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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명설교편◑/김동호목사 명설교 (155편)

아첨하다 놓치는 것들 잠29:5

by 【고동엽】 2014. 3. 16.

아첨하다 놓치는 것들         잠29:5  

 

본문말씀은 잠언 29장 5절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강하고 힘 있는 사람에게는

아첨하기 쉽고요.

 

자기보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는

거만하기 쉽습니다.

 

근데 둘 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정말 근사한 삶을 사는 사람은요.

자기 보다 강하고 힘 있는 사람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고

 

또 자기보다 힘없고 약한 사람에 대해서도

거만하지 않고 예의 있고

존중히 여기고 귀히 여길 줄 아는

 

이런 품성을 가진 사람이

정말 훌륭하고 근사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게 참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힘이 있으면 사람 깔보기 싶고요.

 

조금만 나보다 나은 사람 보면

저 사람한테 가서 붙으면

내가 이익을 얻겠다 싶으면

 

비굴하리만큼 가서 아첨하고

뇌물 주고 빌붙고

그러는 일들이 참 많은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에게 거만하고

또 강한 자에게 아첨하는 것과 같이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사람들 중에는 도리어

가난한 사람 편에 서고

강한 사람에 대해서 대적하는 것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을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근데 여러분 이것도 옳지 않아요.

가난한 자에게 친절하고

강한 사람에게 무조건 적대시하고 하는 거

여러분 그것은 용기도 아니고, 정의도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자의 편에 서는 것을

정의라고 생각을 해요.

 

근데 여러분 정의는

가난한 자의 편에 서는 게 아니에요.

옳은 사람 편에 서는 게 정의예요.

 

여러분 가난한 사람이 옳으면,

가난한 사람 편에 서야 돼요.

 

가난하기 때문에 편을 드는 게 아니라

그가 옳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 편에 서는 거예요.

 

가난한 사람 편에 서면, 손해를 볼 때가 많아요. 왜?

부자들, 강한 사람들이 힘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이 옳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 편에 서는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일이고 정의로운 일이에요.

 

그런데 잊어서는 안돼요.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옳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가난한 사람도 틀릴 때가 있거든요.

옳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용기 있게 부자 편을 들 수 있어야 돼요.

 

여러분 부자 편에 서면 힘들어요. 오해 받아요.

비굴한 사람, 비겁한 사람으로

뭘 얻어 먹으려고 그 사람 편에 선 것처럼

사람한테 오해받기 참 쉬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부자 편을 들 수 있어야 돼요. 왜?

 

부자기 때문에 편드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옳기 때문에 편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정의는

가난한 자 편에 서는 것도 아니고

부자 편에 서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옳은 사람 편에 서서

가난한 사람이 옳으면 가난한 사람 편을 들고

 

부자가 옳으면 그때는 부자 편을 들 수 있는

그런 용기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강하고, 부하고, 높아도

무례하지 않는 사람

사람 깔보지 않는 사람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존귀히 여기는 사람

소중히 여기는 사람

 

그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사람

그리고 친절한 사람

이런 사람 참 근사한 사람이죠.

 

▲이런 사람은, 아첨하는 사람하고 비교가 되지 않죠.

 

여러분 강한 사람에 대해서도 당당하고

‘나도 당신과 똑같은 대등한 관계다.

우리 같이 친하게 지내자’

 

이렇게 친절하고 예의는 갖출 수 있지만

비굴하게 빌붙지는 않는 이런 자존감,

이런 영적인 자존감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겐 있어야 돼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요.

나보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에 대해서

 

그를 존중히 여기고

같은 한 인격으로 존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고

 

그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고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몰라요.

 

강한 자에 대해서 담대하고

약한 자에 대해서 따뜻하고

친절한 그런 하나님의 당당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본문에서 이 ‘아첨’이라고 하는 말이

참 마음에 걸렸어요.

 

아첨한다는 것이 얼마나 참

비굴한 일이겠어요.

 

근데 사람들은 대부분 저를 포함해서

아첨하는 일에 본능적으로 약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아첨하면 생기는 게 많거든요.

아첨하면 얻는 기회들이 많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있는 사람에게 줄 잘 서야 돼

큰 물주를 잡아야 돼’

 

그리고 가서 그 사람에게 아첨하고

빌붙고 그러고 살아가기가 참 쉬워요.

 

여러분, 아첨해서 얻는 것이 많기 땜에 사람들은 아첨을 하는데

여러분 그 얻는 것이 크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간과해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요?

세상을 얻고, 자기를 잃는 거예요.

 

예수님은 우리를 천하보다 귀하다 그러셨잖아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으로 자기 목숨을 바꾸겠느냐?’ 막8:36

이렇게 말씀했잖아요.

 

여러분 아첨을 통해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요.

 

천하가 만만치는 않지요.

천하를 얻는다면

여러분 정말 그렇게 아첨하게 되겠죠.

 

그런데 천하보다. 귀한 자기 자신을 모르는 거예요.

여러분 아첨하는 순간

천하는 혹시 얻을는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얼마나 비굴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놓치는 거예요.

 

천하를 얻고 나를 잃는 행위가 아첨 아닐까요?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요.

 

여러분 천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지만

만일 극단적인 경우라면

천하를 잃어버리고 나를 지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천하를 얻고 나를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것은 또 불신앙적인 행위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그를 더 신뢰한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하나님 한 분만 경배하고

하나님께만 절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나에게 절하면 천하 만국의 영광을 주리라’

 

사탄에게 절하는 게, 사탄에게 아첨하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 그럼 천하 만국의 영광을 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께만 절하고

하나님만 경배하고 살아!

나는 그 외에 누구에게도 절하지 않아!’

 

여러분 이 담당함을 배우고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일은요.

여러분 영적인 분별력

가치관이 반드시 돼야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세상 보다 크고 귀하다’는

그 가치관이 분명한 사람들은

자기를 팔아 세상을 얻지는 않아요.

 

세상을 팔아 나를 얻는 수는 있어도

그런 일은 하지 않아요.

 

제가 우리 날기새 하면서 했던 예화가 있죠.

우리 막내가 어렸을 때

말을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배웠던 말이

 

첫 번째 엄마

두 번째 아빠

세 번째 백원이었어요.

‘백원’ 하는 말을 제일 먼저 배웠어요.

 

어느 날 제가 심방 가려고 그러는데

막내가 손 내밀고 "아빠 백원"

 

통행세 내고 가라고 제 길을 막았어요.

제가 백원 주고 가려고 주머니를 뒤졌더니

마침 백원이 없었어요.

 

오백원짜리 동전이 마침 있어서

'이 자식 수지맞았다.' 하고 제가 오백원을 주었어요.

 

근데 우리 막내 아이가

오백원을 생전 첨 봤거든요.

 

자기 손바닥에 놓고, 동전 한번 쳐다보고, 나 한번 쳐다보고

그렇게 번갈아 쳐다보더라고요.

 

그게 우스워서 내가 픽 웃었더니

우리 막내가 오해했어요.

‘돈 아닌 것을 주고 아빠가 장난한다’

 

그래서 오백원짜리 동전을 내던지더라고요.

그리고 ‘백원’을 달라고 떼를 쓰더라고요.

 

여러분 아첨하는 것은요.

오백원 내던지고 백원 달라고 떼쓰는

말 배우던 아기 막내와 같은 수준으로 사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에게만 경배하고요.

그 외에 어떤 것에서는

(천하보다 귀한) 나보다 높이 여기지 않는 거예요.

 

비굴하지 않는 거예요.

그 덕 볼려고 하지 않는 것이에요.

하나님 덕만 보면 충분해요.

 

있는 사람에게 강한 자에게 아첨하지 아니하고

그러나 그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아니하고

예의를 갖춰 대하고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강한 자나 약한 자나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지만

 

아첨하지 아니하고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서

공평하게 대하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면

얼마나 세상이 좋아질까.. 생각이 듭니다.

 

▲아첨을 하는 것도 나쁘지만요.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는 것도 또 어리석음이에요.

 

우리가 좀 힘 있고 할 때

여러분 나를 떠받들고 아첨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거기에 속기도 참 쉬워요.

 

나이가 들면 조금 자리가 높아지면

또 힘이 생기면

그 재미 만만치 않죠.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니까

‘그것은 그 사람 앞에 그물을 놓는 것이다’ 잠29:5

 

즉 ‘그 사람을 잡는 것이다’

‘아첨하는 네가 너 잡으려고 그물 놓는 것이다’

이제 그런 뜻이에요.

 

아첨은 하지도 말고/ 받지도 말고

‘내가 누구에게 아첨 받을 만큼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다.

당신이 내가 아첨해야 할 만큼 그런 존재 아니다.

나는 하나님만 섬긴다.’

 

‘모든 사람은 다 친절하고 귀히 여기고

예의 있게 대한다. 내가 거만하지 않겠다.’

 

이런 삶의 자세를 견지한다면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답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오늘 해보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 중에

‘아첨’이란 말이 강하게 와닿아서

 

‘내가 아첨하지 않고 살아야지

당당하게 살아야지

그러나 거만하지 말아야지

 

당당하지만 부드럽고

당당하지만 예의 있고

당당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그런 양면을 간직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여러분 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날기새 가족 식구들 되기를 바랍니다.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강한 자에게 아첨하고

약한 자에게 거만하고

무례하고 그러고 살기가 참 쉽습니다.

 

하나님, 강한 자라고 아첨하지 않게 하시고

당당하게 하시고

 

아첨함을 통해서 얻는 세상 때문에

나 자신을 비굴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자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나보다. 약하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존중히 여기고 예의를 갖추고

친절하고 따뜻한 그런 삶 살아가는

우리 날기새 가족들 다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아첨은 하지도 말고

남이 나에게 아첨하는데 속지도 말고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아첨을 받을 만큼

대단한 사람 아니다..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그런 시민의식을 가지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우리 날기새 식구들 다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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