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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 신학에 대하여

by 【고동엽】 2021. 10. 2.
스콜라 신학에 대하여
신약성서가 증언하는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했던 정치 - 군사 하나님나라도 아니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저 세상 천국인 피안 하나님나라도 아닙니다.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서 생명과 자유, 평화를 얻을 수 있는가를, 예수께서 사역하시고 가르치신 내용과 그에 따라서 1 세기 성서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했는가에 대한 증언 입니다. 즉 지금 내 삶에서 이루어가는 하나님나라 삶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은 믿음과 삶이 유리된 현실 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우주화, 내면화 함으로써 성서에서 말하는 풍부한 삶 이야기를 놓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학 역사 과정을 찾아가면서 이 문제에 대한 원인을 밝히려는 목표가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신학 전반을 평가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어떻게 성서와 다르고 성서가 제시하며 요구하는 삶을 떠난 신학인가를 밝히는데 주력합니다.
스콜라 신학은 유럽이 기독교 국가로 통일 되었던 시대인 샤를 대제(742 - 814)부터 중세 말기인 14 세기까지 신학을 말합니다.
이 신학은 이성과 믿음(신앙), 지성과 의지를 탐구했습니다. 즉 믿음을 철학으로 탐구했습니다. 성서에 계시된 하나님 의가 인간 의와 어떻게 다른지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스콜라 신학 표어는 '이해하는 믿음(신앙) 입니다. 이성으로 믿음(계시)을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상 최대 베스트 셀러인 중세 말기 토마스 아킴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이성으로 믿음(계시)을 이해하려 말고 헌신하라는 요구 입니다. 당시, 성서가 연구되지 못한 결과로 도덕과 선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말 입니다.
스콜라 철학이라는 용어에서 학교(school)라는 말이
파생되었습니다. 처음에 이말은 현실과 전혀 관계하지 않는, 무엇인가 삶과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당시 신학은 고대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대부분 대중은 이 문헌에 가까이할 수 없었습니다. 스콜라신학자들은 지성과 동시에 신비주의자 입니다.
누미노제, 즉 성스러운 예배, 건축, 미술, 음악을 발전시켰습니다.(1)
예수께서 제시한 하나님나라 새로운 삶에 대한 자각이나 인식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들 신학에 성서가 전혀 역할하지 못했습니다.
머, 오늘날 기독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안셀무스(1033/34 - 1109)
안셀무스는 플라톤에 충실하여 물질 세계를 영 실재보다 저등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물질 세계는 진리 추구와 조화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 개별보다 보편 존재를 중요시 했습니다. '노랑'이나 '인간성' 등 입니다. 각각으로 존재하는 국화가 노랗다로 개별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재하는 '노랑색'이 보편으로 존재한다는 의미 입니다. 각 사람마다 개별 '인간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아니라 보편으로 실재하는 '인간성'이 있다는 뜻 입니다.(2)
한편, 신앙 개인주의는 아우구스타누스에 의해 세워지고 프란치스코회로 이어졌습니다.(3) 개신교가 스콜라 신학을 거부하고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을 이어갔기 때문에 개신교에 개인주의 신앙이 심화되었습니다.
개별을 존중하지 않고, 물질은 천상보다 저등하다는 사유는 천상과 가까운 사람이 있다는 사회 구조 사상을 일으켰습니다.
사회를 계층으로 인식하여 평신도 - 사제 - 주교 - 교황이라는 위계질서(hiearachy)를 세웠습니다.(4)
모든 신자는 왕같은 제사장이라는(벧전2:9) 성서는 무시되었습니다.
다시 서는 기독교는, 성직자가 없는 민주 제도 여야합니다. 지도자는 성서 신학을 전공한 성서 해설자가 맡습니다. 교회에서 설교는 성서가 해설, 증언되고 말씀이 선포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의가 인간 가치체계와 어떻게 다른지 체화함으로써 삶 변화를 이루어갑니다.
교양, 교육, 문화, 예술 등은 교회 밖에서 기독교 신학으로 펼쳐나가면 됩니다.
미국에서 귀국하여 부모따라서 필자 교회에 출석한 40 대 신자가 평생 처음으로 성서 설교를 들었다고 합니다. 현재 기독교 실정 입니다.
교회는 철저히 성서가 증언되는 곳 입니다.
2 세기, 예수그리스도 죄용서는 노예 해방을 위해 대신 값을 치룬다는 의미인 대속이었으나, 안셀무스는 그리스도 죄용서에 대해 만족설을 계발했습니다. 십자군 병사를 모병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만족시키기 위해 죽으신 것처럼 병사들 죽음이 하나님을 만족시킨다는 교리 입니다.
이해하는 신앙은 안셀무스 주장 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1224 - 1274)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이슬람이 스페인 지배시에 유럽으로 도입되었습니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받아들여
신학을 세웠습니다. 토마스는 이 세계가 천상 그림자라는 플라톤 철학을 벗어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감각 세계 실재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창조 세계가 선하고 좋았다는 기독교 실재론을 펴서 자연신학 근거를 세웠습니다.(5)
종교개혁자들이 스콜라신학을 거부하고, 오늘날 개신교가 자연신학을 발전 시키지 못한 건 불행 입니다. 자연신학 소홀은 지구 환경 폐해에 기독교가 역할 못하는 원인이 됩니다.
성서는, 인간은 구원과 죄에 관한한 철저하게 무력한 인간임을 증언합니다.(로마7:14 - 25)
토마스는 바울과는 다르게 인간 본성에 덕을 향한 지향성이 있다고 보았고, 그것을 '인간본성 선'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덕을 인간 본성이 나아가는 최종 목표로 보았기 때문에 거의 진리나 구원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합니다.(6)
토마스에게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은혜는 성화은혜(sanctifying grace) 입니다. 성화은혜는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은혜 입니다.
이것이 가톨릭 정화, 개신교 성화 신학 기초가 됩니다.
토마스는 아라스토텔레스 덕을 받아들여 종교화한 신플라톤주의 사상을 수용하여, 덕과 성화 신학을 세웠습니다.
성서에는 덕을 통해 구원으로 간다거나, 하나님이 인간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즉 정화나 성화는 성서에 없습니다(7)
4 세기 아타나시우스에 의해 성서가 정립될 때, 복음서와 하나님 의가 강조된 바울 서신을 중심으로 성서가 정립되고 인간 의 즉 성화가 강조된 서신들은 외경이 되었습니다. 디다케, 클레멘스 등 주옥같은 교훈 글들은 도덕과 선으로서 인간 의이기 때문에 성서가 될 수 없었고 외경이 되었습니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운동 법칙을 받아들여 구원 서정(순서) 신학을 세웠습니다.
인간 정화 - 신 조명 - 그리스도와 연합 입니다.
구원 전에 인간에게 정화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사상인데요. 이것은 모든 종교가 같이하는 사상이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기독교 사상과 다릅니다.
필자가 계속해서 기독교는 도덕과 선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도덕과 선을 추구하는 신앙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하면서 인식하는 행위이므로 차별과 배제를 일으킵니다.
예수사랑은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선하지 않은 사람을 용납하는 행위 입니다.
예수사랑에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세력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들에게는 저항하셨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과 가정에 평화가 !
1.. 폴 틸리히 그리스도교 사상사 잉게베르크 C 헤넬 엮음 송기득 대한기독교서회 2020, 227 - 228p
2.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신학 김주한 김학도 대한기독교서회 2009, 372p
3. 폴 틸리리히 289p
4. 김용규 신 IVP 2018, 114 - 116p
5. 존 D 카푸토 철학과 신학 김완종 박규철 기독교문서선교회 2016, 50 - 51p
6. 김동건 그리스도론의 역사 대한기독교서회 2018, 403p
7. 이정만 기독교 본류를 찾아서 한들출판사 2015, 259 - 286p에서 기독교는 왜 성화가 아닌가에 대해 논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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