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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열매로 드리는 맥추절! (잠 3:1-10)

by 【고동엽】 202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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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열매로 드리는 맥추절! (잠 3:1-10)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출2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유월절, 수장절'과 함께 구약의 3대 절기입니다. 오늘 드리는 맥추절을 '칠칠절, 초실절, 오순절'이라고도 부리고 있습니다.
  3대 절기를 신학적으로 보면 '유월절은 중생을 의미하여 맥추절은 성화, 수장절은 재림'을 뜻합니다. 즉 이 절기를 지키라는 의미는 '중생하여 거룩한 생활을 하는 자라야 재림의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또한 유월절은 '구원의 감사'이고, 맥추절은 '첫 열매 감사'이며, 수장절은 '수확의 감사'입니다.
  모든 것의 공통점은 감사입니다. 성경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예배에 감사가 빠지면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가 없으면 예배가 아닙니다.
  누구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대상16:34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출23: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고 하셨으니 글자 그대로 소맥인 밀과 대맥인 보리를 추수하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또 맥추절은 연중 첫 농사를 지어 첫 열매로 첫 번째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라고 하여 초실절이라고도 하고 또 유월절 다음 날부터 계산하여 50일째 되는 날로 오순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 유월절 다음날부터 49일 만이라고 하여 칠칠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두 가지 은혜를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주셨고, 신약시대에는 성령님을 보내시어 교회가 탄생된 날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구약시대의 맥추절을 어떻게 지켰습니까? 9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란 가장 최상급의 열매를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제목소개!▶

 

  잠언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는 '미쉴레'라고 하는데 이 말은 '다스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발걸음을 다스리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언을 주셨는데, 이 잠언을 주신 이유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생활의 법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음으로 삶의 질서를 알고, 지혜를 알고, 그래서 조화를 이루며 세상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이 잠언을 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패터슨'은 이 잠언을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의 수를 줄이고 지혜로운 사람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 주셨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청년들을 위해서'입니다. 잠언을 보면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주는 내용이 많습니다. 청년들은 탈선하기 쉽고, 세상을 막 살아가기가 아주 쉬운 계층이기 때문에 특별히 여기서 청년들에게 주는 글이 많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특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 지혜의 말씀만을 묶어 놓은 책'입니다. 그래서 잠언의 말씀을 보면 모두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아멘!/
  오늘 본문은 온통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본문은 '내 아들아' 다정하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부모님이 아들에게 엄하면서도 사랑이 담긴 모습으로 아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아들을 이렇게 부른 이유는 가르침을 위한 것입니다.
  이 가르침 속에 나타난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접속사인 조건 절이 나옵니다. 그 단어가 바로 '그리하면'인데 공동번역에는 '그렇게 하면'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2절과 4절, 6절과 10절 등 네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면, 그렇게 하면'이라는 말인데 더 쉽게 표현하면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순종하면, 그렇게 충성하면, 그렇게 살면'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어떤 복을 준다고 약속하십니까? 2절에서는 장수와 평강에 복을, 4절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 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는 복을, 6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길을 바르게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는 복과, 8절에서는 건강의 복과, 10절에는 창고가 가득 차고 새 포도즙이 넘치는 풍성한 삶의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할/ 차례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세상에는 많은 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국법이 있으며, 미국에는 미국 법이, 일본에는 일본법이, 영국에는 영국 법이 있으며, 로마에는 로마의 법이 있습니다. 회사에는 회사의 법이 있고, 어느 단체이건 그 나름대로의 법이 있습니다. 운동경기에도 경기의 법칙이 있듯이 신앙생활 안에서도 법이 있고, 공식이 있습니다.

  본문은 '내 아들아!'로 시작합니다. 얼마나 다정합니까?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된 자, 곧 천국을 상속받게 된 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시험을 봐서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할/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아버지(하나님)가 그의 아들(자녀)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나의 법'은 '하나님이 주신 성경의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법이라고 표현했는가? 법은 표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 그 명령을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고 그 법을 순종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여기서 '잊어버림'은 기억력의 부족에서 오는 '망각'을 뜻하지 않고, 고의적인 '무시'와 '무관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무관심해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무시해 버리시고, 무관심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손해입니까? 우리가 손해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손해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 우리가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특히 우리 개신교에서는 말씀의 선포 시간을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여깁니까?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미 들은 말씀이지만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그 말씀을 잊어버리지 말고 항상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어야 그 말씀을 언제고 지킬 수가 있습니다. /믿/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배우고 묵상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머리로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여기에서 마음은 '감정과 사상의 원천'임을 뜻합니다. 마음은 사상과 생각을 담고 있는 틀입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행동이 나오고, 마음이 병들면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사상이며 가치관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했는데, 이것은 '순종하다, 보호하여 지키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자발적인 동기에서 지켜져야 할 '하나님의 명령'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키는 것이요,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니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지켰습니다. 지켰다는 말은 순종했다는 말이요 그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질문이 없었습니다. '어디로 떠날 가요?' '언제 떠날 가요? 왜 떠나야 하나요?' 이런 질문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무조건 떠났습니다. 믿음에는 질문이 없습니다. /할/
  어느 날 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너는 네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잡아서 내게 번제로 드려라'고 할 때도 '하나님! 바꾸어 놓고 생각하여 보십시오. 100살에 난 아들에게 어떻게 칼을 대나요?' 그러지 아니하고 '아멘!'하고 순종했습니다.
  ▶왜 믿음에는 질문이 없었습니까? 하나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면 절대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면 십일조는 절대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믿/
  ▶성경에 보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유난히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구약에도, 신약에도 여러 번씩 강조되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번씩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이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엡6장에 보면 '부모를 공경하라'하시고는 부연 설명하기를 '그리하면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어떤 상급이나 보상이나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너무나 지당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면 '그리하면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하고 부연 설명을 하면서 상급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고 동시에 세상에서 잘 안 지켜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가?
  ⑴부모님의 사랑이 너무나 지극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깨끗한 사랑은 없습니다. 세상에 사랑이 풍년을 이루고 있고 어디를 가나 사랑이 넘쳐있는 것 같지만 그런 사랑들은 모두 이해 타산적인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의 사랑만큼은 진실하고 가식이 없는 깨끗하고 순수한 사랑입니다.
  서양에서는 가장 위대한 어머니로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를 꼽습니다. 그의 독실한 기도의 힘이 탕자 아들을 마침내 성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서양인들은 모니카를 성모라고 부릅니다. 얼마나 위대한 힘입니까?
  셰익스피어의 햄릿 1막 2장에서 '여자를 약한 자'라고 했습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왜 여자가 약한 존재입니까? '마틴 루터'는 '돈은 강하다. 왕은 더욱 강하다. 그러나 여자는 한층 더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교육자는 말하기를 '여자에는 세 종류의 여성이 있다. 그것은 어머니와 아내와 딸이다. 딸은 약하다. 아내는 강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주 강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잘 표현한 말입니까? 어머니가 왜 강하냐 하면 해산할 때 죽을 뻔했으면서도 또 아이를 낳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어머니말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까?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모진 것이 모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랑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잠23장에서 말씀하시기를 '너 낳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고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⑵부모의 가르침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부모가 준 교훈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교훈은 곧 하나님의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부모들에게 당신이 직접 하실 양육권을 위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격언에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는 부모'라고 했습니다.
  진정으로 자식의 미래와 앞날을 걱정해 주고 염려해 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부모밖에 없습니다. 자식이 성공했을 때 진정으로 기뻐하면서 축하를 해줄 사람은 친구도 아니고, 이웃도 아니고, 형제도 아닌 부모입니다. 부모의 사랑과 염려와 기뻐함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⑶부모의 노후를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에는 노인 문제가 사회 문제화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노인은 장수하고, 힘은 없고 그런데 갈 곳은 없고, 할 일도 없으며, 생산 능력은 없고, 자식들이 알아주지는 않고 그래서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부모는 생시에 자식이 죽으면 평생 그 죽은 자식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자식 앞에서 부모가 죽으면 몇 날 못 되어 잊어버리지만 부모는 죽는 날에야 그 죽은 자식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경외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세상에는 법이 참 많이 있습니다. 법에는 큰 법도 있고 작은 법도 있고 가시적인 법도 있고 그냥 전승되는 법도 있습니다. 모두 지켜야 할 법들입니다. 그렇게 법을 지키면 모두에게 유익이 주어집니다. 나에게 유익이 주어지고 너에게도 유익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 법을 무시하면 곧바로 해를 입게 됩니다. 내가 해를 입고 또 너도 해를 입습니다.  교통사고도 그렇고 안전사고도 다 안전수칙을 안 지켜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살려면 이 법을 지켜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지키고 너를 위해서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도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큰 법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일입니다. 이것이 대원칙입니다.  

 

  ▶2절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택)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장수는 동서고금과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인간이 누리는 축복으로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도 장수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는 자에게 주는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평강의 복으로 누리면서 장수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평강'은 원만한 인간관계와 태평성대의 삶, 모든 위험과 장애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마음의 평정을 얻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 오래도록 평안한 삶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매 순간 순간 평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장수'의 복은 그 심령의 '평강'을 통해서 건강한 생애를 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평강'이 없는 '장수'란 축복이 아닙니다. 오래 살아야 하지만 평안해야 합니다. 평안하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고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장수가 온전한 축복이 되기 위해 평강을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평강'은 외적인 안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교회가, 나라가 외적으로 평안해야 합니다. /할/

 

  ▶3절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여기 '인자'란 말은 '동정, 혹은 불행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또는 사람이 잘못한 것이 있을 때 그 잘못에 대해서 관대한 태도를 취하거나 아량 있는 정신을 보여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진리'는 '말의 진실, 마음의 진실, 행위의 진실'을 의미합니다. 즉 사람에게 대한 자세를 말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을 보면 같이 가슴아파 할 줄 아는 마음의 자세, 동정심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라'는 말은 대신관계로는 '하나님을 향한 성실함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변하지 말고 지키라'는 말씀이고, 대인관계로는 '진실된 마음으로 영혼을 불쌍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할/
  '네 목에 매며 메 마음 판에 새기라'고 한 것은 믿음 생활의 더 강력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목에 맨다'는 것은 항상 생활화하라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자랑하고 나타내라는 말입니다. 진주 목걸이는 자랑삼아 매고 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 목걸이는 달고 다니면서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있습니다. 나는 집사입니다. 성도입니다. 성가대원입니다. 나타내십시오! 그래서 주일날 세상으로 유혹하면 '나는 교회에 가야 한다'고 단호히 말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로 목에 메고 다니며 외웠습니다. 그리고 '마음 판에 새기라'는 말은 믿음의 삶이 생활화되고, 그것이 내면에 자리를 잡도록 하나님이 말씀을 소중해 여기라는 말입니다. 목에 걸고 다니면서 마음 판에 새기지 않는다면 위선이고 형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4절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은총을 받는다는 말은 쉬운 말로 사랑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사랑 받고, 사람에게 사랑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귀중히 여긴다'는 말은 '귀히 여기고, 칭찬하고, 값있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도, 사람에게도 사랑 받고 칭찬 받고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래 살아도, 귀중히 여김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대학에 가고, 잘 살아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귀중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멸시받고 비난받고 미움을 받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5-6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 말씀은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거나 잊어버리면 곧 바로 나타나는 마음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교만이고 자만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자만이고 교만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참된 지혜와 능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의뢰하고'는 '어떤 대상에 전적으로 몸을 의지하여 기댄다'는 의미로 '완전한 의탁과 신뢰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모든 인생의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또 '의뢰한다.'는 말은 '기댄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지게가 지팡이에게 의지하여 세워져 있듯이 우리 자신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 살아가는 삶이 겉으로 누가 보아도 그렇게 느껴지도록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데 어떻게 의지해야 합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여기 '너는 마음을 다하여' 이 구절은 '기독교의 근본이 되는 신앙의 기본 원리'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과 사상의 원천이 되는 곳으로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나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일찍이 모세는 신6:5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눅10:27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죽도록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꾀와 지식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명철'은 분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자기 주장만 옳다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작은 머리로 이해되는 하나님만을 믿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이 작은 머리에 다 들어갑니까? 하나님이, 이 작은 머리에 담기는 분입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세상엔 많습니다. 노아 때 사람들이 자기 명철만 의지하다가 다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철칙입니다. 창조주로 인정하십시오! 구세주로 인정하십시오! 그 분은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막9: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아멘!/

 

  ▶7절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여러분!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완전하지 못합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왜? 그분이 지혜의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이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라가 지혜를 얻는 자리입니다. /믿/

  본문 16-17절에 지혜를 얻은 자가 받을 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여러분!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지혜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얻는 비결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경외는 오직 하나님께만 쓰는 말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배 드리는 마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기본 정신 두 가지를 바르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섬김과 경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마4:10절에 예수님께서 세 번째 시험을 이기느라 동원한 말씀 속에 그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배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구약이든 신약이든 '엎드리다, 절하다, 무릎을 꿇다'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시99:5절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을 높여드리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그리고 경배하는 것만 가지고 예배를 드렸다고 하면 안 됩니다. 섬김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다음에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경배가 마음의 작용이라면 섬김은 행위의 영역입니다. 경배가 의식이라면 섬김은 의식을 살아있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경배가 뼈대라면 섬김은 살입니다. 경배가 원리라면 섬김은 실천입니다.
  그렇습니다. 경배가 내적 태도라면 섬김은 외적 태도입니다. 경배가 예배시간에 하는 것이라면 섬김은 예배시간 밖에서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있어 이 두 영역 중 한 가지만 있다면 올바른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경배만 있으면 외식이고 섬김만 있으면 사랑의 실천은 돼도 예배는 아닙니다. 바른 예배 자들은 악에서 떠난 자들입니다. /믿/

 

  ▶8절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본문은 내면의 고통으로 '뼈가 쇠하고 진액이 마른다'는 탈진 상태의 표현(시32:3-4)과 대조되는 말로 '소생과 원기의 회복'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골수'는 우리의 몸을 지탱해 주는 '뼈, 골격'을 말하고 '윤택하게'는 '물을 대다, 물을 축이다'란 뜻으로 회복의 의미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인생 여정 길에 피곤함이 없고 곤비 함이 없는 독수리 같은 새 힘을 공급해 주시겠다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아멘!/

 

  ▶9절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오늘 맥추절의 주제입니다. 레23:9-10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첫 열매를 드린다고 해서 맥추절을 초실절이라고도 합니다.
  수5:12절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여기 '그 해'란 어떤 해입니까? 보통 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 그 예언이 이루어진 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간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나오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해입니다. 축복이 시작되는 해입니다. 약속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해입니다. 우리에게도 그 해가 있어야 합니다. /아멘!/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 왔습니다. 가나안 땅은 어떤 땅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다고 약속한 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가 오실 땅입니다. 축복의 땅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남의 땅이 아니라 우리 땅입니다.
  그러니까 '그 해에 가나안 땅에서'라는 말은 엄청난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해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첫 발을 디뎠다는 말입니다.
  '열매를 먹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해에 가나안 땅에서 그 땅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만나가 그쳤습니다. 40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뜰에 쌓이던 만나가 그쳤습니다.
  만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공짜 양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가꾸어야 합니다. 사람이 경작해야 합니다. 이마에 땀을 흘려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열매입니다. /할/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착각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 와서도 계속 하나님이 만나를 주시면 안 되는 것일까? 그것이 축복이 아닐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공짜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영국이 온 세계를 지배할 때 영국이 여기 저기 나라를 세운 나라들이 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을 세웠습니다. 미국의 뿌리는 영국입니다. 호주, 뉴질랜드도 영국 영입니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영국 땅에는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영국인이 미국 땅에 들어오니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인디언들이 가끔 습격을 했습니다. 기습 공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미국인들 이 인디언들을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공짜로 주었습니다. 먹는 것 다 공짜입니다. 공부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공짜로 대주었습니다. 그러자 인디언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 공짜로 생기는 데 일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공부도 하지 않아 문맹자가 되었습니다. 마약을 하고 쾌락만 즐기기 시작하자 마약환자가 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문맹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찌꺼기 인생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나면 똑똑한 인디안 지도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공짜 거부 운동'이었습니다. '일하며 먹고살자'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공짜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만나만 계속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 와서 그 땅 열매를 먹는 순간 만나가 그쳤습니다. 만나가 열매로 바뀌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리농사를 지어서 첫 열매로 추수하는 모습을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온 가족과 이웃이 보리밭으로 갑니다. 주인은 망태기와 낫을 들고 앞장을 섭니다. 자기 밭은 자기가 알기 때문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이 때 잡담하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찬양을 하면서 가게 됩니다.
  주인은 밭을 둘러보고 가장 풍성하고 잘 익은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낫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보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이 낫으로 이 보리를 벨까요?' 그러면 둘러 선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 낫으로 그 보리를 베십시오' '이 낫으로 이 보리를 벱니다' '그 낫으로 그 보리를 베십시오' 주인은 십분의 일을 벱니다. 모두가 나누어 가지고 성전으로 가지고 가서 첫 예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추수한 것 중에 가장 좋은 것, 가장 먼저 추수한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것은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것이란 모든 것의 대표입니다. 처음 것이란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그렇기에 처음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는 자는 나머지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자는 나머지 모든 열매들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첫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자는 나머지 모든 자녀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안 호두과자 할머니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62년 전 이 호두과자를 개발 천안의 명물로 만든 호두과자 할머니 심복순(82)씨가 '나는 다윗 왕보다 행복합니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책제목을 이렇게 낸 이유를 물었더니 '다윗은 성전 짓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보잘 것 없는 제게 하나님의 성전을 일곱 군데나 세웠으니 다윗 왕보다 행복한 게 아닙니까?' 하더랍니다.
  책에는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쓰여 있습니다. 신혼 초부터 계속된 남편의 바람기, 아들이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한꺼번에 잃은 재산, 사랑하는 둘째의 죽음, 그는 이 가운데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호두과자를 구웠습니다.
  그의 택호가 초실이랍니다. 대개 친정 동네 이름으로 호를 짓지만 그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려고 성경에서 택호를 지어 초실 댁입니다. 즉 처음 난 열매처럼 하나님을 정성스럽게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그가 일어나는 시간은 새벽 3시 새벽 첫 시간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하루의 첫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함입니다. 그 뿐 아니라 십일조 외에 하나님을 위해서 따로 정성을 모았습니다.
  한때 천안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로 꼽혔지만 하나님께서 그 물질을 쓰지 아니하시고 가난에서 출발한 정성어린 물질을 원하셨던지 빈털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호두과자 판돈을 하나님 몫으로 매일 저축했고 그 돈으로 하나씩 필요한 지역에 교회를 세웠는데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교회를 7개를 세웠습니다. 지극한 정성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이 초실 할머니의 그 정성은 이스라엘의 초실 절의 정성입니다. /아멘!/

  ▶신앙생활은 봉헌생활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주님께 드리는 생활이 봉헌생활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소중한 것들을 다 주셨습니다. 주시되 남김없이 다 주셨습니다. 자존심도 버리셨고 체면도 버리셨고 생명도 포기하셨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창조주가 피조물들로부터 죽임을 당해서 땅에 묻히는 수모도 당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제물 되어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 주셨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나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께 다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봉헌생활이고 신앙생활입니다.
  ⑴신앙 생활은 '내 몸을 드리는 봉헌생활'입니다. 롬12: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할/
  ⑵신앙 생활은 '시간을 드리는 봉헌생활'입니다. 헌신의 삶을 살아가려면 우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시간이 없어서 봉사를 못하겠다고 합니다. 시간을 드리는 것도 소중한 봉헌입니다. 우리는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너무 많이 사용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놀고 즐기고 유흥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는 인색합니다.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 봉헌해 보세요!
  어떻게 봉헌할까요? 롬12:6-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⑴부지런해야 합니다. 사람은 바쁘게 사는 것보다 부지런히 사는 것이 보람된 일입니다. ⑵열심을 품으라고 합니다. 믿음에 대해 진지하고 타오르는 열정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생동하는 믿음을 가지고 활화산처럼 믿음을 가지고 용암이 끓듯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봉헌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남은 것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은 첫 열매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첫 자식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첫 새끼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나 첫 열매는 소중합니다. 자식도 첫 자식이 소중합니다. 열매도 첫 열매가 소중합니다. 월급도 첫 번 받은 월급이 귀합니다. 사랑도 첫사랑이 오래 기억됩니다. 친구도 첫 친구가 오래갑니다. 믿음도 첫 믿음이 오래 기억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열매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봉헌의 정신입니다. /할/
  ▶또 여기서 첫 것은 '날의 처음 것' 즉 주일을 말합니다. 주일은 첫날입니다. 이날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처음 날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그 다음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엿새 동안 따라올 줄 믿습니다. 하는 일이 잘되고 형통합니다. 주일은 거룩한 날입니다. 하나님은 첫 것을 원하십니다.
 
  ▶10절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창고는 무엇입니까? 곳간입니다. 금고입니다. 곳간이 차고 금고가 차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창고가 채워집니까? 소산물의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아멘!/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창고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마음의 창고가 있고, 땅위의 창고가 있고, 위로 하나님의 창고'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창고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가득 채워진다고 했습니다.
  먼저 '마음의 창고'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마음속에 충만해서 감사와 기쁨이 차고 넘쳐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자신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넘쳐야 합니다.
  '땅위의 창고'도 차야 합니다. 생활이 풍족해져야 합니다. 사업이 형통해져야 합니다. 생활이 부유해져야 합니다. 또 하나는 '하늘의 창고'가 차야 합니다. 이 창고는 우리가 신앙생활로 채워야 합니다. 기도로 채우고 헌신으로 채우고, 섬김으로 채우고 봉사로 채워야 합니다.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성경에서 새 포도즙은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⑴잔치를 의미합니다. 유대인들도 잔치할 때마다 포도즙을 마셨습니다. 잔치의 상징은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즙이 넘친다는 말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가정에 좋은 일이 많이 생겨야 기쁩니다. 자녀가 잘 되어야 기쁩니다. 신앙생활에 은혜를 받아야 기쁩니다. 그런 기쁨으로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⑵포도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의 음료수입니다. 목마르지 않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맥추절을 바로 지키면 우리의 영혼이 목마르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⑶성령 충만함을 뜻합니다. 행3:13절에 보면 성령 충만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새 술에 취했다'고 했습니다.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친다'는 것은 곧 성령 충만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맥추 감사절을 바로 지켜 성령 충만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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