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목회와신학 94년 5월호
필자: 임윤택
풀러신학교-창조적 긴장감이 넘치는 세계선교의 활화산
임윤택/ 풀러신학교 조교수
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는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참으로 독특하고 다양한 개성을 가진 학교이다. 한국 교계에도 잘 알려진 학교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풀러처럼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학교도 많다. 풀러 신학교는 과연 어떤 학풍과 특성을 가진 학교인가?
필자는 지난 6년간 풀러 동산에서 지냈다. 그동안 선교대학원에서 선교신학(Ph.D.)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의 학사담당 직원으로 3년을 보냈다. 졸업 후에 학교에 남아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풀러 전체에 대한 지식은 극히 제한적일 뿐이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풀러 동산에서 지내는 동안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풀러 학생들과 교수들이 가진 문화와 언어, 교회전통과 신조들이 각기 다르고 다양한데, 어떻게 해서 저들이 풀러신학교라는 하나의 헌신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 복음주의 신학과, 선교학, 결혼과 가족치료학, 심리학과 심리치료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의 권위 아래 복종되며 체계적인 학문으로 정립되어, 급변하는 21세기 세계교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들에게 전수될 수 있을까?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이 학교의 신학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전반적인 풀러의 학풍과 풀러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의 사상을 소개하고, 필자 개인의 부족한 경험과 관점으로 풀러신학교의 오늘과 내일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풀러신학교는 세계적인 선교기관들이 밀집해 있는 선교와 학문의 도시, 파사데나에 자리하고 있다. 파사데나는 '94년 여름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로스엔젤레스 시내에서 차로 고속도로를 따라 약 15분을 달리면 고풍이 있는 장미의 도시 파사데나에 도착하게 된다. 시청 광장에서 서쪽으로 두어 블럭을 지나면 신학교 입구에 열대풍의 야자나무가 한 줄로 우뚝 서 있어 방문하는 이들의 마음을 산뜻하게 해준다.
"아! 이곳이 바로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신학교로 알려진 풀러신학교로구나"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본관 건물과 도서관, 사무실, 550여 동이나 되는 학생 기숙사들이 작은 도시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거창한 간판은 보이지 않고 잔디밭에 세워진 작은 표지판만이 안내를 맡고 있다.
세 개의 대학원
풀러신학교는 신학대학원, 심리학대학원, 선교대학원을 포함해서 세 개의 대학원이 있다. 학생 수에 있어서 세계 최대규모의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로,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역을 위한 일꾼으로 준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교육과 문화의 도시 파사데나시 중심부 11에이커의 땅에 위치하고 있으며 1947년 라디오 방송 설교자로 당대를 대표하던 대 전도자, 찰스 풀러(Charles Fuller)에 의하여 세워졌다.
학위과정으로는 신학대학원에 M.A., M.Div., D.Min., Th.M., Ph.D. 전 과정이 있고, 심리학대학원에 M.S., Ph.D., Psy.D., D.MFT등의 학위 과정과 선교대학원에 M.A., Th.M., D.Miss., Ph.D. 전 과정이 있다. 풀러신학교의 학위는WASC, ATS, APA에서 인가되어 높은 학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외국인 학생에게는 석사과정의 경우 토플 550점 이상을 요구하며, 박사과정은 600점 이상을 요구한다. 학제는 계절 학기제로 운영된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바로 석사과정(M.A., M.Div.)에 입학 할 수 있으나 신학석사(Th.M.)과정에는 교역학석사(M. Div) 학위나 동등 자격이 있어야 한다. 박사과정은 해당분야의 석사학위 소지자들이 입학할 수 있다. 입학은 매 학위과정마다 입학원서 마감일이 다름으로 과정에 따라 직접 문의해야 한다.
풀러신학교는 파사데나에 본교가 있고 여러 도시에 분교를 갖고 있다. 현재 파사데나 본교와 분교, 선교 현장에서 풀러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에 학생으로 등록하져 공부하는 사람은 약 3700여명, 이들을 돕는 사무직원은 450여 명이다. 이 학생들은 70여 명의 전임교수들을 포함한 214명의 교수진에 의하여 세계 교회의 지도자로 양성되고 있다. 현재 80여 개국에서 모여든 학생들은 130여 개 교단의 배경을 갖고 있으며, 9000여 졸업생들은 약 120개국 교계 지도자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요즈음 들어서 한국계 학생들의 숫자가 계속 늘고 있으며, 신학대학원, 심리학대학원, 선교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정규학위 과정에만도 약 300명을 헤아리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민 2세들로 영어권에 속한 한인들이고 보면, 이들이 이끌어갈 이민 교파와 선교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최근에는 박사과정에 수학하는 한국계 학생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한국 교계와 학계가 필요로 하는 훌륭한 복음주의 학자들이 계속 배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인 동문은 약 4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몇 분을 언급해 보면 선교사로 선교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기호(필리핀), 조갑수(러시아) 박사가 있다. 국내 신학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 동문 교수들로는 이종성(전 장신대 학장), 전호진(전 고신대 학장) 및 전재옥(이대), 이광순(장신), 채은수(총신), 김성태(총신), 정명현(개혁), 박광철(전 서울신), 양낙흥(고신), 강창희, 안영권(아시아연합신학), 송용조, 이요한, 명성훈(순신) 박사 등이 있다. 목회자로는 곽선희(소망교회), 김선도(광림교회), 유용규, 안용식, 이순정, 김상용 박사 등을 들 수 있다. 1950년대에 대학생 선교운동을 시작하신 김준곤 총재와 빌브라잇 국제총재가 만난 곳도 풀러 캠퍼스이다. 현재 박희민 박사가 풀러신학교 이사로 봉사하고 있으며, 최찬영 선교사가 한국학부의 책임을 맡고 있다.
초교파 복음주의 세계의 칼텍
풀러신학교는 대학원 과정의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이다. 성경에 의해서 계시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유일한 길임을 고백하는 신앙공동체이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신조와 복음주의적 신앙고백인 1974년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을 함께 고백한다. 신학적인 특징을 든다면 하나님 중심의 복음주의, 세계 모든 민족을 복음화하려는 선교, 모든 것을 성경에 비추어보려는 말씀중심의 신학, 그리스도의 은혜를 함께 나누려는 예배와 사랑의 공동체, 말과 생활에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성결한 삶, 남녀 지도자들의 영적·심리적·문화적 성장을 위해 적용하는 진리의 말씀에 대한 믿음 등을 들 수 있다.
풀러신학교는 복음주의를 지향함과 아울러 높은 학문수준을 지향한다. 처음 풀러신학교의 비전을 가지고 학교를 설립한 챨스 풀러목사는 풀러신학교를 첨단 과학분야 선두주자로 세계적인 학문을 자랑하는 명문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 Tech)에 비교하여 말하기를, 풀러는 '복음주의 세계의 칼텍(a Cal Tech of the evangelical world)' 이라고 하였다.
1947년 설립 당시 당대의 학자들로 꼽히는 해리슨(Harrison)의 신약학, 계시와 영감설의 권위자인 헨리(Henry), 변증학의 스미스(Smith), 그리고 교회사의 대가 린드셀(Lindsell)박사들의 명강의로 풀러신학교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신학교 건물로 마련해 놓은 크레번스 저택(the Cravens estate)이 학교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처음엔 강의를 레익에비뉴 교회 주일학교 교실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큰 비전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풀러 3회 졸업생이며, 3대 총장으로 1963년 취임하여 30년 동안 풀러를 세계적인 학교로 성장시킨 허바드(Hubbard)박사는 그때를 돌이키며 말하기를 즐겨했다.
"그때 우리 풀러는 제대로된 학교 건물이 없었습니다. 시설도 미비했지요. 한때는 주일학교 학생 책상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답니다. 그러나, 우리는 풀러신학교가 최고의 학교라고 믿었어요.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학교는 건물이나 책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수진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풀러의 교수님들은 당대 최고 수준의 교수님들이었습니다. 최고의 교수진을 고집하는 풀러의 전통은 그때부터 계속된 것입니다." 이렇게 주일학교 교실에서 시작된 풀러가 9000여 졸업생을 배출함으로 전세계 복음주의자들에게 새로운 학문과 선교의 장을 제공한 것은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라는 생각이 든다.
선교에 우선순위를 두고
풀러신학교는 선교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선교라고 하면 풀러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맥가브란 박사가 선교대학원장으로 오신 1965년을 시발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선교에 대한 우선순위는 선교대학원이 생기기 훨씬전인 1947년 10월, 신학교 설립 당시에서부터 시작한다.
당시 2500여명이 참석한 설립예배에서 초대 총장인 헤롤드 오젠가(Herold Ockenga)박사는 자기의 선교비전을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은 우리에게 학위과정만을 이수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선교에 우선순위를 두셨습니다. 한 마디로 주님의 뜻은 선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젊은 일꾼들에게 학문적인 훈련을 시켜 세상에 나가게 합니다만, 이들이 감당해야 할 첫번째 사명은 세상에 나가 선교사들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주님의 일을 위하여, 우리는 불타는 가슴으로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 이런 오켄가 박사의 선교적 비전은 1965년 선교대학원이 세워짐으로 좀더 구체화되고 세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창조적 긴장감으로
지난 1993년 11월 8일 풀러신학교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성대한 행사를 가졌다. 지난 30년 동안 풀러신학교를 세계적인 신학교로 발전시킨 총장 허버드 박사가 은퇴하고, 그 뒤를 이어 리차드 마우(Richard J. Mouw) 박사가 총장에 취임함으로 새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세계 복음주의를 대변하는 많은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벌어진 취임식에서 필자는 "유엔(UN)의 본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의 하일라이트는 신임 마우 총장의 "하나님나라를 위한 교육"이라는 취임사였다. 이 취임사에서, 그는 풀러신학교에 대해 "창조적 긴장감이 넘치는 신학교"라고 정의하였다.
각 분야에서 창조적인 학문활동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학자들과 21세기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될 학생들이 엮어내는 풀러의 학풍은, 죠지 마스던(George Marsden)이 풀러신학교의 역사로 쓴 책 「개혁하는 근본주의 (Tranforming fundamentalism)」에서도 지적한 창조적 긴장감이라고 할 수 있다. 지성을 등지고 저 세상만을 강조하며, 교권주의 분열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근본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온 세상에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원하며, 자유주의 신학에 대응하는 건전한 복음주의로 정치와 경제, 문화를 논하기 원했던 풀러신학교 설립자들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일에 열심으로 창조적 긴장감을 불태웠다.
전임 허버드 총장의 풀러 30년 역사는 실로 창조적 긴장감이 넘쳐나는 역사였다. 신학대학원 하나만으로는 부족해서 심리학대학원과 선교대학원을 설립하였으며, 파사데나 본교 하나만으로는 부족해서 각지에 분교들을 세웠으며, 남성 지도자들만으로는 부족해서 소명있는 여성 지도자들 또한 길러내고 있다. 미국인들만으로는 부족해서 120개국 지도자를 길러낸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교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21세기 교회는 평신도지도자에서부터 신학교수, 선교학자, 심리치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도자들을 필요로 한다. 21세기 교회가 맞이할 다양한 도전에 대한 복음주의적 대응책이 절실히 필요한 이때 이런다양한 요구들을 풀러는 창조적 긴장감으로 대응하고 있다.
죄인을 부르시는 주님의 마음
총장 리처드 마우 박사는 취임사에서, 자신이 복음주의 교회 전통과 가정에서 자라난 철저한 복음주의자임과 동시에 창조적 긴장감을 갖고 고민하는 복음주의자(Restless evangelical)임을 고백하였다. 화란계인 그는 오랫동안 개혁주의의 보루인 칼빈대학교와 신학교(Calvin College & Seminary)에서 교수로 봉직하고, 풀러신학교(P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수로 가르치면서 복음주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천명했으며, 복음주의자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를 죄인을 부르시는 주님의 마음에서 찾는다. 그는 풀러의 비전을 이렇게 간추려 말했다.
"기쁜 소리들리니 예수 구원하신다. . .' 방송설교를 마치며 언제나 죄인들을 부르던 찬송처럼,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설립자 챨스 풀러 박사의 비전을 우리는 지켜나가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생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고 돌아갈 집이 없는 이 시대 인생들이,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모든 교회가 다른 교회들과 함께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받으며, 교회갱신이 이루어져 주님의 마음을 갖고 상처와 눈물로 얼룩진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 내 폭력과 성폭행에 상처입은 사람들, 인종과 종족간의 분쟁, 중국교회의 고통, 신앙의 자유를 잃은 동구라파의 현실, 죄 가운데서 허덕이는 인생들을 보면서 우리는 아파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
마우 총장은 설립자 풀러 목사의 비전을 소개한 뒤, 자신의 비전을 밝혔다. "풀러신학교는 죄인을 용서하고 맞으시는 구세주의 부드러운 은혜를 맛본 남녀의 무리들이 창조적 긴장감을 갖고 새로운 복음전도 방법을 배우고 익혀 상처나고 일그러진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따라 인내함으로 섬기는 종들의 고향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새롭게 인식해야 할 우리 시대를 위한 '하나님나라를 위한 교육' 입니다." 마우박사의 확신에 찬 말씀을 들으며 필자의 마음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훈련에 교육에 대한 비전이 보다 분명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풀러신학대학원은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노선을 지향한다. 130여 교단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 교수들이 엮어내는 색채는 실로 다양하고 독특하다. 대부분의 교단 신학교들과는 다르게 목회자와 학자들에게만이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과 여학생들에게도 문호가 열려있다. 1970년 평신도 사역에 중점을 둔 M.A.과정을 필두로, 1973년도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히스페닉계 미국인들을 위한 소수민족 중심의 M.A.학위 과정을 개설하였다. 일반 교역학 석사(M.Div.)과정에서도 사역에 따라서 제자도, 목회 상담, 결혼과 가족사역, 청소년 사역, 선교학 등의 전공을 선택할 수있도록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다. Th.M.과 Ph.D.과정에서는 구약학, 신약학, 윤리학, 성서학, 해석학, 변증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철학신학, 실천신학 등을 전공할 수 있다.
성서신학부 교수진으로는, 구약학에 알렌(Allen)과 버틀러(Butler), 고대 근동학에 부쉬(Bush), 신약학에 헤그너(Hagner)와 스피들러(Spittler), 에릭슨(Erickson), 페치아(Patzia), 군드리볼프(Gundry-Volf) 등이 있고, 해석학에 설립자의 아들인 댄 풀러(Daniel Puller) , 신약 해석학에 메리안 톰슨(Marrianne Thompson) , 신약학과 히스페닉학에 카날리스(Canales), 성서학에 멕고니갈(Mc Gonigal) 성서 언어학을 지도하는 간트(Gant III)가 있다.
신학부에는 신학과 목회학에 앤더슨(Anderson), 교회사에 브래들리(Bradley), 조직신학에 콜린 브라운(Colin Brown)과 볼브(Volf), 신학과 문화에 더네스(Dyness)와 존스톤(Johnston), 기독교 철학과 윤리에 마우(Mouw), 역사신학에 브로밀리(Bromilly), 기독교 철학에 머피(Murphy), 교회역사와 에큐메닉스에 로벡(Robeck), 역사신학에 존 톰슨(John Thompson)과 피셔 옥덴(Fisher-Ogden)이 있다.
목회학부에는, 신학과 목회학에 앤더슨(Anderson)과 슈스터(Shuster), 목회상담학에 옥스버거(Augsburger), 평신도신학에 뱅스(Banks), 설교학에 판넬(Pannell), 설교학과 실천신학에 하왓슨(Pitt-Watson), 쉐이퍼(Schaper), 청소년 사역에 보그멘(Borgman), 수사학과 커뮤니케이션에 디챔플래인(Dechamplain), 기독교교육과 제자도에 고멘(Gorman), 실천신학에 디어본(Dearbown), 목회개발에 페터슨(Patterson), 연장교육인 목회학 박사과정에 책임을 맡고 목회신학을 담당하는 레드멘(Redman)이 있다. 한국교회 문화에 대해서는 조갑수 박사가 강의한다.
연장교육과 분교(Continuing and Extended Education)는 1973년부터 시작되었으며, 1993년에는 약 800명의 학생들이 이 과정에 등록하였다. 1974년부터는 목회학박사(D.Min.)과정이 개설되어 목회자들의 연장교육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목회학박사 과정은 아시아 연합신학원을 통해서 하고 있다. 풀러 졸업생들은 장로교, 감리교, 하나님의 성회, 성결교, 침례교 등 각 교단에서 지도자로 활발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미국 복음주의의 큰 흐름을 주도하는 학교로 인정되고 있다.
세계를 품는 선교대학원
세계선교대학원은 대학원 과정의 선교학 분야에서, 그 규모와 다양성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훈련기관이다. 선교사 경험이 풍부한 교수진들에 의해 700여명의 학생들이 훈련되고 있다. 학생의 50 퍼센트 정도는 세계 각국에서 온 선교와 교계의 지도자들이며 선교사 경험이 있는 선교사들이 약 25 퍼센트, 선교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나머지 25 퍼센트를 차지한다. 지금까지 약 3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졸업생들은 약 120개국에 흩어져 있으며 선교학자로, 선교사로, 교회와 선교단체 지도자로, 세계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1965년 설립된 선교대학원은 선교 경험이 있는 중견 선교사, 선교 지도자, 선교 헌신자들에게 대학원 수준의 선교학을 수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선교대학원은 타문화 사역에 관한 방대한 선교학 논문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계속 새로운 논문들이 복음주의적이면서도 독자적인 학풍을 배경으로 쓰여지고 있어 현대 선교학의 요람이라고 할 수있다. 맥가브란(McGavran)박사는 그의 동료 선교사요 문화인류학자인 알란 티펫(AlanTippets)과 함께 풀러 세계선교대학원 및 교회성장학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동의하였다. 1965년 9월 1일이었다. 그해 선교 경험이 있는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선교학 석사과정이 먼저 개설되었다.
그 후 1970년에는 선교학 박사(D. Miss.)과정이 개설되고 1976년에는 선교학 철학박사(Ph.D. Miss.)과정이 개설되었다. 1981년에는 선교학 철학박사 (Ph.D.ICS)과정이 개설되었다. 1975년부터는 선교 현지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선교지에서 일정한 학점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 연구과정(In Service Program)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이 과정은 미국 외에 있는 선교사들과 선교 지도자들에게만 허락되었는데, 1993년에 신학교 협의회(Association ofTheological School)에서 인정을 받아 미국 안에 있는 학생들도 이 특별 과정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교회 성장학보다 더 다양한 선교학
맥가브란과 와그너(Wagner)에 의해 널리 알려진 교회 성장학은 예수님의 지상명령 (the Great Commission)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선교학으로, 복음전도의 사명을 문화적이나 다른 어떤 사명보다도 우선하는 선교 사명으로본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교회의 책임있는 교인으로 만들고 세워진 교회가 다시선교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을 강조한다.
선교대학원은 미국 선교학회 설립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다른 신학교의 선교학과 비교할 때, 풀러 선교학은 선교 현장의 경험과 그 다양성에서 아주 독특한 학문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매 학기마다 30-40과목이 개설되므로 폭 넓게 선교학을 공부할 수 있다.
알란 티펫으로부터 찰스 크래프트(CharlesKraft)로 이어지는 선교 문화인류학은 선교가 이루어지는 타문화의 세계관과 관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문화와 세계관, 가치체계, 관습 등의 요소가 신학화 작업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다니엘 쇼우(Daniel Shaw)는 성경 번역학을 현지인 성경번역 선교사들을 훈련시켜 선교에 동참하게 하는 목표를 가지고 접근한다. 풀러선교대학원은 성경 번역학으로 철학박사학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학교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트리니티 교수로 있는, 포울 히버트(Paul Hiebert)는 풀러에 있는 동안 대중종교와 종교 현상학에 대한 선교학적 기초를 마련하였다.
선교학에서 약하기 쉬운 선교 신학을 아더글라서(Arthur Glasser)와 반 엥겐(Van Engen)이 발전시켰다. 무엇보다 글라서는 하나님나라의 신학을 선교학적으로 접목시켰으며, 필자의 지도 교수이기도 한 반 엥겐은 교회론을 중심으로 선교 성서신학과 교회 성장신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선교학적인 역사관을 정립하여 역사를 보는 안목을 갖게 하여주는 포울 피어슨(Paul Pierson)의 강의는 풍성한 한국의 예화들과 역사적 지혜로 충만하다.
로버트 클린턴(Robert Clinton)의 리더십은 지도자의 형성과정과 멘토링(Mentoring)에 대한 연구가 돋보인다. 에드가 엘리스톤(Edgar Elliston)의 리더십 훈련모델, 브르스터(Brewster)의 언어문화 습득론은 도서관에서 사전을 펴서 외국어를 습득하던 우리 방법과는 전혀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며 선교학에 있어서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소오가드(Sogaard)의 커뮤니케이션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접근 방법을 배우게 한다. 디인 길릴랜드(Dean Gilliland)의 상황화 신학, 대학원장인 우드베리(Woodberry)의 이슬람연구 등은 독특한 복음주의적 색채를 가지면서도 높은 학문적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근자에 들어와 이슬람학 연구생들이 늘어나는 것은, 회교권에 창의적 접근을 시도하려는 선교사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영지(Young Hertig)교수는 상담학과 선교학의 문제들을 다루고, 쥬드 티어스마(Jude Tiersma)는 도시선교학을, 후버 웡(Hoover Wong) 교수는 중국 이민 교회와 선교 문제를 다루고 있다. 펜실베니아 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한 전희근 박사는 객원교수로 의료선교와 선교사 건강에 대해 강의한다.
1955년 한국 장로교 총회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38년 동안 해외 선교사로 성서공회 협의회 아시아 태평양지역 책임자를 역임하신 최찬영 교수는 한국학부(Korean Studies)의 책임자로 한국선교의 이슈들을 강의하며, 박광자 교수는 지역교회에서의 선교 교육문제를 다루고, 필리핀 선교사인 박기호 교수는 한국선교역사를, 필자는 선교신학 방법론을 강의하고 있다.
선교대학원 교수들은 선교지에서의 충분한 경험을 살려 다양한 학문 분야들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독립적인 학풍을 유지하면서 선교학을 발전시켜 나간다. 교수들은 활발한 연구활동과 사역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선교사역과 은사에 맞는 전공분야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으며, 모든 전공분야에 선교학 석사과정과 박사 과정이 있다. 선교대학원은 매 학기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영적 능력을 강조하는 선교학
인간화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선교학이나 오순절적인 접근과는 다르게 복음주의 선교학을 이끌어 가는 학교로 잘 알려진 선교대학원은, 교회성장학 교수인 와그너 박사와 커뮤니케이션과 인류학을 가르치는 크라프트 박사 등이 주도하는 제3의 물결 운동(The Third Wave Movement)으로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1982년 이후 교회성장에 있어서의 영적인 이슈, 능력전도와 중보기도, 영적 전쟁, 내적 치유 등에 대한 과목들이 속속 개설되면서 교내외적으로 상당한 신학적, 선교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특별히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서구교회들에게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지만, 이제는 서구교계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 교수들은 선교지에서의 경험과 오늘의 세계 선교의 현장을 보며,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확신하고 있다. 그들은 헌신되어 있고 세계적인 학자들임과 동시에 뜨거운 기도의 사람들이다. 교수들을 만나면 지적인 면과 영적인 면이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풀러신학대학원생 가운데 약 40 퍼센트 정도의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영적인 체험을 했다고 조사되었다. 학생들도 학문을 연마함과 아물러 영성을 개발하는 일에 열심히 동참하고 있다. 이런 학생들과 교수들이 엮어내는 강의실의 영적 분위기는 학문적이면서도 뜨겁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세계 선교를 위해서 철저한 복음주의, 타문화 사역을 위한 선교적 안목과 인간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철저한 믿음과 기도가 풀러선교대학원의 학풍이요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신학이 있는 심리치료학
1961년 5월에 워싱톤주에서 심리학자로 일하던 존 핀치(John Finch) 박사는 풀러신학교에 와서 "인간의 심리학적 측면과 신학적 측면"이라는 특별 강의를 하였다. 이 강의를 통해서 복음주의적인 신학대학원과 함께 심리학대학원이 필요하다는 비전이 생겨났다. 이 비전을 이사진들,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신학자들이 함께 나누게 되고, 1962년이 되어서는 미국 내 저명인사들을 포함하는 설립추진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위원회의 노력으로 1965년 1월에 대학원장으로 리 트라비스(Lee Edward Travis)박사가 집무를 시작하였고, 그해 가을 9월 학기에는 29명의 학생이 입학을 하였다. 1972년 미국 심리학회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로부터 철학박사 (Ph.D. in clinical Psychology) 학위과정을 인가받은 이후, 1987년에는 심리학 박사(Psy.D.)과정이 인가를 받았다. 1988년에는 결혼과 가족 치료학 박사과정 (D.MET.)과 결혼과 가족 치료학 철학박사(Ph.D.)과정이 개설되었다. 결혼과 가족치료학 석사과정 (M.S, in Marital and Family Therapy)은 결혼과 가족치료학협회의 인가를 받았다. 1994년 현재 학생들은 심리치료 면허를 받을 수 있는 결혼과 가족 치료학 석사과정에 80여명,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은 약 275명 정도가 된다.
심리학대학원은 크게 두 학과로 나누어져 있다. 그 하나는 임상심리학과 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결혼과 가족 치료학과이다. 이 두 학과에서는 공통적으로 신학과 심리학의 통합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여러 과목들을 개설하고 있다. 심리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기 위해서는 신학석사 과정을 동시에 마쳐야만 한다.
다양한 교수진과 학풍
교수진은 각기 연구의 관심과 방향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주요 학과목과 교수진을 보면 신경 심리학 (Brown), 임상 심리학 (John Court), 종교 심리학 (Newton Malony), 사회 심리학 (Richard Gorsuch), 심리 측정학 (Nancy Stienler-Thurston), 건강 심리학 (Lee Lipsker, Siang-Yang Tan), 어른 발달학 (Win
ston Gooden), 신체 심리학(Archibald Hart), 법정 심리학(Leonardo Marmot), 결혼과 목회자 발달학 (Richaid Hunt), 결혼과 가족 치료학 (Hendrika Vande Kemp), 심리학과 신학의 통합학(Lewis Smedes)등으로 전문성을 가진 다양한 분야를 그 연구 방향으로 삼고 있다.
결혼과 가족 치료학은 인간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임상심리학과 크게 다르다. 임상 심리학이 주로 개인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데 반하여, 결혼과 가족 치료학은 체계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결혼과 가족 치료라는 이름으로 인해서 한 가지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결혼과 가족 치료학은 그 연구와 관심이 결혼과 가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문제 전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체계적이며 신앙적인 접근 방식으로 인간문제를 총체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하는 학문이다. 결혼과 가족 치료학은 체계적이고 심리학적인 과목들과 그에 따르는 여러 방향의 임상 실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다양한 연구 기회도 주어진다.
결혼과 가족 치료학 교수진들의 연구 방향과 관심분야로는 사회 심리학 (Jack Balswick), 심리 측정학 (Thomas Needham). 가족생활 강화학 (Richard Hunt), 종교 심리학(Janice Strength), 문화간 비교 심리학 (Jeorge Taylor), 결혼과 가족 치료학 (Judith Balswick), 인식론적 심리학 (Cameron Lee)등을 들 수 있다.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며
심리학대학원에서는 근교에 사는 내담자들을 돕기 위해 아동발달 크리닉을 1968년에, 교회 상담 서비스를 1969년에, 피해자 보조 프로그램을 1976년에, 언약의 집 (어린이들을 집단 수용하여 치료하는 집)을 1979년에, 가족 학대 방지 프로그램, 커뮤니티 노인 보조프로그램을 1981년에 개설하였다. 또 관계상담 크리닉 (the Relationship Counseling Clinic)을 1987년에 개설하여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풀러는 특히 여성과 소수 민족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모든 교수들에게 강의와 연구·치료활동에 타문화권의 경험과 이슈들을 다루도록 장려한다. 대학원에 입학하는 데에 성차별이 없는 관계로 약50 퍼센트 정도가 여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상심리학과에 1992년 입학한 학생들의 평균 대학 성적(mrade point average)은 3.73이었고, GRE점수는 1160 이었다.
입학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행동과학이나 사회과학 쪽을 하는 편이 유리하고, 최소한 6과목 이상의 기초 심리학 과정을 이수한 사람에 한하여 입학이 허용된다. 입학수속을 하는 기간이 많이 걸리므로 미리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준비하여야 한다.
한국인 졸업생으로는 임상 심리학을 전공한 이영순 박사, 결혼과 가족학을 전공한 홍인종 박사 등이 있으며, 영어권의 한인 학생들과 한국 유학생 등 약 25명의 한국계 학생들이 수학을 하고 있다.
풀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제 풀러는 학교로서 3세대를 맞이하고 있다"라는 말로 로버트 존스톤 (Robert Johston) 박사는 그의 취임사를 시작했다. 지난 1994년 3월 10일이었다. 마우 총장 다음으로 제 2인자인 사무총장(Provost)이 된 그는 "미래를 지향하면서 과거에서 배우는 마음으로 지난 마우 총장의 취임사에서 이어서 풀러신학교의 역사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1937년 어거스타나(Augustana) 역사 학회에서 일리노이 대학 교수인 마르코스 리 헨슨(Marcus Lee Han-sen)이 발표한 "이민 3세의 문제"라는 제목의 논문을 인용하여 풀러신학교에 대한 역사해석을 시도하였다. 필자는 존스톤의 언어와 사관을 빌려 풀러의 흐름을 정리하고, 풀러의 미래를 바라보려 한다.
헨슨의 '법칙'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민 2세는 잊기를 원하고, 이민 3세는 기억하기를 원한다' 라는 것이다. 헨슨의 학설에 의하면, 이민 2세들은 대부분 1세들의 문화와 언어를 거부한다고 한다. 학교에서 2세들은 이방인이고, 집에서는 너무 외국화되었다고 생각된다. 2세들은 한편으로 너무 '개방적' 이라고 여겨지고, 또 다른 상황에서 이들은 너무 '보수적'인 사람들로 여겨진다. 헨슨이 말하는 2세들의 문제는, 이렇게 다른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야 하는 긴장감의 문제이다.
2세대들의 아픔
풀러의 1세대 교수들은 비지성적이며, 문화적으론 무책임하고, 교회론적으로는 분파를 조성하는 근본주의·복음주의를 개혁하려 하였다. 그들은 복음주의 테두리 안에서 복음주의를 새롭게 정의하는 학문적인 소수였다. 그들은 주류교단인 대 교단의 회원들이었지만, 주류와는 다른 사람들로 오해를 받고, 주도권을 쥐고 있던 신학계로부터 반목과 질시를 받았다. 당시 주류교단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문제아들이었던 것이다. 한 예로 풀러신학교 교수로 60년대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학문적 기여를 한 조지 래드(George Ladd)를 들 수 있다. 그가 이룬 중요한 학문적 성과도 당대의 기성학자들에게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마우 총장이 취임사에서 지적했듯이, 풀러 1세대들의 자녀들은 분명히 순종 복음주의자들이었지만, 그들은 학문적인 수준, 문화적인 적용성, 타 교단에 대한 개방적 자세 등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면서 1세들과 갈등을 갖게 되었다. 학문적으로, 문화적으로, 교회적으로 격리된 상태로 있기를 원치 않은 2세들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갔다. 그들은 개신교를 갱신하는 일, 교회와 문화의 전반에 대한 일에 관심과 헌신을 갖게 되었다 (Fuller's mission beyond mission).
풀러는 60년대 초, 이러한 방향전환에 따르는 대가를 치뤄야 했다. 하지만 2세 자녀들은 둘로 나뉘어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들은 부모들로부터 큰 질책을 받았다. 이것은 그들이 부모들과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사회학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들어와 복음주의는 복음의 내용을 더 강조하게 되었다.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여 살아가야 하는 2세 지도자들을, 1세 지도자들이 깊이 이해하지 못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70년대와 80년대에 이르러 더욱 가시화되었다.
풀러는 성서신학 심리치료, 교회성장학, 능력 대결 등을 강조하는 선교학에 이르는데까지 나아가게 되자, 풀러 2세들은 성경보다는 인간의 학문에, 성령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더 치중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복음주의자이지만, 현실적이고 학문적으로도 충실하려다 보니, 신학의 역사주의(Historicism), 선교학의 상황화, 심리학의 행동주의 등은 다분히 인간적인 아래로부터의 학문이지만, 결코 무시할수 없게 된 것이다. 복음주의자라고 해서 이런 학문을 해서는 안된다고할 수 없다. 사실 2세들은 복음주의의 핵심을 아는 순종 복음주의자로 남아 있다. 그들은 결코 자유주의자가 되지 않았고, 복음주의에서 떠나지 않았다.
3세대들의 행진
마우 박사가 총장으로 취임함으로 풀러는 이제 3세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1세들이 염려했던 것처럼 풀러는 신학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복음주의적 색채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마우 박사는 새학기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가진 개혁주의자로서의 복음주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마우 박사는 1947년 풀러신학교가 설립되던 당시의 교수였던 칼 헨리 (Carl Henry)의 이론을 중심으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다. 칼헨리의 「현대 근본주의의 번민하는 마음 (The uneasy conscience of modern fundamentalism)」에서 풀러가 가진 원래의 비전인 '번민함 (uneasy)'이 바로 그것이다. 칼 헨리의 번민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마우 총장은 계속되는 긴장감(restlessness)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몸이 힘들어 번민하고 긴장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생각하는 긴장감을 말한다. 학문적인 수준과 신학적인 충실함, 교회와 세상을 위한 제자도를 위한 훈련, 영성과 갱신 등에로의 번민과 긴장감을 말한다. 이런 창조적 긴장감을 가지고 3세대들의 행진은 계속되는 것이다.
마우 총장은 그의 성경에 대한 복음주의적인 사상을 피력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성경의 바른 의미를 알기 위해 모든 도구들을 다 사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의미가 확실해지면 그 말씀이 우리를 판단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결코 판단할 수 없습니다‥‥이제 우리가 여러 교회와 협력하고 사회봉사를 하고 타종교와 대화를 할 때, 우리는 구주의 이름을 믿는 생명을 변화시키는 주의 능력을 증거하는 주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마우 총장이 이끄는 제3세대는, 성경의 권위,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관계를 강조하는 다시 말하자면, 복음주의 신학전통에 더욱 충실하기를 강조하는 새 시대를 의미한다. 창조적 긴장감으로 복음주의 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세대를 말한다.
풀러 3세대들이 앞으로 나아 가야할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앞으로 나가면서 역사를 돌아 보아야 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주지만, 과거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 1세대 조부님들의 개척 정신과, 2세대인 부모님들의 복음주의적 긴장감을 오늘에 되살려, 하나님의 부드러운 인도하심을 받으며, 우리 3세대들은 21세기를 살아갈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어야만 한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풀러의 복음주의 신학을 자세히 보고, 점차적으로 늘어나는 다앙성을 보면서,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풀러가 어떻게 세계와 세계 교회의 갱신과 개혁에 과연 힘있게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풀러는 너무 다양해져서 그 구심점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제3세대 지도자들은 전진하여 나아가기보다는 혹시 우리를 30년 전, 1세대들의 세상으로 돌려보내려 하는 것은 아닌가? 혹은 다양성을 하나의 현실로 인정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들을 하게 된다.
이런 질문을 하면서 우리는 복음주의 가치관을 다시 살펴 본다. 그리고 그 가치관에 따라 신학교육을 새롭게 본다. 사역은 특정인물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주의 백성들이 다양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신학교육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풀러신학교는 평신도 지도자를 위한 과정에서부터 교수요원들을 위한 철학박사 학위과정까지 세계교회를 섬기는 다양한 주의 백성들을 위한 신학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풀러의 문은 활짝 열려 있고 복음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있다. 뜨거운 가슴은 보혈의 능력으로 충만하다. 주의 백성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문화와 언어와 교단과 교파의 사회적인 차이와 벽을 넘어서, 주님이 부르시는 선교에로의 여로에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다. 특별히 아시아권 지도자들이 풀러의 교수로, 이사로, 학생으로 동참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국제화 개방화를 주창하는 오늘 한국교회의 일꾼들이 이 부르심에 동참하여 현재 풀러 동산에서 훈련받는 300여 한인 학우들과 함께, 세계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국제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보다 속히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진다. 창조적 긴장감으로 선교의 내일을 열어갈 열정에 불타는 한인 신학생들을 보면서, 한국 교회의 미래는 고요한 아침에 뜨는 해처럼 밝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풀러는 '94년 가을학기부터 외국학생들이 정규 학위과정에 잘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해 신학영어 교육을 실시한다. 독자가운데, 유학을 생각하며 풀러에 대해 좀더 자세한 정보와 상담을 원하는 사람은 다음 주소로 연락을 주면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풀러신학교 한인학생모임
글쓴이 : 임봉한 원글보기
메모 :
필자: 임윤택
풀러신학교-창조적 긴장감이 넘치는 세계선교의 활화산
임윤택/ 풀러신학교 조교수
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는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참으로 독특하고 다양한 개성을 가진 학교이다. 한국 교계에도 잘 알려진 학교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풀러처럼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학교도 많다. 풀러 신학교는 과연 어떤 학풍과 특성을 가진 학교인가?
필자는 지난 6년간 풀러 동산에서 지냈다. 그동안 선교대학원에서 선교신학(Ph.D.)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의 학사담당 직원으로 3년을 보냈다. 졸업 후에 학교에 남아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풀러 전체에 대한 지식은 극히 제한적일 뿐이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풀러 동산에서 지내는 동안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풀러 학생들과 교수들이 가진 문화와 언어, 교회전통과 신조들이 각기 다르고 다양한데, 어떻게 해서 저들이 풀러신학교라는 하나의 헌신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 복음주의 신학과, 선교학, 결혼과 가족치료학, 심리학과 심리치료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의 권위 아래 복종되며 체계적인 학문으로 정립되어, 급변하는 21세기 세계교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들에게 전수될 수 있을까?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이 학교의 신학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전반적인 풀러의 학풍과 풀러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의 사상을 소개하고, 필자 개인의 부족한 경험과 관점으로 풀러신학교의 오늘과 내일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풀러신학교는 세계적인 선교기관들이 밀집해 있는 선교와 학문의 도시, 파사데나에 자리하고 있다. 파사데나는 '94년 여름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로스엔젤레스 시내에서 차로 고속도로를 따라 약 15분을 달리면 고풍이 있는 장미의 도시 파사데나에 도착하게 된다. 시청 광장에서 서쪽으로 두어 블럭을 지나면 신학교 입구에 열대풍의 야자나무가 한 줄로 우뚝 서 있어 방문하는 이들의 마음을 산뜻하게 해준다.
"아! 이곳이 바로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신학교로 알려진 풀러신학교로구나"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본관 건물과 도서관, 사무실, 550여 동이나 되는 학생 기숙사들이 작은 도시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거창한 간판은 보이지 않고 잔디밭에 세워진 작은 표지판만이 안내를 맡고 있다.
세 개의 대학원
풀러신학교는 신학대학원, 심리학대학원, 선교대학원을 포함해서 세 개의 대학원이 있다. 학생 수에 있어서 세계 최대규모의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로,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역을 위한 일꾼으로 준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교육과 문화의 도시 파사데나시 중심부 11에이커의 땅에 위치하고 있으며 1947년 라디오 방송 설교자로 당대를 대표하던 대 전도자, 찰스 풀러(Charles Fuller)에 의하여 세워졌다.
학위과정으로는 신학대학원에 M.A., M.Div., D.Min., Th.M., Ph.D. 전 과정이 있고, 심리학대학원에 M.S., Ph.D., Psy.D., D.MFT등의 학위 과정과 선교대학원에 M.A., Th.M., D.Miss., Ph.D. 전 과정이 있다. 풀러신학교의 학위는WASC, ATS, APA에서 인가되어 높은 학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외국인 학생에게는 석사과정의 경우 토플 550점 이상을 요구하며, 박사과정은 600점 이상을 요구한다. 학제는 계절 학기제로 운영된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바로 석사과정(M.A., M.Div.)에 입학 할 수 있으나 신학석사(Th.M.)과정에는 교역학석사(M. Div) 학위나 동등 자격이 있어야 한다. 박사과정은 해당분야의 석사학위 소지자들이 입학할 수 있다. 입학은 매 학위과정마다 입학원서 마감일이 다름으로 과정에 따라 직접 문의해야 한다.
풀러신학교는 파사데나에 본교가 있고 여러 도시에 분교를 갖고 있다. 현재 파사데나 본교와 분교, 선교 현장에서 풀러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에 학생으로 등록하져 공부하는 사람은 약 3700여명, 이들을 돕는 사무직원은 450여 명이다. 이 학생들은 70여 명의 전임교수들을 포함한 214명의 교수진에 의하여 세계 교회의 지도자로 양성되고 있다. 현재 80여 개국에서 모여든 학생들은 130여 개 교단의 배경을 갖고 있으며, 9000여 졸업생들은 약 120개국 교계 지도자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요즈음 들어서 한국계 학생들의 숫자가 계속 늘고 있으며, 신학대학원, 심리학대학원, 선교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정규학위 과정에만도 약 300명을 헤아리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민 2세들로 영어권에 속한 한인들이고 보면, 이들이 이끌어갈 이민 교파와 선교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최근에는 박사과정에 수학하는 한국계 학생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한국 교계와 학계가 필요로 하는 훌륭한 복음주의 학자들이 계속 배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인 동문은 약 4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몇 분을 언급해 보면 선교사로 선교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기호(필리핀), 조갑수(러시아) 박사가 있다. 국내 신학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 동문 교수들로는 이종성(전 장신대 학장), 전호진(전 고신대 학장) 및 전재옥(이대), 이광순(장신), 채은수(총신), 김성태(총신), 정명현(개혁), 박광철(전 서울신), 양낙흥(고신), 강창희, 안영권(아시아연합신학), 송용조, 이요한, 명성훈(순신) 박사 등이 있다. 목회자로는 곽선희(소망교회), 김선도(광림교회), 유용규, 안용식, 이순정, 김상용 박사 등을 들 수 있다. 1950년대에 대학생 선교운동을 시작하신 김준곤 총재와 빌브라잇 국제총재가 만난 곳도 풀러 캠퍼스이다. 현재 박희민 박사가 풀러신학교 이사로 봉사하고 있으며, 최찬영 선교사가 한국학부의 책임을 맡고 있다.
초교파 복음주의 세계의 칼텍
풀러신학교는 대학원 과정의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이다. 성경에 의해서 계시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유일한 길임을 고백하는 신앙공동체이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신조와 복음주의적 신앙고백인 1974년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을 함께 고백한다. 신학적인 특징을 든다면 하나님 중심의 복음주의, 세계 모든 민족을 복음화하려는 선교, 모든 것을 성경에 비추어보려는 말씀중심의 신학, 그리스도의 은혜를 함께 나누려는 예배와 사랑의 공동체, 말과 생활에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성결한 삶, 남녀 지도자들의 영적·심리적·문화적 성장을 위해 적용하는 진리의 말씀에 대한 믿음 등을 들 수 있다.
풀러신학교는 복음주의를 지향함과 아울러 높은 학문수준을 지향한다. 처음 풀러신학교의 비전을 가지고 학교를 설립한 챨스 풀러목사는 풀러신학교를 첨단 과학분야 선두주자로 세계적인 학문을 자랑하는 명문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 Tech)에 비교하여 말하기를, 풀러는 '복음주의 세계의 칼텍(a Cal Tech of the evangelical world)' 이라고 하였다.
1947년 설립 당시 당대의 학자들로 꼽히는 해리슨(Harrison)의 신약학, 계시와 영감설의 권위자인 헨리(Henry), 변증학의 스미스(Smith), 그리고 교회사의 대가 린드셀(Lindsell)박사들의 명강의로 풀러신학교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신학교 건물로 마련해 놓은 크레번스 저택(the Cravens estate)이 학교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처음엔 강의를 레익에비뉴 교회 주일학교 교실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큰 비전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풀러 3회 졸업생이며, 3대 총장으로 1963년 취임하여 30년 동안 풀러를 세계적인 학교로 성장시킨 허바드(Hubbard)박사는 그때를 돌이키며 말하기를 즐겨했다.
"그때 우리 풀러는 제대로된 학교 건물이 없었습니다. 시설도 미비했지요. 한때는 주일학교 학생 책상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답니다. 그러나, 우리는 풀러신학교가 최고의 학교라고 믿었어요.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학교는 건물이나 책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수진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풀러의 교수님들은 당대 최고 수준의 교수님들이었습니다. 최고의 교수진을 고집하는 풀러의 전통은 그때부터 계속된 것입니다." 이렇게 주일학교 교실에서 시작된 풀러가 9000여 졸업생을 배출함으로 전세계 복음주의자들에게 새로운 학문과 선교의 장을 제공한 것은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라는 생각이 든다.
선교에 우선순위를 두고
풀러신학교는 선교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선교라고 하면 풀러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맥가브란 박사가 선교대학원장으로 오신 1965년을 시발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선교에 대한 우선순위는 선교대학원이 생기기 훨씬전인 1947년 10월, 신학교 설립 당시에서부터 시작한다.
당시 2500여명이 참석한 설립예배에서 초대 총장인 헤롤드 오젠가(Herold Ockenga)박사는 자기의 선교비전을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은 우리에게 학위과정만을 이수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선교에 우선순위를 두셨습니다. 한 마디로 주님의 뜻은 선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젊은 일꾼들에게 학문적인 훈련을 시켜 세상에 나가게 합니다만, 이들이 감당해야 할 첫번째 사명은 세상에 나가 선교사들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주님의 일을 위하여, 우리는 불타는 가슴으로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 이런 오켄가 박사의 선교적 비전은 1965년 선교대학원이 세워짐으로 좀더 구체화되고 세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창조적 긴장감으로
지난 1993년 11월 8일 풀러신학교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성대한 행사를 가졌다. 지난 30년 동안 풀러신학교를 세계적인 신학교로 발전시킨 총장 허버드 박사가 은퇴하고, 그 뒤를 이어 리차드 마우(Richard J. Mouw) 박사가 총장에 취임함으로 새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세계 복음주의를 대변하는 많은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벌어진 취임식에서 필자는 "유엔(UN)의 본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의 하일라이트는 신임 마우 총장의 "하나님나라를 위한 교육"이라는 취임사였다. 이 취임사에서, 그는 풀러신학교에 대해 "창조적 긴장감이 넘치는 신학교"라고 정의하였다.
각 분야에서 창조적인 학문활동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학자들과 21세기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될 학생들이 엮어내는 풀러의 학풍은, 죠지 마스던(George Marsden)이 풀러신학교의 역사로 쓴 책 「개혁하는 근본주의 (Tranforming fundamentalism)」에서도 지적한 창조적 긴장감이라고 할 수 있다. 지성을 등지고 저 세상만을 강조하며, 교권주의 분열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근본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온 세상에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원하며, 자유주의 신학에 대응하는 건전한 복음주의로 정치와 경제, 문화를 논하기 원했던 풀러신학교 설립자들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일에 열심으로 창조적 긴장감을 불태웠다.
전임 허버드 총장의 풀러 30년 역사는 실로 창조적 긴장감이 넘쳐나는 역사였다. 신학대학원 하나만으로는 부족해서 심리학대학원과 선교대학원을 설립하였으며, 파사데나 본교 하나만으로는 부족해서 각지에 분교들을 세웠으며, 남성 지도자들만으로는 부족해서 소명있는 여성 지도자들 또한 길러내고 있다. 미국인들만으로는 부족해서 120개국 지도자를 길러낸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교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21세기 교회는 평신도지도자에서부터 신학교수, 선교학자, 심리치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도자들을 필요로 한다. 21세기 교회가 맞이할 다양한 도전에 대한 복음주의적 대응책이 절실히 필요한 이때 이런다양한 요구들을 풀러는 창조적 긴장감으로 대응하고 있다.
죄인을 부르시는 주님의 마음
총장 리처드 마우 박사는 취임사에서, 자신이 복음주의 교회 전통과 가정에서 자라난 철저한 복음주의자임과 동시에 창조적 긴장감을 갖고 고민하는 복음주의자(Restless evangelical)임을 고백하였다. 화란계인 그는 오랫동안 개혁주의의 보루인 칼빈대학교와 신학교(Calvin College & Seminary)에서 교수로 봉직하고, 풀러신학교(P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수로 가르치면서 복음주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천명했으며, 복음주의자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를 죄인을 부르시는 주님의 마음에서 찾는다. 그는 풀러의 비전을 이렇게 간추려 말했다.
"기쁜 소리들리니 예수 구원하신다. . .' 방송설교를 마치며 언제나 죄인들을 부르던 찬송처럼,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설립자 챨스 풀러 박사의 비전을 우리는 지켜나가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생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고 돌아갈 집이 없는 이 시대 인생들이,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모든 교회가 다른 교회들과 함께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받으며, 교회갱신이 이루어져 주님의 마음을 갖고 상처와 눈물로 얼룩진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 내 폭력과 성폭행에 상처입은 사람들, 인종과 종족간의 분쟁, 중국교회의 고통, 신앙의 자유를 잃은 동구라파의 현실, 죄 가운데서 허덕이는 인생들을 보면서 우리는 아파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
마우 총장은 설립자 풀러 목사의 비전을 소개한 뒤, 자신의 비전을 밝혔다. "풀러신학교는 죄인을 용서하고 맞으시는 구세주의 부드러운 은혜를 맛본 남녀의 무리들이 창조적 긴장감을 갖고 새로운 복음전도 방법을 배우고 익혀 상처나고 일그러진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따라 인내함으로 섬기는 종들의 고향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새롭게 인식해야 할 우리 시대를 위한 '하나님나라를 위한 교육' 입니다." 마우박사의 확신에 찬 말씀을 들으며 필자의 마음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훈련에 교육에 대한 비전이 보다 분명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풀러신학대학원은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노선을 지향한다. 130여 교단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 교수들이 엮어내는 색채는 실로 다양하고 독특하다. 대부분의 교단 신학교들과는 다르게 목회자와 학자들에게만이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과 여학생들에게도 문호가 열려있다. 1970년 평신도 사역에 중점을 둔 M.A.과정을 필두로, 1973년도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히스페닉계 미국인들을 위한 소수민족 중심의 M.A.학위 과정을 개설하였다. 일반 교역학 석사(M.Div.)과정에서도 사역에 따라서 제자도, 목회 상담, 결혼과 가족사역, 청소년 사역, 선교학 등의 전공을 선택할 수있도록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다. Th.M.과 Ph.D.과정에서는 구약학, 신약학, 윤리학, 성서학, 해석학, 변증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철학신학, 실천신학 등을 전공할 수 있다.
성서신학부 교수진으로는, 구약학에 알렌(Allen)과 버틀러(Butler), 고대 근동학에 부쉬(Bush), 신약학에 헤그너(Hagner)와 스피들러(Spittler), 에릭슨(Erickson), 페치아(Patzia), 군드리볼프(Gundry-Volf) 등이 있고, 해석학에 설립자의 아들인 댄 풀러(Daniel Puller) , 신약 해석학에 메리안 톰슨(Marrianne Thompson) , 신약학과 히스페닉학에 카날리스(Canales), 성서학에 멕고니갈(Mc Gonigal) 성서 언어학을 지도하는 간트(Gant III)가 있다.
신학부에는 신학과 목회학에 앤더슨(Anderson), 교회사에 브래들리(Bradley), 조직신학에 콜린 브라운(Colin Brown)과 볼브(Volf), 신학과 문화에 더네스(Dyness)와 존스톤(Johnston), 기독교 철학과 윤리에 마우(Mouw), 역사신학에 브로밀리(Bromilly), 기독교 철학에 머피(Murphy), 교회역사와 에큐메닉스에 로벡(Robeck), 역사신학에 존 톰슨(John Thompson)과 피셔 옥덴(Fisher-Ogden)이 있다.
목회학부에는, 신학과 목회학에 앤더슨(Anderson)과 슈스터(Shuster), 목회상담학에 옥스버거(Augsburger), 평신도신학에 뱅스(Banks), 설교학에 판넬(Pannell), 설교학과 실천신학에 하왓슨(Pitt-Watson), 쉐이퍼(Schaper), 청소년 사역에 보그멘(Borgman), 수사학과 커뮤니케이션에 디챔플래인(Dechamplain), 기독교교육과 제자도에 고멘(Gorman), 실천신학에 디어본(Dearbown), 목회개발에 페터슨(Patterson), 연장교육인 목회학 박사과정에 책임을 맡고 목회신학을 담당하는 레드멘(Redman)이 있다. 한국교회 문화에 대해서는 조갑수 박사가 강의한다.
연장교육과 분교(Continuing and Extended Education)는 1973년부터 시작되었으며, 1993년에는 약 800명의 학생들이 이 과정에 등록하였다. 1974년부터는 목회학박사(D.Min.)과정이 개설되어 목회자들의 연장교육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목회학박사 과정은 아시아 연합신학원을 통해서 하고 있다. 풀러 졸업생들은 장로교, 감리교, 하나님의 성회, 성결교, 침례교 등 각 교단에서 지도자로 활발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미국 복음주의의 큰 흐름을 주도하는 학교로 인정되고 있다.
세계를 품는 선교대학원
세계선교대학원은 대학원 과정의 선교학 분야에서, 그 규모와 다양성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훈련기관이다. 선교사 경험이 풍부한 교수진들에 의해 700여명의 학생들이 훈련되고 있다. 학생의 50 퍼센트 정도는 세계 각국에서 온 선교와 교계의 지도자들이며 선교사 경험이 있는 선교사들이 약 25 퍼센트, 선교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나머지 25 퍼센트를 차지한다. 지금까지 약 3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졸업생들은 약 120개국에 흩어져 있으며 선교학자로, 선교사로, 교회와 선교단체 지도자로, 세계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1965년 설립된 선교대학원은 선교 경험이 있는 중견 선교사, 선교 지도자, 선교 헌신자들에게 대학원 수준의 선교학을 수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선교대학원은 타문화 사역에 관한 방대한 선교학 논문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계속 새로운 논문들이 복음주의적이면서도 독자적인 학풍을 배경으로 쓰여지고 있어 현대 선교학의 요람이라고 할 수있다. 맥가브란(McGavran)박사는 그의 동료 선교사요 문화인류학자인 알란 티펫(AlanTippets)과 함께 풀러 세계선교대학원 및 교회성장학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동의하였다. 1965년 9월 1일이었다. 그해 선교 경험이 있는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선교학 석사과정이 먼저 개설되었다.
그 후 1970년에는 선교학 박사(D. Miss.)과정이 개설되고 1976년에는 선교학 철학박사(Ph.D. Miss.)과정이 개설되었다. 1981년에는 선교학 철학박사 (Ph.D.ICS)과정이 개설되었다. 1975년부터는 선교 현지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선교지에서 일정한 학점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 연구과정(In Service Program)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이 과정은 미국 외에 있는 선교사들과 선교 지도자들에게만 허락되었는데, 1993년에 신학교 협의회(Association ofTheological School)에서 인정을 받아 미국 안에 있는 학생들도 이 특별 과정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교회 성장학보다 더 다양한 선교학
맥가브란과 와그너(Wagner)에 의해 널리 알려진 교회 성장학은 예수님의 지상명령 (the Great Commission)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선교학으로, 복음전도의 사명을 문화적이나 다른 어떤 사명보다도 우선하는 선교 사명으로본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교회의 책임있는 교인으로 만들고 세워진 교회가 다시선교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을 강조한다.
선교대학원은 미국 선교학회 설립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다른 신학교의 선교학과 비교할 때, 풀러 선교학은 선교 현장의 경험과 그 다양성에서 아주 독특한 학문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매 학기마다 30-40과목이 개설되므로 폭 넓게 선교학을 공부할 수 있다.
알란 티펫으로부터 찰스 크래프트(CharlesKraft)로 이어지는 선교 문화인류학은 선교가 이루어지는 타문화의 세계관과 관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문화와 세계관, 가치체계, 관습 등의 요소가 신학화 작업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다니엘 쇼우(Daniel Shaw)는 성경 번역학을 현지인 성경번역 선교사들을 훈련시켜 선교에 동참하게 하는 목표를 가지고 접근한다. 풀러선교대학원은 성경 번역학으로 철학박사학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학교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트리니티 교수로 있는, 포울 히버트(Paul Hiebert)는 풀러에 있는 동안 대중종교와 종교 현상학에 대한 선교학적 기초를 마련하였다.
선교학에서 약하기 쉬운 선교 신학을 아더글라서(Arthur Glasser)와 반 엥겐(Van Engen)이 발전시켰다. 무엇보다 글라서는 하나님나라의 신학을 선교학적으로 접목시켰으며, 필자의 지도 교수이기도 한 반 엥겐은 교회론을 중심으로 선교 성서신학과 교회 성장신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선교학적인 역사관을 정립하여 역사를 보는 안목을 갖게 하여주는 포울 피어슨(Paul Pierson)의 강의는 풍성한 한국의 예화들과 역사적 지혜로 충만하다.
로버트 클린턴(Robert Clinton)의 리더십은 지도자의 형성과정과 멘토링(Mentoring)에 대한 연구가 돋보인다. 에드가 엘리스톤(Edgar Elliston)의 리더십 훈련모델, 브르스터(Brewster)의 언어문화 습득론은 도서관에서 사전을 펴서 외국어를 습득하던 우리 방법과는 전혀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며 선교학에 있어서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소오가드(Sogaard)의 커뮤니케이션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접근 방법을 배우게 한다. 디인 길릴랜드(Dean Gilliland)의 상황화 신학, 대학원장인 우드베리(Woodberry)의 이슬람연구 등은 독특한 복음주의적 색채를 가지면서도 높은 학문적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근자에 들어와 이슬람학 연구생들이 늘어나는 것은, 회교권에 창의적 접근을 시도하려는 선교사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영지(Young Hertig)교수는 상담학과 선교학의 문제들을 다루고, 쥬드 티어스마(Jude Tiersma)는 도시선교학을, 후버 웡(Hoover Wong) 교수는 중국 이민 교회와 선교 문제를 다루고 있다. 펜실베니아 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한 전희근 박사는 객원교수로 의료선교와 선교사 건강에 대해 강의한다.
1955년 한국 장로교 총회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38년 동안 해외 선교사로 성서공회 협의회 아시아 태평양지역 책임자를 역임하신 최찬영 교수는 한국학부(Korean Studies)의 책임자로 한국선교의 이슈들을 강의하며, 박광자 교수는 지역교회에서의 선교 교육문제를 다루고, 필리핀 선교사인 박기호 교수는 한국선교역사를, 필자는 선교신학 방법론을 강의하고 있다.
선교대학원 교수들은 선교지에서의 충분한 경험을 살려 다양한 학문 분야들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독립적인 학풍을 유지하면서 선교학을 발전시켜 나간다. 교수들은 활발한 연구활동과 사역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선교사역과 은사에 맞는 전공분야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으며, 모든 전공분야에 선교학 석사과정과 박사 과정이 있다. 선교대학원은 매 학기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영적 능력을 강조하는 선교학
인간화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선교학이나 오순절적인 접근과는 다르게 복음주의 선교학을 이끌어 가는 학교로 잘 알려진 선교대학원은, 교회성장학 교수인 와그너 박사와 커뮤니케이션과 인류학을 가르치는 크라프트 박사 등이 주도하는 제3의 물결 운동(The Third Wave Movement)으로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1982년 이후 교회성장에 있어서의 영적인 이슈, 능력전도와 중보기도, 영적 전쟁, 내적 치유 등에 대한 과목들이 속속 개설되면서 교내외적으로 상당한 신학적, 선교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특별히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서구교회들에게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지만, 이제는 서구교계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 교수들은 선교지에서의 경험과 오늘의 세계 선교의 현장을 보며,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확신하고 있다. 그들은 헌신되어 있고 세계적인 학자들임과 동시에 뜨거운 기도의 사람들이다. 교수들을 만나면 지적인 면과 영적인 면이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풀러신학대학원생 가운데 약 40 퍼센트 정도의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영적인 체험을 했다고 조사되었다. 학생들도 학문을 연마함과 아물러 영성을 개발하는 일에 열심히 동참하고 있다. 이런 학생들과 교수들이 엮어내는 강의실의 영적 분위기는 학문적이면서도 뜨겁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세계 선교를 위해서 철저한 복음주의, 타문화 사역을 위한 선교적 안목과 인간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철저한 믿음과 기도가 풀러선교대학원의 학풍이요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신학이 있는 심리치료학
1961년 5월에 워싱톤주에서 심리학자로 일하던 존 핀치(John Finch) 박사는 풀러신학교에 와서 "인간의 심리학적 측면과 신학적 측면"이라는 특별 강의를 하였다. 이 강의를 통해서 복음주의적인 신학대학원과 함께 심리학대학원이 필요하다는 비전이 생겨났다. 이 비전을 이사진들,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신학자들이 함께 나누게 되고, 1962년이 되어서는 미국 내 저명인사들을 포함하는 설립추진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위원회의 노력으로 1965년 1월에 대학원장으로 리 트라비스(Lee Edward Travis)박사가 집무를 시작하였고, 그해 가을 9월 학기에는 29명의 학생이 입학을 하였다. 1972년 미국 심리학회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로부터 철학박사 (Ph.D. in clinical Psychology) 학위과정을 인가받은 이후, 1987년에는 심리학 박사(Psy.D.)과정이 인가를 받았다. 1988년에는 결혼과 가족 치료학 박사과정 (D.MET.)과 결혼과 가족 치료학 철학박사(Ph.D.)과정이 개설되었다. 결혼과 가족치료학 석사과정 (M.S, in Marital and Family Therapy)은 결혼과 가족치료학협회의 인가를 받았다. 1994년 현재 학생들은 심리치료 면허를 받을 수 있는 결혼과 가족 치료학 석사과정에 80여명,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은 약 275명 정도가 된다.
심리학대학원은 크게 두 학과로 나누어져 있다. 그 하나는 임상심리학과 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결혼과 가족 치료학과이다. 이 두 학과에서는 공통적으로 신학과 심리학의 통합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여러 과목들을 개설하고 있다. 심리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기 위해서는 신학석사 과정을 동시에 마쳐야만 한다.
다양한 교수진과 학풍
교수진은 각기 연구의 관심과 방향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주요 학과목과 교수진을 보면 신경 심리학 (Brown), 임상 심리학 (John Court), 종교 심리학 (Newton Malony), 사회 심리학 (Richard Gorsuch), 심리 측정학 (Nancy Stienler-Thurston), 건강 심리학 (Lee Lipsker, Siang-Yang Tan), 어른 발달학 (Win
ston Gooden), 신체 심리학(Archibald Hart), 법정 심리학(Leonardo Marmot), 결혼과 목회자 발달학 (Richaid Hunt), 결혼과 가족 치료학 (Hendrika Vande Kemp), 심리학과 신학의 통합학(Lewis Smedes)등으로 전문성을 가진 다양한 분야를 그 연구 방향으로 삼고 있다.
결혼과 가족 치료학은 인간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임상심리학과 크게 다르다. 임상 심리학이 주로 개인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데 반하여, 결혼과 가족 치료학은 체계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결혼과 가족 치료라는 이름으로 인해서 한 가지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결혼과 가족 치료학은 그 연구와 관심이 결혼과 가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문제 전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체계적이며 신앙적인 접근 방식으로 인간문제를 총체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하는 학문이다. 결혼과 가족 치료학은 체계적이고 심리학적인 과목들과 그에 따르는 여러 방향의 임상 실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다양한 연구 기회도 주어진다.
결혼과 가족 치료학 교수진들의 연구 방향과 관심분야로는 사회 심리학 (Jack Balswick), 심리 측정학 (Thomas Needham). 가족생활 강화학 (Richard Hunt), 종교 심리학(Janice Strength), 문화간 비교 심리학 (Jeorge Taylor), 결혼과 가족 치료학 (Judith Balswick), 인식론적 심리학 (Cameron Lee)등을 들 수 있다.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며
심리학대학원에서는 근교에 사는 내담자들을 돕기 위해 아동발달 크리닉을 1968년에, 교회 상담 서비스를 1969년에, 피해자 보조 프로그램을 1976년에, 언약의 집 (어린이들을 집단 수용하여 치료하는 집)을 1979년에, 가족 학대 방지 프로그램, 커뮤니티 노인 보조프로그램을 1981년에 개설하였다. 또 관계상담 크리닉 (the Relationship Counseling Clinic)을 1987년에 개설하여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풀러는 특히 여성과 소수 민족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모든 교수들에게 강의와 연구·치료활동에 타문화권의 경험과 이슈들을 다루도록 장려한다. 대학원에 입학하는 데에 성차별이 없는 관계로 약50 퍼센트 정도가 여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상심리학과에 1992년 입학한 학생들의 평균 대학 성적(mrade point average)은 3.73이었고, GRE점수는 1160 이었다.
입학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행동과학이나 사회과학 쪽을 하는 편이 유리하고, 최소한 6과목 이상의 기초 심리학 과정을 이수한 사람에 한하여 입학이 허용된다. 입학수속을 하는 기간이 많이 걸리므로 미리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준비하여야 한다.
한국인 졸업생으로는 임상 심리학을 전공한 이영순 박사, 결혼과 가족학을 전공한 홍인종 박사 등이 있으며, 영어권의 한인 학생들과 한국 유학생 등 약 25명의 한국계 학생들이 수학을 하고 있다.
풀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제 풀러는 학교로서 3세대를 맞이하고 있다"라는 말로 로버트 존스톤 (Robert Johston) 박사는 그의 취임사를 시작했다. 지난 1994년 3월 10일이었다. 마우 총장 다음으로 제 2인자인 사무총장(Provost)이 된 그는 "미래를 지향하면서 과거에서 배우는 마음으로 지난 마우 총장의 취임사에서 이어서 풀러신학교의 역사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1937년 어거스타나(Augustana) 역사 학회에서 일리노이 대학 교수인 마르코스 리 헨슨(Marcus Lee Han-sen)이 발표한 "이민 3세의 문제"라는 제목의 논문을 인용하여 풀러신학교에 대한 역사해석을 시도하였다. 필자는 존스톤의 언어와 사관을 빌려 풀러의 흐름을 정리하고, 풀러의 미래를 바라보려 한다.
헨슨의 '법칙'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민 2세는 잊기를 원하고, 이민 3세는 기억하기를 원한다' 라는 것이다. 헨슨의 학설에 의하면, 이민 2세들은 대부분 1세들의 문화와 언어를 거부한다고 한다. 학교에서 2세들은 이방인이고, 집에서는 너무 외국화되었다고 생각된다. 2세들은 한편으로 너무 '개방적' 이라고 여겨지고, 또 다른 상황에서 이들은 너무 '보수적'인 사람들로 여겨진다. 헨슨이 말하는 2세들의 문제는, 이렇게 다른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야 하는 긴장감의 문제이다.
2세대들의 아픔
풀러의 1세대 교수들은 비지성적이며, 문화적으론 무책임하고, 교회론적으로는 분파를 조성하는 근본주의·복음주의를 개혁하려 하였다. 그들은 복음주의 테두리 안에서 복음주의를 새롭게 정의하는 학문적인 소수였다. 그들은 주류교단인 대 교단의 회원들이었지만, 주류와는 다른 사람들로 오해를 받고, 주도권을 쥐고 있던 신학계로부터 반목과 질시를 받았다. 당시 주류교단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문제아들이었던 것이다. 한 예로 풀러신학교 교수로 60년대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학문적 기여를 한 조지 래드(George Ladd)를 들 수 있다. 그가 이룬 중요한 학문적 성과도 당대의 기성학자들에게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마우 총장이 취임사에서 지적했듯이, 풀러 1세대들의 자녀들은 분명히 순종 복음주의자들이었지만, 그들은 학문적인 수준, 문화적인 적용성, 타 교단에 대한 개방적 자세 등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면서 1세들과 갈등을 갖게 되었다. 학문적으로, 문화적으로, 교회적으로 격리된 상태로 있기를 원치 않은 2세들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갔다. 그들은 개신교를 갱신하는 일, 교회와 문화의 전반에 대한 일에 관심과 헌신을 갖게 되었다 (Fuller's mission beyond mission).
풀러는 60년대 초, 이러한 방향전환에 따르는 대가를 치뤄야 했다. 하지만 2세 자녀들은 둘로 나뉘어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들은 부모들로부터 큰 질책을 받았다. 이것은 그들이 부모들과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사회학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들어와 복음주의는 복음의 내용을 더 강조하게 되었다.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여 살아가야 하는 2세 지도자들을, 1세 지도자들이 깊이 이해하지 못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70년대와 80년대에 이르러 더욱 가시화되었다.
풀러는 성서신학 심리치료, 교회성장학, 능력 대결 등을 강조하는 선교학에 이르는데까지 나아가게 되자, 풀러 2세들은 성경보다는 인간의 학문에, 성령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더 치중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복음주의자이지만, 현실적이고 학문적으로도 충실하려다 보니, 신학의 역사주의(Historicism), 선교학의 상황화, 심리학의 행동주의 등은 다분히 인간적인 아래로부터의 학문이지만, 결코 무시할수 없게 된 것이다. 복음주의자라고 해서 이런 학문을 해서는 안된다고할 수 없다. 사실 2세들은 복음주의의 핵심을 아는 순종 복음주의자로 남아 있다. 그들은 결코 자유주의자가 되지 않았고, 복음주의에서 떠나지 않았다.
3세대들의 행진
마우 박사가 총장으로 취임함으로 풀러는 이제 3세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1세들이 염려했던 것처럼 풀러는 신학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복음주의적 색채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마우 박사는 새학기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가진 개혁주의자로서의 복음주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마우 박사는 1947년 풀러신학교가 설립되던 당시의 교수였던 칼 헨리 (Carl Henry)의 이론을 중심으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다. 칼헨리의 「현대 근본주의의 번민하는 마음 (The uneasy conscience of modern fundamentalism)」에서 풀러가 가진 원래의 비전인 '번민함 (uneasy)'이 바로 그것이다. 칼 헨리의 번민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마우 총장은 계속되는 긴장감(restlessness)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몸이 힘들어 번민하고 긴장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생각하는 긴장감을 말한다. 학문적인 수준과 신학적인 충실함, 교회와 세상을 위한 제자도를 위한 훈련, 영성과 갱신 등에로의 번민과 긴장감을 말한다. 이런 창조적 긴장감을 가지고 3세대들의 행진은 계속되는 것이다.
마우 총장은 그의 성경에 대한 복음주의적인 사상을 피력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성경의 바른 의미를 알기 위해 모든 도구들을 다 사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의미가 확실해지면 그 말씀이 우리를 판단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결코 판단할 수 없습니다‥‥이제 우리가 여러 교회와 협력하고 사회봉사를 하고 타종교와 대화를 할 때, 우리는 구주의 이름을 믿는 생명을 변화시키는 주의 능력을 증거하는 주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마우 총장이 이끄는 제3세대는, 성경의 권위,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관계를 강조하는 다시 말하자면, 복음주의 신학전통에 더욱 충실하기를 강조하는 새 시대를 의미한다. 창조적 긴장감으로 복음주의 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세대를 말한다.
풀러 3세대들이 앞으로 나아 가야할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앞으로 나가면서 역사를 돌아 보아야 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주지만, 과거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 1세대 조부님들의 개척 정신과, 2세대인 부모님들의 복음주의적 긴장감을 오늘에 되살려, 하나님의 부드러운 인도하심을 받으며, 우리 3세대들은 21세기를 살아갈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어야만 한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풀러의 복음주의 신학을 자세히 보고, 점차적으로 늘어나는 다앙성을 보면서,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풀러가 어떻게 세계와 세계 교회의 갱신과 개혁에 과연 힘있게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풀러는 너무 다양해져서 그 구심점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제3세대 지도자들은 전진하여 나아가기보다는 혹시 우리를 30년 전, 1세대들의 세상으로 돌려보내려 하는 것은 아닌가? 혹은 다양성을 하나의 현실로 인정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들을 하게 된다.
이런 질문을 하면서 우리는 복음주의 가치관을 다시 살펴 본다. 그리고 그 가치관에 따라 신학교육을 새롭게 본다. 사역은 특정인물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주의 백성들이 다양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신학교육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풀러신학교는 평신도 지도자를 위한 과정에서부터 교수요원들을 위한 철학박사 학위과정까지 세계교회를 섬기는 다양한 주의 백성들을 위한 신학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풀러의 문은 활짝 열려 있고 복음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있다. 뜨거운 가슴은 보혈의 능력으로 충만하다. 주의 백성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문화와 언어와 교단과 교파의 사회적인 차이와 벽을 넘어서, 주님이 부르시는 선교에로의 여로에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다. 특별히 아시아권 지도자들이 풀러의 교수로, 이사로, 학생으로 동참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국제화 개방화를 주창하는 오늘 한국교회의 일꾼들이 이 부르심에 동참하여 현재 풀러 동산에서 훈련받는 300여 한인 학우들과 함께, 세계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국제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보다 속히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진다. 창조적 긴장감으로 선교의 내일을 열어갈 열정에 불타는 한인 신학생들을 보면서, 한국 교회의 미래는 고요한 아침에 뜨는 해처럼 밝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풀러는 '94년 가을학기부터 외국학생들이 정규 학위과정에 잘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해 신학영어 교육을 실시한다. 독자가운데, 유학을 생각하며 풀러에 대해 좀더 자세한 정보와 상담을 원하는 사람은 다음 주소로 연락을 주면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풀러신학교 한인학생모임
글쓴이 : 임봉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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