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차 케리그마신학세미나 (2010. 1. 14)
칼바르트, 칼 바르트 학회(공역), [말씀과 신학] 칼 바르트 논문집I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5)
1. 성서 안에 있는 새로운 세계(오영석 역)
바르트는 “성서 안에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해 보자고 제안한다.
그는 “우리는 성서에서 언제나 우리가 찾는 만큼 발견할 것이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위대한 것을, 신적인 것을 찾을 때, 위대한 것과 신적인 것을 찾는다. 우리가 무가치한 것을, 역사적인 것을 찾을 때, 그것을 찾는다. 우리가 아무것도 찾지 않으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10-11)
그리고 우리가 주로 하게 되는 “성서 안에 무엇이 있는가?라는 물음은 너는 무엇을 찾는가? 그렇게 묻는 너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바꾸어진다.”고 그는 말한다.
바르트는 “성서 안에 한 새로운 세계, 하나님의 세계가 있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성서의 내용을 더 깊이 파악하려면, 우리 자신을 훨씬 초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1)
그는 “성서는 인간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해석한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자신을 초월하여 최고의 대답을 붙잡기 위하여 성서에 있는 이 충동을, 이 영을, 이 강을 감히 따라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이 모험이 믿음이다. 우리가 성서를 바르게 읽을 때는....믿음 안에서 읽을 때인 것이다. 우리가 그럴 자격이 없지만 최고의 것을 모험하고 그것을 붙잡으라는 초대는 성서에 있는 은총이다. 성서 안에서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와 만나고, 우리를 이끌고 성장하게 할 때, 성서는 우리에게 바르게 열린다.”고 말한다.(12)
성서에는 역사가 있다. 그러나 바르트는 “성서는 그 역사의 결정적인 곳에서 우리의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13)
그는 “성서는 우리의 지적인 호기심을 자아내는 “왜”에 대하여 스핑크스처럼 “그렇기 때문”이라는 이유로써도 변호사처럼 수천 가지의 이유와 연역·비교들로써 대답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서는 하나님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하나님이 살아 있고, 말씀하시고, 행동하시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이란 역사가 일어난다.”(14)
바르트는 “우리는 성서적인 역사를 통해서 보통 역사라고 부르는 것을 훨씬 넘어서 새로운 세계 안으로, 하나님의 세계 안으로 이끌려 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고 말하면서 성서적인 역사의 의미를 정의한다.(15)
성서에는 도덕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바르트는 “어떤 결정적인 점에서 성서는 우리의 선과 악의 개념에 대하여 놀랍게도 무관심함으로써 우리를 놀라게 한다.” 또한 “성서에는 도덕의 수많은 측면들에서 자료들이 부족하다....경제생활, 결혼, 문화, 국가생활에 관련된 어려운 문제들을 위한 가르침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고 본다.(16)
그는 “우리는 성서 안에서 시작하는 이 “다른” 새로운 세계 앞에 선다.”고 말하면서 “성서에는 인간의 행동이 주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동이 주된 일이다....성서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을 전개하고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 하나님이 이해하는 사랑이 거기에 있고, 흘러나온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17)
바르트는 “우리가 성서를 주의하여 읽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를 결단해야 하는 지점을 향하여 성서는 우리를 이끈다. 그것이 성서 안에 있는 새로운 세계다.”라고 말하면서 성서의 목적을 앞에서와 같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18)
성서는 종교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그는 “우리가 그렇게 원한다면, 성서 안에 모든 종교들이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자세히 본다면, 종교는 없다. 다만 “다른” 새로운 더 위대한 세계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19)
바르트는 “성서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바른 생각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바른 생각이다. 성서는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말해야 하는가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하는가를 말한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을 발견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가 우리에게 오는 길을 추구했고 발견했는냐는 성서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이루어야 할 바른 관계가 아니라, 그가 믿음 안에서 아브라함의 자녀인 모든 사람들과 맺은 계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일회적으로 날인한 계약이 성서 안에 있다. 성서 안에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서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20)
그리고 그는 “성서 안에 있는 것은 새로운 세계다.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다.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다. 인간의 덕이 아니라, 그의 놀라운 사랑으로 부른 하나님의 덕이었다. 인간의 출발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출발점이 성서 안에 있다.”고 말한다.(21-22)
바르트는 “하나님은 누구인가? 이에 대한 우리의 부적절한 대답은 우리가 새로운 세계의 열린 문으로 가는 길 위 그 어디에서 멈춰있는 것에서 나온다. 우리의 짧은 대답은 성서로 하여금 솔직하게 우리에게 말하게 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에서 나온다. 우리가 어디에선가 바르게 믿으려고 하지 않으려는 때, 그러한 대답이 나온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이제 최고의 대답을 추구한다면, 우리가 성서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면, 하늘의 음성에 순종한 바울과 함께 모험한다면, 하나님은 존재하는 그대로 우리 앞에 선다. “네가 믿는다면 너는 받으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한다.(24)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바르트는 성서를 우리의 어떤 필요와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성서를 통해 우리가 어떠한가를 발견하고 하나님이 성서를 통해 보여주시는 새로운 세계, 곧 하나님의 세계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새로운 세계에 대하여 바르트는 “파멸을 피하는 작은 양떼를 위하여 준비된 구원얻은 자들의 나라”나 “축복된 피안이고 믿는 자를 언제나 받아들일 평화로운, 고요한 영원”만이 아니라고 말한다.(22-23) 그는 “이곳과 피안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며, 하늘의 아버지는 “죄와 슬픔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과제를....생명과 부활의 능력으로써...그리스도 안에서...그의 말씀을 육이 되게” 하셔서 “시간을 위하여 영원을, 이미 시간 안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신다고 말한다(24-25).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는 “길잃은 인류와 악령들과 악한 세력들에 의해 지배된 인류의 구속자다. 그는 우리를 에워싼 탄식하는 피조물들의 구속자다.”라고 말하며(25), 성령은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창조하는 분”으로 “성령은 다만 진리 자체만을 존중”하며, “세계의 불의 한복판에서 하늘의 정의를 세우고, 모든 죽은 자들이 살게 되고, 새로운 세계가 존재할 때까지 멈추거나 쉬지 않는다.”(25-26)고 말함으로 새로운 세계,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이원론적인 신학을 극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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