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랴교회의 장로. 페니키아에서 출생. 그는 부유한 부모의 덕택으로 훌륭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오리겐의 동료이던 피에리우스 문하생으로 알렉산드리아의 교리학교를 다녔다.
이후 페니키아로 돌아와 가이사랴에 정착하여 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그는 성경의 사본과 그 사본들의 주석들을 편집하였으며, 가이샤랴의 도서관을 진흥시켜 후에 유세비우스, 제롬 등이 공부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유세비우스를 수제자로 삼고 '유세비우스 팜필리(팜필리우스의 아들 혹은 종) 이라는 뜻'의 이름을 주었다.
그는 성서의 정확한 번역을 시도하였다. 308년, 팔레스티나의 집정관 우르바노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2년 동안이나 투옥되었다. 옥중에서 그는 "호교론"을 집필하였다. 그는 6명의 다른 신자들과 함께 그는 막시밀리안 박해(310년) 때 순교하였다. 그의 제자인 에우세비오가 순교록을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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