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회 사제 헨리 나우웬은 예일대학 신학 교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강단을 떠나 민중들과 함께 하는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동기는 자신의 풍요로움에 대한 죄책감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이었습니다. 그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에서 강의를 했지만 그곳에서도 영혼의
안식을 느끼지 못 했습니다.
마침내 캐나다 토론토의 정신박약 장애자 공동체 데이브레이크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장애자들을 섬기며 생활하였습니다.
그가 평생 추구했던 것은 예수를 닮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의 궁극적 목표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종됨과 섬김은 바로 예수님의 본성이었습니다.
주님이 사람들을 섬기신 일은 억지로 섬기려 하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또한 예수님의 종입니다. 종은 주인을 섬겨야 합니다. 또한 주인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섬기고 또한 모든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이 섬김의 정신이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 동기가 종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섬기기는 하지만 그 섬김이 수단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는 위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상에 올라서면 지배자로 변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늘 올라가고 존경받기를 좋아합니다.
내려가는 원치 않습니다. 올라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도 하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섬기는 자가 진정으로 큰 자라고 말합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내려가는 삶, 곧 섬김의 삶입니다.
섬기기 위해서는 진정한 겸손과 참된 영성이 필요합니다.
중세기의 부엌 성자 로렌스 형제는 수도원에 들어온 후 부엌에서 일하고 봉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를 찾아온 방문객이 질문하였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부엌에서 청소하고 그릇을 씻고 음식 만드는 일만 하는데 그것 때문에 불평한 일은 없습니까?” 로렌스 형제는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음식을 만들면서 계속 기도합니다. 이 음식을 먹는 자에게 하나님의 평강으로 채우소서.
그리고 청소하면서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하소서.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할 시간밖에는 남는 시간이 없습니다.
” 항상 하나님을 섬기고 형제들을 섬기려는 그의 영혼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워진
것입니다. 이 섬김의 정신이 목회의 정신입니다.
섬김의 목회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그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섬김의 목회는 모든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책임을 집니다.
섬김의 목회는 이끄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아껴주며 돌보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참된 목회의 핵심은 언제나 섬김입니다. 오늘의 목회자들은 예수님의 섬김을 깊이
묵상하여야 합니다. 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하고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묵묵히 섬김의 길을 걷는 자가 참된 목회자입니다. 많은 목회자가 성공과 탐욕으로 중독되고 오염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과 출세의 야망과 탐욕을 버리고 진정한
섬김의 목회를 추구할 때만 참된 목회가 가능합니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목회자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사랑과 감동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의 동기는 자기 만족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섬김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종들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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