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속에 담긴 은혜/고린도후서 12:7-10
사람은 누구나 다 가시가 있습니다. 가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나에게 고통을 주는 가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몸에서 떠나지 않는 육체의 가시가 있습니다. 간질, 안질, 두통, 관절 등 많은 질병의 가시들이 찌르는 아픔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어떤 분은 가난, 가정의 불화, 자녀문제 등의 많은 가시가 자기를 찌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분은 남편이 가시가 되고, 부인이 가시가 되어서 일생을 찌르고, 어떤 부모는 자식이 평생의 가시가 되어 찌르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가 가시가 되기도 하고, 목사들은 가시와 같은 교인이 있어서 평생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일평생 살면서 가시가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위대한 사도인 바울에게도 남모르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7절)
사도 바울을 일생동안 찌른 가시가 뭘까요? 그 육체의 가시에 대하여 칼빈은 바울 자신이 받았던 영적인 유혹이나, 의심, 가책, 갈등 같은 것이었다고 해석했고, 마르틴 루터는 사도 바울이 받았던 핍박이나, 외적인 환난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또 교부 터툴리안은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안질이나, 두통, 몸에 안고 있는 질병이었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터툴리안의 해석이 통론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울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육체적인 고질병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가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은 것이지만 사람들에게 고통과 불편을 줍니다. 남의 병은 고쳤으나 자신의 병은 못 고치고, 신적인 권능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은총을 베풀었으나 자기의 병은 고치지 못하고 일생동안 간직한 바울의 아픔을 여기에서 가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가시들은 우리들에게도 많이 있습니다. 외적으로 넉넉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몸의 허약함, 가정의 문제, 여러 가지 말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가시는 개인적인 것 뿐만 아니라 민족적인 가시도 있습니다. 민수기 33장 55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 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민 33:55)라고 했습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어떤 사람도 찌르는 가시가 있습니다.
가시를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받을 때 사도 바울은 세 가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첫째, 자고하지 않고 겸손해지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육체를 직접 찌르는 것은 사단의 사자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 일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고통의 가시가 있을 때 그 가시를 원망하거나 불행으로 저주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 고통이 휘몰아칠 때 고통을 저주로, 인생의 큰 불행으로 받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표현할 수 없는 육체의 고통이 자신을 찌를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 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7절)
‘너무 자고하지 않게 했다’는 말은 스스로 교만하지 않도록, 다른말로 말하면 겸손하라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이 너무 컸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 12:2-4)
사도 바울은 삼층천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신비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기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몸도 건강하고 은혜도 풍성해서 영육간에 완전할 때 안하무인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에게 찌르는 가시를 주어서 겸손하게 했습니다. 남의 병은 고치면서 자기 병을 고치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알게 했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 올라갔지만 땅에 있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게 했던 것입니다.
‘나를 자고하지 않게 했다’ 사도 바울은 ‘네가 너무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영적으로 교만해지고, 안하무인이 되고, 모든 사람을 무시할까봐 너에게 찌르는 가시를 주어서 너로 하여금 겸손하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아가 너무 강했습니다. 믿기 전에는 율법의 의로 흠이 없을 정도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의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가 요한이 저지른 한번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고 자기 선배요, 멘토인 바나바를 끝까지 결별할 정도로 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교만한 조건이 많았습니다. 그는 대신학자요, 흠이 없는 의인이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자였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교만할 조건은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족보를 말할 때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 3:5-6)라고 했습니다.
그는 가문으로 보나, 학문으로 보나, 신비한 경험으로 보나 감히 아무도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시를 주어서 그로 하여금 겸손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받으면 그것을 은혜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해집니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그 머리 때문에 교만해서 안하무인이 됩니다. 또 인물이 잘난 여자는 부모 덕분에 잘난 것인데 자기가 무슨 대단한 여자인줄 알고 남을 얕잡아 보고 못생긴 것을 비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편 잘 만났다고 남편 자랑, 자식 자랑, 사위 자랑 많이 합니다. 물론 한번 정도 자랑하는 것은 괜찮지만 앉을 때마다 자랑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디에서 교만병이 들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가시는 하나님께서 바울이 교만해지는 위험을 막아주는 유일한 처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가 교만해질 때 가시로 다스릴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겸손하게 하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희 교인 가운데 어떤 분이 젊어서 사업이 흥청거릴 정도로 흥할 때 목이 곧고 뻣뻣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말도 잘 듣지 않고 교만했습니다. 그런데 IMF로 말미암아 사업이 부도나고 가정은 파산되어서 가족들이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분은 교도소에 가게 되었는데 이 분이 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목사님, 이제 내가 사람 되어가기 시작합니다. 전날에 돈 잘 벌고 사업 잘 될 때 교만해서 목사님 말도 안듣고, 교회도 잘 안나가고, 십일조도 제대로 안바치고 거들먹거리다가 부도가 나서 교도소에 왔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손 쓰셔서 제가 사람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 교도소를 천국의 별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날마다 성경을 눈물로 적십니다.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별세되고 있습니다. 목사님 기뻐해주십시오. 제가 나가는 날 목사님의 동역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손 잘 썼다.”
하루는 목사같이 생긴 어떤 사람이 자기 방에 들어오더랍니다. 그러면서 붉은 책을 내밀더니 “이 책을 아느냐”고 묻더랍니다. 그러면서 “이 책을 쓰신 분이 이중표 목사라는 분인데 참 훌륭한 분입니다. 이 책을 읽고 감동과 눈물을 안흘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이 책을 읽고 회개했습니다.” 하더랍니다. 이 분이 자기 교회 목사니까 아는 체 해도 되는데 모르는 체 하고 듣고 있었더니 아주 열변을 토하더랍니다. “교도소를 나가는 날 당신도 이 책을 읽고 그 목사님을 만나시오.” 가만히 듣고 있다가 끝나는 시간에 “우리 교회 목사입니다.” 했더니 “그런데 당신은 왜 교도소에 왔소.”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 말 안듣고 까불다가 왔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교만해지면 하나님께서 손 씁니다. 저도 교만해서 하나님께서 손을 많이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손 쓰면 사정없이 쓰니까 항상 조심해야 됩니다.
둘째, 족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한번의 큰 은혜를 그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8절)
‘은혜를 족하게 주려고...’ 자기에게 어떤 가시가 찌를 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족한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을 그가 알았습니다.
어떤 가시가 찌르고 있습니까 그 가시가 찌를 때마다 아프면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사람을 원망하거나, 부모를 원망하거나, 형제를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가시를 바꾸어 주시는데 가시가 찌를 때 하늘의 능력을 입힐 것이며, 그 가시를 면류관으로 바꿀 것이며, 가시가 찌를 때 그의 눈에서 나오는 찬란한 눈물을 통해서 천국 가는 길이 확 열릴 것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기도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그대로 들어주시든지 아니면 그 기도를 거절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알았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세 번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이나 간구했으나 하나님은 그 가시를 제거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족한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약할 때 기도해야 됩니다. 아무리 믿음 좋은 사람도 가시가 찔리면 고통 가운데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픔의 탄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됩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크고 오묘한 비밀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가시 때문에 약해졌으나 그 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강하게 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9-10절)
자기 자신을 살펴볼 때 어떤 약함 때문에 탄식하십니까 어떤 상처 때문에 아파하십니까 어떤 약점 때문에 부끄러워 하십니까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십시오. 혼자 가지고 있는 한 평생 약점이 됩니다. 혼자 괴로워하는 한 평생 상처가 됩니다. 혼자 가지고 있는 한 아무도 치료하지 않는 아픔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큰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유명한 웟치만니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중국의 대성서 학자요, 순교자입니다. 그는 너무 너무 큰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런데 그 몸에 떠나지 않는 병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금식하고 철야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그러나 그 병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고통 중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던 어느날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지나가는데 바윗돌이 자기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래서 배가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주여, 이 바윗돌을 옮겨 주시옵소서. 그래야 이 배가 지나가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웟치만니야, 이 바윗돌을 옮겨주랴 아니면 강물이 넘쳐서 넘어가게 하랴” “오 주여, 강물이 넘쳐서 넘어가는 것이 편하옵니다.” 강물이 넘쳐 지나가고 꿈을 깼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잠잠히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주여, 내 속에 있는 바윗돌과 같은 가시를 빼 주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은혜로 넘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넘치게 주시면 분명히 내게 있는 환난이나, 역경이나, 곤고나, 어떤 시련도 능히 넘어갈 것을 믿습니다. 주여, 이 종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기도하고 그는 평생을 그 은혜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제거해 주시면 좋거니와 제거해 주지 않을 때는 은혜를 더 받아서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으로 충만케 해야 합니다.
역사에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국의 요한 웨슬레는 훌륭한 어머니의 신앙으로 자라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부인을 자기 어머니와 정 반대되는 거칠고 사나운 여자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사나운 여자인지 날마다 바가지를 긁고 심지어는 남편을 때리기까지 해서 옆에 있는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부인이 가시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가시같은 부인의 찌르는 아픔을 통하여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부인 때문에 집안에 있을 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평생 4만 2천번 설교를 했는데 매일 50, 60마일을 말타고 여행을 하면서 매일 세 번씩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80세까지 살아서 영국을 복음화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가시같은 부인을 만났지만 그것을 은혜로 바꾸어서 결국은 대전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가시가 있을 때 가시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전진하십시오. 가까이 가십시오.
18세기 영국의 존 하워드라는 사회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젊은 날에 잃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은 불량배가 되어서 감옥을 이웃집 드나들 듯 했습니다. 그 아들을 면회하러 갔다가 감옥의 모든 환경이 열악한 것을 보고 자선사업을 형무소를 개량하는 자선사업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때문에 형무소에 가다가 그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드디어 그는 영국의 위대한 사회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찌르는 가시를 족한 은혜로 바꾸어야 합니다. 가시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 기적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찔리는 가시가 있을 때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셋째, 약한 것들을 자랑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9절)
여기 분명히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랑거리를 만들어야 됩니다.
자랑거리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내게 있는 장점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것도 못됩니다. 내가 인물이 잘났다든지,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했다든지, 돈을 많이 가졌다든지, 옷을 잘 입었다든지, 자식이 잘났다든지, 이런 것은 잠깐은 자랑할 수 있을지 모르나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허무한 것이며 이런 자랑은 다른 사람들의 시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다른 사람이 언제 그 자랑 때문에 상처를 입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랑은 오히려 삼가 조심해야 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여기 고백한대로 약한 것을 자랑해야 됩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
사도 바울이 전에는 강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다”(빌 3:4)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하여 육체적인 자랑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것이 다 쓸데없는 자랑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약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랑했습니다. ‘나는 약한데 하나님은 강했고, 나는 부족한데 하나님은 은혜가 충만했고, 나는 하나님을 배신했으나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이것을 자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자랑거리가 많아지기 바랍니다. 그 자랑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수많은 사람들을 주 앞으로 인도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며 희망을 주는 것어야 합니다. ‘저렇게 약한 자가 저렇게 은혜를 입다니, 저렇게 병든 자가 큰 일을 하다니, 저렇게 세상에서 천하게 태어난 자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자가 되었다니...’ 이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이런 자랑을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놀라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저의 지나온 일생을 회고할 때 꼭 필요한 사진이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출판사에서 제 전기를 만드는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까 가난한 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가난한 집에서 찍은 사진이 부끄러워서 그것을 내버렸습니다. 내가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산 것이 창피해서 내버렸습니다. 또 내가 병들어서 몰골이 초췌했을 때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보기가 싫어서 그것도 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사진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가난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비록 병들어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되었다’라는 사실을 만방에 증거해야 되겠는데 그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인물이 좋았을 때 찍은 것을 자랑합니다. 부자 집에 태어난 것을 자랑하고, 어렸을 때 호화스럽게 살았다는 것을 자랑하는데 이런 자랑 가지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축복했다’는 자랑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며칠 전 놀라운 책을 하나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이상근 목사님이십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 가서 목회하면서 이상근 목사님에게 편지를 띄웠습니다. 그는 대학자요, 위대한 목회자요, 훌륭한 인격자였기 때문에 편지를 띄웠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을 가장 감동시킨 책이 뭡니까?” 그랬더니 가장 감동을 받은 책을 영문으로 적어서 보내주셨습니다.
이 분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셨는데 이 분의 아들 이성희 목사님이 “내가 본 아버지”라는 회고담을 썼습니다. 이상근 목사님이 16살 때 발에 병이 났습니다. 그래서 대구 달성공원 느티나무에서 40일동안 작정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병은 낫지를 않고 더 짙어만 갔습니다. 3년동안 출입을 못하니까 학교에 갈 나이에 학교도 못가고 집안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한방약을 붙인 것이 덧나가지고 그만 대학 진학도 못하고 검정고시로 입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바깥 출입을 못하니까 집안에서 성경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때 방안에서 3년동안 열심히 성경만 읽은 것이 후에 성서 대학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60년동안 발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1993년 그가 은퇴하면서 존경하는 외과 의사의 권유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발 뒤꿈치에서 1cm의 머리카락 굵기의 철사가 나온 것입니다. 어렸을 때 맨발로 다니다가 철사에 찔린 것이 속에 들어가서 그의 평생 가시가 된 것입니다. 이 분이 발 수술을 받은 후 철사를 들고 “이 철사가 나의 가시가 되어 60년동안 나를 찔렀으나 내가 대성서 학자가 되게 한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무슨 가시가 있습니까? 그 가시를 원망하지 말고 그 가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그러면 주님을 찔렀던 가시관이 찬란한 면류관이 되듯이 하늘의 면류관으로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조개에서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신비한 교훈을 줍니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바닷물이 철렁거리면서 모래가 하나 속으로 들어갑니다. 거친 모래가 들어가면 조개는 아프니까 진액을 내서 감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월이 지나면 그것이 바로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날카로운 모래일수록 진주가 더 강하고 빛나는 진주가 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어떤 시련의 모래알이 나를 괴롭히고 찌를 때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은혜로 감싸고 또 감싸서 내 생을 찬란하게 빛나게 하는 진주빛 나는 아름다운 생애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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