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잠언
잠 3:1-6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은 부모일 것입니다. 세상에 부모처럼 좋은 분은 없습니다. 명절 때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시골의 부모, 도시의 자녀들이 들뜬 마음으로 시골의 부모를 찾아가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 바로 이것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박한 인간의 삶입니다. 그래서 이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를 하늘이 맺어준 관계라고 말합니다.
그 부모 중 누가 더 좋으냐 하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어머니도 참 좋은 분입니다. 어머니는 사람들이 다 좋아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자상하고 포근하고 다정다감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어머니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도 참 좋은 분입니다. 특히 아들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참 중요한 존재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정을 가르치고 관계를 가르치고 정서를 가르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의를 가르치고 중심을 가르치고 삶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중요한 아버지가 기억에 별로 없습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잘 모릅니다. 아버지가 오래 사셨더라면 내 인생에 참 많은 교훈을 주셨을 것입니다. 참견도, 꾸지람도, 조언도, 교훈도 많이 주셨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누구에게나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교훈을 주고 조언을 주고 참견을 하신다면 그것은 진정일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아들에게 교훈을 줄 것입니다. 그런 교훈을 받은 아들들이 잘못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조석으로 어린 아들을 품에 앉고 기도해주며 마음에 심어주는 교훈들이라면 참으로 미치는 영향은 지대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런 교훈을 주는 형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교훈을 준다면 그 교훈이 얼마나 깊은 교훈이겠습니까. 여기 성경을 보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몇 가지 중심 있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 말씀이 곧 나에게 주시는 아버지의 교훈이라 생각하고 소중한 마음으로 받아서 마음에 깊이 새기고 중심이 되도록 했으면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 는 교훈입니다.
1절을 보면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법이 참 많이 있습니다. 법에는 큰 법도 있고 작은 법도 있고 가시적인 법도 있고 그냥 전승되는 법도 있습니다. 모두 지켜야 할 법들입니다. 그렇게 법을 지키면 모두에게 유익이 주어집니다. 나에게 유익이 주어지고 너에게도 유익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 법을 무시하면 곧바로 해를 입게 됩니다. 내가 해를 입고 또 너도 해를 입습니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를 생각해 보십시요. 이 교통사고는 질서를 안 지켜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됩니까. 나도 사고를 당하고 너도 피해를 입고 두 사람 다 생명의 위협을 받습니다. 내가 술을 마시고 가다 차가 인도로 뛰어들면 길 가던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나만 해를 입는 것이 아니고 남들도 피해를 입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질서를 지키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 안전사고를 생각해 보십시요. 안전사고는 안전수칙을 안 지켜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나도 생명이 위협받고 너도 생명이 위협을 받습니다. 안전수칙을 안 지켜서 아까운 생명이 죽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려면 이 법을 지켜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지키고 너를 위해서 지켜야 합니다. 또 불 가시적인 법도 있습니다. 어른에게 인사하라는 법이 그것입니다. 이 법을 안 지켰다고 누가 해를 입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어른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하면 내 부모가 욕을 먹습니다. 내 부모에게 누릴 끼치게 됩니다. 이것이 불 가시적인 법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인사 잘하라고 자꾸만 강조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도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큰 법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일입니다. 이것이 대원칙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의무이고 신앙인이 지켜야 할 가장 큰 법입니다. 그리고 작은 법이 있다면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고 예배를 예배답게 드리는 일입니다. 또 불 가시적으로는 섬김의 삶을 살고, 나눔의 삶을 살고, 더불어 살아가고,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재능이나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고 활용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삶이고 법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이 그렇게 살면 오늘 성경을 보면 선물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선물이 평강의 복입니다. 2절을 보면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평강에는 세 가지 은혜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는 내적인 평안입니다. 내적인 평안은 마음의 고요를 말합니다. 즉 신앙의 법을 지키고 살면 행복한 날들, 기쁨의 삶, 만족함, 감사함의 삶이 주어집니다. 이 요소들이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요소들입니다.
또 외적인 평안도 주어집니다. 외적인 평안은 생활의 고요를 말합니다. 신앙인이 질서를 지키며 살면 생활에 안정, 인간관계의 원만함, 삶의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이 요소들이 생활의 안정을 주는 요소들입니다. 살다보면 생활에 갑자기 탈이 나고 부작용이 나타나고 환란이 발생할 때가 있습니다. 질서가 뒤틀릴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면 갑자기 생활의 안정이 깨지게 됩니다. 그래서 외적인 평안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영적인 평안도 주어집니다. 즉 영적인 고요입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요소 그것이 영적인 고요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 이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법을 지키는 사람은 마음과 삶과 영에 평안함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중의 복입니다. 저도 아들에게 교훈을 준다면 이런 교훈을 주고 싶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법을 지켜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네 앞길을 안전하게 지키실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내 아버지가 나를 품에 안고 ”너는 평생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고 강하게 교훈을 주었다면 그 교훈이 내 일평생동안 얼마나 강하게 내 마음을 움직였겠습니까. 그래서 아버지의 교훈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인자와 진리를 따르라” 고 했습니다.
3절을 보면 “내 아들아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자와 진리”는 이웃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이상적인 경지를 의미합니다. 인자는 이 땅에서 제일가는 정신이고 진리는 하늘에서 제일가는 정신입니다. 이 땅의 제일의 대상은 이웃이고 하늘에서 제일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이 두 가지 대상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로 하나님과 아래로 이웃은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상입니다. 하나님과 이웃, 하나님은 신앙의 대상이고 목표이고 궁극입니다. 그리고 이웃은 신앙의 내용이고 표현이고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 두 대상은 세상에서 가장 존중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면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이 인자와 진리를 잊지 말고 떠나지 않도록 목에 매고 마음 판에 새기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들에게 교훈을 준다면 저도 이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너는 살아가는 동안 이웃을 존중하라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라, 이웃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될 때에는 기쁨으로 받아들여라” 또 “너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라, 네 생활에 하나님이 중심이 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살아가다가 운명적인 갈림길을 만나게 될 때에는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을 택할 수 있도록 하라”. 얼마나 중요한 교훈입니까. 중고등부 교사들은 지금 한창 의식이 성장해 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런 교훈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청년들은 이런 교훈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교훈이 없으니까 오늘 청소년들이 자꾸만 방황 대고 이기적인 인생관을 만들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있고 똑똑해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 누가 성공을 말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이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라고 했습니다. “위로 하나님, 아래로 이웃” 이 관계를 잘 이루고 살아가면 그 삶은 하나님이 보장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그렇게 살면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귀중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이 땅에서의 최선의 삶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대해서 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보면 이웃도 없고 하나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신의도, 인자도, 진리도 너무 소홀히 하며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엉뚱한 것에 집착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목표가 흐려져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하나님 나라, 천국, 종말, 심판 이것이 신앙인의 최후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목표가 모두 상실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목표가 모두 이 땅에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상에 집착하고 세속적인 것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인들의 정신, 철학, 삶의 중심이 표현되거나 발휘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라톤 하는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것은 목표 아닙니까. 목표가 없으면 뛸 이유가 없어집니다.
신앙인에게 목표인 천국이 없어 보십시요. 무엇을 위해서 뛰고 살고 수고하겠습니까. 초대교회 신앙인들은 그 숫한 환란을 당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천국이라는 목표가 너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목표가 희미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설교도 안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경회를 하기 위해서 미국에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아주 고지식하게 심판, 종말, 천국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배 마치고 나오는데 어느 장로님이 “미국에서는 심판, 종말, 천국 같은 설교는 하지 말라, 여기서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다“고 하더라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까. 우습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오늘 신앙인들 가운데 초점을 잃고 살아가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사람이 초점을 잃으면 초점 잃은 소리를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어느 정신병동에서 한사람이 “나는 나폴레옹이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사람이 “네가 어째서 나폴레옹이냐”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사람이 “내가 언제 너를 나폴레옹으로 임명했느냐”고 말하더라고 합니다. 이것이 초점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초점을 잃고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자꾸만 집착하고 인간적인 수단을 사용해 가면서 까지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천국을 잃어버려서 그렇습니다. 신앙에게 천국을 빼면 무엇이 남습니까. 우리에게 장차 심판이 없고 천국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그러면 방종밖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삶에서 살아가는 일, 신앙, 섬김의 삶, 얼마나 소중한 삶입니까. 삶은 엄숙한 것입니다. 그 삶이 너무나 엄숙해서 그 삶에 사명까지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삶을 다 살고 난 다음에는 그 삶을 결산하시고 심판하시지 않습니까.
어느 임상학자가 600명이 죽어 가는 모습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600명 대부분이 죽었다 인정되면 그대로 죽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끔 죽었다 싶었는데 얼마 있다가 살아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목사를 골탕을 먹입니다. 왜냐하면 엄숙하게 임종예배를 마쳤는데 마치자마자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분명히 죽었습니다. 진단도 죽었다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임종예배까지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나니까 깨어난 것입니다. 이 분이 깨어나서 하는 말이 내가 죽었다 싶었는데 갑자기 환한 빛이 비추더니 순간 자신의 모습이 필름 돌아가듯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놀라서 깨어난 것이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이 너무 목적을 잃고 육신적인 삶에 집착하고 너무나 소중한 것을 잃고 살아가니까 이런 방법들을 통해서 종말의 신비한 모습을 아주 조금씩이나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꾸만 하나님께 목적을 두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자와 진리를 따르라”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해서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살면 “사람과 하나님으로부터 귀중히 여김 받으리라”(4)고 했습니다. 오늘 질서를 잃고 거리를 밤낮 방황 대고 돌아다니는 아들들이 참 많습니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고민이 많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때 이 교훈을 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궤도를 잃고 방황 대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네 자신을 의지말라”고 했습니다.
5절을 보면 “아들아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거나 잊어버리면 곧 바로 나타나는 마음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교만이고 자만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자만이고 교만입니다. 이것은 사람들도 싫어합니다. 사람이 교만 떨고 자만떠는 것 처럼 봐주기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너는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교만하지 말라”고 교훈 합니다. 이 말씀을 고상하게 말해서 ”너는 네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은 전혀 의지할 대상이 못됩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자신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I can do"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한때 I can do를 높이 외쳐보기도 했던 솔로몬이 실패를 거듭한 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교훈형식으로 오늘 신앙인들에게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는 네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 그 말은 “너는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잠언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맛, 씹는 맛, 감칠맛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잠언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진실해질 때가 언제겠습니까. 그것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교훈하기를 “네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소중히 앞날을 받아서 당신의 뜻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이 교훈을 소중히 마음에 간직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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