 나를 이렇게 벌을 주는데 하물며 만 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거역하고 신사참배를 하면 그 벌이 얼마나 크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참된 예배는 헌신입니다. 오늘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십시다. 참된 예배는 예물입니다. 참된 예배는 말씀에 순종입니다. 이런 예배를 드릴 때, 하늘의 보고가 열리고 축복이 임하며 믿는 자들에게 능력이 따르게 됩니다. /할/아멘!/

 

  ⑦예수님의 탄생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축복이 되는가?
  ⑴구원의 축복입니다. 마1: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⑵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마1: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⑶기쁨의 축복입니다. 눅2:10절에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랬습니다. 주님의 탄생은 우리 인간에게 큰 기쁨을 주시는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⑷평화의 축복입니다. 눅2: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⑸부요케 하시는 축복입니다. 고후8: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오신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 임마누엘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겁날 것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셋방에서 살아도 천국입니다. 주님이 없으면 호화판에 살아도 지옥생활입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 분과 더불어 사십시오. 그리하면 우리 마음에 천국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의 오심을 맞이한 것처럼 여러분! 이제 주님의 다시 오시는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2010년 12월 25일 성탄절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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