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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기, 삼위일체 신론이 정립되다 3

by 【고동엽】 2021. 10. 2.
 
4 세기, 삼위일체 신론이 정립되다 3
신앙인과 비신앙인 변곡점은, 우주가 어떤 목적을 향해 가고 있는가 아무 의미 없는 우연으로 가고 있는가 입니다.
신앙인은 신 힘에 의해 역사하는 우주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신앙인 나는 세계와 함께하는 나 입니다.
교향곡에서 하나 음표가 전체에 기여하는 주제 없는 음표라면, 별개로 떼어 놓을 땐 아무 의미 없는 기표에 불과하고 산만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 음표가 주제에 맞추어 함께 소리를 낼 때 감동을 일으킵니다.
철학계는 오랜동안 일원주의 관념론과 다원주의 경험론 혹은 프래그머티즘(실용, 실제주의) 간 투쟁이 있습니다. 일원주의 관념론 나라 독일은 히틀러 나찌와 독일 병정을 낳았고, 다원주의 프래그머티즘 미국은 연방국가를 낳았습니다.
한국 교회성당은 다원주의 삼위일체 신론이 실종되고 일원주의 관념론 신앙, 즉 아버지 하나님 중심이라 각 개별 신자 중심 신앙이 아니라 성직자 중심 신앙생활합니다.
고대 기독교가 저항한 당시 세계 사상은 영지주의 입니다.
1. 영지주의는 가장 잘난 사람을 숭상하고, 예수께서는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잃은 양 비유에서, 우리 복음서는 그냥 잃은 양 1 마리인 반면에 영지 문서인 도마복음은 99 마리 보다 잃어버린 1 마리가 크고 귀해서 찾아 나섭니다.(도마복음107장)
예수께서는 '너희가 지극히 작은 자 중에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십니다.(마태25:31-46)
2. 영지주의는 하나로 일치를 주장하는 일원주의 입니다. 즉 전체주의 입니다.
'너희 둘을 하나로 만들 때 너희들이 속을 겉과 같이 만들고 겉을 속과 같이 만들고 •••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된 자로 먼들어 •••(도마복음 22장)
3. 하늘 천국을 구원으로 여기고 이 세상을 악한 곳으로 파악하여 잠시 사는 세상으로 여깁니다.
영지주의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우리는 지나가는 존재들이다'라고 합니다.(도마복음42장, 오쇼 라즈니쉬 번역이고 김용옥 번역은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 입니다)(1)
지도자 중심 신앙인 일자(the one) 개념은 소외를 발생합니다. 각 개 신앙인 별로 독립성을 보장하는 다자(the many) 개념이 친밀성과 화해, 평화로 인도합니다.(2)
다자 개념인 삼위일체 신론은 4 세기에 오늘날 터키 북부 카파도기아 교부들인 카에사리아의 바실리오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형제,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에 의해 성립되었습니다.
성서에 하나님과 예수와 동등하고 예수와 성령이 같다는 진술을 담기위한 방편 입니다.(3)
모든 신 이름은 인간 의지가 투영된 이름 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신은 성서에 계시된 신 뜻을 찾아서 불리어진 이름 입니다.
주님으로서 하나님 자기 계시는 계시자(아버지 하나님), 계시(아들 하나님), 계시되어 있음(성령 하나님) 삼위일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성서 기초 입니다.(4)
앞서 말씀드린대로, 우리는 하나님을 존재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부분은 전체를 담을 수 없고 하나님은 우리 의식 밖의 무엇이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무 또는 무한, 절대 타자 등으로 부릅니다.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한도 내에서 알 수 있을 뿐 입니다.
기독교는 신이 인간이되셔서(요한1:14), 사역하시고 가르치시고 생명과 자유, 평화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따라서 신을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파악합니다. 삼위일체 신은 행위로 파악하고자하는 일환 입니다.
삼위일체 신은 신이 3 이라는 삼신론과 1 신이 각각 3 형태로 존재한다는 양태론에 빠질 염려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셋이 하나라는 논리 결함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을 인격으로 이해해서 오는 오해 입니다. 신은 인격이 아니라 영 입니다.
그동안 삼위일체 신을 우리 현실에 빗대어 설명하려는 노력이 있었는데 모두 적절치 않습니다. 신은 우리 현실 너머 무엇이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 유비allegory할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신은 1+1+1=1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한+무한+무한=무한이라는 뜻 입니다.(5)
0+0+0=0과 같습니다.
4 세기 삼위일체 신론이 정립된 이후 현대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 위르겐 몰트만, 미로슬라브 볼프 등 학자들이 적극 개진하기 전까지는 잊혀 있었습니다.
11 세기 전후한 스콜라신학은 이성과 자연에서 창조주 신을 파악하는 입장에서,
16 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전쟁통에 강력한 지도력 발휘를 위해 하나님 주권신학을 강조하기 위해서,
18 - 19 세기는 계몽주의로부터 비롯된 이신론과 자유주의 신학이 예수 역사와 그분의 가르침을 강조하기 위해서, 즉 예수 인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삼위일체신론이 필요하지 않았고 잊혀있었습니다.
신학은 자기 시대 고백 입니다.
오늘날도 교회성당은 신자들 복종을 통해서 신자 숫자 성장하려는 의도로 하나님 주권신학을 강조하고 삼위일체 신은 외면합니다.
한편 예수세미나 등 소위 진보 신학은 예수 역사성과 윤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삼위일체 신을 외면합니다.
오늘날, 각 부분 독립성을 보장하는 다원주의 시대에 삼위일체 신이 우리에게 생명과 화해 평화로 인도합니다.
삼위일체 신은 내재 삼위일체와 경륜 삼위일체로 이해합니다.
내재 삼위일체(perichoresis)
니케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서 삼위일체 신이 기독교 신으로 공식화했습니다. 이때는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인 내재 상호교류perichoresis 삼위일체로 설명되었습나다.
페리코레시스 즉 동등함으로 상호교류하는 삼위일체 신은 각 개체가 존중되는 보편주의로서 기독교 근본 이념 입니다.
삼위일체 신은 자기 본위란 있을 수 없습니다.
침묵과 자기비움(케노시스)이 있을 뿐 입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 영원성과 불변성에 집중하여 역사 진행 과정과 접촉하는 신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즉 경륜 하나님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유대교처럼 창조주 하나님만 설명되고 있습니다. 혹, 설명되는 삼위일체 신도 내재 삼위일체 신에 머물러 있는 실정 입니다.
한국 교회가 세상과 갈등하는 이유는 삼위일체 신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 주권만 강조하고, 영은 물질 반대 개념으로 파악하는데 있습니다.
경륜 삼위일체
창조자 하나님, 화해자(역사) 하나님, 구원하시는 하나님인 경륜 삼위일체는 해석 출발점이 신 주체라는 표상이 아니라, 신을 세계 사건 과정과 그 맥락에 대한 경험에서 얻어진 해석 입니다.(6)
삼위일체 신을 외면하고 성부 하나님 중심 믿음을 가지면 자기가 바라는 것이 신이 되므로(루터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현대판 우상 섬기기가 됩니다.
야훼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갈릴리 사람 예수는 신 비움(케노시스)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사역하신 겸허한 하나님으로 화해자 하나님 이시고, 성령 하나님은 우리 고통에 탄식하면서 사랑으로 우리 삶에 실존하는 구원자 하나님 입니다.(7)
아버지 하나님 : 창조자 하나님
고대 기독교에서 이단은 하나님 창조, 성육신, 삼위일체 하나님 중 어느 하나라도 부정하는 것이 기준이었습니다. 삼위일체 신이란, 아버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아들 하나님이 계시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구원하시는데 같은 한 분이라는 뜻 입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뜻은, 과학이 무엇을 발견하든지 그것이 하나님 사역이고 또한 세계가 아무 목적 없이 우연으로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 목적에 따라 필연과 우연 속에서 하나님 선한 의지로 운행한다는 의미 입니다.
아들 하나님 : 화해자 하나님
삼위일체 신은 예수께서 어떻게 신인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성립했습니다. 즉 예수 신성을 확립하려는 의도 입니다.
신이 땅으로 오셔서 우리 삶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를 심판하지 않고 구원하시는 일환으로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로 인도합니다.
기독교 하나님이 아들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우리에게 더 이상 지배 형태를 주장하는 어떤 담론도 믿지 말 것을 주장하는 신앙 입니다.(
유대교 아버지 하나님 담론은 자신들만의 하나님이라는 인식하에 스스로 세계로부터 고립되었으나 아들 하나님이라는 담론은 더 이상 고립이 아니라 세계와 연대 입니다.(9)
하나님께 순종하라며 주권신학을 강조하는 성직자는 신자를 지배하려는 의도를 숨기는 것 뿐만 아니라 교회를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신이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요한1:14)은 은유(metaphor) 입니다. 은유는 시와 같아서 산문으로 번역할 수 없습니다. 은유는 공동연상체계(system of associaded commonplaces), 즉 공동체가 다양하게 해석함으로서 이해 폭을 넓히는 언어 입니다.(10)
신이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은 신이 스스로 자신 권한을 제한한 사건 입니다.
신 제한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 입니다.
지배, 권한 행사, 남용 등은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지 않고 불행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로 일치, 강함, 크게 됨, 성공, 풍요, 번영은 당시 영지주의 사유 입니다. 이러한 풍토에서 구별되나 배척하지 않고 연대, 연약함, 실패가 은혜라는 성육신 사유는 충격 입니다.
기독교는 무능이 계시된 신을 믿습니다.
신이 인간이 되셔서 신 힘을 행사하지 않고 포기하여(케노시스) 화해 사역을 감당하셨다는 의미는,
부자, 강한자는 교만하지 않아야 하며
가난한 사람과 실패자, 병든자, 소외자, 약한자가 존엄이 지켜지는 가운데 화해하고 평화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 입니다.
또한, 교회가 성공한 사람이 자랑질 하는 곳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 병든자, 실패자가 존중받는 곳이어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오늘날 개신교 주류 신학인 복음주의는 가장 멋진 이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2 천년 기독교 역사상 가장 엉터리 신학사조 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가장 저항했던 1 세기 영지주의 사유와 같기 때문 입니다.
기독교는 영원으로부터 오는 계시를 통해 이땅에 새로운 가치를 전하는 종교 입니다.
그러나 19 세기 미국에서 발흥한 복음주의는 세상과 결합하여 교회를 자본주의화 하는데 앞장 섭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복음주의가 예수, 바울, 루터가 종교 억압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하여 종교를 세속화하여 삶의 기쁨으로 인도한, 삶의 여러가지 편의와 놀이 문화 등은 영지주의와 같이 경건을 이유로 거부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영지주의는 3 가지 핵심 사상 입니다.
1. 개체 독립성을 존중하지 않는 일원주의 입니다.
2. 크게 됨, 하나로 일치함, 즉 성공과 업적을 존중하고 약함과 실패를 저주합니다.
3. 세상을 악하게 인식하여 세상을 벗어나 하늘 천국을 구원으로 인식합니다. 따라서 세상 즐거움을 거부하고 오락, 놀이, 문화를 죄악시 합니다.
오늘날 개신교 주류인 복음주의가 이러한 고대 영지주의와 같은 사유 속에서 신앙생활합니다.
고대 기독교는 당시 시대 사상인 영지주의를 이기고 세상에 우뚝서서 빛과 소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자본주의에 굴복하고 세상으로 흡수되었습니다.
칼빈신학과 복음주의는 놀라울 정도로 고대 영지주의와 같습니다. 칼빈신학은, 강함과 성공은 하나님 축복이고 약함과 실패는 하나님 저주 입니다. 이렇게 예수와 반대되는 신학으로 무장한 복음주의가 기독교를 세상에 굴복하게 했습니다.
내가 20 여년 전에 친구 목사에게 앞으로 30 년 안에 기독교가 망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성세를 자랑할 때 입니다. 그 친구 목사는 개신교 이름이 저항(protestant)이므로 개혁해 나갈 거라 낙관했습니다.
올해 한신 신학대학원 정원 75 명에 지원자가 20 여명 입니다. 전국 신학대 사정이 비슷합니다.
나의 선견이 적중해서 안타깝고 슬픕니다.
성령 하나님 : 구원자 하나님
오늘날 교회성당에서, 영을 물질 반대 개념이나 신이 나에게 준 특별한 재능이라는 은사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은사 체험이라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그리스 사상, 즉 신플라톤주의 사상 입니다.
기독교 성령은, 현재를 세계 가치관이 끝나고 신이 새롭게 열어 주시는 하나님나라 삶으로 인도하는 종말로 인식합니다. 즉 하나님나라 입니다.
이때에, 성령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보증으로 인간에게 부어지는 힘 입니다.(고후1:22 로마5:5 갈5:22-23 )(11)
영은 현재 나의 삶을 의미있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영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우리를 살리는 생명 입니다.(요한6:63 로마8:6 고후3:17)
여러분과 가정에 평화가 !
1. 이정만 기독교는 왜 도덕과 경건이 아닌 사랑인가 한들출판사 서울 2016, 22-32p
2. 윌리엄 제임스 다원주의자의 우주 김혜련 아카넷 파주시 2018, 299p
3. 삼위일체 신론 근거 본문 사61:1 마태28:19 로마1:1-4 살후2:13 벧전1:2 계1:4 고후13:13 고전12:4 엡4:4 빌2:6-11 등
4. 칼 바르트 교회교의학 1-1 박순경 대한기독교서회 서울 2003, 408p
5. 카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정준형 웅진 지식하우스 서울 2013, 196p
6. 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 판넨베르그 조직신학 1 김영선 은성 서울 2003, 629p
7. A. N. 화이트헤드 과정과 실재 오영환 민음사 서울 1991, 588-590p
8. 알랭 바디우 사도바울 현성환 새물결플러스 서울 2008, 87p
9. 도미니크 핀켈테 바울의 정차적 종말론 오진석 도서출판 b 서울 2015, 39p
10. 존 힉 성육신의 새로운 이해 변선환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서울 1997, 145-147p
11. 한스 큉 교회 정지연 한들출판사 서울 2014, 2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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