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자 이스라엘 방방곡곡에서
구름 떼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읍니다 어떤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였습니까?
바로 앞에 있는 4장 25절에 보면, 갈릴리에서도 오고, 데가볼리에서도 오고, 예
루살렘과 유다 지방에서도 오고, 심지어 요단 강을 건너서
이방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몰려온 그들의 신분이 대충 어떤 사람들이었느냐
물론 지체 높고 잘 사는 사람들도 좀 끼어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4장 24절에 보면 '병든 자들, 귀신들린 사람들,
어떤 면에는 세상으로부터 버림 당한 외로운 사람들이요, 가난한 사람들, 죄인 들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실패자 들입니다
그리고 소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으로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무리들을 이끌고 갈릴리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이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으셔서 입을 열어 가르치기 시작했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5:3~5
이렇게 말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5:1절에 보면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 앞에는 마치 제자들만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표현이 하나 나옵니다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물론 산상수훈의 내용을 보면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받을 수 없고 소화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작정한 제자들에게나 통하는
너무나 차원 높은 진리요, 신비스러운 진리이기 때문에
일반 무리들이 들어서도 무슨 소린지 알기 어려운 내용일 것이다 하는 것은 우리가 인정할 수 있습니다
또 액면 그대로 이해를 했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의 깊이를 절대 들여다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무리들은 따돌려 놓고
제자들만 상대하여 하신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 무리들도 언젠가는 예수 믿게 될 것이고
예수 믿으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다 될 사람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12제자만 아니고
하늘의 별들처럼 무수하게 나타날 미래의 제자들,
미래의 제자들을 눈 앞에 그리면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하셨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마5장 1절에 보면 또 재밌는 말 한 마디가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앉으셨다'고 그랬지요
산에 올라 갔으니까 앉았지..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하죠.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서 앉으셨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우리가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이것은 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예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산에 가서 앉으셨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시기 시작했다' 하는 이야기를
이 말씀 속에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가르침이 얼마나 권세가 있었는지,
얼마나 박력이 있었는지, 얼마나 무게가 있었는지 들은 사람들이 놀랐어요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다 듣고 나서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를 우리가 좀 봅시다
7장 2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랬다'
왜 그런가 하면 그 가르치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다..
도무지 감히 얼굴을 들고 쳐다볼 수가 없을 만큼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다' 서기관들은 직업적으로 가르쳤잖아요
직업적으로 가르치면 아무래도 감동이 적고
또 직업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의 말은 권위가 약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직업적으로 형식적으로 가르치는 분이 아니었어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나님 자신의 음성으로 사람들의 귀에 들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놀랬어요
앉아서 가르치신 주님의 그 태도에는 이와 같은 권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담아 들으면 마음이 아무리 캄캄한 사람이라도
하늘에서 빛이 비치는 은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또 우리의 마음이 굳어서 그 말씀을 잘 받아들일 수 없다 할지라도
그 권위 있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 마음의 빗장을 열고, 그 말씀이 깊이 들어와서
우리의 마음에 자리를 잡는 것을 여러분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다음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얻어 먹었사오니.. 귀로 듣는 게 아닙니다
그 말씀을 마치 먹듯이 마음속 깊이 담았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보니까 그 말씀이 내 기쁨이 되었나이다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나이다
예레미야 15장 16절에 예레미야가 고백한 그 은혜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 성경 본문을 보면 '복이 있나니 복이 있나니' 하는 말이 8번 반복되어서 나옵니다
그래서 팔복 이라고 하고 마지막에 한 번 더 그 말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주로 일반적으로 9복이라고 하지 않고 팔복 이라고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꼭 명심해야 될 진리가 있습니다
이 팔복의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성품이요
동시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성품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본성하고 관계가 없어요
물론 사람들 중에는 천성적으로 겸손한 사람도 있고, 눈물이 많은 사람도 있고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도 있고, 의분이 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생물학적인 특징을 지금 여기서 논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면 뭡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러 이러한 성품을 갖게 될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입장에서 보면 '나를 따르는 자는 내가 갖고 있는 성품이 이러한즉
너희의 성품도 이러해야 하느니라' 하는 것을 지금 팔복을 가지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8가지를 개별적으로 떼 놓고 생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어떤 사람은 특별히 마음이 온유하다, 또 다른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다..
이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한 가지씩 소유하는 성격으로 보시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 품성은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하는 한 사람의 온전한 성품을 가르칩니다
왜냐면 이 8가지는 예수님 자신의 성품이에요
그러므로 예수님 자신의 성품이 내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때
내 안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성품이요, 거룩한 성품을 이야기합니다
팔복이 예수님 자신의 성품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 때문에
흔히 '예수님의 초상화'라고 이름을 붙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 마치 그런 것 같아요
팔복을 가만히 읽으면서 그 내용을 음미하면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아요
예수님의 초상화를 우리가 보는 것 같습니다
8가지 컬러를 가진, 수 천 개의 작은 돌로 만들어진 예수님의 모자이크 초상화 같습니다
여러분이 모자이크 그림 이라든지, 모자이크 어떤 작품을 감상하신 적 있죠?
작은 돌들은 여러 가지 색깔을 띠고 있지 않습니까?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흰색 등요
우리가 얼굴을 모자이크에 가까이 대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돌 하나 하나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자이크로부터 몇 걸음 뒷걸음질 해서 전체를 보면
이 작은 돌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하나의 전체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을 알게됩니다
팔복이 똑같아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는 말씀 하나 하나 뜯어 보아도
그 나름대로 은혜가 풍성하지만
조금만 뒤로 물러서서 팔복 전체를 우리가 이렇게 깨닫고
또 내 마음에 담고 생각하면
예수님의 거룩하신 모습이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모습에는 심령의 가난함이 있습니다
애통함이 있습니다, 온유함이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얼굴에는 화평이 있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상화가 보여요
▲그러므로 주님이 이 말씀을 권위있게 하시는 저의가 뭐냐?
'내가 이러하니 너희도 이러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모두 나처럼 되라!' 하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되어야 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진정한 구원은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막연히 천당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그 말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요
예수님을 닮는 자요, 결국에는 예수님과 똑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예수의 제자입니다
▲팔복의 내용은 예수님 자신의 성품이기 때문에
그럴 배우고 따르고 닮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늘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주님을 닮아 가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리에 와서 말씀을 듣고 있지만
예배를 마치면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도 모르고 다 잃어버리고
또 일주일을 살아야 될 사람도 많아요
이번만은 그러지 맙시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이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여러분이 매일 묵상하세요
그러면 그 말씀이 나의 성품을 심는 씨앗이 되어서
나로 하여금 주님을 닮아가도록 계속 작업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주님을 닮은 사람이다'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이 팔복은 예수님 자신의 행복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한데 너희도 행복해야 된다' 하는 주님의 그 따뜻한 마음이
이 말씀 안에 들어 있어요
주님이 말씀하잖아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복이 있나니' 하는 이 말투는 감탄사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행복이여!' 하는 말과 같습니다
'온유한 자의 행복이여!'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행복이여!' 하는 감탄사의 말씀이에요
'심령이 가난하면 얼마나 행복한지 아니?'
'화평케하는 생활을 하면 얼마나 행복해지는지 아니?'
그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는 감탄, 감격이 이 말씀 속에 들어 있어요
우리가 이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복이 있나니' 하는 말은 '마카리오스' 라고 하는 헬라어 입니다
근데 재밌는 것은 마카리오스 라고 하는 말이
사람들의 행복을 가리켜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복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나니' 할 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행복인데
이 행복은 하나님이신 예수님 자신의 행복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저의는
'내가 누리는 행복을 너희도 항상 체험하면서 살기를 바란다' 하는 주님의 그 심정이
이 말씀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너희도 나처럼 심령이 가난하면 행복한 자가 될 수 있느니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주님의 속삭임이 이 가운데 있습니다
'너희도 의에 주리고 목마르면 나처럼 행복할 수 있느니라' 하는 말씀을
이 속에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너무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생을 살았습니다
그만큼 가난한 분이 없었고, 그만큼 사람들에게 핍박 받은 사람이 없었고,
그만큼 고통을 체험한 사람이 없었습니다마는
그와 같은 고난 속에서도 주님은 잃어버리지 아니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심령의 행복이었어요
우리가 이 행복을 소유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 된 자가 될 것입니다
사실 보세요 그렇지 않아요?
가난하면서도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의 행복을 누가 앗아가겠어요?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면서 애통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행복을 누가 빼앗아 가겠어요?
이 세상에서는 큰소리를 쳐야 이깁니다 온유하면 손해봅니다
온유해서 손해를 보면서도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행복은 누가 뺏어 가겠어요? 못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는 이 행복은
이 세상에 그 무엇으로도 줄 수가 없고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누리는 행복이에요
이 행복을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미국독립선언문에 명시된 것처럼
누구나 자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위해서 뜁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면 앞뒤 가리지 아니하고 매달립니다
마치 인생의 목표가 행복을 얻는데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에요 행복 해야죠 그러면 문제가 어디 있느냐?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거예요
먹고 마시는 것, 사람들이 정말로 이것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으로 삼고 있잖아요
성관계, 엄청난가봐요 사람들이 그렇게 미치고 환장을 하는 거 보면!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손에 넣으면, 그런 것들을 내가 원하는 것만큼 소유하고 즐기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길을 잘못 든 거예요
돈이 행복을 갖다 줄 줄 알고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죠
명예와 권세가 나에게 행복을 줄줄 알고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에 불을 쓰고 쫓아다닙니다
그러나 명예와 권세가 나에게 행복을 줍니까?
행복을 주었다고 대답할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심지어 솔로몬 까지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것들이 행복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잘 기억하세요 죄는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그리고 우리를 속입니다
죄는요 행복을 줍니다 그 행복은 일시적인 거예요
행복을 줍니다
죄에 끌려가면 일시적으로는 굉장히 만족스럽고 행복해집니다
섹스를 추구하던지 아니면 뭐 돈을 추구하든지
아니면 어떤 무엇을 추구하든 간에 죄는 우리를 잠깐은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거예요 그 속임수에 빠지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거짓이에요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쾌락도, 제물도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명예나 권력도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그 모든 것은 결국은 전도서가 선언한 것처럼
'헛되다'로 귀착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5중주의 헛됨으로 다 귀착되고 끝납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진정한 행복이 어디 있는지,
행복의 길이 어디 있는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내 마음에 모시고
그분의 성품을 닮아 가기를 애쓰는 사람은
하나님이 누리시는 그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해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닮으면 닮을수록 행복의 순도는 더 높아지고 진해진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야말로 우리 행복의 원천이 된다고 하십니다
그 예수님, 행복의 원천 대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믿습니까?
그 예수님이 내 안의 계십니다 그 예수님의 이 자리에 계십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권세 있게 말씀합니다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야 행복은 나에게 있는 거야
그러므로 내가 다스리는 너희 마음에서 행복을 찾으라' 그거예요
행복을 찾는 길은 어떤 것이냐?
예수님을 닮으려 하란 말입니다
예수님이 심령이 가난하셨으면, 나도 심령이 가난해지면
예수님의 행복이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팔복을 가지고 우리는 이렇게 선언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소유로 만족하는데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예수님처럼 심령이 가난한 데 있다고 합니다
행복은 웃고 즐기는 데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예수님처럼 애통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행복은 강한데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예수님처럼 온유한테 있다고 합니다
행복은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행복한 무정하고 차가운데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예수님처럼 긍휼히 여기는데 있다고 합니다
행복은 더러운 마음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예수님처럼 청결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있다고 합니다
행복은 다두고 갈등 하는데 있지 않다고 합니다
예수님처럼 화평케 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행복은 불의와 타협하는 데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데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오늘 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심령의 왕으로 모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우리 모두의 행복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헛된 것을 놓고 시간 낭비하고 정력 소비 하지 마세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분을 주목하세요 그분처럼 되려고 노력을 하세요
그분을 닮으면서 하나하나 그분의 성격을 나의 성격으로 받아들이세요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산상보훈을 설교하지 못했지만
제가 이 설교를 하면서 동시에 저도 예수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누리던 그 행복을 제가 소유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세상적인 조건을 보면 행복해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세상이 모르는 행복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어요
세상이 앗아가지 못하는 행복이 있을 수 있어요
그 행복은, 행복의 원천 되신 예수님이 내 마음의 계심을 알고
그분을 배울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악을 쓰는 세상에서
내가 온유함으로써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요!
악착같이 모아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 틈에서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전혀 부러울 것이 없는 만족이 내 안에 있다면
세상에 이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내보다 앞으로 막 달려가는 사람들이 때를 이루는데
비록 나는 뒤처졌다 하는 느낌이 있어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그 심정 때문에 내 마음에 신비스러운 행복이 자리를 잡는다면
세상에 이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어요?
우리 모두에게 이 행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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