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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사랑 (9)
마 10: 40-42.
저는 지난 주간 오대식 목사님이 시무하고 계시는 일본 동경교회를 다녀왔습니다. 일본 동경교회는 왕이 살고 있는 왕궁 가까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갈 때마다 그 왕궁을 보게 됩니다. 올해도 그 왕궁을 앞을 차를 타고 지나가게 되었는데 차를 운전하시던 집사님과 오 목사님이 그 왕궁의 대단함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래보았자 감옥이지 뭐’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왕궁이 크고 아름답고 대단한 감옥으로 보였습니다. 저 속에서 사는 왕과 그 가족들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인간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불행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대로 아무데나 갈 수도 없고, 마음대로 아무거나 할 수도 없을 겁니다. 냉면 생각이 나면 물론 냉면을 먹을 수는 있겠지만, 쉽게 가족들과 함께, 또는 친구와 함께 전화해서 어느 냉면집으로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국가적인 소명 때문에 잠시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몰라도 평생을 자자손손 그렇게 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공과 행복을 이야기할 때 기준으로 쓰이는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한 ‘fullfillment’ 라는 단어 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성공과 행복을 다윗의 시편 23편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그의 삶에는 fullfillment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전혀 다른 고백을 전도서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고백입니다. 솔로몬에게는 부귀와 영화와 쾌락이 마치 강물이 연하여 바다로 흘러 들어오는 것과 같았지만 그것으로 솔로몬은 자신의 삶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fullfillment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다윗과 같은 식의 삶으로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솔로몬과 같은 식의 삶으로 향하고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은 우리의 대부분의 삶은 다윗과 같은 식의 삶이 아닌 솔로몬과 같은 식의 삶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의 소원과 삶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솔로몬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과 같이 되면 솔로몬과 같이 됩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마셔도, 마셔도 시원하지 않는 갈증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텅 빈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김원식 이라는 시인의 명동의 그리스도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그 시집 중에 ‘추수감사절에’ 라는 시가 있습니다. 갑자기 그 시집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기억으로만 적어 보았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오늘 제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잘 전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수감사절에.
사람이 죽으면 씨앗이 되고,
30배 60배 열매를 맺고,
살아있어도 그렇게 죽어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나는 이렇게 어설프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빈 잔이 늘어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채무가 늘어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빈 잔을 놓고 드리는 기도.
기도 속에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온다.
아버지와 함께 가꾸던 과원에서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성구.
한해만 참아 주시면,
정녕 한해만 참아주시면.......
제가 일본을 다녀오는 추석연휴 기간에 저희 교회 의료선교팀이 베트남 의료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일인당 70 여 만 원의 적지 않은 회비를 내야했음에도 불구하고 46명이라고 하는 적지 않은 교인들이 다녀왔습니다. 금요일날 출발하여 월요일날 돌아오는 짧고 정신없는 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해마다 추석이면 빠지지 않고 그 의료선교 여행을 다녀오시는 의대교수이신 집사님 한 분이 그 소감을 적어 놓으셨습니다. 그 글을 읽으며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 글을 읽으며 내년에는 나도 따라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입니다. 한 두 번 따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평생을 저런 식으로, 저런 정신으로, 저런 마음으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집사님이 쓰신 글의 제목은 ‘베트남 의료선교팀에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다녀온 베트남 의료 선교 사역을 마치고 의료선교팀에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섬기는 리더쉽이 있습니다.
46명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베트남 통역과 현지 선교사 분들의 가족까지 60-70명에 가까운 대부대의 모든 지체들이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함준수 집사님의 뛰어난 섬김의 리더 쉽의 힘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손수 확인하고 검증하고 돌보는 마음으로 팀원 모두를 이끌 수 있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실어주지 않은 황당한 베트남 항공사 탓에 무더운 호치민 공항에 혼자 남아 몇 시간을 기다려 의료장비를 찾아 싣고 몇 시간이나 밤을 달려 현지까지 찾아온 김성훈 총무, 모든 살림, 살림에 손길을 주고, 목숨 걸고 떨어진 약품을 구하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 김정숙 재무등등 이들의 섬기는 리더쉽이 있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고의 실력이 있습니다.
생판 모르는 곳에 도착해서 30분 이내에 모든 셋팀을 마치고 진료를 시행하고 약품을 줄 수 있는 의료팀은 세계 어디에도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고의 야전 병원도 할 수 없을 만큼 신속한 준비, 정확하게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실력,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의료팀,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내과, 신경정신과, 안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흉부외과, 치과, 한방의 최고 전문의들의 진료를 이렇게 신속하게 받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러시아 및 베트남 의료 선교의 경험을 통하여 가장 훌륭한 진료 행휘를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불과 몇 명의 약사가 1,500명의 분의 약을 짓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기도와 준비로 이것을 해내는 약국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가히 드림팀입니다.
뜨거운 기도가 있습니다.
출발전의 매주 모임, 7시간이나 연착되는 공항에서 계속 된 기도, 움칙일 때, 식사할 때, 모든 일을 할 때 항상 붙어 잇는 기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밖에 이 일을 하실 분이 없다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기도로 모든 것을 움직이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공항에서, 세관에서, 지역에서 벌어졌어도 해결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비록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기도로 동참해 주셨을 의료선교회의 나머지 회원분들, 그리고 우리 교회의 많은 서도들의 기도가 있지 않았다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름다운 지체들이 있습니다.
의료선교팀이지만 의료선교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료시간 내내 아이들을 돌보고 안아주고 섬기고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기쁨이 넘치게 해 준 교육팀, 도저히 발음조차 어려운 베트남어 찬양을 준비하고 율동과 놀이와 기자재와 선물을 준비하여 작은 영혼들을 섬긴 이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노천이었지만 세상 어디의 훌륭한 미용실보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정성껏 그들의 머리를 깍아주고 만져준 미용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베트남어를 ‘방언 통역의 은사’로 알아듣고 줄 세우고, 정리하고 안내한 안내님. 한 시간 걸리는 수술 내내 라이트를 들고 섬긴 중학생, 고3학생, 대학생, 청년, 장년, 환갑을 넘기신 분들까지 모두 모자이크처럼 하나님의 그림을 그려내는 아름다운 지체들이었습니다.
서투르지만 정성이 가득찬 마음으로 한국어 통역을 해 준 현지의 대학생들. 헤어지는 마당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한 사람>이라는 찬양을 부르며 눈물짓던 어리디 어린 베트남 여대생들도 우리 모두의 지체라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엄청난 지원이 있습니다.
2번의 진료에 들어간 약만도 몇 천 만원이 넘습니다. 가져간 쵸코렛, 안경, 옷, 치약, 껌 모두 모두 자신이 가진 보화를 아끼지 않은 사람들의 지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내 것이라고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내 놓을 때 그 보다 수백 배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법을 경험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비록 몸을 가지 못하지만 물질로, 기도로 지원해 주시고 채워주시는 수 많은 분들이 있기에 의료 선교팀이 움직이고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추석은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이 때에 자신의 아들, 딸들을, 며느리, 사위들을 흔쾌히 보내 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가족들이 있었기에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애틋한 사랑이 있습니다.
김덕규 선교사님의 사모님은 우리 교회 식구들을 친정 식구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럿브니다. 우리 모두는 가족입니다. 우리 교회 식구도, 선교님원들도, 베트남의 빈농 사람들도 모두 우리의 가족들입니다. 그 가족끼리의 사랑이 넘칩니다. 이제 우리들에게는 베트남을 바라 볼 때 가족으로 생각하며 애틋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도착해서 새벽 6시에 시작하는 기도회에도 참석하고,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끝까지 일을 하고 올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사랑의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보다도 저 사람이 더 힘들지 않을까하여 무거운 짐을 서로 먼저 들고, 불편한 자리를 먼저 차지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방식이 우리에게 흘러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보다 의료선교팀에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믿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하나님이 하고 싶으신 일을 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일이라는 믿음 속에 의료선교회가 있습니다. 이런 의료선교회가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의료선교회를 가진 높은 뜻 숭의교회를 섬긴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음 사역에 더 많은 지체들이 함께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그 집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의료선교중에 46명, 아니 현지 참여자들까지 60-70여명의 마음에 가득했던 그 fullfillment를 생각했습니다. 사랑으로, 행복으로, 감격과 감동으로 충만했을 그 fullfillment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소자 한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에게 결단코 상을 잊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소자에게 한 것이 아니라 곧 하나님 자신에게 한 일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와 사역에 참여했던 분들 마음속에 충만했던 그 fullfillment는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놀라운 상과 축복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그 집사님의 글을 읽으며, 이미 충분히 다 표현이 되었지만, 한 가지를 더 써 놓고 싶었습니다. 베트남에 의료선교팀에 있는 것 하나를 더 쓰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평화였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 설교의 주제는 평화입니다. 저는 그 집사님의 글을 읽으며 평화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의료선교팀이 섬기고 돌아온 베트남은 불과 30 여 년 전 서로 총 뿌리를 맞대고 싸우던 적이었습니다. 동작동 군국 묘지에 가 보세요. 얼마나 많은 우리 군인들이 월남전에서 전사를 했는지 아실 수 있게 될 겁니다. 수도 없이 많은 우리의 군인들이 그곳에서 전사하거나 부상당하였으면 아직 까지도 고엽제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분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모르기는 하지만 우리 군인들에 의하여 죽거나 다친 사람들 그리고 저들의 가족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비참한 전쟁의 상처를 잊기에 30 여 년은 너무나 짧은 시간입니다.
저는 그 집사님의 글을 읽으며, 봉사를 해 주었던 베트남 어린 여대생이 마지막 헤어지면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는 글을 읽으며 울었습니다. 서로 총부리를 대고 싸우던 사람들이 형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진정한 천국의 사랑과 평화가 있었습니다.
평화는 섬김을 통하여,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말미암은 섬김을 통하여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베트남 의료선교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섬김들이 있습니다. 쪽방과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는 이웃사랑팀, 도배팀, 그곳의 아이들을 일대일로 만나 매주일 과외수업을 해 주는 청년들, 쪽방의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동산에서 함께 놀아주는 청년들,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이 자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밑천나눔 사역팀, 나그네처럼 이 땅에 들어와 외국인 노동자로 소외당하는 몽골 식구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몽골사역팀, 그리고 해마다 여름이며 멀리 러시아 볼고그라드 노보니꼴스꼬에까지 가서 선교하는 선교팀 등등 적지 않은 섬김의 사역들이 있습니다.
그 사역의 현장에는 우리가 요즘 주일마다 생각하고 있는 평화가 있습니다. 평화의 넘침이 있습니다. 그 평화가 가져다주는 천국의 충만함이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으로서의 높아짐과 부요해짐은 솔로몬과 같은 삶입니다. 솔로몬과 같은 텅 빔과 빈 잔과 헛됨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시편 1편의 표현대로 하면 바람의 나는 겨와 같은 삶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높아짐과 부요해 짐은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섬김을 위한 수단과 도구가 될 때에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평화는 높아짐에 있지 않고 낮아짐에 있으며, 평화는 긁어모음에 있지 않고 흩어 나눔에 있습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을 예수님처럼 낮은데 두며 저들을 진심으로 인격적으로 사랑하며 섬길 때, 우리의 높음과 부요함이 저들을 섬김의 도구가 될 때에 진정한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의 삶 속에 충만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나보다 가난하고 약하고 낮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고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구체적인 하나님의 평화를 이 땅에 심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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