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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말! (잠 15:1-4)

by 【고동엽】 2022. 1. 26.

가장 좋은 말! (잠 15:1-4)

 

사람은 유독 말을 가진 존재입니다. 말을 통해서 서로 의사를 전달하고 생각을 교환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고 수준이고 인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말은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 있습니다. 뜻도 없고 값도 없고 내용도 없는 말이 있습니다. 가끔 우리들이 대화를 하다 보면 아무 뜻도 없고 의미도 없는 그런 대화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말들을 우리는 수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말은 참 값이 있는 말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아픈 마음을 고쳐 주는 그런 말도 있습니다. 상처를 입은 마음을 고쳐주고 싸매 주기도 하고 위로를 주는 그런 말입니다.
본문을 보면 "온량한 혀"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그 말이 바로 상한 마음을 고쳐 주는 그런 말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온량(溫良)"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는 "마르페"라고 하며 "치료한다"는 뜻입니다. 아닌게 하니라 어떤 말은 아주 짤막한 말이지만 그 말 한마디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 내교, 용기도 주고, 소망도 주고, 결단을 하게 하는 그런 말들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비행기를 몰고 귀순한 이응평이라는 사람은 짤막한 글귀 한 구절에 마음을 먹고 남하했다고 합니다. 그 글귀가 어느 잡지책에 나온 짤막한 광고 구절인데 그것이 "라면에 계란 한 개를 더하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라는 글귀라고 합니다. 베고픈 사람에게 그 글귀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그만 비행기를 몰고 남하하게 만든 것입니다. 말 한마디 글귀 한 절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유순한 말은 분노를 쉬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혜자의 혀는 선을 베풀고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고 했습니다. 또 23절을 보면 "때에 맞는 말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16:24을 보면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양약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들이 구사하고 있는 말과 언어의 위력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반대로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감정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말은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있어서는 평생을 마음에 한을 남기게 되는 그런 말들도 있습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반란을 당해서 시골로 정신 없이 피신을 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황당한 마음으로 쫓겨 갔던지 머리를 풀고 울면서 고무신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초라한 모습으로 유랑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때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 일행을 뒤쫓아 오면서 온갖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저주를 퍼 붓습니다(삼하 16:5).
그때 다윗이 얼마나 수모를 당하고 창피를 당했던지 곁에 있던 신하가 말합니다. "저 놈의 목을 칠까요." 그때 다윗이 말합니다. "가만 두어라. 하나님이 저 입을 통해서 나를 저주하시느니라."
다윗은 그 순간을 잘 넘겼지만 두고 두고 그 말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한이 되어 기억에 남습니다.
나중에 반란이 진압이 되고 다윗이 다시 궁궐로 환궁을 합니다. 그때 그 시므이라는 자가 다시 나타나서 다윗에게 용서를 빕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일 먼저 영접 나왔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삼하 19:19-20)." 그러니 얼마나 그가 미웠겠습니까? 그때 곁에 있던 신하들이 말합니다. "저 놈의 목을 칠까요?" "가만 둬라." 그리고 그 시므이에게 약속합니다.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보면 다윗은 대장부입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이 언제까지나 그렇게 바다와 같이 넓기만 합니까? 아닙니다. 그 한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임종이 가까웠을 때 신변 정리를 하면서 소로몬을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저자 나를 지독하게 저주했느니라. 너는 저에게 어떻게 행해야 할지 아느니라. 저를 음부로 내려가게 하라(왕상 2:8)" 솔로몬이 그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솔로몬은 다윗이 죽은 후에 법을 어긴 시므이를 처형합니다(46절).
천하 대장부 다윗도 그 말 한마디를 소화해 내지 못하고 마음에 품고 있다가 결국에 가서는 원수를 갚고 맙니다.
여러분, 이 말 한마디가 문제입니다. 갈등이 있는 곳을 보십시오. 거기 보면 그 갈등이 원인이 모두 이 말에서 기인됩니다. 이 말 한마디에서 모든 갈등이 유발됩니다. 고부간의 갈등도 보면 이 말 한마디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이웃과의 갈등도 말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이 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순한 말은 분노를 쉬게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선을 말하느니라.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

성경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뱀같이 지혜로워라"는 것입니다. 뱀에게는 세 가지의 지혜로움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뱀은 지나가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표가 나질 않습니다. 분명히 뱀이 지나갔는데 보면 흔적이 없습니다. 두 번째는 뱀이 어디를 지나가도 그곳에는 피해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에도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또 세 번째는 뱀이 지나갈 때는 소리가 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뱀은 아주 조용하게 지나가 버립니다. 거기에 잡음이 없습니다. 소음이 없습니다. 전혀 피해가 없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동물입니까?
거기에 비하면 사람은 너무나 요란합니다 너무 시끄럽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나가기만 해도 부작용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앉았다 일어나기만 해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당부하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말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기쁨을 주는 말들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말 중에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말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 말은 세 마디의 단어들인데 이 세 마디만 잘 사용하면 사람들을 아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네가 좋아라는 말입니다.

 

이 짤막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그렇게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한다고 합니다. "나는 네가 좋아." 얼마나 정답고 친근한 말입니까? 사무엘상 20장을 보면 거기에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나단은 사울왕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의 적입니다. 다윗이 백성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게 되니까 위협을 느낀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줍니다. "나느 네가 좋아. 하나님이 우리의 우정을 자손대에까지 지켜 주실꺼야"(삼상 20:42) 하고 다윗을 격려해 줍니다. "너는 장차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이고 나는 네 다음이 될거야"(23:17).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낙심도 하고 수세에 몰릴 때마다 요나단이 나타나서 다윗에게 이런 말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난 네가 좋아." 그때마다 다윗은 그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삭이고 용기를 얻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유순한 대답은 모든 노를 쉬게 한다고 했습니다.
언젠가 병원 심방을 갔는데 어떤 할머니가 입원을 했습니다. 며느리가 지성으로 곁에서 간호를 하고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며느리 미안해서 죽겠어요. 나 때문에 며느리가 참 고생을 많이 해요"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바로 "나는 며느리가 참 좋아요"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곁에 있던 며느리가 "어머니는 참 당연한 일을 가지고 괜히 미안해 하신다"고 그럽니다. 그 말도 속 뜻을 보면 "나도 어머니가 좋아요." 그런 뜻이 들어 있습니다.
얼마나 정감 넘치는 좋은 대화입니까? 이런 대화들이 적당하게 사용되고 자주 오고 가면 이 세상에 문제될 일은 없습니다. 거기에 무슨 갈등의 요인이 끼어들겠습니까?
"나는 네가 좋아." 참 좋은 말입니다. 많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네가 필요해라는 말입니다.

 

이 짝막한 대화 한마디가 또 사람을 그렇게 감격하게 합니다.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며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사람은 그렇게 인정받고 살아가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때가 다 되어서 후계자를 선정하는데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밭에서 소에 멍에를 씌워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밭 갈고 있는 엘리사에게 엘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 속에는 "너는 내게 필요하니 나를 따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엘리사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엘리야를 따라 나섭니다. 이 말이 그렇게 위력이 있습니다.
또 베드로 형제와 요한 형제가 고기를 잡고 있던 갈릴리 바다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나를 따르라. 이제 너희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그럽니다. 그 말씀 속에는 "내 일에 너희들이 필요하다. 그러니 너희들은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때 이 두 형제들이 배와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사람으로 하여금 힘이 되게 하는 말씀입니까?
또 에스더서를 보면 유대인 모르드개가 민족적인 위기가 왔을 때 왕후 에스더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우리 민족이 가장 큰 시련을 맞이하였다. 그러니 네가 왕께 나아가서 백성의 위기를 호소해서 이 백성을 구원하라. 지금 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네 힘이 필요하다." 얼마나 절박한 순간입니까?
"(에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
"지금 민족이 위기를 당하고 있는데 이 민족이 위기에서 구원받는 데는 바로 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그 한마디 말에 위험을 무릅쓰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왕께 나아가서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다급하게 탄원을 합니다. 이 말은 참 마력이 들어 있는 그런 말입니다.
또 디모데후서 4:9-11을 보면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런 편지를 씁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가 버렸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가 버렸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가버렸고, 지금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내게 필요하니라." 얼마나 정다운 말입니까?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그 말은 "지금 네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내게 필요하니라." 세상에는 필요한 사람이 있고 필요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그래서 승승 장구하고, 필요없는 사람은 자꾸만 도태되고 맙니다. "네가 필요해." 이 말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그런 말입니다.

 

셋째는 친구 되어 줘라는 말입니다.

 

이 간단한 말 한마디 속에 신뢰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 말 속에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친구 되어 달라는 말 속에는 전폭적인 신뢰를 담은 그런 말입니다.
창세기 21:22을 보면 아브라함과 그랄 땅의 추장 아비멜렉 사이에 나누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서 그랄이라고 하는 남방 땅에 와서 기거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비멜렉이라는 추장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내가 너를 오랫동안 살펴보니까 악한 사람 같지 않으니 우리 친구 하자" 그럽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넓은 땅을 거주지로 내 줍니다.
그 남방 땅은 아브라함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방인의 땅입니다. 그런데도 와서 친구 하자고 할 때는 거기에 그만한 신뢰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타향에서 살면서 상대방에게 이와 같은 신뢰를 쌓고 살면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9장을 보면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 삭개오에게 "어서 내려오라. 내가 오늘밤에 네 집에 가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 한마디에 삭개오는 그만 감격합니다. 그리고 그 인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내놓겠다고 선언합니다.
"오늘밤에 내가 네 집에 가겠다."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 말은 "내가 네 친구가 되어 주겠다"는 말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삭개오가 그렇게 감격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 안에서 좀 고급스런 삶을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나누는 것도 필요하고 함께 울어 주는 것도 필요하고 함께 희생하는 것도 필요한데 그것보다도 더 쉬운 일부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말 한마디로써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행하게 하고,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지혜부터 터득하는 일입니다.
아니게 아니라 말을 전혀 생각 없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말들을 마구 쏟아 놓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끼치게 하고 아픔을 주고 상처를 입히고 그럽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인격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또 신앙에도 문제가 있고,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해서 한 번 마음에 금이 가면 세월이 가도 아물지 않습니다. 원상으로 회복이 안 됩니다. 오래오래 상처로 마음속에 새겨져 남습니다.
"네가 좋아. 네가 필요해. 친구 되어 줘." 얼마나 정감 넘치는 말입니까? 이 세 마디면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모든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그런 묘약이 되는 말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온량한 말은 사람을 치료한다"고 했습니다. 이 짤막한 말들로 여러분 자신도 행복해지고, 이웃도 함께 행복하게 해주고 또 병든 마음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그런 축복의 삶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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