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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망하며 불안하지 말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시 42:1-11/43:5)

by 【고동엽】 2022. 2. 2.

낙망하며 불안하지 말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시 42:1-11/43:5)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모두 각자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현대를 일컬어 '불안의 시대'라고 합니다. 시대가 불안하니 사람들도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생활에서도 불안함을 느끼고 직장생활에서도 불안함을 느낍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장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불안 없이 산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삶은 공포다. 현재의 모든 것은 공포이며 고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 자체가 불안과 공포라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의 적은 바로 걱정과 불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걱정과 불안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병을 일으키고 생활의 발전을 저해합니다.
그래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카렐' 박사는 '근심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장수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한 사람들입니다.
벧전5: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불안과 두려움, 공포 속에 시달리고 편안치 않게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마음에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주시고 지키고 보호하여 주시니까 우리는 염려를 다 떨쳐버리고 평강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다윗 왕이 61세가 되었을 때, 그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한밤중에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치는 중에 그의 마음속에 자꾸만 엄습해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불안하여 하는고'라고 물리치며 하나님을 바라고 믿음으로 찬양한 시입니다.
▶표제에 보면 '고라 자손의 마스길, 영장으로 한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다윗인데 이 시를 고라 자손에게 주어 작곡을 해 성전에서 부르게 하였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마스길'은 '교훈시'라는 뜻입니다. '고라'라고 하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을 반역한 레위 자손가운데 중책을 맡았던 일꾼입니다.
본래 그들은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을 받던 자손들이었는데, 교만한 마음이 들어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물리치고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겠다고 반역하고 나셨다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았습니다.
어떤 심판인가 하면, 땅이 갈라져 삼키움을 당했습니다. 지금말로 하면 지진으로 인해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자신들의 죄를 울면서 회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회개하는 백성은 절대로 멸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건져 주셨습니다.
이때 살아남은 고라 자손들은 더더욱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의 종인 모세와 아론을 잘 받들면서 그 후손들이 성전에 성가대로 충성을 다 했습니다.
당시 다윗왕 밑에서 성가대 지휘자로 명성을 날린 사람들은 '여두룬과 아삽과 헤만'입니다. 그 중 헤만은 고라의 18대 손으로 헤만의 아들들은 성전 찬양대 24반열 중 14반열에 지도자였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단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5절은 갈급히 하나님을 찾는 간구이고, 7-11절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위대한 신앙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목소개▶


먼저 다윗이 이 시를 쓸 때의 배경을 알아보고 설교를 들으면 더 은혜가 될 줄로 믿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죄로 하나님앞에 징계를 당하는데 그 중 가장 큰 징계가 아들 압살롬의 반역입니다. 다윗이 범죄한 후에 나단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철저하게 회개했는데, 심은 데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은 다윗왕이 지옥에 가는 죄는 용서해 주었지만 대신 무서운 징계를 주셨습니다.
그 자식가운데 맏아들은 이복 여동생을 성 폭행했고, 셋째아들 압살롬은 자기형이 자기 여동생을 성 폭행했다고 큰형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어 도망을 갑니다.
이렇게 다윗왕의 가정에 큰 환난을 당하고 백성들 앞에 망신을 당하며 마음에 고통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형을 죽이고 도망갔던 셋째아들 압살롬이 돌아왔습니다. 다윗은 그의 과거를 묻지 않고 용서해주며 다시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다윗도 늙어서 육신이 성한 데가 없습니다.
다윗의 몸이 약해진 것을 본 알살롬은 '기회는 이때다'하고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반역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젊은 엘리트들을 자기 수하에 끌어들이고, 백성들에게 인심정책을 펴며 인기관리를 합니다. 특히 다윗 왕의 오른팔 격인 '아히도벨' 장군을 자기 사람으로 포섭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압살롬이 자기 아버지 다윗 왕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제가 요즘 영적으로 갈급 합니다. 아버지가 허락하신다면 아히도벨과 함께 헤브론 성전에 가서 특별기도도 하고 하나님께 특별 제사를 드리고 오고 싶습니다" 얼마나 기뜩한 소리입니까? 다윗이 이 소리를 듣고 기뻐합니다. 모든 제사드릴 준비를 다 해 주면서 이번에 가서 크게 은혜 받고 와서 새사람이 되라고 등을 다독거려 줍니다.
이렇게 허락을 받은 압살롬이 아히도벨과 짜고 헤브론에 가서 제사를 드린다는 미명아래 많은 군인들을 모아 특별 훈련을 시키며 D데이를 잡아놓고 혁명공약을 낭독하고 질풍같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쳐들어옵니다.
이 반란의 소식을 한 밤중에 접한 다윗은 늙은 신하 몇 사람과 비서들과 오늘 성가대를 지휘한 고라 자손을 데리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납니다. 한 밤중에 기드론 시냇가를 지나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여장을 풀고 쿠데타의 진압을 기다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시를 쓴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1-2절에 보면, 다윗은 왕위에서 물러난 것에 대하여 미련을 두고 후회하며 그 자리를 사모한 내용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나의 영혼이 나의 왕권을 찾기에 갈급하고, 찬란하였던 유대 왕국을 갈망하나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 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갈급함 같이" 원어에는 '헐떡꺼림'으로 번역했습니다. 사슴은 몸이 뜨거운 짐승이랍니다. 그래서 다른 짐승보다도 물을 더 먹는다고 합니다.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극심한 갈등을 느끼는 동물이 바로 사슴입니다.
지금 다윗은 자식에게 좇기면서도 왕의 보좌를 갈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가서 예배드리지 못함에 갈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어떤 하나님을 갈망합니까?
2절에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환난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는 하나님, 어려움 당할 때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 지금도 살아 계셔서 나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갈망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의 시편기자는 사슴을 비유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슴처럼 사모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찾되 애타는 심정으로 찾으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①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실 사모한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은 똑같은 말입니다.

②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100% 아멘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떠한 자세로 듣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그의 일생에 행복과 불행을, 성공과 실패를 결정지어 주는 중대한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③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사모하고 예배드리는 일을 제일 우선으로 삼고 예배드리는 일을 인생의 최대의 값어치와 보람으로 삼습니다.
다윗의 신앙을 보자! 시84:1,2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라고 하면서 몸이 쇠약해질 정도로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사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10절을 보면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주의 전에서 한 날을 보내는 것이 다른 곳에서 천 날을 보내는 것보다 더 값어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중요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④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인내를 닮아 모든 일에 낙담하지 아니하고 잘 참고 인내하며 오래 참습니다.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아 다른 사람을 높이며 존경하며 자신을 낮추는 온유하고 겸손한 신앙인격을 소유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모습을 닮지 못하여 이방사람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에게 잠8:21절에 보면,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3절에서 흘리는 다윗의 눈물은 어떤 눈물입니까?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지금 다윗은 왕권을 빼앗긴 것에 대한 눈물이 아닙니다. 정든 고향산천을 다 버리고 객지에서 설움 받는 나그네의 설움을 신세 타령하는 그런 슬픔이 전혀 아닙니다.
다윗이 흘리는 눈물의 사연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내놓아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라는 말로 밤낮으로 그를 향해 공격하고 심지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대적 원수들이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좀 내놓아라, 하나님을 보여라" 라는 말 때문에 그는 심히 괴롭고 슬프고 그래서 애절한 노래를 이 시편에 읊었습니다.
얼마나 황당한 질문입니까?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내놓으라니 이 얼마나 어려운 질문입니까?
3절에 "사람들이 나를 향하여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10절에 보면 "원수들이 비방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가 이렇게 짓밟히고 사느냐" 원수들이 조롱하는 말입니다.
다윗은 지금 자기가 천대받는 것은 상관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조롱하는 원수들 때문에 속이 상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 눈물은 배고파 흘리는 눈물보다도, 버림받아 슬퍼하는 눈물보다도 더 한 차원 높은 눈물입니다.

4절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사람이 무엇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요 마음 상하는 일입니다. 재물을 잃고, 건강을 잃고, 명예를 잃고, 권력을 잃고 낙망하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 낙망하는 사람은 천국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런 것들은 세상 떠나가는 날 자동적으로 잃게 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다윗은 왕 자리를 잃어버린 것 때문에 애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성일을 지키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에 애통함이 있고, 또한 하나님 전에 달려나가 많은 성도들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송드리는 즐거움을 잃은 것 때문에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세상부귀영화 잃은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하나님 성전에 달려나갈 수 없는 자기 처지를 지금 슬퍼하고 있습니다.

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사단이 우리 기독교 신앙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는 어떤 것일까요?
신앙인의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신앙인의 삶을 무력과 시키는 것 그것은 낙심이라는 것입니다.
낙심은 그리스도인을 무섭게 파괴하는 무기일 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파괴시키는 사단의 무기입니다. 낙심은 마음의 병균입니다. 낙심은 마음의 바이러스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전염되면 그것은 가정으로 이웃으로 퍼저 신앙 공동체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말 큰 사전에 보면 낙심(落-떠어질 락 心-마음심)이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풀어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낙망(落-떨어질 락 望-바랄 망)이란 희망을 잃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낙망은 솨하흐입니다. 이 뜻은 "풀이 죽게 하다. 구부리다. 누이다"라는 말입니다.
병균에 감염되면 사람이 몸이 풀이 죽고 누어 꼼짝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낙심에 마음이 감염되면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무기력해집니다.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사람도 만나기 싫습니다. 일하기도 싫습니다. 교회에 나오기도 싫습니다. 후회의 아픔에 사로잡힙니다.

▶우리가 왜 낙심합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 때문에 낙심합니다. 어떤 결과가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리지 못해서 낙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낙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당할 때 배신을 당할 때 낙심합니다.
꿈이 좌절될 때, 기도 응답이 더디 올 때 낙심합니다. 사람 바라보다가 낙심하고, 환경바라보고 낙심하고, 조건 때문에 낙심하고, 때로는 자신을 바라보고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낙심하는 경우는 다양합니다.
본문에 다윗은 왜 낙심하고 있습니까?
자식 때문에 낙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때문에 낙심하고 있습니다.
환경 때문에 낙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 낙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낙심을 뛰어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의 위대함이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어찌하여 낙망하며 불안하여 하는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닥쳤을 때, 다윗 왕이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고 다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안주한 것처럼, 여러분도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낙망과 불안을 극복하는 비결을 터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①낙망이 오고 불안이 올 때 우리 주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다윗 왕은 영혼 속에, 마음속에 낙심이 들어오고 실망이 되어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한다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서 도망치던 다윗이 요단 땅으로 도망하였다가, 결국엔 팔레스타인 가장 북쪽에 있는 헤르몬 산과 미살 산이 있는 곳까지 도망을 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도망을 하면서 젊은 시절 사울 왕에게 쫓기던 때를 떠올렸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다윗의 생명을 보존하여 주셔서 10년 동안이나 도망을 다녔지만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손에서 그를 살려주셨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지켜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과거에 역사 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도 역사하시고 미래에도 역사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속에 믿음과 평강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신7:19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목도한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출애굽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이적과 기사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일과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신 일과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일과 불뱀에 물렸지만 살아나게 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통해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도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8:18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재물도 얻게 하시고 권세도 얻게 하시고 명예도 얻게 하셨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총명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재물을 얻어 부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태어날 때도 빈손으로 왔고,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빈손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가정과 좋은 직장과 사업장을 통해서 지금처럼 살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며 감사드려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인생의 짐 때문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쓰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다면 결코 넘어지거나 쓰러지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②세상 파도와 물결이 엄몰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라(7-9).

어떻게 불안과 두려움, 공포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다윗은 근심으로 인하여 큰 폭포 소리가 들리고 파도와 물결이 그를 침몰케 할 것 같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쉬지 말고 깨어서 기도한다면,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내가 어떤 어려움 가운데 처했는가, 나에게 또다시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인가'를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욘2:2-3, 6절 말씀에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어둡고 냄새나는 그 곳에서 3일 동안 주야로 부르짖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하여도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간구할 수 있습니다. 기도까지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정말로 끝이지만 기도하는 순간부터 인생의 새로운 역사가 전개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빌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기도하십시오. 염려한다고 무엇이 해결되겠습니까? 밤새도록 잠도 자지 못하고 염려하고 근심하여도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기도하면 철야기도가 되고, 새벽기도가 됩니다. 근심으로 인하여 음식이 내키지 않을 때는 금식기도를 하면 됩니다. 기도는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줍니다.
누가 우리를 절망에서 구할 수 있습니까?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고난의 어두운 터널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먼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분노하고 비관하고 원망함으로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겸손히 낮아지고 기도함으로 고난을 기회로 삼아 더 크게 성공하고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립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하여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을 통해서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2)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을 믿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고 발전과 성장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독일의 '마틴 부처'는 "슬픔 속에 있느냐? 기도하라. 핍박을 받고 있느냐? 기도하라. 어려움이 생겼느냐? 기도하라. 기도밖에 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과 절망 가운에 처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사면초가가 되어 사방이 캄캄하게 막혔다 할지라도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③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11).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낙망과 불안이 닥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다윗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찬송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찬송한다는 것을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시56:4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을 만드시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행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점치는 귀신이 들린 여종에게로 가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그 여종의 주인이 자신의 이익이 떨어짐으로 인해 바울과 실라를 모함하여 고소를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죄도 없는데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였고,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들의 매인 것이 풀리고 간수가 찾아와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찬송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기도는 응답을 가져옵니다. 캄캄한 감옥 속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좌절도, 낙심도, 원망도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면 지진을 통해서 감옥 문이 열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러분도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부르면 귀신과 병마가 물러갑니다(삼상16:23).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소생되며(시22:26), 병 고침을 받습니다(렘17:14).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행16:25-26).
일이 잘못되어 갈 때 하나님께 찬송하십시오. 찬송은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줍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함으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찬송을 부르십시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 하나님께서 실패를 성공으로,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주십니다.
바람이 부느냐, 불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고통 가운데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보다도 그 사람이 거기에 대해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선한 사람에게는 선한 결과가 나타나고 악한 사람에게는 악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의심의 열매를 맺게 되고,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담대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은 결코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시고 성령님께서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풍족하며 부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응답을 가져옵니다. 캄캄한 감옥 속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좌절도, 낙심도, 원망도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면 지진을 통해서 감옥 문이 열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러분도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부르면 귀신과 병마가 물러갑니다(삼상16:23).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소생되며(시22:26), 병 고침을 받습니다(렘17:14).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행16:25-26).
일이 잘못되어 갈 때 하나님께 찬송하십시오. 찬송은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줍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함으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찬송을 부르십시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 하나님께서 실패를 성공으로,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주십니다.
바람이 부느냐, 불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고통 가운데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보다도 그 사람이 거기에 대해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선한 사람에게는 선한 결과가 나타나고 악한 사람에게는 악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의심의 열매를 맺게 되고,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담대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은 결코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시고 성령님께서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풍족하며 부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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