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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설교 : 사 52:7-10 / 메시아와 하나님 나라./ 김동호 목사

by 【고동엽】 2021.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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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와 하나님 나라.
사 52: 7-10.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엿새 동안 힘써 천지만물을 창조하시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루를 쉬셔야 하리만큼 최선을 다하신 창조였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인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 만물을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하셨다기 보다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이 자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사랑하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당신의 존재목적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목적은 우리 인간입니다.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과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사건을 통하여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창조의 목적도 우리 인간이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는 것의 목적도 우리 인간이고,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목적도 우리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목적인 우리 인간이듯,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목적이 하나님이시기를 원하십니다. 먹어도 주를 위하여 먹고, 마셔도 주를 위하여 마시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와 같은 관계를 우리는 쉬운 말로 사랑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마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세상에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사랑입니다. 세상에 사랑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사랑은 서로를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존재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그와 같은 마음을 자연적으로 가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사랑이 식으면 점점 이기적이 됩니다. 자기가 목적이 되고, 상대방을 그 목적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삼으려고 하게 됩니다.

사랑은 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은 뜻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고, 뜻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같은 삶의 식, 다시 말해서 같은 삶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가 한 마음 한 뜻이 되고,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서로를 존재의 목적으로 삼아 사랑하게 되면 그곳이 어떤 곳이든지 간에 천국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과 자연을 사랑하게 되면 그 세상은 그 세상이 어떤 곳이든 상관없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가정에 사랑이 있으면 가정이 천국이 되고, 세상에 사랑이 있으면 세상이 천국이 되고, 교회에 사랑이 있으면 교회가 천국이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잃음으로 천국을 잃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삶, 하나님 나라의 삶, 구원 받은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그것만 되 찾으면 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우리 인간들은 천국을 잃고 살아가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엉뚱한 것을 찾으려고 평생을 힘쓰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헛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으로 자신의 존재의미와 목적을 삼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같은 마음과 뜻을 가지고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배반한 우리를 하나님은 버리지 못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죽게 되었을 때부터 하나님은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까지 함으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실 것을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람이 되심과 십자가에 달리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끊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사랑만 회복된다면 지엽적이고 부수적인 모든 세상과 인간의 문제는 자동적으로 다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본 의도와는 다른 왜곡된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들의 삶의 문제들을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에서 찾지 않고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육체적인 것으로 찾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로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 이전에도 이스라엘은 바벨론과 앗수르와 같은 나라들의 침략을 받아 오래 동안 식민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해방을 꿈꾸었듯이 이스라엘도 오랜 식민지 생활을 하면서,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인 해방을 꿈꾸고 바라고 있었으며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와 같은 식민지 생활에서 건져 줄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까지도,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순간까지도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에게서 건져 줄 정치적인 메시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승천하시는 예수님에게 당황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언제입니까?’라고 물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물음에 대하여 그 때와 시기는 너희의 알 바 아니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리고 오직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땅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의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경제적인 메시아로 생각하고 기대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경제적인 문제, 즉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 해 줄 메시아로 오해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황급히 저들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저들이 불쌍하여 먹게 하신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육체적인 질병에서 저들을 건강하게 지켜 줄 메시아로 오해하고 따라 다니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많은 장애인들도 고쳐 주셨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나병 환자(한센씨 병 환자)들이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그와 같은 기적을 눈으로 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도 할 수 있는대로 피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소문이 나는 것을 두려워 하셨습니다. 그래서 병자를 고쳐 주시고도 아무에게도 그와 같은 사실을 이야기 하지 말라고 부탁하시곤 하셨던 것입니다. 왜곡된 메시아관의 전파를 두려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왜곡된 메시아사상과 관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특히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그리고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 때문에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기 보다는, 세상 나라의 회복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와 같은 것을 보장하고 선동하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포로 된 자들에게 해방은 생명과 같은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빵과 물질적인,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적인 안정은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질병으로, 그것도 치료가 매우 힘든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건강을 회복한다는 것은 거의 복음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해방이 되어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고 풍족해 진다고 하여도, 모든 병에서 나음을 입어 건강하게 장수하게 된다고 하여도 그것으로 모든 삶의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포로가 되어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자유를 누린다고 하여서 구원과 행복의 문제가 다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투른 자유가 방종이 되면 자유 없는 포로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하고, 자유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자유인으로 사는 것이 힘들고 피곤하여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합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어 부자가 된다고 하여도,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불행한 부자들은 얼마든지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을 찾기 위하여 주변을 살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중의 많은 분들은 자신을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전화 있으면 부자였습니다. 선풍기가 있으면 부자였습니다. 냉장고가 있으면 부자였습니다. 자가용이 있으면 재벌이었습니다.

경제가 나쁘다고 합니다.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우리 교회의 제일 큰 고민 중의 하나가 바로 주차장 문제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평균적으로 보면 장년 출석 교인 3-4명이 차 한 대씩을 타고 교회로 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옛날 임금보다도 더 많은 문화적인 경제적인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때문에 행복해 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해결되었다고 삶의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건강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지금도 당뇨병으로 고생을 좀 하고 있습니다. 제게 있어서 건강의 가장 큰 문제는 당뇨병입니다. 아직은 치료가 쉽지 않은 병이지만 몇 년 안에 획기적인 치료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있어서 당뇨병의 치료는 제 인생의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당뇨병이 치료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귀한 일이지만, 저는 사람이 아무리 건강하여 무병장수 한다고 하여도 그 자체가 곧 우리 인간의 구원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삼박자 구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한 3서 1장 2절의 말씀인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을 가지고 영적인 구원의 복과 함께 정치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 그리고 육체적인 면의 강건함을 같은 급의 축복으로 이야기 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와 같은 성경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육적인 면에서도 형통하고 강건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저도 영적인 면만 강조하고 육적인 면의 형통과 강건을 부정하거나 심지어는 죄악시까지 하는 금욕주의적인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요한 3서 1장 2절의 말씀과 같이 영적인 면 못지 않게 우리의 육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으로 잘 되고 육체적으로 강건해 지는 것을 영혼이 잘 되는 것과 같은 격으로 놓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격이 다릅니다. 수준이 다른 것입니다.

세상일이 잘 풀리지 않고, 혹시 육체의 질병과 장애가 있다고 하여도 영혼이 잘 되면 그와 같은 핸디캡이 극복이 됩니다. 영혼이 잘 되면 그와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영혼이 잘 되지 않으면 범사가 아무리 잘되고 육체가 아무리 강건하여도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해 지는 것의 한계입니다. 그와 같은 한계를 무시하고 그것을 똑같은 격으로 올려놓고 삼박자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을 하시는 동안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으로 사람들을 먹이기도 하시고, 특별히 많은 병자들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고쳐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예수님의 주된 메시아 사역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같은 오해가 있을 것 같을 때 예수님은 언제나 그 자리를 피하셨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사역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우리 인간들에 대한 한결같은 하나님이 사랑을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심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복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녀의 권세인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3년 동안을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까지도 궁극적인 관심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세상의 나라와 이스라엘의 나라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제일가는 관심도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아니라 세상 나라의 회복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은 세상 나라의 회복 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것과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심을 통하여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에서의 이루어질 복된 구원의 삶에 대한 것입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메시아 탄생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좋은 소식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는 분이신데(1절)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여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누구든지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모든 죄는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자녀의 권세인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한 마디로 구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와 같은 복을 받게 되면 예루살렘의 모든 황폐해진 것들이 회복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9절)

오늘은 대강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영혼이 잘 되는 것 못지않게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해지는 것이 영혼이 잘 되는 것과 같은 수준의 것은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면 정말 범사가 다 잘되고 모든 육체도 다 강건해 지겠지만,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 세상에서 잠시 사는 동안에는 영혼이 잘 된다고 모든 육체가 다 강건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범사가 다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얻고, 구원 받은 자의 삶인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데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얻고 누린다고 하여도, 그것만으로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 모든 자에게 누구에게나 빠짐없이 허락해 주시는 영혼의 잘됨을 얻으면 세상 일이 좀 잘 되지 않아도, 육체가 좀 강건하지 않아도, 무화과에 열매가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좀 없어도 아무 상관없이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메시아이시고 메시아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열어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존재의미와 목적이 하나님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 같은 생각과 뜻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십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나라가 열립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상관없이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나님의 나라, 하늘나라가 될 것입니다.

아직 좀 가난할 수는 있지만, 아직 좀 질병 때문에 고생할 수는 있지만, 아직 세상의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힘들 수는 있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놓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비록 우리의 삶의 자리가 높은 산과 같고 초막과 같고 거친 들과 같아도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찬양할 수 있는 복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보리떡이나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인 질병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정도를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보다 많은 물질과 보다 좋은 건강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로 당신의 존재의미와 목적을 삼으시는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으로 우리의 존재목적과 의미를 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간적인 야망과 욕심으로 뜻을 삼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으로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5년도가 지나가고 새로운 2006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한번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올인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으로 존재의미와 목적을 삼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으로 내 마음과 뜻을 삼아 살기를 결심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범사도 잘 되고 여러분의 육체도 강건하기를 바라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먼저 하나님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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