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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의 성숙한 신앙! (합 3:16-19)
오늘 우리 교회는 맥추감사절로 드립니다. 출23: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그런데 사람들이 '지금은 보리 농사도 안 짓는 데 무슨 맥추절이냐?'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명하셨기에 지켜야 합니다. /할/
맥추절을 어떻게 지켜야 하나요? 이스라엘은 일년 중에 보리를 제일 먼저 추수합니다. 첫 곡식입니다. 첫 곡식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 때 10분의 1을 베어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 절기를 초실 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50일이 지납니다. 50일 동안 모두 익은 곡식을 베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곡식의 첫 10분의 1을 나머지의 첫 열매로 하여 제사장에게 거두어 드립니다. 제사장은 농사를 짓지 않고 이 곡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10의 8은 자기가 거두고 10분의 1은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가난한 이들과 아무나 와서 베어 가라고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맥추절에 하나님은 세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드리기, 섬기기, 나누기'입니다. 그러니까 '드리기와 섬기기와 나누기는 맥추절의 핵심'입니다. 맥추절은 드리기로 시작하여 나누기로 끝납니다. 그 중간에 섬기기가 들어 있는 것이 맥추절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십자가입니다. 수직적으로 하나님과 관계 속에 '드리기'입니다. 수평적으로 사람들과 관계 속에 '나누기'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섬기기'입니다. /할/ 또한 맥추절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을 첫 예물로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잠3:9-10절에서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할/
신16:16에서 절기 때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공수'라는 말은 '공허하게, 헛되이'라는 뜻인데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헛되이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에 합당한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나오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하심에 대하여 진정으로 감사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으며, 광야 40년 동안 그들을 안전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농사를 지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음을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맥추감사절을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할/
감사는 성숙한 신앙인의 표현입니다. 본문의 하박국 선지자는 절대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린 성숙한 신앙의 본을 보인 사람입니다. 그의 감사와 찬송을 한 마디로 표현한 구절이 1절에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는 말씀입니다.
'시기오놋'이란 '경이로운 곡조, 훌륭한 악보'라는 뜻을 가진 음악용어입니다. 아주 빠른 리듬과 열정적인 감정의 변화를 유도하는 음악의 한 장르입니다. 또 어떤 분은 여기 '시기오놋'을 하나님께 찬양드릴 때 사용하던 악기 중에 하나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셀라'라는 말이 반복되는데 이 말은 시편에는 무려 71번이나 사용되었고, 하박국서에서는 3번 사용되었습니다. 그 뜻은 우리말로 하면 '얼시구 좋다'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 창(唱)을 할 때 '얼쑤, 좋다' 화답하듯, 하박국이 노래 부르는 데 동의하면서 '옳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는 악보에 사용되는 '포르테'의 의미이기도 하고 또는 '아멘! 할렐루야'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모습은 하박국 선지자가 기도, 찬송할 때 화답하며 덩실덩실 춤추는 장면이기도 한데, 어떤 성경학자는 그래서 하박국서를 '작은 시편'이라고도 합니다. /할/
그리고 3:19절에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 여기 '영장'이란 성가대의 찬양 곡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찬송을 열정으로 했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그렇게 찬송하게 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탄하고 행복해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바벨론의 위협 가운데 보이지 않는 어두운 정국이었습니다. 바벨론은 B.C. 612년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605년 애굽마저 격퇴한 당시 최대의 강대국입니다. 이 바벨론이 이제는 애굽 편에 선 유다를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 조그만 유다, 이스라엘 전체도 작은데 그 중에서 두 지파 밖에 안 되는 조그만 유다, 대항할 힘이 있습니까? 남쪽 유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더 암담한 것은 유다의 계승되는 왕들이 계속하여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려고 해도 도움을 받을 믿음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모르면 평안하기라도 합니다. 그러나 선지자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유다가 당할 비극을 계속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말하면 미쳤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견딜 수 없고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바국 선지자는 성루에 올라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을 합니다. 그냥 감사가 아닙니다. 그냥 찬송이 아닙니다. 시기오놋에 맞춘 뜨겁고 힘찬 감사와 찬송이었습니다. /할/ ◀제목 소개!▶
'하박국'하니까 좀 이상합니다. '호박국'은 아닙니다. 좀 특이한 이름 같습니다 만은 그 이름의 뜻은 '포옹하다, 끌어안는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열렬한 포옹'을 의미합니다. 무슨 사람이름이 이런가? 이렇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뜻은 아주 깊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하나님이 뜨겁게 포옹해 주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뜨겁게 받는 자'란 뜻입니다.
인간과의 관계로 말하자면, '그 시대의 고민을 끌어안고 눈물 흘리던 사람'입니다. 선지자들이란 언제나 나라가 어려울 때 나타나서 위기를 타개하고 이 위기가 왜 왔는가를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소 선지서'인 하박국서는 3장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를 보면 하박국도 그 시대가 가지는 모순과 절망, 그리고 슬픔과 탄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왜 이러한 일이 있어야만 합니까?' 묻고 하나님께 대답을 받는 그런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①하박국이 그 당시 하나님께 품었던 의심 세 가지가 있었는데 무엇인가?
⑴'왜 선택받은 이 민족이 이렇게도 고통이 많고, 어려움이 많습니까?'를 물었습니다. 한마디로 '이 고통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물었고, 하나님은 '그 이유는 바로 너희들의 죄 때문'이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고통의 원인이 바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있는가?' 탄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사랑하시는가? 안 하시는가?' 이렇게만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⑵'악인이 왜 형통하는가?'를 물었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우리가 고생한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문제는 지금 이 나라가 적군 앞에서 도륙을 당하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벌하신다면 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바벨론 사람들인데, 우리보다 더 죄인입니다.
우리는 그래도 죄인이긴 하지만, 하나님이라도 알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이방의 할례 없는 저 백성들, 그들이 어떻게 우리를 칠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그들의 신보다 하나님이 못하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불의한 자들이 득세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이방백성들을 축복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잘 나서 높여 준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힘이 있게 된 이유는 내가 그들을 진노의 막대기로 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심판과 분노의 도구이니라'
물론 이 이방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인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힘과 능력으로 강해지고 정복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교만하고 분노하고 제 멋대로 다 하지만, 하나님의 답변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네게 진노의 막대기가 필요해서 그들을 강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대답이었습니다.
⑶'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또한 저 진노의 막대기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원수들은 영원히 번영할 것입니까? 우리들은 이렇게 망하고 끝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대답은 '아니다. 저 진노의 막대기들은 사용기간이 지나면 그들의 죄에 따라 내가 심판 할 것이다. 그러나 선택받은 너희들은 깨닫고 회개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런 대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당부하시기를 '낙심치 말고 절망하지 말아라.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 안에 소망을 두어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정녕 구원이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강조하시는 말씀은 2:4절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할/
하박국은 이 말씀을 받고 백성들에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당부했고, 자기도 그 신앙 안에 살았습니다. 후에 사도 바울이 이 신앙을 본받아 로마서의 주제로, 갈라디아서에서도, 히브리서 에서도 이 신앙을 주제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이 말씀에 기초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의인은 믿음을 먹고사는 자입니다. /할/
②하박국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가 행한 성숙한 믿음의 행위는 무엇인가?
⑴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찬양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기도하면서 고백한 말이 무엇인가? 2절에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하박국이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백성들의 죄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알고 나서 깜짝 놀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나니까, 영적인 눈이 떠져 바르게 현실을 바라보니까, 이건 뭐 죄가 보통 많은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뭘 몰라서 그렇지 정말로 영안이 열리면 내 죄가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라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그걸 알고 놀랍니다.
더구나 이 심판이 끝이 아니고 심판 뒤에는 아름다운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 깜짝 놀랍니다. 이 처절한 절망 안에서 낙심할 수밖에 없지만 이 징계 뒤에 구원을 허락하여 주시는 그 은혜 앞에서 지금 그는 놀라고 있습니다. /할/
여러분! 우리도 놀라야 합니다. 무엇에 놀라야 합니까?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이것에 대해 놀라야 합니다. 정말로 놀라야 합니다. 또 하나는 이렇게 쓸모 없는 나를 하나님은 왜 이렇게 사랑하시는지? 왜 붙들고 놓지 않으시는지? 끝까지 붙들고 나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애쓰시는지? 이 은혜를 알 때, 이 은혜를 감당할 수 없어서 놀라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충격과 감격!' 이것이 필요합니다. /아멘!/
현대인들은 무언가 짜릿한 감격을 맛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감격은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바로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알면, 거기서 가장 큰 감격이 철철 넘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감격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감격이 없습니까? 왜 찬송만 불러도 하품이 나오고, 죄인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눈만 멀뚱멀뚱하고, 옆 사람은 감사해서 우는데 '뭐가 저렇게 감사한가? 나는 장사도 안 되는데…'
왜 이렇게 감격이 없느냐? 자기를 모르고 하나님을 몰라서입니다! 진실로 나를 알고, 하나님을 알면 감격하게 되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때 하나님이 그렇게 지키시고, 훈련시키시고 나를 이곳까지 인도해 주셨구나' 감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돌이켜보고 깨닫는 은혜입니다. 감사도 그렇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니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의 사랑을 깊이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감사가 나옵니다. 친구의 우정도, 이웃의 사랑도 깊이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감사가 나옵니다. /할/
⑵하박국은 성전에서 놀라고 감격하다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무슨 기도를 했습니까? 2절에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부흥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부흥은 '우리 심령이 다시 사는 것'입니다. 부흥을 영어로는 '다시 생명을 준다, 즉 다시 살리는 것'이 부흥입니다. 우리 심령이 먼저 살아나면 교회 부흥은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할/
그런데 부흥의 본질은 이처럼 '주의 일'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내 사업이 잘되고, 내 가정이 평안하게 되는 것이 우리가 기원하는 부흥의 목표가 우선이 아니고 주의 일이 먼저 부흥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
그렇습니다. '주의 일'이 '나의 일'보다 훨씬 더 잘 되어야 하겠다는 기도가 진실하게 나와야만 우리 자신의 '모든 것'들 역시 자동적으로 부흥하게 됩니다. /믿/
⑶그의 기도는 겸손한 기도입니다. 2절(하)에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이런 겸손한 기도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인격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할 능력이 죄인들에게는 없습니다. 죄는 지었지만 심판을 감당할 능력이 죄인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비는 것입니다. '하나님! 벌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다만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옵소서' 이런 겸손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할/
③성숙한 신앙의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를 찾아봅시다.
⑴환난 날에 감사하고 있습니다(16).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그 당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한 점이 참 많습니다. 이스라엘도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우리나라처럼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주전 931년 분단이 되었습니다. 931년부터 두 나라로 분단되어 지내다가 주전 721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했으니까 분단되어서 110년 간이나 두 나라로 존재해 왔습니다.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할 때 남쪽 유다는 그것이 자기들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아주 태연해 했습니다. 그들은 죄가 많아서 그렇게 되었지만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북쪽에는 성전이 없는데 자기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고 자기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있으니까 자기들은 북 이스라엘하고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고, 그 성전에서 날마다 화려한 예배가 드려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껍데기만 남은 형식적인 예배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드리는 자위(自慰)적인 예배였을 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북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예배를 무시하고, 거룩한 성일을 무시하다가 멸망당했습니다. 그런데 남쪽 유다가 똑 같은 전철을 밟고 있었습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그 당시 국제 정세는 강대국이었던 앗수르제국이 멸망하고, 애굽 역시 국운이 기우려지면서 신흥국가인 바벨론이 강경한 세력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들은 어떤 존재였는가? 1:6절이하에 보면, '사납고 성급하며, 두렵고 무서우며,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하박국 선지자가 떠는 것은 이 무서운 신흥 강대국인 바벨론이 유대나라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말을 타고 창검을 번쩍이며 유대나라를 침략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내사정은 말이 아닙니다. 종교는 타락되었고, 정치는 썩었고, 군사적으로도 바벨론과 맞서 싸울만한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탈진상태입니다. 그러한 사정 속에서 하박국선지자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나라 안을 보았고, 나라 밖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입술이 떨렸고, 뼈가 썩는 것 같은 아픔이 엄습했으며, 그리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나라꼴이야 어찌되건 나만 편하고 잘 살면 된다는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나라가 어렵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이 매우 어렵습니다. 정치도 그렇고, 사회도 온통 어수선합니다. 왜 그렇게 파업들이 많은지 걱정입니다. 경제가 지금 굉장히 어렵다고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어려운 것을 아는 사람은 하박국처럼 두렵고 떨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나라가 안정되고 평안해야 예수 믿는 것도 평안합니다. /믿/ 그러므로 믿는 저와 여러분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아멘!/
그런데 본문에 하박국은 그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찬양을 드리는데 혼자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동원해서 성가대와 함께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1절에 '시기오놋에 맞추어 노래'하고 있습니다. 19절에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악대장의 지휘로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바벨론 군대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면서 '그래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하고 있습니다. 보통 믿음이 아니고는 흉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숙한 의인의 감사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환난 날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오히려 그 시련으로 말미암아 신앙과 인격이 더 깊어짐을 체험하게 됩니다. 나무는 가물 때에 뿌리가 깊어지고, 겨울 찬바람에 단단해 집니다. 어머니는 해산의 고통가운데 자녀에 대한 깊은 정이 생기게 되고, 부부는 고생하면서 정이 듭니다. 환난이 우리를 성숙시킵니다. /믿/
여러분! 믿음만 있으면 어떠한 어두움의 환경이라도 하나님께 감사가 나오고, 종국에는 그 환경이 감사의 조건이 열린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어느 나이 어린 소녀가 자기의 일기장에 이런 기도문을 썼습니다. '주님! 오늘도 바른 손으로 글씨를 쓰게 해 주시고, 두 눈으로 엄마 아빠를 보게 하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도 짜증부리지 않고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 어린 소녀의 기도야말로 성숙한 기도이며, 더없이 맑은 심령 속에서 우러나온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운 환경이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 성경의 인물가운데 환난 날에 망한 사람이 있고, 환난 날에 큰 영광을 돌린 사람이 있습니다. 욥23:10절에서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연단 후에 죽어 나오는 사람이 있고, 연단 후에 정금 같이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단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금 같은 믿음을 얻어 나오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연단 속에서 영혼이 죽고 인격도 죽어 나오는 것을 봅니다.
시50:14-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환난 중에도,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원수가 쳐들어오고, 함성소리를 들으면서 부르는 찬양이야말로 믿음이 강한 자만이 부를 수 있고, 승리를 믿는 사람들만이 부를 수 있는 승리의 찬양인줄 믿습니다. /아멘!/
⑵무에서, 즉 없어도 드리는 감사, 즉 실패 속에서 드리는 감사입니다(17).
17절 속에 무려 6가지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농경사회입니다. 사실 하박국에게 없는 여섯 가지는 그들 생활에 있어서 절대로 필요한 생활필수품들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백성들이 먹는 일종의 양식입니다. ㈁포도는 그들 음료로서 사용했습니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짜서 불을 밝히기도 하고 성전의 불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밭의 식물은 양식이었습니다. ㈄양은 옷을 만들어 입고, ㈅소는 밭을 가는 수단이었고 동시에 소나 양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이 다 없습니다. 지금 하박국선지자는 전쟁이 터지면 이 모든 것이 없어질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이 다 없을지라도 하나님 한 분으로 감사하겠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할/
▶'없을지라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이것은 성도만이 가지는 특권이요, 힘입니다. 단3장에 보면,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했던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 앞에 절하라고 했을 때, 하나님의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칠 배나 더 뜨거워진 풀무 불 속에 던져 버린다는 말을 듣고도, '만일 그래도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리이다'(17).
극렬하게 타오르는 풀무 불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건져내시겠다고 하는 저들의 확신에 찬 신앙은 우리의 신앙을 너무나도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결정적인 신앙의 고백은 단3:18절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이 환난에서 건져 주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이 질병에서 자유 함을 주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축복해 주시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죽음에서 살려주지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신앙에 위대한 고백입니다.
'없을지라도' 이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없을지라도'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진 것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 밭에 양식, 소와 양 따위 등 재산도 건강도 명예도 출세도 소위 눈에 보이는 재산이나 소유라는 것은 없어질 가능성이 많은 것들입니다.
전쟁 때에 없어질 수도 있고, 재난이나 질병, 또는 실패 때문에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넉넉하다고 해서 감사하는 신앙은 마치 어리석은 부자의 소행과 같습니다.
눅12:16절 이하에 보면, 어떤 부자가 농사에 크게 성공했습니다. 큰 창고를 짓고 그 곡간에 곡식을 가득가득 쌓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은 많이 쌓아 두었으니 이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노래를 부를 때, 하나님께서 그 부자의 꼴을 보시고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려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여러분! 이 얘기는 오늘 현대인들의 얘기입니다. APT를 사고 고급 승용차를 사고, 승진이 되고, 그래서 배가 부르다고 믿는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이라도 네 생명을 불러 가면 남은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193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여류작가 펄벅의 대표작 '대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농사꾼 왕룽과 그의 아내 아란은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열심히 땀흘리면서 농사일에 전념을 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나름대로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그만 그 땅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흉년은 여러 해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먹고 살 길이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왕룽은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남쪽에 있는 큰 도시로 이사가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 구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리어카 하나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남편 왕룽은 앞에서 끌고 아내 아란은 뒤에서 밀며 행상을 했습니다. 고생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내 아란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습니다. 남편이 자기와 늘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감사했습니다. 땀흘리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고마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자기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 부잣집을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왕룽은 자기가 일평생 동안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엄청난 돈을 손에 쥐게 됩니다. 그리고 아란은 값비싼 보석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땅도 사고, 큰집도 사고, 머슴도 부리면서 부자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풍요로웠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아란에게 불행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 왕룽이 여유가 생기니까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급기야는 첩을 들여앉혔습니다. 그리고 본부인 아란을 부엌으로 내쫓아 버리고 오히려 첩을 안방에 앉혔습니다. 심지어 아란이 가지고 있던 보석을 강제적으로 빼앗아서 첩에게 주기까지 했습니다. 아란은 첩 때문에 매일매일 슬픔 가운데서 지새우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아란이 밥상을 차려서 남편과 첩이 있는 안방에 들여보내 놓고 자기는 대충 부뚜막에서 밥을 먹습니다. 그러다가 너무나 서러운 나머지 흐느끼면서 이렇게 독백을 합니다. '차라리 그 때가 더 좋았는데' 여러분, 그 때가 언제입니까? 가난하게 농사지으면서 살았던 때가 더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리어카를 끌고 자기는 뒤에서 밀던 그 때가 오히려 더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가난했습니다. 풍요롭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자기와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 때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가난이 결코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풍요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소망의 주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할/
세상 사람들은 나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나를 배반하고 나를 저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무시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까지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나를 사랑해 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변함 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감사합니다. 오늘 하박국의 감사가 우리에게도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④하박국 선지자의 감사의 근원이 무엇인가?(18)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⑴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하나님 때문에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의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시37: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⑵그 다음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 때문에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주경학자 매투헨리는 '하박국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 것은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매튜 헨리 목사님이 하루는 골목을 지나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실컷 얻어맞았습니다. 그 뒤 인사불성이 된 채 길바닥에 내 팽개쳐졌습니다.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온 몸이 쑤시듯이 아팠습니다. 겨우 기어가듯이 움직여 집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는 잠시 가족들을 진정시키고 난 뒤에 서재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는 강도를 당했음에도 기도의 첫 마디를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다섯 가지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⑴비록 제게 있던 것을 다 빼앗겼지만, 귀한 생명만큼은 지켜주셔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⑵제가 지금껏 한 번도 강도 당하지 않았던 것을 이제서나마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⑶이번 일을 통해서, 제가 앞으로는 더욱 조심하면서 살 수 있도록 저를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⑷만약에 제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저도 강도와 같은 범죄자가 되었을는지도 모를텐데 저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⑸마지막으로 제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저로 하여금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는 강도를 만났습니다.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변함 없으신 사랑과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생각하라 그리고 감사하라(Think and thank)!' 주님은 마28:20절에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깊이 생각해 보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⑤이런 감사의 신앙! 성숙한 신앙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⑴'오직 하나님이 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호르몬의 종류가 약 50여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엔돌핀이라고 하는 호르몬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뇌에서 만들어집니다. 이 호르몬이 생성되면 피로도 회복되고, 병균도 물리치고, 암세포도 이기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엔돌핀을 기적의 호르몬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엔돌핀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아편의 열 배 정도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졸려도 엔돌핀만 생성되면 졸음이 싹 가셔 버리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엔돌핀만 생성되면 그 고통이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엔돌핀의 효과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과학자들이 놀라운 호르몬을 발견하였습니다. 다이돌핀이라고 하는 호르몬입니다. 이 다이돌핀 호르몬은 그 효과가 자그마치 엔돌핀의 4천 배나 됩니다.
그러면 이 다이돌핀이라고 하는 호르몬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엔돌핀은 대체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할 때 생성이 되지만, 다이돌핀은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뻐할 때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믿/ 그러므로 하나님을 확실히 믿으면 다이돌핀이 나와 힘있는 사람이 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감사의 신앙! 성숙한 신앙을 가지려면, 하나님만이 나의 힘으로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물질을, 권력을, 지식을, 자기의 기술을 힘으로 믿고 삽니다. 이런 세상적인 힘은 상대적이지만 하나님의 힘은 절대적인 힘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감사를 드리며 사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할/
⑵사슴처럼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사슴 발은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또 높은 곳으로 올라갈지라도 피곤하거나 떨리지 않은 동물이랍니다. 사슴은 포수가 잡으려고 하면 높은 곳에 뛰어 올라가 우뚝 서서 쳐다봅니다. 그러나 포수는 높은 곳으로 따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높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추격을 당하지 않도록 높은 데로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되 높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 말은 '은혜 위에 은혜'속에 살아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날라보면 저공비행을 할 때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내리고 구름이 덮여서 앞이 캄캄합니다. 그러나 창공 높이 올라가면 구름도 안개도 비도 없습니다. 항상 빛 가운데 밝은 창공을 날게 됩니다.
우리가 은혜의 높은 경지에 오르면 세상의 환난이 와도, 세상의 어떤 어려움이 와도 거기에 매이지 아니하고 은혜로 자유하며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유로움 속에 산다고 하는 것이 복입니다. 항상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게 됩니다. /할/
그렇다면 높은 곳은 어디입니까?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높은 곳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곳입니다.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믿음의)날개를 달아주며, 사슴처럼 높은 곳으로 오르도록 힘을 주는 곳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저 높은 은혜의 고지를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야 합니다. 찬송가도 있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아멘!/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새 힘을 얻습니다. 사40: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한 남자가 무척 상심한 표정으로 길을 걷고 있을 때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낙심해 있어? 무슨 일이라도 있니?' 그러자 '사실은 3주전에 우리 삼촌이 돌아가시면서 내게 3천만 원을 물려주셨어' '괜찮은 일이네' '더 들어봐. 그리고 2주전에는 복권이 맞아서 5천만 원을 벌었지' '수지 맡았네' 그러자 '아직 안 끝났어. 바로 지난주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내게 1억 원을 유산으로 남겨 주셨단 말이야' '장난하나? 도대체 뭘 가지고 그렇게 상심하는데?' '그런데 이번 주에는 아무 일도 없잖아'
그래서 주께서 우리에게 꼭 감사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감사는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통로입니다. 시50: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는 마음으로, 입으로, 헌신으로, 물질로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성숙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성숙한 신앙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1년 7월 10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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