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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4 한경직 목사 설교 예화 91-120

by 【고동엽】 2022. 3. 3.
[처음 목차 돌아가기]
 
 

91.성 패트릭과 아일랜드

하나님은 이 모든 것도 초월 통치해서 축복으로 전환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올시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아디 가서 예배당을 짓든지 성 패트릭기념 예배당을 짓습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의 성자입니다. 전 아일랜드 사람들이 성자를 모시는 그 패트릭이올시다.
여러분, 젊은 시대의 그의 역사를 읽어보면, 그 분은 불행하게도 요셉과 비슷하게 되었습니다. 열 대여섯에 나서 아일랜드의 해적들에게(그는 본래 영국사림입니다) 붙잡혀 갔습니다.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해 동안 그 아일랜드에 가서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그 종노릇하는 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에 패트릭이 거기서 우연히 석방을 받게 되었고 다시 와서는 공부를 계속하였고 공부를 다 한 다음에는 다시 이일랜드에 돌아가서 미신에 얽매었던 전역의 그 무지한 백성들을 온전히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서 지금까지 아일랜드의 성자가 된 것입니다.

 

 
 



92.드 세이저 선교사와 일본

지금 일본에 나와서 활동하는 여러 선교사 가운데 특별히 드 세이저(Jacom De, Shazer) 라고 하는 선교사가 잇습니다. 이 선교사는 본래 미 공군 폭격 부대의 일원으로 미국 비행기가 일본 동경을 제일 먼저 폭격한 그 두리틀(Doolittle) 비행기에 같이 타고 동경을 폭격한 사람입니다. 그 비행기가 저 중경(重慶) 으로 달아나다가 그만 채 가지 못하고 이 사람이 탄 비행기는 고장이 나서 저 상해(上海)방면에 떨어졌습니다. 다행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서 죽지는 않았지만 일본 관헌들에게 잡혔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근 3, 4년 동안 상해, 대련(大連) 혹은 북경(北京) 그 다음에는 일본에까지 여러 감옥으로 전전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당하고 일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그는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은혜를 받았습니다.“일본 사람이 왜 이렇게 포악할까? 이 사람들이 성경을 모르는 까닭이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른 까닭이다. 이 사람들에게 성경을 주고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밖에 없다”그런 결심을 하였습니다. 포로에서 석방되자 곧 미국에 돌아가서 공부를 해 가지고 일본에 나와서 다시 전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난도 그 사랑으로 통치해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올시다. 이와 같은 말을 하려고 하면 한량이 없습니다.

 

 
 



93.파스칼의 명상록

프랑스의 유명한 파스칼(Pascal, Blaise) 이라고 하는 분은 본래 유명한 자연 과학자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도 한 번은 말을 타고 가다가 다리에서 떨어져서 죽을 뻔하고 중상을 입고 치료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읽는 그야말로 불멸의 저서“파스칼의 명상록”을 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승리적 사람>에서

 

 
 



94.무디의 회개 설교와 시카고의 대 화재

전에 유명한 무디 선생이 시카고 교회에서 어떤 주일 저녁 설교를 하는데 ‘회개하라’라는 문제를 가지고 설교를 하다가“자, 이것으로 오늘 저녁은 시간이 다 가서 마칠 수가 없는데 내가 이 문제를 다음 주일에 마칠 터이니 다음 주일 저녁에 다 나오시오”하고 말하면서 설교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부르는데 갑자기 밖에서 소방차 소리가 나더니 사방에 화광이 충천해서 그 때 그 굉장히 유명했던 큰 화재가 일어나서 시카고 전역이 다 불탔습니다. 그날 저녁에 무디 선생의 설교를 들은 사람 가운데도 불에 타서 죽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당하고 무디 선생이“내가 왜 그날 저녁에 회개하라고 말하지 않고 오는 주일 저녁에 다시 오라고 했던가!”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회개할 때는 지금이올시다. 지금이 구원의 날이요, 지금이 회개할 때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무슨 일을 당할지라도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됩니다. 예수 님의 이 경고를 우리가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95.리빙스턴과 성 다미안의 십자가 정신

예수 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고난, 육체적 모든 고난을 친히 당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 이하에“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疾苦)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라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별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인간고를 통해서 사명을 행하라고 우리에게 권면만 하지 않았습니다. 재난을 당할 때에 회개하라고 경고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친히 자기가 인간고에 참여해서 그 고난을 자기가 당하시고 모든 고난과 죄악 가운데서 전 인류를 구원하여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는 언제든지 이 십자가의 정신을 가지고 수난자의 고난에 같이 참여하면서 그들을 구원하고 그들을 도와주기를 힘써야 될 것입니다. 리빙스턴이 평안한 자기의 나라를 버리고 암흑의 아프리카 대륙에 제일 먼저 가서 몸을 던지며 간 것도 십자가 정신에 의지해서 나아간 것입니다. 성 다미안 같은 사람이 문둥병 자들만 살고 있는 하와이의 한 섬 몰록카이 섬에 가기를 자원해서 일생토록 문둥이와 같이 살며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마지막에 자기까지 감연이 되어서 죽은 것도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을 대 잇기 위해서 이와 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수난자와 같이 수난을 나누며 그들의 육신과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예수와 인간고>에서

 

 
 



96. 감격의 신앙

요한은 요한 일서 3장 16절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그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조금 내려가서 4장 19절에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사랑의 감격, 그리스도의 은혜의 감격이 서로 요한으로 하여금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도를 만든 것입니다.
이 감격의 신앙을 우리가 생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이와 같은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사도들의 신앙만이 아닙니다. 모든 교우들과 모든 선지자들과 모든 참된 성도들의 공통된 신앙의 특색이었습니다. 어거스틴도 일단 회개한 다음에는 그 일생을 통해서 이 감격이 마음 가운데 있었습니다. 내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인데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용서하시고 이렇게 구원하여주셨으니 무엇으로 이 은혜를 보답할까 하는 마음입니다.

 

 
 



97.인도네시아의 바탁 교회

지금 독립된 인도네시아라고 하는 나라가 있지마는 이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가면 ‘바탁 교회(Batak Church) 라고( 그 이름이 좀 별나지마는) 모두 인도네시아 사람으로 조직된, 어느 다른 선교부의 도움을 별로 안 받는 독립된 큰 교파 하나가 있습니다. 아마 세례교인 수는 약 50만 되는 큰 교파입니다. 그런데 이 교파는 유럽에서 온 어떤 한 사람이 처음에 복음을 전파해서 세웠다고 합니다. 유럽 북부에 있는 어떤 청년이 소년시절에 중한 다리의 병을 만나서 그 때에 의사들 생각에 이 아이의 생명을 구하려고 하면 이 다리를 절단 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부모도 깊이 생각하고 이 아이도 깊이 생각하고 결국 이 두 다리를 자를 것이냐, 어떻게 할 것이냐 하고 많이 생각하는 가운데 이 아이가 한 번 하는 말이“아, 어머니, 성경을 보면 예수 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고칠 수 없는 병도 다 고쳐주셨는데 내 다리도 예수 님의 능력이면 고칠 수 있지 않겠어요? 아, 이것 어떻게 고칠 수 없고 내 다리를 자를 수밖에 없습니까?”그리면서 하는 말이“나는 그저 예수 님께서 다리를 자르지 않게 해달라고 모든 것을 맡기고 간절하게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와 그 아이가 함께 간절히 그 다리가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은혜 가운데서 다리가 나았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갚을 수 있습니까? 아직까지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나라, 복음을 듣지 못한 나라, 다른 사람이 가보지 못한 지방, 이런 곳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겠다”이렇게 작정을 하고 오래 전에 인도네시아에 혈혈단신으로 나와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해서 그런 큰 교회가 섰다고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건강에 감격한 심정 가운데서 일생을 하나님께 바칠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친 그 심령을 축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98.열 일곱 사람이나 구원한 사람

토리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에 그 미시간 호라는 호수에 한 번은 큰배가 파선을 당해서 많은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그 가운데서 헤엄 잘 치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혼자서 열 일곱 사람을 건져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굉장한 보도를 하여 여러 사람이 그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로스앤젤리스에서 토리 박사라고(여기 한국에 나왔던 그이의 바로 아버지가 되겠습니다) 그때는 그가 지금 유명한 빌리 그래함과 같이 유명한 목사이었는데 그이가 로스앤젤리스에서 한 번은 설교를 하면서 그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참 이렇게 용감한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된다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도 힘을 써야 된다고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설교를 듣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뜻으로 손을 드느냐고 하니까“제가 바로 그 사람이올시다”하였습니다. 열 일곱 사람이나 구원한 그 사람이 바로 그 자리에 와서 토리 박사의 설교를 들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토리 박사가 너무 감사해서 강당으로 좀 올라오라고 해서 올려다 세워 놓고 이 분을 소개하면서 아주 참 용감한 일을 했다고 마지막에 묻기를 이 같은 좋은 일을 했는데 이 일을 한 후에 특별히 혹 무슨 느낀 바가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조금 생각하더니 “뭐 별로 특별히 느낀 바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내가 그 때 열 일곱 사람을 구해 주기는 하였는데, 그 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나한테 와서 고맙다고 말 한사람은 없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보통 인간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이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고 우리가 어떤 때에 은혜를 깨닫는 다고 할지라도 이 은혜를 항상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여러분, 은혜를 깨닫고 기억할 수 잇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전에 어떤 성자는 이렇게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오, 주님이시여, 모든 은혜를 내게 풍성히 주셨으니 이제 한 가지 은혜를 더 주셔서 감격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이 은혜까지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을 볼 때에도 감격한 마음으로 볼 줄 알고, 들을 바라볼 때에도 감격한 마음으로 곡식으로 덮인 들을 바라볼 줄 알고, 가을에 단풍을 바라볼 때에도 감격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길을 가다가 예배당을 볼 때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으로 그 예배당을 바라보고, 높이 솟은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으로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특별히 독립된 우리 한국의 태극기를 바라볼 때마다 감격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내 사랑하는 부모, 내 사랑하는 처자. 내 사랑하는 친구들, 모든 다른 동포들을 바라볼 때에도 감격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 감격의 신앙,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모든 것을 바라볼 때에 감격에 넘치는 심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와 같은 은혜를 우리가 더 받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이 앞으로 한 주간 감사 주일을 지내는 동안에 우리 하나 하나가 한 가지 은혜를 더 받아서 이 감격의 믿음을 받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감격의 신앙이 있는 이에게는 불평이 없습니다. 이런 이는 아무리 수고를 하고도 대우를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이런 이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원한을 품지 아니합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이는 범사에 감사합니다. 감격의 은혜를 우리가 받아야 되겠습니다. <감격의 신앙> 에서

 

 
 



99.인생항로의 파선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속에 지남(指南)침 하나를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이 곧 양심이올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작은 배, 우리 속에 지남 침을 주셨는데 이것은 곧 양심입니다. 부끄럽지 아니한 착한 양심입니다. 양심은 영혼의 지성소올시다. 양심은 마음속의 촛불이올시다. 밝힙니다. 양심은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율법이올시다. 양심은 속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올시다.“착한 양심을 가져라.”고 권면하십니다. 이 양심이 우리의 생활의 방향을 지시하여 줍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여 줍니다. 시비를 판단하여 줍니다. 갈 길과 안갈 길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한 거름 더 나가서 양심은 우리를 격려하기도 하고 혹은 책망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옳은 길을 갈 때에 우리를 칭찬하고 우리의 마음을 평안케 해서 우리를 격려해 주고, 안 된 길을 가려고 할 떼에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가책을 주어서 우리를 책망하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 향로를 바로 가려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주신 양심 그대로의 양심을 지니고 결코 저버리지 맙시다. 양심의 음성을 무시하지 맙시다. 양심의 음성을 거역하지 맙시다. 양심의 음성을 무시하자 맙시다. 아무리 어려워도 양심의 음성에 순종하십시다. 아무리 손해가 나도 양심의 명령에 순복(順服)하십시다. 아무리 부끄러워도 양심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100.양심의 명령에 순복한 쟝발쟝

빅토르 유고의 유명한 <쟝발쟝>의 이야기를 여러분은 기억하시지요. 그 사람은 여러 가지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리고 몰래 도망했습니다. 먼 곳으로 갔습니다. 변 성명 했습니다. 그 곳에 가서 정계(政界)에 투신했습니다. 성공을 해서 그 곳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더러운 죄를 많이 지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른 도회에 가서 변 성명하고 새 사람으로 시장의 자리까지 올라가서 평안히 삽니다.
그러나 한 번은 심문을 보니까 자기가 살던 그 도회에서 어떤 죄인이 하나 붙잡혔는데 도적질을 하다가 붙잡혀서 그 당국자는 이 사람이 곧 전에 악한 것은 많이 하던 쟝발쟝이라고 인정을 하고 고문까지 해서 자백을 아마 받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 중형을 내린다고 하는 신문의 보도를 보았습니다. 자기는 지금 평안한 시장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문을 보고 그 날 저녁에 잠을 못 잤습니다.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진짜 쟝발쟝은 여기 평안히 있고 무죄한 사람이 내 대신 중형을 받게 되었으니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밤새도록 고민하다가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그곳으로 마차를 타고 달려가서 그 재판장에게 자기가 실상 쟝발쟝이니 이 사람은 놓아주라고 말했습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많이 손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양심의 명령에 순복하였습니다. 이리해서 인생 길을 마지막에 바로 갔습니다. 우리가 인생항로를 바로 마치려고 하면 양심의 명령에 순복해야 됩니다. <인생 항로와 파선>에서

 

 
 



101.창조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천지를 언제 지었으며, 어떻게 지었으며, 얼마나 오묘하게 지었는가 하는 점을 잠깐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보니“태초에…”그랬습니다. 이‘태초’라고 하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맨 처음에’입니다. 그 맨 처음은 언제입니까? 영원 전이란 말은 아닙니다. 일정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오래 전에 지었지마는 영원 전부터 이 우주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에 지은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이 지구의 연령을 계산합니다. 얼마나 꼭 들어맞는지는 모르지마는 대체로 계산합니다. 그 계산방법이 여러 가지 있지마는 보통 쓰는 방법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102.모든 것은 시작할 때가 있다

금속원소( 金屬元素)가운데 우라늄(U)이라고 하는 아주 신기한 원소를 이용해서 원자탄도 만들고 그 외의 여러 가지를 만듭니다. 이 원소는 이상하게도 그 자체가 방사합니다. 그래서 이 우라늄이라고 하는 원소는 방사를 하면서 변하다가 맨 마지막에는 무엇이 되는가 하면 납(鉛)이 됩니다. 여러 과학자들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약 1천만년마다 이 우라늄이 603분지 1이 납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알아 가지고서 지구 가운데 가장 오랜 지층 바위 속에 함축되어 있는 우라늄을 혹 발견합니다. 발견해서 그 가운데 몇 분의 몇이 납으로 변했는가를 조사해서 가장 오래된 지층이 몇 해전에 형성 됐나를 짐작으로 계산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계산에 의하면 제일 오래된 지층이 약 25억만 년 전에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조사를 해서 홈즈 박사라고 하는 이는 지구의 연령이 즉 지구가 생긴지가, 창조를 받은 지가 약 33억5천만 년이라고 계산을 합니다 영원은 아니오, 시작한 때가 있다고 말입니다.
태양계의 연령은 38억만년으로 계산을 합니다. 한 걸음 나아가서 이 우주의 연령, 우주의 창조, 시작 연대를 약 100억만 년으로 추산을 합니다. 자, 이렇게 우주가 창조 받은 것을, 영원 전은 아니지만 매우 오래 전에 태초에 지음을 받은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103.우주의 크기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지으셨는데 이 우주를 어떤 규모로 지으셨나, 이 우주가 큰가 하는 것은 특별히 이 20세기에 사는 우리로서 궁금히 생각는 바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우주를 탐색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우주를 탐색하게 될 때에는 자연히 이 우주가 얼마나 큰가 이런데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옛날에도 우주가 얼마나 큰 것은 대강 짐작했지마는, 특별히 이것도 20세기에 와서야 미국의 마운트 윌손(Mount Wilson) 천문대에 있는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크던 1백 인치 태양 관측용 망원경을 사용해서 우주를 살펴보게 되었고 또 바로 20여 년 전에 마운트 팔로마(Mount Palomar)에 있는 천문대에서는 지금 세계에서 제일 큰 망원경 2백인치의 헤일(Hale) 망원경을 통해서 우주를 좀더 자세히 내다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늘 보는 태양은 얼마나 큽니까? 멀리서 보면 태양이 작게 보이지마는 과학자들이 조사한 결과를 우리가 들어보면 태양 자체가 얼마나 큰고 하니 우리가 사는 이 지구 같은 것이 1백만 개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크다고 합니다. 태양 자체의 그 중량이 얼마나 무거운가 하니 태양계에 속하는 모든 위성을 다 합한 것의 750배나 더 무겁다고 합니다.
또 이 우주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피차에 먼가 생각해 봅시다. 광선의 속도가 아주 빠른데 1초 동안에 18만 6천 마일 갑니다. 1초 동안에 18만 6천 마일 가는 이 광선의 속도로 재어보아도 지구에서 태양까지 가는데 8분 19초가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지구에서 제일 가까운 다른 별인 항성 알파센타워라고 하는 별에 가려고 하면 이 태양광선의 속도로 측량을 해서 4년 3개월, 다시 말하면 4광년 3개월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하늘을 살펴보면 이 항성들이 모여 있는 소위‘갤럭시(Galaxy) 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밤에 나가보면 하늘에 은가루를 뿌린 것처럼 보이는 것, 이것을 우리는 은하라고 합니다. 그 은하수를 망원경으로 보면 그것이 전부 큰 별입니다. 별이 많이 있어서 멀리서 보게 될 때에 이렇게 강처럼, 은하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태양에서 속하는 그 은하계가 얼마나 먼가 하면 10만 광년이라고 합니다.
우리 태양은 이 은하 중심에서 3만 3천 광년 되는 거리에 있는데 매초에 2백 마일 속도로 이 은하계의 중심을 돌고 있습니다. 태양도 돕니다. 태양계를 도는데 2억만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자 그러면 도대체 이 하늘에 별이 얼마나 될까요? 천문학자의 말에 의하면 이 은하계 하나에는 약 1천억의 별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1천억의 별이 있는 은하계가 대략 몇이나 됩니까? 지금 발견 된 것만 해도 약 1억이 있다고 합니다.
아인쉬타인(Albert Einstein) 박사의 계산에 의하면 그 별의 수가 얼마이고 하니 10의 28자승한 수만 하다고 합니다. 영국의 천문학자 제임스 진스(James Jins)는 보통 사람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했습니다. 하늘의 별이 얼마나 많은지 알려면 이 지구의 모든 해변에 있는 모래알을 전부 모아 세어 보면 알 수 있다고 말 헸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우주가 그 만큼 큽니다. 그것을 보니 하나님의 살림살이가 굉장합니다. 큰 데만 놀랄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이 우주를 살펴보면 과연 오묘하게 지었습니다. 이렇게 대 우주이지만 꼭 조직과 질서가 있습니다. 유성이 항성을 돌고, 항성이 모든 유성을 또 돌고 ‘갤럭시’ 가 또 되고, 그렇게 꼭 조직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정한 속도가 있고 일정한 궤도가 있어서 꼭 법칙에 의지해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별이 하늘에 그렇게 많아도 하늘의 교통 사고 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아주 오묘합니다. 이렇게 많은 별들이 멀리 있다고 하지마는 법칙이 꼭 통일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구의 움직이는 자연 법칙이 다른 별에도 꼭 같이 통용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우주 탐색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4 서로 다른 눈송이

이것은 전체적으로 볼 때에 그렇지마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계를 좀 더 자세히 보면 그 가운데도 참 오묘한 것이 많습니다. 금년 겨울에는 눈이 굉장히 많이 와서 우리가 다 놀랍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눈을 좀 자세히 살펴보셨습니까?
그것을 현미경으로 보면 굉장히 아름답다고 합니다. 얼른 보기에는 그저 흰 것이 내려오는 것 같지마는, 자세히 살펴보면 결정체들입니다. 어떤 것은 여덟 모가 나고 어떤 것은 열 두 모가 나고 어떤 것은 여섯 모가 나고 꼭 같이 있는 여러 가지 결정체입니다. 그러나 그 결정체가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과학자가 조사해 보니까 약 9백 가지의 다른 결정체가 있다고 합니다.
그 눈송이 하나도 일정한 고안이 있고, 어떻게 아름답게 만들었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님이 말씀하시기를“들에 피는 백합화를 보아라”하셨지마는, 백합화 한 송이를 가만히 볼지라도 어떻게 그렇게 아름답게 고안을 했습니까? 또 꽃이 하나 하나 다 다릅니다. 잎사귀 하나 하나를 볼지라도 어떻게 그렇게 고안을 잘 했는지 모릅니다.
요사이 한국에도 방직업이 발달되어서 영등포에서도 양단을 많이 짜는 모양입니다. 그 양단을 보면 고안을 굉장히 아름답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고안들이 어디서 왔는지 압니까? 하나님께서 먼저 고안한 것을 빌어다 쓰는 것밖에 다른 것 없습니다. 그 꽃, 그 잎사귀, 새니 뭐니 다 하나님의 고안을 거저 빌어다 쓰는 것밖에 다른 것 없습니다. 어떻게 아름답게 고안이 잘했는지 모릅니다. 나비 한 마리, 새 한 마리를 볼지라도 어떻게 고안이 잘됐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자연계에서 생물도 많고 동물도 많고 식물도 많지마는 피차간 어떻게 조화되어서 살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에서

 

 
 



105 민주국가와 자유 관념

민주 국가가 잘 건설되려면 몇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합니다. 그 중 하나가 정당한‘자유 관념(自由觀念)입니다.
자유는 우리 민주 국가의 한 표어처럼 되었습니다.‘자유 진영’이란 말을 씁니다.‘자유 사회’이란 말을 씁니다. 이 관념도 결국은 개인을 존중하는 사상에서 오게 된 것입니다. 전에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4대 자유가 있어야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첫째는 신앙의 자유(신앙)
둘째는 언론의 자유(언론, 출판)
셋째는 공포에서의 자유(공포가 없는 세계)
넷째는 궁핍에서의 자유( 궁핍 없는 사회
미국의 트루블러드(Elton Trueblood)라고 하는 분은 민주주의 사상에 대해서 많은 글을 썼는데, 그는 <자유의 선언>이란 저서 가운데서 여섯 가지 자유를 주장하였습니다.
첫째는 학문(學問)의 자유
둘째는 변론(辯論)의 자유
셋째는 신교(信敎)자유
넷째는 노동(勞動)의 자유(강제 노동이 아니고, 자유 노동을 할 수 있는 자유)
다섯째는 생존(生存)의 자유
여섯째는 봉사(奉仕)의 자유
민주 사회는 반드시 이 여섯 가지 자유가 있어야 되겠다고 그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 모든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 사회일 것입니다. 국민 하나 하나의 이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국가의 지상의 의무인 것도 우리가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당한 자유 관념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가진 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흔히 자유는 그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자유라고 하는 것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방종이지 자유가 아닙니다. 자유라고 하는 것은 마땅히 행하여야 할대로 행하는 그것이 자유인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이 자유의 관념의 원천이 어디 있는가? 이것은 역시 근본을 더듬어 볼 것 같으면 성경에서 왔습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자라난 나사렛 회당에서 그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시게 될 때에 회당 장이 책을 올렸습니다. 예수 님께서 이사야 61장 1절을 찾아서 이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네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 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됨을, 눌린 자를 자유 캐 하고 주의 복된 해를 전하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읽으시고 하시는 말씀이“오늘날 이 말씀이 응하였도다”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 3장 17절에“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 함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갈라디아 5장에“주께서 저희에게 자유를 주셨은즉 다시는 종의 명에를 메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자유의 적당한 관념을 옳게 가지라고 계속해 말씀하시며“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히려 피차에 봉사하라”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자유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가지고 또한 그 원천이 어디 있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때에 우리가 이 자유에 대한 모든 활동을 바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 국가와 자유 관념>에서

 

 
 



106. 발베이도스 섬에서 일어난 일

제가 몇 해전에 북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에 있는 카리브 바다의 발베이도스라고 하는 섬에 가서 그 지역 여러 섬에 있는 교역자들이 모여 목사 수양회를 하는 자리에 참석했던 일이 있습니다. 발베이도스에 가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조그마한 섬인데 아마 한국 이수로 길이가 약 30리, 넓이가 약 20리로 비행기 타고 높이 올라가면 다 보입니다. 이 섬은 참 좋습니다. 언제나 일은 여름 같습니다. 과히 덥지도 아니하고 물론 춥지도 아니하고 언제나 꽃 피고 경치 아름답고 아주 바닷물이 맑고 참 피서하기 좋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어떤 이가 여기 꽃도 많고 하니까 여기 꿀별을 갖다 놓으면 많은 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꿀통을 갖다 놓으니까 처음에 몇 달은 이 꿀벌들이 꿀을 잘 만들어 옵니다. 그러더니 그 다음부터는 꿀을 만들어 오지 않는 단 말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저 사방에 꽃이요 언제나 벌들이 청밀(淸蜜)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꿀을 갖다 모아 놓을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꿀벌들이 할 것이 없어서 그저 꽃에서 꿀을 먹고는 악착스럽게 다른 사람을 만나는 데로 쏘아 주어서 큰 변이 났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일없는 사람은 이런 꿀벌 비슷해서 공연히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만 해칩니다. 일은 도덕적 생활에도 필요합니다. 일하는 가운데 만족을 얻고 천재가 다시 되고 내재의 능력이 다시 될 수가 있습니다. 일하는 가운데 향상이 있고 발전이 있고 새 문화가 창조됩니다.

 

 
 



107.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예배당을 짓는 공사장에 가서 여러 사람들이 돌을 깎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서 그 중 한 석수(石手)를 붙잡고 “당신은 뭘 합니까?”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그 석수가 얼른“나는 그저 하루에 백원 벌이합니다.”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다른 석수에게 “당신은 무엇합니까?”하니까“나는 돌을 깎습니다”하고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또 다른 석수에게 “ 당신은 뭘 합니까?” 이 사람은 “나는 만 유 주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짓습니다”이렇게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보세요, 꼭 같이 돌 일을 하지요, 그러나 그 정신이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가 꼭 같이 무슨 일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정신을 가지고 그 일을 합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과 동사하는 것, 이것이 곧 기독교 노동관이올시다.
우리 믿는 사람은 일을 이렇게 봅니다. 무슨 일을 맡았든지 하나님과 의논하고, 하나님의 힘을 입고, 하나님과 같이 일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 사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일한다는 이 신념, 이 이상이 곧 우리 믿는 사람이 노동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사상인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우리가 일할 때는 그 일이 참 기도요, 그 일이 참 예배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노동>에서

 

 
 



108. 믿음의 어머니가 남긴 유산

오늘‘어머니 주일’을 당해서‘어머니의 믿음과 그 감화’에 대해서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인간 일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이는 어머니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를 흔히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하나는 유전, 또 하나는 교육이올시다. 흔히 이 두 가지가 거이 지배했습니다. 유전의 견지에서 볼 때에, 자녀들은 문자 그대로 어머니의 혈육을 받아서 납니다. 어머니의 피와 살을 받아서 납니다. 문자 그대로 살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유전의 영향은 말할 것도 없고, 둘째로 교육의 견지에서 볼 때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교육이라 하면 가정 교육, 교회 교육, 학교 교육, 사회 교육, 대략 이와 같이 네 가지 종류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중에도 제일 큰 영향을 인격에게 주는 것은 가정 교육입니다. 그 이유는 가정 교육이란 가장 어렸을 때부터 받는 교육인 까닭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교육은 주로 어머니가 책임을 지게됩니다. 어머니는 항상 아이들과 같이 있게 되는 까닭으로, 아버지는 아무리 힘쓴다고 할지라도 그런 기회가 적습니다. 따라서 가정교육의 대부분의 책임이 어머니에게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전의 견지에서 볼 때, 어머니의 영향은 자녀들에게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가장 큰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동서고금을 물론하고 위대한 인물의 배후에는 어머니의 존재를 우리가 발견합니다. 우리가 한국 역사를 읽을 때에도, 신라조의 김유신 장군을 생각할 때는 자연히 그 어머니를 우리가 또한 기억합니다. 고려조의 일대의 충신이었던 정 포은 선생을 생각할 때에는 그 어머니를 또한 기억합니다.
이러한 예는 참으로 많습니다.
이조의 석학으로서 유명한 율곡 선생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도 역시 그 어머니를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한국뿐 아니고 어떤 나라도 그렇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 같은 이도 일찍이 말하기를“내가 나 된 것의 전부가, 그리고 장차 되기를 바라는 것의 전부는 오직 천사와 같은 내 어머니의 덕입니다”하는 말을 남겼습니다. 일찍이 헬라의 유명한 알렉산더 대제가 파사에 가서 고관과 귀족들을 다 초대하여서 큰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그 연회 소에 나갈 때에는 오래 입던 군복을 벗어버리고 일찍이 자기 고향에서 어머니가 친히 짜고 친히 바느질해서 지어준 옷을 입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깊이 우리가 생각하여 볼 때에 누구든지 어머니가 지어준 옷을 입고 다닙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고 하니 누구든지 자기 어머니의 그 유전, 그 교육, 그 감화로 이루어진 성격, 인격, 생활로 일생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만큼 어머니의 영향이 큽니다. 그러므로 어떤 분은“어머니들은 작은 요람을 통해서 온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도 이럴진대 우리가 영적 방면에서 볼 때에 더욱 그렇습니다.
어머님의 믿음은 자녀의 신앙에 큰 영향을 줍니다.

 

 
 



109.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나카

기독교 역사를 생각할 때에 제일 유명한 믿음의 어머니로서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를 우리가 다 기억합니다. 어거스틴의 고향은 아프리카 북방의 한 작은 동리였습니다. 그 때에는 이 곳도 다 로마의 영지였습니다. 어거스틴은 본래부터 총명했습니다. 재주가 있었습니다. 글공부도 잘 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문명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유감은 믿음이 없습니다. 방탕한 길로 나갔습니다. 그 때 세상 청년들이 걷던 세속의 길로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믿음의 어머니 모니카는 항상 이것이 고통이었습니다. 어떻든지 회개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히 10여 년을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응답은 되지 아니했습니다. 10여 년이나 기도했지마는 그 다음에 된 일을 보면 이 청년 어거스틴이 아프리카 북방을 떠나서 로마로 가자고 합니다. 로마는 물론 정치의 중심이요 문화의 중심지이지마는 또한 음란한 곳이요, 말할 수 없이 부패한 곳입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이 젊은 청년 어거스턴이 로마에 가게되면 얼마나 죄악 가운데 빠질까 염려해서 어떻든지 못 가도록 간절히 권면도 하고 기도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기도하는 동안에 몰래 배를 타고서 지중해를 건너서 로마로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낙심하지 아니하고 기도했습니다. 도무지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자기도 그 후에 배를 타고서 로마로 쫓아갔습니다. 그 후에 로마에 가서 정착한 것은 아니고, 얼마 동안 머물렀다가 다시 이태리 북방 밀란이라고 하는 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 가서 우연히 그 밀란 교회의 유명한 목사 암브로우스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의 감화를 통해서 점점 신앙을 갖게 되어 온전히 회개한 이야기를 우리가 잘 알고 잇습니다.
15, 6년을 계속해서 기도한 후에 결국은 그 아들이 회개를 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그 다음에는 모자가 같이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작정을 하고 두 사람이 같이 기쁨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채 같이 고향으로 돌아오지는 못하고 티벨 강 저 끝에 있는 작은 오스티아라고 하는 동네에 와서 여관에서 묵다가 그만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이 아들이 2천 년 기독교 사상을 거의 지배했다고 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교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배후에 어머니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어거스틴 자신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였습니다.“하나님이시여,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다고 하면 이것은 오직 아버지께서 나에게 이런 어머니를 주신 까닭입니다.”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믿음의 어머니에게 믿음이 같이 따라 갑니다.

 

 
 



110.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

그리고 물론 우리 교회 역사상에 유명한 믿음의 어머니를 아마 우리가 생각하자고 하면, 감리교를 설립한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인은 참 아들을 잘 기를뿐더러 자녀를 많이 길렀습니다. 자녀를 열 아홉을 낳아서 길렀습니다. 이 요한 웨슬레는 열 다섯째로 낳은 아들입니다. 자기 남편은 성공회 목사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목사로서 뭐 봉급이 많은 이치가 없습니다. 박봉입니다, 자녀들이 이렇게 많으니까 항상 생활이 구차했습니다. 그 구차한 살림에 이 많은 자녀를 가지고, 또 전기에 나오는 대로 읽어보면 국민학교 교육은 4, 5학년까지 거이 가정에서 가르쳤습니다. 다섯 살 되었을 때 벌서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글을 해독하자마자 창세기 1장부터 성경을 가르쳤고, 또 규칙적으로 이 많은 자녀들을 잘 길렀으니 그 가운데 요한 웨슬레는 온 영국뿐 아니고 온 세계에 큰 공헌을 한 종교가가 되었고, 차알스 웨슬레는 많은 찬송가를 작곡해서 위대한 음악가가 되었고, 그 밖에 자녀들도 하나 하나가 좋은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어머니가 있는 곳에 믿음의 자녀들이 일어납니다.

 

 
 



111.피얼스 박사의 어머니

제가 이번에 로스앤젤리스에 잠깐 들러서 기독교 선명회 본부에서 같이 예배를 보고 비행장으로 자동차를 타고 나오는데 피얼스 박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자기 어머님이 지금 80세가 넘었고 심히 약해서 사실 사람 보기에는 얼마나 더 오래 세상에 계실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신데 매일 한 번씩 꼭 가서 어머니를 뵙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내가 사실 단점도 많고 성격상 결함도 많은 사람인데 참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서 일을 시키고 지금까지 무난히 해 온다고 하는 것이 그저 다 내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항상 기도해 주시는 그 덕택이며 내가 은혜 가운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이의 배후에도 이와 같은 기도의 어머니가 있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믿음의 어머니 감화가 얼마나 위대하고 그 어머니의 공헌이 교회와 사회와 국가에 주는 공헌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은 우리가 다 헤아려서 말로 할 수가 없는 줄 생각합니다.

 

 
 



112.필립스 브룩스 목사의 어머니

19세기 보스톤에 성공회 감독으로 아주 유명한 목사가 한 분 있었습니다. 필립스 브룩스라고 하는 목사입니다. 이 목사는 자기 어머니가 세상 떠난 다음에 비석을 해 세우면서 그 묘비에 자기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성경 절을 새겼는데 마태복음 15장 28절을 새겼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15정 28절에 무슨 말씀이 있는지 아십니까? 예수 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한 말씀이 거기 있습니다.“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자녀들이 어머니를 장사하고 무덤을 만들고 비석을 만들려고 할 때에, 자기 어머니를 생각할 때에, 무엇보다도 과연 우리 어머니는 믿음이 크신 어머니였다 하는 생각이 날 만큼 믿음의 어머니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 가정에서 누가 예수를 잘 믿는지는 아이들이 더 잘 압니다. 내가 들으니까, 어떤 가정에서 누가 예수를 잘 믿나 투표를 하여보았다고 합니다. 어떤 자녀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아십니까?“우리 어머니는 예배당에 가긴 가도 믿음은 별로 없어”아이들은 못 소깁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 혹 남편까지 속일 수 있지요. 하지만 그 자녀들은 못 소깁니다. 항상 붙어 있으니까, 항상 따라 다니니까.
자녀들이 보기에 자기 어머니의 일생을 회고할 때에 과연 우리 어머니는 믿음이 크신 어머니였다고 자녀들이 생각할 정도로 믿음의 어머니가 됩시다. 그런 은혜를 받으세요. 우리가 다 자녀들에게 유산을 물려주기를 원합니다. 좋은 집을 지어서 남겨 주기도 원하고 돈을 많이 모아서 남겨 주기도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그와 같은 유산은 며칠 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남겨줄 불멸의 유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해가 가고 갈수록 없어지지 아니하고 더욱 축복의 근원이 될 불멸의 유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부모의 믿음이올시다. 우리가 이 불멸의 믿음의 유산을 우리 자손에게 남겨주면 이 유산은 우리 가정과 대대손손이 같이 하면서 우리의 후손을 축복할 것입니다. <어머니의 믿음과 그 감화>에서

 

 
 



113.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녀

우리가 하나님의 좋은 아들과 딸이 되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전적으로 그를 의지할 것입니다. 효자가 자기 아버지 말씀을 의심할 수 있습니까? 효자가 자기 아버지를 의지하지 않을 때가 있겠습니까? 사실 세상의 부모는 요새 보니까 더러 아들과 딸을 내다 버립니다. 하나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과 딸을 끝까지 그 손에 쥐고 보호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14.성 프랜시스 이야기

성 프랜시스가 처음에 은혜를 받아서 그저 주님의 일 만 하고, 옷도 해주면 가난한 사람에게 갖다주고 이렇게 되니까 자기 아버지는 크게 낙심하였습니다. 자기 아버지는 큰 부자요 포목상 주인이었는데 이 애가 커서 자기의 사업을 계대(繼代)할까 생각했는데 사업을 할 생각은 안하고 돌아다니면서 기도하고 주의 일만하고 도무지 자기가 하라고 하는 일은 안 한단 말입니다. 책망해도 쓸 데 없고 때려도 쓸 데 없어요, 마지막에는 성이 나서“이놈, 내 아들 된 것을 아주 파면해 버리겠다”고 호적에서 빼버리고 그 때 법관에게 가서 그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법관도 할 수 없이“이제는 아무개의 아들이 아니라”고 호적에서 빼도록 선언을 했습니다. 그 때에 성 프랜시스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자기 입었던 옷가지 다 벗어서는 자기 옆에 계신 아버지에게 다 놓으면서“아버지 이것 받으세요, 이 앞으로는 오직 하늘에 게신 아버지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부모는 혹 우리를 버릴 때가 있습니다. 하늘에 게신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성 프랜시스를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다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모든 근심과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서

 

 
 



1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부른다”고 하는 말은“찾으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큰 환난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을 부르고 찾았습니다. 성 프랜시스도 중대한 병에 걸렸을 때 마침내 하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유명한 과학자요 유명한 종교가였던 파스칼 같은 이도 중상을 입고 병상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로욜라의 생활 역시 그렇습니다. 요나가 탄 베에 큰 풍파가 일어날 때에 그 선장이 잠자고 있는 요나에게 와서 “잠자는 자여 ! 어찜이뇨?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재촉을 하였습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고 찾아야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환난의 날이야말로 하나님을 찾고 또 만날 만한 때입니다. 개인도 그렇고 민족도 그렇습니다.
환난의 날에 낙심하지 말고, 자포자기하지 말고, 반항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부르고 찾아 만나는 가운데 살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고 하는 말은 한 거름 더 나나가서“기도하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바베론에 잡혀갔을 때에 오래 잊어버렸던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다니엘이, 에스켈이. 많은 백성들과 같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환난의 날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116.도버해협의 기적

세계 2차 대전 때에 불란서가 독일 나치스 군데에게 패해버리고 영국에서 도와주려고 건너갔던 30만 대군이 자기들만으로 불가능한지라 영국으로 건너오기 위해서 해협으로 도망 갈 때에 히틀러는 베를린에서 “도망하는 영국 군인들을 아주 전멸시켜 버리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태연히 있었습니다. 그 때에 영국왕 조오지 6세가 온 국민에게“어떻게 하든지 영국 군대를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전 국민이 그 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이상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 독일 편에는 큰 폭풍우가 일어서 비행기가 한 대도 뜰 수가 없었고 너무 비가 많이 와서 탱크 한 대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국 편에는 그 도버해협이 어떻게 잔잔하고 고요한지 거울 같이 맑아서 수많은 배가 29만의 영국 군대를 무사히 영국까지 옮기게 된 것입니다. 그 일 후에 영국 군대를 비롯해서 온 영국 국민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하나님의 말씀이올시다.

 

 
 



117.모라비아 교회의 운동

이것이 또한 신령한 면에서도 그런 줄 압니다. 18세기 초엽에 유럽에 있던 신교의 정세를 보면 대단히 암담하였습니다. 천주교의 핍박은 여전히 심했습니다. 그러나 신교도들은 작은 신학 문제로 분쟁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교회는 분열로 침체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전도니 세계 선교니 하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던 암흑의 때였습니다. 이 때에 진젠돌프라고 하는 젊은 백작이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믿음이 독실한 이로 은혜를 받아서 자기의 토지를 개방하고 천주교의 핍박에 쫓겨오는 피난민들을 자기 토지에 정착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수백 명이 모이게 되어 이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만 교회를 하나 세웠습니다. 진젠돌프는 이 작은 교회의 목사가 되어 피난민과 한가지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이 핍박이 그치고 신교들 가운데 분쟁이 그쳐서 어떻든지 교회가 부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달라”고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1714년 8월 14일 예배 후 성찬식을 할 때에 큰 은혜가 내렸습니다. 하나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몸을 받치게 되었고, 이렇게 되어서 유명한 ‘모라비아 교회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교회는 5, 6백 명의 피난민들이 모여서 조직되었지만, 은혜를 받은 백 여 년 동안에 는 백여 명의 선교사를 세계 각국으로 파송하게 된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교회역사를 보면 요한 웨슬레 같은 사람도‘모라비아’교회 때문에 큰 은혜를 받고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해서 영국에는 웨슬레 운동이 일어나고 계속해서 피틀리의 부흥 운동이 일어나서 미국에까지 미치게 되어 18세기 중엽부터 신교의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19세기는 부흥을 받은 교회가 온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해서 선교의 세기가 된 것입니다. 베른훗이라고 하는 조그만 교회에서 피난민들이 모여 간절히 기도한 결과 은혜를 받게 되었고 이 은혜가 세계에 퍼지게 되었고, 이 은혜가 온 세계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교회역사와 세께 역사에 큰 영향을 주게 된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난 날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죄를 회개하여 간절히 기도하면 이 환난이 변해서 하나님에게 큰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진젠돌프와 이 피난민 몇 사람이 환난 가운데서 기도한 그 기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계의 수억의 생명을 구원하는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환난의 날과 기도>에서

 

 
 



118.살피시는 하나님

몇 해 전 그리스의 수도 아데네에 갔는데 옛날 천여 년 전에 지은 오랜 예배당이 있어서 구경하려 갔습니다. 거기 헬라 정통교회 들어가면 천주교와 좀 다른 것은 천주교는 예배당 안에 마리아의 성상과 성화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러나 이 헬라 정통교회에서는 성상은 아주 폐지했습니다. 주후 8세기에 아주 폐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성화만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그 예배당에 들어가면 천장과 담으로 여러 가지 옛날의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에 들어가면 이 강대, 저 아치 맨 위에 무슨 그림이 있는고 하니 큰 눈(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 예배당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그 눈입니다. 그 눈이 나를 내려다봅니다. 아마 그 뜻은 이 예배당에 들어오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눈이 너를 보신다 하는 그 뜻을 알리기 위해서 그려 붙인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그 예배당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배당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십니다. 이 하나님의 눈은 성전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 가던지, 온 세계에 이 하나님의 눈을 피할 데가 없습니다. 우리 동양의 성현들도 옛날 이런 사상을 좀 깨달았던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고서에 무슨 말이 있는고 하니 신목여전(神目如電) 이란 말이 있습니다. 신의 눈이 번갯불과 같다는 말입니다. 제일 밝은 것이 번갯불 아닙니까? 하나님의 눈이 번갯불과 같이 밝게 우리들을 살피십니다.
하나님의 눈이 우리를 살피시고 나를 보십니다. 내 생각과 내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거슬리는 것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눈이 여러분 하나 하나를 지금 보시고 여러분의 양심에 말씀해 주십니까? 사도 요한은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요”
스스로 속이지 맙시다.“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의 모든 불의한 가운데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하나님께서 몰라서 자백하란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볼지어다 지금은 구원의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지금 이 시간 구원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직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죄를 자백하지 아니하고 자고 새가 알을 품고 있듯 그냥 죄를 마음 가운데 품고 있는 이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죄를 보고 계십니다. 이 시간에 그 죄를 자백하고 내 놓아야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눈>에서

 

 
 



119.하나님의 동역자

제가 일전에 어떤 책을 보니 어떤 사람이 자기 신앙 생활에 대한 간증을 했는데 그는 미국에서 음식점을 하나 경영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요리법을 잘 공부한 후 그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적당한 곳에서 개업을 했는데 어떻게 된 셈인지 고객이 도무지 오지를 않더랍니다. 거리에 지나가는 많은 사람 가운데 배고픈 사람도 많을 텐데 자기 집에 들어와서 점심 사먹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주인은 초조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이유일까? 이 사람이 곰곰이 생각하다가“이거 내가 여러 가지 내 머리로 애써서 하지마는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적구나 내가 이 일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밖에 없다”이렇게 생각하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제가 이 음식점을 시작했는데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됩니까?”간절히 지시해 주시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성령의 감화 가운데서 일어나는 생각이“그저 어떤 고객이 오든지 네 아들이나 딸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처럼 그만한 정성을 가지고 음식을 실속 있고 맛있게 만들고 사랑으로 대접을 하라”이런 생각이 마음 가운데에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의 지도인 줄 믿고 꼭 그렇게 실행을 했더니 누구나 한 번 온 사람이면 꼭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나니까 그 음식점에 음식 먹으로 오는 사람이 줄을 지어 들어올 정도로 번창하드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변 하나님께 감사를 하면서 “제가 이렇게 축복을 많이 받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됩니까?”또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에 성령의 감화 가운데서 무슨 생각이 났는고 하니“그저 어떤 사람이든지 네 집에 오는 사람은 음식만 잘 대접할 것이 아니라 신령한 양식도 공급하기를 힘써라. 그저 여러 사람의 사정을 아는 대로 도와주고 봉사할 수 있는 대로 봉사하라”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20.기도로 응답 받은 판사

그 후로는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모든 고객을 대합니다. 한 번은 자기 집에 단골로 점심 식사하려 오는 어떤 판사가 들어올 때 보니까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음식을 갖다 놓아도 무슨 생각에 깊이 잠겨서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그래 이 주인이 가서“아 판사 님 ! 무슨 근심이 있습니까? 왜 이렇게 음식을 못 잡수시지요?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이거 대단히 어려운 이혼 소송 사건이 하나 들어왔는데 이 사람들이 이혼을 하면 그 아들과 딸의 장fork 어떻게 됩니까? 이 기막힌 사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이 얼른 대답하기를“그거 해결하기 쉬운 방법이 제게는 하나 있습니다.”“아! 그래 그것이 무슨 방법이지요?”그저 기도를 하십시오‘예수 님께서 이런 사건을 맡았다고 하면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하고 기도를 해보세요”이 말을 들은 판사가 깊이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음식을 대강 먹더니 그 이튿날 점심때가 되어서 이 분이 얼굴에 화기가 충만해서 들어옵니다. 이 주인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아, 내가 당신 말씀대로 하니까 그대로 됩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예배당엘 더러 다녀 보았지만 뭐 별로 기도를 못했었는데 이번에 그 가족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가운데 생각나는 대로 꼭 그들에게 솔직히 말했지요. 그랬더니 무사히 해결이 되었어요”
사실 재판도 공정하고 바르게 하려고 하면 하나님과 동역 해야 됩니다. 우리 나라에도 이와 같이 하나님과 의논하면서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는 법관들이 좀더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무슨 사업이나 하나님과 동역 해야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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