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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과 폭우 속의 진노! (겔 13:13-14)

by 【고동엽】 2021. 12. 9.

폭풍과 폭우 속의 진노

 

겔 13:13-14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을 퍼붓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

하여 큰 우박덩어리로 무너뜨리리라.

 

이번 태풍은 역사상 가장 큰 태풍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물질적 피해도 엄청나고 인명 피해도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전국이 난리입니다. 집이 무너지고, 땅이 쓸려가고, 다리가 끊어지고, 논이 시내가 되고, 과수가 망가지고, 가로수가 뽑히고, 차들이 장난감처럼 물에 떠다녔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좀 시원찮은 사람을 가리켜서 물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물태우니, 칼로 물 베기니, 헛물켜지 말라느니, 물먹었다느니, 맹물이니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까 물이 제일 무섭습니다. 이제는 물을 우습게 보면 큰일납니다. 아마 이제 “나를 물로 보지마” 이 말이 한동안 유행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또 한번 사인을 보내셨습니다. 사람들이 정신차리지 못하고 해이해질 만 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세상에 정신차릴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개발이라는 명분아래 산을 마구 깎아내고 파헤치더니 이번에 산사태로 엄청난 재앙을 만났습니다. 자연재해나 자연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직접 보았고 자연을 마구 파헤치면 어떤 결과가 온다는 것도 아주 실감나게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나 하나님의 힘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자연의 위력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자연의 위력을 통해서 하나님은 포효하시고 심판하시고 꾸짖으시고 때로는 분노를 표현하시고 매를 드시기도 합니다. 참 무섭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폭풍 속에서, 폭우 속에서 진노하시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천둥과 벼락을 가장 무서워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하늘의 진노로 보았고 세상을 향한 경고로 받아들였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십시오. 에스겔은 당시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받은 예언자였습니다. 그 시대는 유다왕국의 멸망이 임박했던 때입니다. 에스겔은 멸망이 임박했으니 회개하라고 외쳤는데 거짓 예언자들은 권세자들로부터 녹을 받고 평안만 외쳤습니다. 본문은 그들을 가리켜서 “회칠한 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회개하지 않고 세상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만 커져 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보다 못해 말씀하신 내용이 오늘 읽은 본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을 퍼붓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어리로 무너트리라”. 하나님이 화가 나셨습니다. 그래서 경고하셨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경고입니까. 참 무섭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진노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폭우 속에서, 태풍 속에서 진노하시고 경고하시고 세상에 당신의 뜻을 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재앙을 만날 때 단순히 자연재해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 속에 엄중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가 들어 있음을 읽고 발견하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은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자세가 네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떨리는 심정으로”입니다.

 

참 떨립니다. 사람들은 과학을 말하고 전천후 영농을 말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이 있겠습니까.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의 힘이나 지혜는 아주 보잘것이 없습니다. 이번에 보니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여야 자연재해를 사람이 막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떨리는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하나님의 위력 앞에 살아가면서도 재주를 피며 살아갑니다. 좀 안전하고 평안하면 교만 떨고 좀 두려움이 오면 재빨리 흥정을 하고 그럽니다. 인간이 그만큼 얄팍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인간의 모습을 보시고 참 허탄해 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산모가 애를 낳으려 들어갈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를 낳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아니고 아이가 혹시 기형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입니다. 현재 기형아 출산율은 2%라고 합니다. 그래서 산모를 분만실에 들여보내고 밖에서 부모들과 남편이 아이가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립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는 2% 안에 안 들어가겠지” 하면서도 불안해합니다. 그때는 2% 확률이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한 뼘도 안 되는 산모의 뱃속에 들어있는 아이가 정상인지 아닌지 몰라서 그렇게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밖에서 모두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아이를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 사람으로 살게 하겠습니다” 하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흥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흥정하다가 아이가 무사히 나오면 가장 먼저 묻는 말이 아이가 정상이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정상으로 태어났다 하면 지금까지 흥정하던 것은 순간 무효가 됩니다. 언제 흥정했냐는 듯이 모두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급할 때 얼마나 호들갑을 떱니까. 그러다가 급하고 무섭고 어려움이 끝나면 순간 등을 돌립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모습을 보실 때 속이 상하실 것입니다.

친구 두 사람이 배를 타고 여행을 했습니다. 가다가 배가 엔진이 고장나서 표류했습니다. 사방이 망망대해뿐입니다. 배가 자꾸만 물결을 따라 멀리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때 한사람은 열심히 배를 젓었고 또 한 친구는 옆에 앉아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여기서 무사히 구원해 주시기만 하면 돌아가서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일하며 살겠습니다“. 그런데 별로 반응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한 단계 올렸습니다. “주님 여기서 구해만 주시면 재산의 절반을 바치겠습니다”. 그래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초조합니다. 배는 점점 더 깊은 바다 속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래서 몇 단계 더 높여서 흥정을 했습니다. “주님 무사히 구해만 주시면 전 재산의 2/3을 바치겠습니다”. 지금 주가가 급등하고 있습니다. 자꾸만 올라가고 있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어두움이 거쳤는데도 보이는 것은 망망대해뿐입니다. 간밤의 흥정이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호소했습니다. 이번에는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주님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만 해 주시면 전 재산을” 하고 흥정하는 기도를 하는데 노를 젓던 친구가 다급하게 소리를 쳤습니다. “흥정 그만해, 저 멀리 섬이 보여”. 그 다음엔 순간 모든 흥정, 모든 약속이 무효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다급할 때는 모두 이렇게 떨고 두려워서 흥정을 합니다. 그런데 그 다급한 시간이 지나면 모두 순간적으로 잊어버립니다. 거기 어디에 떨림이 있고 경외가 있고 진실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자꾸만 환란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요, 백성들이 경고를 해도 듣지 않으니까 폭우로 경고하시고 폭풍으로 진노하시지 않습니까.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을 퍼붓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어리로 무너트리라”. 우리는 이 폭우 속에, 폭풍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두려운 심정으로”입니다.

 

한편 떨리는 심정으로 살고 또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 두려운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사랑, 소망, 용서, 은혜를 말씀하시지만 한번 화가 나시면 참 무서운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세상을 향해서 분노하시고, 자연 속에서 진노하시고, 때로 파괴도 하십니다. 그러면 누가 당해낼 수 있습니까. 노아 홍수 때 누가 손을 쓸 수 있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누가 당해냈습니까. 바벨탑을 허물어트리실 때 누가 막을 수 있었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실 때 누가 말렸습니까. 로마제국을 무너트리실 때 누가 당해냈습니까. 하나님은 때로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심판하실 때는 폭풍과 폭우와 같이 심판하십니다. 그 모습이 역사 속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땅이 갈라져서 심판을 했습니다. 불이 내려와서 심판을 했습니다. 성이 무너져서 한꺼번에 파묻어 버리는 심판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심판을 하지 않으십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오늘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다 무너트리는 심판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깨달아 알만큼만 진노하시고 경고를 주십니다. 이번에 보십시오. 아슬아슬하게 범람하던 낙동강 둑이 무너졌어 보십시오. 그리고 한강 둑이 무너졌어보십시오. 또 전국의 댐 중 어느 하나가 무너졌어보십시오. 그렇게 안 했는데도 저 정도인데 둑이 터지고 무너지게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적당하게 사인만 주시고는 태풍을 그대로 몰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알면 다행입니다. 알면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모르면 2,3년 후에는 또 당합니다. 2,3년 후에 똑같은 모습으로 또 당합니다. 그래서 생각 없는 사람은 늘 환란을 당합니다. 빨리 알아차려야 하는데 무감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진노는 이렇게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그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두려운 심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감격스런 심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원래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얼마나 염려하시고 사랑하십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서 하나님을 자꾸만 무서운 하나님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자상하게 지혜주시고 움직이시고 사용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매한 인간을 깨우치시려고 얼마나 힘쓰십니까. 그런데 인간은 그것을 깨닫지를 못합니다.

14세기 초 스코트랜드의 왕 로버트 블루스라는 사람이 잉글랜드와 다섯 번 싸워서 다섯 번 모두 완패했습니다. 6번째 또 전쟁을 했는데 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산 속으로 도망을 가서 숨었습니다. 비바람이 치는 그 밤에 산 속의 어느 빈 오두막집에 숨어서 아주 초라하게 은거하고 있습니다. 그때 우연히 오두막집의 처마 끝을 보니까 거미 한 마리가 집을 틀고 있는데 비바람이 너무 거세어서 짓다가 실패하고 또 짓다가 실패합니다. 그래서 재미있어서 이 거미가 어떻게 하는가 보자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까 이 거미가 여섯 번 실패하고 나서 또 일어나 거미집을 또 짓더라고 합니다. 그때 이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거미도 하는데 왜 나는 못하겠는가” 그래서 일곱 번째 전쟁을 해서 승리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사 기적같이 섭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들이 자꾸만 기적같이, 소나기 같이, 불같은 기적을 달라고 기도하는데 그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그렇게 기대하면 안됩니다. 그런 기대는 구약시대에는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닙니다. 오늘은 더 이상 그런 기적 같은 방법으로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불같이, 소나기 같이 기적이 와도 안됩니다. 이번에 소나기 보지 않았습니까. 소나기는 백해 무익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섭리는 소나기 같이, 불같이, 기적같이 오시는 것이 아니고 아주 조용하게 우리의 지성에, 이성에, 생각에, 마음에, 영감으로 조용하게 깨닫는 지혜자만 알 수 있도록 역사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무지하고 둔하고 영적인 감각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섭리도 응답도 깨닫고 알고 느낄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무감각이나 둔함은 불행입니다. 아주 예민하고 감각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주 미물인 미생물을 통해서도 깨닫게 하시고 눈을 열게 해서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와, 위엄을 깨닫게 하십니다. 여러분, 식물들을 자세하게 눈여겨보십시오. 보면 식물들의 표면에 아주 부드러운 털이 둘러 싸여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식물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왜냐하면 식물들이 물에 잠기거나 비가와도 속으로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하자면 방수효과입니다. 그래서 식물들이 물 속에 잠겨도 살아남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이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부드러운 털로 식물을 보호하시듯이 오늘 우리 신앙인들이 세속 한가운데에 몸담고 살아가는데도 쉽게 악에 물들이 않는 것은 이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역사, 섭리를 그냥 생각하고 보아서 알겠습니까. 그래서 생각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 없는 사람은 그렇게 살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에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초목이나 미생물 그리고 곤충을 통해서만 깨닫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때로 강도를 통해서도 깨닫게 하십니다. 어느 권사님이 가난해서 매일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동네 건달들이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이 권사님을 놀려주려고 보자기에 떡을 싸서 권사님 집안에 던졌습니다. 기도하다가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보니까 마당에 무슨 보따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보니까 속에 떡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이 권사님이 오늘도 먹을 것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떡보자기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신기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이렇게 주시니 감사합니다“하고 기도했습니다. 밖에서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건달들이 권사님 앞에 나타나서 “그 떡은 하나님이 준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던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권사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은 때로 악마들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신다는 것을 아직까지 알지 못했습니까”.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노도 하시고, 심판도 하시고, 매를 드시기도 하고, 환란을 주시기도 하는데 그것은 모두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들이 다 맡기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당신을 믿지 못하는 신앙인들을 보고 슬퍼하실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믿지 못하고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에스겔을 보내 경고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믿고 그 시대를 안심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참다 못해서 무서운 진노로 경고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을 퍼붓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어리로 무너트리리라“. 얼마나 분노의 진노입니까. 이 진노를 누가 당해낼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폭우를 보고 폭풍을 만나게 될 때 그냥 자연재해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보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에 무슨 메시지를 주시려는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을 보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안목입니다. 이 같은 예리하고 깊은 안목으로 세상을 보고 역사를 보고 그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고 섭리를 깨닫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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