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연 앞에서
나폴레옹이 전투를 하루 앞두고 서산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내게 여호수아처럼 저 태양을 두 시간만 멈추게 할 힘이 있다면..." 그의 군대가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맑은 날씨가 필요했다. 그가 자랑하는 포병은 맑고 밝은 대낮에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흐린 날씨에는 힘을 잃었다. 그러나 해는 어김없이 서산으로 기울고 말았다.
드디어 다음날 전투가 시작됐다. 그런데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퍼부었다. 길은 온통 수렁으로 변했고 나폴레옹이 자랑하던 대포는 진흙탕에 박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가 하늘을 쏘아보았으나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나폴레옹의 권세를 무너뜨린 워털루전투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자연의 창조자인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치는 위대한 스승이다.
2. 자연의 책
매미의 울음이 그칠 무렵 ‘매미’라는 큰바람이 몰려와 온통 나라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가을걷이를 기다리던 농부들의 시름은 말할 것도 없고 부산항의 크레인 붕괴,그리고 인명과 재산 피해를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태풍이 우리나라를 빠져나가기까지 위력이 약해지지 않은 것은 남해의 수온이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피해를 준 환경이 다시 인간에게 피해를 준 것입니다. 자연이라는 단어는 탄생중인 것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나투라(natura)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자연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후로 계속해서 탄생중이므로 조심스레 보전해야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존 스토트는 “하나님은 두 권의 책을 쓰셨는데 하나는 성서이고 또 하나는 자연의 책이다”고 하였습니다. 자연은 또 하나의 하나님의 책입니다. 성경과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지혜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3. 자연의 조화
사막 한복판에 조그만 샘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커다란 대추야자나무 몇 그루가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영악한 한 사나이가 이 샘물의 주인임을 자처하며 목이 말라 찾아든 나그네에게 샘물을 비싼 값으로 팔고 있었다. 샘물은 그러니까 그에게 돈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샘가의 야자나무 뿌리가 뻗어 나와 그 귀한 샘물을 빨아먹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돈을 받고 팔아야 되는 이 아까운 샘물을 나무 뿌리가 공짜로 빨아 먹다니!"
사나이는 샘물을 한 방울이라고 아끼기 위해 나무들을 모조리 잘라버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샘물은 그만 바닥부터 바싹 말라 버리고 말았다. 햇볕을 가려주고 모래바람을 막아 주던 나무를 베어버린 탓이었다. 자연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놀라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무지는 이러한 조화와 균형을 파괴할 때가 많다.
수 십년 전 사슴과 늑대가 알래스카의 자연보호지역에서 함께 살았다. 그런데 당국은 사슴의 안전을 위해 늑대를 모조리 없애버렸다. 그 후 절대적인 안전을 구가하던 사슴은 그 수가 10년 동안에 4,000마리에서 무려 4만 2,000마리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사슴의 편안하고 게으른 삶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운동량의 감소는 체질의 약화를 가져와 생명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결국 4,000마리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 위기를 타개하려고 다시 늑대를 투입시켰더니 사슴은 늑대에게 희생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고, 다시 건강해졌다. 오늘 우리의 삶속에 고난이 있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건강한 성도로 살아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이심을 기억하자. 역경이 없는 신앙생활은 무기력한 신앙인을 만들뿐이기에.......
4. 땅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도대체 누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가. 공기, 물, 햇빛, 숲, 산, 강, 땅은 지구의 유산이다. 누구도 어떤 집단도 그것을 차지하거나 소유하거나 망치거나 오염시키거나 파괴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땅의 열매를 신에게 선물 받고,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다시 신에게 바쳐야 한다.
- 조연현의《영혼의 순례자》중에서 -
* 사람이 땅과 가까이, 그리고 땅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입니다. '깊은산속 옹달샘 첫삽뜨기'에 와서 흙길을 처음 걷는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땅이 기본입니다. 땅이 파괴되면 하늘도 자연도 사람도 속절없이 함께 파괴됩니다. 땅이 살아야 사람도 삽니다.
5. 흙에서 배우는 지혜
흙을 통해 배우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다. 그리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셨다. 그때 흙으로 만든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창 2:7). ‘왜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을까?’ 흙을 묵상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만드신 이유를 알게 된다. 흙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첫째, 흙은 생명을 공급해 준다. 모든 생명체는 흙에서부터 시작된다. 흙은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준다. 흙에서 공급해 주는 양식을 통해 사람도, 짐승과 새들도 살게 되어 있다. 흙이 없다면 곡식도 없다. 곡식이 없다면 육신의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게 된다. 또한 우리 손에 종자가 있다 할지라도 흙이 그 종자를 받아서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면 씨앗은 존재 의미가 없게 된다.
둘째, 흙은 모든 것을 품고 사랑한다. 사랑의 속성은 품는데 있다. 흙은 인간들이 버리는 온갖 오물들을 모두 품는다. 흙은 쓰레기를 품어 비료를 만들어낸다. 흙은 모든 것을 품고 변화시켜 준다. 흙은 구별하지 않고 모든 것을 품고 사랑한다. 흙은 하나님의 품으시는 사랑을 닮았다.
셋째, 흙은 정직하다. 콩을 심으면 콩을 주고 팥을 심으면 팥을 준다. 흙은 씨앗을 뿌리는 사람을 보고 열매를 주는 것이 아니다. 흙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뿌린 씨를 따라 열매를 맺도록 도와준다. 인간은 흙처럼 정직하게 살 때 가장 행복하다. 행복감이란 내면의 정직에서 시작된다.
넷째, 흙은 겸손하다. 겸손(humility)이란 말은 부식토(humus)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다. 휴먼(human)도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사람은 겸손한 흙에서 나왔다. 그래서 흙에게서 겸손을 배워야 한다. 흙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가장 낮은데서 작은 씨앗을 품고 그 씨앗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만들어낸다.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도와준다.
인간의 죄 때문에 생명을 주는 땅이 저주를 받았다(창 3:17). 죄 때문에 땅이 병들었다. 땅이 병들었다는 것은 흙이 병들었다는 것이다. 흙으로 만든 인간이 병들었다는 것이다. 병든 땅을 회복하는 길은 악한 길에서 떠나 겸손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대하 7:14). 그때 하나님은 땅을 고치실 것이다. 흙으로 만든 사람들을 고치실 것이다.
/강준민
6. 낙엽
"요즘 당신은 창경궁 돌담길을 걸어보셨나요?" 창덕궁에서 시작해서 원남동 사거리를 지나 서울의대 뒤편으로 나있는 오르막 길을 따라 성균관대학교 입구에 이르는 창경궁 돌담길. 그 돌담길엔 요즘 낙엽이 소복이 쌓여있어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돋아주고 있다. 그 돌담길에 젊은 연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어디 젊은이들뿐이겠는가. 나이 지긋한 분들 또한 꼬옥 팔짱을 끼고 창경궁 돌담길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는 요즘이다. 어디 창경궁 돌담길 뿐이겠는가. 덕수궁 돌담길이며 경복궁 돌담길 역시 아름답다. 어디 돌담길뿐이겠는가. 낙엽이 있는 곳은 어디든 아름답다. 지천으로 깔려 있는 낙엽을 밟으며 사색에 잠겨있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아름답다. 평화롭다. 어디선가 이브 몽땅의 고엽(枯葉 The Autumn Leaves) 샹송가락이 들려옴직한 요즘이다. 삶에 여유를 주고 운치를 더해주는 고마운 낙엽. 그 낙엽이 올 따라 유난히도 아름답게 보여진다. 철(季節)을 알아 볼만큼 철이 든 것일까. 그런데, 그 낙엽이 썩을 줄을 몰라 애물단지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공해(公害) 유죄(有罪). "낙엽이여 어서 가라!" - 가로수를 붙잡고 흔들어 대거나 아예 빗자루로 잎사귀를 후려치는 진풍경도 목격하게 되는 요즘. 문득 옛시조 한 대목이 떠오른다- "낙엽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요"
/고무송
7. 낙엽을 밟으며
데일 카네기는 “목장에 흐르는 음악이나 웅장하게 울리는 숲의 교향악에 귀를 기울일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급하게 살지는 말자. 이 세상에는 부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사소한 것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이다”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즐거움에 잠기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5분이라도 좋으니 하루에 한번쯤은 아름다운 꽃이나 하늘의 구름과 별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가 보자. 시를 읊으며 일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지루한 일과 교제로 몸을 혹사한다면 인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아름답고 신선하며 영원한 것을 인생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늘의 혜택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 되며 그의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모든 세계는 쓰레기만 쌓이게 될 뿐이다. 하늘이 무엇보다 아름답다고 해도 그 자체를 마음껏 즐기지 못 한다면 별 의미가 없다.“아름다움은 마음으로부터 느끼는 것으로 해가 뜨는 것과 별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라고 헬런 켈러는 말했다. 아름다운 가을, 한번쯤은 가을을 즐기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 하늘을 보고 낙엽을 밟으면서 새소리를 듣자.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자.
/최염순(카네기연구소장)
8. 낙엽과 시
가을이 떠난 자리에 낙엽들이 아쉬움으로 구르고 있다. 그 황량함은 한편의 시(詩)다. 허전함이 콧등에 시큰하게 내려앉아서일까. 가을을 대신하여 구르는 낙엽은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체처럼 너부러져 있는 모습들을 그냥 지나치기 미안하다. 이렇듯 낙엽은 나이 들어감에 따라 깨달음을 주니 인간과 뗄 수 없는 창조물인가 보다. 봄은 분수에 맞게 잎을 피우고 여름에는 햇빛과 물과 공기로 성장시키며 가을은 겨울을 나기 위해 낙엽을 버린다. 자연이 욕심을 내면 태풍과 홍수의 채찍을 맞는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리라. 자연은 인간들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증거이다. 펼쳐보기 싫은 정치면이나 사회면을 보면 우울함도 있지만 골수를 기증하고도 이름 밝히기를 싫어하는 그 선함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오르게 한다. 떨어져 구르는 낙엽을 보면 복잡한 미사여구의 시(詩)보다 편하다. 낙엽은 욕심이 없어 겨울의 한 모퉁이에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나보다. 겨울바람에 구르는 낙엽은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하신 성경말씀과도 같다. 낙엽은 인간이 나이 들어 쇠잔하는 진리를 깨닫게 하는 은유법이다.
/정종기교수(인간관계회복연구소장)
9. 경치수출
경치도 수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저는 록키 산맥의 중심인 밴프(Banff)에 가서 유명한 호텔 밴프 스프링스 호텔(Banff Springs Hotel)에 들렀던 적이 있습니다. 1888년에 지었는데 아직도 그 호텔을 능가할 호텔이 캐나다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총 14층에 방이 250개,일년 투숙객이 20만명입니다. 적어도 3개월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합니다. 결혼에 맞추어 방을 예약하는 아니라 방에 맞추어 결혼을 해야 합니다. 이 호텔을 지은 사람은 윌리엄 코르넬리우스(william Cornelius)인데 그가 이 호텔을 짓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그는 밴프에 와서 자연 경치에 탄복하면서 한마디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경치를 수출해야 한다. 만일 수출하기 힘들다면 사람들을 이 곳으로 수입하여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 호텔을 멋있게 지었습니다. 경치를 수출하고 싶은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꼭 믿음대로 됩니다. 경치도 수출할 수 있습니다.
/강문호 목사
10. 징검다리
작은 산골마을 수련회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기회였다. 아침에 명상하던 널바위 주변의 들풀들은 아침이슬을 머금고 풋풋함을 전해준다. 들풀 사이로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섞여있어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많지 않아 아쉬우면서도 수줍은 듯 피어있는 잘디잔 야생화들의 아름다움이 이렇게 짙게 다가오기는 처음이다. 쉰이 다 되도록 작은 들꽃을 통해 다가온 행복을 느껴본 일은 흔치 않았다. 자연을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쳐버렸더라면 작은 야생화와 들풀들에서 생동하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작은 나비들이 날다가 지쳐 잠시 내려앉은 모습의 쪽빛 꽃도 아름답다. 밤하늘 반짝이는 별들과도 같은 아름다운 보라색 꽃도 있다. 줄기마다 붙어있어 이슬을 피하려는 잎사귀 아래 핀 익모초 꽃들과 노란 달맞이꽃들까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진하게 배어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하나님이 대자연을 창조하시고 참 좋아하시던 마음을 이해할 듯하다. 자연을 사랑함이 곧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징검다리임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들풀들과 들꽃들이 전하는 수줍고 풋풋한 산골의 작은 행복을 바쁨에 묻혀 사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다.
/정종기 교수(인간관계회복연구소장)
11. 자연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성경: 슥 10: 1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어느 지성인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비 오지 않기를 혹은 비 오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성경적인 기도입니까?" 그러면서 그는 비오기를 혹은 비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은 주술적이며 기복적인 것이므로 그런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이 무엇인지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지성과 합리를 앞세우는 오만한 사람입니다. 비 오기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문제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스가랴서 10장 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성경을 마땅히 구해야 할 만한 때에 비를 구하는 것이 조금도 무리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계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어린 아이처럼 갖고 싶은 것을 달라고 구할 수 있습니다. 결혼식 날 날씨가 화창하도록 기도하십시오. 저는 곧 결혼식을 올릴 남녀를 위해서 예행 연습을 할 때마다 꼭 그 문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인생의 첫날이 화창한 날씨 속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 문제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일기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계절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까? 필요할 때 비도 구하시고 태양도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한 곳에는 비를 주시고 똑같은 시간에 다른 곳은 비를 주시지 않을 수 있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며 주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확신되는 일이라면 비든 눈이든 태양이든 열심히 구하십시오. 여기에 주술적이라거나 기복적이라는 말을 붙이지 마십시오. "막연하게 기도하면 막연하게 응답하시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면 구체적으로 응답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허지만 응답은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아름다운 신앙으로 기도하며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12. 자연
허드슨 테일러가 어디를 가려고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지 않으니 돛이 있어도 배가 그냥 물결을 따라 식인종의 섬으로 흘러갔습니다. 선장은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데,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본 식인종들은 좋아서 벌써 함성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급해지자 선장이 성경을 읽고 있는 허드슨 테일러에게 왔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우리가 다 죽게 되었습니다. 이 배가 식인종 마을로 가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 물결대로 흘러가고 있어요. 빨리 기도하세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선장이지만, 하도 급하니 목사님에게 기도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목사님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바람을 불게 해 주세요. 큰일났습니다. 바람을 불게 해 주세요." 선장이 막 기도하고 있는 목사님을 흔들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그만 하세요. 지금은 오히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큰일입니다." 할렐루야!
13. 자연을 통한 기도응답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공세로 35만 명의 영국군이 됭케르크 반도에서 포위돼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다. 그때 영국 국왕 조지 6세는 위기에 처한 영국군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의 날’을 선포했다. 각료들과 전 공무원,그리고 회사원들은 각각 그들의 집무실에서,농부와 공원들은 일터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영국군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도버해협을 건너는 것이었다. 그런데 독일군의 총공격 개시 전날 밤에 독일군 주둔지에 강한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독일군 탱크는 움직일 수 없었고 폭격기도 뜰 수 없었다. 그러나 됭케르크 반도와 도버해협 상공에는 별들이 반짝였다. 그날 밤 영국은 군함을 이용해 영국군 35만 명을 모두 도버해협으로 탈출시켰다. 합심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대자연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은 간혹 이렇게 명령하신다. “바람아 그치라 파도야 잔잔하라”고. 기도응답은 자연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14. 안개에 약한 항공기
아내와 함께 미국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부흥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오기 위해서는 J F 케네디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기 때문이다. 1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인데 2시간30분 동안 비행을 계속했다. 안개 때문에 뉴욕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을 못하고 공중을 선회한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결국 연료가 떨어졌고 기내는 추워졌다. 비행기는 매사추세츠와 콜로라도주 중간 지점에 있는 브래들리 공항에 비상착륙했다. 천재지변에 의한 불가피한 일이었다. 최첨단의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항공기와 베테랑 기장도 짙은 안개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물론 바람 구름 안개 이슬 비 등 자연을 조종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하더라도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다(잠 16:9).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15. 나무처럼, 계곡물처럼
인체는 소우주이고 축소된 자연입니다.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자연의 이치에 맞춰 살도록 노력하세요. 요즈음은 계절 구분 없이, 밤낮 구분 없이, 몸을 함부로 움직여서 병이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름 게으름뱅이도 병이 되고, 겨울 부지런쟁이도 병이 들게 마련이죠. 밤낮을 뒤집어 사는 사람도 병이 들지요. 나무처럼, 계곡물처럼 살면 병이 없습니다.
-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중에서 -
* 나무는 사시사철 거친 땅에서도 잘 자랍니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며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순리대로,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생활 습관이며, 좋은 습관이 사람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16. 물과 흙과 공기를 사랑하며…
사람은 자연적인 요소와 인간적인 요소와 신적인 요소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인간과 조화를 이루고 그리고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도록 지음을 받았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자연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지난 5월5일 내가 사역하는 교회 교역자들과 함께 오색계곡을 찾았다. 어린이날 새벽기도를 마친 후 3시간 30분 만에 오색계곡에 도착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너무나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계곡에 엎드려 물을 그대로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계곡 좌우에 둘러선 나무와 숲은 새 봄의 연초록 옷으로 갈아입어 너무나 신선하고 아름다워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물도 흙도 공기도 숲도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맑은 물이 흐르는 오색계곡의 품과 연초록 옷으로 갈아입은 오색 숲의 품에 안겨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좋고 행복했다. 우리는 계곡을 따라 1시간을 즐겁게 거닌 후,용소폭포에 이르렀다. 행복은 하나님의 품과 자연의 품과 동역자의 품이다. 계곡을 따라 다시 내려와 점심을 먹은 후 동해 바다로 향해 달렸다. 확 트인 동해 바다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과 몸은 도심의 공해에서 깨끗하게 씻기는 듯했다. 어린 아이처럼 웃으며 즐거워했다.
나는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곤 한다. 나는 바닷가를 거닐면서 바닷가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자주 줍곤 한다. 제주도의 해변과 괌의 해변과 태국 좀티엔의 해변과 동해의 해변을 거닐면서 쓰레기 봉지에 쓰레기를 가득 담아 호텔이나 쓰레기장에 가져다 버리곤 했다. 태국 좀티엔 해변에서는 해파리 200여마리를 잡아 쓰레기 봉지에 담아서 호텔 직원에게 가져다준 적도 있다. 쓰레기를 주워서 버릴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다. 하나님이 아름답게 지은 자연을 조금이라도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존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자연 만물을 보호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분부를 조금이라도 순종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개신교는(천주교에 비해) 개인의 영혼 구원에 치우친 나머지 자연 보호와 자연 사랑을 조금 등한히 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드신 물과 흙과 공기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존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나는 호텔에서 침대의 시트나 화장실의 타올을 거의 바꾸지 않는다. 나는 최근에 일본을 방문했는데 사랑하는 제자 한 사람과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 신경전이 벌어지곤 했다. 나는 침대의 시트나 화장실의 타올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기를 바라는데 나의 제자는 매일 바꾸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아침 방을 나올 때 조금 나중에 나오면서 “바꾸지 마시오”라는 푯말을 문에 걸어놓고 나오는데 나의 제자는 내가 그것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나중에 나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눈치를 채고 기어코 나중에 나오면서 푯말을 걸어놓곤 한 것이었다.
“지구를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했을 때 제자는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할 수 없이 내 행동에 따르곤 했다. 물론 나의 제자가 내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지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지으신 지구를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보존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17. 망가지고’ 있는 지구를 보며
올해 지구촌은 심각한 이상 기후를 경험하며 고민하고 있다. 유럽의 폭염을 비롯,전세계의 기후가 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 이동하거나 희귀한 모양을 지닌 태풍과 허리케인을 보며 지구의 환경 파괴와 연관시키고 있다. 실제로 성층권의 오존층이 파괴되고 있고 이산화탄소의 과다 분출로 지구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환경호르몬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공기 뿐 아니라 토양과 수질 오염의 정도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듣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파괴되며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뉴스를 접하며 자연 파괴라는 주제와 성경의 가르침을 연결해본다. 자연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씀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이다. 점점 별을 보기조차 어려워지는 도심의 밤 하늘 아래 사는 한 사람으로 흐려져가고 잃어버리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들로 인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적 경향의 어떤 생태 신학자들이 주장하듯 자연을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 인간에게 맡겨준 ‘대상’ 이상으로 생각하거나,그러기에 자연을 지배해왔던 인간을 탈중심화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인간들을 향하여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청지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청지기로서 ‘직권남용’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직무유기’ 또한 피하여야 한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지혜롭게 ‘정복하며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결국 이곳은 우리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신음하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통해 이 세상 속에 있는 우리 인간의 죄의 존재를 더욱 확연히 엿볼 수 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는 로마서 8장 21절 말씀처럼 자연까지도 온전한 구속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개발과 보존의 균형 뿐 아니라 ‘임시 거처’와 ‘영원한 처소’를 향한 우리의 마음의 균형도 잃지 말아야 되는 것이다.
/박성민(한국대학생선교회 대표)
18. 시골 생활
사람은 땅 위에서 자연의 기운을 고루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도시의 아파트도 그 나름의 특성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나무가 최대로 자라는 높이인 17미터, 아파트 7층 높이 정도 이상은 땅의 기운이 약해지고 이로 인하여 질병이 생기거나 심리적으로 나약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깨끗한 물, 밝은 햇빛, 푸른 산이 있는 시골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운 아이들과 획일적이고 건조한 도시에서 자연과 동떨어져 사는 아이들은 마음의 크기가 다를 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큰 지도자는 시골에서 나고 지도자를 보필하는 참모는 서울에서 난다는 말은 일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때문에 적어도 사람의 기본적 인격이 형성되는 유, 소년기에는 시골에서 살아야 하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일년에 한 번 정도는 일정기간 시골에 가서 생활을 하게 하는 것도 자식을 위한 큰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방학기간에도 학원에 다녀야 하기 때문에 얼마 쉬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참 불쌍합니다.
/최용우
19. 단풍과 겨울준비
요즘 우리나라 산들은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단풍이란 나뭇잎이 녹색을 벗고 대신 노랗거나 빨간색으로 갈아입는 자연현상입니다. 나뭇잎의 엽록소는 녹색이 아닌 다른 색깔의 빛을 흡수합니다. 그리고 녹색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녹색으로 보입니다. 나뭇잎이 녹색이 아닌 다른 색깔을 띤다는 것은 엽록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엽록소 대신 안토시안이 축적되기 때문에 붉은 색으로 나타납니다. 은행잎처럼 노란색이 나타나는 것은 크산토필이 축적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는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의 겨울잠입니다. 추운 겨울에는 얼지 않게 하기 위하여 물도 가지 끝까지 공급되지 않습니다. 이런 나무의 겨울나기는 봄이 되면 다시 피어날 준비를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온갖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이처럼 겨울을 준비할 줄 압니다. 그런데 가끔 다가올 어려움에 대처하지 못해 고생하는 이들을 봅니다. 크리스천들은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영혼을 가꿀 줄 알아야 합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 기도: 보잘 것 없는 꽃 하나라도 솔로몬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게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간의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주신 자연을 아끼고 돌보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부족함이 없던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곳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교회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와 아름다움 안에서 자연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을 지키는 청지기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남겨주게 하소서. 환경오염과 오존층 파괴로 말미암아 자연과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이 지으신 이 자연을 보호하고 돌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 자연의 질서
독일의 담스타트라는 곳에 바슐리에 슐링크라는 분이 개설한 신교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는 철학박사이며 심리학 박사로서 이 수도원을 운영하는데 직접 농사를 지어가며 약 200명의 식구들을 자급자족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농약을 많이 쓰며 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계시하기를 "너희들만 먹고살려고 하느냐, 새도 먹고 벌레도 먹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아무리 어려워도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그대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벌레가 많이 끼어도 내버려두니 자연히 새들이 모여들고 새들이 모이니 농사가 잘 되고 공기는 맑아지며 결과적으로는 공해 없는 좋은 농사가 되어 200명이 건강하게 잘 사는 수도원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다 하나님은 보너스까지 주셨습니다. 그 땅은 원래 메마른 곳으로 버려 둔 땅인데 농장 한 가운데서 샘이 솟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샘을 '기적의 샘'이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갈 정도입니다. 사람들의 근시안적인 식견으로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면 오히려 더 크게 어려움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음을 믿는다면 먹을 것도 겸하여 주셨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밀림 지대인 아프리카의 나무들은 사람들이 마구 잘라내어 아프리카 밀림의 3분의 1이 모두 사막화가 되고 말았다니 ,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목숨을 내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목숨을 보존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22. 자연과의 대화
전북 어느 마을의 논은 다른 논에 비해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월등히 높았습니다. 같은 마을이지만 가까운 이웃 논의 수확은 그렇지 못한데 유난히 그 논만 수확이 많았습니다.이상히 여긴 사람들이 가서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그러자 그 농부는 신비한 대답을 했습니다.
“글쎄요.제가 특별히 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매일 논의 벼들과 얘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침에 논에 나오면 ‘잘 잤느냐?’고 인사하고 더운 날에는 ‘많이 더웠지’라고 이야기하는 것 외에 특별히 하는 것이라곤 없습니다”
자연은 하나님이 대화로 만드신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계실 때에 자연과 대화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자연과의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자연과의 대화를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성희 목사
23. 자연이냐 신이냐
사람들의 자연의 경외니 자연의 신비, 자연의 조화 등에 대해서 많이 말하고 있다. '자연의 지혜를 배우자.', '자연으로 돌아가자.', '자연의 천리를 깨지 말고 자연의 조화를 깨지 말자.', '대자연에 순응하자.' 등 자연 과학의 발달은 더욱 그 외경감을 더해 주고 있다. 자연 시인들은 거의 시편 기자들만큼 경건되고 사랑스런 언어로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 송가들은 종교 찬송가처럼 숭엄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자연을 신으로 까지 숭배하면서도 인격적 자연 창조자인 하나님은 존재와 그 창조를 인정하는 데는 귀신이 들렸는지 백치가 되었는지, 어느 때부터 공동으로 하나님 거부 결의를 하였는지 그리도 억척스럽게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롬1:20-21). 자연이란 말을 하나님으로 왜 못 바꿀까? 인간 이성의 악마적 장난일까? 악의 오묘요 기적이며 신비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가 '태초에 물질과 운동이 있었다'보다 얼마나 이치에 맞는가? 부모가 나를 낳았다 하는 것이 티끌이 나를 낳고 우연이 나를 낳았다, 혹은 폭탄이 터져 내가 생겼다 보다 얼마나 쉬운 일일까? 예수에게 와서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를 아는 사람은 도통한 사람이다.
-예수칼럼 : 김준곤-
24. 신, 자연, 그리고 사람
오랜 가뭄끝에 비가 와서 모두들 기뻐하고 있다. 특히 이번 단비는 농사에 희망을 주고 있다. 자연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도 큰 것이다.철학자 마틴 부버는 그의 책 ‘인간의 길’에서 세가지의 관계를 말한다.
첫째, 인간과 신과의 관계다. 그는 이것을 종교적으로 깊게 풀지는 않았어도 이 관계를 신앙이라 했다. 사람은 영원이나 초능력을 갖기가 어렵다. 다만 신앙의 힘으로 가능하다. 세상 만사가 자기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따라서 어려운 고비마다 신앙으로 터널을 뚫고 나가는 힘이 필요하다.
둘째,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다. 자연은 말이 없다. 침묵 중에도 자연의 위력은 대단하다. 요사이 자연보호를 외치는 것은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자연을 아끼고 보호해서 더불어 공존하려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인간이 저지른 오염으로 자연이 인간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한다는 개념을 잘못 써왔다. 이번 가뭄도 자연이 화를 내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끝으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다. 루소가 말한대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더불어 ‘나와 너’가 있는 것이다. 여기엔 존중과 사랑이 중요하다.
/김순권 목사
25.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되살릴 때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 과학자가 하나님을 믿는 7가지 이유를 어느 과학자의 증언으로 게재했다. 그 내용 중에 만일 지구가 23도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지 않다면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남북극에 몰려 땅은 얼음으로 덮여 버릴 것이라고 했다. 바다의 깊이, 달과 태양의 거리와 부피, 태양의 온도, 지구의 속도 모두 초능력적으로 계산된 것이다. 동물의 본능과 지혜는 누가 만들었는가, 유럽의 연못, 늪, 호수의 뱀장어가 수 만리 바다 길을 가로질러 버뮤다 부근의 심해에 알을 낳고 죽는다. 그런데 어린 장어 새끼들은 어미들이 따라온 길을 어미의 떠나온 심천으로 돌아간다.
어느 화학자보다 어느 화가, 어느 음악가보다 위대한 분이 만든 자연과 생명의 신비에 대한 감수성과 경외감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26. 자연의 찬양소리
본문: 시편 29 장 3 절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모든 피조물들은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과 자비를 드러냅니다.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 큰 목소리로 찬양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높은 산들은 그 봉우리마다 밤낮으로 창조주를 경배합니다. 으르렁대는 파도도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경계를 순종하면서 큰 음성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합니다. 하늘에서 번쩍이는 번개는 하나님의 눈에서 발하는 섬광이며, 천둥은 하나님의 위엄찬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음성을 들을 때에 두려움과 공포보다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위엄을 실감하게 됩니다. 뇌성이 한 번 울리면 제 아무리 큰 인간의 소리라도 가냘픈 속삭임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 기자들은 성경 곳곳에서 천둥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물을 통해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록된 말씀을 실제로 경험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의 귀를 열고 듣고 순종하는 마음과 태도를 지니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자연이라는 교과서 속에서도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 묵상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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