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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신보: 개혁주의 신학을 말한다.
기독교 철학이란 무엇인가?
총신대학교 신학과 신국원
근대이전의 기독교철학
기독교는 철학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다. 기독교가 철학적 문화인 희랍-로마문명 속에 복음을 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는 철학적 지혜가 아니고 계시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나 첫째, 복음의 변증과 전도를 위해 당시 학문과 문화의 중심인 철학을 외면할 수 없었다. 둘째, 성경의 진리를 신학으로 체계화 함에 철학의 방법과 용어를 빌리면서 보다 긴밀한 접촉이 시작되었다.
특히 철학 훈련을 받은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이 접촉은 더욱 깊어졌다. 기독교 철학자로 알려진 클레멘트나 저스틴 마터는 개종 이전부터 철학에 능숙했으며 심지어 철학을 극도로 반대했던 터툴리안도 결코 철학에 무식한 사람은 아니었다.
특히 어거스틴 이후에는 기독교인들이 이방철학자들에 앞서 철학을 주도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변되는 중세의 스콜라철학은 천년의 역사 속에 서양사상과 문화를 지배했다. 철학은 초대교회이래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과 결코 편하지 않으나 무시할 수도 없는 특이한 관계 속에 있다.
근대철학이후
기독교 신앙과 철학의 사이가 특히 불편해진 것은 근대이후의 일이다. 동양에서는 흔히 철학을 도 닦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종교와 엄격히 구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교철학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유교와 도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의 면모가 강하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는 다르다. 특히 16세기 이후 철학은 종교와 완전히 다른 무엇이 되었다. 신학자들이 철학을 장악했던 중세에 반발하여 이탈하기 시작한 철학이 급속도로 세속화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철학은 인간의 이성에 입각한 철저히 인본주의적인 학문으로 발전했다.
근대에 들어서 종교는 사적인 믿음의 문제요, 비과학적이라고 간주되었다. 반면 철학은 명료한 논리에 입각하여 객관성, 엄밀성, 합리성, 필연성을 갖춘 확실한 지식의 기초라고 생각했다. 또 철학은 종교로부터 자율성과 중립성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이성이 판단의 최종적 권위라는 생각은 철학자들의 상식이 되었다. 특히 종교적 믿음은 이성과 근본적으로 상충한다고 보았다.
현대 기독교철학의 발단
이런 까닭에 얼마 전만 해도 철학자들은 기독교철학을 “네모난 원” 같은 모순된 생각이라고 조롱했다. 이 편견을 극복하고 현대 기독교철학을 태동시킨 것은 아브라함 카이퍼가 중심이 된 19세기 말 화란의 칼빈주의 부흥운동이었다. 흔히 신칼빈주의라고 불리는 이 운동은 이성의 권위와 학문의 종교적 중립성을 비판하여 기독교 학문과 기독교철학의 가능성을 열었다.
카이퍼는 어거스틴과 칼빈을 따라 이성의 자율성과 중립성을 비판한다. “알기 위해 먼저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성은 신앙에 토대를 두어야만 제기능을 할 수 있음을 다시금 밝힌 것이다. 학문은 중립적 이성을 토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 위에 서서 궁극적으로 믿는 바에 따라 사물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철학을 비롯해서 학문이 중립적이고 자율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종의 신앙이라고 비판했다. 철학의 뿌리에 이런 신앙이 자리한 인본주의적 철학이 가능한 것처럼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한 기독교 철학도 또한 가능함을 주장한 것이었다.
성경적 신앙의 세계관에 입각한 철학
카이퍼 이후 기독교철학은 그가 세운 화란 자유대학교의 헤르만 도예베르트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코넬리우스 반틸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이들은 철학이 궁극적으로는 종교적 전제를 기초로 해서 세워진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은 칼빈의 말처럼 성경을 안경으로 하여 세상을 보는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철학”을 세우려 했다.
특히 도예베르트는 이런 시각에서 서양역사를 분석하고 문화의 뿌리를 밝혔다. 즉 고대희랍은 정신적 형상과 물질적 질료의 이원적 철학이 그 뿌리이며 중세의 기초는 희랍적 자연관과 기독교적 은총론의 어설픈 종합이었다고 비판한다. 특히 근대는 이성과 인간의 자유를 우상적으로 절대시하는 신앙에 기초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들은 신앙과 철학의 역사적 관계를 반성하고 바로 세우려고 했다. 즉 세상 철학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는 동시에 순수하게 성경적 신앙에 기초한 철학을 세우려 했다. 예를 들어 반틸은 기독교철학이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첫째 전제로 삼는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도예베르트는 성경적 근본진리인 창조, 타락, 구속의 계시적 진리를 믿음에 기초한 철학을 체계화했다. 결국 이들은 기독교철학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이성이란 무엇이냐 라는 기초적 질문을 포함하여 세계와 삶의 원리와 구조를 체계적으로 반성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기독교철학과 신학의 차이점
신학은 특별계시, 철학은 일반계시를 연구한다거나 철학은 이성, 신학은 신앙에 입각한다고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기독교철학도 성경계시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학은 계시의 내용을 연구하지만 기독교철학은 성경계시의 빛 아래서 사물의 원리를 연구하는 점이 다르다. 기독교 철학은 세계와 삶 전체의 원리를 다루므로 범위가 넓다. 철학은 상식적인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평소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내용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의식적 반성한다. 즉 일상경험의 내용들을 학문적 자세로 따져보는 자세라 할 수 있다.
신학도 하나의 학문이라는 점에서는 계시 그 자체와 구분되어 하나님 말씀이 갖는 권위와 무오성을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신학은 성경이 계시하는 내용을 직접으로 다루고, 체계화하므로 기독교철학 보다 성경에 더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기독교철학은 세계와 삶의 원리를 규명하여 기독교인다운 생활하는데 보조역할을 할 수 있는 임시적 표준이라 볼 수 있다.
근래의 기독교철학의 동향
기독교철학에 대한 개혁주의 신앙의 기여는 독보적이다. 타 교파에 훨씬 앞질러 질과 양 에서 가히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 기독교철학운동은 화란 뿐 아니라 개혁주의 신앙이 전파된 영국, 미국과 카나다, 남아프리카와 호주,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 퍼졌다.
요즘에 와서는 다원주의적 기조를 바탕으로 하는 포스트모던시대의 분위기로 인해 기독교철학의 입지가 크게 향상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영국에서 <신앙을 가진 철학자>과 <철학자들의 하나님>이라는 책에 영어권의 기독교 철학자 20여명을 소개되었다. 이들은 신학교나 특수한 학교 뿐 아니라 옥스퍼드와 예일, 노틀담 대학에서 중요한 교수직을 가지고 있다.
화란 이민자들이 세운 칼빈대학교는 알빈 플랜팅가와 니콜라스 월터스톨프 같은 미국 철학계에서 주목받는 철학자를 배출했다. 토론토의 기독교학문연구소는 모든 학문을 기독교적 철학을 바탕으로 학문을 연구하여 “기독교세계관”운동의 본산이 되었다. 이외에도 휘튼대학교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등에서도 기독교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개혁신앙을 가진 학자들이 한국철학회 산하에 기독교철학회를 공식적으로 조직했다. 이 학회에는 철학에 비중을 두어 온 총신대학교 출신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기독교철학의 역할과 과제
흔히 기독교철학의 역할을 신학의 서론 또는 변증학에 국한시킨다. 즉 철학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기독교가 진리임을 논증하는 일이다. 세속 사상의 허구성을 밝히고 그들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며, 성경적 진리가 궁극적인 삶의 길임을 밝히는 일이다.
그러나 기독교철학은 신학서론이나 세상의 철학자들의 이론을 비판하여 신앙을 변증하는 일에만 머물 수 없다. 철학은 서양의 지적 전통의 핵심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로크, 칸트, 마르크스는 진리와 삶의 원리를 말하고, 문화의 이상과 사회의 윤리와 규범을 규정했고 결국 삶이 그에 따라 형성되었다. 이들의 사상이 바로 문화의 지도력과 삶의 형태를 구성하는 열쇠였다. 기독교철학은 이런 세상철학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학문의 영향력이 막강한 시대에 있어 기독교철학은 세속학문을 비판하고 기독교학문이 발전하기 위한 기초적 연구를 해야한다. 즉 어떻게 여러 학문연구가 신앙과 통합되어 기독교학문이 될 수 있을지 연구하는 일에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성경의 빛 아래 계속 개혁하는 학문
기독교철학은 성경의 진리에 비추어 세상과 삶의 원리를 끊임없이 반성한 결과이다. 한편 기독교철학은 하나의 과제이다. 철학은 본래 지혜를 사랑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기독교 철학도 새로운 경험과 새로 터득한 성경의 진리에 의해 계속 개선해야할 과제이다.
특히 개혁주의 기독교철학은 중세 스콜라 철학처럼 어느 위대한 기독교철학자의 체계를 “만고불변의 영원적 철학”으로 받들 수 없다. “항상 개혁”을 말하는 개혁주의 정신은 개혁주의적 기독교 철학에도 적용된다. 아울러 기독교철학은 시대의 필요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독교 철학은 계시의 빛 아래서 부단히 자체를 반성해야 한다. 아울러 기독교철학은 비기독교철학과 끊임없이 대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불신세계의 안목을 파악하고 이들의 주장을 성경적 관점에서 비판하고 그들의 통찰을 기독교적으로 변혁하여 취하는 노력이 결실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 영향력 회복
오늘날 기독교가 문화적 영향력을 자꾸 상실하는 것은 지성의 부재가 중요한 이유이다. 그레샴 메이천은 “오늘 학문적 사변의 문제가 내일엔 군대를 움직이며 제국을 무너트린다”라고 했다. 열정적 전도와 설교로 사소한 싸움을 이긴다 할지라도 사상적 전쟁에서 패해 불신사상이 지배케 되면 결국 기독교는 무해한 망상정도 이상으로 대접받기 어렵다고도 했다.
기독교는 흔히 활동중심이고 대중적일 때가 많다. 눈앞의 필요에 급급하고 비전을 상실할 때도 많았다. 기독교철학은 이러한 잘못을 교정함에 효과적이다. 즉 기독교철학은 성경의 안목을 갖춘 기독교지성을 양성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지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세계와 삶을 넓고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상실한 문화적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성경적 기독교철학의 확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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