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성경에 여호와( יְהוָה)가 왜 없고,
* 또 구약성경엔 '그리스도(מְשִׁיחַ )가 왜 없는가?
여호와(יהוה)란 단어는 구약성경에 7,040번 정도 나타나고,
그리고 하나님(엘로힘)(אלהים)은 4,000번이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יהוה)가 영어 신약성경이나 우리 한글 신약성경에서는 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호와’(יהוה )로 번역되어야 할 단어가 ‘주님’으로 번역되면서, 또 그 주님이 예수님으로 생각 되어진다면 깊게 생각해 봐야 할 여지가 있는것이다.
그런데 칠십인역(Septuagint)에서는 ‘여호와’가 어떻게 번역되었는가?
(창 2: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και εφυτευσεν κυριος ο θεος(여호와 하나님) παραδεισον εν εδεμ κατα ανατολας και εθετο εκει τον ανθρωπον ον επλασεν-여기 창세기 2장 8절에서 여호와(יהוה)를 ‘큐리오스’(κυριος)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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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창세기 2장 7절에서는 여호와(יהוה)를 ‘큐리오스’(κυριος) 로 번역 하지 않고,
그저 (κυριος)(큐리오스)를 빼고 θεος (데오스)로만 되어 있다.
2:7 και επλασεν ο θεος(여호와 하나님) τον ανθρωπον χουν απο της γης και ενεφυσησεν εις το προσωπον αυτου πνοην ζωης και εγενετο ο ανθρωπος εις ψυχην ζωσαν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러나 히브리 원문에는 그 내용이(창2장:7절과 8절) 모두 '여호와 하나님' (הוה אלהיםם)(야웨 엘로힘) 으로 되어 있다.
ויטע יהוה אלהים גן־בעדן מקדם וישם שם את־האדם אשר יצר׃
וייצר יהוה אלהים את־האדם עפר מן־האדמה ויפח באפיו נשמת חיים ויהי האדם לנפש חיה׃
또 칠십인역(Septuagint)은 아도나이 ( אדני׃ )를 큐리오스(κυριος)로 번역하였다.
아도나이는 אדנ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사자를 직접 보고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예를들면
(창 19:18) 롵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내 주시여.”
(70인역(Septuagint))19:18 ειπεν δε λωτ προς αυτους δεομαι κυριε)
(히브리성경 원문)ויאמר לוט אלהם אל־נא אדני׃
이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또 칠십인역(Septuagint)은 아돈 (אדונ) 역시 큐리오스(κυριος)로 번역하였다.
아돈(אדונ)은 종이 주인을 부를 때 또는 자신보다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를 때 자신을 낮춰서 부르는 호칭이다.
그런데 다음은 여호와와 아돈이 같이 나온다. 칠십인역은 구별하지 않고 둘 다 큐리오스로 번역하였다.
예를들면 :
(시 110: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70)
110:1 αλληλουια εξομολογησομαι σοι κυριε εν ολη καρδια μου εν βουλη ευθειων και συναγωγη
(히브리 원문)לדוד מזמור נאם יהוה לאדני שב לימיני עד־אשית איביך הדם לרגליך׃
הנה ארון הברית אדון כל־הארץ עבר לפניכם בירדן׃
이렇게 되어 있다.
(창 23:6)에도 역시 같이 사용하였다.
“내 주시여, 우리말을 들으십시오. 당신은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택하신 지도자입니다. 우리의 무덤들 중 가장 좋은 곳에 당신의 시신을 묻으십시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도 그의 무덤에 당신의 시신을 묻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70인역(Septuagint))
23:6 μη κυριε ακουσον δε ημων βασιλευς παρα θεου ει συ εν ημιν εν τοις εκλεκτοις μνημειοις ημων θαψον τον νεκρον σου ουδεις γαρ ημων το μνημειον αυτου κωλυσει απο σου του θαψαι τον νεκρον σου εκει
(히브리어 원문)שמענו אדני נשיא אלהים אתה בתוכנו במבחר קברינו קבר את־מתך איש ממנו
את־קברו לא־יכלה ממך מקבר מתך׃
위에서 보듯이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여호와, 아도나이, 아돈 이 세 단어의 뜻이 각각 다른데도,
칠십인역(Septuagint)은 모두 다 큐리오스κυριος()란 한 단어로만 번역했다.
따라서 칠십인역(Septuagint)에 ‘큐리오스’란 단어가 ‘여호와’, ‘아도나이’, ‘아돈’ 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서 그 문맥에 따라서 큐리오스의 뜻이 분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신약에서는 어떻게 번역되어야 하는가?
신약에 있어서 큐리오스란 단어는 717번 등장하는데 그런데 영어성경과 한글성경은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주님 또는 주(Lord)’으로만 번역하였다.
허지만 칠십인역(Septuagint)의 ‘큐리오스’란 단어가 여러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처럼, 신약에 쓰여진 큐리오스(κυριος )도 여러가지 뜻을 가지고 있슴을 알아야 할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약에서의 ‘큐리오스(κυριος)’는 당연히 주님 이라고만 번역되는것보다, 그 문맥에 따라서 ‘여호와’ 혹은 ‘주님’ 혹은 ‘주인’ 번역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신약에서 큐리오스가 여호와로 번역되어야 할 구절이 있는데
(마태 22:44)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등상 아래 둘 때까지 내 오른 편에 앉아있어라.
여기에서 주께서가 아니고 여호와께서 라고 고쳐져야 한다.
70인역(Septuagint)
ειπεν ο κυριος τω κυριω μου καθου εκ δεξιων μου εως αν θω τους εχθρους σου υποποδιον των ποδων σου
70인역에서는 이렇게 됐지만
허지만 히브리어원문에서는 מד נְאֻם יְהוָֹה לַאדֹנִי שֵׁב לִימִינִי עַד־אָשִׁית אֹיְבֶי הֲדֹם לְרַגְלֶי׃
여기서 보는바와 같이
구약에서는 분명하게도 "(시 110: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110:1 αλληλουια εξομολογησομαι σοι κυριε εν ολη καρδια μου εν βουλη ευθειων και συναγωγη
마태복음 22장 44절은 시편 110편 1절의 구약 인용구절이다.
시편 110편에서는 분명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되어있는데도,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라고 번역하였다.
*이런 경우에는 구약의 본문 그대로 ‘여호와께서’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여호와로 번역되어야 하는 경우가 마태복음에서만 16군데 정도 발견된다 (마태 1:20, 22, 24, 2:13, 15, 16, 3:3; 4:7, 10; 5:33; 21:9, 42; 22:37; 23:39; 27:10; 28:2).
또 큐리오스가 예수님을 가리킴이 마태복음에서 28번이나 있다
(마태 7:21하, 8:2, 6, 8, 21, 25; 9:28, 14:28; 30; 15:22, 25, 27; 16:22; 17:4, 15; 18:21; 20:30하, 33; 21:3, 9, 43하; 25:11, 44; 26:22).
신약성경 전체에 큐리오스 κυριος가 700회 이상 표현했고, 또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모두 다 유대인들이었다(누가만 제외).
이런것들을 생각하면 여호와 וה란 단어가 신약성경에서도 꼭 표기 했어야 했는데 번역자들의 아쉬움을 남기었다.
여호와(Jehovah) (/dʒɨˈhoʊvə/ 로 발음)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영국식 표기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 4문자히브리어יהוה 를 모음화 음역한 것으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밝힌 자신의 이름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유대인들은 여호와 (יהוה )를 ‘아도나이(나의 주님이란 뜻)’로 읽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야훼’ 혹은 ‘여호와’로 읽으며 모세5경을 기본으로 생겨난 이슬람교는 ‘알라’라고 명명한다.
여호와(Jehovah)는 하나님의 이름 4문자히브리어יהוה 로마자로 YHWH·YHVH·JHWH·JHVH 등으로 표기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밝힌 자신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표기의 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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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크리스도 구약 70인역(Septuagint)에서 40회나 나온다.
그런데 우리 말로 번역된 구약성경에는 '크리스도' 란 단어가 하나도 없다.
그 이유는 성경을 잘못된 번역에서 기인된다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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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마쉬아흐(מְשִׁיחַ히브리어)는 같은 단어이다.
그런데 그것을 구약에서는 ‘기름부음 받은 자(annointed)’로 번역하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christ)’로 번역했다.
이 모두는 ‘마쉬아흐(מְשִׁיחַ그리스도)’로 번역해야만이 ‘예슈아 마쉬아흐’(הַמָּשִׁיחַ יֵשׁוּעַ -예수 그리스도)가 무슨 의미인지 성경 전체에 흐름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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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들어, 레4:5, 삼상24:6 ,시2:2,.......등에서
레4장5절
기름 부음을(그리스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4:5 και λαβων ο ιερευς ο χριστος ο τετελειωμενος τας χειρας απο του αιματος του μοσχου και εισοισει αυτο επι την σκηνην του μαρτυριου
(삼상24:7)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그리스도) 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그리스도) 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24:7 και ειπεν δαυιδ προς τους ανδρας αυτου μηδαμως μοι παρα κυριου ει ποιησω το ρημα τουτο τω κυριω μου τω χριστω κυριου επενεγκαι χειρα μου επ' αυτον οτι χριστος κυριου εστιν ουτος
(히브리어)마쉬아흐(그리스도-기름부음받음)
וַיֹּאמֶר לַאֲנָשָׁיו חָלִילָה לִּי מֵיהוָה אִם־אֶעֱשֶׂה אֶת־הַדָּבָר הַזֶּה לַאדֹנִי לִמְשִׁיחַ יְהוָה לִשְׁלֹחַ יָדִי בֹּו כִּי־מְשִׁיחַ יְהוָה הוּא׃ | 6 |
이같이 구약에서도 "기름부음받음" 단어들이 40회 이상 나오는데 이것들이 모두 "그리스도"로 표기 해야 되는데 그저 단순히 "기름부음 받은자"으로만 표기 한것은 성경 번역자들의 아쉬운 표현이라 할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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