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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주는 사람이 승리한다 요일5:18

by 【고동엽】 2021. 12. 2.

믿어주는 사람이 승리한다 요일5:18 이중표 목사님 설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를 지켜 주시므로 악한 자도 그를 해칠 수 없습니다. 요일5:18

 

 

▲부모가 자녀를 믿는 이유

어떤 글에 보니까, 자녀 교육에 있어서 가장 큰 해악은

<부모가 자녀를 불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모는 너무 걱정이 되어서, 혹시 자기 자녀가 빗나가지 않을까?

나쁜 친구라도 사귀지 않을까? - 그래서 자기 자녀를 믿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런 ‘불신’이 자녀를 분노하게 만듭니다.

(충분히 자기를 불신하게 만든, 문제가 많은 자녀라도... 분노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부모가 걱정하던 대로... 부정적인 결과가 생기는 수가 많습니다.

부모가 자기를 믿어주는 대로... 살아버리는 것입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오기 섞인 반항이라고 할까요?

 

위 본문 말씀은,

그 사람을 믿고 ←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계속 죄를 지을 수 없으므로

또한 예수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지켜 주시므로

 

그러니 자식을 믿어주고, (자식의 신앙심을 믿어주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자녀 속에서 양심으로 역사하실 것)

 

물론 전제조건은, 자녀 신앙교육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자녀가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를 믿을 수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믿는 이유

요즘 무슨 ‘흥신소’ 사업이 흥왕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가서 남편의 뒤를, 아내의 뒤를 밟아줄 것을 의뢰합니다.

그리고 자동차 안에 도청기를 달고, 휴대전화 위치확인 기능을 이용해서

배우자를 감시합니다.

돈은 돈대로 들고, 감시하는 그 정신이 얼마나 혼미하겠습니까!

 

배우자가 진정 거듭난 신자라면,

그냥 믿어야 합니다.

그 속에 있는 예수님이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곁길로 나아갈 때, 주님이,

다리 몽댕이를 분지르시든지, 설사를 좍좍 하게 하시든지...

돈을 사기당하든지, 차가 사고 나든지 해서...

그 죄악 된 길로 계속 못 가도록, 주님은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예외도 있겠지만 대개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스스로 깨우치고, 죄의 길에서 스스로 벗어나고 돌이켜야 합니다.

애가 난로에 한번 손을 데면, 다음부터는 난로를 조심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악과 싸우다가 악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배우자와 싸우다가, 시부모와 싸우다가, 원수와 싸우다가

자기도 모르게 점점 스스로 '악'으로 변해가는데, 자기는 깨닫지 못합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싸우지 말고, 그냥 하나님께 맡기고,

그에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사람을 서로 못 믿는 사회

요즘 ‘나 홀로 문화’가 더욱 발달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홀로 커서 그런지, 혼자 사는 환경이 더 익숙한 모양입니다.

 

어떨 때, ‘저 친구는 못 믿겠어!, 결국 나에게 해코지 할 사람이야!’

‘저 집사는 못 믿겠어! 신용이 안 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직접 말로 표현은 안 해도, 생각으로 그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가 크리스천이라면,

우리는 그 속에 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 그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더라도,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예수님이 다 공의롭게 갚아주실 것이니

‘내가 남을 의심하고 안 믿는 죄’를 짓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믿기 힘든 현지인

해외 선교에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현지인 신자, 심지어는 현지인 성직자들에게

사기 등 기타 불이익을 당한 경험들이 다들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한두 번 겪으면... 절대 현지인들을 불신하게 됩니다.

 

현지인들을 불신하면서

사역을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또 사기를 당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를 믿어야

사역을 계속 할 수 있습니다.

그를 믿는 근거는, 위에서 인용한 요일5:18절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간과 다른 점은

‘끝까지 믿어주신다’는 점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형상을... 늘 본 받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믿어주었습니다 눅15:18-23

 

탕자의 비유(돌아온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철저하게 아들을 믿어주고 있습니다.

이 아들이 어리기 때문에 재산을 관리할만한 자질이 없다는 것을 그 아버지는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에게 재산의 몫을 줍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너는 재산보다 더 큰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 자식에게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재산을 통해서 아들 됨을 알게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버려야만 아버지와의 관계가 정상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재산을 잃어버려야만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재산을 안주고 있으면 아버지와 아들이 원수가 됩니다.

돈으로 아버지를 보고서는 관계가 정상화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재산을 다 잃어버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너는 이 재산을 잃어버려라, 그리고 내 아들로 순수하게 돌아오라’

이것이 아버지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들을 믿어주는 아버지를 통해서 위대한 아버지 상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들을 내 기준에서 평가하고, 나의 입장에서 성공을 생각하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우리는 교훈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들로서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다만 아들을 아들 되게 만들어주면 됩니다.

아들을 아들 되게 만들어주는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다 그에게 주어서

그 재산을 잃어버리고서야 아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위대한 점이었습니다.

 

▶이북에서 피난 나와서 알뜰하게 재산을 모아 자수성가 한 권사님이 계십니다.

이 권사님은 큰 빌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 있는 자식이 성장하면서, 사업을 한다고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합니다.

몇 번 어머니가 안 된다고 해도, 빌딩이 있는 것을 아니까 막무가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할 수 없이 주었는데, 사업이 잘못 되어서 빌딩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어머니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그 자식이 하는 사업이 안될 것을 아셨습니까?”

“예, 알았죠.” “그런데 왜 주셨습니까?”

“주어야 합니다. 안주면 원수가 되니까요. 자식이 망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준 것은

망해서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을 봐야 이 자식이 효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 때문에 고생하시는구나! 청상에 과부되어 자수성가 해서

빌딩을 만들었는데, 내가 망해서 나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고생하시는구나!’

이 때에야 비로소 이 자식은 어머니를 어머니로 아는 것입니다.

 

돈 많을 때는 돈 많은 과부로 알았습니다. 그 빌딩 여주인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돈을 빼앗아 가려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자식에게 빌딩을 다 팔아서까지 주어놓고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너에게 이것을 주는 것은, 부모와 아들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눈을 지그시 감고 주는 것이다.’

 

▶저는 그 어머니를 보면서 참으로 위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마음은 하늘이 준 마음이었습니다. 돈 보고 따라 다니는 사람은

돈 떨어지면 다 떠난다는 사실을 탕자는 몰랐습니다.

 

돼지 회사에 가서 밥 얻어먹다가 그것도 안 되니까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얻어먹는 인간 이하로 전락을 한 후에야

자기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집의 품군으로 일하기 위해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드디어 아버지와 아들이 상봉을 하게 됩니다.

이때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만나는 것도 아니요, 아버지 집을 만나는 것도 아니요,

아버지 집의 먹을 것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는 정말로 위대한 분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자녀를 만날 때 순수한 아버지로 만나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부모입니다.

공부로 만나지 말고, 순수한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로 만나십시오.

 

아이들이 십대가 되면 반항하고 때로는 집을 나가려고 하는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십대가 되니까 집을 나가서

며칠씩 안 들어 오는 때도 있고, 그래서 제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목회는 끝났구나! 성스럽게 살려고 했던 일생이 자식 때문에 어려워 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훗날 주께서 이 종의 마음을 감동하시는 것은

“나는 탕자같은 너희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을 버리고 땅에 와서

십자가 위에서 온갖 수난을 당하고, 머리에 가시관 쓰고, 손과 발에 못 박히고

창에 찔리는 아픔을 겪었다.” 이것이 바로 어버이 사랑이며 부모의 사랑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서 함께 산다는 사실 한가지만으로 만족하는 데까지

자기 자신을 낮춰버리면, (다른 것을 다 포기하면)

그때 마음에 평화가 오고 자유함이 옵니다.

그리고 그 자식을 껴안는 사랑이 분출합니다.

 

인간적으로 자기 자신(부모)의 위치에서 보는 것이 아니고

그 자식의 입장으로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본다고 할 때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단란 이중표 목사님 설교에서 발췌

 

 

 

◑믿어주는 사람이 승리한다!

 

세계에서 가장 잔인하고 혹독한 경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미국에서 일년에 한번씩 벌어지는 이디타로드(Iditarod)라는 경기입니다.

개가 끄는 눈썰매를 타고 1,760km를 달리는 경기입니다.

얼음의 땅 알라스카를 10일 가량 달리는 경기입니다.

눈보라가 칠 때면 눈보라 속을 뚫고서 달립니다.

 

그 경기에 참가하여 끝까지 완주하기만 하여도 각광을 받습니다.

그런데 수잔 버처(Susan Butcher)라는 여자가 4번이나 우승하였습니다.

 

그가 우승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는 천성적으로 개를 너무나 사랑하는 이였습니다.

개만 보면 미칠 정도로 사랑스러워 하였습니다.

 

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나 잘 압니다.

이상한 것은, 어느 집에 가서도 아무리 무서운 개라도

내가 사랑의 눈빛만 보내면 내 품에 와서 안깁니다.

개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압니다.

 

다른 사람들은 10일간 달리면서 엄청난 상급을 받기 위하여

개를 혹독하게 몰았습니다.

그러나 수잔은 개를 사랑하였습니다. 식구처럼 대하였습니다.

 

개는 수잔의 말을 잘 따라 주었습니다.

그래서 개가 <진심으로> 일하여 주었기에, 일등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한결같이 개를 사랑하는 천성이

그를 이 경기에서 항상 이기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개를 사랑하고 1,760km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우승의 비결이었습니다. (펀 글)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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