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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라

by 【고동엽】 2021. 12. 2.

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2010년 1월 24일



요한일서 4장 7-13절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 섰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본문 말씀은 읽으면 읽을수록 좋고,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셔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 참신자이고, 참 자녀 입니다.

우리가 어머니 배 속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첫 번째로 태어나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두 번째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딸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거듭남’, ‘중생’이라고 합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이 거듭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불의를 행하던 사람이 불의한 짓을 멈추고,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르던 사람이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거듭났다는 증거, 진짜 예수쟁이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만 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가득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만든 뒤 사람을 만드시고, 만드신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면서 “정복하고 다스리라”(창 1:28)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세상만물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만드신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기시기에 우주와 만물을 다 만들어 주셨는지, 하나님의 큰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하 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합니다. 잠언 3장 12절은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고 전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절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편하게 살고 싶고 행복하게 살고 싶거든 하 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죄악의 맛이 좋은 것 같지만, 조금 지나면 그것이 독약 이고, 고통을 몇 배로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계 3대 테너 중 한 사람인 호세 카레라스는 41세 때 오페라 <라 보엠La Bohe` me>을 공연하다 졸도하고 말았습니다. 백혈병으로 쓰러진 것입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는 구약 시대의 히스기야처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제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시켜 주시면 남은 생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기적처럼 병이 나아서 1년 반 만에 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그의 노래는 과거와 달랐습니다.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는 청중 앞에서 “질병도 축복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간증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도 ‘사랑 하라’는 것입니다. (막12:29-31). 로마서 13장 10절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 리라”(요 13:34-35)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이 예수님의 제자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0장 13절에도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 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행복은 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위와 명예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절대로 이 세상의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것은 우리에게 잠시 기쁨을 줍니다. 그러나 행복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사랑하며 살 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머리로 아는 것과 체험으로 아는 것 은 다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하나님 의 사랑을 머리로는 알지만, 체험으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첫 번째 이유는 계명대로 살지 않고, 계명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랑의 열매가 없어서입니다. 마음 속 으로는 사랑할지 모르지만 행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은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전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며 받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게 되고, 그때 기쁨과 행복도 넘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지만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 유는 무엇입니까? 근본적인 이유는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이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으면 사랑으로 충만해지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만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행하 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그래서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교회는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 입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 이하를 보면, 예루살렘교회가 성 령 충만하니까 얼마나 사랑이 많은지, 성도들이 함께 모여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아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교회도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사도 바울에게 눈병이 있었다고도 하고 간질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두들겨 맞고, 고문당하고, 감옥에 갇히다 보니 온몸이 형편없게 된 것입니다. 그 모습을 믿음이 어린 사람이 보면 시험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교회 사람들은 바울을 업신여기지 않고 그리스도와 같이 섬겼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5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 어 주었으리라”고 바울은 전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이렇게 사 랑이 충만합니다.

서울 강북에 날로 부흥하는 수유리교회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열심히 목회하시던 중에 쓰러졌는데, 5년이 넘도록 병원에서 식물인간으로 지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더 이상 소망이 없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교인들 가운데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고 있던 성도들은 목사님을 위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성도들의 사랑이 담긴 기도가 하늘 보좌를 움직여 목사님이 일어났습니다. 목사님이 다시 설교를 하시니 교회가 더 부흥하였고, 몇 년 전에는 성전을 크게 지어 하나님 앞에 헌당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성령 충만한 교회는 사랑이 충만합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교회에서 하나님을 위해 순교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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