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근심하게 말라! (엡 4:30)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능력과 은사를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풍성한 열매도 거두게 하십니다. 거기에다가 모든 시험을 능히 이길 수 있는 믿음과 힘을 주십니다. 이처럼 성령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은 모두 좋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일은 대단히 손해 보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우리 때문에 근심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믿음의 성도에게 많은 축복들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님을 모셨음에도 불구하고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제목에서 나와 있듯이 '성령을 근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①어떤 일들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가?
⑴믿기 이전의 불신자의 죄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성경은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⑵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을 보시고 근심하십니다.
⑶경건생활의 게으름으로 인하여서 성령님은 근심하십니다.
②성령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역할은 무엇인가?
⑴성령은 눈을 뜨게 해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십니다.
이 눈이 열리기 전에 자신을 보면 모두 자기위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교만하고 자만하고 큰소리치게 됩니다. 남의 흉만 보게 됩니다. 자신을 보는 눈이 아직 뜨여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뜨게 하신 눈으로 자신을 보면 자신의 무능이 보이고 무지가 보이고 죄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능하면서도 교만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전도할 때 ‘우리는 죄인입니다.’하고 말하면 ‘내가 왜 죄인이냐?’하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눈이 뜨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다 진정 성령의 감화로 나를 보는 눈이 뜨이면 비로소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신앙의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만선의 기쁨 뒤에 자연계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능력 앞에 자신의 초라함을 발견하고 예수께 말하기를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⑵성령이 나 자신을 보게 하는 것 뿐 아니고 너를 보는 눈도 뜨이게 하십니다.
너를 보는 눈이 뜨이면 너의 영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이 눈이 뜨이기 때문에 중보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 눈이 뜨여야 신앙이 성숙해 집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초월하고 나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아멘!/
⑶깊은 곳을 보게 하십니다. 이 눈을 뜨게 되면 평소에는 생각도 없고 개념도 없고 관심도 없던 것들이 신기하게도 눈에 보이고 눈에 들어옵니다.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이 성령의 인도를 받고 보니 그것이 눈에 보입니다. 생각이 납니다. 느끼게 됩니다. 깨닫게 됩니다. 감동으로 비추어집니다. 이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들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해서 깊은 의미를 알고 깨닫고 보게 하십니다. /할/
요셉을 보세요! 창45:48절을 보면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으로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또 창50:20절을 보면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손길을 보는 눈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언제나 이렇게 조용히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지도 모르고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런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아가 돌을 던졌습니다. 던진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맞아 죽는 바람에 그날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은 모두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무슨 힘으로 골리앗을 이깁니까? 어린 아이가 던진 돌이 아무리 세게 맞았다 해도 장수가 그 돌에 맞고 쓸어져 죽었단 말입니까? 그것은 다윗 배후에서 사역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만 ‘내가, 나 때문에, 내 힘으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③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십니다(엡5:18).
엡5:19-21절에 보면 성령 충만한 삶의 특징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⑴‘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성령 충만한 삶의 첫 번째 특징이 무엇인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아닙니다. 예언하는 능력도 아닙니다. 천사의 말과 같은 방언도 아닙니다. 단순합니다. 마음속에 새 노래, 신령한 노래, 찬송으로 충만한 마음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한 마음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멘!/
⑵‘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 충만한 사람은 감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술 취한 사람은 그저 욕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서로 다투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압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모든 축복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
⑶‘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멘!/ 성령 충만한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다른 사람을 인정할 줄 알고 이해할 줄 압니다. 남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세우기를 좋아합니다. 그것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는 것입니다. /할/ 이런 사람이 성숙한 신앙의 인격자요 성령을 근심하지 않게 하며 더 적극적으로 성령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삶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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