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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자의 농장 / 찰스 스펄전

by 【고동엽】 2021. 11. 13.
게으른 자의 농장 / 찰스 스펄전




솔로몬이 본 잡초 무성한 농장

솔로몬은 가끔 제왕의 옷을 벗어버리고 궁궐을 빠져 나와 이름도 모를 시골길을 거닐기를 즐겼음에 틀림없습니다. 한번은 그가 그렇게 하다가, 그의 나라의 한 농부에게 혹한 어떤 농장의 무너진 담 너머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이 농장은 쟁기질한 땅과 포도원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힐끗 쳐다만 보아도 이 농장은 게으른 자의 소유이며, 그가 농사를 게을리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성한 잡초가 온 지면을 덮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고 솔로몬은 한 교훈을 생각해 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만일 지혜(wisdom)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보통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예술가는 경치의 아름다움을 볼 줄을 아는데,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며"( 마 13:12), 따라서 그는 부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가시와 질려로 뒤덮인 들에서도 곡식을 거두어 들일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큽니다.
나는 조용한 눈의 추수라는 제목의 책을 한 권 가지고 있는데 좋은 책입니다. 조용한 눈의 추수는 잘 돌본 농장으로뿐만 아니라, 게으른 자의 땅으로부터도 거둘 수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눈들과 아닌 눈들"이라고 불리는 작은 시를 배웠습니다. 거기에는 진리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눈을 가지고도 보지를 못하는데, 그것은 눈을 하나도 가지지 못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교훈을 찾아 구하는 민첩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모습만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외부의 껍질뿐만 아니라, 바깥 것들에 의해 가리우고 감춰져 살아 있는 진리의 속까지도 살필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나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마음들에게는 질려도 가치가 있는 것이며, 잡초도 그들 나름대로의 교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시들과 질려들이 모두 죄 있는 사람들에게 선생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땅에 나는 가시와 질려들은 죄가 있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의 씨를 뿌리면 어떤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보았다"라고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교훈을 얻었노라."
무엇을 보든지 간에 여러분이 그것을 유심히 살핀다면 그것에서 뭔가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땅이나 바다, 지상, 공중의 어느 곳에든지 책들과 설교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여러분은 모든 살아 있는 짐승들과 새, 물고기, 벌레, 땅에서 솟아나는 모든 유용하거나 무용한 식물들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부터도 희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에게는 포도원의 지면을 덮고 있는 가시들과 쐐기들을 찬양하려는 의도는 하나도 없고, 다만 그는 그것들에게서 교훈을 발견하였다는 뜻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쐐기풀에 찔리는 사람들은 많아도 그것에 의하여 교훈을 얻는 사람은 적습니다. 가시나무에 의하여 상처를 입는 사람들은 더러 있었지만, 그것에 의하여 뭔가를 깨달은 사람은 여기에 한 명밖에 없습니다. 지혜는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며 질려에서 무화과를 따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해롭고 악한 풀들로부터 좋은 것을 추출해 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가시나무를 보고 당혹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그것들로부터 유익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그것을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시련과 고통들, 근심과 혼란들, 작은 고초들과 실망들은 여러분이 마음만 먹으면 모두 유익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솔로몬처럼 그런 것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그것들을 보고 교훈을 얻도록 하십시오.

① 우리는 먼저 게으름뱅이에 대한 솔로몬의 묘사를 고찰할 것입니다.
그는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② 두 번째로 우리는 게으름뱅이의 땅에 대한 그의 묘사를 고찰할 것입니다.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물이 지면에 덮였도다."
③ 이 두 가지를 살펴 본 다음에는 우리는 이런 쓸모 없는 땅 조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교훈들을 추정해보려고 노력함으로써 마치려고 합니다.

솔로몬이 게으른 사람(Slothful man)
솔로몬은 우리 중의 어느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아는 것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는 이 잠언서를 쓸 때 그는 신의 영감을 받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게으른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게으른 사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젠체하는 모습을 보고, 여러분은 그가 영국은행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매우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떻게 해서 지혜를 얻는지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생각해보려고 애쓴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서둘러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점프는 하지 않고 누워서 뒹굴면서 결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며, 모든 논점들을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명상이란 너무도 여운 작업입니다. 배우는 것도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본성적으로 약삭빠르다는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가 알고 있는 이상은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잠언은 그에게 아첨하지 않습니다. 나는 솔로몬이 그를 "지혜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 것은 옳다고 확신합니다. 솔로몬은 오늘날의 고상한 예법에 의하면 다소 무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신사는 포도원과 밭을 가지고 있으며, 가련한 리쳐드가 말했듯이 "내가 말 한 필과 젖소 한 마리를 가지고 있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내게 안녕히 계십시오 라고 말을 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밭과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지혜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가지고 있는 현금에 의하여 그 사람의 지혜를 측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가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만일 여러분이 부를 축적했다면 여러분은 그런 업적 때문에 곧 아첨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그렇지만, 성경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밭과 포도원을 가지고 있든 없든 간에 그가 게으름뱅이라면, 그는 바보라고 솔로몬은 말을 합니다. 또는 그의 이름을 조금 더 길게 쓴다면, 그는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이해할 능력도 전혀 가지고 있지를 못합니다. 그가 게으름뱅이라면 그는 머리가 빈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신사라고 부를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를 땅을 가진 부호라고 부를지 모릅니다.
그는 포도원과 밭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소유 때문에 그가 더 나아진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없고 말고요. 그는 그만큼 더 나빠졌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혜가 없는 사람이며, 따라서 그는 자산을 운용할 줄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게으른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고 솔로몬이 명확하게 말을 한 것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용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은혜의 교리를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 성도들의 선택, 하나님의 예정, 신의 섭리의 엄정하심, 성령역사의 필요성, 우리의 믿음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 은혜에 대한 모든 영광스러운 교리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신사들은 이런 모든 교리들로부터 자신들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이론을 유추해 내었고, 따라서 그들은 게으름뱅이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신조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를 위하여 일하라고 촉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게으름뱅이들의 견해에 의하면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기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하늘의 도우심을 기대하면서, 풀이 사람의 발목까지 자라도록 그냥 내버려둡니다. 그를 일깨우기 위하여 영원한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되겠지만, 그는 그것을 아주 부당한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영혼들을 구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열렬한 사람들에 대하여, 그가 부루퉁한 얼굴로 흰 머리를 흔들면서 심한 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가 젊은이들을 실망시키며, 거대한 증기 방망이처럼 그들을 납작하게 만들며, 그들을 불건전하고 무지하다고 혹평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 교조주의적인 사람의 비난들을 넘어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매우 유식하고 매우 궤변적인 게으름뱅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이 서둘러 달려와서 그는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는 정보를 우리에게 줌으로써, 이 신사를 제거해 줄 것입니다. 아니, 그는 정통적인 표준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모든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만, 솔로몬은 또 다른 표준을 적용하여 그가 지혜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교리를 알고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는 그것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또한 그는 은혜의 교리들이 우리로 하여금 교리에 대한 은혜를 추구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것을 볼 때, 그가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잠을 자지 않고, 그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우리가 배운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선한 일들을 하도록 예정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나 내가 어떤 교리로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일들에 대하여 게으르며, 무관심한 것이 정당하다는 추론을 이끌어 낸다면, 그것이 아무리 진리라 할지라도 우리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며, 바보처럼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오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양식이 될 것을 취하여 독약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업 또는 자기의 영혼에 대해서 게으르거나 말거나 간에 게으름뱅이(sluggard)는 "지혜가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지혜가 있는가 하는 것을, 그가 하고 있는 유익한 활동들을 보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혜자가 우리에게 매우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자신을 "문화인"이라고 부르면서 어떤 것도 문화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대의 사상은, 그것의 실제적인 작용과 관련하여서 내가 아는 한, 한 병의 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부터 실질적인 것이 하나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편 분변하고 나누고 논쟁하고 토론하고 제안하고 논박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 동안에 밭이랑에서는 독 당근(hemlock)이 자라며 쟁기는 녹이 습니다.
친구여, 만일 여러분의 지식이, 여러분의 문화가, 여러분의 교육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의 날과 시대에서 하나님을 실질적으로 섬기도록 인도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솔로몬이 지혜라고 부르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도성 인신하신 지혜인 찬양 받으실 분과 같지도 않은데, 왜냐하면 "그는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셨다"( 마 9:35)라고 쓰여있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사람(lazy man)은 우리 구주와 같지 않은데, 이는 그분이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지혜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우쭐대는 문화는 물거품과 같고 이론만 강합니다.
지혜는 밭을 갈며,
지혜는 포도원을 가꾸며,
지혜는 작물들을 돌보며,
지혜는 모든 것을 최고로 선용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비록 이것저것을 많이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는 "지혜가 없는 자"인 것입니다.

왜 그가 지혜가 없습니까?
그것은 기회들이 다가오되 그는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날이 오고 가되 그는 그 시간을 아무 목적 없이 흐르게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건 너무 심하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여러분 스스로에게 최대한으로 까다롭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시기 바랍니다~나는 날라가고 있는 시간들을 잘 사용하고 있는가?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은 포도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개간하지 않았습니다. 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경작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모든 기회들을 이용하고 있습니까?
나는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섬길 모종의 능력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분은 우리가 필연적으로 무용지물이 되어 버릴 곳에다 우리를 놓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불로 우리는 어디선가 빛을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조그만 촛불이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든 물가에다 씨를 뿌리고 있습니까? ( 전 11:1).
우리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그 손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까? ( 전 11:6).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솔로몬의 철저한 질책에 의하여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게으른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회들이 있는데도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의무들을 수행해야 하는데도 그것들을 행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이 한 필지의 땅을 갖도록 규정하셨는데,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지주가 되게 되는 그런 경탄(admiration)스러운 제도 하에서 그가 의도한 것은, 각자가 자기의 땅을 가지되 그것을 묵히지 말고 그것을 경작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신 것은, 그가 그 동산을 거닐면서 타락 이전 땅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만 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그것을 다듬고 그것을 지키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유대인에게 그들 각자의 땅을 분정하여 주실 때 염두에 두셨던 목적과 꼭 같은 것입니다. 그는 그 거룩한 땅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의 노동에 의해서 최고의 비옥한 땅이 되도록 의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밭과 포도원을 소유하는 것에는 의무들이 수반되게 되는데, 게으름뱅이는 그것을 수행하려 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는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여러분의 지위는 무엇입니까?
아버지입니까?
주인입니까?
종입니까?
목사입니까?
교사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바로 그 분야에서 여러분의 농장과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그 지위들을 온당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존재의 목적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물주가 여러분 앞에 놓으신 고상한 소명(high calling)을 그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게으른 농부(slothful farmer)는 위의 두 가지 점에서 그리고 또 다른 점에서도 현명치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능력이 있었음에도 그 능력들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려고만 했으면 그 밭을 경작하고 그 포도원을 개간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병약해서 누워 있어야만 했던 것도 아니라, 스스로 게으른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능력 범위를 완전히 초월하여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따라 일을 하도록 기대되는 것이지,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따라서 일을 하도록 기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달란트를 가진 자는 다섯 달란트의 이윤을 남기도록 요구 받은 것이 아니라 두 달란트의 요구를 받았습니다.
솔로몬이 말한 게으른 사람은 너무도 게을러서 자기가 충분히 이행할 수 잇는 임무들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기능들을 놀리고 있으면서도 거의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능력들을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할 뿐, 그들을 만드신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뭔가 선한 일을 할 권능을 주셨다면, 선을 행하도록 하십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사악하고 피곤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어두운 세상에서는 반딧불(glow~worm`s light) 같은 빛이라도 가리워서는 아니 됩니다. 이렇게 거짓과 오류로 가득 찬 세상에서는 한 가닥의 신적 진리라도 숨겨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진리와 의를 위하여 목소리를 높입시다. 지혜 없는 자들이 되지 맙시다. 기회들을 사용하지 않으며, 의무들을 이행하지 않으며, 능력들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문제와 관련하여서 게으른 사람은 참으로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가장 진지한 주의를 요구하는 문제들을 가볍게 취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 보세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개간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영혼의 흙덩이들을 아직도 쟁기질(ploughshare)하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여러분 속에 말씀의 씨가 뿌려지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그 씨가 뿌리를 내리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은 아직도 욕망의 어린 나무들에게 물을 주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는 죄의 잡초를 뽑아 버리려고 노력해보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은 아직도 한 조각의 벌거숭이 땅이나 거친 황야입니까?
가련한 영혼이여! 여러분은 거울을 보면서 한창 동안 몸을 잘 치장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까?
언제까지나 여러분은 여러분의 불쌍한 육체만을 단장하고 있을 것입니까?
그 육체는 벌레의 먹이밖에 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숨을 거두어 가시면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영혼을 단장하거나 씻기거나 영혼에게 옷을 입히지도 않고, 불쌍하게 근야 내버려두다니요!
오, 그렇게 내버려둬서는 아니 됩니다!
여러분은 더 열등한 부분에게는 관심을 기울이고, 더 우월한 부분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아 썩게 내버려 두는군요. 이것은 바로 더 없는 어리석음(height of folly)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대하여 게으른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만일 내가 게으르게 된다면, 나는 나의 밭이나 포도원에 대해서는 게으를망정, 내 영혼에 대해서는 결코 게으르게 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여러분은 참으로 구원을 받았는데도 주님의 일을 게을리합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여러분은 너무도 지혜가 없다고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영혼이 당할 위험을 안다고 하면, 그 나무도막 같은 사람들을 불꽃으로부터 건져내려고 진지하게 노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게으름뱅이라니!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반나절만 근무하는 그리스도인 말입니다!
자기의 주님을 위해서 전혀 일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요?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죽음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지옥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사단은 게으르지 않습니다. 어두움의 권세들은 모두 부지런합니다. 주인께서 여러분과 나를 그의 포도원으로 보냈는데 어떻게 우리가 게으를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는데도, 그를 섬기는데 시간을 쓰지 아니하고 진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혜가 없는 사람임에 틀림 없습니다. 사물 본래의 합목적성(fitness)에서 보더라도 구원받은 사람은 열렬한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자기 주인의 일에 게으른 그리스도인은 그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진수는 하나님께 거룩하게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해 봐야 할 정도로 의심스러운 종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불 경건한 생활을 하면 불안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경건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그들은 씻지 않은 부분의 때가 드러나 보일 정도까지는 세수를 했습니다.
한 하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나의 여주인이 성찬식에 참여한 것을 볼 때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녀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를 뻔 했습니다."
여러분은 웃고 계신데, 웃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상점에는 물건이 하나도 없는데 모든 신문에다 그들의 사업광고를 내는 사람들은 웃기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종교를 과시는 하면서도 하나님의 영을 조금도 가지고 잇지 못하는 것이 그와 같습니다.
나는 몇몇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오히려 그들이 그리스도께 정당한 대접을 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나는 그의 제자가 아닙니다. 나 같은 놈도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있을 만큼 그가 그렇게 나쁜 분은 아니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기만 하는 사람들이 될까 봐 나는 걱정입니다.
게으른 종들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의 주인들도 매우 게으르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내어쫓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게으름뱅이들을 고용하고 나서 그들의 거북이 같은 행동에 만족해하는 사람은 매우 활동적인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게으른 자는 "지혜가 없는 자"입니다. 그는 그의 주인을 섬기는 데서 얻을 수 있는 영예와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는 그가 존중한다고 고백하는 도리에 대하여 불명예를 초래하는 사람이며, 그는 자기의 죽어가는 침상 위에다 가시들을 쌓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입장을 정리해봅시다~게으른 사람은, 그가 목사이든 집사이든 평신도이든 간에,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게으름뱅이의 땅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도다."

우선, 땅은 뭔가를 산출(produce)하려 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밭이나 포도원이 되기에 알맞은 땅이라면 이런 저런 열매를 맺어야만 되고 또 그렇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과 나도 우리 마음속에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차지하도록 주신 영역에서, 틀림없이 뭔가를 생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생산치 않으면서 이 세상을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선이나 악 둘 중의 어느 하나는 반드시 행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일에 게으르다면 악마의 일에는 활동적일 것입니다. 게으름뱅이는 다른 어떤 때보다도 잠을 잘 때 가시와 질려가 가장 많이 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정원에는 꽃이 아니면 잡초가 나듯이, 그리고 과일이 아니면 가시나무들이 나듯이, 우리 집이나 우리 학교, 또는 우리 교회에도 선한 것이 아니면 악한 것이 나게 마련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땀을 흘리며 일하여 좋은 밀을 수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라지를 뿌리는 것이며, 그것들은 마침내 단으로 묶여서 무시무시한 불꽃 속으로 던지우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유념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하여 경작되지 않는 영혼은 그 자연적인 산물을 내게 도리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그 땅의 자연적인 산물은 무엇이겠습니까?
가시덤불이나 거친 풀 아니면 다른 쓸모 없는 잡초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지성의 자연적인 사물은 무엇입니까?
죄와 비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위한 훈육을 시키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그것의 자연적인 산물은 무엇이겠습니까?
불경건과 악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거리들과 길들과 골목들을 그대로 버려둔다면, 이 거대한 도시의 자연적인 산물은 무엇이겠습니까?
범법과 비행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뭔가를 거두기는 할 것입니다. 땅의 자연적인 산물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죄와 죽음과 타락일 것입니다.
우리가 게으른 사람이라면, 우리 마음과 우리 지역의 자연적인 산물은 우리에게 가장 불편하고 가장 불쾌한 것이 될 것입니다.
가시덤불 위에서 잠을 자고, 거친 풀을 베고 잠들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으름을 피우면서는 어떤 휴식도 취할 수가 없습니다. 게으름을 피우면 병만 생길 뿐,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악을 근절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사단은 씨를 뿌립니다. 만일 여러분이 선한 씨를 뿌리지 않는다면 사단은 악한 씨를 뿌려 땅을 뒤덮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악으로부터는 고통이, 그리고 시간에 대한 후회와, 아마도 영원에 대한 후회가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오 여보시오, 만일 여러분이 잠만 자면서 시간을 낭비한다면, 여러분에게 맡겨진 정원은 해롭고 고통스러운 것들로 여러분에게 보상을 해 줄 것입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창 3:18).

많은 경우에 이 악한 산물은 엄청나게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밭과 포도원은 한번도 개간하지 않은 한 필지의 땅보다는, 가시덤불과 거친 풀들을 더 많이 생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땅이 정원으로 쓸 만큼 좋은 땅일 경우, 그 주인이 손을 놀리지 않는다면 많은 잡초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붉은 포도주를 위한 포도원을 하기에 알맞은 옥토라 할지라도 잡초들만 무성하게 될 거이니, 게으른 주인은 그것을 보고 놀라서 눈을 비빌 것입니다.
중생했더라면 하나님을 위해서 가장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사람을 만일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그는 사단을 위해서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더라면 그 주민들이 회심하여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할 수 있었을 그 지역도, 복음과 관련하여 가장 비열한 원수들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역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쉬면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우리가 게으르면 가장 좋은 것이 가장 나쁜 것으로 되어버릴 것입니다. 게으름을 피우면 악만 더할 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의 길을 알기를 원한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간곡한 마음으로 일러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길을 잃기를 원하신다면 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근야 등한히만 하면 된답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히 2:3).
여러분이 하나님께 뭔가 수확을 드리기 원한다면, 여러분은 쟁기질하고 씨 뿌리고 관개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나는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이 사단의 독 당근으로 뒤덮이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의 본성이라는 이랑들을 내버려두기만 하면 됩니다.
게으른 사람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잠 24:33)하고 청합니다. 그렇게 하면 가시덤불과 거친 풀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번성하여 그를 마구 찌르게 될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의 포도원을 쳐다보는 한편, 또한 불 경건한 게으름뱅이의 마음속도 들여다봅시다. 그는 회개와 믿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영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영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에게는 너무도 벅찬 일입니다. 그는 일들을 안이하게 처리한 후에 손을 모으고 조금 더 자기를 원합니다. 그의 마음과 인격에서 자라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영적인 게으름뱅이들에게서 술 취함, 더러움, 탐냄, 분노, 자랑, 그리고 온갖 종류의 가시덤불과 거친 풀들을 폴 수 있을 것입니다.
경건한 사항들이 관련되어 저지를 함으로 인하여 이런 고약한 잡초들이 자라지 못하는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고약한 다른 종류의 죄들이 자라게 됩니다.
마음이 완전히 비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을 차지하지 않으신다면 마귀가 그것을 차지할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여,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결심을 하지 않을 경우, 여러분은 중간상태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편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원수 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백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사단이 친히 손으로 분명하게 쓴 글씨가 여러분 위에 있는데, 여러분은 그 오명을 인식하지 못한다 말입니까?
종이 위에다 그리스도께서 그 분 자신의 귀한 이름을 기록해 놓지 않으셨다면, 거기에는 사단의 서명이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나는 노골적으로 죄를 짓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도덕적인 사람입니다"라는 등의 말을 말입니다.
아아!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고찰해보고 살핀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원수가 그리고 순결을 증오하는 것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지 않으며, 그의 아들도 사랑하지 않으며, 그의 복음도 사랑하지를 않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에서 멀리 떠나 있으며, 여러분 안에는 온갖 모양의 악한 욕망들과 헛된 생각들이 있으며, 이것들은 여러분이 영적으로 게으름뱅이인 한 계속해서 번성하고 증가할 것이며, 따라서 여러분의 마음은 개간되지 못한 채로 남게 될 것입니다.
오, 하나님의 영께서 여러분을 일깨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분발하여 간절하고 진지한 생각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이런 고약한 것들이 뿌리 뽑혀야 하며, 여러분의 마음을 죄책이라는 쟁기로 갈아 엎어서 위대한 농부에게 수확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친구여, 여러분이 만일 그리스도를 믿을진대, 하지만 게으른 그리스도인일진대 나는 울타리 너머로 여러분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여러분에게도 가시덤불과 거친 풀들이 많이 나고 있을까 봐 걱정스럽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여러분이 다음과 같이 노래 부르는 것을 내가 듣지 않았겠습니까? ~

"그것은 내가 간절히 알고 싶어하던 내용입니다."

이런 문제는 종종 제기될 것인데, 왜냐하면 게으른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반드시 의심이라는 씨가 자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웨슬리 선생의 일기에서 그 자신의 구원에 대한 의심을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수확하는 일에 너무 바쁜 나머지 자기의 하나님을 불신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받은 겨자씨를 한번도 뿌린 적이 없기 때문에, 믿음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믿음을 응용함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뿌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자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살며, 그의 믿음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적극적으로 활동된다면, 그의 믿음은 뿌리를 내리고 위로 자라며, 강하게 되어서 그의 의심이 질식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서글프게도 병적인 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만을 품고 안달하며 이기적이 되고 불평을 하는데, 이 모든 것은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게으름뱅이의 정원에서 자라는 잡초입니다.
나는 게으른 사람은 너무도 성질이 까다로워서 그 어느 것도 그를 기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많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만족스러울 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활동적인 교회라 할지라도 만족스러울 만큼 정력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게으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많은 성령의 열매를 인정하시는 곳에서 온갖 종류의 단점들을 찾아내곤 합니다. 이런 비판적인 태도, 이런 다툼, 이런 영구적인 불평은, 사람들이 죄악으로 꽉 찬 안일 속에서 손을 모으고 있을 때, 그들의 정원에서 반드시 자라게 되는 가시들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께 열매를 드리지 못한다면, 그 마음은 분명히 본질이 악한 것, 여러분에게 고통스러운 것, 그리고 여러분의 동료들에게 해가 되는 것을 산출하게 될 것입니다.
종종 가시덤불이 좋은 씨를 질식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울창하고 빠르게 자라난 좋은 씨가 가시덤불을 질식시키는 것은 매우 축복된 일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가 매우 많은 사람들이 되게 하시며, 그들의 은혜와 업적들이 울창하게 하시어, 사단이 가라지를 뿌릴 때에도 그것들이 설 땅이 없음으로 인하여 자라날 수 없게 만드십니다.
성령께서는 그의 권능으로 악인의 마음을 약화시키시고, 그것이 더 이상 우세를 유지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친구여, 만일 여러분이 게으르다면, 여러분의 마음 밭을 살펴보고 그 모습을 애통해하며 우십시오.

다음에는 내가 여러분에게 여러분 자신의 집과 가정을 들여다보라고 청해도 되겠습니까?
사람이 자기집의 밭을 경작하지 않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나는 나의 전도 초기시절에 나와 함께 동네 안팎으로 드나들던 한 사람을 기억합니다. 나는 즐겨 그와 함께 다니다가 어떤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그를 떨쳐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다른 어떤 사람과 친근히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매일 저녁 나돌아다녔습니다. 그의 많은 자녀들은 자라서 사악한 자녀들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아버지는 이 모임 저 모임 참석하면서도, 자기 자식들을 구주께로 인도하려고는 애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게을리하면서 다른 곳에서 열심을 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아 1:6)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요!
여러분은 자녀들이 너무 어릴 때 그들에게 선입관을 심어주는 것이 매우 나쁘며, 따라서 그들이 자라 스스로 자기들의 종교를 선택할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그의 아들 중의 하나는 팔이 부러졌는데, 의사가 그 팔을 고정시키는 동안 그 소년은 내내 욕을 하였습니다. 그 선한 의사는 말하였습니다.
"아아! 내가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 당신에게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당신 아이에게 올바른 선입관을 심어줄 까봐 두려워하였지만, 악마는 그런 기우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에게 다른 방식의 선입관을 심어주었는데,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말입니다."
우리 밭에서 작물이 많이 나도록 선입관을 심어주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가시덤불로 뒤덮이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의 마음을 선하게 개발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저절로 잘못된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본질이 타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 우리가 이것에 대하여 지혜스럽게 생각함으로, 우리 애들 중의 하나도 파멸자의 밥이 되도록 놔두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정에 대한 이런 이야기는 학교에도 적용이 됩니다.
얼마 전부터 우리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한 신사는 수년 동안 무신론자였습니다. 나는 그와 대화하는 중에 그가 우리의 유수한 학교들 중의 하나를 졸업했다는 것과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는 불신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일마다 교회의 뒤쪽 구석의 높은 발코니로 아이들을 몰아 넣었는데, 거기서는 목사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여름에는 지독히 덮고 겨울에는 지독히도 추운 그 구석에 그대로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주일마다 많은 기도들이 드려졌지만 하나도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기도는 없었습니다. 그는 기도가 지긋지긋해져서 일단 이 학교를 졸업하기만 하면 종교하고는 절연하겠다고 결심을 하였답니다. 이것은 서글픈 이야기입니다만, 종종 일어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주일학교 선생님들이여, 여러분들은 어린이들을 위한 여러분의 교수(teaching)가 너무 지긋지긋해서, 그들로 하여금 주일을 증오하도록 만들 수도 있답니다. 여러분은 아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않음으로써 수업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덕보다는 해를 더 끼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엄격함과 부드러움이 결여됨으로 인하여 가정이라는 밭에다가 종교에 대한 사랑이라는 좋은 씨를 뿌리기보다는, 종교에 대한 증오라는 가시덤불과 거친 풀들을 흩뿌린 그리스도인 아비들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오, 아이들이 우리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도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가 우리 자녀들과 더불어 살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그런 흠모할 만한 경건에 대하여 본을 보임으로 아들과 딸들이 "우리가 우리 아버지의 길을 밟자. 그는 행복하고 거룩하게 사신 분이셨다. 우리 어머니의 길을 따르자. 그분은 달콤함 그 자체였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만일 경건이 여러분의 집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집 곁을 지날 때 우리는 무질서, 불순종, 옷에 대한 자랑, 어리석음, 그리고 악의 싹을 보게 도리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을 게으름뱅이의 밭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다가오는 시대에서 그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집사님, 구역장님, 구역 강사님들이여, 자기가 기경해야만 할 밭의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십시오.
형제들과 자매들이여,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만일 여러분과 내가 우리 주님의 일의 어느 한 부분을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충실하지 않다면, 우리는 과수원에 심긴 열매 없는 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큰 손실인데, 왜냐하면 그 주인에게 과실을 드릴 나무들이 심겨야 할 자리를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땅을 괴롭게 하며 우리 주님께 해를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셨습니까?
여러분이 만일 그리스도께서 정산하실 때 영으로 간주된다면 그것은 매우 서글픈 일입니다.
형제여, 그렇게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익을 남기지 않는다면 적자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우리 주님과 주인께 이윤을 남기는 자들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중에 자기인생의 업적을 후회 없이 바라볼 수 있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뭔가를 옳게 하였다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 탓으로 돌려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통곡을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고쳐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지만 그저 쓸데없이 탄식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께 구하여, 앞으로는 우리가 지혜 없는 사람이 되지 않고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하는 사람이 되도록, 그리고 그것을 행할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아는 사람이 되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데 전념합시다.

나는 세상의 넓은 밭을 보라고 여러분에게 한번 더 청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가시덤불과 거친 풀로 뒤덮여 있는 것이 여러분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까?
만일 어떤 천사가 온 인류를 둘러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잡초가 온 땅을 뒤덮고 있는지요!
들판 저 멀리까지 천주교의 양귀비(진홍색의 식물임~역자 주)들로 뒤덮였고, 울타리마다 회교의 야생겨자로 뒤덮여 누렇습니다. 넓은 지역이 불신과 우상숭배의 가시덤불로 뒤덮여 질식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가 포악, 압박, 술 취함, 반역, 더러움, 비참으로 가득합니다. 달이 무엇을 쳐다보고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태양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겠습니까!
이 얼마나 공포스런 장면들입니까!
게으른 교회가 언제까지나 이런 모습을 방치만 해 둘 것입니까?
거의 1900년이 흘렀습니다만, 게으름뱅이의 포도원은 조금도 개선된 것이 없습니다!
영국은 삽질을 했습니다만, 잡초가 완전히 뽑혔다거나, 쟁기질까지를 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바다 건너편에도 마찬가지로 좋은 땅이 있고 쟁기질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만, 거기 역시 잡초가 무성합니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선한 일이 진행되어 왔습니다만, 아직도 세상의 많은 부분은 기경도 되지 않은 채 황무지, 버림받은 땅, 짐승들이 울부짖는 광야로 남아있습니다. 지난 모든 세월 동안에 교회는 무엇을 해왔단 말입니까?
초기 몇 세기를 제외하고는 교회가 선교하기를 그쳤으며, 그 이후의 교회는 거의 살아 있는 교회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광야를 개간하려는 노동을 하지 않자 그것은 즉시 황무지로 변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외계에 대하여 무관심할 때 기독교 공동체가 번성했던 때가 있었습니까?
주인은 포도원에 투입된 우리가 잡초를 뽑지 않는다면 포도원은 번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작물도 늘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하지만, 지난 1900년 동안에 교회가 무엇을 했느냐고 묻기 이전에 우리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봅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려 하고 있습니까?
이 대영제국의 교회의 선교가 지금처럼 그렇게 항상 비참해야만 할 것입니까?
우리가 가장 우수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집안에만 머무르려 할 것입니까?
우리가 100번이나 반복해서 울안의 밭만을 갈아엎는 동안에, 밖에 있는 수백만 정보의 땅에는 가시덤불과 거친 풀들이 들끓게 됩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내버려두려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욱 영적인 생활을 허락하셔서 우리를 잠으로부터 깨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룩한 파수꾼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내가 증왕에 게으른 교회의 밭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어떤 것이 교회이고 어떤 것이 세상인지 구별을 할 수 없었었노라.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잠만 자고 있었고 아무도 그를 깨울 수 없었노라."

교훈
나도 이것을 가르칠 자격이 없기 때문에 나 스스로 이것을 배우고자 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생각하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의 교훈은 도움을 받지 못한 본성은 항상 가시덤불과 거친 풀들을 산출할 뿐, 다른 것은 산출하지를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영혼이여, 만일 은혜가 없었다면 너도 그런 것을 산출할 수박에 없었을 것이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다른 어떤 것을 산출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건 여러분의 본성이 아닙니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것을 생산할 수 있게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 아주 매혹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그 입술도 하나님의 은혜가 거룩하게 하지 않았다면, 쓸데없는 가요나 부르면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지금 그리스도께 밀착되어 있는 여러분의 마음도 계속해서 우상을 좇아갈 것입니다~여러분은 그 우상이 무엇인지를 알 것입니다~신의 은혜가 없었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왜 은혜가 여러분과 나를 찾아 주셨습니까~왜입니까?
다시 말합니다. 왜입니까?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 11:26).
은혜가 행한 일을 회상해 봄으로써 우리 생활에서 그 은혜의 결과가 명백히 나타나도록 합시다.
여러분 형제와 자매들이여, 과거에 우리 본성이 그렇게도 많은 가시덤불과 거친 풀들을 산출했다면~우리가 그것들을 얼마나 많이 산출했는지를 하나님만이 아십니다~이제 우리가 위대하신 농부를 위해서 좋은 곡식을 그만큼 많이 산출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정욕을 따를 때보다 그리스도를 덜 섬기렵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희생을 드릴 때보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더 적은 희생을 드리렵니까?
여러분 중에는 아주 전심으로 악한 자를 섬긴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마음을 반쪽만 드리겠습니까?
여러분이 악한 영 아래서 생산했던 것보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맺으시는 열매가 적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본성을 그대로 놔두면 어떤 산물이 나온다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제 다음에는 본성적인 선한 의지가 얼마나 무가치한가를 살펴봅시다.
밭과 포도원의 풀이 웃자라도록 놔두는 이 사람은, 항상 좋은 날이 오면 열심히 일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더 자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고 인정해야만 우리는 그를 옳게 판단하는 것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조금 더 자자 조금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조금 더 눕자"( 잠 6:10)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졸고 난 다음에 소매를 걷어 붙이고 힘차게 일을 하려 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라고 해도 의지만은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들은 그 의지를 결코 실천하지를 않습니다. 사단은 바로 이런 방법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잠을 자게 만듭니다. 그들은 열렬한 설교를 듣고서도,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예, 그렇습니다. 이 먼 나라가 내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는 여기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곧 집으로 돌아갈 작정입니다"라고 말만 합니다. 그들은 40년 전에도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만, 그 후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아주 젊었을 때 깊은 감명을 받고 거의 그리스도인이 될 뻔하였습니다만, 그들은 지금까지도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40년 동안이나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분명히 실컷 잠을 잣을 것입니다!
애당초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잠을 자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장은 그리스도께 돌아오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하리라고 결심을 합니다.
친구여, 언제 그것을 실행할 것인가요?
"내가 죽기 전에 하지요."
죽기 한두 시간 전으로 미룬다는 말이죠, 그렇죠?
그러다가 의식불명이 됐을 때, 고통을 완화시키려고 마취를 했을 때, 그 때 여러분의 영혼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겠다는 말이죠?
그게 현명한 일인가요?
틀림없이 여러분은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한 시간 안에 죽을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에 우리 부시장이 차를 타고 가다가 죽었다는 얘기를 여러분은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그는 그것에 대해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안심하고 차를 타고 가다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직장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죽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여러분이 손에 쟁기를 들고 일을 하다가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지난 주일에 교회에서 보았던 교인이 갑자기 죽었다는 말을 듣고서 놀란 적이 종종 있습니다~가게를 보다가 심판대 앞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단 말입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사람이 교회 문을 나서다 문턱에서 죽은 일도 있었습니다. 교회 식구들이 여러 명 죽는데, 모두 예기치 못한 죽음들입니다. 그리고 가끔씩 어떤 사람들은 준비가 안된 채로 갑작스럽게 사라집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회심도 하지 않는 채 죽으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죽음들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언젠가는 믿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만 조금 더 자고 싶어했을 뿐이었습니다.
오 나의 청중들이여, 조금 미루는 것을 그리고 약간 연기하는 것을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시간을 충분히 낭비했습니다. 시계가 종을 또 다시 치기 전에 즉시 행동에 옮기십시오. 성령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여러분이 결심을 하게 되기 바랍니다!

"당신은 내가 조금 더 자자고 하는데 반대하지 않겠지요?"라고 게으름뱅이는 말합니다.
"당신은 나를 너무 일찍 깨웠습니다. 나 조금만 더 잘게요."
"나의 사랑하는 이여, 아주 늦은 아침이랍니다"라고 그는 대답을 합니다.
"좀 늦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난다고 해도 그렇게 많이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를 다시 깨우면 대낮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대답합니다.
"하루 중 가장 더운 때이군요. 일어나기는 했지만 소파로 가서 조금 더 쉬면서 뜨거운 햇볕을 피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이 거의 저녁 때가 되었을 무렵에 문을 두드리자 그는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지금 일어나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날이 벌써 다 가버린걸요."
여러분이 그에게 풀이 웃자란 밭과 잡초가 무성한 포도원을 상기시키자 그는 "예, 알았어요. 일어나야죠"라고 대꾸합니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흔들면서 다시 말을 합니다.
"시계가 다시 칠 때까지 기다리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나 한 일이 분 가량 더 쉬겠습니다."
그는 등이 구들장에 붙어버렸습니다. 그는 살아있지만 게으름 속에서 죽어 묻혀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영원까지 잠만 자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심판 날이 그를 깨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보니"( 눅 16:23)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영적 게으름뱅이인 여러분이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더 늦기 전에 여러분 스스로가 떨쳐 일어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영영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이기"( 고후 6:2) 때문입니다. 지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내일이란 말은 바보들의 달력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말입니다. 오늘은 현명한 자의 시간이며, 우리의 은혜스러우신 하나님의 택하신 때입니다.
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셔서 현재라는 시간을 붙들게 해 주시기를,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즉시 여러분 자신을 주께 드리기를, 그리고 주의 포도원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하기 바랍니다~


"신속히 뿌리 뽑으라.
아무 이익도 없는 해로운 잡초들을,
그것들은 건전한 식물들로부터
흙의 자양분만을 빨아먹나니!"





출처: 포도나무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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