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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주제별 예화모음)
▣ 신뢰
존경받는 영국의 J. 윌레스 헤밀트 목사는 자신의 생애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싸움만 일삼아 우리 가족들은 나를 검은 양이라고 불렀고 형제들도 서로 한 편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하루는 형제들과 싸우고 울면서 집을 뛰쳐나가려다가 마지막으로 할머니께 내 심정을 털어놓았다. 할머니는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내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존 , 나는 너를 믿는다.' 그 말씀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누군가 우리를 진심으로 받아주고 믿어줄 때. 우리 삶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누군가를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 믿음은 신뢰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4:22∼33
믿음은 자기 자신의 확신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이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자기 신념을 마치 믿음이라고 강조하는 신앙인들을 많이 봅니다. 믿음대로 된다는 말은 내 신념, 내 의지, 내 마음대로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믿음의 대상이신 우리 주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믿음은 나에게로부터 우리 주님께로 신뢰의 대상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참으로 인격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나의 신념을 버리십시오.
믿음은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스승이신 주님께 물 위를 걸어 갈 수 있게 기도합니다. 주님은 아주 간단하게 허락하십니다. 이때 베드로는 복잡한 명령을 듣고 복잡한 연구 속에 결론을 내리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을 향해 움직인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바다라고 할지라도 그의 순수한 믿음은 바로 행동하였습니다. 성경을 줄줄 외우고 형편에 따라 매우 잘 인용하면서 실제 행동을 보면 한심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닐 것입니다. 믿음은 살아 운동력이 있는, 생명력의 활동입니다.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의심하였느냐를 재해석하면 왜 마음이 갈래로 나누어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환경의 두려움 앞에 우리의 믿음이 두 갈래로 나누어져 버립니다. 시각과 청각의 영향으로 우리의 믿음이 두려워합니다. 실제로 사람이 공포 영화를 볼 때 소리를 듣지 않고 보게 되면 그 공포가 줄어들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분이 나의 인생과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주님입니다.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유혹과 두려움에서 참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이미 믿음은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때 우리에게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것은 주님과 연결되었다는 것이며, 주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주님이 우리와 연결된 수레바퀴처럼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매일 매일을 주님 안에서 참된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장순직 문막장로교회 목사
▣ 절대적 신뢰
세상이 어지럽다. 거짓과 사술이 판친다. 중심과 곁가지가 구별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 역시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면 그건 우리 가슴속에 꿈틀거리는 세상적 욕망, 악마적 욕망 때문일 것이다. 자,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신앙의 양심을 챙겨보자. 혹시 우리 안에 가룟 유다가 꿈틀거리고 있지 않는가.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현실이라는 조그마한 우물 속에서 상대적으로 보고 있지는 않는가. 혹시 필요에 따라 예수님을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예수님은 우리가 모르는 우리 속마음까지 아신다. 겉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펄쩍 뛰며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면서 꾸짖으신 예수님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뢰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아버지께 온 몸을 바치듯 모든 것을 주님께 내맡기자. 의심치 말고 그분을 믿고 따르자.
/김근상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 뿌리 깊은 신뢰
조선시대 효종·숙종 때에 명의(名醫)이자 우의정을 지낸 허목과 유명한 학자요 정치가인 송시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당파로 인해 서로 원수같이 반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송시열이 중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송시열은 “정적(政敵)이지만 허목이 아니면 내 병을 고칠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허목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허목은 미소를 띠며 약처방을 써주었는데, 극약들을 섞어서 달여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허목은 송시열이 의심하고는 먹지 않아 결국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방전에 대한 얘기를 듣고 사람들은 허목을 욕하였지만, 송시열은 허목의 지시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송시열이 완쾌하자 허목은 송시열의 대담성을 찬탄했고, 송시열은 허목의 도량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서로 인간적인 면에서의 차이로 인해 반목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른 신앙인은 자신의 신념과 감정과는 별개로 상대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갈라질 수 없으며,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한 지체입니다.
* 기도: 주님, 다른 신앙의 모습을 포용하며 인정하며 함께 나아가게 하소서.
* 묵상: 혹 한 나무에 뿌리내리고 있는 지체를 마르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김장환 큐티365>
▣ 뜻하지 않은 훼방꾼
반데를레이 데 리마(Vanderlei de Lima)는 참 왜소한 남자입니다. 키가 167센티미터 정도에 몸무게도 53킬로그램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몸집은 작을지 몰라도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 - 바로 리마가 2004년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동메달을 땄던 곳 - 보다 더 큰마음을 가졌습니다. 실은 그가 금메달을 받아야 했습니다. 리마는 줄곧 선두를 유지했습니다. 그 일은 결승선을 5킬로미터쯤 앞둔 지점에서 일어났습니다. 관중 속에 있던 아일랜드 출신 훼방꾼이 갑자기 튀어나와 리마에게 달려든 사고가 일어난 겁니다. 리마는 얼른 다시 경주를 시작했지만 뜻밖의 사태로 리듬을 잃었고 선두를 빼앗겼습니다. 그래도 기쁨까지 잃어버린 건 아니었습니다. 조그만 체구에 큰마음을 가진 이 브라질 선수는 어린아이처럼 감격스러워하며 유서 깊은 스타디움에 입장했습니다. 바울은 부당하게 체포되었습니다. 험악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에는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이 용솟음쳤습니다. 정상적인 코스에서 밀려났지만 경주는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습니까? ‘신뢰’ 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감찰하심을 신뢰했습니다. 어째서 나쁜 일들이 줄지어 일어나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지만 누가 모든 일의 주관자인지만큼은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이것이 문제의 대처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상쇄하고도 남았습니다.
-「일용할 양식」/ 맥스 루케이도
* 기도: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지만, 주님은 바울을 위기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할 때 예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음을 믿습니다.
/생명의 삶
▣ 누구를 의뢰하는가
친구 중 한 명이 직장을 잃고 다른 일거리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친구는 정말 괜찮은 일자리가 하나 있었는데 자신보다 훨씬 못한 사람에게 그 일자리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 친구는 경건한 삶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만일 그 일자리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인데도 무엇인가 잘못돼 일이 틀어졌다고 생각하는지를 넌지시 물었다. "내가 큰 실수를 했나 보지, 뭐." 친구의 대답이었다. "그래서 자네는 하나님이 자네의 실수보다 작은 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라고 재차 물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런 오해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다면, 우리가 신뢰하는 대상은 누구란 말인가? 결국 자신이 아닌가! 하나님과의 동행을 배우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나의 절뚝거리는 걸음보다 못한 분이라면, 동행 자체를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해도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하나님과 마주 앉은 밥상에서 물을 엎지른다고 쫓겨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갖지 마라. 당신의 부족함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은 당신 안에서, 당신을 통해 일하시기에 부족함이 없으시니까. 하나님은 일상에서 그분의 사랑을 확신해 가는 과정이 당신이 지금까지 배워 온 그 어떤 과정보다 어려울 것임을 이미 알고 계신다.
-「날 사랑하심!」/ 웨인 제이콥슨
* 기도: 주님이 침묵하실 때 주님의 신실하심을 다시금 기억하게 하소서. 주님은 통회하고 자복하는 자에게 큰 위로를 주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을 누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생명의 삶
▣ 신뢰가 경쟁이다.
미국에 일본계 3세로서 책 한 권을 써서 일약 세계적인 학자로 발돋움한 사람이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1952~ )교수이다. 그가 첫 번째로 쓴 책이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1992)』이란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이 되는 주제는 인류가 길고 긴 역사 속에서 추구하였던 두 가지를 다루고 있다.
그 첫째가 경제적으로 보다 더 잘 살겠다는 경제적 욕구요, 둘째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지난 100년 동안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다툼에서 사회주의가 패배하게 된 이유를 사회주의 체제가 위에 언급한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무시하였기 때문이라 강조하였다.
그가 두 번째로 쓴 책이 『트러스트(Trust)』란 책이다. 이 책의 핵심 되는 주장이 오늘의 우리 사회에 아주 필요하고 적절한 내용이라 여겨진다. 다름 아니라 신뢰(Trust)도가 높은 사회가 경쟁력이 높다는 주장이다. 다른 조건을 다 갖추었어도 사회 전체에 신뢰도가 낮은 사회는 정체되고 빈곤과 혼란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신뢰도가 높은 사회는 비록 외적 조건은 나쁠지라도 그런 조건들을 힘 모아 극복해 나가면서 빠른 성장과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신뢰도가 떨어진 우리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라 여겨진다.
/김진홍 목사
▣ 두려움보다 더 큰 신뢰
미국에서 법정 총기 난사 살인범에게 인질로 잡혀 7시간 동안 억류돼 있다가 그를 자수하게 만든 애슐리 스미스라는 26세의 미망인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그녀는 새벽 2시쯤 상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인질로 붙잡혔다. 그녀를 인질로 잡은 사람은 전날 애틀랜타 법정에서 판사와 여성 보안관 등 4명을 총으로 살해하고 달아난 브라이언 니콜스였다. 애슐리 스미스는 인질범에게 테이프로 결박당하고 화장실 욕조에 처박히기도 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지만 그녀는 평온을 되찾고 니콜스를 설득해 자신을 인질로 잡게 된 일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며, 그의 삶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목적이 있다며 릭 워렌(Rick Warren)의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읽어 주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스미스는 그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의 내용처럼,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며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했던 것이다. 그것이 가장 두려운 순간에 연약한 여인을 긍휼이 가득한 천사로 만들었다.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긴 사람들은 침착과 냉정을 되찾고 상황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두려움이라는 끈으로 우리를 조종하려는 사탄의 시도를 무력하게 만들고 영적 승리를 경험할 수 있다. 그들은 더 굳건한 확신과 용기로 옳은 일을 행하며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레몬, 레모네이드를 꿈꾸다」/ 이재기
▣ 여보와 당신
예로부터 부부가 서로를 부를 때 ‘여보’, ‘당신’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주로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 ‘여보’라고 하는데, 그 뜻은 같을 ‘여(如)’와 보배 ‘보(寶)’‘자를 써서 ‘보배 같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는 ‘당신’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당할 ‘당(當)’과 몸 ‘신(身)’ 자로, ‘당신은 내 몸’이라는 뜻입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여보, 당신이 뒤죽박죽이 되었고, 그렇게 부르는 경우도 드물다고 합니다. 부부의 소중함과 신뢰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기준이 되는 것은 부부입니다. 부부간의 신뢰나 존엄성 없이 성공이나 행복을 말할 수 없습니다. 상대적 조건과 계산된 선택 위에 세워진 가정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보와 당신의 깊은 뜻은 사라지고 그렇게 부르기도 어색해하는 시대이지만 보배와 같고 내 몸과 같은 부부의 깊은 뜻을 마음에 담아보는 것은 오늘을 사는 또 다른 지혜가 아닐는지요. 부부가 서로 신뢰하고 존중할 때 진정한 가정의 행복이 찾아오며 당신은 참으로 성공한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류중현(사랑의편지 발행인)
▣ 신뢰받는 정치
외과의사, 건축가, 정치인이 모여 어떤 직업이 가장 오래됐는지를 두고 토론했다. 외과의사는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빼서 하와를 만드셨는데, 그것이 인류 최초의 수술이었다. 따라서 의사가 최초의 직업"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건축가는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기 전에 혼돈 가운데서 세상을 설계하고 만드셨으니, 건축업이 최초의 직업"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자 정치인이 끼어들었다.
"그러면 가장 먼저 있었던 혼돈은 누가 만들었는지 아시오?"라고 반문했다.
혼란과 혼돈을 야기하는 장본인이 정치인임을 꼬집는 풍자다.
정치가 희망도 주지만, 절망도 심는다. 정치인이 인기도 있지만,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더 실망스럽다. 정치가 신뢰받는 길은 하나다. 혼돈에서 생명의 질서를 만들고, 공동의 선을 추구하면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치를 닮으면 어렵지 않다. 창조와 사랑의 정치다.
- 겨자씨
▣ 신뢰는 승리
본문: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여호수아 3:14∼17)
라합 이야기는 설교와도 같았습니다. 라합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배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는 과정을 통해 그 이야기가 사실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광야생활 40년을 지나며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는 위협적인 공동체는 아니었지요. 그들 스스로 크고 광대한 족속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위대함에 대해 확실하게 깨닫고 믿어야만 합니다. 이 믿음과 신뢰는 어떤 군대나 작전보다 중요한 것이었지요.
이스라엘이 요단강에 도착했을 때, 요단강은 1년 중에 가장 물이 많이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사실 요단강은 평소에 그리 많은 물이 흐르는 강은 아니었습니다. 우연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물이 흘러넘치고 있는 요단강을 마주하고 섰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배를 타고 가는 것이지요. 250만 명이 넘는 백성을 데리고 건너기에는 배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리를 만들거나 헤엄쳐서 건너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지극히 쉽고도 단순한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법궤를 메고 그냥 건너가라는 것이지요. 마치 그냥 육지인 것처럼 건너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백성들을 건너가게 하실 분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신을 믿고 시키는 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 자신을 상징하며 말씀인 율법책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앞세우고 들어가 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사장들이 앞장서서 들어갔더니 발이 물가에 잠기자마자 물이 끊어지고 육지가 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사실에 대해 기뻐하고 자랑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주저하고 앉아 있으면 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앞장서서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강을 육지같이 건너기를 바랍니다.
* 기도: 우리 가정을 지금까지 도우신 하나님, 하나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주셔서 지금의 위기를 은총으로 극복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묵상: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신뢰는 그만큼 중요하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신뢰는 곧 승리입니다.
/분당매일교회 박흥철 목사
▣ 신뢰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열 가지 방법
1. 절제하라 - 말을 생각해서 하고 생각을 절제하라.
2. 침묵하라 - 쓸데없는 말을 많이 화지 말라.
3. 근면하라 - 열성적이고 부지런하라.
4. 결단력을 가지라 - 해야할 일은 반드시 하라.
5. 성실하라 - 모든 일에 정직하라.
6. 약속을 지키라 - 자신이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정확한 사람임을 알게 하라.
7. 청결하라- 신체와 의복 생활 주변을 항상 청결하게 하라.
8. 침착하라 - 덜렁댄다는 이미지를 주지 말라.
9. 겸손하라 - 나를 내세우려 하지 말라.
10. 사람에게 친절하라 - 보기에 아름답고 감동을 준다.
▣ 신뢰회복 위한 3가지
일본 경제가 한참 동안 불경기를 겪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일본 경제 추락의 근본 원인을 3가지로 분석해 놓은 칼럼이 있었다. 그 내용을 옮겨 놓으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은 그동안 너무 배타적이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나라는 모두 개방하고 포용하는 나라들이었다. 로마제국이나 당나라, 그리고 영국과 미국이 그 좋은 사례이다. 반면, 청나라나 조선, 나치독일 등 외국에 배타적인 나라는 모두 망했다.
둘째, 일본은 베푸는 데 인색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고 나서도 베푸는 존재로의 모습보다는 ‘받아 챙기는’ 존재로 더 각인돼 있다. 베트남의 ‘보트 피플’을 한 사람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또 그렇게 부자이면서도 실리에 철저하고 절대 손해 안보는 깍쟁이 이미지를 가진 나라이다.
셋째, 일본은 미래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패전국이면서도 독일은 철저히 과거를 반성하며 정리했고, 그랬기 때문에 주변국과도 화평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아직도 역사 문제로 주변 국가들과 마찰 중이다. 그 칼럼은 이상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이유를 일본 경제 추락의 근본원인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일본이 받고 있는 질책이 우리나라 기독교계가 받고 있는 질책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복음의 문이 막혀간다고 아우성인 지금이야말로 그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해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첫째로, 우리 기독교도 배타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물론 예수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런 핵심적인 교리 부분은 예외로 두고, 전반적으로 포용력이 부족하고 쉽게 이웃을 정죄하는 좁은 마음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둘째로, 이웃을 섬기는 일에 인색하다. 불신자들이 보기에 교회는 커지고 부유해지는 것 같은데 여전히 이웃을 돌보고 섬기는 일에는 인색하다는 것이다.
셋째로, 교회가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많다. 일본처럼 청산해야 할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다 보니 거듭난 이후에도 옛사람의 모습을 버리지 못한다.
앞에서 살펴본 몇 가지 연약한 모습이 교정되고 미래와 본질을 향한 이런 가슴 벅찬 선언이 있을 때,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는 회복되리라 믿는다.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 출처 : 국민일보
▣ '나는 괜찮은 사람'
상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사랑을 유지하려면 나와 타인을 신뢰하고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 신뢰란 내 마음 안에 어떤 위험한 것이 있든 나는 그것들을 통제할 수 있으며, 비록 그런 요소들이 있다 해도 기본적으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김혜남의《어른으로 산다는 것》 중에서 -
* '괜찮은 사람'. 누구에게든 굉장한 칭찬입니다. 스스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 말하면 자신에게 굉장한 칭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이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것이며, 자기 신뢰가 첫걸음의 시작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주님을 신뢰하는 자
사람들은 날이 밝으면 동산 위로 해가 솟았다고 말한다. 한 낮이 되어 그림자가 짧아지면 해가 머리 위에 와있다고 말한다. 저녁놀마저 사위고 숲이 어둠에 잠기기 시작하면 해가 넘어갔다고 말한다. 해는 하루 종일 그 자리에 있었는데 사람들은 해가 하루 종일 움직였다고 말한다.
-박순희 시인의 시집 ‘꽃씨 사러 가는 길’ 중에서-
우리는 연약하여 삶의 조그만 풍랑에도 초조해하고 작은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기도 합니다.
또 그럴 때면 쉽게 주님을 외면하며 원망의 말을 던지곤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처한 환경과 상관없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과 헤아릴 수 없는 놀라운 계획은 변치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순간의 감정에 얽매여 시험 당치 말고 늘 주님을 신뢰함으로 승리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신뢰와 격려의 힘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군인 시절 수 년째 소령에서 진급이 되지 않았다. 동료들은 중령, 대령으로 진급하는데 마음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가족들 보기도 민망했다. 이런 경우 부인들의 성화는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의 부인이 예외가 아니었다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매미 여사는 언제나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전 당신을 믿어요. 진급은 생각지 말고 교육의 일인자만 되세요. 반드시 당신에게 기회가 올 거예요.”
교육장교인 그는 부인의 격려에 힘을 얻고 군사교육에 더욱 전념했다. 그리고 마침내 인정받은 일인자가 되었고 고속 승진이 시작되었다. 중령, 대령, 장군, 해군사령관,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미국 대통령 가운데 믿음이 가장 좋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자옥 목사 (간석제일교회) <국민일보/겨자씨>
▣ 신뢰를 파는 사람
"오늘 딸기는 산지에 비가 와서 평소보다 덜 달고, 조직이 다소 무릅니다. 수박, 참외는 아직 제철이 아니어서 덜 답니다. 구입에 참조하십시오."
이런 말이 백화점 과일매장에 붙어 있으면, 도대체 이 물건을 사라는 것인지, 사지 말라는 것인지 헷갈릴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대백화점의 식품매장에 실제로 걸려있는 안내문이다. 이 백화점은 단순히 딸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파는 것이다. 즉 단순히 팔고 보자는 식이 아니라, 때로는 약점을 과감히 공개해서라도 고객의 합리적인 구매를 돕자는 것이다.
▣ 교회 신뢰도
한국 교회의 신뢰도가 높아졌다. 기윤실에 의하면 ‘가장 신뢰하는 종교’에 대해 기독교를 꼽은 응답이 작년 18%에서 26.1%로 증가하고, 기독교에 대한 ‘종교적 호감도’ 역시 작년 20.6%에서 28%로 크게 상승했다. 아직 한국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사람이 33.5%(작년 48.3%)에 이르고 있지만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적극적 반대가 지난해 23.2%에서 올해 9%로 크게 줄어든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는 촛불집회 영향으로 생긴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누그러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교회의 사회적 봉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감사절이 지나면 성탄의 계절이다. 왜 예수님은 작은 자를 대하는 것이 자신을 대하는 것이라 하시며 스스로 영광을 감추고 계시는 것일까? 이왕이면 큰 자를 대하듯 자신을 대하라고 할 수 있었을 터인데…. 누구와도 가깝게 있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 때문이 아닐까? 이 계절, 주님은 나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하신다.
/조경열 목사(아현감리교회) <국민일보/겨자씨>
▣ 신뢰와 리더십
성실은 신뢰의 기반이 되며 신뢰는 리더십의 한 요소라기 보다 그 산물입니다.
신뢰는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줄 때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동료나 따르는 사람들이 주는 것이며 이것이 없으면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워렌 베니스, 뉴 리더의 조건>
▣ 신뢰받는 지도자
프랑스의 클레망소 수상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선을 자주 시찰했다. 그날도 부대가 고전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방문 길에 올랐다. 포탄이 터지는 최전선이 가까워지자 수상은 자동차에서 내린 뒤 직접 걸어서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방에 도착했다. 늙은 수상의 모습을 발견한 병사들은 환호성을 올린 후 더욱 힘을 내 전투에 임했다.클레망소 수상을 발견한 적은 수상을 향해 집중적으로 포화를 퍼부었지만 수상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지 않고 그곳에 계속 남아 있었다. 포화가 멎은 후 수상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갔고 이때도 병사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수상을 전송했다. 병사들은 알았다. 바로 클레망소 수상이 자신들과 함께 전선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그 사회의 지도자들이 리더로서의 역할을 바로 수행하려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도자를 신뢰하고 지지하며 지도자에게 헌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선 신의를 저버리고 꿈은커녕 실망과 낙담만을 안겨주는 지도자들의 모습으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백성들이 신뢰하고 지지할 만한 지도자가 그립다. 하루 빨리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고, 승리를 확신케 만들어주는 리더를 만나고 싶다.
/박종순 목사(충신교회)
▣ 누구의 말을 더 신뢰하는 가
아직은 어리지만 씩씩한 내 아들, 여섯 살 난 아이가 아침마다 유치원에 간다. 언제부턴가 혼자서 유치원 버스를 타겠다길래 그렇게 하라고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그런데 5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유치원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아이가 차에 부딪쳤다는 다급한 목소리.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은 느낌 속에 허겁지겁 달려나갔다. 아마 내 평생 그렇게 빨리 달려본 일은 없는 듯 싶다. 일단 아이를 병원 응급실로 옮기고 X-선 촬영까지 마쳤다. 다행히 겉으로는 아무 이상 없어 보였고 뼈에도 이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정형외과 전문의가 와서 최종적으로 진단으로 내려야 한다기에 기다렸다. 아이도 놀랐는지 평소와 달리 얌전한 모습으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났다. 의사가 와서 여기저기 만져보고 사진을 보더니 괜찮단다. 가슴 가득 큰 한숨이 싹 빠지는 느낌 …. 안심이다. 의사에게 '괜찮다'는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해 두 시간을 기다렸다. 꽤 긴 시간을 기다려 들은 말이라곤 고작 한 마디. 뭘 하다 그리 늦게 나타났는지 모를 그 의사가 밉기는커녕 그리도 고마울 수가 없다. '괜찮다'는 그 한 마디가 내내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내 마음의 걱정과 근심을 한꺼번에 다 날렸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의사의 말 한 마디는 크게 신뢰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는 그렇지 못한 내 모습을 보았다. '이그, 쯧쯧쯧 ….'
마음 한구석에서 솟아나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괜히 아이를 꼬옥 끌어 안아본다.
/이여림
▣ 염려는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에서 온다.
자신이 처한 여러 상황에 대하여 근심하고 걱정하며 미래를 염려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마치 하나님을 의붓아버지로 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분은 완전한 지혜와 완전한 섭리로 우리를 배려하시며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십니다. 여인이 젖먹이를 잊을지언정 사랑의 주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아가를 위하여 부모가 많은 것들을 배려하고 준비하듯이 우리 한 사람을 위하여 하늘에서 얼마나 많은 계획과 섭리와 돌봄과 배려가 행해지는 지를 우리가 볼 수 있다면,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이 가득한 시선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많은 근심과 염려, 후회와 낙심에서 벗어나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49장 15절)
ⓒ 정원 목사
▣ 왜 신뢰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보너스로 주신 막내아들이 이제는 제법 의젓해졌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걸작이었습니다. 항상 뛰어다니거나 장난을 치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였기 때문에 조용하다 싶으면 꼭 무언가 일을 저질러 놓곤 했습니다. 한 번은 식용유를 방바닥에 잔뜩 쏟아 놓고 트위스트 춤을 추다가 벌렁 자빠졌는데 뒤집어진 거북이처럼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아내가 겨우 건져 내어 씻기고 청소를 했지만 한동안 식용유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습니다. 또 어느 날은 너무 조용하다 싶어서 찾아보니 한쪽에서 아내의 새 옷을 가위로 오려 내고 있었습니다. 모처럼 큰맘 먹고 백화점에 가서 구입한 옷인데 아들은 거기에다 가위의 성능을 시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들이 미워 보인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아무리 보아도 내 사랑’입니다. 아들이 자기 일에 몰두하느라 눈길 한 번 주지 않아도 아버지의 마음은 기쁨을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말도 못할 지경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인데 철부지 아들이 그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길을 갈 때 무서운 개를 만나도 발길질을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아버지가 옆에 있는 한 아들은 두려울 것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아들은 불완전한 세상의 아버지를 이렇게 신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완전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왜 신뢰하지 못합니까?
- 「집에 가서 웃는 사람」/ 김동문
▣ 자긍심과 자기 신뢰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주유소에 갔다가 우연히 힐러리의 옛 남자 친구를 만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클린턴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저 남자와 혼인했으면 지금 주유소 사장 부인이 돼 있겠지?"
힐러리가 말했습니다. "아니, 바로 저 남자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있을 거야."
- 자기 교만은 피해야 하지만 자기에 대한 자긍심과 신뢰는 높아야 합니다.
▣ 요지부동의 신뢰
나는 헨리 나우웬의 최근 저서가 아주 좋았다. 나우웬이 죽던 날 간행된 비교적 짧은 책 「마음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The Inner Voice of Lover)에는 신뢰라는 말이 65번 나온다. 몇 군데 예를 들면 이렇다. “매순간 당신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모태에서 너를 조직했다’(시 139:13)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신뢰하기로 결단해야 한다.” “방황을 멈추라. 대신 집에 돌아와 하나님이 당신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을 신뢰하라.” “지금까지 당신은 남을 기쁘게 하는 자였고 남에게 의존하여 자신의 정체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스스로 만들어 낸 모든 버팀목을 내려 놓고 하나님만으로 족함을 신뢰해야 한다.” “근본적 선택은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시며 당신의 가장 절실한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을 항상 신뢰하는 것이다.”
나우웬의 이전 책들에는 믿음이란 단어가 빈번히 등장한다. 그러나 이 마지막 작품에 믿음은 1번, 신뢰는 65번 나온다. 내 말의 요지는 무엇인가? 성숙을 향한 그리스도인 삶의 길목 어디선가, 믿음은 소망과 합해져 신뢰로 자란다. 참으로 신실하신 하나님께 대한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가지 확신이 피어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처음 시작하신 일을 지속하고 완성하신다는 확신이다. 나우웬이 자신의 죽음을 복된 경험이라 보았을 정도로 그의 삶에서 이 신뢰는 요지부동이었다. 나도 같은 확신이 있다. 신뢰의 길에 충실하면 우리도 욥이 도달한 자리에 이를 것이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신뢰)하리니”(욥 13:15)
▣ 신뢰에 관한 성경말씀
[역대하 20:20] 이에 백성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찌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시편 32: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시편 41:9]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시편 118:8]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시편 118:9]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이사야 30: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
[예레미야 13:2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네 응득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연고라
[예레미야 39:18] 내가 단정코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되리니 이는 네가 나를 신뢰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마태복음 27:43]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찌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빌립보서 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빌립보서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빌립보서 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한태완 목사 360 주제별 예화모음(메일: jesu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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