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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을 입었으면:

by 【고동엽】 2022. 3. 30.

새 사람을 입었으면

자료원 : 갈보리교회 박조준목사

 

*** 새 사람을 입었으면 ***

 

갈보리 교회 ; 박 조 준 목사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 중에서 첫 반 부분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나중의 반 부분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부분에 대해서 언급

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먼저 그리스도인의 공동생활에 대해서 말한 다음

에 조금 전에 읽어 주신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개인생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

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새 사람을 입었을 때 소극적인 면을 어떻게 나타

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다음 주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 대한 적

극적인 면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려고 합니다.

 

이미 주신 말씀 17절에 보면 "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에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고 말씀했습니다. 이방인 그러니

까 옛 사람과 그리스도인이 다시 말해서 새 사람의 삶을 완전히 대조적으로 말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 새사람이 되었으면 옛 사람으로 살아 갈 때와는 완

전히 다르게 살아야만 합니다. 옛 사람의 생활은 마음이 허망한 것으로 살았습

니다. 소위 실존주의 예술, 문학 및 철학이란 것은 인간의 공허성,인간의 무미

, 인간의 초조함을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허망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18절 말씀에는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

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말하자면 옛 사람의

생활은 죽음과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인간 아니 하나님이

내버린 인간의 생활이 어떠합니까?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이 아닌 것을 경계

있습니다. 그것을 인간의 자유로운 행동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인간의 자유라기보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그 정욕대로 내어 버려두신 결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아무리 그가 죄를 범해도 아무런

벌도 받지 아니한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때 그저만사 형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 그러는 줄 압니까? 하나님이 아예 내던

져 버렸습니다. 될대로 되라 하고 버렸습니다. 버림 받은 존재를 아무리 죄 지

어도 거기에 대한 형벌을 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버림 받은 사람의 생활

태도가 어떻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19절을 보세요.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

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24절 이하에

도 비슷한 말씀들을 봅니다.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두사"

했고,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다"했고,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감당지 못한 일을 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29절에 이하에

보게되면 "곧 모든 불의,추악,탐욕,악의가 가득한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

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

시여 내어 버려둔 사람이 바로 이렇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앞에 나타난 인간들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천로역정에 나타난 기독교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때에 자기 자신이 놀

랄 정도로 멸망해 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에 이르는 제

일보입니다. 사실 복음 알기 전에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알게 못했

습니다.옛 사람의 생활 모습은 한 마디로 말해서 감각 없는 자의 생활이었습니

. 아파도 아픈 것을 모르는 생활이 감각없는 생활입니다.

 

 

 

 

더러워도 더러운 것을 느끼지 못하는 생활이 감각없는 생활입니다. 죄를 범하면

서도 죄를 느끼지 못하는 생활이 바로 알지 못하고, 바로 느끼지 못하고, 바로

원할 줄 모르는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이 굳어져서 바로 느끼지 못하고 소원이 잘못 되어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멀리 떠나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방탕에 방임해서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올바른 신앙에서 떠난 것에서는 반드시 도덕적

인 방탕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소돔성에 그랬고, 고대 헬라가 그랬고, 고대 로

마가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저희가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서 자신을 방탕에 방임해서 모든 더러운 욕심을 따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각이 없다는 말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마음이 굳어진 사람들은 양심의 감각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화

인 받은 양심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죄를 범하면서도 죄로 여

기지 아니하고 죄로 하나님을 삼으며 부끄러움을 오히려 영광으로 삼습니다.

 

그러면 새 사람을 옷 입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20절을 보십시

.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 원문에 보

면 너희라는 말에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옛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는 저희라는

말로 씁니다. 저희는 어두음 속에서 그 마음이 허망한 것을 행하고 총명이 어

두워지고 마음이 굳어지고 감각이 없어 부끄러운 것을 모르고 모든 더러운 생

활을 자행하는 자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오로지 너희만은 다른 사

람들은 몰라도 너희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와 같이 배우

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새사람을 입을 수 있습니까? 22 절을

보십시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

어버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새 사람이 되려고 할 것이면 먼저 옛 사람을 벗어버

려야 합니다. 거듭나지 못했던 육에 속한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 영이 완전히 새로워져야 합니다. 벗어버리자고 버린다고 하는 것은 수양이나

교육이나 또는 훈련을 통해서 점점 더 개선되어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 사람은 완전히 죽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전혀 새롭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벗어버린다고 하는 말은 침례교에서 침례를 받을 때 침례

받는 세례복을 입기 위해서 평상복을 벗어버리고 침례복으로 갈아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1장에도 어두움이 이를 벗어버리고 빛에 갑옷을 입자고 말했

습니다. 새 사람이 되려면 먼저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 새롭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릴 새롭게

하십니다. 로마서 12:2절의 말씀을 보아도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

" 하였습니다. 여기 마음은 심리를 가리킵니다. 사상의 중심을 말합니다.

사람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의

인격 전체를 지배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구약 잠언에도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의인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겨에 보면 생각은 두가지가 있습

니다, 하나는 위에 것을 생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땅에 것을 생각하는 것입

니다. 위에 속한 생각이 있고 땅에 속한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이 비록 땅에 살지만 위에 속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

에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하

는 것을 보아서 내가 위에 속해 있느냐 아니면 땅에 속해 있느냐 하는 것을 나

스스로 판단 할 수 있습니다.

칼 칠치라는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추구하고 있는 게

뭐냐 하는 걸 알려면 뭐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고 밤에 자다가 을 번쩍 뜨는

순간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 그게 바로 그 사람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잠을 자자다가 눈을 번쩍 뜨는데 주님,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면 이 사람은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잠을 자다가 눈을

번쩍 뜨는 순간 돈 그럽니다. 그건 돈 찾는 사람입니다. 아마 연애라는 사람은

눈 번쩍 뜨는 순간 미스 김 그럴 겁니다. 그건 미스 김을 찾는 사람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 속해 있나. 내가 지금 추구하고 있는 게 뭐냐 이것을 스스로 판

단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된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위에 것을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여기 새롭게 되어라는 동사를 문법적으로 말하면 현재 부정형입니다

다시 말해서 매일매일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속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속 사람이 매일 새로워질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의 그 사람도 새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새 사람을 입었으면 어떻게

나타납니까? 다섯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거짓말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25절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했습니다. 옛 사람이 주는 진

리보다 더 좋은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어 새 사람을 입었으면 새

사람된 증거로 거짓말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도 아홉째 계명에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말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계명을 가장 많이 범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거짓말 안 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여러분 거짓말은 나쁜 것입니다.

 

19:9절에도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고 경고했습니다. 옛날 아덴에는 거짓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서 시민권을 박탈했다고 합니다. 애굽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발

견되면 그 사람의 코와 귀를 잘랐다고 합니다. 애굽에서는 거짓말하는 사람은

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이 거짓말을 하게 됩니까? 사실과 내 생각을 구별하지 못하는데

서부터 생기는 게 거짓말입니다. 가령, 그 아무개 아주 불친절해. 그 사람이 아

주 교만해, 그 사람 무슨 일이든 독단적이야 하는 이런 말들을 흔히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사귀어서 알고 보면 그 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발견하

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

나 나 개인과 인상에 지나지 않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 내가 받은 인상

이 꼭 정확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소문을 퍼뜨리는 일을 삼가해야 합니다. 소문이란 것은 정확한 것이 못

됩니다. 그리고 그 말이 정확하다고 해도 좋지 않은 말은 아예 묻어 버리고 될

수 있는 때로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부족하기

때문에 실수가 있고 잘못이 있습니다. 실수 없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아무도 부

족하기 때문에 실수가 있고 잘못이 있습니다. 실수 없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래 기억하지 말고 그것을 잊어야 합니다. 오래 기억하고 씹고 또 씹

으면 쓴물만 나옵니다. 잠언에도 땔감이 없으면 불이 꺼진다고 하는 말이 있습

니다.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사람이 없으면 자연히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의 물건을 도적질하는 것도 큰 죄지만은 훔친 물건을

사는 것도 공범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쁜 소문 전하는 것도 안 좋은 일이지만 그

이야기 재미있게 들어주는 것도 같은 죄를 범하는 일인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의 본성이 타락됐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 하기를 좋아합니다. 좋은 이야기

하면 별로 관심 없이 이렇게 더운 때는 건들건들 졸다가도 나쁜 얘기.흉보는 얘

기 하게 되면 벌떡 깨 가지고 흥미 있게 듣는 것이 우리 사람입니다. 이것은

아직도 새 사람을 입은 사람으로 마땅히 할 바 아닙니다.

전에 성 어거스틴는 그가 주도하던 식당에서 남의 허물을 얘기하는 사람은 식

당에서 환영하지 않습니다라는 글을 써 붙인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닌게 아

니라 식사를 달라면서 남의 허물을 말하기가 쉽습니다. 친구끼지 모여서 소나

닭잡아 먹다가 나중에는 친구까지 잡아먹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로 말

 

 

 

하면 교역자들 구역을 책임지고 심방하는 분들, 교인댁을 방문하는 분들이 끼치

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것 보십시요. 저 사람 아주 나쁜 사람이야. 밑에 손을 한번 자세히 보십시오

남을 향해 찌르는 손가락이 둘이라고 합시다. 그러면 이 나머지 손가락은 누구

를 향하고 있습니까? 나를 향하고 있습니다. 둘이 남을 향하고 있으면 셋이 나

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흉보지 맙시다. 흔히 예수님도 말씀하

신 대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를 흉보기가 쉽습니다.

이런 경우뿐만 아닙니다. 언론이도 조심해야 합니다. 기사를 잘못 냄으로 다른

삶의 명예가 손상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침소봉대해서 남의 허물을 보도

하기 쉽습니다.

이사야처럼 우리의 입술이 성령의 불로 깨긋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입

술로 다른 이의 상한 마음을 고쳐 줄 수 있고, 약한 사람을 튼튼하게 전할 수가

있습니다. 이 입으로 슬픈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고 튼튼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입으로 슬픈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고 복음을 전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왜 거짓말을 말하고 진실을 말해야 합니까? 우리가 서로 지체

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라에게손해를 끼치고 고통을 주면 다른 지체가 고통

당하면 또 다른 이 지체도 고통을 당하는 게 사실아닙니까?

 

둘째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

하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야고보서 1:19-20절에도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분 혹

은 성내는 것은 사사로운 일로 인해서 분을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에는 세가지가 있는데 사사로운 분, 공적인 분, 의로운 분이란 게 있습니다

나와 대립되는 감정 때문에 싸우는 분을 사분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분을 내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런 분노는 될 수 있는대로 내지 말고 분이 난다고 해도

될 수 있는대로 더디내고 혹시 분을 내었더라도 오래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

. 또 내게 잘못한다고 하더라도 분을 곧 풀고 용서해 주라고 했습니다. 분한

마음을 오래 품고 있으면 마귀로 틈을 타게 하는 결과가 돼서 결국은 시험에 빠

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니까 분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말

씀에도 "분을 내어도"라고 말씀했습니다. 분을 낼 수가 있스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카인이 아벨에 대해서 분한 마음을 품고 있다가 그만 인류 역사상 최초로 그것

도 형제 사이에 살인의 비극이 벌어지게 된 걸 기억하게 됩니다.

 

카인이 아벨에 대해서 분한 마음을 품고 있다가 그만 인류 역사상 최초로 그것

도 형제 사이에 살인의 비극이 벌어지게 될걸 기억하게 됩니다. 분한 생각이

나도 해가 지도록 품고 있으면 안됩니다. 마귀가 틈탈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

입니다. 부부가 한몸이라고 말함니다만 어떤때는 생각이 안맞는수가 있고 이것

때문에 언쟁이 벌어지기도하고 심하면 손이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아여간 그렇

지 않습니까? 그러면 한쪽에서는 아예 딱 화를 내고서 부엌에 나가서 이젠 내가

말도 안한다고 싹 돌아 섭니다. 돌아서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

은 그 사람과 이틀도 말안하고 사흘도 말안하고 딱 버티고 있습니다. 아주 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세요. 분을 해가 지도록 품지 마셔야 합니다. 해가 지도

록 품으면 반드시 마귀가 부부사이에도 시험합니다. 곧 푸셔야 합니다.

분한 마음은 마귀의 온상과 같습니다. 분한 마음이 있으면 악덕과 음모를 일으

키게 합니다. 그러므로 분한 마음을 오래 품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는 도둑질

하지 말라 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8절에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십계명 중 여덟째 계명이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입니

. 이 말은 남의 재산을 존중히 여기라는 계명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가장 어렵고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이 계명

을 범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재산에 손해를 주고 법에

걸려서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절도

와 강도는 교도소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더 큰 도둑은 교도소 밖에

있습니다. 도둑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예배

당에는 예배하는 사람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어떤 때는 도둑이 들어옵니다.

래서 헌금을 훔쳐 갑니다. 가방을 훔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감고 기도하는 동

안에 훔쳐 가지고 달아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험한 세상이요 조심해야 할 세상

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미국 뉴욕에서 훔치기 잘하는 유명한 총각 남자기 있었

습니다. 시카고에 소매치기로 유명한 두목 여자 처녀가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

에 어떻게 뉴욕 소미치기 대장 남자하고 시카고 소매치기 대장 여자하고 우연히

만나 알게 되어서 서로 사랑하게 되어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에 애를

낳게 되었습니다. 산모가 병원을 가서 해산을 하는데 애가 나오면서 손을 꽉 지

고 나왔습니다. 간호원이 목욕을 시키는데 손을 펴 보았더니 애기 손에서 금반

지가 하나 있습니다. 이상하다 해서 알아보았더니 자기 손에 금반지를 어느새

애가나오면서 빼 가지고 나왔습니다. 물론 그거 만든 얘기입니다. 그 부모에

그 자식입니다. 험한 세상입니다. 도둑질 하지 말고 빈궁한 자를 구제하라고 했

씁니다. 도둑질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정직

한 상행위를 통해서 부당한 이윤을 얻는 것도 말하자면 도둑질입니다.

 

신문에 보니까 소를 잡는 사람들이 근수를 조금 더 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소에다가 물을 먹여 잡아가지고 물 먹은 만큼 더 받아 먹는다면 그의 소가 어마

어마 하다고 합니다. 이것도 사실은 도둑질입니다. 반면에 남의 일을 맡아서

일하면서 일삯 만큼 일하지 않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내가 30만원에 합당한 일

을 해야지 안하는 건 그거 도둑질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으면 도둑질하지 말고

도리어 빈궁한 자를 구제하기 위하여 제손으로 추구하고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자본가가 되는 게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기심을 가지는 것은 죄입니다

부유하게 되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욕심을 가지는 것은 죄입니다. 이윤

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불행한 사람을 착취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무입니

.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 것도 엄격한 의미에서는 그것

도 도둑질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으면 도둑질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하게 되

면 악을 행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있는 것이 많고 넉넉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

게 있는 것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게 되면 하나님이 그것을 채워 주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리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 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더러운 말 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선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 말씀한 후에 우리의 입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중에서 가장 놀라운 선물입니다. 짐승이 아무리 훌륭하고 영리하다고 해도

말하는 짐승이 없습니다. 말하는 것은 오직 우리 인간에만 부여된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이 특권을 남용해서는 안됩니다.

 

여기 더러운 말은 영어로 Eagle Talk 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악한 말이란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싸프러스란 말인데 썩은 나무, 썩은 열매란 뜻이 있습니

. 썩은 나무, 썩은 열매란 뜻이 있습니다. 썩은 것은 더럽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말을 해도 건설적인 말이 아니라 파괴적인 말, 화합하는 말이 아니라 갈

 

 

 

라 놓는 말,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이 아니라 깍아내리고 비틀고 헐뜯고 맥빠지

게 하는 말은 더러운 말입니다.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그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하시면서 '이 독사 자식들

아 너희가 악하니 어찌 선한 말을 할 수가 있겠느냐. 이는 마음이 가득한 것이

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는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으면 다른 사람 헐뜯고 손해

시키는 말 대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되고, 북돋어

주는 말을 해야할 할 것입니다. 잠언 12:18절에 보면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

부로 말하거니와 지례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입

을 통해서 나오는 말의 남의 가슴을 칼로 찌는 것 같이 고통을 주는 생활이 되

어서는 안됩니다. 양약처럼 아픈 사람의 마음을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끝으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30절에 "하나님

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

"고 했습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일 무엇임을 성경에 밝혀 말씀했습니

.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과 거짓말과 도둑질과

더러운 말 이런 것들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으면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왜 우리가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까? 성령은 우리에게 구속의 날까지 인을 지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그에 소유

된 인을 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기쁨과 승리 그리고 영

광의 부활에 대한 보증으로 우리에게 인을 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바

로 그 보증인 것입니다.

 

31-32절에 버릴 것과 취할 것을 말씀하면서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다 버

려라 . 그리고 교회가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취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새 사람을 옷입었습니다. 그랬

으면 부정적인 요소를 다 버리고 하나님 따라서 , 예수님 따라 사는 삶에 축복

이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발행일 : 940215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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