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자!(롬1:13-16)
제2차 대전 때 미 군함이 출항하려는 순간 한 수병이 자신의 웃옷이 파도에 밀려가는 것을 보자 물 속에 뛰어들어 건져왔습니다. 이 모습을 본 사령관은 그 수병에게 생명의 위험을 무릎 쓴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수병은 웃옷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어 사령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사진은 바로 어머니의 사진이었습니다. 사령관은 이 수병의 모습에서 크게 은혜를 받고 수병의 손을 꼭 잡은 채 병사들에게 향하여 "어머니의 사진을 위해 생명을 불사한 수병이야말로 어머니의 조국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군인이다" 하며 칭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구원받은 존재입니다. 이 수병이 어머니의 사진을 소중히 여긴 것처럼 복음을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소중히 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지난 시간에 바울이 로마에 가기를 원했던 이유 중에 두 가지를 11-12절에서 밝혔습니다.
①11절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그 당시 로마 교회는 신앙도, 신학도 초보적이었습니다. 바울이 가서 그들의 신앙을 정립시켜 주어 견고케 세워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②12절 "믿음 안에서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었습니다. 성도는 서로 교제하며 예수님 안에서 연합을 이루며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필요를 나눠주며 협력하는 형제우애가 있어야 합니다.
③오늘 13절에 보니 사도 바울은 로마교인들에게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가기를 원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3절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고자 했던 목적 가운데 하나는 그곳에서도 복음의 열매를 맺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1절에서 밝힌 그대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택정함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자신의 삶 전체를 다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일평생 동안 그는 결혼도 아니 하고, 독신으로 지내면서 때로는 해로를 통해서, 때로는 육로를 통해서 마게도냐, 소아시아의 여러 지방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면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 잠시도 쉬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복음의 열매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요15;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택하여 세워주셨습니다. 왜? 열매를 맺게 하려고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사도바울은 개인적으로 여러 번 로마에 가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길이 막혔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여러 번 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바울을 로마에 보내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에 그 소원하는 바가 즉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어디 살아 계시냐? 하나님이 날 버렸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하며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일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
가령 어린아이에게 위험한 것을 맡기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은 축복을 주어도 잘 관리하고 잘 섬길 수 있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을 키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의 나라와 의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아멘/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열매는 신앙인들이 맺어야 하는 많은 열매 중에서도 전도의 열매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로마에 가서 다른 이방인에게 전도하여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칭 이방인의 사도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가 예루살렘의 복음을 받았지만 그 복음이 로마의 문화권속에서 어떻게 토착화시킬 것인가를 잘 설명해 주려는 의도에서입니다.
세계사를 보면 바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본 로마서를 써 보낸 후 3,4년 후에 죄인의 신분으로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때가 주후 62년 초 정도가 됩니다.
그 후 로마에 3년 가까이 머무르면서 감옥에서 지내기도 하고 풀려나기도 하면서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물론 바울 혼자서만 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도 그곳에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당시 초대교회가 거두게 된 전도의 열매입니다. 네로 황제의 칼날에 바울이 순교를 하던 64년 초, 그러니까 로마에 간 지 3,4년이 지나서 로마는 온통 예수를 믿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할/
역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네로 황제의 핍박을 시작해서 바울은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당시 로마 시에는 유대인 중에 예수를 믿는 사람이 2만 명이 넘었고, 본지 인들을 합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거대한 군중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당시 예수를 믿는 다고 경기장에 끌려나간 성도들은 미친개의 밥이 되었고, 사자 밥이 되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했고, 짐승의 가죽에 돌돌 말아 톱으로 갈아 죽였고, 심지어 네로는 성전 뜰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끌어다 소나무 막대기에 못을 박아 세워 놓고 거기에 기름을 잔뜩 부어 횃불로 사용했답니다.
그러면서 네로는 술에 취해 마차를 끌고 다니면서 "내가 만든 예술 작품을 보라"며 발광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 교인들이 숨어살던 카타콤은 너무 넓어 그곳에 숨을 수 있는 사람 수가 백만이 넘는다는 주장을 한 학자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말입니다. (순교자의 숫자가 얼마인지 정확히 모른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많은 전도의 열매를 거두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오직 뜨거운 마음으로 복음에만 관심이 있는 사도였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권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높이고 전하면서 전도의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본 받아야 할 사명의 소리입니다. /믿/
▶14절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복음은 누구에게 전해야 합니까? 답변은 간단합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구별 없이 전해져야 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지혜 있다고 자처하는 헬라 사람이나, 또 어리석다고 야만인 취급을 받는 사람에게나 구분 없이 복음은 다 전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저들 모두 죄와 허물로 완전히 죽었기 때문입니다. 복음 없이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말할 것도 없이 죄와 허물로 완전히 죽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야 합니다. 나같이 못난 사람에게도 복음이 전해져야 하지만 나보다 잘난 사람, 더 똑똑한 사람, 더 부유한 사람, 더 건강한 사람에게도 복음은 똑같이 전해져야 합니다. 복음 없이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빚진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우리가 다 복음에 빚진 자'라는 이 고백은 기독교인들 모두가 가져야 할 심정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랑에 빚진 자요, 용서에 빚진 자요, 은혜에 빚진 자요, 복음에 빚진 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값없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빚졌다는 말은 채무자란 말입니다. 빚진 죄인이란 말이 있습니다. 빚은 무섭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이자가 불어납니다. 저희도 죄인입니다. 빚은 꼭 갚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자유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빚을 지면 매인 자가 됩니다. 빚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①돈을 빌려 쓰는 경제적인 빚 ②인간관계에서 성립하는 사랑의 빚 ③주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복음의 빚입니다.
바울은 롬13:8절에서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복음의 빚진 자라고 합니다. 빚이란 그것이 어떤 성격의 빚이든 간에 갚아야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2000년 전 로마시대는 정치는 로마정치였지만, 문화는 헬라 문화권에 살았기에 헬라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요, 헬라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야만인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모든 자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빚진 자입니다. 누구에게 빚진 자입니까?
①하나님 앞에 빚진 자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자연 속에 살게 하시고 시시때때로 맑은 공기를 호흡하게 하시며, 밝은 태양 빛을 받아 살게 하십니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빚진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신앙 안에서 산다고 하면서도 날마다 넘어지고 쓰러지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불순종과 불 신앙 속에 살아가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심판의 날을 연기하시고 깨닫고, 회개하고, 바로 서기를 기다리시는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가지고 있습니다.
②우리는 주님께 빚진 자입니다.
주님은 아무 흠도 죄도 없으신 분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여기서 대신이라는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할 죽음을 주님께서 대신 죽어주신 것입니다. 내 죄 값 때문에 예수께서 나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속의 은혜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된 것입니다. /믿어지면 아멘!/
③부모에게 빚을 졌고, 이웃에게 빚을 진자입니다.
우리가 그저 태어나서 살게 된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희생, 이웃의 사랑 속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모릅니다. 그러나 장가가고 시집가서 아들, 딸 낳고 키우면서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에게는 내가 죽을 때까지 못 갚는 사랑의 빚을 진 것입니다.
④우리는 스승에게도 빚을 졌습니다.
이웃에게도 사랑의 따듯한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빚들을 갚을 책임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지만 그 전에는 기독교를 박해했고, 스데반 집사를 돌로 때려죽이고, 또 다메섹에 있는 예수쟁이들을 다 잡아 죽이려고 대제사장의 위임장을 가지고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람입니다.
"내가 지금은 예수를 전하지만, 얼마나 핍박했는가?" 그 빚을 갚아야겠다는 심정으로 살았고, 사도로 부르신 것은 복음을 전하라고 세우신 것인데 주님 앞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려는 마음을 가짐으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저 받은 생명, 그저 받은 하나님의 은혜, 모든 이방인들에게 다 전해야 되는데 아직 다 못 전했으니 다 전할 때까지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복음의 빚진 자입니다. 사도 바울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서 빚을 갚아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14절의 말씀을 받고 크게 감동을 받아 복음 전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분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리빙스톤'입니다.
이 말씀을 읽다가 가슴을 치면서 "내가 참으로 많은 빚을 진자로구나" 탄식했답니다. 리빙스톤은 그 빚을 갚기 위해 신학교에 가서 신학을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목사고시 시험을 치렀는데 설교시험에서 낙방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신학을 졸업했다고 해도 설교를 시원치 않아서 목사생활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리빙스톤이 좌절하고 있을 때, 성령의 지혜를 받게 됩니다.
내가 설교를 잘 못하니까 지식인들에게 전할게 아니라 미개인(야만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구나! 결심을 하고 그는 아프리카로 떠나게 됩니다.
그 당시 아프리카에 간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 아프리카 선교사들을 아무리 모으려 해도 모이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때 리빙스톤은 선교부에 찾아가 내가 목사고시에 떨어졌는데 선교사로 가고 싶습니다. 지원을 했습니다. 지원자가 없는 처지에 그 용기가 대단하다며 허락을 했는데 그 조건이 의사가 되어 의술선교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영국말로 유창하게 설교를 못하는데 아프리카 말은 더욱 못합니다. 아프리카는 동네만 지나도 언어가 다른 곳입니다. 선교하기도 무척 어려운 곳입니다. 리빙스톤은 주님 앞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봉사하고 헌신했더니 토인들은 말은 잘 알아듣지 못해도 리빙스톤의 헌신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많은 토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리빙스톤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영국으로 돌아오지 않자, '스텐리'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을 곳곳마다 리빙스톤이 지나간 자리에 예수의 흔적과 자취가 남아있는 것이었습니다.
후에 그곳에 수없이 많은 백인 선교사가 들어왔지만 리빙스톤처럼 존경받은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어떤 백인들은 선교사로 가장하여 토인들을 잡아 노예로 팔아먹었지만, 리빙스톤은 그들의 병든 곳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입으로 빨고 하며 정성을 다했습니다. 자신의 몸은 사자에게 뜯기면서까지 빚진 자로서의 심정으로 예수의 사랑의 실천을 몸으로 보답했습니다.
후에 영국의 지식인들은 이런 훌륭한 인물은 아프리카에 묻을 수 없다며 웨스트민트 사원에 묻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마음 자세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전9:16절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복음을 전할지라도 뭐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까?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빚진 사람이 자랑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늘 수치스럽고 부끄러울 뿐이지요. 빚진 사람은 당연히 빚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겸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는데 하나님께서 그 빚을 탕감해주었어. 저 사람은 일백 데나리온밖에 안 돼. 나는 저 사람보다 더 했어" 그래서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어떻게 하든지 도와주고 싶고, 위로해주고 싶고, 바른 길로 인도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빚진 자의 심정이 없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 정죄하기를 잘합니다. 자기가 제일인 줄 압니다. 바리새인처럼 교만합니다. 그래서 칼로 무 자르듯이 남을 잘라냅니다. 빚진 자의 심정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또 빚진 자의 심정은 어떠한 것입니까?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을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빚진 사람이 빚을 갚지 않으면 책임추궁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빚을 갚아야 합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에게 화가 미친다면 저와 여러분에게도 역시 화가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받은 복음을 우리도 받았습니다. 바울이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도 지금 받아 누리고 있고, 바울이 받은 구원의 은혜를 우리도 역시 받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해서 그에게 화가 있다면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할 때도 역시 화가 우리에게 미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해가 됩니까?/
▶15절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어떻게 전도해야 합니까? 바울은 본문에서 할 수 있는 대로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여!' 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열을 가진 사람이 다섯을 내 놓는 것은 최선이 아닙니다. 100kg을 들 수 있는 사람이 50kg만 든다면 그것도 힘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힘을 다했습니다. 지식, 물질, 건강까지도 그래서 그는 말년에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나의 달려갈 길은 다 달렸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남은 길은 의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편을 전도하기 원하십니까? 힘을 다하십시오. 부인을 구원하기 원하십니까? 힘을 다하십시오. 친구나 형제나 이웃을 전도하기 원하신다면 최선을 다하십시오. 힘을 다해 기도하고 전도한다면 반드시 그 영혼은 주께로 인도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아멘/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생애 동안에 야심을 가진 도시가 두 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아테네요, 하나는 로마입니다.
그러나 행17절에 보면 아테네 선교가 실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철학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철학적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논쟁만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아테네에서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지식을 나타내려 했다가 크게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테네에서는 교회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 크게 깨달은 바울은 고린도에 가서 "십자가 외에 자랑치 않겠노라"고 작정하였고, 그대로 실천하여 고린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그 당시 왜 로마에 야심을 가졌습니까? 로마는 정치의 중심부였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부패한 도시였습니다. 당시 인구는 100만을 육박했습니다. 그런데 자유인은 10만 정도였고, 90만은 노예였습니다.
포로로 잡아와서 모든 일을 시키고 로마인들은 편안히 앉아서 돈을 모았습니다. 편안하게 돈을 모으니 그들은 자연히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온 가정이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타락하여 사랑과 공의가 매 말랐고 집은 있으나 가정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부패한 도성이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다짐하기를 부패한 로마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무기가 바로 복음이라는 것을 믿고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복음을 당연히 전해야 하는데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은 왜 그렇습니까? 복음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헬라 사람들은 지혜를 자랑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힘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너희에게 자랑하노라"고 하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자랑하면서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은 어떻게 전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⑴빚진 자의 심정으로 전해야 하고, ⑵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생명을 걸고 하라고 했습니다. ⑶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강한 어조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고백합니다.
바울이 거듭나기 이전 율법주의자로서 그리스도인을 심하게 박해할 때는 복음이 한없이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거듭나고 복음을 깨닫고 나서는 오직 예수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당시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가리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유대 땅에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그러니까 결국은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비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며 예수를 깔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에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부끄럽고 안 부끄러운 것은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어떤 사람은 밥 먹다가 손님이 오면 얼른 상을 치웁니다. 상에 된장과 김치 밖에 없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일이란 아무 가치 없는 일을 함으로 부끄러운 것입니다. 허송세월 보낸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①복음을 자랑한다는 뜻입니다.
'모하트'는 '나는 복음을 자랑하느니'라고 주석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오면서 성경책 들고 가기가 부끄럽다고 신문지에 싸 가지고 갑니다. 예수 믿는 것이 부끄러워 식사 기도도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예전에 술을 참 좋아했습니다. 예수를 믿었지만 술은 근방 끊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술집에서 술 앞에 놓고 기도했더니 주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복음을 자랑하십시오. 나는 예수 믿는 다고 선포하십시오. 그래야 주일날 모임에서 빼 줍니다. 예수 믿는지 안 믿는지 불확실하니까 마귀가 그저 밥으로 알고 매일 시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절대 고백입니다. 주님은 막8:38절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하셨고, 또 주님은 마10:33절에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딤후2:12절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자신이 헬라인인 것을,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인 인 것을, 유대인들은 유대인인 것을 자랑하며 긍지를 가지고 삽니다.
미국 어느 대학 기숙사에 세계 각국 유학생들이 모여 기숙하고 있는데 주말이면 자신의 부모들에게 전화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어로 전화를 하는 학생은 한국 학생뿐이랍니다. 조국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더 나가서 우리는 예수를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예수를 자랑하며 삽시다. /아멘/
②복음에 대한 확신이 넘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확신이 넘쳐야 합니다. 최 권능 목사는 예수 천당만 전하고 다니다 졸업시험에 낙제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실력은 없지만 기도하고 가방 들고 다니면서 예수 천당만 전했는데 길다던 사람이 깜짝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하루는 일본 헌병이 말을 타고 가는데 '예수 천당!' 외쳤더니 말이 놀라 뛰는 바람에 그만 그 사람이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부하 헌병이 총을 들이대며 쏘려고 하니 대장이 말렸습니다. 최 목사님은 헌병대장 다친 허리를 잡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했더니 벌떡 일어났답니다.
최 목사는 계속 '예수 천당!'을 외치며 다니다가 헌병대에 끌려와 죽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한대 때리면 '예수' 또 때리면 '천당' 심문하는 헌병이 왜 자꾸 그 소리만 내느냐고 물었더니 "여보시오 물이 꽉 찬 바케스는 가만히 두면 그대로 있지만 건드리면 넘치는 것과 같이 내 속에 예수 천당으로 꽉 차 있으니 건드리면 그 소리만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헌병은 별 미친놈 다 본다며 발길로 차면서 나가라고 했을 때도 '예수 천당'하고 외쳤답니다.
최 권능 목사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확신을 가지고 구원의 주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 하루는 시집가는 새색시 가마를 열고 시집만 가지말고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했더니 그 새색시 귀에서 계속 그 소리만 맴돌아 견딜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교회를 8개나 세우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한국 교회사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이요 초자연적인 능력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 당시 로마는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세계의 길은 로마로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은 그 당시 로마 제국과 로마의 권위와 국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로마는 정치, 군사, 문화, 경제, 예술, 산업, 종교 등등 모든 영역에서 세계 최고의 황금의 도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폭탄이 세계 대 도시인 로마에 터진 것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십자가를 자랑삼아 복음을 가지고 선전포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토록 막강한 로마 제국도 복음 앞에 굴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국가로 변모해갔습니다. 복음은 참으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힘이요, 생명의 위력입니다. 우리 모두 이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십시다. /아멘! 할!/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구원은 내가 노력하고, 내가 애쓴다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힘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누가 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 바로 구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재미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구원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촛불 앞에 서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믿음으로 누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환한 태양 아래 서 있는 것과 같다."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 촛불 앞에 서 있어 보세요. 촛불이 언제 꺼질지 모릅니다. 얼마나 불안합니까? 내 노력으로, 내가 착한 일을 해서 구원받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와 같이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 뒤에 악해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심성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노력으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환한 태양 아래 서 있을 때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태양 빛은 꺼지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할 때. 우리 마음속에 불안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람에게 구원의 선물을 허락해주십니까? 모든 사람에게 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조건이 여러 개 있는 것이 아니고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든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자에게"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적어도 신구약 성경을 한번 이상 읽은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했습니까? 16절에 보니까 "모든 믿는 자에게"라고 했습니다. 믿어야 한다는 조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능력이고, 믿음이 생명이고, 믿음이 축복입니다. 큰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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