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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작은 자여 (마태복음 14장 22~33절)
오늘 저는 ‘믿음이 작은 자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주님이 벳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 남기는 기적을 행하신 이후에 군중들을 흩어 집으로 보내시고 홀로 산위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배가 전진하지를 못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 가서 바람에 밀려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밤 사경에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십니다. 그들은 분명히 유령인줄 알았습니다. 사람이 물위로 걸어오는 것을 본적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함을 쳤습니다. 겁을 집어먹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나니 두려워 말라."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베드로가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여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오라 하시매 그 말씀을 믿고 물 밖으로 나가 물위로 저벅저벅 걸어서 예수께로 향하더라. 일진광풍이 불어서 그 얼굴을 물보라로 때리니까 그만 예수님을 바라보던 눈을 돌이켜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겁을 내어 물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주여, 내가 죽겠나이다. 나를 건져 주소서." 주님이 오셔서 그를 손잡고 건져 주시면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함께 배에 오르시매 파도가 잠잠해지고 그들이 곧 일을 하던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성경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몇 가지 교훈을 배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도 거친 인생바다를 걸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잔잔한 인생길이 어디 있나요? 크고 작은 파도가 항상 치기 때문에 인생을 고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바다 위를 걸어가야 될 때 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해야 될까요?
<본론>
1. 말씀을 구하라
주님께 말씀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 말씀을 구하고 주께서 말씀을 주시면 우리의 생애 속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씀이라고 말하면 성경에 있는 말씀을 생각하는데 성경 속에 있는 말씀은 모두다 로고스로써 하나님이 우리 모든 사람에게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지구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신 말씀으로 이 로고스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고 은혜를 받습니다만 내게 믿음을 주는 말씀은 로고스 중에서 성령이 감동해서 우리 마음에 깨닫게 하는 레마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레마로 말미암아 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고스는 누구든지 다 읽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고 은혜를 받습니다만 우리 개인에 대해서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는 성령이 로고스를 가지고 우리 마음속에 감동해서 우리에게 직접 주는 말씀이 될 때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감동시켜 주신 말씀 즉, 내게 주신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말씀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내게 주시는 말씀을 우리가 고해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주님 바라보시고 "주시어든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우리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하지 않고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오라 하실 때 베드로를 보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로고스가 아닙니다. 일방적인 모든 사람을 향해 주신 말씀이 아니라 베드로에게 준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받자 믿음이 생겨서 물위로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 목사님들이 기도회에 나가서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난 다음에 베드로가 물위로 걸은 경험을 같이 나누고 "베드로가 물위로 걸었으니 우리도 물위로 걸어보자" 그래서 함께 나가서 호수에 배를 저어서 한 가운데 들어가서 하나, 둘, 셋하고 물위로 뛰어 들어갔다가 모두 빠져서 익사했다는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왜 베드로는 물위로 걸었는데 이 목사님들은 물위로 걷지 못했습니까? 베드로는 레마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직접오라는 개인적인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목사님들은 일반적인 모든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지 레마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개인이 주님께로부터 말씀을 받고 출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음으로 행한 것이 아니고 지식으로 행했다가 물에 빠진 것입니다. 지식은 깨달음을 주시지만 믿음을 주지는 않습니다. 믿음은 마음속에 성령이 지식인 말씀을 내 개인적인 레마로 허락해 주셔야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베드로처럼 주님께 레마를 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마음에 레마를 들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롬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즉, 헬라어로 말하면 레마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이 내 개인적인 은사로써 마음속에 들어오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성경은 말씀한 것입니다.
시드니 올림픽 여자 다이빙에서 우승한 미국의 로라 윌킨슨은 당시 오른쪽 다리의 골절상으로 인해 코치로부터 '올림픽 출전불가'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 말씀을 읽다가 빌4:13절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레마를 입었습니다. 그는 빌4:13을 하루에 수없이 묵상하고 입으로 시인하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윌킨슨은 자기에게 주신 이 말씀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끊임없이 읽고 또 외웠습니다. 그러자 그가 생긴 그 믿음으로 올림픽 출전하여 불가 판정을 받았던 그녀가 운동선수로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라갈 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아무나 그런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윌킨슨 선수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성경을 읽다가 빌4:13 말씀이 레마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 마음에 부딪혀 온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주님이 그 말씀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믿음이 생겨서 그는 부상을 극복하고 일어나서 올림픽에서 수영 1등 왕으로 당선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은 마음속에 레마를 들음에서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에게 주시는 레마의 말씀을 주님께 간절히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님에 대한 진리와 지식을 깨달아 알고 그 말씀을 가지고 주님께 기도할 때 주님은 때를 따라 그 말씀을 우리 개인에게 계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에게 큰 감동과 감격으로 그 말씀이 임할 때 로고스는 레마로 변하고 레마는 우리 마음속에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을 발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여러분이 기적을 행하는 믿음으로 나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은 레마로 받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성경에 기록했다고 읽고서 그대로 행했다가는 큰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매달려 기도해서 그 말씀이 레마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지 않고 나는 주님만 믿겠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병든 사람에게 제가 늘 말하는 것은 "말씀을 부여잡고 기도해서 이 말씀이 내게 주는 개인의 말씀이 되고 레마가 되거든 병원에 안가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냥 성경의 지식의 말씀으로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느니라는 지식만 가지고서 병원에 안 갔다가는 큰 탈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성령이 이 말씀을 마음속에 믿도록 만들어 주시거든 병원에 안가고 믿지 그 이외에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그런 말을 제가 늘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말씀을 가지고 내게 믿게 해주실 때 그것이 레마가 되는 것입니다. 그냥 머리 속에 아는 것은 로고스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로고스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이 말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아요. 그러나 이 말씀이 성령으로 감동되어서 내 개인의 가슴에 부딪혀 오면 이 말씀은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가 되어서 내게 믿음을 주고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고스와 레마를 우리가 자세히 분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만 바라보라
그 다음 여러분,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갈 때 예수님만 바라보고 걸어가야만 한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주의 말씀을 받아서 마음속에 믿음으로 행했지만 믿음으로 행할 때 예수님께 집중하고 바라보고 나가야지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주위를 산만케 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어요. 우리가 믿음으로 나가려고 할 때 부정적인 환경이 다가와서 불안과 공포를 갖다주고 또한 부정적인 느낌도 오고, 부정적인 경험, 지식, 조언, 경고의 말도 오고 여러가지 부정적인 사건이 와서 바람과 파도처럼 우리를 부딪히므로 우리가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던 것을 그치고 환경을 바라보고 겁을 집어먹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항상 마귀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환경을 바라보고 마음에 겁을 집어먹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14:30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간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면 겁이 납니다. 무서워서 믿음을 놓쳐 버리면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겁을 집어 먹으면 믿음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집중하고 예수님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레마를 받아서 믿음으로 나갈 때는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용서받고 의인이 된 나를 생각해야 되고 보혈로 통해서 거룩하고 성결하게 된 나를 생각해야 되고 보혈을 통해서 치료받고 건강하게 된 나를 생각해야 되고 보혈을 통해서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나를 생각해야 되고 보혈을 통하여 부활, 영생, 천국 얻은 나를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관여하지 아니하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었다는 완전구원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외치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시103:2~5에는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집중해서 은택을 늘 기억하고 마음속에 묵상하고 잊지 말아야지 환경을 바라보고 은택을 잊어버리고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되면 주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믿음이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힘차게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히12:1~2에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께 젊은 신학생 한 명이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도 낙망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자 스펄전 목사님은 "적어도 지난 20년 동안은 한번도 낙심한 적이 없다네." "어떻게 목사님이 낙심하지 않고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목사님께 다가왔을 텐데요?" "맞았어.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다가왔지만 나는 하나의 중요한 원리를 내 삶에 적용하고 있었지. 그 원리란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라네. 나는 하루에 단 15분도 주님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간 일이 없네. 그때 이후로 나는 낙망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왔다." 맞습니다. 우리가 크신 하나님을 항상 바라보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주변의 어떤 비판 어떤 조롱에도 "나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는다."고 외칠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 집중하고 예수님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집중하는 마음을 놓치면 우리는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하나님을 반역했나요? 가데스 반야에 와서 열두 정탐꾼이 똑같이 40주 40야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는데 그중에 10명은 하나님께 집중하지 아니하고 환경에 혼돈이 빠졌습니다. 광야 같은 땅을 바라보고 성벽을 바라보고 적군을 바라보고 주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으니까 그만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들어왔습니다. 이 땅은 주민을 삼키는 광야구나. 성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구나. 원수들은 아낙자손 네피림의 후손 대장부들이구나. 우리는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메뚜기 같다. 그들이 잘못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될 것을 환경을 바라보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광야를 바라보지 않고 성벽을 바라보지 않고 저 대장부들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믿음에 굳세게 설수가 있었습니다. 환경을 바라보고 믿음을 저버리고 원망과 불평과 탄식하며 뒤로 물러가려고 한 열 정탐꾼과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하나님이 응답해서 살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출발은 잘했지요. 주시어든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레마를 받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밤바다 파도 위를 타고 예수님께로 걸어갔습니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용감하고 담대했습니다. 예수님만 집중하고 바라보았다면 그는 주님께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오고 파도가 치고 물보라가 얼굴을 때리니까 그만 놀래서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예수님 바라보는 눈을 그쳤습니다. 그러자 믿음이 사라지고 불안과 공포가 들어와서 물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것은 믿음은 것입니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이 세상을 이긴다고 찬송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라고 말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믿음은 레마를 받고 난 다음에도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아야지 환경을 바라보면 우리는 믿음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불평이 많은 한 청년이 왕을 찾아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자 왕은 포도주가 잔뜩 든 한 잔을 주면서 "이 잔을 들고 시내를 한바퀴 돌고 내게 오너라. 이 잔에 포도주 한 방울 이라도 떨어뜨린다면 너는 목이 날라 갈 것이다." 이 청년은 그 임금님의 명령에 따라서 포도주잔에 포도주가 잔뜩 담긴 것을 손에 들고 벌벌 떨면서 시내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시내를 돌아서 임금님 앞에 와서 "임금님 시내를 돌고 왔습니다. "물 한 방울도 안 떨어뜨렸지?" "포도주 말 한 방울도 안 떨어뜨렸습니다." "자, 내게 보고해라. 시내를 돌면서 시내에 건물들이 몇 채나 있더냐?" "못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왔다 갔다 하느냐?" "못 보았습니다." "거지가 있더냐 없더냐?" "못 보았습니다." "야 이놈아 시내를 한 바퀴 돌면서 아무것도 못 보았다니 바보 천치가 아닌가." "임금님, 이 잔에 포도주가 쏟아질까 싶어서 여기에만 집중을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 보았습니다." 임금님이 무릎을 탁 치면서 "잘 보았다. 네가 인생을 성공하려면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거기에 집중을 해야 된다. 주위 환경을 바라보고 이것도 기웃하고 저것도 기웃하고 이것도 손대보고 저것도 손대보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왕이 말한 것입니다.
또 재밌는 이야기를 제가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철길을 지나서 학교를 가는데 그 철길이 상당이 높은 계곡 위를 지나가고 있는데 많은 애들이 그 철길을 지나가다가 철길에서 떨어져서 계속의 물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전혀 동요하지 않고 철길을 건너가는 어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똥똥하고 배가 뽈록 나온 애인데 그는 배가 볼록 나와서 밑에가 안보여요. 배에 가려서 밑에가 안보이니까 앞만 바라보고 나갔으므로 두려움이 없이 철길을 건너갔습니다만 배가 뽈록 안 나온 애들은 자꾸 밑을 바라보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기 때문에 그만 다리가 흔들려서 떨어지고 빠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앞을 바라보고 집중을 해야지 자꾸 옆을 바라보고 환경에 어지러워지면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여 우리가 겁을 집어먹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겁을 집어먹게 하려고 늘 노력하는 것입니다.
3. 강하고 담대하라
사41:10처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속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 이야기에 보면 알렉산드리아에 시골 농부가 일을 마치고 오후에 마차를 끌고 성안으로 들어갔는데 누가 뒤에 하나 탁 올라타거든 보니 마귀 할멈이라.. "왜 내 마차에 올라 타느냐? 내려라!" 그러니까 "나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사람을 잡아 가야 되기 때문에 한 사람을 잡으러 왔다." "무엇으로 잡을 것이냐?" "호열자 병으로 잡을 것이다." "한사람 이상 잡으면 어떻게 하느냐?" 칼을 주면서 "나를 만나서 나를 찔러 죽여라." 그래서 이 농부가 이 마귀할멈으로부터 칼을 받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시에 들어가자 그 이튿날부터 호열자가 유행한다는 소문이 나서 수백명이 죽었습니다. 이 농부가 화가 나서 칼을 들고 이 마귀 할멈을 찾아다니다가 성 입구에서 만나서 칼로써 찌르려고 하니까 마귀할멈이 "잠깐 있어. 잠깐 있어. 왜 찌르려고 하느냐?" "당신 한사람만 죽인다고 했는데 수백명이 죽지 않았느냐?" "아니야. 나 한사람밖에 안 죽였어. 다른 사람들은 겁을 집어먹고 저절로 죽었어.." 우화입니다만 겁을 집어먹고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겁을 집어먹고 뒤로 물러가고, 겁을 집어먹고 주저앉고 겁을 집어먹고 물에 빠져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겁을 집어먹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독일 파사오 대학의 바움가르텐 교수는 유럽에서 목회 심리학 분야의 대가입니다. 그는 인간이 두려움이나 위기 혹은 공포 속에 빠질 때 4가지를 상실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둘째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셋째는 용기를 잃어버리고, 넷째는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마음에 겁을 집어 먹으면 마귀는 공포심을 가지고 와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놀라운 은혜를 빼앗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에서도 위기상황에 겁을 먹으면 두려움 속에서 분별력도 잃고 하나님도 잃고 용기도 잃고 인생의 목적도 잃어버리고 패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겁을 먹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야 되겠는데 어떻게 해야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까? 겁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말씀이 들어와서 우리 마음을 점령하고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공포를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포는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 이길 수 있으므로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믿음 속에 굳세게 서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고 공포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성경에 다윗은 하나님이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크게 사랑했는데 다윗이 하나님께 사랑받은 이유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담대했습니다. 불안과 공포로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고 말씀을 믿고 용감하고 담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양을 칠 때 사자와 곰이 와서 양 새끼를 물고 가는 것입니다. 보통 목동 같으면 도리어 도망을 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음이 강하고 담대하여 하나님 이름으로 곰이나 사자에게 덤벼 들여서 양 새끼를 빼앗고 달려들면 쳐서 곰과 사자를 죽였습니다. 용감했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가 골리앗을 만났을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다 두려워해서 뒤로 물러갔습니다만 그는 골리앗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골리앗보고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골리앗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해서 골리앗을 죽이게 하고 승리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갖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와 같이 계셔서 레마를 주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겁을 집어먹고 물속에 빠졌지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나갔을 때는 물위로 걸었습니다. 똑같은 바다요, 똑같은 파도가 치는데 조금 전에 물위로 걷던 베드로가 조금 후에는 물에 빠졌습니다. 조금 전에는 마음에 담대한 믿음을 가졌으나 조금 후에는 겁을 집어 먹으니까 그만 물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똑같은 베드로인데 마음속에 믿음이 있을 때 그는 기적을 행했으나 겁이 들어왔을 때 믿음을 놓쳐 버리고 물에 빠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므로 항상 기도해서 레마를 받고 말씀을 굳게 부여잡고 말씀위에 서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느낌이 없을지라도 말씀을 인정하고 말씀위에 서서 주님을 바라보고 나가면 우리의 생활 속에 상상을 초월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43:1~2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라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바람과 파도를 꾸짖을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기가 죽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바람과 파도에 겁먹고 기를 죽여 버리고 웅크려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람과 파도를 보고 겁이 나서 배에 잔뜩 구부리고 주저 앉았습니다. 겁을 집어 먹으니까 바람과 파도에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히려 겁을 집어먹지 말고 우리는 믿음으로 바람과 파도를 꾸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믿으라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마11:22~23)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범을 보여준 것은 제자들과 함께 파도를 이른 바다를 걸어가다가 주무실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워 일으키니까 예수님이 바람과 파도를 꾸짖은 적이 있습니다. 바람과 파도가 잠잠해지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시고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을 어디다 두었느냐고 꾸짖은 것입니다.
마8:26에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바람과 파도를 꾸짖지 아니하는 사람을 보고 믿음이 작은 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람과 파도를 꾸짖은 것이 아니라 제자들도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주님을 바라보고 나가는 동안에 우리의 생활 속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좌절 여러 가지 바람과 파도가 쳐오거든 그것을 바라보고 움츠리지 말고 바람을 꾸짖고 파도를 꾸짖고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환경을 잠잠 케하고 원수마귀를 물리치고 낭패와 실망을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꾸짖을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명령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너무나 우리는 환경의 협박에 겁을 집어먹고 움츠리는 것입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나갈 때 다가오는 모든 바람과 파도를 담대하게 대결하여 꾸짖고 이기는 우리가 되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는 명령을 여러분은 잊지 마시고 능력으로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결론>
베드로는 인간으로서 최초로 물위로 걸었습니다.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했습니다. 믿음이란 이런 기적을 오늘날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이 작은 연고로 도중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바람과 파도를 보고 겁먹자말자 믿음도 주님을 바라보는 시각도 담대함도 행함 있는 믿음도 다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우리를 겁먹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욥이 얼마나 잘나갔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큰 축복을 받은 욥이 왜 낭패와 실망을 당했습니까?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자꾸 겁을 집어먹게 한 것입니다. 네 재산 다 잃어버릴 것이다. 너희 자손들이 다 비명횡사할 것이다. 너는 고칠 수 없는 병이 들어 버림을 당할 것이다. 너는 패가망신할 것이다. 이러한 겁을 자꾸 먹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담대하게 믿음으로 이 겁나는 마귀의 계시를 꾸짖지 아니하고 수용했습니다. 마귀가 시킨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잔뜩 겁에 질리니까 그 겁을 통해서 그는 불행 속에 빠져 들어간 것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무서워하는 것이 내게 임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탄식한 것입니다. 여러분 불안과 공포는 주님을 갖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사랑과 믿음과 평안의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가져오는 원수 마귀를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불안과 공포를 가져오는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떠나갈 찌어다. 대적하고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회복될 때까지 꾸짖고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행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 위에 서고 주님만 바라보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 가지고 환경에 대결하면 겁먹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신앙을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가 파도 이는 인생의 밤바다 위를 걸어갈 때 예수님은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시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밤바다 위에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 우리가 구하면 주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레마를 통하여 믿음을 주시고 파도위로 걸어가는 인생을 살지 물에 빠지는 인생을 살기를 원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파도 위는 주의 백성들은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파도 밑에 빠져 들어가는 인생을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혹시 빠져 들어가거든 주님께 회개하고 주님이여 나를 붙잡아 달라고 하십시오. 빠져 들어가는 사람 회계하고 주님께 부르짖으면 버리지 않고 주님께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빠져 들어갈 때 부르짖어 외치니 주님이 와서 꾸짖기는 하셨지만 그를 건져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건져서 평안하게 인생을 살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출처/조용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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