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기적의 주인공이 되자!(눅5:1-11)

by 【고동엽】 2022. 2. 2.

기적의 주인공이 되자!(눅5:1-11)

 

'헤밍웨이'의 명작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에 보면, 주인공 '산티아고'는 먼바다에 나가 84일간의 몸부림 끝에 '말린'이라는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물고기를 배에 매달고 항구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도중,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들의 끈길진 공격을 받으며, 이들과 각고의 싸움을 하면서 마침내 항구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이게 왠 일입니까! 그 큰 물고기는 앙상한 뼈만 남아있는 것이 아닙니까? ●'헤밍웨이'는 여기서, 인간의 처절한 생의 투쟁과 그리고 그보다도 더 무서운 허무를 이야기 하고자 했습니다.
노인과 바다의 주제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중 5절에 있는 베드로의 고백인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나이다"라는 베드로의 처지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삶에 대한 강렬한 몸부림과 허무, 그것이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이며, 오늘 본문에 나타난 베드로의 이야기이며 또한 어쩌면 오늘날의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강렬한 의욕 속에서, 때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제나, 저제나, 이곳에서나, 저곳에서나' 하면서 밤을 새워 그물을 던지고 다시 끌어올리는 베드로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세상이라는 이 바다에서 때로는 의욕에 차서 때로는 지친 심신을 이끌고, '이번에는 대박이겠지' 하면서 성공의 그물, 소망의 그물을 던지고 또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티아고'처럼 때로는 굉장한 것 같았으나, 결국은 뼈만 남은 앙상한 물고기를 끌고 그렇게 씨름했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헛된 것을 위한 몸부림을 했거나 아니면 베드로처럼 빈 그물을 씻어야 하는 좌절의 현실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렇게 빈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절망의 때에, 낙심의 때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가장 깊이 고민할 때가 주님이 가장 가까이 계시는 때이고, 가장 어려운 순간이 주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때이기도 합니다. 가장, 괴로운 곳이 주님과 만남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를 찾아오신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풀어보면, "베드로야, 고기를 얼마나 잡았느냐?"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보아라." "예! 선생님, 내가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이 대화 속에서 우리는 한 축복의 모형을 보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 그 말씀대로 예! 함으로써, 일어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6절 이하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6절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실패자 베드로가 그 아침에 예수를 만나 만선의 축복을 받은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제목소개!▶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 본명은 시몬이며, 주님께서 이름을 베드로(아람어로는 게바)로 개명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란 뜻입니다. 그의 고향은 갈릴리 벳세다인데, 벳세다의 뜻은 '고기 잡는 집'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부 출신의 '요나'였으며,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과 더불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전문 어부 출신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갈릴리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바다는 게네사렛 호수라고도 부르고 디베랴 바다라고도 부릅니다. 갈릴리 호수는 팔레스틴 최대의 담수(淡水)호로, 수심이 얕은 곳은 20m, 깊은 곳은 200m나 됩니다. 주변에는 높은 산들이 둘러져 있으므로 바다 한복판에서 이따금씩 돌풍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호수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살기 때문에 그 주변에는 어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잡힌 물고기는 예루살렘과 로마제국으로까지 수출을 하였기 때문에 어부들은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복음사역을 감당하신 곳입니다. 이곳에서 제자들을 부르셨고, 이곳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고,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고, 백부장의 종을 고치셨으며, 나인성에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곳이 바로 갈릴리 지역에서 이루어진 사건들입니다.
이 바다에서 베드로가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초저녁부터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렸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채 그물을 거두고 있습니다.

2절 "그물을 씻는지라"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한 실패자의 빈 그물입니다. 이때 강변에서는 수많은 무리들이 그리스도를 에워싸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베드로의 배 위에 올라오셔서 베드로에게 청하여 배를 약간 띄우게 하시고 그 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말씀을 마치신 주님은 밤이 맞도록 헛수고한 시몬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그 명령은 베드로의 경험에 의해서는 순종할 수 없는 상식 밖의 명령입니다.
시간적으로 낮에는 고기를 잡을 수 없을 때요, 장소적으로 깊은 곳에서는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베드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의 경험으로 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상식 밖의 명령 이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인생의 경험과 지식을 접어두고 말씀에 따라 순종했더니 배가 잠길 정도의 만선의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 베드로는 인생의 삶에 있어 가장 위대한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베드로는 고기를 잡는 어부여서 그의 삶의 행동반경이 갈릴리 호숫가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곳에서 인생의 행복과 성공의 승부를 건 곳입니다. 배타고, 노 젖고, 그물 던지는 이러한 베드로에게 어느 날 갑자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기적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기적은 어느 날 여러분들의 생활 속에서 갑자기 일어납니다. 베드로는 일상생활에서 고기잡고, 배타고, 노 젖고, 잠자는 것밖에 다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주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불경기에 허덕이는 사업장에서 축복 예배들 드려주시고,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이 복이 된 것입니다. 어떤 말씀을 주셨습니까? 4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오늘 우리 모두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영의 눈을 크게 뜨고 갈릴리 해변의 바다를 보십시다. 그래서 베드로가 만선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2004년도에는 우리도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베드로는 주님을 만나서 전까지만 해도 실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자기의 경험과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오늘 날 수없이 많은 인생들이 큰 꿈을 안고 경험과 지식을 담보 삼아 얼마나 열심히 인생의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습니까? 그런데 열심을 다한 사업장이 잘되는 쪽보다는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를 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한탄합니다.
'일이 이렇게 꼬이고 풀리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경험이나 지식이 통하지 않아 깊은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베드로의 경우도 주님 만나기 전까지는 밤이 맞도록 수고를 했지만 대가 없는 빈 그물을 손에 쥐고 얼마나 허탈해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오늘 본문 속에서 베드로가 기적을 체험한 것처럼 우리도 기적을 체험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영적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1. 내 인생 길에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은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날 그 새벽에 갈릴리 호숫가에서 베드로뿐만 아니라 수많은 어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똑같은 불경기를 만난 자들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기업!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그날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것처럼 서울 장안에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날 많은 어부들과 베드로가 있었지만 다 기적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만난 베드로만이 기적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①부지런한 해야 합니다. 본문의 베드로를 봅시다.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고기 한 마리 못 잡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부지런히 열심히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사업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공부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게으름을 악으로 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를 갈며 슬피 움이 있으리라"

②빈배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빈배라고 하는 것은 베드로에게는 실패한 인생의 모습이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생애에 빈배와 같은 그런 때가 종종 휘몰아칩니다.
어떤 때는 내 건강이 완전히 병이 들어 빈배처럼 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사업에 실패해서 빈배처럼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될 때도 있으며, 어떤 때는 인간관계로 인하여 빈배처럼 허무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간은 빈배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지고 누리고' 있을 때 교만해 집니다.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갈수록 교만해 집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과 절대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인간의 빈배를 경험한 사람은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그래, 내가 무슨 힘이 있고 능력이 있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겨야지" 비로소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이 때가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행여나 오늘 이 자리에 빈배의 인생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바로 이때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많이 가졌기 때문에 주님이 오시지 않은 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그러나 빈 배 인생! 겸손해진 인생! 내 생애에 완전히 빈배처럼 되었을 때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내 심령의 빈배가 될 때 주의 성신은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산상보훈에서 "마음이 가난한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빈배에 주님을 모실 수가 있었습니다.

■눅8장에 보면 유대인의 회당장 야이로에게 외동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때 나이 열 두 살이었는데, 그 외동딸이 원인 모를 중병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두렵고, 가장 슬프고, 가장 심각한 절망은 뭐니뭐니 해도 죽음인줄 믿습니다. 죽음은 오래 살았던 짧게 살았던 그 자체가 슬픔이요 비극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은 누구는 보아주고 그런 것이 없습니다.
국립묘지에 가보면 한 때에 천하를 호령하던 박정희 대통령의 묘소가 있습니다. 그는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지만 자기 자신은 호령할 수가 없었고, 한 나라를 통치할 수는 있었지만 자기 죽음을 통치할 수 없었기에 말없이 땅속에 묻혀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회당장의 지위는 상당합니다. 회당에는 대개 열 명의 관리 책임자가 있고, 그 중에서 세 명이 대표 격으로 있으면서 예배절차, 재판절차를 담당하게 됩니다. 그 중에 야이로는 수석 회당장이었기에 그 때 그의 지위와 명성과 권세는 대단했습니다. 그런 그도 딸의 죽음으로 인해 인생의 빈배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눅8:41에 보면 그가 예수께 찾아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자기 집에 오셔서 딸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여기서 예수께 찾아 왔다는 것은 부지런한 열심이요, 엎드렸다는 것은 겸손이요, 간구했다는 것은 믿음의 기도입니다.
이런 믿음을 보신 주님은 야이로의 집에 가셔서 소녀를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믿/ ●또 어느 때 기적이 일어납니까?

 

2. 배를 빌려 드려라! 나의 귀중한 것을 주님께 드릴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본문의 베드로는 자기의 배를 주님께 빌려 드렸습니다. 배는 시몬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재산목록 제 일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빌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생명을 빌리라고 하십니다. 왜? 구원해 주시려고, 우리의 육신을 빌리라고 하십니다. 왜? 건강 주시려고, /할/ 하나님께 몸 바쳐 충성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건강 책임져 주십니다. 또 우리의 재능을 빌리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물질을 빌리라고 하십니다. 왜? 30배, 60배, 100배로 주시려고 빌려달라고 하십니다. 믿어지면 '아멘'합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하고 헌신하면 그 모든 것들을 다시 하나님께 되돌려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갚아 주실 때 오늘 베드로에게 축복하신 것처럼 만선의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눅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그 당시 베드로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라! 실패의 밤! 사지가 축 늘어졌고, 아무 기분이 없습니다. 사람이 기분이 중요합니다. 기분 따라 죽고 삽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께서 오셔서 배를 쓰자고 하십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 사람이 누굴 약올리나! 귀찮아 죽겠네" 툭명을 떨 수가 있고 성질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께서 쓰시겠다 하실 때 기쁜 마음으로 주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 많이 빌려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주실 때는 두 배가 잠기게 만선의 축복을 주십니다. /믿/

 

3. 기적이 일어난 비결은 육지에서 떨어져야 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우기를 청하셨습니다. 여기에 영적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 육지는 세상을 가리킨 말입니다.
■세상과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멀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 세상이 멀어집니다. 세상의 풍속은 멀리하고, 세상의 습관을 멀리하고, 세상 취미, 세상 자랑을 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해야 할 것은 미루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까이 하는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한때 골프를 즐겼답니다. 그런데 골프를 치면서 그 당시 말썽을 피우던 장로님, 권사님의 이름을 대며 골프공을 때렸답니다. '○○장로 목아집니다. ○○권사 목아집니다'하며 힘껏 쳤더니 스트레스가 풀리더랍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후에 보니 그 장로님의 사업이 뒤죽박죽 되어가고, 또 권사님의 가정과 육신이 망신창이가 되더랍니다. 그 때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주의 종이 저주하면 저주 가 임합니다. 민22:6절 "그대가(주의 종)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우리는 육지에서 떨어져야 합니다. 육지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배 안에서 일해야 합니다. 배는 노아의 방주를 의미한 것이요, 오늘날 구원선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주님의 몸 된 제단에서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다 받습니다.
■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채우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전도입니다. 2004년도에는 한사람이 한사람씩만 전도해도 우리교회는 배가 운동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나도 한사람이라도 꼭 전도하겠습니다!'

 

4.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 듣는 것이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깁니다. /아멘/
잠28:9절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롬10: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인간의 비극과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듣지 않는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받지 않았습니다.
창2:17절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우습게 듣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담 한 사람의 진 죄 때문에 인류가 다 죄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은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심령을 수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 우 날선 검과 같아 우리의 심령 골수 관절을 찔러 쪼갭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사상을 말씀으로 수술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못된 습관은 하나님의 말씀의 불로 태워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은혜 주시고, 그 말씀의 능력으로 심령을 변화시킵니다. 그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 모두가 은혜를 받는 심령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①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듣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십시요!
②말씀을 많이 읽으십시오! 신17:19절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계1: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③말씀을 묵상하면 기적을 체험합니다. 묵상이란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시1:2절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잘 들었으며,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내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본문의 베드로가 그 당시 상황에서 순종하지 못할 조건도 있었습니다.

①고기를 잡을 수 없는 아침입니다. 갈릴리는 너무나 물이 깨끗해서 낮에 그물을 내리면 고기가 다 도망갑니다. 그래서 밤에 고기를 잡습니다.

②장소적으로 고기를 잡을 수 없는 곳입니다. 고기는 깊은 곳에 있지 않고 낮은 곳에 있습니다. 깊은 물은 물이 차가워서 고기가 놀지 못합니다.

③이미 그날은 그물 정리가 다 끝났으니 다시 내리려면 능력의 손해가 따릅니다. 냇가에서 조그만 피라미 잡는 투망이 아닙니다. 큰 바다에서 고기 잡는 그물은 엄청나게 큽니다.

④자기는 고기 잡는데 베테랑급 어부지만 지금 말씀해 주신 주님은 어부하고는 거리가 먼 목수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런 조건들을 다 극복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원동력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 받은 사람은 그 말씀의 위력을 잘 압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기를 다짐합니다.

 

5. 기적의 원동력은 '깊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깊은 곳에는 고기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고기는 얕은 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곳에서 주님을 만나는 신비가 있고, 철저한 신앙 훈련을 체험하게 됩니다.

■말씀을 읽을 때 깊이 있게 읽어보십시오.
①말씀에 깊이 빠져라. 공부 잘하는 학생은 파고드는 학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파고 읽다 보면, 그 말씀에 붙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그 말씀 속에서 주의 음성을 듣고 기뻐 뛰게 됩니다.

②기도에 깊이 빠져라. 기도도 푹 빠지는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에 깊이 빠지면 옆에서 누가 뭐래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깊은 기도는 주님과 주고받는 대화입니다.

③성령에 깊이 빠져라. 성령의 깊은 곳에 들어가야 불이 떨어지고 능력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깊은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나무의 뿌리가 깊이 내려지면 태풍이 불어와도 요동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얕은 나무는 미풍만 불어도 넘어집니다. 깊은 믿음! 깊은 기도! 역사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깊은 곳으로 가야하는 골목에서 외면해 버리고, 포기해 버리고, 지나쳐 버립니다. 그러나 기적은 깊은 곳으로 나아갈 때 일어납니다.

■깊은 곳은 어디입니까?
①인생의 경험과 수단과 방법을 내려놓는 곳입니다.
베드로는 그 누구보다도 갈릴리 바다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고기 잡는 어부고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어부입니다. 그런 그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합니다.
그의 경험과 수단과 방법으로는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경험과 수단과 방법을 다 버립니다. 그리고 오직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는 자가 됩니다. 경험이 아닌 믿음으로 그물을 내립니다.
유명한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앙은 인간의 이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이성과 생각은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은 이성을 초월한 높은 단계입니다. 영리한 사람보다, 똑똑한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이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미국의 석유 왕이었던 '록펠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그는 젊은 시절 광산업에 손을 대었다가 큰 실패를 경험하고 깊은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친구에게서 금광을 하나 인수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이미 캐내 갈 금은 다 캐내 갔습니다. 찌꺼기만 남았습니다. 폐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은행에서 계속 빚 독촉은 날아옵니다. 또 광부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니까 그들이 폭도처럼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러는 결심을 하고서 광산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는 식음을 전폐하면서 기도의 깊은 자리로 내려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깊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더 깊이 파라. 때가 되면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 인간적인 견지에서 생각하면 아무리 깊게 파도 금이 나오지를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베드로가 듣고 그 말씀을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을 때,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축복을 받았던 본문을 생각하면서 록펠러는 광부들을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깊이 파내려 갔습니다.
한참 파내려 갔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펑!' 하면서 검은 물줄기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흔한 지하수와는 달랐습니다. 분석해 보니까 석유였습니다. 유전이 그곳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록펠러는 미국의 석유 왕이 되었습니다. 당대 세계에서 제일 가는 갑부가 된 것입니다.

②'깊은 곳으로 가라'는 말은 순종의 길입니다. 그물을 깨끗이 씻어 놓았는데 또 다시 그물을 던지라고 할 때는 철저한 순종을 요구합니다. 여러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축복의 지름길은 순종의 터널을 통과한 길이다.

③말씀에 의지하십시오. "말씀에 의지하여" 여기서 말씀은 '레마'를 말합니다. 신앙이란 말씀을 의지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인데 그 약속은 행할 때 이루어집니다.
요2장에 가나 혼인집에 하인들처럼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가지고 갈 때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고,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④깊은 곳은 자신의 죄를 발견한 곳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우리가 죄인 됨을 알 때 주님은 그 때 우릴 불러 쓰십니다. 주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⑤베드로는 깊은 곳에서 주님을 향하는 신앙고백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그리스도를 선생으로 불렀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 가운데 그리스도를 선생으로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무엇을 배웠습니까? 상담이나 해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십니까? 그리스도를 선생으로 아는 사람은 그 속에 구원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처음에는 선생이여 했지만 깊은 곳으로 가서 은혜를 받은 이후에 '주여'로 바뀝니다. 8절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여기서 '주여'란 말은 주님이 나의 생명의 주인이시고, 나는 당신의 종이라는 고백입니다.

⑥깊은 곳이란 주님의 사명을 받는 곳입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마4:19절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⑦사명자의 결단이 11절에 있습니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기적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6.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우리 신앙의 길 6단계를 정리해 봅니다.

 

①말씀 중심, 예배 중심입니다. 1절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 예배의 종교입니다. "무리가 모여 말씀을 들을 때" 새 삶이 시작되었고 믿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 지점에서 인생관이 변하여 전도자들이 되었습니다.

(2)순종입니다. 순종은 자질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하고 인정이 될 때는 내 마음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을지라도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③체험입니다. 신앙은 철학이 아니고 이론이 아니며 수양이 아닙니다. 신앙은 체험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이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믿는 예수를 만나고 하나님을 내가 직접 만나는 체험이 중요합니다.
예수를 만나지 못하고 살아가니까 기도를 좀 하려고 하면 그렇게 피곤하고 설교 시간만 되면 그렇게 재미가 없고 헌금 좀 하려고 하면 그렇게 아깝고 전도를 좀 하려고 하면 그렇게 쑥스럽고 부끄럽고 창피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신앙의 법입니다.

④협동입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함께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함께 연합을 이루고 협동을 이루어서 하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화음이 중요하고 협동이 중요합니다.
이 협동이 잘되고 화음이 잘 이루어지면 신앙생활이 참 재미가 있고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런 가정이 부흥하고 그런 교회가 부흥하고 그런 신앙이 깊이가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의 처신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탐욕스럽게 혼자서 그 고기를 다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함께 고기를 잡던 동무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동무들과 함께 고기를 잡아 올립니다. 그러니까 그물도 찢어지지 않고, 고기도 한 마리 놓치지 않고 모두 다 잡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날 아침 모두가 함께 기쁨을 누렸습니다. 함께 일하니 쉽고 즐겁고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이것이 협동이고 연합이고 화음의 축복입니다.

⑤바른 신앙고백입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니 저를 떠나십시오." 이 지점이 바로 신앙의 경지에 들어가는 지점이고, 믿음의 눈이 활짝 열리는 지점입니다. 신앙인은 이 지점을 통과해야 합니다. 사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 때 비로소 순종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납니다. 겸손함도 이 지점에서 시작되고, 양보와 이해와 협동도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⑥사명 부여입니다. 베드로가 주님 앞에 엎드려 "나는 죄인입니다"고 고백하자, 주님은 베드로를 격려하시며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사명을 주십니다.
2004년도는 우리 모두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4년 1월 4일 신년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