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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루이스- 반 기독교적인 성경관

by 【고동엽】 2011.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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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S. 루이스의 반 기독교적인 성경관 **

 

  C.S. 루이스가 쓴 “시편의 사색” 155-156쪽 내용

 

“1. 우리가 성경은 ‘거룩한’ 책, ‘영감으로 된’ 책, 성 바울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 the Oracles of God'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어서, 저는 적어도 구약 성경에 대해서만이라도 제가 이해하고 있는 대로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소위 근본주의자로는 의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경에 기적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비역사적인 이야기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기적 이야기를 너무 믿기 어려워한 나머지, 제가 그런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오로지 제가 처음부터 구약 성경의 모든 문장을 역사적, 과학적 진리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 입장이 아닌 것은, 모세는 창조에 대해 “대중 시인의 방식대로”-즉, 신화적으로 -묘사했다고 말한 성 제롬의 입장이나, 욥의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인지 허구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칼뱅의 입장이 그렇지 않다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성경에 기록된 기적 이야기를 역사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편적이고 부정적인 명제에 대한 어떠한 철학적인 근거도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혀 다른 근거들에 입각해 이야기의 역사성 여부를 판단합니다. 한 예로 저는 ‘욥기’를 비역사적인 이야기로 보는데, 왜냐하면 욥기에 기록된 이야기는 역사나 심지어 전설과 조금도 연계되어 있지 않고 족보도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성경 다른 곳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는 한 인물에 대한 소개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욥기의 저자도 연대기 기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의 자세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이교적이고 신화적이었던 초기 셈족 이야기들에서 유래했다고 말하는 학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데에 조금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고 하였다.


2. C.S. 루이스의 빗나간 비성경적인 성령관  (성령님이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루이스)

C.S. 루이스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에 어떤 반기독교적인 요소가 있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류 투성의 책이다. 성경을 부정하는 사탄주의의 책인 것이다.  그 증거를 여기에 제시하겠다. 루이스의 책 "순전한 기독교" 271쪽 내용이다. "이 세째 위를 '성령', 또는 '하나님의 영'이라고 합니다. 이것(또는 이분)이 다른 두 하나님 보다 다소 모호하고 막연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염러하거나 놀란 필요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렇게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서 대개는 성령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성령은 항상 여러분을 통해 움직이십니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C.S. 루이스 저, 이종태 역, "순진한 기독교" , 2005),P. 271.


C.S. 루이스는 성령님에 대하여 "이것(이분)' 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성령 하나님께서 인간에 힘에 의하여 좌지우지 되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절대로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이것(이분)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물론 괄요 열고 그 안에 ‘이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령님에 대하여 결단코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정신나간 C.S. 루이스의 주장을 보라! 그는 주장하기를 "성령은 항상 여러분을 통해 움직이십니다."라고 하였다. C.S. 루이스는 인간의 힘으로 성령 하나님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망언을 서슴치 않고 있다. 삼위일체 중에 한 위(인격)가 되시는 전지전능하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결코 인간의 힘에 의하여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시다. 정신 이상자가 아니면 이런 소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자를 20세기의 사도 바울로 칭송하는 자들 역시 제 정신이 아니다. 참으로 가증스럽고 교활한 자이다. 이런 자를 높이고 있는 많은 신학자들의 글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으니 어쩌 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C.S. 루이스의 "반항적인 C.S. 루이스"라는 책 176쪽 7-8행에 보면, "성육신을 "진정한 신화"로 정의한 톨킨과 다이슨의 주장을 통해 루이스는 새롭게 눈을 뜰수 있었다. 그레이트 부검시절부터 줄기차게 시도해 온 종교와 통합을 이루어 낼 실마리를 붙잡은 셈이다." 고 주장하였다. C.S. 루이스의 교활한 모습을 보라! 사탄을 숭배하는 프리메이슨 톨킨과 역시 프리메이슨이었던 다이슨(Hugo Dyson)은 성육신 사건을 ‘진정한 신화’로 정의를 했는데, C.S. 루이스는 ‘새로운 눈을 뜰수 있었다.’ 고 고백하고 있다. 이미 앞서 C.S. 루이스가 조직했던 문학클럽이었던 ‘인클링스(The Inklings)’가 프리메이슨 조직이라는 사실을 밝혔으며, 그 회원 중에 다이슨(Hugo Dyson)이라는 프리메이슨도 같은 회원이라는 것을 밝혔다.


우리 기독교에서 있어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이른바 성육신 교리가 그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을 신화라고 말하는 자들은 이단이며, 사이비이다. 그런데 톨킨과 다이슨 그리고 C.S. 루이스는 성육신 사건을 ‘진정한 신화’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신학자나 목사가 바른 정신의 소유자라면 루이스를 포함한 톨킨이 기독교인으로 위장하여 침투한 사탄의 추종 세력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더 이상 무엇을 논할 수 있겠는가?

 

C.S. 루이스의 교활함을 자세하게 보라! 자신이 마치 성경의 기록에 나타나 있는 기적들을 믿는 것처럼, 위장을 하면서 욥기서를 ‘비역사적인’ 기록으로 취급을 하고 있다. 심지어 창세기를 이교적인 신화로 규정하고 있을 정도이다. C.S. 루이스는 아주 지능적인 논법을 동원하여 성경을 교활하게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운영자(필레오)는 C.S. 루이스의 책을 다섯권 이상을 구입하여 대충 살펴 보아도 그의 책에서는 아주 쉽게 비성경적이며, 반기독교인 사상을 접 할 수 있다. 시간이 허락이 되는 대로 타이핑을 하여 올리면서 루이스의 악한 사상들을 비판 하도록 하겠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사탄의 종이다.


 

(답변)

 

C목사님, 멀리 영국에서 서신을 주셨군요. 보내 주신 사진을 잘 받았습니다. 그간 여기서는 여러 사람을 만나 상담하여 연말 결산들로 매우 분주하게 보내고 오늘에야 답신을 드립니다. 벌써 서신을 보내 온지가 상당히 시일이 지난듯한데 답신이 늦어서 죄송한 마음과 함께 보내 오신 사연에 대해 같이 의견을 나누는 기회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C목사님의 관심사와 본 튤립 교육 선교회의 생각은 같습니다. 오늘의 기독교 교계에서는 16세기의 종교개혁가들의 그 아픔다운 신학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John Calvin, Theodore Beza, Guillaume Farel, Francis Turretin, John Owen, Williams Perkins, Williams Ames, Jonathan Edwards 의 신학은 사라지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사이비 개혁신학” 일색입니다.  역사적 신앙고백서인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947) 나  Three Forms of Unity (개혁주의 3대 교리), 즉 Belgic Confession (1561), Heidelberg Catecism (1563), Canons of Dordt (1619) 등을 제대로 따르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목회자들 자체가 이런 신앙고백서에 대하여 모르고 있고, 혹시 알고 있다고 해도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이런 신앙고백서는 기피하는 것이 오늘의 통탄할 교계의 현실입니다.


요즘 얼굴도 모르는 성도들로부터  성경에 성실한 교회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전자우편으로 많이 받지만 소개할 마땅한 곳이 없습니다. 말씀을 신실하게 개혁주의로 전하는 교회를 찾아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분들이 만든 Regulative Principle (표준 예배모범) 대로 예배하는 교회가 몇몇 미국 교단 외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영어를 알아듣는 분들 중 미국이나 카나다에서 연락이 오면 서슴없이 RPCNA  ARPC 등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비록 교회가 이 양 교단에 속해 있다고 해도 목회하는 목사가 교단의 헌법을 지키지 않으니 아무 소용없으며 이런 교단에 한인 목사가 목회한다면 정확히 그들의 신학을 알기 전에는 추천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학교도 사정은 같습니다. 요즘 부쩍 신학교를 소개해 달라는 분들이 늘어갑니다. 어떻게 보면 좋은 현상이지만 소명감 없이 신학교의 명예만 생각하는 분들이 가끔 있어서 마음 아픕니다. 그런데 수일 전에는 인천에 있는 모 교회에 출석하며 예수을 믿게 된 어린  16살된 학생이 미국의 모 고등학교에 유학을 와서 공부하는 중 “구원의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생각했는데 아랍권에 들어가 신학교 교수가 되려고 하는데 공부할 신학교를 소개해달라“ 는 부탁을 받았는데 좋은 신학교가 이제 미국에서는 사라졌습니다.  옛날 한 때 명문교들이 요새는 모두 이상한 신학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으니 이와 같은 신실한 청년을 양심상 안심하고 추천할 신학교가 없습니다. 한인 신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신학교도 모두 타락 일색입니다.


질문하신 한국 분 <손기철 장로 의 신학>에 대해서는 들은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별로 말씀 드릴 자료가 없습니다. 어떤 교리를 지적하여 문의하시면 그것이 성경적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말씀을 드릴 수 있지만 그분을 제가 모르고, 설교도, 강의도, 책도 읽은 적이 없어서 바로 평을 드릴수가 없습니다.


Aiden Wilson Tozer (1897-1963) 에 관해서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는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 라는 교단에 속한 목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Pennsylvania에서 태어나서 Ohio 에 뼈를 묻히기 까지 여러 해를 여기 저기 다니며 목회를 많이 하셨습니다. 미국과 카나다에서 목회를 하신 것으로 압니다. 책도 많이 쓰시고 뜨거운 열정적 목회자인데 <옥의 티> 는 그가 <신비주의자> 라는 점입니다.  Lynn Harris 이 쓴 The Mystic Spirituality of A.W.Tozer (Edwin Mellen Press) 에 의하면 그는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 의 창시자 A.B.Simpson 의 전기를 쓴 사람으로 유명하며 너무 전도에 열중하고 회개운동에 열중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다 보니 신비주의에 빠진 것 같습니다. 그는 많은 저서로 유명해 진 후에도 평생 자동차를 구입한 적이 없이 자전거를 교통의 수단으로, 혹은 기차를 이용했다고 하니 그의 검소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CMA 교단에서 유능한 인물로 그 교단의 교단지인 Alliance Weekly (오늘에는 Alliance Life 라고 함) 의 편집인을 맡아 다년간 봉사한 적도 있는 분입니다. 그의 저서로는 Pursuit of God (1948), The Root of Righteousness (1955), The Knowledge of the Holy (1961) 등 대표작들이 있지만 특히 우리가 주의할 점은

그가 1963년에 펴낸 The Christian Book of Mystical Verse  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그의 신비주의 면을 부각하지만 그는 어디서 신학을 공부했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그는 시를 많이 쓰고, 문학을 좋아 했습니다. 그리고 신비주의에 심취해 있었던 신학자로 알려 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저서들을 읽을 때 항상 개혁주의 신앙의 각도에서 분별력을 갖고 대해야 할 것으로 압니다.


두 번째 인물은 Clive Staples Lewis (1898-1963) 에 관한 질문인데 Tozer 와 한 살 차이로 늦게 태어난 분으로 Tozer 와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난 역시 문필가요 역사가 이며 언어학자이고 신학자 로 여러 개의 모자를 쓴 다재다능한 분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기는 그는 Oxford 대학에서 공부했고 Oxford University 안에는 단과대학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유명한 Magdalen College에서 1925-1954 까지 영문학을 가르치다가 그후에는

무슨 생각인지 영국 동부에 있는 Cambridge University 로 자리를 옮겨 이번에는 중세 문예부흥사 (History of Medieval Renaissance) 를 그가 세상을 뜰 때 까지 가르쳤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그는 다재다능한 분으로 많은 시와 단편소설 (conte) 문학평론을 썼는데 그의 자서전 Surprised by Joy (1955) 을 쓴 다음에도 그가 죽을 때까지 작품활동을 계속하여 그가 65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책을 39권 집필했고, 논문을 125개 발표했고 시를 68편 썼고, 서평 30편, 단편소설 24편, 각종 출판물의 서문 24편을 발표한 분입니다. 그가 기독교를 믿기 시작하면서 영국의 BBC 방송을 통해서 기독교를 널리 전파했고 그가 쓴 책들중 The Four Loves (1960), Letters to Macolm, Reflections on Psalms (1958), The Weight of Glory (1902) 등이 많이 읽혀지는데 우리 에게는 그분의 책중에서 Mere Christianity 나 Screwtape Letters 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Chronicles of Nania 도 어린 애들에게는 상당히 인기 있는 작품입니다.


그의 신학은 우리가 믿는 개혁주의 신학과는 거리가 멉니다.  Tozer 나 Lewis에게서 16세기의 개혁주의 신앙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더욱이 C.S.Lewis 는 스스로 신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마치 옛날 여호와의 증인의 교주인 Charles Taze Russell 이 혼자서 성경공부를 하여 하나의 잘못된 교단을 만들었듯, 스스로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위험천만 합니다. Screwtape Letters 라는 책은  fiction 이니 말할 나위도 없지만 Mere Christianity 라는 책도 변증학 책이라고는 하지만 <자연신학적 견지에서 나름대로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해> 쓴 책이므로 전제론적 변증학 (Presuppositional Apologetics)을 따르는 개혁주의 성도들로서는 받아 들이기 어려운 대목들이 있습니다. 그단의 경우는 목사님이 지적하신 것들이지요. 같은 맥락에서 Reflections on the Psalms 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책을 한국에서 많이 애독한다고 탄식하셨는데 그것이 요즘의 기독교 교계의 현 좌표(coordinates) 이고  도살당할 양이 도살장에 끌려가듯 고통을 받으면서 보면, 우리가 몸담고 선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이나 미국이나 전 세계에서 Rick Warren 목사의 Purpose-Driven Church 혹은 그분의 Purpose-Driven Life 라는 책을 얼마나 많이 읽고 있습니까?  이미 전 세계에서 3,000 만부 매상고를 올렸습니다.


또한 미국 Los Angeles 근교 Azusa 대학교의 교수로 있는 퀘이커 교파 출신 Richard Foster 목사가 쓴 소위 Celebration of Discipline (우리말로는 무어라고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함) 이라는 책은 신비주의적 관상기도를 가르치는 책인데 이 책이 지금 한국의 유명 보수 신학교들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 아닙니까?  Foster 목사는 한국에 나가서 집회를 하면서 전국에서 모인 그 수많은 “분별력없는” 목사들에게 독약을 먹여도 한국 교회는 누구 한 사람 말하는 신학자가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 오늘의 잘못되어가는 기독교의 현주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을 내걸고 무너져가는 돌담을 수축하고 이리떼들의 침입을 막아야 합니다.  Billy Graham 이 정통에서 벗어나 천주교와 밀착한 이야기나 Robert Schuller 의 그릇된 신학에 동의하는 일은 우리가 다 잘 아는 일이고 Rick Warren 목사가 1910년에 나온 PCUSA 의 성경적인 <근본 5대교리>를 “낡은 유물“로 생각하는데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는 것은 고후 4:4 말씀대로 이세상의 신이 저들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지금은 교리를 따지지 말고 행동을 같이 할때인데 이는 교회네 분렬을 막기 위함이라“ 라고.  이것이 요즘의 Emergent Church 운동의 본질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교리를 무시한 교회 통일이 과연 성경적일까요?


이 질문을 보내오신 최찬영 목사님,  목사님이 영국에서 하실 일이 있습니다. Francis Schaeffer 박사의 L'Abri 같은 운동을 전개하세요.  저는 1980년대부터 Philadelphia, Pennsylvania 에서 L'ABRI 운동을 계획하고 기도해 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의 튤립 교육 선교회를 통해서 문자 그대로 바른 신학을 교육하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디를 보아도 교회도 바른 교회가 극히 적고 신학교도 그렇고, 교단도 그렇고 점점 진리에서 귀를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무리가 날마다 더해 갑니다.   이런 가운데 군계일학 (群鷄一鶴) 으로 바른 진리의 말씀을 전하기가 힘이 들겠지만 디모데 후서 3:12 말씀을 생각하면서, 또한 우리의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이 당한 고초를 생각하면서 힘 있게 십자가의 정병으로 싸워서 승리하시기를 기도하며 이만 답신을 드립니다. 우리 서로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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