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믿음의 단계적 성숙 (요 4:39-42)

by 【고동엽】 2021. 11. 25.
 
전체 목록가기 믿음 목록 돌아가기
   

 

 믿음의 단계적 성숙  (요 4:39-42)

기독교의 신앙을 과일나무에 비유한다면, 믿음은 나무의 뿌리, 하늘로 높이 곧게 자란 줄기는 소망, 무성한 가지와 열매는 사랑으로 비교될 수 있습니다.  뿌리는 나무의 기초가 됩니다. 뿌리가 든든해야 줄기가 곧게 뻗을 수 있고 줄기가 곧게 뻗어야 무성한 가지와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믿음의 기초가 튼튼해야 언제나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믿음의 뿌리가 없는 신앙생활은 하늘의 소망도 불분명하고 신앙생활의 열매도 빈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은 구원으로 들어가는 열쇠이며,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믿음인데도 많은 교인들이 믿음이 무엇인가를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잘못된 믿음 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믿음이 참 좋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믿음이 훌륭하여 기도를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기도를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분을 보면 "참 열심히 기도하는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열심히 읽는 사람을 보면 "믿음이 참 좋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믿음이 훌륭하여 성경을 열심히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성경을 열심히 읽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는 분을 보면 "참 열심히 성경을 읽는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믿음이 있고 없고 는 그가 행하는 신앙행위에 의하여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무엇을 믿고 있느냐에 따라 판단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믿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보내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 약 2000년 전에 활동하였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있었던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 약속을 믿으매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창 15:6). 구약시대의 모세, 다윗, 이사야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오신 후에는 오신 예수님을 나의 메시야로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습니다. 12제자들과 사도 바울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믿게된 저와 여러분들을 포함한 모든 믿음의 후손들이 있습니다.

가장 믿음의 가장 행운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직접 불림을 받아 믿음에 이르고 제자까지 된 사람들입니다. 12제자들을 포함하여 사도 바울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 물음에 대하여 제자 베드로는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의 물음과 베드로의 대답은 기독교의 기초가 되는 매우 중요한 요점입니다.

본문의 수가성의 우물가의 여인도 믿음에 있어서 행운의 여성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 믿음의 자녀가 된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그녀는 비록 그의 출신성분이 천하고 지금까지의 행위가 부끄러운 삶을 살아왔던 실패한 인생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 졸지에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부분에 있어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후에 그의 인생도 완전히 변하였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난 후 마을사람들에게 이렇게 증거합니다.(29절)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증거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누구이시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이 세상에 유일한 분, 하나님의 독생자, 그 분의 말씀이 참 진리이신 것과 그 분만이 나의 참 생명이 되심을 믿습니까?

믿어야 합니다. 왜 그 분이 나의 구원자 그리스도가 되는지. 왜 참 진리가 되시며 참 생명이 되시는지를 자세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본문에는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 말고도 그 여인의 말을 듣고 믿음의 길로 들어선 많은 사마리아인들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의 믿음이 예수께로부터 직접적으로 받은 믿음이라면 후자는 오늘날의 대부분의 신도들과 같이 전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경우입니다. 물론 결과는 마찬가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모두 확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믿음의 성장의 단계는 믿음으로 들어가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어떠한 단계를 거쳐서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는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믿음은 타인의 신앙을 듣는 단계로부터 시작합니다.(39절)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였습니다.(롬 10:17)

우물가에 여인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에 대한 놀라운 체험을 같은 동네에 사는 사마리아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4장 5절부터 26절까지 생생하게 소개된 내용일 것입니다. 그 내용 속에는 처음 만난 예수께서 자신의 괴롭고 추한 과거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강조되었을 것입니다.

낯선 사람이 자신의 모든 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의 생활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 있는 낯선 분이 자신 모습을 다 알고 있다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러나 설마 하나님의 독생자 메시야라는 생각은 못하고 처음에는 위대한 선지자가 나타난 것으로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자신이 메시야 임을 나타낼 때 그녀는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메시야를 만난 것을 매우 기뻐하였고 그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전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들은 후에 같은 놀라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말 메시야가 나타난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가 속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녀가 과장으로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직접 체험한 신앙과 남의 말만을 좇아서 믿는 신앙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우물가의 여인의 믿음과 그 여인의 말을 듣고 믿게된 마을사람들과의 믿음의 차이는, 마치 이번에 벌어진 서해상의 총격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참여한 해군들과 그들의 증언을 듣고 알게된 시민들과의 차이정도일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서해안에서 교전이 있었다고 들었을 때는 "또 교전이구나!"라고 생각하며 걱정은 하였으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 북한 어뢰정이 격침 당하는 장면과 우리 아군의 배에 적의 총탄으로 뚫린 구멍과 부서진 갑판들을 보면서 대단하였구나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직접 전투에 참가한 병사와는 다를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만난 예수님에 대하여 들으면서 감탄합니다.

그분을 만나 죽을 병을 치료받았다고요? 참 그 분은 대단하신 분이군요!

그분을 만나 마음의 참 평안을 누린다고요? 참 좋겠군요!

그분이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요? 날아갈 것 같겠군요! 이렇게 말하면서 어렴풋하게 예수님을 이해하고 약간의 믿음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으로는 앞으로 닥치는 고난이나 세상의 유혹을 전혀 이길 수 없습니다. 내가 체험한 확실한 나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체험하기 위하여 멀리 산 속으로 가실 필요도 특별한 일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놀라운 예수님의 모습을 체험하곤 합니다. 예수님의 고귀하신 인격, 놀라운 능력, 너무나도 자상하시고 인자하신 사랑, 그를 통하여 이루시고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 등에 놀라곤 합니다. 억울하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에는 억울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차디찬 얼음이 따뜻한 봄 햇살에 스르르 녹듯이 녹아버립니다. 성경에서 만나는 주님은 언제나 다정하게 선하게 나의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우물가에 여인에게서 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직접 예수님에게 달려갔습니다.

2.믿음은 직접 예수께 나아가는 단계가 중요합니다.(40절)

그들은, 그렇게 대단한 분이면, 우물가의 여인이 만난 예수님을 자신들도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수님과의 만남에 대한 시도는 신앙의 전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면 나도 그 좋은 것에 참여해 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닐까요? 지금 세계의 인류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으며 위대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기독교를 통하여 이 세계가 얼마나 많은 발전을 가져왔습니까?  비록 오늘날 사이비 교회와 교인들에 의하여 기독교의 본질이 흐려지고 욕을 먹기도 하지만 예수의 생애, 예수의 정신, 예수의 말씀은 아직도 세계 역사의 중심 축을 이루고 있음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그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나도 예수님을 만나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해 보아야지 않겠습니까?

사마리아인들은 우물가에 여인에게서 놀라운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는 즉시로 예수께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집에 모셨습니다.  여러분들이여! 아직 나의 신앙이 남으로부터의 신앙에 의존하는 믿음에 머물러 계시다면, 확실한 나의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서둘러야 합니다. 우리에게서 지금 가장 서둘러야할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앉은뱅이 거지가 나오는데 그는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기 전까지는 성전 미문에서 빙빙 돌기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예수님의 능력을 받고 치료함을 받은 후에는 성전 안으로 들어가 놀라운 은혜의 생활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아직 외곽에서만 빙빙 돌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이 예배에 참여하신 분들은 이미 신앙생활의 유익과 예수님의 위대성을 들으셨을 줄 압니다. 이제는 적극성을 가지시고 예수님을 만나려는 노력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시간에 될 수 있는 한 앞자리에 앉으십시오. 성경도 깊이 보아야 합니다. 강팍한 마음과 선입관도 버려야 합니다.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믿음의 성숙한 단계는 나의 구원의 예수님을 체험하고 사랑하는 단계입니다.(41-42절)

예수님을 만난다고 다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만나고도 그를 무시한 사람들도 있었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참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독생자로서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도 하였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 천명을 먹이고도 남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 말씀할 때에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도 체험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 자신의 사흘만에 부활한 사건과 하늘로 승천하시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그 분의 말씀은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권위가 있었고 진실함이 있었습니다.  또한 제자들의 발을 닦으시는 모습과 자신을 못박는 원수들을 향하여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함이니 이다.'라는 십자가상에서의 말씀에서 그분의 놀라운 인격과 사랑의 모습을 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그분과 동행한다면,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이러한 놀라운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