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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사망 예화모음 7편

by 【고동엽】 2023.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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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성적표는 죽음 앞에서 점수가 매겨진다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죽음에 대해 심한 공포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에 의해 수없이 죽어간 유대인들의 망령에 시달렸다.
히틀러는 한 부하에게 자신의 미래를 예언할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부하가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예언자를 데려왔다.

“이 사람은 미래에 대한 적중률이 100%입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예언이 빗나간 적이 없습니다.각하의 미래를 이 사람이 분명히 예언할 것입니다”

히틀러는 자신의 운명을 예언하라고 다그쳤다.
예언자는 한참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한 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유대인의 축제일에 죽을 것입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곧 유대인의 축제일이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곧 타인의 축제가 된다면 이보다 비참한 인생은 없다한 인간의 인생 성적표는 죽음 앞에서 점수가 매겨진다. 
 

 

 

 
 

 

 

무덤
 
인도에 재색을 겸비한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왕과 결혼해 행복한 삶을 누렸다.그러나 결혼한 지 1년만에 병사하
고 말았다.왕은 그 슬픔을 견딜수 없었다.
그래서 왕비의 무덤 동쪽에 자신의 모습을 조각한 동상을 세웠다.1년 후,무덤
서쪽에 왕가를 상징하는 호랑이 동상을 세워놓았다.

또 1년 후,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호화로운 별장과 자신의 권력을 상징하는 웅장한 성을 건립했다.

왕은 맞은편 동산에 올라가 왕비의 무덤을 내려다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웅장한 성과 별장,정교한 동상들의 중심에 위치한 무덤이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신하들을 불러 명령했다.“저 무덤을 당장 치워버려라”

웰스(Wells)의 단편소설 ‘무덤’의 스토리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살다가 권력 돈 사랑이 생기면 하나님을 중심에서 치워버리는 우를 범한다. 

 

 

 

 

 
 

 

 

유태인의 장례
 
유태인들은 죽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경의를 표하여야 하고,
그리고 죽은 사람은 항상 지켜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죽은 이의 몸을 깨끗이 한다.
그 일은 그 지역사회에서 가장 교양이 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사람이 맡아 한다.
이러한 일은 유태인 사회에서 매우 영예로운 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가능한한 빠른 시간 안에 매장하는데 화장이 아니라 매장한다.
원칙적으로는 죽은 다음날에 매장하는게 관례이다.
죽은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장례식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참석한 사람 중에서, 이를테면, 랍비가 추도사를 읽고 상주가 기도문을 읽는다.
이들은 같은 예배당에서 같은 내용의 기도를 1년동안 매일 반복한다.
일단 매장이 끝나면 가족은 집으로 돌아온 뒤 일주일간 같은 일을 반복한다.
1개의 촛불을 켜놓고 10명의 친지가 마루에 모여 앉아 기도문을 외우는데,
이때는 집안의 있는 거울을 모두 덮어야한다.
그리고 상주는 일주일 동안 집밖의 출입을 삼가한다.
예배당에 가는 일도 이 일주일이 지나야 가기 시작한다.


상주가 집에 있는 일주일 동안에 그 가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조문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일주일의 의식이 끝나면 상주 가족은
집밖에 나와 자기 집 둘레를 한 바퀴 돌게 된다.
죽은 뒤 한달 동안에는 얼굴을 씻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죽은 뒤 1년 동안에는 화려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장소에는 출입하지 않는다.


그후 해마다 죽은 사람의 기일이 되면 반드시 상복을 입어야 한다.
가족들이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면 달걀을 먹는다.
죽은 사람에 대한 유태인들의 사고 방식은
사람은 누구나 가족이 죽으면 슬퍼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일주일간 추모하고 집밖을 나간다는 것은


그 이상 슬픔에 잠겨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이다.
이것은 사람이 슬픔을 너무 오래 간직하고 있는 것은 불건강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집밖에 나가 집 둘레를 한바퀴 도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달걀을 먹고 집의 둘레를 한바퀴 도는 것은,
둥근 원이 끝도 시작도 없는 거와 같이 인간의 생명도
끝이 없는 원과 같이 언제이고 돌고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음을 뜻한다.
이들이 가장 깊은 슬픔에 잠기는 것은 일주일 동안이다.
그 뒤의 한달동안은 추모 기간이 있지만, 이 기일에는 일주일의 슬픔과는 같지 않다.


뒤의 1년 동안도 역시 슬픔이 덜한 기간이다.
죽은 뒤 1년 후부터는 기일을 빼고는 상복을 입지 않는다.
1년 동안 상복을 입어 추모하는 대상은 부모의 경우일 뿐이고
다른 사람의 경우엔 1일주일과 1개월에 추모의 기간이 끝난다.
나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나는 슬픔에 싸여 식사마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달걀을 먹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은 의무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만이 현재 살아있는 사람을 지배하고 있어서는 안되며,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는 중요성을
유태인들은 가르치고 있다.
이들에 있어 자살은 큰 죄악이다.
유태인들의 장례식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구별이 없고,


학자와 무식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똑같은 관과 옷을 입혀 행한다.
인간들의 지위나 부위 영화에 따라 장례식이 달라지는 경우는 없다.
이들은 인간 평등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당에서 같은 모습, 같은 모자를 쓰고 함께 모여 앉아 기도하는 것도 

 

 

 

 

 
 

 

 

이웃 돕는
 
"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 (신명기 10:18)

울산 현대중공업의 최봉락(조선사업부 건조5부·47)씨는 매달 한 두 번 20㎏짜리 쌀자루를 짊어지고 후미진 골목을 돌아 대문도 없는 집을 찾는다.
쌀가게 주인으로 오해할 만큼 1년 가까이 쌀자루를 메고 다녔지만 주위에선 아직도 그가 누군지 잘 모른다.
최씨가 퇴근길에 「쌀자루 순례」에 나서는 집은 동구 남목3동 관내의 김모(83)옹 등 무의탁 홀로 사는 노인과 생활보호대상자 6가구. 최씨는 이들이
"하루 세끼 끼니라도 제때 해결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
고 했다.


그렇지만 이들 가정에선 정작 최씨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밝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쌀자루와 라면 박스를 전달할 때는 함께 간 동사무소 사회복지 부녀요원인 김진희(49·여)씨에게 슬쩍 넘겨 줄 뿐 정작 자신은 빠져 버린다.
선박건조 현장근로자인 최씨가 봉사활동에 나선 것은 지난 90년부터. 당시에는 회사 동료들과 함께 어려운 이웃의 집수리를 도맡아 해주곤 했다. 그러다가 IMF로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이웃들이 여기저기 생겨나자 남몰래 주머니를 털기 시작했다. 백화점 애프터 서비스센터에 근무하는 부인 김순옥(40)씨는 남편의 숨은 봉사활동의 든든한 후원자. 최씨 부부는 주말이면 선물꾸러미를 들고 인근 양로원을 찾곤 한다.


최씨는 또 지난 7월부터는 엄마가 가출하고 아버지가 만성 결핵으로 실직상태인 이진우(9·울산 상평초등 2년)군의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대학졸업까지 지원을 약속하고, 이군 통장에 장학금을 입금해주고 있다.
24평 아파트에 사는 최씨 부부 역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다. 하지만 매달 100만원씩 적금을 꼬박꼬박 붓고 있다. 퇴직 후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건립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남 모르게 이웃을 돕는 사람들을 보고 저도 같이 따라한 것뿐입니다. 새해는 어려운 사람끼리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사는 살맛 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새 천년을 맞는 최씨의 소망이다. 

 

 

 

 

 
 

 

 

선을 한가지도 못하고 임종을 맞는 것
 
페르시아의 왕이 어느 날 세계적인 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인류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죄악이 무엇이겠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그리이스의 현자는 "늙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의 현자는 "사람이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페르시아의 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암흑의 세상에 광명을 줄 만한 선을 한가지도 못하고 임종을 맞는 것입니다." 

 

 

 

 
 

 

 

'심판'에 대한 준비
 
죽음은 노인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죽음과 가까운 곳에 사는 노인들은 오히려 죽음에 대
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죽음은 성격이 매우 급한 속성을 갖고 있다.
예고없이 찾아와 사람을 당혹하게 만든다.
또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 아무도 죽음을 연기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그날을 준비해야 한다.
신앙인들의 죽음이 평화스러운 것은 죽음을 `새로운 생명의 시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한다.“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암4:12) 

 

 

 

 

 
 

 

 

언제 죽을 지?
 
아직 젊기 때문에 죽음의 날이 멀었다고 안위하지 말고 한번쯤 나에게 삶의 기간을 주신 하나님께서 지금 어느 만큼 나의 날 수를 헤아리고 계신가를 생각해 봅시다
주님의 헤아림은 나의 삶이 이미 제로에 가까웠는데 나는 수 십년은 거뜬하다는 착각의 여유 속에 빠져 잊지나 않은지요?
사탄은 늘 우리에게 "너의 죽음이 아직 멀었으니 지금은 즐기라" 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임박했다는 생각 속에서 인간은 진지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 알되 죽은 자는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바됨이라" (전도서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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