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라이어마허의 교의학적 저서는『신앙론』이다. 물론 그 정식적인 타이틀은『복음주의교회의 원칙에 근거하여 조직적으로 서술된 기독교 신앙』(Der christliche Glaube nach den Grundsaetzen der Evangelischen Kirche im Zusammenhange dargestellt; 제1판-1821/22년, 제2판-1830/31년)이다. 슐라이어마허의『신앙론』은, 일반적으로 신학사(神學史)에 있어서 <교의의 학>에서 <신앙의 학>에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신학에 의하면, 교회적 교의(敎義)는 초자연적 권위를 갖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의는 신앙의 규범으로 이해되었으며, 결국 신앙이란 교의명제를 지적으로 승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러한 사태(事態)에 대하여 슐라이어마허는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에 의하면 교의는 신앙의 규범이 아니다. 그것은 신앙경험, 즉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경험의 소산이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기독교 신앙명제(교의)란 “기독교적인 경건한 심정의 상태에 대한 해석이 언설로 표현된 것”(CG2, I, hrsg. v. Mrtin Redeker, Berlin, 1999, § 15Leits., S. 105)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교의가 신앙에 선행(先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체험, 즉 기독교적인 경건한 자기의식이 교의에 선행하는 모태인 것이다.
그래서 슐라이어마허는『신앙론』에서 종교의 본질로서의 경건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경건은......지식도 아니며, 행위도 아니라, 감정 혹은 직접적 자기의식의 한 양태이다.”(Froemmigkeit......ist......weder ein Wissen noch ein Tun, sondern eine Bestimmtheit des Gefuehls oder des unmittelbaren Selbstbewusstsein. CG2, I, § 3Leits., S. 14.) 이처럼 슐라이어마허는 신앙의 본질적인 체험과 그 체험에 대한 성찰(Reflexion)로서의 교의를 예리하게 구별하는 동시에, 모든 기독교적 교의는 기독교 신앙(체험)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래서 슐라이어마허는 주로『신앙론』의 <서론>에서 경건과 자기의식의 관계에 대해서 정교하게 다룬다.(『신앙론』은 2권으로 되어 있으며, <서론>, <제1부>, <제2부>, 그리고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슐라이어마허에 의하면, 경건의 본질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자로서, 바꿔 말하면 하나님과 관계하고 있는 자로서 의식하는 것”(CG2, I, § 4Leits., S. 23)이다. 이 의식의 최고단계를 그는 <절대의존의 감정>(das schlechthinnige Abhaengigkeitsgefuehl)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감정>은 종종 어떤 정서적인 것이거나 신비적인 것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헤겔(G. W. F. Hegel)은 다음과 같이 슐라이어마허를 비판하였다. “인간에게 있어서 종교가 단지 감정에만 기초된다면, 그러한 감정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의존감정 이상의 어떤 규정도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개야말로 가장 우수한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왜냐하면 개는 이 감정을 가장 강하게 자기 속에 지니고 있으며, 특히 이 감정 속에서 삶을 영위하기 때문이다.”(F. W. Kantzenbach, Schleiermacher, ro/ro/ro, 1967, 70에서 재인용)
이러한 헤겔의 슐라이어마허 비판은 최고 지성인의 가장 어리석은 비판으로 인식되고 있다. 왜냐하면, 슐라이어마허가 말하는 <절대의존의 감정>이란 인간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그래서 인간이 주체가 되어 신을 의지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딘가 밖으로부터 촉발되는 것”(Irgendwohergetroffensein; CG2, I, § 4, 2, S. 25)에 의존되는 것으로 인간의 수용성(Empfaenglichkeit)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감정은 어떤 정서적인 차원의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존재론적인 차원의 것이다. 슐라이어마허에 의하면, “(절대의존의 감정은) 우리의 현존재 전체에 수반하며, 절대적 자유를 부정하는 자기의식” 속에 배타적으로 존재한다. 즉 “우리의 모든 자기활동성은 우리 밖에서 오는 것임을 의식하는 것이다.”
결국 이 <밖>, 즉 현존재(Dasein)의 유래를 슐라이어마허는 하나님(Gott)이라고 보며, <절대의존의 감정>을 “하나님의 근원적 계시”(eine urspruengliche Offenbarung Gottes)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CG2, I, § 4, 3; § 4, 4, S. 28-30). 이와 같이 서론에서 계시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슐라이어마허는 제1부와 제2부에서 창조론, 인간론, 신론, 그리스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서술한 후, 삼위일체론으로 결론을 맺는다. 그의『신앙론』의 특징은, 칼 바르트에게서도 볼 수 있는 그리스도(론)적 집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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