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바울이 전한 복음은?(롬1:2-7)
하루는 목사님에게 점잖은 신사 한 분이 찾아와서 묻기를 "목사님은 왜 설교 때마다 예수만 전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받은 목사님은 그 신사에게 묻기를 "선생님은 아침 식사로 무엇을 드십니까?" "예! 밥을 먹죠" "저녁에는 요?" "밥이요!" "그럼 어제 저녁에는 무엇을 드셨나요?" "물론 밥을 먹었지요" "그러면 날마다 선생님은 선생의 육신을 위해 무엇을 잡수십니까?" "목사님은 참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의 생명은 예수님만이 우리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주님 없이 우리는 살수가 없습니다"
행4: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제목 소개!▶
바울은 1절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했습니다.
①종은 '자기의 소유'가 없습니다.
종은 주인의 필요에 따라 사용되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몸, 건강, 재산, 금, 은, 나의 영혼, 나의 자녀, 받은바 은사, 영광, 이 세상의 승리, 이 천지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육신의 모습을 통해 태어나게 했으며, 이 세상을 태어날 때 빈손으로 나온 것 같이, 저 세상 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 존재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종은 자신의 소유권이 없고 모든 소유가 주인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바로 알고 믿으면 모든 것이 은혜요, 감사요, 능력이 됩니다.
②종은 '자유와 권리'가 없습니다.
주인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고, 범사에 주인의 뜻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의 잔을 눈앞에 두고 "아버지여!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신 주님의 최후의 기도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14:7-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한마디로 종은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않고 주인의 뜻대로만 사는 자입니다.
③종은 '주인을 위해 충성하다 죽는 자'입니다.
고전4:2절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충성이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순종하고, 충성하는 길만이 축복 받는 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충성하려고 해도 환경이 어려워서, 시간이 없어서, 건강이 안 좋아서, 재주가 없어서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우선순위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삶인가? 나 자신을 위한 삶인가?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잘 아십니다. 무리한 것은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과부의 두 렙돈을 받으시고 축복하시던 주님은, 우리의 환경 속에 처한 사정과 형편을 다 아시므로 있는 것 그대로, 처한 상황 그대로, 정성을 드리는 것이 충성입니다.
한마디로 종의 바른 자세는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택정함을 입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박해의 제 일인자라고 할 만큼 주님과 원수 노릇을 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그의 태도가 돌변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파송 받은 주님의 전권대사가 되었으며, 특히 성령의 감동을 입어 성경을 기록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란 말은 바로 '하나님이 전하는 복음'이란 말과 같습니다.
▶2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복음"이 어떤 복음입니까? 복음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란 말로 '구원의 소식, 기쁜 소식, 복된 소식, 참된 소식'이라고 부릅니다.
1절에서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했고, 막1:1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했고, 행11:20절에서는 '주 예수의 복음', 행10:36절에서는 '화평의 복음', 엡6:16절에서는 '구원의 복음, 평안의 복음', 딤전1:11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 등으로 나와 있습니다.
본 로마서에서도 복음에 관하여 기록된 내용이 약 60회 가량 나옵니다.
▶이 복음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죄에 빠진 인류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급한 것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건져내는 것입니다. 죄에 빠져 죽어 가는 인생들을 먼저 건져낸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과 사귀면서 살게 해 주셨는데, 그만 사탄의 꾐에 빠져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죄 속에 빠져 하나님과의 사귐이 단절되어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의식주문제보다 정치나 문화보다 죄와 사망의 문제입니다. /믿어집니까?/
기독교의 구원은 인류의 근본문제가 되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롬8:2)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기독교 복음에 대하여 고전15:1-4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복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며, 그의 죽으심은 인류의 죄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속의 죽으심이며, 또 주님의 부활은 인류의 사망 문제를 해결하시는 죽음에서 부활을 말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의 근본문제요,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여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정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복음이 없습니다. 예수가 없이는 어떠한 교파나 교단, 어떠한 철학에도 복음은 없습니다. 이 복음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석가처럼 도를 통해서, 자시의 수양을 통해서, 혹은 공자처럼 공부를 많이 해서 위인이 된 것이 아니며, 오직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택하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선지자를 통하여 그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예언대로 난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기 4천년 전부터 여인의 후손으로(창3:15), 유다 지파에서(창49:10), 처녀가 잉태하여 구주가 나실 것을 분명히 예언하고 있습니다(사7:14). 미5:2절에 보면 장소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마1:21절에 예수란 이름까지 예언했습니다.
또 시22:1-3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대해 미리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치 아니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나이다"
마27:46절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시22:18절에서는 "원수들이 예수의 옷을 제비 뽑고,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 당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5:39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가 증거 하는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모방하거나 창조한 것이 아니라 옛적부터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로서는 것은 옛적부터 내려온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게 될 때 가장 확실할 것입니다.
요즘 이단들이 너무 극성을 떨고 있습니다. 이단들은 성경 말씀대로가 아니고 자신을 따르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설을 믿으라고 합니다.
성경의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이 몇 절 뽑아서 성경을 왜곡하여 만들고 있습니다.
박태선이는 자기가 자칭 '예수다, 감람나무다'라고 했지만 죽었고, 문선명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실패한 것이고, 자기의 피를 받아야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하면서 피 갈음의 교리를 통일교 원리 강론으로 만들어 성경을 왜곡하고, 많은 사람들을 꾀어 돈과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망하고 무너지며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요즘사람들은 복음을 육신 적인 것으로 바꿔서 기복신앙을 부르짖습니다. 돈 벌고, 출세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으로 미신화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엄격히 말해서 복음이 아닙니다.
사실 예수를 잘 믿으면 재물도, 출세도, 성공도,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복음의 진수는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신앙생활을 잘 하면 하나님이 보너스로 주시는 축복입니다.
▶그럼 복음이 무엇입니까?
요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독생자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믿어집니까?/
▶3절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이 아들로 말하면" 이 아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진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다시 사신 것,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으로는" 육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리킵니다. 요1: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왜 육신을 입고 오셨을까요? 인간의 죄 값을 담당하시려고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 입니다.
죄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그 죄를 대신해서 죽어줘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원죄를 안고 태어났기 때문에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습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삼하7:16절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당신의 혈통에서 메시야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마1:1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아들 예수의 세계라"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인 요셉은 다윗의 혈통이며, 또 그 모친 마리아도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인간적인 혈통은 다윗의 혈통입니다.
막10:47절에서 소경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이여!" 부른 것은 다윗의 자손으로 예언 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 한 말입니다.
▶3-4절에서 강조점이 하나 있습니다. 두 가지 대조가 나오는데 하나는 3절 '다윗의 아들'과 4절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신 분이시라는 점을 가리킨 것이고,
다음으로 3절 '육신으로는'과 4절 '성결의 영을 따라'는 부활 이전의 사역과 부활 이후의 사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부활 이전에는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담당하셨다면 부활 이후에는 만유의 주로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4절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성결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가지고 오셨고, 또한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성결의 영은 성령의 영으로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께서 계시므로 그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엡1:20절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 한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예수님의 부활은 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사망 권세를 이길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습니다. 힘이 센 장군들, 권력을 쥔 황제로도, 부자로도, 영웅들도 수 없이 왔다 갔지만, 그 어떤 사람 한 사람도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만이 첫 부활의 열매가 되셨습니다.
여러분! 본문에서 복음의 완성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석가도, 공자도, 마호메트도 모두 자신의 구원의 도리를 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구원의 도리만이 확실하고 유일한 것이라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죽음에서 다시 사신, 그러니까 부활로써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을 믿는 것은 헛것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가 위대하고 능력이 있다는 것은 바로 주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믿/
롬6:23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단정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한 번 죽으면 죄로 인하여 부활하지 못합니다. 공자도, 석가도, 박태선도, 마호메트도 사후에 다시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할/
이 부활의 사건을 통해서 죄인도 아니요, 더러운 영이 아닌 성결의 영이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세상의 구주이심을 사실적으로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확실한 복음을 믿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불의한 것과 추한 것, 우리의 모든 육체의 연약함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죽는 날, 우리의 모든 죄, 연약, 추함, 인간의 모든 질고와 아픔, 괴롬이 함께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들은 새로운 성결의 영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고후5: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할/
▶예수님께서 마16:4절에서 요나의 표적을 중요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사흘 동안 있다가 살아서 다시 나온 것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나의 표적 밖에 다른 표적을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신 것은 십자가와 부활이 가장 큰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에 확신을 가지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많은 이적을 행하셨으나 그것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게 하는 보조적인 표적에 불과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표적을 아무리 많이 보여주어도 믿지 못합니다.
여러분! 기독교가 위대한 것은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본문 4절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진수입니다.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의 이름이 갖는 귀한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 많은 재벌의 이름이, 어느 학자의 이름이, 배우의 이름이, 그 당시에는 로마의 황제의 이름이 큰 의미가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위력을 가진 이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놀랍게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초대교회 때, 제일 위대했던 이름은 로마 황제의 이름이 아닙니다. 행3:4절에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용감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행3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불쌍히 여겨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명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본 군중들이 솔로몬 행각에 모였을 때, 베드로는 이 기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알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능력 있게 증거 하자 수없이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신을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 베드로가 가장 크게 사용한 무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할/
행4: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석가도 있고, 공자도 있습니다. 우리 큰집은 원불교를 믿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큰누나가 저한테 말합니다. '어느 종교나 진리는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답답한 소리입니다.
여러분! 어찌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진리가 같습니까? 무지한 사람들이 몰라서 지껄이는 소리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천하의 어떤 이름으로도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을 준 바가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일반종교는 자연종교입니다 만은, 우리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 생명의 종교입니다. 이 부분을 확실히 믿으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행4:29-30절에 보면, 초대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습니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도 이 역사는 계속됩니다.
히13: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막16:18절에서 예수 이름으로 뱀을 집어낸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우리는 뱀 같이 무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 뱀 같은 사람 하나 잘못 들어오면 회사가 망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으면 뱀은 집어 낼 수 있습니다.
또 막16:18절에 보면, 예수의 이름으로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삶의 도처에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의 이름으로 독을 뽑아내십시오.
또 예수의 이름으로 "병든 자에게 손을 언은 즉 나음을 입으리라!" 부활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입니다.
예수! 마1: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리스도! 기름을 부은 자란 뜻으로 선지자, 제사장, 왕이란 말입니다.
▶5절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그로 말미암아" '그'로란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또 봅시다. 교회 직분은 누구로 말미암아 받은 것입니까?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입니다.
그리고 은혜로 직분을 받았다는 것은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이 예수의 이름의 공로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감격의 고백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준 직분의 귀중함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준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직분도 귀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직분을 나타내고, 자랑하고, 뽐냅니다. 또 그 자리를 차지(유지)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직분은 세상 적인 직분보다 더 귀합니다. 세상의 직분은 올라가다가도 떨어지고 죽어버리면 말짱 꽝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직분은 하늘나라에 가서도 상급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경동교회에서 집사 안수식이 있던 날입니다. 안수 받은 집사 부인이 교회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를 “너희는 모를 거다. 집사 직분이 도지사보다 높고, 국회의원보다 높단다. 왜냐하면 집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분 자들이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세워 주셨으니 주님 닮아 겸손히 섬김의 도리를 잘 감당합시다(막10:45).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직분을 주셨습니까? "그 이름을 위하여"입니다. 오직 예수, 오직 주님을 위하여, 오직 교회를 위하여 일하라고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믿/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남북전쟁을 일으켜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킨 역사적인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가 전쟁이 끝난 후 작가 '스토우' 부인을 백악관에 초청하여 만찬을 베푼 자리에서, 부인이 쓰신 '엉클 톰'을 읽고 힘을 얻어 노예 해방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어나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영광은 부인이 받아야 되겠습니다.
'스토우' 부인이 즉시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감동을 받아 글을 썼으니 영광은 주께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각하야말로 직접 수고하고 승리를 하셨으니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링컨 역시 "아닙니다. 주님이 힘 주셔서 이긴 전쟁입니다. 영광은 오직 주께 돌려야 합니다" 얼마나 멋있는 신앙인의 대화입니까? 지금도 미국인의 위대한 힘은 이런 정신에서 나오는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생명을 걸어봅시다, /아멘!/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예수께서 바울을 불러 많은 은혜를 주시고, 사도의 직분을 주신 것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6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너희도 이방인 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이방인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들을 우리 주님이 불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 것입니다. /믿어집니까?/
벧전1:19절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우리 몸이 주님의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 몸의 주인이 주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몸을 마음대로 죄짓게 하면 안 됩니다. 주인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고, 먼저 주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요15: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엡2:8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는 모두 주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살아야'합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주님은 우리에게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마18:20절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23:37절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우리도 품어주시겠다"고 하시며, ▶시17:8절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마10:30절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다"니 얼마나 우리를 향하신 관심이 큰지 모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요6:39절(하)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아멘/
▶7절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우리는 로마 교회의 기원을 한번 알아보아야 합니다.
행2:10절에 보면 오순절에 절기를 지키기 위해 로마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회심하고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정한 훈련을 받은 후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여기서 자기들끼리 공동체를 이루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로마 교회의 기원입니다. 즉 로마교회는 어떤 특정한 사도에 의해 세워진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게 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의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주후 1세기 말 로마에는 상당수 유대인들이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고 자리를 잡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파 유대인, 헬라파 유대인, 고린도나 아시아 지역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으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는데,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또 나타나게 되자 로마의 유대인 사회는 정말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를 띠었습니다.
로마서가 기록되기 6-7년 전 주후 49년경에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유대인 사회의 이런 복잡한 상황과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복음 전파로 인해 유대인 사회에 큰 동요가 일어나자 전체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일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문안과 축복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도로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성도가 누구입니까? 이 사실을 바로 알면 우리 존재가 얼마나 존귀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①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잡니다. 어떤 사랑을 입었습니까? 요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②아무나 성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구체적인 사건을 말합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던 것처럼 주님은 구체적으로 우리를 만나주셨고, 그 만남의 확실한 사건이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란 거룩한 이름이란 뜻이고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교회를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거룩한 집이란 말입니다. 세상에 속한 집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집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만민 중에서 우리를 따로 선택하여 거룩한 무리고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를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라는 말속에는 '하나님께 바쳐진 자'란 뜻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귀한 성도의 이름을 받았으니 이름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벧전1:15-16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찌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인사가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인사의 한 전형적인 인사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즉 이 바울의 인사가 기독교인들의 문안 인사의 한 모범이 된 것입니다.
결국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사실을 이 인사로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성도들이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할/아멘/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4강》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자!(롬1:13-16) (0) | 2022.02.02 |
---|---|
《제3강》 바울의 감사(롬1:8-12) (0) | 2022.02.02 |
《제1강》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롬1:1) (0) | 2022.02.02 |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눅 13:6-9) (0) | 2022.02.02 |
기쁨, 관용, 간구 그리고 평강! (빌 4:4-7) (0) | 2022.02.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