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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삶을 떠나다5

by 【고동엽】 2021. 10. 2.
기독교, 삶을 떠나다
4. 아타나시우스, 성서 정립하다
오늘날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그러한 행동을 유발한 신학 오류는 2 가지로 모아집니다.
1. 하나님이 세계를 그리스도인만을 통해서 섭리하신다고 생각합니다.
2. 믿음이 삶 중심성을 잃어버렸습니다.
1 번으로인해 기독교가 패쇄되고, 공격하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구원관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구원이란 무엇인가에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세계 구원을 위해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선택 백성 삼으셨습니다. 그 선택이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에게 계승됩니다.
선택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 뜻을 따르지 못할 때 선지자들이 하나님 뜻을 대언합니다.
특히 포로기에 활동한 제 2 이사야(이사40-55장)는 하나님 의가 어떻게 실현되어가는가와 인류를 구원하실 고난받는 그리스도가 오심을 예언했습니다.
기독교 바른 길을 위해서 제 2 이사야와 같이 인간 가치체계와 다른 하나님 의를 증언한 3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 아타나시우스, 루터 입니다. 기독교 정신사에 3 번 기적이 일어납니다.
1. 바울이 그리스도인 체포를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는 중에 특별히 부름받습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직계 제자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하나님 은혜로 이루는 화해 - 평화를 봅니다.
2.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 철학 중심 신학 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지혜자 중 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서 우리가 예배해야할 분으로 증언합니다. 또한 하나님 의가 어떻게 실현되어가는가를 증언한 바울을 재 발견하고 4 복음서와 바울 서신 중심으로 성서를 정립합니다.
3. 루터는 천 여년 동안 잊혀진 바울을 재 발견하여 하나님 의를 일깨웁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이 증언한 화해 - 평화는 볼 수 없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295 -373)
295 년에 그리스어 사용하는 이방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리라 추정합니다. 319 년 년 경에 오늘날 이집트인 알렉산드리아 부제副祭로 임명됩니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제국 수도를 오늘날 터키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로 옮겼기 때문에 교회 중심이 서방 교회에서 동방교회로 옮겨졌습니다. 이곳에서 첫 신조인 니케아 신조가(325) 아타나시우스 주도로 작성됩니다. 여기에서 아리우스와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 하는 격렬한 기독론 논쟁이 일어납니다.
아타나시우는, 예수께서 하나님과 동일본질(Homoousion) 즉 예수께서 신이라 합니다.
아라우스는, 예수께서 하나님과 유사본질(Homoiousian) 즉 신은 아니고 지혜자라 합니다.(*1)
아타나시우스는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목숨 건 지난한 투쟁을 합니다. 아리우스가 알렉산드리아 주교가 되자 황제도 그를 탄압했습니다. 다섯 번이나 면직과 추방, 유배 생활했습니다.
아타나시우스가 3 번째 피신한 곳은 이집트 사막에 있는 파코미우스 수도원 입니다.
아리우스파가 보낸 300 명 시리아 군대에 의해 교회에 시체가 즐비한 가운데 가까스로 수도원으로 피신했습니다.
군인들이 아타나시우스 숨겨준 수도사들을 처형하기 시작하자 700 여 명 수도사들이 흰 가운입고, 길게 줄 서서 목 내밀고 차례를 기다리자 군인들이 철수했습니다.
빈 수조에 숨어 살다가 노예 배신으로 발각될 위기를 모면한 아타나시우스는, 혼자
도시에 사는 미모 20 대 성 매매 여인 집을 찾아가, 하늘 계시로 이곳을 찾아왔다며 숨겨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여인 집에서 1 년 여를 살고, 그후 6 년 여 추방 생활 동안 이 여인 도움받습니다.
362 년 황제 율리아누스가 죽자 그 후임 황제 요비아누스 명에 의해 교구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아리우스주의자인 발렌스가 즉위하자 다시 추방됩니다.
아타나시우스는 누구도 무릎 꿀릴 수 없는 용기, 미래를 보는 통찰, 민첩하고 신비감 일으키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아리우스파 전설에는 그가 마법사로 나옵니다. 적대자들에겐 그가 마법 부리는 사람으로 오해받았습니다. 그가 끈질기게 살아남는 역정을 무섭게 여겼기 때문 입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자신이 지키고자한 진리를 위해 20 여년 간 유배 생활을 이겨냈습니다.
아타나시우스와 아라우스 논쟁은 기독교 심장에 해당하는 논쟁 입니다.(*2)
아타나시우스 기독론은 당시 시대 흐름이었던 헬레니즘 물결에 대한 저항 입니다.
헬레니즘 계열들은,
1.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하급 서열에 위치한 존재로서 지혜자라는 주장과(신성 부정),
2. 그리스도가 실재 인간이 아니라 외형상으로만 인간이라는 가현설 입니다.(인성 부정)
아타나시우스는 예수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이심을 니케아 신조를 통해 천명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366 년 2 월 1 일 새 황제 발렌티아누스 1 세에 의해 주교직으로 복귀합니다.
다음해인 367 년 부활절 예배에서 오늘날 성서인 신약성서 27 권을 선정하여 발표합니다. 이 성서가 서방교회에서는 393 년 히포 레기우스에서와 397 년 카르타고에서 정경으로 인준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3)
신약성서는 52 년 경부터 바울서신이 기록되고 70 년 경에 3 복음서, 100 년 경에 요한 복음이 기록됩니다. 이 전후로 다른 서신들이 기록되고 여러 서신들과 복음서들이 각각 교회별로 각개로 읽혔으리라 추정합니다.
1. 172 년 경에 4 복음서 체재가 성립됩니다.(디아테사론)
2. 300 년 경에 23 서 체재가 성립됩니다.(무라토리 정경)
3. 367 년 아타나시우스에 의해 오늘날 성서인 27 서가 정립됩니다.
아타나시우스는 교리가 세워질 때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예배할 것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예배 중심 신앙은 특별한 지식을 통해 하나님께 간다는 영지주의를 배격한 것이고,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위대한 지혜자로 보고 그 분 가르침을 가치화하고 이념화하여 갈등 원인이 되는 것을 막은 행위 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간 확실한 경계를 세움으로써 인간이 신과 같이 무한한 힘이 있다는 사유가 얼마나 위험한지, 고대 세계에서 벌써 간파했습니다.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긴 히틀러와 레닌은 자신들이 신을 대신하고자 했습니다.
정경화 작업은, 선박업으로 큰 돈 번 바울 숭배자 마르키온(85 - 160)이 자신들 공동체는, 구약성서는 제외하고 누가복음과 바울서신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고한 선언에 자극받아서 입니다.
그는 이단으로 파문되었는데 그의 막대한 헌금은 교황청이 돌려주었습니다. 그래도 고대인들이 순수합니다.
아타나시우스는 바울서신이 성서가 되게 했습니다. 바울 서신이 성서가 되게 한 사실은 기독교사에서 아찔할 정도로 중요한 사실 입니다.
이때 외경으로 제외한 주옥 같은 서신들은 인간 의인 선善과 인간 공로가 강조된 글 입니다.
바울 서신은 인간 한계를 절감하고 하나님 은혜를 강조한 글 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강조함으로써 교만을 떨쳐내고 화해 - 평화를 이루어 갑니다.(엡2:9) 또한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예수그리스도에게서 화해 - 평화를 보았습니다.
바울이 기독교를 설립했다고 하거나, 예수그리스도와는 다른 길 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루터식 바울 읽기를 정설로 간주하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입니다. 바울에 대한 연구가 짧은 사람들 소견 입니다.
바울은 교회 권력으로나 신학으로나 한 번도 예나지금이나 중심부에 있지 못하고 항상 변두리 입니다.
오직 성서에서만 바울이 중심 입니디.
역사에 만일이 없다고하지만, 아타나시우스가 굴복했거나 일찍 죽었다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같은 류의 또 하나 종교가 되었을 겁니다.
기독교이외 모든 종교는 나 하나 몸 변화를 통해 구원에 이르고자하는 종교 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 은혜로 내가 하나님이 세상을 화해 - 평화로 이끄는데 참여함으로써 구원받는 종교 입니다.
기독교가 2 세기 신학 출발부터 이점을 잃어버렸다는 게 필자 주장 입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성서 바깥 신학자들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그리스 철학 등 세계 모든 사상으로부터 기독교를 지켜낸 최초 사람 입니다.
그러나 성서가 정립되고난 후 16 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 기독교는 성서를 외면하고 철학 늪으로 들어갑니다.
이때부터 관념(개념)신학은 성서와는 반대로 지배자와 기득권층에 봉사하는 신학이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일으키신 자유와 평화에서 다시 굴종시대로 들어갔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법을 빌미로 민중 억압하는 이스라엘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자유와 평화를 주셨습니다.(마태23:1-7)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지배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합니다.(마태23:4 참조)
기독교는 다시 관념(이념) 신학을 빌미로 지배자와 기득권 층에 봉사하며 민중을 억압하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때를 포함해서, 오늘날 우리는 아직도 성서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가정에 평화가 !
1. 프리스 크레취마르 신학의 고전 정지련 대한기독교서회 서울 2008, 57p
2. 필립 샤프 니케아 시대의 이후의 기독교 이길상 크리스챤다이제스트 서울 2004, 568p
3. 박창환 신약성경의 형성사 한들출펀사 서울 2912, 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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